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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漢詩

최치원(崔致遠)

 

최치원 崔致遠

857(문성왕 19)~ ?
신라 말기의 학자·문장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고운(孤雲)·해운(海雲). 아버지는 견일(肩逸)로 숭복사(崇福寺)를 창건할 때 그 일에 관계한 바 있다.

경주 사량부(沙梁部) 출신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본피부(本彼部) 출신으로 고려 중기까지 황룡사(皇龍寺)와 매탄사(昧呑寺) 남쪽에 그의 집터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최치원 자신이 6두품을 '득난'(得難)이라 하고, 5두품이나 4두품은 "족히 말할 바가 못 된다"라고 하여 경시한 점과, 진성왕에게 시무책(時務策)을 올려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등인 아찬(阿飡)을 받은 점 등으로 미루어 6두품 출신일 가능성이 많다.

868년(경문왕 8) 12세 때 당나라에 유학하여 서경(西京:長安)에 체류한 지 7년 만에 18세의 나이로 예부시랑(禮部侍郞) 배찬(裵瓚)이 주시(主試)한 빈공과(賓貢科)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그뒤 동도(東都:洛陽)에서 시작(詩作)에 몰두했는데, 이때 〈금체시 今體詩〉 5수 1권, 〈오언칠언금체시 五言七言今體詩〉 100수 1권, 〈잡시부 雜詩賦〉 30수 1권 등을 지었다.

876년(헌강왕 2) 강남도(江南道) 선주(宣州)의 표수현위(漂水縣尉)로 임명되었다.

당시 공사간(公私間)에 지은 글들이 후에 〈중산복궤집 中山覆簣集〉 5권으로 엮어졌다.

 877년 현위를 사직하고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응시할 준비를 하기 위해 입산했으나 서량(書糧)이 떨어져 양양(襄陽) 이위(李蔚)의 도움을 받았고, 이어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고변(高騈)에게 도움을 청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했다.

 879년 고변이 제도행영병마도통(諸道行營兵馬都統)이 되어 황소(黃巢) 토벌에 나설 때 그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서기의 책임을 맡아 표장(表狀)·서계(書啓) 등을 작성했다.

880년 고변의 천거로 도통순관 승무랑 전중시어사 내공봉(都統巡官承務郞殿中侍御史內供奉)에 임명되고 비은어대(緋銀魚袋)를 하사받았다. 이때 군무(軍務)에 종사하면서 지은 글들이 뒤에 〈계원필경 桂苑筆耕〉 20권으로 엮어졌다.

특히 881년에 지은 〈격황소서 檄黃巢書〉는 명문으로 손꼽힌다.

885년 신라로 돌아와 헌강왕에 의해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侍讀兼翰林學士守兵部侍郞知瑞書監)에 임명되어 외교문서 등의 작성을 담당했다.

이듬해 당나라에서 지은 저술들을 정리하여 왕에게 헌상했으며, 〈대숭복사비명 大崇福寺碑銘〉·〈진감국사비명 眞鑑國師碑銘〉 등을 지었다.

 이처럼 문장가로서 능력을 인정받기는 했으나 골품제의 한계와 국정의 문란으로 당나라에서 배운 바를 자신의 뜻대로 펴볼 수가 없었다.

 이에 외직을 청하여 대산(大山)·천령(天嶺)·부성(富城) 등지의 태수(太守)를 역임했다.

 당시 신라사회는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하대(下代)에 들어 중앙귀족들의 권력쟁탈과 함께 집권적인 지배체제가 흔들리면서 지방세력의 반발과 자립이 진행되고 있었다.

889년(진성왕 3) 재정이 궁핍하여 주군(州郡)에 조세를 독촉한 것이 농민의 봉기로 이어지면서 신라사회는 전면적인 붕괴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891년 양길(梁吉)과 궁예(弓裔)가 동해안의 군현을 공략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다음해에는 견훤(甄萱)이 자립하여 후백제를 세웠다.

 최치원은 부성군 태수로 재직중이던 893년 당나라에 보내는 하정사(賀正使)로 임명되었으나 흉년이 들고 각지에서 도적이 횡행하여 가지 못했다.

 그뒤 다시 입조사(入朝使)가 되어 당나라에 다녀왔다. 894년 2월 진성왕에게 시무책 10여 조를 올렸다. 그가 올린 시무책의 내용을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집권체제가 극도로 해이해지고 골품제사회의 누적된 모순이 심화됨에 따라 야기된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진성왕은 이를 가납(嘉納)하고 그에게 아찬의 관등을 내렸다.

그러나 신라는 이미 자체적인 체제정비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으므로 이 시무책은 실효를 거둘 수 없었다. 897년 진성왕의 양위(讓位)로 효공왕이 즉위했는데, 이때 진성왕의 〈양위표 讓位表〉와 효공왕의 〈사사위표 謝嗣位表〉를 찬술하기도 했다.

그뒤 당나라에 있을 때나 신라에 돌아와서나 모두 난세를 만나 포부를 마음껏 펼쳐보지 못하는 자신의 불우함을 한탄하면서 관직에서 물러나 산과 강, 바다를 소요자방(逍遙自放)하며 지냈다.

그가 유람했던 곳으로는 경주 남산(南山), 강주(剛州) 빙산(氷山), 합주(陜州) 청량사(淸涼寺), 지리산 쌍계사(雙溪寺), 합포현(合浦縣) 별서(別墅) 등이 있다.

 또 함양과 옥구, 부산의 해운대 등에는 그와 관련된 전승이 남아 있다. 만년에는 가족을 이끌고 가야산 해인사(海印寺)에 들어가 모형(母兄)인 승려 현준(賢俊) 및 정현사(定玄師)와 도우(道友)를 맺고 지냈다.

904년(효공왕 8) 무렵 해인사 화엄원(華嚴院)에서 〈법장화상전 法藏和尙傳〉을 지었으며, 908년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 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를 지었고 그뒤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흥기할 때 비상한 인물이 반드시 천명을 받아 개국할 것을 알고 "계림(鷄林)은 황엽(黃葉)이요 곡령(鵠嶺)은 청송(靑松)"이라는 글을 보내 문안했다고 한다.

이는 후대의 가작(假作)인 것으로 보이나 신라말에 왕건을 지지한 희랑(希朗)과 교분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유학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며 스스로 유학자로 자처했다.

그러나 불교에도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고, 비록 왕명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선사(禪師)들의 비문을 찬술하기도 했다(→ 색인 : 신라의 불교). 특히 〈봉암사지증대사비문 鳳巖寺智證大師碑文〉에서는 신라 선종사(禪宗史)를 3시기로 나누어 이해하고 있다.

선종뿐만 아니라 교종인 화엄종에도 깊은 이해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그가 화엄종의 본산인 해인사 승려들과 교유하고 만년에는 그곳에 은거한 사실로부터 짐작할 수 있는 바이다.

도교에도 일정한 이해를 지니고 있었는데, 〈삼국사기〉에 인용된 〈난랑비서 鸞郞碑序〉에는 유·불·선에 대한 강령적인 이해가 나타나고 있다.

한편 문학 방면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으며 후대에 상당한 추앙을 받았다.

그의 문장은 문사를 아름답게 다듬고 형식미가 정제된 변려문체(騈儷文體)였으며, 시문은 평이근아(平易近雅)했다.

당나라에 있을 때 고운(顧雲)·나은(羅隱) 등의 문인과 교유했으며, 문명을 널리 떨쳐 〈신당서 新唐書〉 예문지(藝文志)에 〈사륙집 四六集〉·〈계원필경〉이 소개되었다.

고려의 이규보(李奎報)는 〈동국이상국집〉에서 〈당서〉 열전에 그가 입전(立傳)되지 않은 것은 당나라 사람들이 그를 시기한 때문일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밖의 저술로는 문집 30권, 〈제왕연대력 帝王年代曆〉·〈부석존자전 浮石尊者傳〉·〈석순응전 釋順應傳〉·〈석이정전 釋利貞傳〉과 조선시대에 들어와 진감국사·낭혜화상(朗慧和尙)·지증대사의 비명과 〈대숭복사비명〉을 묶은 〈사산비명 四山碑銘〉이 있다.

오늘날까지 전하는 것으로는 〈계원필경〉〈사산비명〉·〈법장화상전〉이 있으며, 〈동문선〉에 실린 시문 몇 편과 후대의 사적기(寺跡記) 등에 그가 지은 글의 편린이 전한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1020년(현종 11)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고 성묘(聖廟:孔子廟)에 종사(從祀)되었으며, 1023년 문창후(文昌侯)에 추봉(追封)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태인 무성서원(武成書院), 경주 서악서원(西嶽書院), 함양 백연서원(柏淵書院), 영평 고운영당(孤雲影堂) 등에 제향되었다.

 

 

 

 

 

 

춘효우서(春曉偶書)-최치원(崔致遠)
봄날 새벽에 우연히 적다-최치원(崔致遠)

叵耐東流水不回(파내동류수부회) : 동으로 흘르는 물 돌아기 어렵우니
只催詩景惱人來(지최시경뇌인내) : 다만 아름다운 시흥이 사람 더욱 괴롭힌다
含情朝雨細復細(함정조우세부세) : 애틋한 아침 비, 부슬부슬 내리고
弄艶好花開未開(농염호화개미개) : 요염한 꽃은 피기도 하고 맺혀있기도 하다
亂世風光無主者(난세풍광무주자) : 난리 때라 좋은 경치 주인이 없고
浮生名利轉悠哉(부생명리전유재) : 뜬 세상 명예와 이익도 쓸 데 없도다
思量可恨劉伶婦(사량가한류령부) : 생각하니, 유령의 부인이 한스러워
强勸夫郎疎酒盃(강권부낭소주배) : 억지로 남편 술잔 자주 못 들게 하였나

 

 

범해(泛海)-최치원(崔致遠)
바다에 배 뛰우니-최치원(崔致遠)

掛席浮滄海(괘석부창해) : 돛 걸고 바다에 배 뛰우니
長風萬里通(장풍만리통) : 긴 바람 만리나 멀리 불어온다
乘槎思漢使(승사사한사) : 뗏목 타니 한나라 사신 생각
採藥憶秦童(채약억진동) : 약초 캐니 진나라 동자 생각
日月無何外(일월무하외) : 세월은 무한의 밖
乾坤太極中(건곤태극중) : 천지는 태극의 안
蓬萊看咫尺(봉래간지척) : 봉래산이 지척에 보이고
吾且訪仙翁(오차방선옹) : 나는 또 신선 노인을 찾아간다

 

 

송오진사만귀강남(送吳進士巒歸江南)-최치원(최치원)
진사 오만을 강남으로 보내며-최치원(최치원)

自識君來幾度別(자식군내기도별) : 그대 온 뒤, 몇 번의 이별이런가
此回相別恨重重(차회상별한중중) : 이번의 이별은 한스럽기도 하여라
干戈到處方多事(간과도처방다사) : 곧곧이 전쟁터라 일도 많아
詩酒何時得再逢(시주하시득재봉) : 언제 다시 만나 시와 술을 나눌건가
遠樹參差江畔路(원수삼차강반노) : 둘쭉날쭉한 먼 숲으로 난 강뚝길
寒雲零落馬前峯(한운령낙마전봉) : 싸늘한 구름은 말 앞 봉우리로 내린다
行行遇景傳新作(항항우경전신작) : 가다가 좋은 경치 만나 시 지어 보내주고
莫學嵇康盡放慵(막학혜강진방용) : 계강의 방달함과 개으름은 배우지 마시라

 

 

춘효우서(春曉偶書)-최치원(최치원)
봄날 새벽에-최치원(최치원)

叵耐東流水不回(파내동류수부회) : 동쪽으로 흐르는 물 돌아오기 어렵지만
只催詩景惱人來(지최시경뇌인내) : 다만 지정을 재촉하여 사람을 괴롭히며 오는구나
含情朝雨細復細(함정조우세복세) : 정다운 아침 비는 가늘어 다시 더 가늘어지고
弄豔好花開未開(농염호화개미개) :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은 피고 또 피어나는구나
亂世風光無主者(난세풍광무주자) : 어리러운 세상 경치는 주인도 없으니
浮生名利轉悠哉(부생명리전유재) : 부질없는 인생살이 부귀공명을 더울 아득하도다
思量可恨劉伶婦(사량가한류령부) : 생각할사 가련하다 우령의 아내여
强勸夫郎疎酒盃(강권부낭소주배) : 억지로 남군에게 권하는 성긴 술잔이로다

 

 

유별서경금소윤준(留別西京金少尹峻)-최치원(崔致遠)
서경에 소윤 김준을 남겨두고 -최치원(최치원)

相逢信宿又分離(상봉신숙우분리) : 서로 만나 이틀 밤 묵고 또 이별이라
愁見歧中更有歧(수견기중경유기) : 갈림길 속의 갈림길을 수심겨워 바라본다
手裏桂香銷欲盡(수리계향소욕진) : 손에 쥔 계수나무, 향기 다 사라져가니
別君無處話心期(별군무처화심기) : 그대와 이별 후엔 내 마음 얘기할 곳 없어라

 

 

제우강역정(題芋江驛亭)-최치원(崔致遠)
우강역 정자에서-최치원(崔致遠)

沙汀立馬待回舟( 정립마대회주) : 모래벌에 말 세우고 배 돌아오기 기다리니
一帶烟波萬古愁(일대연파만고수) : 한 줄기 물안개는 만고의 수심이로다
直得山平兼水渴(직득산평겸수갈) : 이 산이 평야되고 이 물이 다 마른다면
人間離別始應休(인간이별시응휴) : 서러운 인간이별 비로소 없어지련만

 

 

춘일요지우부지(春日邀知友不至)-최치원(崔致遠)
봄날 친구를 마중갔으니 만나지 못하고-최치원(崔致遠)

每憶長安舊苦辛(매억장안구고신) : 장안의 옛 고생 기억할 때마다
那堪虛擲故園春(나감허척고원춘) : 어찌 견딜까, 헛되이 보낸 고향의 봄날을
今朝又負遊山約(금조우부유산약) : 오늘 아침 또 봄산 유람 약속 저버리다니
悔識塵中名利人(회식진중명리인) : 티끌 세상 속된 사람 알았을까 후회스러워

 

 

황산강임경대(黃山江臨鏡臺)-최치원(崔致遠)
황산강 임경대에서-최치원(崔致遠)

煙巒簇簇水溶溶(연만족족수용용) : 뾰죽뾰죽 안개 낀 산봉우리, 질펀히 흐르는 물
鏡裏人家對碧峰(경리인가대벽봉) : 거울 속 인가에서 푸른 산봉우리를 마주보노라
何處孤帆飽風去(하처고범포풍거) : 어느 곳 온 돛단배 바람에 배불러 떠나가는데
瞥然飛鳥杳無蹤(별연비조묘무종) : 순식간에 나는 새들이 아득히 눈앞에서 사라진다

 

 

증금천사주(贈金川寺主)-최치원(崔致遠)
금천사 주지에게 드리다-최치원(崔致遠)

白雲溪畔創仁寺(백운계반창인사) : 흰구름 자욱한 시냇가에 절을 짓고
三十年來此住持(삼십년래차주지) : 삼십 년 동안 이 절의 주지로 있다네
笑指門前一條路(소지문전일조로) : 웃으면 가리키는 절문 앞, 한 가닥 길
纔離山下有千岐(재리산하유천기) : 산 아래로 벗어나자 천 가닥 갈림길이네

 

 

증재곡난야독거승(贈梓谷蘭若獨居僧)-최치원(崔致遠)
재곡사 절에서 홀로 사는 스님에게-최치원(崔致遠)

除聽松風耳不喧(제청송풍이불훤) : 솔바람 소리 밖에는 귀에 번거롭지 않고
結茅深倚白雲根(결모심의백운근) : 얽은 띠풀집은 흰 구름 깊이 의지해 있네
世人知路飜應恨(세인지로번응한) : 사람들이 이 길 알면 도리어 한스러워
石上莓苔汚屐痕(석상매태오극흔) : 돌 위의 이끼를 나막신 자국이 드럽히네

 

 

귀연음헌태위(歸燕吟獻太尉)-최치원(崔致遠)
연으로 가면서 태위에게 읊어 드리다-최치원(崔致遠)

秋去春來能守信(추거춘내능수신) : 가을 가고 봄이 와도 소식 지킬 수 있어
暖風涼雨飽相諳(난풍량우포상암) : 따뜻한 바람 서늘한 비에 서로 익히 알았도자
再依大厦雖知許(재의대하수지허) : 다시 큰집에 의지함을 안다고 해도
久汚雕梁却自慙(구오조량각자참) : 오래도록 단청 기둥 더럽힘이 스스로 부끄럽소
深避鷹鸇投海島(심피응전투해도) : 매와 독수리 깊이 피해 바다로 왔다가
羨他鴛鷺戲江潭(선타원노희강담) : 저 원앙과 해오라기 부러워 강가에 노니노라
只將名品齊黃雀(지장명품제황작) : 다만 명품을 저 참새와 같이 여기니
獨讓銜環意未甘(독양함환의미감) : 혼로 금반지 머금게 해도 마음 달갑지 않도다

 

 

수진사양섬송별(酬進士楊贍送別)-최치원(崔致遠)
지사 양섬의 송별시에 화답하다-최치원(崔致遠)

海山遙望曉烟濃(해산요망효연농) : 바다 속 산 바라보니 새벽 안개 자욱하고
百幅帆張萬里風(백폭범장만리풍) : 만리 먼 바람에 큰 돗단배 바람에 떠있구나
悲莫悲兮兒女事(비막비혜아녀사) : 슬프도 슬퍼지 않음도다, 아녀자의 일
不須怊悵別離中(부수초창별리중) : 이별 중이라도 반드시 슬퍼하지 말지어라

 

 

유별녀도사(留別女道士)-최치원(崔致遠)
여도사를 작별하며-최치원(崔致遠)

每恨塵中厄宦塗(매한진중액환도) : 세상 벼슬길 액운이 항상 한스러워
數年深喜識麻姑(삭년심희식마고) : 몇 년 동안 마고선녀 안 것 너무 기쁘다
臨行與爲眞心說(림항여위진심설) : 떠나려니 함께 진심을 말하니
海水何時得盡枯(해수하시득진고) : 바닷물이 어느 때에 다 마를 수 있겠는가

 

 

두견(杜鵑)-최치원(崔致遠)
두견화-최치원(崔致遠)

石罅根危葉易乾(석하근위섭역건) : 나무 틈새 뿌리 위태로워 잎이 쉽게 말라
風霜偏覺見摧殘(풍상편각견최잔) : 서리와 바람에 꺾이고 잘린 것으로 잘못 알았네
已饒野菊誇秋艶(이요야국과추염) : 이미 들국화 가득 피어 가을의 풍요 자랑하나
應羨巖松保歲寒(응선암송보세한) : 바윗가 소나무 겨울 추위 견딤을 응당 부러워 하리라
可惜含芳臨碧海(가석함방림벽해) : 부른 바닷가에 향기 품은 두견화 애석하니
誰能移植到朱欄(수능이식도주난) : 누가 능히 붉은 난간으로 옮겨 심을 수 있을까
與凡草木還殊品(여범초목환수품) : 뭇 풀과 나무와는 특별한 품격이니
只恐樵夫一例看(지공초부일례간) : 다만 두렵거니, 나무꾼이 일례로 보아버릴까 함이네

 

 

야소(野燒)-최치원(崔致遠)
들불-최치원(崔致遠)

望中旌旆忽繽紛(망중정패홀빈분) : 눈앞에 깃발 갑자기 휘날리니
疑是橫行出塞軍(의시횡항출새군) : 이것이 변방에 나가는 군대의 행렬인가
猛焰燎空欺落日(맹염료공기낙일) : 맹렬한 불길 공중을 태워 지는 해 속이고
狂煙遮野截歸雲(광연차야절귀운) : 광기 어린 안개 들을 막고 오는 구름을 끊는구나
莫嫌牛馬皆妨牧(막혐우마개방목) : 소나 말들 모두 먹이는 것 막는 것 싫어 말고
須喜狐狸盡喪羣(수희호리진상군) : 이리나 여우 다 죽이는 것 기뻐하여라
只恐風驅上山去(지공풍구상산거) : 다만 두려워하노니, 바람이 산으로 몰아 올라 가
虛敎玉石一時焚(허교옥석일시분) : 헛되이 옥석을 일시에 태워버리게 되는 것을

 

 

사정(沙汀)-최치원(崔致遠)
백사장-최치원(崔致遠)

遠看還似雪花飛(원간환사설화비) : 멀리서 바라보면 눈꽃이 날리는 듯
弱質由來不自持(약질유내부자지) : 약한 체질은 원래 스스로 견디기 어렵도다
聚散只憑潮浪簸(취산지빙조낭파) : 모이고 흩어짐은 다만 조수 물결의 키질에 따를 뿐
高低況被海風吹(고저황피해풍취) : 높아지고 낮아짐은 바닷바람에 날리어진다
煙籠靜練人行絶(연농정련인항절) : 안개가 비단처럼 몰리니 사람의 발길 끊어지고
日射凝霜鶴步遲(일사응상학보지) : 햇살은 웅긴 서리에 쬐니 학의 걸음도 더디구나
別恨滿懷吟到夜(별한만회음도야) : 가슴에 가득한 이별의 한을 밤 되도록 읊어보나
那堪又値月圓時(나감우치월원시) : 달이 둥글어질 때까지 어찌 견딜 수 있으리오

 

 

조낭(潮浪)-최치원(崔致遠)
조수 물결-최치원(崔致遠)

驟雪翻霜千萬重(취설번상천만중) : 몰아치는 눈, 날리는 서리 만겹 쌓이고
往來弦望躡前蹤(왕내현망섭전종) : 초승과 보름을 오가며 지난 자취 잇는구나
見君終日能懷信(견군종일능회신) : 종일토록 믿음을 품는 그대를 보지만
慙我趨時盡放慵(참아추시진방용) : 나는 때를 따라 방종하고 게으름이 부끄럽구나
石壁戰聲飛霹靂(석벽전성비벽력) : 돌벽에 싸우는 소리 벽력같이 날고
雲峯倒影撼芙蓉(운봉도영감부용) : 구름 낀 봉우리 거꾸로 선 그림자 연꽃을 흔든다
因思宗慤長風語(인사종각장풍어) : 종각의 장풍의 이야기 생각하니
壯氣橫生憶臥龍(장기횡생억와룡) : 갑자기 장대한 기운 도니 누운 용이 생각난다

 

 

석봉(石峯)-최치원(崔致遠)
바위 봉우리-최치원(崔致遠)

巉嵒絶頂欲摩天(참암절정욕마천) : 높이 솟은 봉우리 하늘에 닿을 듯
海日初開一朶蓮(해일초개일타련) : 바다의 해 처음 떠오르니 한 떨기 연꽃이라
勢削不容凡樹木(세삭부용범수목) : 깎아지른 산세 평범한 나무 받지 않고
格高唯惹好雲烟(격고유야호운연) : 겨조 높아 오직 좋은 구름과 안개 일으킨다
點酥寒影糚新雪(점소한영장신설) : 젖을 뿌린 듯 한 차가운 그늘 새 눈을 꾸미고
戛玉淸音噴細泉(알옥청음분세천) : 부딪치는 맑은 옥소리 가늘게 뿜는 샘물소리로다
靜想蓬萊只如此(정상봉래지여차) : 고요히 생각건대, 봉래산이 이와 같으리니
應當月夜會羣仙(응당월야회군선) : 응당 달밤에는 여러 신선들이 모여들리라

 

 

산정위석(山頂危石)-최치원(崔致遠 )
산 마루 높은 바위-최치원(崔致遠 )

萬古天成勝琢磨(만고천성승탁마) : 만고에 절로 이루어져 만든 것보다 나으니
高高頂上立靑螺(고고정상립청나) : 높디높은 꼭대기에 푸른 상투처럼 서있구나
永無飛溜侵凌得(영무비류침능득) : 나는 물줄기 능멸하여 침범함이 없고
唯有閒雲撥觸多(유유한운발촉다) : 오직 한가한 구름 많이 닿음이 있을 뿐이다
峻影每先迎海日(준영매선영해일) : 높은 바위 그림자 바다의 해를 매번 먼저 맞고
危形長恐墜潮波(위형장공추조파) : 위태로운 형상 조수 물결에 떨어질까 항상 두려워라
縱饒蘊玉誰回顧(종요온옥수회고) : 풍부한 옥이 쌓였다 한들 누가 돌아볼까
擧世謀身笑卞和(거세모신소변화) : 세상에 몸 조심하는 사람들 옥장인 변화를 비웃는다

 

 

석상왜송(石上矮松)-최치원(崔致遠)
바위 위 작은 소나무-최치원(崔致遠)

不材終得老煙霞(부재종득노연하) : 재목이 못되어 끝내 자연에서 늙어
澗底何如在海涯(간저하여재해애) : 골짝 아래에 있든, 바다에 있든 어떠리오
日引暮陰齊島樹(일인모음제도수) : 해는 저문 그늘 끌어 섬 속 나무에 가지런하고
風敲夜子落潮沙(풍고야자낙조사) : 바람은 밤 씨앗 흔들어 조수 이는 모래에 떨어뜨린다
自能盤石根長固(자능반석근장고) : 반석에 내린 뿌리 오래도록 스스로 굳을 수 있으니
豈恨凌雲路尙賖(개한능운노상사) : 어찌 구름 길 능멸하기는 길이 아직 멀다 한탄하리오
莫訝低顔無所愧(막아저안무소괴) : 부끄럼없이 머리 숙였다 의심하지 말라
棟樑堪入晏嬰家(동량감입안영가) : 동량이 되어 안영의 집안에 들어가게 되리라

 

 

화금원외증참산청상인(和金員外贈巉山淸上人)-최치원(崔致遠)
김원외랑에게 화답하여 찬산 청상인에게 드리다-최치원(崔致遠)

海畔雲庵倚碧螺(해반운암의벽나) : 푸른 산마루에 바닷가 구름 낀 암자
遠離塵土稱僧家(원리진토칭승가) : 티끌 세상 멀리 벗어난 스님의 집이라네
勸君休問芭蕉喩(권군휴문파초유) : 권하노니, 파초 심은 뜻을 묻지 말게나
看取春風撼浪花(간취춘풍감낭화) : 봄바람이 꽃물결 흔듬을 보려 함이라네

 

 

화우인제야견기(和友人除夜見寄)-최치원(崔致遠)
친구가 그믐에 부친 시에 화답하여-최치원(崔致遠)

與君相見且歌吟(여군상견차가음) : 그대와 만나면 노래 부르고 시를 짓으니
莫恨流年挫壯心(막한류년좌장심) : 흘러가는 세월에 장한 마음만 꺾였다 한탄 말라
幸得東風已迎路(행득동풍이영노) : 다행히도 봄바람 이미 길에서 맞으니
好花時節到雞林 (好花時節到雞林 ) : 꽃 피는 좋은 시절에 계림을 찾아온다

 

 

수오만수재석별2(酬吳巒秀才惜別2)-최치원(崔致遠)
수재 오만과 석별의 정으로 수답하다-최치원(崔致遠)

殘日塞鴻高的的(잔일새홍고적적) : 해질 녘, 변방의 기러기는 뚜렷이 높이 날고
暮煙汀樹遠依依(모연정수원의의) : 저문 안개 속, 물가의 숲은 아른아른 멀기만 하다
此時回首情何恨(차시회수정하한) : 이럴 때 머리 돌려 바라보니 내 마음 한이 없어
天際孤帆窣浪飛(천제고범솔랑비) : 하늘 끝의 외로운 배 느린 물결 따라 나르듯 떠나 간다

 

 

수오만수재석별1(酬吳巒秀才惜別1)-최치원(崔致遠)
수재 오만과 석별의 정으로 수답하다-최치원(崔致遠)

榮祿危時未及親(영록위시미급친) : 벼슬살이 어려울 때는 부모도 못 돌봐
莫嗟岐路暫勞身(막차기로잠로신) : 갈림길에서 잠시 수고로운 몸 차탄하지 말라
今朝遠別無他語(금조원별무타어) : 오늘 아침 멀리 떠남에 다른 말 없나니
一片心須不愧人(일편심수불괴인) : 일편단심 모름지기 남에게 부끄럽게 말라

 

 

홍엽수(紅葉樹)-최치원(崔致遠)
단풍나무-최치원(崔致遠)

白雲巖畔立仙妹(백운암반립선매) : 흰 구름 낀 바위가에 선녀가 서있고
一簇煙蘿倚畵圖(일족연라의화도) : 한 줄기 안개 속 댕댕이 그림에 기대어 있다
麗色也知禦世有(여색야지어세유) : 고운 빛 세상의 존재들을 막아낼 줄 알고
閒情長得似君無(한정장득사군무) : 한적한 정은 그대 만한 것이 길이 없을 것이다
宿糚含露疑垂泣(숙장함로의수읍) : 묵은 화장, 머금은 이슬은 눈물을 흘린 듯하고
醉態迎風欲待扶(취태영풍욕대부) : 바람 맞은 취한 모습 부축받기 기다리는 듯하다
吟對寒林却惆愴(음대한림각추창) : 시를 읊으며 차가운 숲 바라보니 쓸쓸하기만 한데
山中猶自辨榮枯(산중유자변영고) : 산중에서는 아직도 저절로 영고성쇠 분별하는구나

 

 

동풍(東風)-최치원(崔致遠)
봄바람-최치원(崔致遠)

知爾新從海外來(지이신종해외래) : 봄바람 네가 바닷가에서 불오니
曉窓吟坐思難裁(효창음좌사난재) : 새벽 창가에 앉아 읊으니 마음 잡기어렵구나
堪憐時復撼書幌(감련시부감서황) : 때때로 다시 서실의 휘장을 흔드니
似報故園花欲開(사보고원화욕개) : 고향 동산의 꽃 핀 소식을 알리는 듯 하구나

 

 

석상류천(石上流泉)-최치원(崔致遠)
돌 위로 흐르는 샘물-최치원(崔致遠)

琴曲雖誇妙手彈(금곡수과묘수탄) : 거문고가 비록 뛰어난 연주를 자랑하더라도
遠輸雲底響珊珊(원수운저향산산) : 멀리 구름 아래로 실어가 울림은 산히 흩어진다
靜無纖垢侵金鏡(정무섬구침금경) : 고요하여 거울에 끼는 가는 떼 하나 없어거
時有輕颸觸玉盤(시유경시촉옥반) : 때때로 가볍고 빠른 물살 옥 소반에 밀려온다
嗚咽張良言未用(오열장량언미용) : 오열하는 물 소리 장량의 말이 필요없고
潺湲孫楚枕應寒(잔원손초침응한) : 잔잔히 흐르는 물에 손초의 베개도 차가우리라
尋思堪惜淸冷色(심사감석청냉색) : 생각하니 아까워라, 저 맑고 차가운 물빛
流入滄溟便一般(유입창명편일반) : 넓은 바다로 흘러들면 마찬가지가 되는 것을

 

 

해변한보(海邊閒步)-최치원(崔致遠)
해변을 한가히 걸으며-최치원(崔致遠)

潮波靜退步登沙(조파정퇴보등사) : 조수도 밀려간 모랫벌 걸어 오르니
落日山頭簇暮霞(낙일산두족모하) : 해 지는 산머리에 저녁 놀 피어난다
春色不應長腦我(춘색불응장뇌아) : 봄빛이 길이 나를 괴롭히지 않겠지만
看看卽醉故園花(간간즉취고원화) : 볼수록 취하는 고향 동산의 꽃이로다

 

 

춘효한망(春曉閒望)-최치원(崔致遠)
봄날 새벽에 한가히 바라보다-최치원(崔致遠)

山面嬾雲風惱散(산면란운풍뇌산) : 산 얼굴에 나른한 구름 바람이 괴로이 흩어버리고
岸頭頑雪日欺銷(안두완설일기소) : 언덕 머리의 완악한 눈을 해가 업신여겨 녹이는구나
獨吟光景情何限(독음광경정하한) : 혼자 읊는 경치가 어찌 내 마음을 막을까
猶賴沙鷗伴寂寥(유뢰사구반적요) : 오히려 백사장 갈매기 의지하여 고독과 친구한다

 

 

해변춘망(海邊春望)-최치원(崔致遠)
바닷가의 봄 경치-최치원(崔致遠)

鷗鷺分飛高復低(구로분비고부저) : 갈매기, 백로 서로 날아 오르고 내리는데
遠汀幽草欲萋萋(원정유초욕처처) : 저 멀리 바닷가 그윽한 풀들은 무성해지는구나
此時千里萬重意(차시천리만중의) : 이 시간, 천리 먼 곳 생각하니 오만 생각 다 일어
目極暮雲飜自迷(목극모운번자미) : 눈 앞 아득한 저문 구름 덮히더니 저절로 희미해진다

 

 

제해문난야류(題海門蘭若柳)-최치원(崔致遠)
바닷가 절간의 버들을 읊다-최치원(崔致遠)

廣陵城畔別蛾眉(광릉성반별아미) : 광릉성 두둑에서 아미 같은 너 버들을 이별하고
豈料相逢在海涯(기료상봉재해애) : 바다 끝에서 서로 만날 줄을 어찌 알랐으리오
只恐觀音菩薩惜(지공관음보살석) : 다만 관음보살이 너를 아낌이 두려워
臨行不敢折纖枝(임행불감절섬지) : 떠나는 걸음에 감히 연약한 가지를 꺾지 못하겠다

 

 

우흥(寓興)-최치원(崔致遠)
흥에 겨워-최치원(崔致遠)

願言扄利門(원언扄리문) : 바라기는, 이욕의 문을 막아
不使損遺體(불사손유체) : 부모께 받은 몸 상하게 말라
爭奈探珠者(쟁내탐주자) : 어찌하여 진주를 캐는 사람처럼 다투어
輕生入海底(경생입해저) : 목숨 가벼이 여겨 바다 밑 깊숙에 드는가
身榮塵易染(신영진역염) : 몸이 영화로우면 티끌에 물들기 쉽고
心垢非難洗(심구비난세) : 마음의 때는 물로 씻기 어렵도다
澹泊與誰論(담박여수론) : 담박한 삶의 맛을 누구와 의논하리오
世路嗜甘醴(세로기감례) : 세상 사람들 사는 일은 단 술만 즐기니라

 

 

추일재경우이현기리장관(秋日再經盱眙縣寄李長官)-최치원(崔致遠)
가을날 우치현을 다시 지나며 이장관에게 부침-최치원(崔致遠)

孤蓬再此接恩輝(고봉재차접은휘) : 외로운 나그네 여기서 두 번 신세 지니
吟對秋風恨有違(음대추풍한유위) : 가을바람 읊조리며 뵈오니 서러워집니다
門柳已淍新歲葉(문류이주신세엽) : 문 앞 버들은 이미 시들고 새 잎 나지만
旅人猶着去年衣(려인유착거년의) : 나그네는 아직 작년 옷을 그대로 입니다
路迷霄漢愁中老(로미소한수중로) : 길은 멀고 아득하여 시름 속 늙어갑니다
家隔煙波夢裏歸(가격연파몽리귀) : 자욱한 물결 너머 집 꿈속에나 돌아갑니다
自笑身如春社燕(자소신여춘사연) : 우습도다, 이 몸은 봄날 사당의 제지인가
畫梁高處又來飛(화량고처우래비) : 그림 들보 높은 곳에 또 와서 날아다닌다

 

 

유별서경금소윤준(留別西京金少尹峻)-최치원(崔致遠)
서경 소윤 김준을 유별하며-최치원(崔致遠)

相逢信宿又分離(상봉신숙우분리) : 서로 만나 수일 묵고 다시 헤어지니
愁見岐中更有岐(수견기중경유기) : 갈림길에 또 갈림길 보니 시름겹구나
手裏桂香銷欲盡(수리계향소욕진) : 손 가운데 계향은 다 녹으려 하는데
別君無處話心期(별군무처화심기) : 그대와 헤어지면 마음 나눌 기약 없구나

 

 

춘일요지우불지인기절구(春日邀知友不至因寄絶句)-최치원(崔致遠)
봄날에 벗을 맞았으나 오지 않아 절구를 부친다-최치원(崔致遠)

每憶長安舊苦辛(매억장안구고신) : 장안에서 고생하던 일 생각할 때마다
那堪虛擲故園春(나감허척고원춘) : 차마 어찌 고향 동산의 봄을 헛되이 보내랴
今朝又負遊山約(금조우부유산약) : 오늘 아침 또 산놀이 약속을 저버리다니
悔識塵中名利人(회식진중명리인) : 뉘우치노라, 내가 티끌 속의 명리인 것을

 

 

산양여향우화별(山陽與鄕友話別)-최치원(崔致遠)
산양이 고향친구와 이별하며-최치원(崔致遠)

相逢暫樂楚山春(상봉잠악초산춘) : 서로 만나 잠시 초산의 봄을 즐겼더니
又欲分離淚滿巾(우욕분리루만건) : 다시 헤어지려니 눈물이 수건에 가득하다
莫怪臨風偏悵望(막괴림풍편창망) : 바람 앞에서 추창히 바라봄을 괴상하게 여기지 말라
異鄕難遇故鄕人(이향난우고향인) : 타향에서 고향사람 만나기 참으로 어렵노라

 

 

요주파양정(饒州鄱陽亭)-최치원(崔致遠)
요주 파양정에서-최치원(崔致遠)

夕陽吟立思無窮(석양음립사무궁) : 석양에 읊조리며 서있으니 생각은 끝없고
萬古江山一望中(만고강산일망중) : 영원한 강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구나
太守憂民疏宴樂(태수우민소연악) : 태수가 백성 염려하여 잔치를 즐겨하지 않으니
滿江風月屬漁翁(만강풍월속어옹) : 강에 가득한 저 바람과 달이 늙은 어부 차지로다

 

 

송오진사만귀강남(送吳進士巒歸江南)-최치원(崔致遠)
진사 오만이 강남으로 가는 것을 전송하며-최치원(崔致遠)

自識君來幾度別(자식군래기도별) : 그대를 알고 나서 몇 번째 이별인가
此回相別恨重重(차회상별한중중) : 이번 이별에는 한이 더욱 깊어지는구나.
干戈到處方多事(간과도처방다사) : 전쟁은 가는 곳마다 한창 치열하니
詩酒何時得再逢(시주하시득재봉) : 시와 술 나누며 언제 다시 만나게 될까.
遠樹參差江畔路(원수참차강반로) : 멀리보이는 나무는 강변 길가에 흩어있고
寒雲零落馬前峯(한운령락마전봉) : 차가운 구름은 말 앞 산봉우리에 떨어진다.
行行遇景傳新作(행행우경전신작) : 가다가 좋은 경치 만나면 내 시를 전하여
莫學嵆康盡放慵(막학혜강진방용) : 결코 편지 쓰기 싫어한 혜강은 본받지 마오.

 

 

장안려사여우신미장관접린유기(長安旅舍與于愼微長官接隣有寄)-최치원(崔致遠)
장안 여관 이웃에 우신미 장관이 살기에 부친다-최치원(崔致遠)

上國羈棲久(상국기서구) : 상국에 와 객지 생활 오래되니
多慙萬里人(다참만리인) : 만 리 타향의 부끄러운 사람이로다.
那堪顔氏巷(나감안씨항) : 어찌 견디리오, 안자의 누항 같은 살림으로써
得接孟家隣(득접맹가린) : 맹자처럼 좋은 이웃에 살게 되어 맹자처럼 이웃에 살게 되니
守道唯稽古(수도유계고) : 도를 지키어 옛글 공부 할 뿐
交情豈憚貧(교정기탄빈) : 사귀는 깊은 정을 어찌 가난함을 싫어하리오
他鄕少知己(타향소지기) : 타향에서는 알아 줄 이 적으니
莫厭訪君頻(막염방군빈) : 그대를 자주 찾아감 싫다고 하지 마오

 

 

증운문란약지광상인(贈雲門蘭若智光上人)-최치원(崔致遠)
운문 난야 지광스님에게-최치원(崔致遠)

雲畔構精廬(운반구정려) : 구름 두둑에 정사를 짓고
安禪四紀餘(안선사기여) : 조용히 선정에 던디 근 50년이라.
筇無出山步(공무출산보) : 지팡이는 산 밖에 나 본 일 없고
筆絶入京書(필절입경서) : 붓은 서울로 가는 글월 전혀 쓰지 않는다.
竹架泉聲緊(죽가천성긴) : 대 홈에 샘물 소리 나고
松欞日影疏(송령일영소) : 소나무 창에는 햇빛이 성글어지는구나.
境高吟不盡(경고음불진) : 맑고 높은 경지에 읊으나 다하지 못하고
瞑目悟眞如(명목오진여) : 눈 감고 아득히 진여의 진리를 깨치려 한다.

 

 

제운봉사(題雲峯寺)-최치원(崔致遠)
운봉사에 제하다-최치원(崔致遠)

捫葛上雲峯(문갈상운봉) : 칡덩굴 부여잡고 운봉에 올라
平觀世界空(평관세계공) : 평평히 바라보니 온 누리가 비었구나.
千山分掌上(천산분장상) : 온 산은 손바닥에 놓이고
萬事豁胸中(만사활흉중) : 만사가 가슴 속이 훤히 트인다.
塔影日邊雪(탑영일변설) : 탑 그림자 해 둘레의 눈발 같고
松聲天半風(송성천반풍) : 솔바람 소리는 반공의 바람이로다.
煙霞應笑我(연하응소아) : 구름과 노을이 나를 비웃을 것이니
回步入塵籠(회보입진롱) : 걸음 돌려 진세로 돌아가노라.

 

 

夜贈樂官(야증악관)-崔致遠(최치원)
밤에 악관에게 줌-崔致遠(최치원)

人事盛還衰(인사성환쇠) : 사람의 일이란 흥하면 쇠하는 법
浮生實可悲(부생실가비) : 덧없는 인생은 시로 슬프기만 하다네
誰知天上曲(수지천상곡) : 누가 천상의 노래를 알리오
來向海邊吹(내향해변취) : 해변을 향해 들려오는구나
水殿看花處(수전간화처) : 강가의 누각에서 꽃 있는 곳 바라봄이
風欞對月時(풍령대월시) : 바람부는 난간에서 달 보고 있을 때이로다
攀髥今已矣(반염금이의) : 수염을 만져보니 이미 늙어가니
與爾淚雙垂(여이루쌍수) : 두 사람이 함께 눈물 흘린다.

 

 

郵亭秋夜(우정추야)-崔致遠(최치원)
우정의 가을밤-崔致遠(최치원)

旅館窮秋雨(여관궁추우) : 여관방에 가을비 그치고
寒窓靜夜燈(한창정야등) : 스산한 창가에 밤 등불 고요하네.
自憐愁裏坐(자련수리좌) : 시름에 앉은 내가 불쌍해져
眞箇定中僧(진개정중승) : 이야말로 틀림없는 한 사람 승려라네.

 

 

鄕樂雜詠5(향악잡영5)-崔致遠(최치원)
狻猊(산예)-崔致遠(최치원)


遠涉流沙萬里來(원섭류사만리래) : 사막을 건너 만 리 먼 곳으로 와서
毛衣破盡着塵埃(모의파진착진애) : 옷의 털은 다 빠지고 먼지만 묻었구나
搖頭掉尾馴仁德(요두도미순인덕) : 머리와 꼬리 흔들며 어진 마음과 덕망에 길들어
雄氣寧同百獸才(웅기녕동백수재) : 웅장한 기운이 온갖 짐승의 재주와 같구나.

 

 

鄕樂雜詠4(향악잡영4)-崔致遠(최치원)
東毒(동독)-崔致遠(최치원)

蓬頭藍面異人問(봉두람면이인문) : 쑥대머리 파란 얼굴 저 사람이 누군가,
押隊來庭學舞鸞(압대래정학무란) : 꾼들을 거느리고 마당에 나와 난새춤 춘다.
打鼓冬冬風瑟瑟(타고동동풍슬슬) : 장고 소리 동동거리고 바람 소리 살랑거리는데
南奔北躍也無端(남분북약야무단) :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이 없구나

 

 

鄕樂雜詠3(향악잡영3)-崔致遠(최치원)
大面-崔致遠(최치원)

黃金面色是其人(황금면색시기인) : 누른 금빛 얼굴은 바로 그 사람이
手抱珠鞭役鬼神(수포주편역귀신) : 방울 채찍 손에 잡고 귀신을 부리는구나.
疾步徐趨呈雅舞(질보서추정아무) : 빠른 걸음 느린 가락 한바탕 춤을 추니
宛如丹鳳舞堯春(완여단봉무요춘) : 너울너울 봉황새 봄 춤을 추는 듯하여라.

 

 

鄕樂雜詠2(향악잡영2)-崔致遠(최치원)
月顚-崔致遠(최치원)

肩高項縮髮崔嵬(견고항축발최외) : 어깨는 솟고 못은 오므리고 가발은 우뚝세우고
攘臂群儒鬪酒杯(양비군유투주배) : 구경 나온 여러 선비들 팔뚝 걷으며 술을 건다.
聽得歌聲人盡笑(청득가성인진소) : 노랫소리 듣자 사람들 모두 웃어 제치며
夜頭旗幟曉頭催(야두기치효두최) : 초저녁에 올린 깃발 새벽까지 재촉한다.

 

 

鄕樂雜詠1(향악잡영1)-崔致遠(최치원)
金丸(금환)-崔致遠(최치원)

賄身掉臂弄金丸(회신도비농금환) : 몸을 돌리고 팔뚝을 흔들며 방울로 노니
月轉星浮滿眠看(월전성부만면간) : 달이 구르고 별이 떠다니듯 눈에 가득 보이네.
縱有宜僚那勝此(종유의료나승차) : 초나라의 의료가 있다한들 어찌 이보다 더 나을까
定知鯨海息波瀾(정지경해식파란) : 동해바다 거친 물결 반드시 잠잠해짐을 알겠노라.

 

 

登潤州慈和寺上房(등윤주자화사상방)-崔致遠(최치원)
윤주 자화사 상방에 올라-崔致遠(최치원)

登臨暫隔路岐塵(등임잠격노기진) : 올라보니 속세의 띠끌 떠나 있네
吟想興亡恨益新(음상흥망한익신) : 흥망을 읊어 생각하니 한이 더욱 새로워라
畫角聲中朝暮浪(화각성중조모랑) : 피리소리에 아침저녁 물결 일고
古山影裏古今人(고산영이고금인) : 옛 산 그림자 속엔 고금의 많은 사람들
霜摧玉樹花無主(상최옥수화무주) : 서리 내린 나무는 임자 없는 꽃이요
風暖金陵草自春(풍난금릉초자춘) : 바람 따뜻한 금릉 지방 풀이 이미 봄이라네
賴有謝家餘境在(뢰유사가여경재) : 거부 사씨 집안의 땅 남아있어
長敎詩客爽精神(장교시객상정신) : 길이 시인으로 하여금 정신을 맑게하네

 

 

秋日再經盱貽縣李長官(추일재경우이현이장관)-崔致遠(최치원)
가을날 우이현 이장관을 다시 지나며-崔致遠(최치원)

孤逢再此接恩輝(고봉재차접은휘) : 외롭게 만나 다시 은헤 받고
吟對秋風恨有違(음대추풍한유위) : 가을바람에 시 읊조리니, 이루지 못란 일 너무 한스러워
門柳已凋新歲葉(문류이조신세엽) : 대문 앞에 버드나무 시들고 새잎 나는데
旅人猶着去年衣(여인유착거년의) : 나그네 입은 옷 아직 작년 옷이네
路迷宵漢愁中老(노미소한수중노) : 길 잃은 밤 나그네 수심에 늙어가고
家隔煙波夢裏歸(가격연파몽리귀) : 안개 속 아득한 먼 집 꿈속에서나 노닌다네
自笑身同春社燕(자소신동춘사연) : 스스로 웃어보네, 춘사일 제비 신세
畫樑高處又來飛(화량고처우래비) : 높은 대들보에 올 해도 와서 날고 있네

送進士吳巒歸江南(송진사오만귀강남)-崔致遠(최치원)
진사 오만이 강남 가는 것을 송별함-崔致遠(최치원)

自識君來幾度別(자식군래기도별) : 그대와 서로 이별한 것 몇 번이던가
此廻相別恨重重(차회상별한중중) : 이번의 이별은 더욱 한스러워라
干戈到處方多事(간과도처방다사) : 난리에 곳곳은 일도 많은데
詩酒何時得再逢(시주하시득재봉) : 시와 술은 언제 다시 만나 나누랴
遠樹參差江畔路(원수참치강반로) : 멀리 보이는 나무는 강뚝길에 여기저기 서있고
寒雲零落馬前峰(한운영락마전봉) : 말머리엔 산봉우리 찬 구름 쓸쓸하다
行行遇景傳新作(행행우경전신작) : 가다가 좋은 경치 만나면 새롭게 시 지어 전하고
莫學꟮康盡方慵(막학혜강진방용) : 헤강의 게으름은 배우지 말게나

 

 

春曉偶書(춘효우서)-崔致遠(최치원)
봄날 아침에-崔致遠(최치원)

叵耐束流水不廻(파내속유수불회) : 어찌하랴, 동쪽으로 흐른 물 되돌아오지 않고
只催時景惱人來(지최시경뇌인래) : 계절을 재촉하는데 사람은 오지 않음 괴로워라
含情朝雨細不細(함정조우세불세) : 정을 머금은 아침 비는 가늘어도 가늘지 않고
弄艶好花開未開(농염호화개미개) : 어여쁜 꽃들은 필 듯 말 듯 하구나
亂世風光無主者(난세풍광무주자) : 어지러운 세상이라 좋은 경치도 임자 없고
浮生名利轉悠哉(부생명리전유재) : 덧없는 인생 명예와 이익 더욱 아득하여라
恩量可恨劉伶婦(은량가한유령부) : 좋은 생각 한스럽소, 유령의 부인이여
强勸夫郎疎酒杯(강권부낭소주배) : 억지로 낭군에게 술잔을 빼앗다니

 

 

暮春卽事和顧雲友使(모춘즉사화고운우사)-崔致遠(최치원)
저문 봄날 친구 우사 고운에게 화답하다-崔致遠(최치원)

東風遍閱百盤香(동풍편열백반향) : 봄바람에 온갖 향기 다 보았지만
意緖偏饒柳帶長(의서편요류대장) : 속마음으론 길게 늘어진 버들을 좋아한다네
蘇武書廻深塞盡(소무서회심색진) : 소무도 글 쓰다 막다른 지경에서 돌아오고
壯周夢逐落花忙(장주몽축락화망) : 장주는 꿈에서도 낙화를 쫓기에 바빴다네
好憑殘景朝朝醉(호빙잔경조조취) : 좋은 경치 핑계삼아 아침마다 취해보고
難把離心寸寸量(난파이심촌촌량) : 이별의 마음 마디마디 헤아리기 어려워라
正是浴沂時節也(정시욕기시절야) : 바로 기수에 목욕하는 시절이요
舊遊魂斷白雲鄕(구유혼단백운향) : 내 놀던 곳 그리워라, 흰 구름 떠 있는 내 고향

 

 

陳情上太尉(진정상태위)-崔致遠(최치원)
상태위에게 진정합니다-崔致遠(최치원)

海內誰憐海外人(해내수연해외인) : 국내에서 외국인 서러움 누가 알리
問津何處是通津(문진하처시통진) : 어느 곳이 통하는 길인지 길 물어봅니다
本求食祿非求利(본구식록비구이) : 먹고살기 위해서지 명예가 아니고
只爲榮親不爲身(지위영친불위신) : 부모님 위해서지 나 자신을 위한 것 아닙니다
客路離愁江上雨(객로이수강상우) : 강 위에 내리는 비, 객지의 나그네 설움
故園歸夢日邊春(고원귀몽일변춘) : 낮에 꾸는 봄꿈도 고국 가는 꿈이랍니다
濟川幸遇恩波廣(제천행우은파광) : 강 건널 때, 건너준 은혜 고맙고
願濯凡纓十載塵(원탁범영십재진) : 십년 세속 티끌 묻은 갓끈 씻기 원합니다

 

 

途中作(도중작)-崔致遠(최치원)
도중에 짓다-崔致遠(최치원)

東飄西轉路岐塵(동표서전로기진) : 이리저리 갈림길 동서로 떠도는 신세
獨策羸驂幾苦辛(독책리참기고신) : 나는 채찍 맞은 파리한 말 , 고생한지 몇 년인가
不是不知歸去好(부시부지귀거호) : 돌아감이 좋은 줄 모르는 것 아니네
只緣歸去又家貧(지연귀거우가빈) : 돌아가도 또 가난하기 때문이라네

 

 

饒州鄱陽亭(요주파양정)-崔致遠(최치원)
요주 파양주에서-崔致遠(최치원)

夕陽吟立思無窮(석양음입사무궁) : 석양에 시 읊으니 온갖 생각 다 들고
萬古江山一望中(만고강산일망중) : 만고강산 한 눈에 보이네
太守憂民疎宴樂(태수우민소연락) : 태수님 백성 걱정에 잔치도 줄이시고
滿江風月屬漁翁(만강풍월속어옹) : 강에 가득한 경치 다 늙은 어부 차지라네

 

 

春日邀知友不至(춘일요지우부지)-崔致遠(최치원)
봄날 친구를 만나려 했으나 오지 않았음-崔致遠(최치원)

每憶長安舊苦辛(매억장안구고신) : 서울 생각 할 적마다 지난 고생 생각나네
那堪虛擲故鄕春(나감허척고향춘) : 어찌 고향의 봄 생각 헛되이 할까
今朝又負遊山約(금조우부유산약) : 오늘 아침도 산에서 놀 약속 잊어버렸으니
悔識塵中名利人(회식진중명리인) : 세상 유명인사 안 것이 후회스럽소

 

 

留別西京金少尹峻(유별서경김소윤준)-崔致遠(최치원)
서경에서 소윤 감준과 이별하다-崔致遠(최치원)

相逢信宿又分離(상봉신숙우분리) : 서로 만나 이틀간 머물고 또 다시 이별이라
愁見岐中更有岐(수견기중갱유기) : 갈림길에서 근심스레 만났다가 다시 갈림길에 섰네
手裏桂香鎖欲盡(수이계향쇄욕진) : 손에 잡힐 듯 한 달, 잡으려해도 지려고 하네
別君無處話心期(별군무처화심기) : 그대와 이별하면 마음 나눌 친구란 아무도 없다네

 

 

贈金川寺主人(증금천사주인)-崔致遠(최치원)
금천사 주인에게-崔致遠(최치원)

白雲溪畔刱仁祠(백운계반창인사) : 백운계곡에 절을 세우고
三十年來此住持(삼십년래차주지) : 삽 십 년 동안 주지로 있네
笑指門前一條路(소지문전일조노) : 절문 앞 오솔길을 웃으며 손짓하는데
才離山下有千岐(재이산하유천기) : 산 아래를 조금 가면 천 가닥 산길이라네

 

 

贈梓谷蘭若獨居僧(증재곡난야독거승)-崔致遠(최치원)
재곡사에 혼자 사는 스님에게-崔致遠(최치원)

除聽松風耳不喧(제청송풍이불훤) : 솔바람 소리 외에는 조용한데
結茅深倚白雲根(결모심의백운근) : 초라한 띳집은 흰 구름 아래 깊숙하네
世人知路翻應恨(세인지로번응한) : 세상사람 길 알아서 번칠까 한스러은데
石上莓苔汚履痕(석상매태오리흔) : 벌써 바위 위 이끼 신자국이 더럽혔네

 

 

郵亭夜雨(우정야우)-崔致遠(최치원)
우정에 밤비는 내리고-崔致遠(최치원)

旅館窮秋雨(여관궁추우) : 여관에 때 아닌 가을비 내리는데
寒窓靜夜燈(한창정야등) : 싸늘한 창에 한 밤의 등잔불 깜박깜박
自憐愁裏坐(자연수이좌) : 가련하다, 시름 속에 앉은 나
眞箇定中僧(진개정중승) : 틀림없이 선정에 던 스님일세

 

 

題雲峰寺(제운봉사)-崔致遠(최치원)
운봉사-崔致遠(최치원)

捫葛上雲峰(문갈상운봉) : 칡넝쿨 더위잡으며 운봉사에 올라
平觀世界空(평관세계공) : 고요히 바라보니 세상이 空인 것을
天山分掌上(천산분장상) : 온 산은 한 뼘 손바닥 안에 나눠지고
萬事豁胸中(만사활흉중) : 만사는 뚫린 내 가슴 안에 있네
塔影日邊雪(탑영일변설) : 탑 그림자 대낮의 눈처럼 희고
松聲天畔風(송성천반풍) : 소나무에서 들리는 소리, 하늘 밭에 부는 바람이네
煙霞應笑我(연하응소아) : 연기와 노을, 저 아름다운 자연은 비웃으리
迴步入塵籠(회보입진롱) : 발걸음 돌려 속세로 돌아가는 나를

 

 

與于愼微長官(여우신미장관)-崔致遠(최치원)
우신미 장관에게-崔致遠(최치원)

上國羈捷久(상국기첩구) : 상국 당나라에 와서 산지 오래되어
多慚萬里人(다참만리인) : 먼 나그네 너무 부끄럽습니다
那期顔氏巷(나기안씨항) : 어찌 안씨의 누추한 동네인들 바랐겠읍니까만
得接孟家隣(득접맹가린) : 뜻 밖에도 맹자 같은 이웃을 얻었습니다
守道唯稽古(수도유계고) : 참된 도리를 지킴에는 오직 옛 일을 살펴보고
交情豈憚貧(교정기탄빈) : 정을 나눔에 어찌 가난을 탓하겠습니까
他鄕知己少(타향지기소) : 타향에 친구 드물어
莫厭訪君頻(막염방군빈) : 당신을 자주 찾는 것 싫어하지 마십시오

 

 

古意(고의)-崔致遠(최치원)
깊은 생각-崔致遠(최치원)

狐能化美女(호능화미녀) : 여우는 미인으로 변하고,
狸亦作書生(리역작서생) : 삵괭이도 서생으로 둔갑 할 수 있다네
誰知異種物(수지이종물) : 사람이 사람 아닌 무엇인지 누가 알리오
幻惑同人形(환혹동인형) : 허깨비가 사람의 모양 한 것인가
變體想非艱(변체상비간) : 형체를 바꾸는 것 생각하기 어렵지 않지만
操心良獨難(조심량독난) : 바른 마음 지니긴 정말 어렵소
欲辨眞與僞(욕변진여위) : 참과 거짓 분별하려면
願磨心鏡看(원마심경간) : 마음의 거울을 갈고 보소서

 

 

江南女(강남녀)-崔致遠(최치원)
강남 처녀들-崔致遠(최치원)

江南湯風俗(강남탕풍속) : 강남의 방탕한 풍속
養女嬌且憐(양녀교차련) : 가련하고 예쁘게 딸자식 키운다네요
性冶恥針線(성야치침선) : 성품이 바느질 하는 것 부끄럽게 여겨
粧成調管絃(장성조관현) : 단장하고 악기 연주만 배운다네요
所學非雅音(소학비아음) : 배우는 건 건전한 음악 아니고
多被春心索(다피춘심색) : 모두가 관능적 음악에 빠져있다네
自謂芳華色(자위방화색) : 스스로 청춘의 멋이라지만
長占艶陽年(장점염양년) : 영원토록 젊은 시절 누릴 것인지
却笑隣舍女(각소인사녀) : 도리어 이웃 소녀 조롱하기를
終朝弄機杼(종조농기저) : 아침동안 베틀에서 북을 놀려도
機杼縱勞身(기저종노신) : 베틀에서 내려오면 몸만 피곤하고
羅衣不到汝(나의불도여) : 비단옷은 네게는 돌아가지 않는다네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최치원(崔致遠;857-?)
가야산 독서당 -최치원

狂噴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 층층 바위돌에 분출하고 겹겹 산에 포효하는 물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 아주 가까운 곳의 사람의 말소리조차 구별키 어렵네.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 시비 가리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故敎流水盡籠山(고교유수진농산) : 일부러 흐르는 물더러 온 산을 돌게 하네

 

 

제우강역정(題芋江驛亭)-최치원(崔致遠;857-?)
우강역 정자에서 시를 짓다-최치원

沙汀立馬待回舟(사정입마대회주) : 물가 모래톱에 말을 세우고, 돌아오는 배를 기다리니
一帶煙波萬古愁(일대연파만고수) : 한 줄기 연기 같은 물결은 만고의 수심일세.
直得山平兼水渴(직득산평겸수갈) : 산이 평지가 되고 물이 다 말라야
人間離別始應休(인간이별시응휴) : 인간 세상 이별이 비로소 그치리라

 

 

추야우중(秋夜雨中)-최치원(崔致遠)
가을 밤 비는 내리고 -최치원

秋風惟苦吟(추풍유고음); 쓸쓸한 가을 바람에 애써 시를 읊어보나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험한 세상길 내 마음 알아주는 이 드물구나
窓外三更雨(창외삼 경우); 이 한밤 창밖은 비 내리고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불 앞에 마주한 만리 먼 곳을 향하는 내 마음이여

 

 

촉규화(蜀葵花)-최치원(崔致遠)
접시꽃-최치원

寂寞荒田側(적막황전측) ; 스산한 황폐한 밭 둘레에
繁花壓柔枝(번화압유지) ; 흐트러진 꽃가지 늘어지고
香輕梅雨歇(향경매우헐) ; 비 그치자 퍼져오는 향기로운 매화의 향기
影帶麥風欹(영대맥풍의) ; 보리밭에 부는 바람에 꽃 그림자 기울고
車馬誰見賞(거마수견상) ; 말 탄 귀한 분들 누가 보기나 할까
蜂蝶徒相窺(봉접도상규) ; 벌나비만 모여 드네
自愧生賤地(자괴생천지) ; 천한 곳에 생겨남이 부끄럽고
敢恨人棄遺(감한인기유) ; 사람의 버림을 받아 한스럽다네

 

 

우흥(寓興)-최치원(崔致遠)
내 마음-최치원

願言扃利門(원언경이문) ; 원합니다 이욕의 문에 빗장 걸고
不使捐遺體(불사연유체) ; 부모님 물려주신 몸 버리지 말게 하소서
爭柰探珠者(쟁내탐주자) ; 어찌 말리랴, 구슬 찾는 자
輕生入海底(경생입해저) ; 무모하게 바다 밑에 드는 것을
身榮塵易染(신영진이염) ; 한 몸의 영화도 티끌에 쉽게 물들어
心垢水難洗(심구수난세) ; 마음의 때 물로도 씻기 어렵네
澹泊誰與論(담박수여론) ; 마음의 단백함을 누구와 이야기할까
世路嗜甘醴(세로기감례) ; 험한 세상살이 좋고 쉬운 일만 즐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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