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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漢詩

허균(許筠)

 

허균(1569∼1618). 문인.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성소(惺所), 백월거사(白月居士), 본관은 양천(陽川).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엽(曄)의 아들. 1589년 초시(初試)에 합격하고 1594년 정시문과 을과(庭試文科乙科), 159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 1598년 황해도 도사(都事)가 되고 춘추관 기주관(春秋館記注官), 형조정랑(刑曹正郞)을 역임한 뒤, 1602년 사예(司藝), 사복시정(司僕寺正)을 거쳐 전적(典籍), 수안군수(遂安郡守)를 지내고 1606년 원접사(遠接使)의 종사관(從事官)으로 명(明)의 사신을 영접, 이 때 탁월한 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 뒤 상의원정(尙衣院正), 삼척부사(三陟府使), 내자시정(內資寺正), 공주목사(公州牧使)를 역임하였으나 숭불(崇佛)했다는 죄로 파직 당했다가 1609년 재등용, 형조참의(刑曹參議)가 되었고 이듬해 진주부사(陳奏副使)로 명(明)나라에 가서 게(偈) 12장(章)을 갖고 귀국, 이 해 시관(試官)이 되었으나 친척을 부정으로 급제시켰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 전라도 태인(泰仁)에 은거하며 작품 창착에 전념하다가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로 평소 친분이 두터운 서양갑(徐羊甲), 박응서(朴應犀) 등이 처형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껴 권신 이이첨(李爾瞻)에게 아부, 예조참의, 호조참의, 승문원 부제조(承文院副提調)를 거쳐 1614년 천추사(千秋使)로, 1615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617년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는 대북파(大北派)의 일원으로 광해군의 신임을 이용, 반란을 계획했으나 이듬해 반란계획이 탄로나 하인준(河仁俊), 김개(金闓), 김우성(金宇成) 등과 함께 체포되어 능지처참되었다. 시문(詩文)에 뛰어나 누이 난설헌(蘭雪軒)과 함께 당대의 시재(詩才)로 이름을 떨쳤고 또 이조 봉건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새로운 이상향(理想鄕)을 제시한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저술하여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신분타파의 사회 개혁적인 의지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평소 불교도교에 심취했으나 뒤에는 많은 서학서(西學書)를 읽고 연구하여 한국 최초의 천주교인이라는 설(說)도 있다. 작품으로는 ≪교산시화≫(蛟山詩話), ≪성소복헌고≫(惺所覆-稿), ≪한년참기≫(旱年讖記), ≪비한정록≫(秘閑情錄), ≪도문대작≫(屠門大嚼), ≪학산초록≫(鶴山樵錄) 등이 있다.

 

 

 

만정방(滿庭芳)-허균(許筠)
뜰에 가득한 방초-허균(許筠)

春入神京(춘입신경) : 서울에 봄이 드니
花發禁苑(화발금원) : 대궐에 꽃 피고
一陣微雨初晴(일진미우초청) : 한차례 보슬비 이제 막 개었구나.
朱樓縹緲(주루표묘) : 아스라한 붉은 누각에
飛絮撲簾旌(비서박렴정) : 날아든 버들개지 주렴 깃발 부딪는다.
樓上佳人罷睡(루상가인파수) : 누각 위의 미인이 잠에서 깨어
斜陽裏低按銀箏(사양리저안은쟁) : 지는 햇빛 속에 다소곳이 은쟁 뜯는구나.
靑驄馬誰家浪子(청총마수가랑자) : 푸른 얼룩말은 뉘 집 호탕한 사내 것인가
門外繫紅纓(문외계홍영) : 문 밖에 붉은 고삐 매었으니
凄涼行樂地(처량행락지) : 처량하구나, 그처럼 즐기던 곳이
塵昏灞岸(진혼파안) : 파수 땅 언덕에 티끌 자욱하니
若變昆明(약변곤명) : 곤명지로 변한 듯하여라.
悵巷陌無人(창항맥무인) : 슬프다 마을이며 들판에 사람 없고
草樹叢生(초수총생) : 초목만 무성하여라.
路絶弱水蓬壼(노절약수봉곤) : 에약수며 봉래산 방호산에 길 끊어졌구나.
凝情立黃昏(응정입황혼) : 골똘히 생각하며 황혼에 서니
好月猶照鳳凰城(호월유조봉황성) : 좋은 달은 여전히 봉황성을 비추는구나.

 

 

강성자(江城子)-허균(許筠)
강가의 성-허균(許筠)

綉窓春怯五更風(수창춘겁오경풍) : 비단 창가에 봄 날씨, 오경 바람 두려워
錦屛中燭花紅(금병중촉화홍) : 둘러친 병풍 속에 촛불 붉어라.
夢罷西廂(몽파서상) : 서상에서 잠을 깨니
微雨暗房櫳(미우암방롱) : 보슬비에 창문 어두워진다.
望斷瀛洲人不見(망단영주인불견) : 저 멀리 영주를 바라보니 그 사람 보이지 않고
多少恨泣芙蓉(다소한읍부용) : 한 많아 눈물짓는 부용이여.
滄溟天闊碧煙籠(창명천활벽연롱) : 푸른 바다 넓은 하늘에 푸른 연기 끼어있고
聚眉峯向瑤空(취미봉향요공) : 취미봉은 맑은 하늘 향했어라.
遙想雪波(요상설파) : 저 멀리 생각하니 눈같이 하얀 파도
應與鏡湖通(응여경호통) : 응당 맑은 호수와 서로 통할 것이니라.
寄我思君千點流淚(기아사군천점류루) : 임 그리는 천 방울 눈물 부쳐줄까 하여도
不到草堂東(부도초당동) : 그대 초당 동쪽에 이르지 못하리라

 

 

감흥(感興)-허균(許筠)
감흥-허균(許筠)

中夜起四望(중야기사망) : 밤중에 일어나 사방을 들러보니
晨辰麗晴昊(신진려청호) : 별들이 갠 하늘에 곱기도 하여라.
溟波吼雪浪(명파후설랑) : 푸른 바다에 눈같은 물결 포효하고
欲濟風浩浩(욕제풍호호) : 건너려니 바람이 너무나 넓게 부는구나.
少壯能幾時(소장능기시) : 젊음은 몇 때나 지탱할런가
沈憂使人老(침우사인노) : 근심에 잠기니 사람이 늙어간다.
安得不死藥(안득불사약) : 어찌하면 죽지 않는 약 얻어
乘鸞戲三島(승난희삼도) : 난새를 타고서 삼도를 노닐어 보꺼나

 

 

해산선몽요(海山仙夢謠)-허균(許筠)
바다 산, 꿈속 신선의 노래-허균(許筠)

溟波隱隱浮鰲島(명파은은부오도) : 푸른 바다에 은은히 뜬 오도여
瓊草漫山春不老(경초만산춘불노) : 온갖 기묘한 풀 산에 가득하고 봄이 한창이라.
帝遣小玉驂靑鸞(제견소옥참청란) : 상제는 소옥을 보내 푸른 난새 태워서
吹笙夜下紅雲端(취생야하홍운단) : 피리 불며 한밤에 구름 끝을 내려온다.
裙衩半謝芙蓉帶(군차반사부용대) : 저고리는 부용띠를 절반만 가기고
遠岫凝愁抹蛾黛(원수응수말아대) : 먼 봉우리에 엉긴 시름 눈썹에 발리었다.
陸郞倚醉隔煙語(육랑의취격연어) : 육랑은 취한 기운에 안개 밖에 속삭이며
仙袂笑拂三珠樹(선몌소불삼주수) : 신선의 소매 웃으며 삼주수를 휘젓는구나.
丁當瑤瑤韻空冥(정당요요운공명) : 쟁쟁 패옥 소리 공중에 울리니
鞭龍踏鯇多娉婷(편용답환다빙정) : 용 타고 잉어 밟으니 너무나 아름답다.
彩蟾春桂香入骨(채섬춘계향입골) : 월궁의 계수나무 그 향기가 뼈를 뚫고
鮫綃一點薔薇血(교초일점장미혈) : 교초의 붉은 무늬 한 점은 장미꽃 핏빛이다.
蓬萊重結千年期(봉래중결천년기) : 봉래산에 또다시 천년 기약 맺었으니
碧桃花落生孫枝(벽도화락생손지) : 벽도화는 떨어져 손자 가지가 나오는구나.
寶枕瑤衾生曉寒(보침요금생효한) : 옥베개 비단 이불에 새벽 추위 차가운데
祥雲繚繞歸巫山(상운료요귀무산) : 상서로운 구름 얽혀 무산으로 돌아간다.
憑誰寄語陽雍伯(빙수기어양옹백) : 누구에게 부탁하여 양옹백에게 말 전하여
種玉藍田餉書客(종옥람전향서객) : 남전에 옥을 심어 글 손님을 배불리 먹일까

 

 

송양비로입청학산(送楊毗盧入靑鶴山)-허균(許筠)
청학산에 들어가는 양비로를 전송하며-허균(許筠)

晹谷之西碧海上(역곡지서벽해상) : 양곡의 서쪽 푸른 바다 위
神鰲戴出蓬萊山(신오대출봉래산) : 신오는 봉래산을 떠받들었어라.
嵯峨一萬二千峯(차아일만이천봉) : 높고도 험한 일만 이천봉우리
白玉束立煙霞間(백옥속립연하간) : 백옥을 안개 사이에 묶어 세운 듯하여라.
層硿絶壑祕仙蹤(층공절학비선종) : 층층의 바위와 깎아지른 골짝에 숨긴 신선의 발자취
雖有絶頂無人攀(수유절정무인반) : 정상에는 아직 등반한 사람 없어라.
最高毗盧峯揷天(최고비로봉삽천) : 가장 높은 비로봉은 하늘에 꽂혀있고
諸山環侍如兒孫(제산환시여아손) : 여러 산들은 자손처럼 둘러 있어라.
奇巖襞積古苔鎖(기암벽적고태쇄) : 주름진 기암괴석에 옛이끼 끼어있고
斗起蒼然撑帝閽(두기창연탱제혼) : 우뚝 솟아 차연히 천제의 궁문을 버티고있어라.
始知嵩高岱宗外(시지숭고대종외) : 비로소 알았도다, 저 높은 숭산과 태산 말고
別有突兀他山尊(별유돌올타산존) : 또다른 높은 산 있음을 비로소 알았어라.
扶桑六龍枎火輪(부상육용부화륜) : 부상의 여섯 용이 태양을 붙들고
日日海傍山腰行(일일매방산요행) : 날마다 바다 곁에서 산허리를 다니고 있어라.
驂鸞翳鳳下仙曹(참란예봉하선조) : 봉황새 타고 신선세계에 내려오니
十二樓居連玉淸(십이루거련옥청) : 열두 누대 옥청궁에 연해 있어라.
乘槎海客紫霞想(승사해객자하상) : 뗏배를 탄 바다 나그네 자색구름 생각하고
筆端收拾山精英(필단수습산정영) : 붓 끝에 산천의 온갓 정기 거두었어라.
精神貫石石爲裂(정신관석석위렬) : 정신이 돌을 꿰뚫으니 돌도 갈라지고
大字欲與峯爭雄(대자욕여봉쟁웅) : 큰 글씨는 봉우리와 웅장함을 다투려 한다.
眉山挻蘇岳降甫(미산연소악강보) : 미산은 소씨 낳았고 오악은 보후 낳으니
毓靈暗許朝雲通(육영암허조운통) : 신령한 기운은 은은히 아침 구름과 통한다.
紫蓋神氣下中胎(자개신기하중태) : 자개성의 신령한 기은 탯속으로 내려와
錦襁初脫麒麟兒(금강초탈기린아) : 비단 이불에서 기린 같은 아이 태어나니
頭森五岳目四海(두삼오악목사해) : 머리는 오악을 닮고 눈은 사해를 닮았어라.
八尺長身天下奇(팔척장신천하기) : 천하의 기괴한 사내라 팔척의 긴 키
巉巖額鼻鑿峯房(참암액비착봉방) : 이마와 코는 우뚝한 바위인 듯하여라.
怳對毗盧眞面目(황대비로진면목) : 비로봉의 진면목을 마주보는 듯
人工豈可擅造化(인공기가천조화) : 사람의 재주가 어찌 조화를 마음대로 하리오.
好事天工眞喜極(호사천공진희극) : 일을 좋아하는 하늘의 솜씨 기쁨이 지극하여라.
前身習氣未全磨(전신습기미전마) : 전생의 묵은 버릇 완전히 없어지지 않아
向人自道毗盧峯(향인자도비로봉) : 남 향하여 자신을 비로봉이라 말하는구나.
世間方見有脚山(세간방견유각산) : 세상에서 바야흐로 다리 있는 산을 보았으니
何異方瀛浮海中(하이방영부해중) : 방장ㆍ영주 바다 속에 떠 있음과 어찌 다를까.
塵寰厭答米芾拜(진환염답미불배) : 미불 같은 사람에게 절 받기 귀찮아
回首仙山歸興濃(회수선산귀흥농) : 신선들의 산에 고개 돌려니 돌아갈 흥 무르었다.
溟州直北五臺東(명주직북오대동) : 명주의 북쪽이요 오대산의 동쪽
芝成宮闕生虛空(지성궁궐생허공) : 지초 쌓인 궁궐이 허공에 솟았어라.
攢巒飛瀑作洞府(찬만비폭작동부) : 뭇봉우리 나는 폭포와 골짝을 이루었고
下有珠潭藏九龍(하유주담장구룡) : 그 아래는 주담이라 구룡이 숨어있어라.
層臺一柱俯雙闕(층대일주부쌍궐) : 한 기둥의 층대는 쌍궐을 굽어보는데
六月晴雪飄長松(육월청설표장송) : 유월에도 하얀 눈 낙락장송에 휘날리는구나.
尋巢靑鶴伴雲飛(심소청학반운비) : 둥지 찾는 청학이 구름을 짝해 날아드니
知是遼東丁令威(지시요동정령위) : 알았도다, 이게 바로 요동의 정령위인 줄을.
玄裳縞衣語星星(현상호의어성성) : 흰 저고리 검정치마 말조차 또렷한데
問渠毗盧何日歸(문거비로하일귀) : 묻노라, 비로 너는 어느 날에 돌아가는가.
巖扉寥落蕙帳冷(암비요락혜장랭) : 돌 사립 적막해라 혜초 장막 싸늘하니
萬壑松風誰共聽(만학송풍수공청) : 만 골짝 솔바람을 누가와 같이 들을까.
北山移文已勒成(북산이문이늑성) : 북산이문이 지어진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須把筇枝嗚石逕(수파공지오석경) : 어서어서 막대 소리 돌길을 울리어라.
山人愛山不出谷(산인애산불출곡) : 산사람은 산을 아껴 골짝을 벗어나니 않고
時有片雲簷下宿(시유편운첨하숙) : 이따금 조각 구름 처마 밑에 잠자는구나.
天香滿室月色空(천향만실월색공) : 하늘 향기는 방에 가득하고 달빛은 고요한데
疏磬冷冷煙外落(소경랭랭연외락) : 경쇠 소리 드맑은데 안개 너머 떨어진다.
藥爐經卷可棲遲(약로경권가서지) : 약로와 경권이라 몸 담을 곳 더없는데
淸水明燭生計足(청수명촉생계족) : 맑은 물 밝은 촛불 생계마저 넉넉하여라.
飄然甁錫返林泉(표연병석반림천) : 막대 하나 병 하나로 거뜬히 돌아가니
出家已做忘家禪(출가이주망가선) : 출가하여 집 잊은 선승이 되고 말았어라.
山靈應喜得毗盧(산영응희득비로) : 산신령은 비로를 만난 것 너무나 기뻐
置于最上之山巓(치우최상지산전) : 가장 높은 산마루에 올려 놓게 되었다오.
石廩天柱作同行(석름천주작동행) : 석름봉 천주봉이 항렬이 같다면
雁蕩芙蓉爲弟昆(안탕부용위제곤) : 안탕산 부용산은 아우와 언니로 되었구려나.
風儀戍削表獨立(풍의수삭표독립) : 깎은 듯한 풍채로 표표하게 우뚝 서니
楓岳從今奪顔色(풍악종금탈안색) : 풍악도 이제부터 안색을 빼앗기리라.
勿使醉猿化道士(물사취원화도사) : 취한 원숭이 도사로 변하게 하지 말고
長向巖間爲怪石(장향암간위괴석) : 길이 바위 틈을 행해 괴석이 되었단다.
我生江海一閑客(아생강해일한객) : 내 인생은 강과 바다의 한가한 나그네
幾費登山雙蠟屐(기비등산쌍랍극) : 산을 오르는 나막신을 몇 켤레나 버렸나.
會須振衣直上毗盧千仞岡(회수진의직상비로천인강) : 끝내 옷 떨치고 곧장 천 길 비로봉에 올라
與君一笑下觀天地窄(여군일소하관천지착) : 그대와 함께 한번 웃으며 좁은 천지 내려보리라.

 

 

증휘상인1(贈輝上人1)-허균(許筠)
휘 상인에게-허균(許筠)

淸坐香臺萬慮空(청좌향대만려공) : 맑게 앉은 향대에 맑게 않자 온갖 생각 사라지고
風箏無語閉花宮(풍쟁무어폐화궁) : 풍경소리에 사람소리 하나 없고 꽃핀 궁궐 닫혀 있다.
雲收疊嶂千層碧(운수첩장천층벽) : 첩첩한 산봉우리에 구름 걷혀 층층이 푸르고
霜落疏林一半紅(상낙소림일반홍) : 성긴 숲에 서리 내려 절반이나 붉어졌다.
病後參禪渾得趣(병후삼선혼득취) : 병 나은 뒤에 참선하니 멋을 사뭇 알겠는데
愁來覓句未全工(수래멱구미전공) : 시름 속에 시 지으려니 지어지지 않는구나.
扶桑浴日看還厭(부상욕일간환염) : 동해에 씻은 해를 질리도록 보고
臥聽濤聲蹙地雄(와청도성축지웅) : 웅장한 파도 소리는 누워서 듣고 있도다.

 

 

증휘상인2(贈輝上人2)-허균(許筠)
휘 상인에게-허균(許筠)

曾脫禪衣挂鐵衣(증탈선의괘철의) : 일찍이 스님 옷 벗고 갑옷을 바꿔 입고
西都初解百重圍(서도초해백중위) : 백 겹의 포위망을 처음으로 서도에서 풀었도다.
魔軍已伏神通力(마군이복신통력) : 신통한 힘으로 마귀 같은 적군 굴복되고
妙悟猶存過量機(묘오유존과량기) : 오묘한 깨우침은 과인한 기량의 기틀이 있었도다.
金鎖綠沈抛壯志(금쇄녹침포장지) : 금쇄 녹침이라, 장대한 뜻을 포기하고
佛香經卷返眞依(불향경권반진의) : 부처라 불경이라, 참 뜻으로 돌아왔어라.
憐渠足了男兒事(련거족료남아사) : 어여뻐라, 너는 족히 사나이 일을 마쳤으니
莫剪長髭掩石扉(막전장자엄석비) : 돌문을 닫아걸고 긴 수염일랑 자르지 말라.

 

 

헐고택(歇古宅)-허균(許筠)
옛집에서 쉬다-허균(許筠)

蕭蕭風雨岸烏紗(소소풍우안오사) : 부슬부슬 비바람에 오사모 벗겨지고
三月韶光鬢半華(삼월소광빈반화) : 삼월이라 봄빛에 귀밑머리 반백이어라.
客裏不堪佳節過(객리불감가절과) : 나그네 마음에 좋은 계절 보내지 못해
借人高館看梨花(차인고관간리화) : 높은 집을 빌려서 배꽃을 구경하는구나

 

 

성중야직(省中夜直)-허균(許筠)
성중에서 야직하며-허균(許筠)

魚鐶橫戶燭撓光(어환횡호촉요광) : 쇠고리 문짝에 비끼고 촛불 어지러운데
中禁詞臣坐玉堂(중금사신좌옥당) : 궁중에 남은 시 짓는 신하 옥당에 앉아있다.
紫殿夜闌鈴索靜(자전야란령색정) : 궁궐 늦은 밤에 바울 줄 고요한데
桐花時送隔簾香(동화시송격염향) : 발 너머 오동나무에서 꽃향기 건네온다.

 

 

퇴조만망(退朝晩望)-허균(許筠)
조정에서 물러나와 저녘에 바라보다-허균(許筠)

仙郞罷直五門西(선랑파직오문서) : 선랑은 오색구름 서편에서 당직을 마치고
緩策靑驄響月題(완책청총향월제) : 청총마 느린 채찍질에 말굽소리 울린다.
細柳和煙迷別院(세류화연미별원) : 실버들에 연기 서려 별원이 아득하고
落花經雨襯香泥(락화경우친향니) : 지는 꽃에 비 지나가니 향니가 묻어난다.
東臺詔下慚詞令(동대조하참사령) : 동대에서 조서 내리니 사령이 부끄럽고
南國烽傳厭鼓鼙(남국봉전염고비) : 남국에서 봉화 오니 전쟁의 북소리 지겨워라.
過盡一春歸未得(과진일춘귀미득) : 한 봄이 다 가도록 돌아가지 못하노니
釣竿辜負武陵溪(조간고부무릉계) : 무릉계곡 낚시질을 속절없이 저버렸어라.

 

 

응(鷹)-허균(許筠)
매-허균(許筠)

蒼鷹愁眠似降胡(창응수면사강호) : 창매의 근심스런 눈초리 항복한 오랑캐인 듯
風骨依俙漢郅都(풍골의희한질도) : 골격이랑 풍채는 한나라의 질도와 방불하여라.
逸翮縱爲金鏇繫(일핵종위금선계) : 뛰어난 날개는 비록 쇠갈이틀에 묶였지만
異姿應與鳥群殊(이자응여조군수) : 이채로운 자태는 뭇 새들과는 다르구나.
未擒狡兎營三窟(미금교토영삼굴) : 세 개의 굴 파는 교활한 토끼를 잡지 못했지만
且伴韓盧待一呼(차반한로대일호) : 한로와 짝이 되어 호출되기를 기다리는구나.
早晩紫絛如脫去(조만자조여탈거) : 조만간 자주색 끈에서 벗어만 난다면
碧天當搏大鵬雛(벽천당박대붕추) : 푸른 하늘 높은 곳에서 붕새 새끼 후려 채고 말리라.

 

 

숙덕원민사1(宿德源民舍1)-허균(許筠)
덕원에서 민박하며-허균(許筠)

城外悲笳夜半吹(성외비가야반취) : 성 밖에 슬픈 호가 밤중에 들려오고
女垣斜月展愁眉(여원사월전수미) : 성가퀴 비낀 달은 근심 어린 눈썹 편다.
河流遠坼單于壘(하류원탁선우루) : 물줄기 아득히 되놈의 보루 나누었고
海色遙明大將旗(해색요명대장기) : 바다 달빛 아득히 대장 깃발 비추누나.

 

 

숙덕원민사2(宿德源民舍2)-허균(許筠)
덕원에서 민박하며-허균(許筠)

王粲倚樓空作賦(왕찬의루공작부) : 누대에 기댄 왕찬은 공연히 시를 짓고
杜陵徒步只吟詩(두릉도보지음시) : 맨발의 두보는 오직 시만 읊었어라.
空聞戰血傾伊洛(공문전혈경이낙) : 전장에 흐른 핏물 이수와 낙수로 든다는데
却敵何人出六奇(각적하인출육기) : 적 물리치는 일에, 누가 기발한 계책 짜낼까.

 

 

숙덕원민사3(宿德源民舍3)-허균(許筠)
덕원에서 민박하며-허균(許筠)

斜月含山宿霧晴(사월함산숙무청) : 비낀 달 산에 들고 짙은 안개 맑게 개니
僕夫相對語前程(복부상대어전정) : 하인들은 저희끼리 앞길을 수군댄다.
中宵起舞君休怪(중소기무군휴괴) : 한밤에 추는 춤을 그대는 이상타 마오
未必荒鷄是惡聲(미필황계시악성) : 때 아닌 닭 울음도 나쁜 것만은 아니리라

 

 

피지연각작팔절1(避地連閣作八絶1)-허균(許筠)
피지 연각에서 팔절을 짓다-허균(許筠)

家在長陵小市東(가재장릉소시동) : 집은 장릉 작은 저자 동쪽이라
數間茅屋一年空(수간모옥일년공) : 두어 칸 초가집을 한 해나 비워두었다.
牙籤萬軸歸何處(아첨만축귀하처) : 아첨 꽂은 만축서 어디로 돌아갔나
不落溝中卽土中(불낙구중즉토중) : 도랑 속에 안 빠지면 흙 속에 묻혔으리라

 

 

피지연각작팔절2(避地連閣作八絶2)-허균(許筠)
피지 연각에서 팔절을 짓다-허균(許筠)

朝罷天街響水蒼(조파천가향수창) : 조회 파한 서울 거리에 푸를 물결소리
萬家花柳沸笙篁(만가화류비생황) : 집집마다 꽃 버들 피리 소리 들끓는다.
君王一別通明殿(군왕일별통명전) : 임금님 하루 아침에 통명전 떠나자
歌舞場爲戰鬪場(가무장위전투장) : 노래하고 춤추던 곳 전쟁터가 되었다오

 

 

피지연각작팔절3(避地連閣作八絶3)-허균(許筠)
피지 연각에서 팔절을 짓다-허균(許筠)

先子丘墳寄漢濱(선자구분기한빈) : 선친의 분묘를 한수 가에 모시니
歲時誰是掃墳人(세시수시소분인) : 세시마다 무덤을 쓸어 줄 이 그 누군가.
松楸西望腸堪斷(송추서망장감단) : 서녘으로 총추 보니 애간장 끊어지는데
日暮天涯淚滿巾(일모천애루만건) : 해지는 하늘 가에 흐르는 눈물 수건에 가득.

 

 

피지연각작팔절4(避地連閣作八絶4)-허균(許筠)
피지 연각에서 팔절을 짓다-허균(許筠)

西塞關河路幾千(서새관하로기천) : 서쪽 변방 관하는 몇 천리의 길이던가
別來音信若爲傳(별래음신약위전) : 이별 후 소식일랑 어떻게 해야 전할 건가.
干戈滿眼身如寄(간과만안신여기) : 난리만 눈에 가득한데 더부살이 신세
何處看雲費晝眠(하처간운비주면) : 어느 곳에서 구름 보며 낮잠을 자볼 건가.

 

 

피지연각작팔절5(避地連閣作八絶5)-허균(許筠)
피지 연각에서 팔절을 짓다-허균(許筠)

塞北凶鋒尙未摧(새북흉봉상미최) : 변새 북쪽 흉한 칼날 아직 꺾이지 않아
嶺西封豕幾時廻(령서봉시기시회) : 재 너머 서쪽 오랑캐는 언제 돌아가는가.
煙臺日暮平安火(연대일모평안화) : 해 저문 연대에 봉화 불빛 평안하니
坐識高城賊不來(좌식고성적불래) : 높은 성에 적이 못 온 것을 앉아서 알았다.

 

 

피지연각작팔절6(避地連閣作八絶6)-허균(許筠)
피지 연각에서 팔절을 짓다-허균(許筠)

千尺金城百尺壕(천척금성백척호) : 천 자 높이 굳은 성벽과 백 자 깊은 참호
矢銛弓硬且長刀(시섬궁경차장도) : 날카로운 화살과 센 활에 칼도 길기만 하다.
帳前擊柝軍相語(장전격탁군상어) : 막사 앞에서 탁을 치며 군사들 나누는 말
太守元來守不牢(태수원래수불뢰) : 애당초에 태수님이 굳게 지키지 못하였단다.

 

 

피지연각작팔절7(避地連閣作八絶7)-허균(許筠)
피지 연각에서 팔절을 짓다-허균(許筠)

到處生涯一病僧(도처생애일병승) : 어디서나 생애는 한 사람 병든 승려
靜夜茆屋對篝燈(정야묘옥대구등) : 고요한 밤 떡집에서 등불을 마주본다.
豪華舊習鎖難得(호화구습쇄난득) : 호사스런 옛 습관을 씻어내기 어려워
明日平原約放鷹(명일평원약방응) : 내일은 평원에서 매 사냥을 약속하노라.

 

 

피지연각작팔절8(避地連閣作八絶8)-허균(許筠)
피지 연각에서 팔절을 짓다-허균(許筠)

霽江公子紫霞仙(제강공자자하선) : 비 갠 제강의 공자는 자하의 신선이라
一別音塵兩渺然(일별음진양묘연) : 한 번 이별 뒤엔 소식 양쪽이 아득하다.
懷憶去年今夜月(회억거년금야월) : 지난해 오늘의 달밤을 생각해보니
雪中聯騎訪姑泉(설중련기방고천) : 눈 속에서 말 나란히 고천을 찾았어라.

 

 

숙덕원민사1(宿德源民舍1)-허균(許筠)
덕원에서 묵으며-허균(許筠)

城外悲笳夜半吹(성외비가야반취) : 성 밖에서 슬픈 호가(胡笳) 한밤의 불어대니
女垣斜月展愁眉(여원사월전수미) : 성가퀴에 비낀 저 달은 수심 겨운 눈쌀 펴편다.
河流遠坼單于壘(하류원탁선우루) : 강물은 아득히 오랑캐 선우의 진을 나누었는데
海色遙明大將旗(해색요명대장기) : 바다의 빛은 아득히 대장깃발을 밝게 비춘다

 

 

숙덕원민사2(宿德源民舍2)-허균(許筠)
덕원에서 묵으며-허균(許筠)

王粲倚樓空作賦(왕찬의루공작부) : 왕찬은 구각에 기대어 공연히 시를 짓고
杜陵徒步只吟詩(두릉도보지음시) : 두보는 맨발로 걸으며 시만을 읊었단다.
空聞戰血傾伊洛(공문전혈경이낙) : 전장에 흘린 핏물 이수로 흘러든다는데
却敵何人出六奇(각적하인출육기) : 적을 물리칠 여석 계략을 누가 낼 것인가

 

 

숙덕원민사3(宿德源民舍3)-허균(許筠)
덕원에서 묵으며-허균(許筠)

斜月含山宿霧晴(사월함산숙무청) : 넘어가는 달 머금은 산에 짙은 안개 개니
僕夫相對語前程(복부상대어전정) : 하인들은 저희끼리 떠날 길 얘기하는구나.
中宵起舞君休怪(중소기무군휴괴) : 한밤에 일어나 추는 춤 이상하게 생각마오
未必荒鷄是惡聲(미필황계시악성) : 때 아닌 닭울음도 나쁜 것만은 아니라오.

 

 

구호동중인천로부즉사(口號同仲仁天老賦卽事)-허균(許筠)
입으로 불러 중인 천로와 함께 즉사로 시를 짓다-허균(許筠)

卷幔羅書帙(권만라서질) : 휘장을 걷고 책 벌여놓은 채
燒香坐寂寥(소향좌적요) : 향 사르며 고요히 앉았았다
雪消山色近(설소산색근) : 눈 녹아 산빛은 더욱 가까워지고
天闊海聲遙(천활해성요) : 하늘은 넓어 바다 물결소리 아득하다.
撫古心還折(무고심환절) : 예날을 더듬으니 마음 오히려 꺾이고
傷時鬢欲凋(상시빈욕조) : 시대를 슬퍼하니 귀밑머리 희어진다.
梅花疏影動(매화소영동) : 매화꽃 성근 그림자 움직이는데
相約醉溪橋(상약취계교) : 서로 만나 시냇가 다리에서 취해나 보자.

 

 

송유연숙지경(送柳淵叔之京)-허균(許筠)
유연숙이 서울가는 것을 송별하며-허균(許筠)

行裝蕭散等鶉居(행장소산등순거) : 쓸쓸한 행장이 순거와 같은데
囊裏孤琴篋裏書(낭리고금협리서) : 자루 속엔 거문고 상자 속에는 책.
時論共疑狂李白(시론공의광리백) : 이백의 광태라고 당시 사람들 의심하나
故人猶記病相如(고인유기병상여) : 친구들은 오히려 병든 상여를 기억한다.
風回曲沼淸長檻(풍회곡소청장함) : 연못을 돌아 부는 바람 긴 난간 맑게 하고
日送繁陰映綺疏(일송번음영기소) : 해빛은 짙은 그늘로 사창에 비추누나.
歸去洛城如有問(귀거낙성여유문) : 서울로 가 나를 묻는 이 있다면
生涯已付武陵漁(생애이부무릉어) : 무릉의 낚시질에 이미 생애를 맡겼다 하여라.

 

 

경월전구기유감(經月殿舊基有感)-허균(許筠)
월전의 옛터를 지나다가 감회가 있어서-허균(許筠)

紅樓別夜醉芳樽(홍루별야취방준) : 홍루에서 이별하는 밤 맛있는 술에 취해
月桂天香染彩毫(월계천향염채호) : 월계의 천향 속에 채필을 적시었다.
不是羿妻奔竊藥(불시예처분절약) : 예의 아내 약을 훔쳐 달아난 게 아니면
也無方朔戲偸桃(야무방삭희투도) : 동방삭의 복사 장난 응당 없었을 것이어라.
羅衣化盡經秦火(라의화진경진화) : 비단옷 다 녹아 진나라 재앙을 겪었으니
綺榭燒殘入賊壕(기사소잔입적호) : 좋은 집 타다 남아 적의 진에 들었구나.
依舊南隣逢樂叟(의구남린봉낙수) : 예날 처럼 남녘 이웃 약로를 만나보니
琵琶猶按鬱輪袍(비파유안울윤포) : 비파 가락은 여전히 울륜포를 타고 있구나.

 

 

계양가인요(桂陽佳人謠)-허균(許筠)
계양가인요-허균(許筠)

金陵江水澄如練(금릉강수징여련) : 금릉 땅 강물은 비단처럼 맑고
江上朱樓簾半捲(강상주루렴반권) : 강 위엔 붉은 다락엔 발이 반만 걷혔구나.
越羅衣薄不禁風(월라의박불금풍) : 월나라 비딘 옷은 엷어 바람을 못 이기고
啼粧欲褪桃花面(제장욕퇴도화면) : 단장 뒤 눈물은 자국 복숭아꽃 퇴색한 듯
空濛煙雨桂陽山(공몽연우계양산) : 저기 저 계양산에는 안개 비 몽실몽실
一朶芙蓉天外寒(일타부용천외한) : 한 송이 부용꽃이 하늘 밖에 차갑구나.
鳳凰城遠渭水隔(봉황성원위수격) : 봉황성 아득하고 위수와 떨어져 있고
別後愁多羅帶寬(별후수다라대관) : 이별 후 시름 많아 비단 띠가 헐겁구나.
巴陵詞客金麒麟(파능사객금기린) : 파릉의 시객들은 금기린 몸에 입고
香車度陌聲轔轔(향거도맥성린린) : 향차로 지난 거리에 소리가 삐걱거린다.
一尺鮫綃千點血(일척교초천점혈) : 한 자 길이 교초에는 천 점의 붉은 피
斷腸佳句江南春(단장가구강남춘) : 애끊는 좋은 글귀 강남의 봄이로구나.
蓬壺海闊芳塵絶(봉호해활방진절) : 봉호 바다는 넓어 향기 먼지에 끊어지니
桂露淸泠白銀闕(계로청령백은궐) : 계수나무 이슬 맑고 차고 은빛 궁궐은 하얗다.
却月眉鎖鳳額花(각월미쇄봉액화) : 각월의 눈썹은 봉황의 머리 꽃에 잠겨 있고
凌波塵濕鴉頭襪(능파진습아두말) : 능파의 먼지는 까마귀 버선을 젖셨구나.
銀床玳瑁金玲瓏(은상대모금영롱) : 대모의 은상에 금빛이 영롱하고
鈿頭玉篋雕花紅(전두옥협조화홍) : 옥상자에 비녀 꼭지에 새긴 꽃이 빨갛다.
十二瓊宮夜色淺(십이경궁야색천) : 열두 곳의 보석 궁궐에 밤빛이 엷으니
鶴夢驚起秋天空(학몽경기추천공) : 학의 꿈 놀라 깨자 가을 하늘 공활하다.

 

 

고천례선요(姑泉禮仙謠)-허균(許筠)
고천례선요-허균(許筠)

簷鈴泠泠風力急(첨영령령풍력급) : 처마 풍경소리 찬데 바람 급히 부니
寒透蝦鬚珠露泣(한투하수주로읍) : 주렴에 추위 스며들어 이슬방울 눈물짓는다.
霞色珠楹照日光(하색주영조일광) : 놀은 빛 구슬 기둥엔 햇빛이 비춰들어
雪衣傳語當窓立(설의전어당창입) : 설의는 말 전하여 창문 앞에서 우뚝 섰다.
新粧初出鴛鴦帷(신장초출원앙유) : 원앙의 장막에서 새 단장 막 나오니
綠雲半亞珊瑚枝(녹운반아산호지) : 푸른 구름은 산호 가지를 반이나 눌렀구나.
門外香車駕金犢(문외향거가금독) : 문 밖의 향차에 금송아지에 실렸는데
叉童引向芙蓉池(차동인향부용지) : 남자 종놈 끌고가서 부용지로 향하는구나.
中天旌節降王母(중천정절강왕모) : 중천에 깃발 펄럭 서왕모로 내려오니
丁當雜佩縈紈袖(정당잡패영환수) : 온갖 패물 소리 울려 옷소매에 얽히는구나.
蟠桃結子三千歲(반도결자삼천세) : 반도 복숭아 삼천 년에 열매 맺었으니
玉盤盛獻蒼梧帝(옥반성헌창오제) : 옥소반에 가득 차려 순임금님께 올리리라.
鞭鸞夜下廣寒宮(편란야하광한궁) : 난새를 채찍질하여 광한궁을 내려오니
錦頰中酒生微紅(금협중주생미홍) : 고운 뺨 술기운에 붉은 기운 살짝 돈다.
姑泉池館烟矇矓(고천지관연몽룡) : 고천지관에 연기가 아득한데
畫橋垂柳眠東風(화교수유면동풍) : 그림같은 다리에 능수버들 봄바람에 조는구나.
雲窓霧閤隔銀漢(운창무합격은한) : 구름 창, 안개 낀 집이 은하수로 막혔으니
丹梯百尺塵緣斷(단제백척진연단) : 백척의 붉은 사다리 속된 인연 끊겼구나.
玉壼靈藥得長生(옥곤영약득장생) : 옥병의 영약으로 장생은 얻었지만
年年孀宿誰相伴(년년상숙수상반) : 해마다 홀로 자니 누구와 서로 짝하리오.
無央公子停龍鑣(무앙공자정용표) : 무앙 공자님이 용표에 멈췄으니
赤舃翠袷香嬌嬈(적석취겁향교요) : 붉은 신 푸른 옷에 향기가 아련거린다.
鳳樓斜日照珍簟(봉루사일조진점) : 봉루에 비낀 햇살 삽자리에 비추는데
露濕絳衫吹紫簫(로습강삼취자소) : 이슬 젖은 붉은 적삼 옥퉁소를 부는구나.

 

 

북리춘유요(北里春遊謠)-허균(許筠)
북리 봄놀이 노래-허균(許筠)

紅泥雜花盈香陌(홍이잡화영향맥) : 홍니의 섞인 꽃이 향기로운 거리에 가득하니
惜花靑驄行不得(석화청총행불득) : 청총마꽃을 아껴 머뭇머뭇 가지 못한다.
綉窓雕戶閉宵寒(수창조호폐소한) : 비단 창, 화려한 문 잠긴 밤 기운 싸늘한데
愁眉淚臉藏春色(수미누검장춘색) : 근심스린 눈썹 눈젖은 뺨에 봄빛이 숨어 있다.
秋千索掛紅欄西(추천색괘홍난서) : 그네줄은 붉은 난간 서쪽에 걸렸는데
月照花影參差低(월조화영참차저) : 달 비추자 꽃그림자 들쭉날쭉 나직하다.
寶枕瑤衾選殘夢(보침요금선잔몽) : 보배로운 베개, 비단 이불 속에 낡은 꿈 헤어보며
西樓曉起流鶯啼(서루효기유앵제) : 서루에 새벽녘 기상에 꾀꼬리 울음 운다.
啼珠鳳蠟怨天曙(제주봉랍원천서) : 구슬 눈물 밀촛불에 날새는 것 원망하고
井下銀甁轆轤語(정하은병록로어) : 우물 아래 은병에는 녹로가 속삭이는구나.
彩箔玲瓏蝦捲鬚(채박령롱하권수) : 채색한 발이 영롱한데 발 걷히자
嬌雲一散無尋處(교운일산무심처) : 예쁜 구름 흩어져서 찾을 곳이 없구나.
衫羅葉葉秋煙碧(삼라엽엽추연벽) : 비단 적삼 주름마다 가을 연기 푸르니
香肌玉妬梅魂白(향기옥투매혼백) : 향기로운 살결은 매화 혼이 시샘한다.
十幅單綃染淚痕(십폭단초염누흔) : 열 폭의 단색 비단에 눈물 자국이 얼룩지니
煙中恨語招香魄(연중한어초향백) : 연기 속의 한스런 말이 향백을 부르는구나.
姑泉橋畔楊花飛(고천교반양화비) : 고천교 다릿가에 버들꽃이 휘날리니
金鞭錦勒探春歸(금편금륵탐춘귀) : 금빛 채찍 비단 굴레로 봄을 찾아 돌아간다.
雪衣傳語玉郞至(설의전어옥랑지) : 설의가 말 전하자 옥랑이 당도하니
纖纖素手開珠扉(섬섬소수개주비) : 가느다란 하얀 손이 구슬 문을 열어 준다.

 

 

문집완(文集完)-허균(許筠)
문집이 완성되어-허균(許筠)

四十三年攻翰墨(사십삼년공한묵) : 사십 삼 년을 문필에 전력하여
千金弊帚枉勞心(천금폐추왕노심) : 부질없은 노고한 마음 천금의 떨어진 빗자루
詩文十卷方書了(시문십권방서료) : 시문 열 권을 이제야 다 썼으니
從此惺翁不復吟(종차성옹불복음) : 나, 성옹은 이제부터 다시 읊지 않으리라.

 

 

억권조제군(憶權趙諸君)-허균(許筠)
권(權)ㆍ조(趙) 제군을 기억하며-허균(許筠)

天涯悲作客(천애비작객) : 먼 하늘 가 서글픈 나그네 신세
澤畔恨離群(택반한이군) : 물가에 이별하는 무리들이 한스러워라.
花事今將盡(화사금장진) : 꽃의 일도 이제부터 다 끝나 가는데
鶯聲不欲聞(앵성불욕문) : 꾀꼬리 울음 듣고 싶지도 않아라.
親朋杳千里(친붕묘천리) : 친한 벗 천리 멀리 아득하니
日夕詠停雲(일석영정운) : 날 저물면 친구생각 노래 부르리라.

 

 

상춘(傷春)-허균(許筠)
봄날에 마음 상하여-허균(許筠)

抱疴常在暮春時(포아상재모춘시) : 저무는 봄날에 언제나 병을 알아
遊興蒼茫未易期(유흥창망미이기) : 다니는 흥취 아득하여 기약이 쉽지 않다.
欲貰濁酒貰客恨(욕세탁주세객한) : 막걸리 외상 받아 객의 한을 풀어보려니
杏花村畔乏靑旗(행화촌반핍청기) : 살구꽃 핀 마을에 푸른 깃발 끊겼어라.

 

 

홍도락진(紅桃落盡)-허균(許筠)
붉은 복숭아꽃잎 다 지네-허균(許筠)

南枝雨僽北枝摧(남지우추북지최) : 남쪽 가지 비에 혹독한 비에 북녘 가지 꺾여
寂寞香魂招不廻(적막향혼초불회) : 적막한 향기로운 넋은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다.
怊悵明年此翁去(초창명년차옹거) : 서글퍼라, 명년에 이 늙은이 떠나고 나면
不知花爲阿誰開(불지화위아수개) : 이 꽃은 뉘를 위해 피어 줄는지 모르겠노라.

 

 

야좌(夜坐)-허균(許筠)
밤에 앉아서-허균(許筠)

經卷橫烏几(경권횡오궤) : 경서는 검은 궤에 비껴 있고
香煙裊鴨鑪(향연뇨압로) : 향 연기는 압로에서 하늘거린다.
不知軒冕客(불지헌면객) : 모를겠네, 벼슬아치들
能似此翁無(능사차옹무) : 능히 이 늙은이와 같을 수 있을까.

 

 

억태허정(憶太虛亭)-허균(許筠)
태허정을 추억하며-허균(許筠)

遙憐鑑湖墅(요련감호서) : 아련히 감호의 들 정자 그리워라
煙景膩殘春(연경니잔춘) : 봄날의 경경에 남은 봄이 윤택하다
江燕語留客(강연어유객) : 강가의 제비 소리에 길손 머물고
林花飛趁人(임화비진인) : 숲 속 꽃잎은 날아다니며 사람을 따른다.
思將濯纓水(사장탁영수) : 장차 갓끈 씻은 물을 가져와
洗盡化衣塵(세진화의진) : 옷 더럽힌 먼지를 다 빨았으면 좋겠다.
羽翮在羅網(우핵재라망) : 날개깃이 그물 속에 갇혔으니
誰爲自身在(수위자신재) : 그 누가 스스로 자유로운 몸이 될거나.

 

 

후강(後岡)-허균(許筠)
뒷산에서-허균(許筠)

溪水淙潺亂石間(계수종잔난석간) : 어지러운 돌 사이로 시냇물 좔좔 쏟아지고
隔花幽鳥語關關(격화유조어관관) : 꽃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윽한 새소리 요란하다.
長風忽捲前林雨(장풍홀권전임우) : 긴 바람이 갑자기 눈앞의 숲속 비를 걷어가니
一抹斜陽映半山(일말사양영반산) : 한 가닥 비낀 햇살이 산 허리를 비추는구나

 

 

억석주(憶石洲)-허균(許筠)
석주를 기억하며-허균(許筠)

楚塞身何遠(초새신하원) : 초나라 요새라 몸은 얼마나 먼지
秦關望漸賖(진관망점사) : 진관을 바라보니 점점 더 아득하다.
惟憐湘水夢(유련상수몽) : 다만 상수의 꿈이 사랑스러워
偏在故人家(편재고인가) : 유달리 옛 친구의 집에만 있도다.
恨入王孫草(한입왕손초) : 한스러움 왕손의 풀에 깃든다면
愁添蜀帝花(수첨촉제화) : 시름은 귀촉화에 더하는구나.
紉蘭行澤畔(인난행택반) : 난초 꿰어 패물 삼아 못 가를 거닐고
倚玉隔天涯(의옥격천애) : 의옥은 머나먼 하늘 끝에 있도다.
海黯停雲合(해암정운합) : 바다는 어둑한데 구름이 몰려들고
山橫落景斜(산횡낙경사) : 산은 비끼어 있고 저녁 해는 기우는구나.
春來有佳句(춘래유가구) : 봄에 지은 아름다운 글귀 있거든
莫惜問懷沙(막석문회사) : 아끼지 말고 굴원의 글에 물어보아라.

 

 

사회(寫懷)-허균(許筠)
회포를 적다-허균(許筠)

凄涼楚臣夢(처량초신몽) : 처량하다, 초나라 신하의 꿈
牢落野人期(뇌낙야인기) : 무료하다, 야인의 기약이어라.
徇祿憂終在(순녹우종재) : 관리의 녹을 따르니 근심은 있고
歸田計已違(귀전계이위) : 시골로 돌아갈 계획 이미 틀렸어라.
靑春對芳草(청춘대방초) : 한창 봄이라 고운 풀 마주 대하고
白日見遊絲(백일견유사) : 맑은 날이라 아지랑이를 보고 있어라.
卽此多幽興(즉차다유흥) : 이만해도 그윽한 흥취 그득하니
還如未病時(환여미병시) : 도리어 병들지 않았을 때와 같아라.

 

 

고우(苦雨)-허균(許筠)
궂은비-허균(許筠)

北客愁無奈(북객수무내) : 북쪽 나그네 수심을 어찌하나
連宵雨驟過(연소우취과) : 밤마다 비가 급하게도 내리는구나.
林昏銜暮瘴(임혼함모장) : 어둑한 숲 저문 안개 머금어 있고
溝溢漲晨波(구일창신파) : 도랑물 불어나 새벽 물결 첨치는구나.
委地紅將盡(위지홍장진) : 땅에 진 붉은 꽃 다 졌는데
侵堦碧漸多(침계벽점다) : 섬에 올라보니 푸른 이끼 불어난다.
空吟海嶠作(공음해교작) : 헛되니 내가 지은 해교작 시만 읊나니
誰與報羊何(수여보양하) : 누가 함께 양선지와 하장유에게 알려주리오.

 

 

관장벽도위우소절(官墻碧桃爲雨所折)-허균(許筠)
관가 담장의 벽도화가 비에 꺾이어-허균(許筠)

瓊樹含嬌笑(경수함교소) : 고운 나무 교태로운 웃음 띠니
疑從閬苑移(의종랑원이) : 아마도 낭원에서 옮겨왔나 보다.
飄零因雨壓(표영인우압) : 휘날려 떨어짐은 비에 눌린 탓이고
摧折豈根萎(최절기근위) : 꺾여짐이 어찌 뿌리가 시들어 서랴.
屈子懷沙日(굴자회사일) : 굴원이 회사부 짓고 죽던 날
昭君出塞時(소군출새시) : 왕소군이 변새로 떠나는 때 같아라.
蜂愁粘落蕊(봉수점낙예) : 벌은 시름겨워 지는 꽃잎에 붙고
鶯怨啅殘枝(앵원탁잔지) : 꾀꼬리는 원망하여 낡은 가지를 쪼다.
物性元榮悴(물성원영췌) : 사물의 본성은 원래로 영화 몰락 있고
人生亦盛衰(인생역성쇠) : 인생 역시 성하면 쇠하기 마련이로다.
明年能再發(명년능재발) : 명년에는 능히 다시 피게 될 거나
天意諒難知(천의량난지) : 하늘 뜻은 진실로 알기가 어려워라

 

 

견홍도(見紅桃)-허균(許筠)
홍도를 보고서-허균(許筠)

誰種緗桃殿晩春(수종상도전만춘) : 궁궐 늦봄에 복숭아는 누가 심었는지
絳紗幽袖映紅巾(강사유수영홍건) : 붉은 비단 소맷자락이 붉은 수건에 비친다.
牆頭日出嫣然笑(장두일출언연소) : 담장 머리 해 솟자 씽긋이 웃는구나.
何啻他鄕見故人(하시타향견고인) : 어찌 타향에서 옛 친구 본 것만 못하랴.

 

 

휘객독좌(撝客獨坐)-허균(許筠)
손님을 물리치고 홀로 앉아-허균(許筠)

經卷鑪香寂不譁(경권로향적불화) : 경서나 향로의 향이 말없이 고요하니
蕭然如在羽人家(소연여재우인가) : 신선의 집에 와 있는 듯이 소연하여라.
當堦暖日烘梅蕊(당계난일홍매예) : 섬돌에 닿은 따뜻한 햇살 매화 꽃 술 덥히고
撲戶輕颺墮柳花(박호경양타류화) : 창문을 때리는 가벼운 바람 버들꽃을 떨어뜨린다.
鄴瓦久乾抛兎翰(업와구건포토한) : 업와라는 벼루는 이미 말라 붓을 벌써 던지어
焦阬方熱試龍茶(초갱방열시용다) : 초강이란 차가 이제 막 더우니 용차나 맛보자꾸나.
休言地僻無來往(휴언지벽무래왕) : 궁벽한 땅이라서 왕래 전혀 없다 말하지 마소
自由山蜂趁兩衙(자유산봉진양아) : 산벌처럼 자유로워 하루 두 번 관아에 참가한다.

 

 

여사(旅舍)-허균(許筠)
여사에서-허균(許筠)

異地春將晩(이지춘장만) : 객지에 봄이 저물어가니
年光奈老何(연광내노하) : 나이는 늙어감을 어찌하나.
林花經雨少(임화경우소) : 숲 속 꽃들은 비 지나니 적어지고
鳥語得晴多(조어득청다) : 새 우는 소리는 날 개니 많아지는구나.
身世悠悠客(신세유유객) : 신세는 멀고 먼 나그네 신세
乾坤浩浩歌(건곤호호가) : 천지에 호방한 노래로구나.
忘生憑底物(망생빙저물) : 무엇을 의지하여 생을 잊었나
案上有楞伽(안상유릉가) : 상 위에는 능가경이 놓여 있었구나.

 

 

교거부사(僑居賦事)-허균(許筠)
교거(僑居)하며 일을 적다-허균(許筠)

放逐知前定(방축지전정) : 귀양살이 전생에 정해졌고
功名已後時(공명이후시) : 공명은 이미 때가 늦었도다.
惠州方飽飯(혜주방포반) : 혜주에서 막 배불리 먹고
儋守或觀棋(담수혹관기) : 담수나 더러는 바둑 구경한다.
海味餘霜蟹(해미여상해) : 바다 맛은 서리철 게가 남았고
園蔬只露葵(원소지로규) : 채소밭 나물은 이슬에 젖은 아욱뿐이어라.
吾生本爲口(오생본위구) : 우리의 삶이란 본래 먹기 위한 것이니
非是利妻兒(비시이처아) : 온갖 시비는 처자식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어라.

 

 

이소도(移小桃)-허균(許筠)
작은 복숭아나무를 옮기며-허균(許筠)

淸晨移得小桃來(청신이득소도래) : 맑은 새벽, 작은 복사나무를 옮겨와
細劚黃泥用意栽(세촉황이용의재) : 황토 땅 잘 파내어 마음 먹고 심었어라.
不識明年春二月(불식명년춘이월) : 모르겠어라, 명년 봄 이월이면
此花還向阿誰開(차화환향아수개) : 이 꽃은 도리어 누구를 향해 피어나리오.

 

 

이종앵도(移種櫻桃)-허균(許筠)
앵도를 옮겨 심으며-허균(許筠)

淺植幽厓奈爾何(천식유애내이하) : 응달 진 언덕에 얕게 묻힌 너를 어찌하나
孤根無路近陽和(고근무로근양화) : 외로운 뿌리에는 따뜻한 빛 가까이할 길 없구나.
移栽隙地勤封護(이재극지근봉호) : 빈 땅에 옮겨 심고 부지런히 돋우워주나니
爲待朱明結子多(위대주명결자다) : 여름철을 기다려 열매 많이 맺기 위해서니라

 

 

옥매화하용앵도화하운(玉梅花下用櫻桃花下韻)-허균(許筠)
옥매화 아래서 “앵도화하”를 용운하다-허균(許筠)

花事春猶淺(화사춘유천) : 꽃의 일은 봄이 오히려 얇아
南翁興已衰(남옹흥이쇠) : 남쪽 늙은이 흥이 이미 시들었다.
正憐微雨後(정련미우후) : 가랑비 지난 뒤라 정말 좋지 않으나
無那夕陽時(무나석양시) : 때마침 석양이라 어쩔 수가 없도다
浥露香先動(읍로향선동) : 이슬에 젖으니 향이 먼저 감돌다가
迎風態自遲(영풍태자지) : 바람 받으니 태도 절로 느려진다.
空嗟萬里客(공차만리객) : 부질없이 서글프다, 만 리 나그네여
垂老鬢如絲(수노빈여사) : 늙어가니 살쩍머리는 흰 실과 같구나.

 

 

용답춘운(用答春韻)-허균(許筠)
답춘을 용운하여-허균(許筠)

瘴雲霾日晦還明(장운매일회환명) : 습한 구름 날을 가려 어둡다 밝아지고
莫說春光比兩京(막설춘광비량경) : 봄빛을 두 서울에다 견주어 말을 마시라.
能使逐臣腸數盡(능사축신장수진) : 쫓겨난 신하로 애간장 자주 닳게 하니
隔林終日怪禽聲(격림종일괴금성) : 숲 건넌 쪽에 종일토록 괴이한 새소리 들린다

 

 

용대춘증운(用代春贈韻)-허균(許筠)
대춘증의 운을 사용하여-허균(許筠)

雪後山光浸水光(설후산광침수광) : 눈 온 뒤에 산 빛은 물빛에 젖어들고
酴醾將白阿槐黃(도미장백아괴황) : 여미는 희끗희끗 아괴는 노랗구나.
請君莫恨江南遠(청군막한강남원) : 바라기는, 그대 강남 멀다고 한탄 마오
風景元來似故鄕(풍경원래사고향) : 풍경이 원래 고향과 비슷합니다 그려.

 

 

주졸래위(主倅來慰)-허균(許筠)
주수가 와서 위로하다-허균(許筠)

鬖髿雲䯻卸金鈿(삼髿운고사금전) : 구름 같은 머리굽 금비녀 비껴
數曲蠻歌十二絃(수곡만가십이현) : 두어 가락 오랑캐 노래에 열두 줄 가야금
太守待人呈燭跋(태수대인정촉발) : 원님은 사람 대접에 초의 끝이 드러나는데
放臣娛客爇香煙(방신오객설향연) : 귀양살이 손님 환영하는 향연을 피우노라
閑情肯折章臺柳(한정긍절장대유) : 한가한 마음은 기꺼이 장대버들 꺾는데
促節疑傳相府蓮(촉절의전상부연) : 빠른 절(節)은 상부련을 전했는가 의아하다
强盡醁醽消積恨(강진록령소적한) : 거른 술 애써 말려 쌓인 한을 녹이는데
莫將衰白問群仙(막장쇠백문군선) : 부디 시든 백발 들어 군선에게 묻지말아라

 

 

초도함산(初到咸山)-허균(許筠)
함산에 처음 도착하여-허균(許筠)

穿巷緣溪路忽窮(천항연계로홀궁) : 개울 따라 길을 트니 문득 막달은 길
數椽茆店館墻東(수연묘점관장동) : 두어 칸 주막집 담 동쪽에 몸 던진다
縱無棨戟施門外(종무계극시문외) : 문 밖에는 지키는 시설은 없어도
尙有圖書在篋中(상유도서재협중) : 상자 속의 도서는 오히려 들어있도다
簌簌寒階飄竹雪(속속한계표죽설) : 찬 뜰에는 싹싹 대나무에 눈이 날리고
團團幽戶颯桐風(단단유호삽동풍) : 깊숙한 동그란 지게문에 오동 바람분다
寬恩似海甘留滯(관은사해감유체) : 바다 같은 너그러운 은혜에 기꺼이 머무니
休恨周南太史公(휴한주남태사공) : 주남 땅의 태사공일량 결코 원망하지 마시라

송성칙생무장(送成則生茂長)-허균(許筠)
무장 현감에 부임하는 성칙생을 보내며-허균(許筠)

上念長沙郡(상념장사군) : 주상이 장사 고을 염려하시어
銅章付省郞(동장부성랑) : 동장을 성랑에게 내려 주셨도다
雙旌非謫宦(쌍정비적환) : 쌍깃발은 귀양간 관원 아니니
百里借循良(백리차순량) : 백리의 고을을 순량에게 맡기셨다
彩翟迎琴集(채적영금집) : 채색 꿩은 거문고 맞아 모이고
晴花拂綬香(청화불수향) : 밝은 꽃은 인끈 스쳐 향기롭고
空看五馬貴(공간오마귀) : 현령의 다섯 말 행차 바라보니
西去笑吾忙(서거소오망) : 서쪽으로 바삐 가는 내를 비웃는다
曾到長沙郡(증도장사군) : 내 일찍이 장사 고을 당도하여
溪亭坐晩涼(계정좌만량) : 계울 정자에 앉으니 저녁이 서늘하다
竹風吹帽冷(죽풍취모랭) : 대나무 바람은 갓에 불어 서늘하고
荷露滴衣香(하로적의향) : 연꽃 이슬은 옷에 스며 향기로웠다
俊味烹赬鯉(준미팽정리) : 좋은 안주, 붉은 잉어 삶아 오고
妖姬薦玉觴(요희천옥상) : 고운 계집 옥술잔을 올리는구나
仙遊已如夢(선유이여몽) : 신선놀이 이미 꿈만 같으니
回首意茫茫(회수의망망) : 고개 돌려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하다

 

 

면복고명반래례파유작(冕服誥命頒勑禮罷有作)-허균(許筠)
관복과 직첩 나누는 예가 끝나고-허균(許筠)

芝誥鸞廻錫寵光(지고란회석총광) : 난새 날아와 총애와 광명 내려주신 사령
桓圭袞冕備儀章(환규곤면비의장) : 임금님 의장 갖추시고 내려주신 벼슬아치 홀
恩蒙再造仁偏洽(은몽재조인편흡) : 나라 다시 지으신 은혜 입어 인은 두루 흡족하고
運屬重恢業更昌(운속중회업경창) : 나라 회복되는 운을 타니 왕업은 다시 창성하도다
旖旎龍亭排鼓吹(의니룡정배고취) : 임금의 궁정 찬란하고 군악대 늘어세우고
參差羽仗轉旗常(참차우장전기상) : 깃털 장식 옷 다양하고 깃발이 벌럭인다
微臣獲覩聲容盛(미신획도성용성) : 거룩한 이 모습을 못난 신하가 뵙게 되니
歌頌何能罄贊揚(가송하능경찬양) : 칭송의 노래를 어찌 능히 찬양을 다하리오

 

 

판문령(板門嶺)-허균(許筠)
판문령에서-허균(許筠)

箭括躋攀苦(전괄제반고) : 전괄은 오르기도 어려워
塵沙損旅顔(진사손려안) : 흙먼지 나그네 얼굴 초췌케 한다
逢人非舊識(봉인비구식) : 만나는 사람마다 낯 선 사람
何處是鄕關(하처시향관) : 그 어느 곳이 바로 내 고향인가
積水兼天盡(적수겸천진) : 쌓인 물은 하늘과 맞닿아 있고
孤雲帶雁還(고운대안환) : 외로운은 구름 기러길 데리고 온다
微茫煙靄外(미망연애외) : 아득히 이내 엉긴 저 밖
一點義州山(일점의주산) : 한 점 의주의 산이 솟아있다

 

 

영훈루(迎薰樓)-허균(許筠)
영훈루에서-허균(許筠)

絶域春寒重(절역춘한중) : 외딴 곳이라 봄추위 심하고
高樓落日斜(고루락일사) : 높은 누강에 해가 지는구나
佳人頻勸酒(가인빈권주) : 정다운 이 자주 술 권하는데
客子正思家(객자정사가) : 나그네는 집생각만 간절하다
曲岸餘殘雪(곡안여잔설) : 굽은 둑에 눈이 남아 있어
辛夷有早花(신이유조화) : 개나리는 일찌 꽃이 피었도다
蒼蒼關塞黑(창창관새흑) : 아득한 변방은 어두워가고
城樹已棲鵝(성수이서아) : 성채의 숲에는 갈가마귀 깃들다

 

 

평양도중(平壤道中)-허균(許筠)
평양에 가면서-허균(許筠)

匹馬西京道(필마서경도) : 한 필 말로 서경 가는 중
東風倦客情(동풍권객정) : 봄바람에 권태로운 나그네 마음
淸波容彩舫(청파용채방) : 맑은 물에, 고운 빛 배 한척
斜日半層城(사일반층성) : 지는 해, 층층진 성채에 반쯤 내렸다
落拓笑前事(락척소전사) : 쇠락한 신세 되니 지난일 우스워
支離悲此行(지리비차행) : 너무도 지루하여 이 걸음 슬퍼한다.
長亭望不極(장정망불극) : 긴 정자 바라봐도 끝이 없는데
津樹暝煙生(진수명연생) : 나루터 숲에 어둑히 물안개 오른다

 

 

황주도중(黃州道中)-허균(許筠)
황주로 가는 중에-허균(許筠)

野店人煙小(야점인연소) : 들판 주막에는 사람과 연기 드물고
江橋落日愁(강교락일수) : 강가 다리위로 지는 해 시름겨워라
誰憐千里客(수련천리객) : 누가 천리 먼 나그네 불쌍히 여기랴
今始到黃州(금시도황주) : 오늘에야 황주 고을에 당도했도다

 

 

유송경(留松京)-허균(許筠)
송경에 머물며-허균(許筠)

故國遺墟在(고국유허재) : 옛나라 터만이 남아
荒城客子過(황성객자과) : 거친 성에 나그네 지나가다
半千無王氣(반천무왕기) : 반천 년에 왕기는 없어지고
百二有山河(백이유산하) : 백이 강산은 그대로구나
落日村煙冷(락일촌연랭) : 지는 해에 연기는 차갑고
餘寒野雪多(여한야설다) : 추운 날씨에 들에는 많은 눈 남아
南樓一惆悵(남루일추창) : 남쪽 누대도 한같이 서글픈데
弔古且長歌(조고차장가) : 지난일 슬퍼하며 길게 노래부른다

 

 

백상루1(百祥樓1)-허균(許筠)
백상루-허균(許筠)

高樓架層霄(고루가층소) : 높은 누각 반공에 솟아있고
下有長江流(하유장강류) : 아래로 긴 강이 흘러가는구나
暇日扶我病(가일부아병) : 틈을 내 병든 몸 이끌고
攀陟聊淹留(반척료엄류) : 더위잡아 올라 애오라지 쉬노라
仰看香爐峯(앙간향로봉) : 고개 들어 향로봉 바라보니
紫翠雲外浮(자취운외부) : 밖에는 둥둥 뜬 붉고 푸른 구름
何當理蠟屐(하당리랍극) : 어찌하면 밀 바른 신 챙겨 신고
直躋最上頭(직제최상두) : 바로 저 최상봉을 올라가 보려나
仙期若汗漫(선기약한만) : 신선되는 기약은 너무도 막연하여
黯然生覊愁(암연생기수) : 울적하게 얽매인 시름 생겨
緬想獨徘徊(면상독배회) : 이런저런 생각에 홀로 서성대니
西日下簾鉤(서일하렴구) : 서산의 지는 해는 발에 걸렸구나
人生無百歲(인생무백세) : 인생이란 백 살도 못사는데
物役爲煩憂(물역위번우) : 물욕에 팔린 마음 근심만 하는구나
名利亦徒爾(명리역도이) : 명예 이익도 모두가 헛 것인데
奈何不早休(내하불조휴) : 어찌 진작에 그만두질 못했는가
行將畢王事(행장필왕사) : 이제라도 나랏일 끝마친다면
投紱歸巖幽(투불귀암유) : 인띠 풀고 시골로 돌아가려한다
寄語鶴上人(기어학상인) : 학을 탄 사람에게 말 부치노니

 

 

백상루3(百祥樓3)-허균(許筠)
백상루-허균(許筠)

遠客愁無緖(원객수무서) : 먼 나그네 시름이 이유도 몰라
登樓暫解顔(등루잠해안) : 누데에 올라 잠시 얼굴빛 풀어본다
潮聲鳴薩水(조성명살수) : 밀물 소리 살수를 울리고
嵐氣撲香山(람기박향산) : 푸른 안개 향산을 때린다
驛路何時盡(역로하시진) : 역마 길은 언제나 끝나
鄕園只夢還(향원지몽환) : 내 고향은 꿈에서만 돌아간다
佳人知我恨(가인지아한) : 그리운 사람 나의 한을 알고서
停酒唱陽關(정주창양관) : 술잔 멎고 양관곡을 불러주는구나

 

 

향규원3(香閨怨3)-이상질(李尙質)
규방의 원망-이상질(李尙質)

銀床曉臥雪肌寒(은상효와설기한) : 새벽녘 은빛 침상에 누우니 백설같은 피부 차갑고
金鏡墜花伴隻鸞(금경추화반척란) : 금빛 경대에 떨어진 꽃잎, 한 마리 난새와 친구된다
一曲瑤琴紅淚濕(일곡요금홍루습) : 한 곡 거문고 노래에, 붉은 눈물 젖어오고
春魂應斷玉門關(춘혼응단옥문관) : 봄날 혼백은 응당 옥문관 끊고 돌아오리라

 

 

향규원2(香閨怨2)-이상질(李尙質)
규방의 원망-이상질(李尙質)

珠簾晝下洞房深(주렴주하동방심) : 주렴 내린 낮, 깊숙한 동방
暖日鶯聲鎖樹陰(난일앵성쇄수음) : 따스한 날, 앵무새 소리가 그늘에 막힌다
寂寞紅顏慵刺繡(적막홍안용자수) : 쓸쓸한 젊은 얼굴, 게을러 수를 놓는데
數行春淚是知心(수행춘루시지심) : 몇 줄기 흘러내리는 눈물, 그 마음을 알겠다

 

 

향규원1(香閨怨1)-이상질(李尙質)
규방의 원망-이상질(李尙質)

雲鬟不整便長吁(운환불정편장우) : 흩어진 검은 머릿결, 오랜 탄식 있었으니
紅淚千行減玉膚(홍루천행감옥부) : 흘러내리는 붉은 눈물에 옥같은 피부 상했구나
春曉蘭窓花寂寞(춘효란창화적막) : 봄새벽 난초 우거진 창가, 꽃은 적막한데
鴛鴦相伴睡菖蒲(원앙상반수창포) : 원앙새 짝지어 창포 속에서 잠들어 있구나

 

 

백상루2(百祥樓2)-허균(許筠)
백상루에서-허균(許筠)

向晩憑高閣(향만빙고각) : 저물녘 높은 누에 기대니
寒風起夕波(한풍기석파) : 차가운 바람에 저녁 물결 이는구나.
秋花石間早(추화석간조) : 돌 사이의 가을꽃은 이르고
霜氣水邊多(상기수변다) : 물가에 서리 기운 차가워진다.
去國年將晏(거국년장안) : 고향을 떠난 지가 해마다 늦어지니
傷時恨若何(상시한약하) : 시절을 아파하지 내 한을 어떻다 할까
悲吟臨海嶠(비음림해교) : 바닷가 높은 산에 이르러 슬피 읊다가
得句報羊何(득구보양하) : 싯귀를 얻어서 양하에게 말하여 보노라.

 

 

평양려야(平壤旅夜)-허균(許筠)
평양여관의 밤-허균(許筠)

夕霽天氣冷(석제천기랭) : 저녁에, 비 개자 싸늘해지고
閒房來遠風(한방래원풍) : 멀리서 부는 여관방을 찾아든다
誰知今夜會(수지금야회) : 누가 알았으랴, 오늘 밤의 이 모임
却有故人同(각유고인동) : 갑자기 임과 함께 만날 줄이야
月射金蕉白(월사금초백) : 금초에 달빛 훤히 비치니
花依鳳蠟紅(화의봉랍홍) : 꽃 빛은 촛불에 어리어 붉도다.
鄕園望不極(향원망불극) : 고향 옛 동산 바라보기 끝없고
消息碧雲中(소식벽운중) : 소식은 저 푸르른 구름 속에 있으리

 

 

중화조료(中和阻潦)-허균(許筠)
중화에서 홍수로 길이 막혀-허균(許筠)

積雨秋連日(적우추련일) : 가을 들어, 몇 날을 비 내리고
平郊潦映空(평교료영공) : 들판에 고인 물에 하늘이 비친다.
行人愁利涉(행인수리섭) : 나그네는 길 잘 건널 일 걱정하고
舟楫信難通(주즙신난통) : 배들은 소식조차 통하기 어렵구나.
野色孤煙外(야색고연외) : 한 가닥 외로운 이내, 넘어 보이는 들 빛
江聲亂樹中(강성란수중) : 어지러운 숲 속에, 흐르는 강물소리
停楹仍北望(정영잉북망) : 난간에 기대어, 저 북쪽을 바라보니
天際有賓鴻(천제유빈홍) : 하늘 가로 기러기 손님들, 높이도 날아간다

 

 

안성관(安城館)-허균(許筠)
안성관-허균(許筠)

客裏經寒食(객리경한식) : 객지에서 한식을 지나니
春光奈老何(춘광내로하) : 봄빛이 늦어지니 어찌하리오
出門芳草遍(출문방초편) : 문을 나서면 온갖 곳이 봄풀
倚杖落花多(의장락화다) : 지팡이 기대서니 꽃잎이 진다
公子聯鑣訪(공자련표방) : 공자는 말 타고 갔는데
佳人勸酒歌(가인권주가) : 가인은 권주가를 부른다
莞然開一笑(완연개일소) : 빙그레 한번 웃으니
足以慰蹉跎(족이위차타) : 출세못한 서글픔 잊기에 족하다

 

 

초좌헌(初坐軒)-허균(許筠)
동헌에 앉자마자-허균(許筠)

客病經三月(객병경삼월) : 나그네 병이 들어 석 달이 지나니
危冠已二毛(위관이이모) : 높은 사모에 이미 이모가 비치는구나
淹留嗟汝拙(엄류차여졸) : 주저앉은 네 옹졸하고 가엽고
歸去是人豪(귀거시인호) :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가 바로 잘난 사람
日氣融殘雪(일기융잔설) : 날씨는 남은 눈도 다 녹이고
春寒勒小桃(춘한륵소도) : 봄 추위는 복사꽃을 죄어매는구나
東風動歸興(동풍동귀흥) : 봄바람이 돌아갈 흥을 일으키니
湖海有漁舠(호해유어도) : 호수와 바다에는 낚싯배가 떠있구나

 

 

나옹래(懶翁來)-허균(許筠)
나옹이 찾아오다-허균(許筠)

客逐東風至(객축동풍지) : 손님이 봄바람 따라 오니
令余病欲蘇(령여병욕소) : 나의 묵은 병이 갑자기 낫는 듯
能爲謝尙舞(능위사상무) : 사상의 춤가락 을 능히 추니
自是高陽徒(자시고양도) : 본시부터 고양의 무리가 아닌가
事業餘椽筆(사업여연필) : 사업은 서까래 같은 붓이 남았고
生涯付玉壺(생애부옥호) : 생애는 옥술병에 맡겨 버렸도다
微官亦何物(미관역하물) : 하찮은 벼슬아치 또 그게 무엇인가
歸路在江湖(귀로재강호) : 돌아갈 길은 저 강호에 있도다

 

 

재군석작(在郡夕作)-허균(許筠)
고을에 머물며 저녁에 짓다-허균(許筠)

靑煙一抹起官庖(청연일말기관포) : 한 가락 파란 연기 관포에 피어오르고
麛卵熊蹯薦案肴(미란웅번천안효) : 사슴 새끼, 곰 발바닥을 안주로 올렸구나
飽飯不容公事了(포반불용공사료) : 배불리 먹고 공사에는 등한하다니
詩人應有素餐嘲(시인응유소찬조) : 시인은 응당 소찬을 조롱할 것이로다

 

 

숙서흥인가(宿瑞興人家)-허균(許筠)
서흥인가에 묵으며-허균(許筠)

甌笋捧纖纖(구순봉섬섬) : 사발에 담은 죽순 손수 받들고
龍團渴更添(룡단갈경첨) : 용단이 말라가니 다시 더보탠다
天寒風捲幙(천한풍권막) : 날이 차니 바람은 장막을 걷고
夜久月窺簷(야구월규첨) : 밤이 깊으니 달은 처마를 엿본다
山蹙文君錦(산축문군금) : 탁문군의 비단처럼 주름진 산
香熏賈氏簾(향훈가씨렴) : 가의씨의 주렴처럼 향기 진하구나
蓬山一千里(봉산일천리) : 봉산은 천리 밖에 있어
歸夢曉懕懕(귀몽효염염) : 새벽마다 꿈 속에 실컷 돌아간다

 

 

숙황주(宿黃州)-허균(許筠)
황주에 묵으며-허균(許筠)

屛蕉隱映背蘭釭(병초은영배란강) : 둘러선 파초는 어리비추며 난강을 등지고
瑟柱初張萬玉鏦(슬주초장만옥총) : 비파 기둥 갓 고르니, 온갖 옥돌 쟁그렁소리
羔酒滿斟金張暖(고주만짐금장난) : 고량주 잔에 술 부으니 금장이 따뜻해져
任他風雪撲寒窓(임타풍설박한창) : 눈바람은 저 마음대로 창문을 때리는구나

 

 

인군무효도해(因軍務曉渡海)-허균(許筠)
군무로 인해 새벽에 바다를 건너며-허균(許筠)

說劍非能事(설검비능사) : 칼 이야기가 나의 능사가 아닌데
還勞府檄徵(환로부격징) : 도리어 관아의 부름만을 힘들게 했다
侵星航積水(침성항적수) : 불어난 물에 배 저어 별빛에 나가니
驅馬戰層氷(구마전층빙) : 얼음판에 떨면서 말을 몰아 간다
曉月風樓笛(효월풍루적) : 새벽 달빛에 바람부는 누대에 젓대소리
寒天雪舫燈(한천설방등) : 차가운 하늘에 불켜진 배에 눈이 쌓인다
宦遊吾自倦(환유오자권) : 벼슬놀이 나 스스로 지겨워져
世事負聾丞(세사부롱승) : 세상 일로 귀머거리 보좌관을 저버리는구나

 

 

시사회도양산작(試士回到楊山作)-허균(許筠)
시험 본 선비가 양산에 이르러-허균(許筠)

棘撤催歸騎(극철최귀기) : 과장이 걷어지자 돌아갈 길 재촉하여
楊州暫解顔(양주잠해안) : 양주에 이르러서 잠깐 긴장을 풀었다
使君斟綠醞(사군짐록온) : 원님은 좋은 술을 권하고
淸樂動雲鬟(청악동운환) : 운환의 기녀들은 맑은 풍악 울린다
挑燭香凝帳(도촉향응장) : 촛불을 돋우니 장막에 향이 어리고
掀簾雪滿山(흔렴설만산) : 주렴이 걷히니 온 산에 눈이 가득하다
歡娛不知竟(환오불지경) : 기쁘고 즐거워 마칠 줄을 모르나니
良夜已闌珊(량야이란산) : 좋은 이 밤에 시간이 이미 다 늦었구나

 

 

우회4(寓懷4)-허균(許筠)
감회에 부쳐-허균(許筠)

政豈推高第(정기추고제) : 정사를 어찌 후배에게 미룰까
情還憶故鄕(정환억고향) : 내 심경은 도리어 고향 생각이라
空慙二千石(공참이천석) : 녹봉 이천석이 헛되이 부끄러우니
不逮漢循良(불체한순량) : 한 나라 순량에게 미치지 못하는구나

 

 

우회3(寓懷3)-허균(許筠)
감회에 부쳐-허균(許筠)

田畝略抛荒(전무략포황) : 밭이랑은 거의 다 묵혀 황폐하고
人民半死亡(인민반사망) : 백성들은 거의 절반이나 죽었도다
征徭仍聚斂(정요잉취렴) : 전쟁과 부역에 각주구검
水旱更蟲蝗(수한경충황) : 물난리 가뭄에 또 충재까지 덮다다니

 

 

우회2(寓懷2)-허균(許筠)
감회에 부쳐-허균(許筠)

漉酒頭巾墊(록주두건점) : 술 거르니 두건은 꺾여지고
趨塵手板斜(추진수판사) : 티끌 속 헤매니 계산이 기우는구나
賢愚俱泯滅(현우구민멸) :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모두가 죽는 법
黃綬豈吾誇(황수기오과) : 누런 벼슬 인끈이 어찌 내 자랑이 되리오

 

 

우회1(寓懷1)-허균(許筠)
감회에 부쳐-허균(許筠)

彭澤公田秫(팽택공전출) : 평택령 도연명의 수수밭이고
河陽一縣花(하양일현화) : 하양땅 온 고을이 꽃세상이로다
歸來君自逸(귀래군자일) : 돌아온 그대는 절로 편한데
拙官爾堪嗟(졸관이감차) : 못난 벼슬아치 너희는 서글퍼한다

 

 

청백희구(聽伯姬謳)-허균(許筠)
백희의 노래를 듣고-허균(許筠)

塞曲聲偏壯(새곡성편장) : 변방의 노랫가락 유달리 장엄하여
胡姬貌更奇(호희모경기) : 오랑캐 젊은 계집 얼굴조차 절묘하다
淸音揚月苦(청음양월고) : 맑은 소리 달빛을 흔들고
逸響度雲遲(일향도운지) : 긴 메아리 느릿느릿 구름을 건너온다
凄絶思君曲(처절사군곡) : 처절하나 임 그리는 곡조
悲涼勸酒詞(비량권주사) : 슬프고 처량하다, 권주가의 가사
留君歌至曙(류군가지서) : 벗님 잡아두려 새벽까지 노래 불러
遮莫斂愁眉(차막렴수미) : 시름겨운 나비 눈썹 막아 거두지 말라

 

 

여경무숙학선당(與景武宿學仙堂)-허균(許筠)
경무와 학선당에서 묵다-허균(許筠)

故人能命駕(고인능명가) : 친구는 늘 나를 찾아와
仍伴郡齋眠(잉반군재면) : 서로 어울려 고을 관아에 묵었다
寵辱驚今日(총욕경금일) : 총애와 욕됨에 놀란 오늘
悲懽說舊年(비환설구년) : 슬픔과 기쁨의 옛날을 이야기 한다
天長霜雁怨(천장상안원) : 높은 하늘, 서리가 한스러운 기러기
漏盡燭花偏(루진촉화편) : 밤은 깊어가고 촛불 꽃이 지는구나
吏體吾方傲(리체오방오) : 관리의 품위 유지에 오만해지는 나
滄洲憶釣船(창주억조선) : 창강에서 낚싯배를 추억하노라

 

 

도군등화학루(到郡登化鶴樓)-허균(許筠)
군에 도착하여 화학루에 오르다-허균(許筠)

吏散空庭靜(리산공정정) : 아전이 흩어져 뜰은 비어 고요하고
登樓豁遠情(등루활원정) : 누대에 오르니 가슴 환히 트여온다
四山如拱揖(사산여공읍) : 사방 산은 팔짱끼고 읍을 하는 듯
一水自紆縈(일수자우영) : 한 가닥 강물은 저절로 얽혀 흘러간다
夕鳥迎人語(석조영인어) : 저녁 새는 사람 맞아 이야기 하고
秋花盡意明(추화진의명) : 가을꽃은 제 뜻대로 피어 밝기만 하다
翛然多野趣(소연다야취) : 온몸이 홀가분하고, 들판의 멋은 짙어가고
忘却擁雙旌(망각옹쌍정) : 원님을 모시는 두 깃발마저 잊어버렸다

 

 

호정(湖亭)-허균(許筠)
호정-허균(許筠)

煙嵐交翠蕩湖光(연람교취탕호광) : 안개와 남기 푸른고, 호수물결 넘실
細踏秋花入竹房(세답추화입죽방) : 가을 꽃 밟고 밟아 대나무 방에 들었다
頭白八年重到此(두백팔년중도차) : 머리 센 지 팔 년 만에 다시 이곳에 와
畫船無意載紅粧(화선무의재홍장) : 그림배에 붉은 단장 싣고 갈 뜻 없도다

 

 

지사촌(至沙村)-허균(許筠)
사촌에 이르다-허균(許筠)

行至沙村忽解顔(행지사촌홀해안) : 걷어 사촌에 이르자 웃음이 나와
蛟山如待主人還(교산여대주인환) : 교산은 주인 돌아오길 기다린 듯 하다
紅亭獨上天連海(홍정독상천련해) : 홍정에 올라보니 하늘에 닿은 바라
我在蓬萊縹緲間(아재봉래표묘간) : 멀고 아득한 사이로 봉래산에 나가 있다

 

 

부백송주기(府伯送酒妓)-허균(許筠)
부백이 술집 기녀를 보내다-허균(許筠)

明府多交誼(명부다교의) : 명부에는 교분의 정이 많아
淸樽映翠鬟(청준영취환) : 취환이 맑은 동술에 어리는구나
還將泛海意(환장범해의) : 바다로 떠갈 마음 있더니
携妓在東山(휴기재동산) : 도리어 기생 데리고 동산에 있구나

 

 

숙락산사(宿洛山寺)-허균(許筠)
낙산사에서 묵다-허균(許筠)

重尋五峯寺(중심오봉사) : 오봉사를 다시 찾아오니
風景似前年(풍경사전년) : 풍경은 지난해와 다르지 않다
竹逕通秋屐(죽경통추극) : 대숲 길을 오가는 가을 발길
花臺起夕煙(화대기석연) : 화대에 저녁연기 피어오른다.
歡迎羅衆衲(환영라중납) : 여러 스님 열 지어 환영하니
勝踐躡諸天(승천섭제천) : 멋진 발걸음 제천을 밟아간다
已悟無生忍(이오무생인) : 이미 불생불멸의 진리 깨달아
蕭然淨俗緣(소연정속연) : 숙연히 속된 인연 씻어버린다

 

 

도중망락산(道中望洛山)-허균(許筠)
길가다가 낙산을 바라보며-허균(許筠)

香鑪散作族雲盤(향로산작족운반) : 향로봉 흩어져서 족운반이 되어
彩暈長明積翠間(채훈장명적취간) : 푸른 빛 쌓인 새로 채색 구름 뻗혀온다
欲問洛迦禪寺宿(욕문락가선사숙) : 낙산사를 물어 하룻밤 묵으려니
行人遙指五峯山(행인요지오봉산) : 길 가는 사람이 아득히 오봉산을 가리킨다

 

 

척성호(䨥成湖)-허균(許筠)
척성호-허균(許筠)

並海平湖闊(병해평호활) : 바다에 붙어있어 호수가 트이고
沿流客棹輕(연류객도경) : 흐름 따라 내려가는 배는 빠르다
煙凝暮山紫(연응모산자) : 안개는 서리고, 저문 산은 붉어
霜落夕波淸(상락석파청) : 서리가 내리니 저녁 물결 맑기도 하다
槎路通銀漢(사로통은한) : 뗏목 길이 은하수로 통하고
仙居近玉京(선거근옥경) : 신선 같은 삶이 옥경과 가까웁다
吹笙降王母(취생강왕모) : 피리 부니 서왕모가 내려오니
何許董雙成(하허동쌍성) : 동쌍성은 그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청간정(淸磵亭)-허균(許筠)
청간정-허균(許筠)

楓岳曇無竭(풍악담무갈) : 풍악산에 구름 그치지 않아
金門老歲星(금문로세성) : 금문에는 늙은 세성이 떠있다
相逢雖恨晩(상봉수한만) : 만남이 늦음이 비록 한스러우나
交契自忘形(교계자망형) : 교분이 절로 세상일을 잊는다
暫別緣塵累(잠별연진루) : 잠시 이별은 세속의 누 때문이라
幽期屬暮齡(유기속모령) : 그윽한 기약은 늘그막에 맡긴다
高亭殘午夢(고정잔오몽) : 높은 정자에 한낮의 꿈을 남기고
天外萬峯靑(천외만봉청) : 하늘 밖 갓에 많은 봉우리가 푸르다

 

 

백천교(百川橋)-허균(許筠)
백천교-허균(許筠)

飛橋百尺跨林端(비교백척과림단) : 나르는 다리 백천교 수풀 끝을 깔고
九月晴雷殷激湍(구월청뢰은격단) : 구월의 마른 우레 같운 부딪는 물소리
利涉何年誰建閣(리섭하년수건각) : 이섭이라 어느 해 누가 누각을 세웠는나
來游今日我憑欄(래유금일아빙란) : 오늘 여기 노리며 난간에 기대어본다
霜淸巨壑奔流淨(상청거학분류정) : 서리 맑은 큰 골짝에 부딪히는 맑은 물결
風急層巒落木寒(풍급층만락목한) : 바람 급한 층진 산봉우리에 낙엽이 차구나
惆悵壯時題柱志(추창장시제주지) : 서글퍼라 젊었을 때 기둥에 적은 청운의 뜻
半生嬴得鬢毛殘(반생영득빈모잔) : 인생 반평생에 얻은 귀밑머리만 얻었구나.

 

 

경고별정생두원잉하산(耕庫別鄭生斗源仍下山)-허균(許筠)
경고에서 정두원과 이별하고 하산하다-허균(許筠)

下山未一日(하산미일일) : 하산한 지 하루가 못 되어도
懷山如隔年(회산여격년) : 한 해나 지난 듯이 산이 그리워라
擬欲更攀陟(의욕경반척) : 다시 또 오르리라 생각했으나
奈被塵網牽(내피진망견) : 진망에 얽힌 몸을 어찌할꺼나
迢迢故人去(초초고인거) : 아득히 친구 따라 떠나
去去洛陽川(거거락양천) : 가고 또 가는 낙양의 냇물
客中復送客(객중부송객) : 나그네가 다시 나그네를 보내다니
我懷益悽然(아회익처연) : 내 마음 속이 더욱더 처량하구나
十步九回首(십보구회수) : 열 걸음에 아홉 번을 고개 돌리고
五步三駐鞭(오보삼주편) : 다섯 걸음에 세 번을 채찍 멈추었도다
凝睇梵王宮(응제범왕궁) : 범왕궁을 흘끗흘끗 바라보는 듯
殿寮藏雲煙(전료장운연) : 구름과 연기는 건물 안 사람을 감추었다
悵望不可見(창망불가견) : 서글피 바라봐도 보이지 않아
獨立涼風前(독립량풍전) :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앞에 홀로 섰노라

 

 

산영루(山映樓)-허균(許筠)
산영루-허균(許筠)

赤葉驁秋晩(적엽오추만) : 늦가을 고고한 붉은 단풍
黃花似故園(황화사고원) : 샛노란 국화는 고향 꽃과 같구나
盤筵羅郡餼(반연라군희) : 반연에는 고을 선물 늘어놓고
菘葍御僧飱(숭복어승손) : 배추와 무는 중의 반찬 되었구나
亞使知名早(아사지명조) : 아사는 이름 안 지 오래되고
齋郞宿契敦(재랑숙계돈) : 재랑과 묵은 우정 두텁기만하다
偶然成勝集(우연성승집) : 우연히 좋은 모임 이루었으니
落日瀲淸尊(락일렴청존) : 지는 해가 맑은 술통에 넘실거린다

 

 

유점사(楡岾寺)-허균(許筠)
유점사-허균(許筠)

金鍾法像月支來(금종법상월지래) : 금종법상은 서역 땅 월지에서 오고
傑構耽耽寶地開(걸구탐탐보지개) : 우람한 누각들은 보배로운 땅에서 열렸다
八部龍神趨玉座(팔부룡신추옥좌) : 팔부의 용신은 옥좌에 굽실대고
六時天樂動香臺(륙시천악동향대) : 육시의 궁중음악은 향대에 들썩인다
修齋尙祝光陵福(수재상축광릉복) : 재를 닦아 광릉(세종)의 복을 빌고
作記猶稱閔漬才(작기유칭민지재) : 지은 글에서는 민지의 재주를 칭찬한다
何事許詢根苦淺(하사허순근고천) : 무슨 일로 허순은 근기가 천박하여
却將衣鉢混塵埃(각장의발혼진애) : 도리어 의발을 가져다가 진애에 뒤섞었구나

 

 

불정대(佛頂臺)-허균(許筠)
불정대-허균(許筠)

衆谷星門大(중곡성문대) : 여러 골짜기에 성문은 크고
千巖佛頂尊(천암불정존) : 온 골짝 중에 불정대는 높아라
諸峯齊日觀(제봉제일관) : 여러 산봉우리를 갠 날에 보니
瀑布瀉天門(폭포사천문) : 폭포는 천문에서 쏟아지는구나
窅爾雲平壑(요이운평학) : 구름은 아득히 골짝에 깔려있는데
俄然海浴暾(아연해욕돈) : 이윽고 바다에서 목욕한 해가 돋는다
坐來星斗滅(좌래성두멸) : 자리에 앉으니 별들은 스러지고
曙色動雞園(서색동계원) : 새벽빛이 계원에 움직여 오는구나

 

 

성불암(成佛庵)-허균(許筠)
성불암-허균(許筠)

深樹僧房小(심수승방소) : 깊은 숲에 작은 승방
層巒石路分(층만석로분) : 층진 봉우리 돌길이 갈라진다.
中宵初見月(중소초견월) : 밤이 깊어서야 비로소 달이 보여
滄海闊無雲(창해활무운) : 광활란 짙푸른 바다에 구름 한점 없다
香氣諸天降(향기제천강) : 향기는 제천에서 내려오고
鍾聲下界聞(종성하계문) : 종소리는 하계에서 들려오는구나.
冷然人境外(랭연인경외) : 시원하구나, 인간 밖 세상이여
不恨久離群(불한구리군) : 오랫동안 무리 떠나 있음을 한하지 말라

 

 

도솔암(兜率庵)-허균(許筠)
도솔암-허균(許筠)

兜率知名寺(두솔지명사) : 도솔은 이름 아는 사찰
彌陀不動尊(미타불동존) : 미타는 부동존이로다
歸依何老宿(귀의하로숙) : 돌아와 어떤 노인에 귀의 묵나
宴息此山門(연식차산문) : 편안히 이 산문에서 쉬고 있도다
破衲懸苔壁(파납현태벽) : 떨어진 옷 이끼 낀 벽에 걸려있고
寒泉汲瓦盆(한천급와분) : 차가운 샘물을 질동이로 긷고 있다.
我來欲問法(아래욕문법) : 내가 지금 와서 법문을 물으려니
合掌了無言(합장료무언) : 합장만 한 채로 한마디 말도 없다.

 

 

은신대(隱身臺)-허균(許筠)
은신대-허균(許筠)

午登紫月庵(오등자월암) : 한낮에 자월암에 겨우 올라
引頸勞北眄(인경로북면) : 목을 빼어 북쪽을 힘겹게 바라본다
已失內山容(이실내산용) : 안쪽 산의 모양은 이미 잃어
若別佳人面(약별가인면) : 님의 얼굴 이별함과 꼭 같구나
俄然大雲鋪(아연대운포) : 이윽고 큰 구름이 퍼져나가고
川谷皆無見(천곡개무견) : 골짜기도 내도 모두가 보이지 않는다
脚底驟風雨(각저취풍우) : 다리 아래는 비바람 소나기 되고
階前閃雷電(계전섬뢰전) : 댓돌 앞에는 천둥 번개 번쩍이는구나
不誣天柱遊(불무천주유) : 천주봉의 유람을 우습게 보지 말라
露葉尙見睍(로엽상견현) : 이슬 내린 나뭇잎은 아직도 아름답구나
阿香未息威(아향미식위) : 아향은 아직 위세를 그치지 않고
屛翳倏而捲(병예숙이권) : 병풍의 어둑함이 깜짝 만에 활짝 걷힌다
矯然萬玉虹(교연만옥홍) : 교연히 떠오르는 만 개의 옥무지개
鐵壁飛流濺(철벽비류천) : 철벽을 날아 흘러내리는구나
謂作十二者(위작십이자) : 열두 개를 만들었다 말하니
井觀豈知變(정관기지변) : 우물에서 하늘 보니 어찌 밖 변화를 알까
寄謝李靑蓮(기사리청련) : 청련인 이백에게 말 전하노니
廬峯不足羨(려봉불족선) : 여산 봉우리에 별로 부끄러움이 없음을

 

 

박달관(朴達串)-허균(許筠)
박달관-허균(許筠)

緣崖下邐迤(연애하리이) : 비탈 타고 슬슬 돌아 내려오니
岑壑漸陰沍(잠학점음호) : 그윽한 골짜기 차츰 음산해진다
回視所來逕(회시소래경) :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蒼蒼若川路(창창약천로) : 가물가물 냇가 길과 같구나
仰看空團團(앙간공단단) : 둥글고 둥근 공중을 쳐다보니
日色礙兩岵(일색애량호) : 햇볕이 두 산봉우리에 걸리어
亂流騰矼奔(란류등강분) : 내닫는 물불기 돌다리를 넘는다
湍雷駛吼怒(단뢰사후노) : 우레같은 여울물 성난 듯 소리낸다
滑隒頻跼足(활엄빈국족) : 미끄러운 낭떠러지에 발을 삐치고
尖巖或傷股(첨암혹상고) : 날카로운 바위에 가끔씩 다리를 다친다
中川巨石騈(중천거석병) : 흐르는 내 복판에 박힌 커다란 돌
伏狻仍踞虎(복산잉거호) : 사자가 엎드린 듯 범이 웅크린 듯
森然來搏人(삼연래박인) : 무섭게도 날아와 사람을 치니
乍見心膽怖(사견심담포) : 살짝만 봐도 심담이 떨리는구나
斷谿幾猱緣(단계기노연) : 낭떠러지에 원숭이 얼마나 사는지
仄磴屢狼顧(측등루랑고) : 기울어진 돌길에는 이리가 돌아본다
艱難濟南岸(간난제남안) : 어렵사리 남쪽 언덕 건너가니
脅息汗如湑(협식한여서) : 숨가빠 온몸에 땀이 술 거르듯 하다
到此愜幽期(도차협유기) : 여기 도착하니 상쾌하고 그윽해져
都忘向來苦(도망향래고) : 아까 겪은 고생을 모두 잊었다

 

 

적멸암(寂滅庵)-허균(許筠)
적멸암-허균(許筠)

金銀樓閣映香臺(금은루각영향대) : 금빛 은빛 저 누각, 향대에 비치고
俯視扶桑海一杯(부시부상해일배) : 동해를 굽어보니 바다가 한 잔의 물
素練倒垂千瀑落(소련도수천폭락) : 매달린 하얀 베처럼 일천 폭포 떨어지고
玉虹橫橋百川廻(옥홍횡교백천회) : 옥무지개 비낀 다리를 온갖 내가 돌아흐른다
層崖怒折雷霆鬪(층애노절뢰정투) : 층계 진 벼랑을 성난 듯 꺾는 천둥의 싸움
巨壑平臨日月開(거학평림일월개) : 커다란 골짝이 평평하여 해와 달에 열렸도다
坐久瞑煙籠萬谷(좌구명연롱만곡) : 앉자 있으려니, 어두운 안개 골짝을 감싸고
幾時笙鶴降蓬萊(기시생학강봉래) : 신선 학이 어느 때나 봉래산에서 내려올까

 

 

구정봉(九井峰)-허균(許筠)
구정봉-허균(許筠)

內山白而巧(내산백이교) : 안쪽 산은 빛이 희어 교묘하고
外山蒼而雄(외산창이웅) : 밖 갗 산은 검푸르러 웅장하도다
巧若費人力(교약비인력) : 공교로움은 사람 힘을 낭비하고
雄則眞天功(웅칙진천공) : 웅장함은 참으로 하늘의 공력이다
晨登九井峯(신등구정봉) : 새벽녘에 구정봉에 올라
俯眺心眼通(부조심안통) : 굽어 바라보니 마음과 눈이 트인다
兩山各有態(량산각유태) : 두 산이 제 각각 제 모습을 하고
孰曰有汚隆(숙왈유오륭) : 어느 것을 궂다 좋다 누가 말하랴
東暾已出谷(동돈이출곡) : 동쪽의 해는 이미 골짝에 솟고
海霧含沖瀜(해무함충융) : 바다 안개는 눅은 기운 머금었도다.
煙霞閃輝映(연하섬휘영) : 안개와 노를 섬광처럼 번쩍거리고
草樹明蔥蘢(초수명총롱) : 풀과 나무들은 비취옥처럼 밝도다
衆壑爭起伏(중학쟁기복) : 여러 골짜기들 다투어 솟아오르고
如濤扇長風(여도선장풍) : 파도처럼 긴 바람에 부쳐댄다
嵌顚羅九泓(감전라구홍) : 산마루에 꿇린 아홉 구멍
老蛟蟠其中(로교반기중) : 늙은 뱀이 그 속에 서려있구나
幾年移宅去(기년이댁거) : 몇 해 전에 제 집을 옮겨가
潛淵化爲龍(잠연화위룡) : 못에 잠겨 용으로 변했도다
舊迹僧解說(구적승해설) : 스님이 묵은 자취를 이야기하고
尙辨蜿蜒蹤(상변완연종) : 꿈틀대던 그 형상 아직도 구별된다
濃靄變微雨(농애변미우) : 짙은 안개가 갑자기 가랑비 되어
日午雲冥濛(일오운명몽) : 대낮에도 구름은 뭉게구름 피어오른다
咫尺毗盧頂(지척비로정) : 지척이라 비로봉 정상이라
不許移吾笻(불허이오공) : 내 지팡이 옮겨가길 허하지 않는구나
興闌下絶䜫(흥란하절䜫) : 흥이 식어 절벽을 내려오니
林梢露紺宮(림초로감궁) : 수풀 끝에는 절집이 보이는구나
頹然寄晝睡(퇴연기주수) : 비스듬히 낮잠을 자보려 해도
夢入瑤臺空(몽입요대공) : 꿈이 요대에 들자 다 사라져버리는구나

 

 

백전암(白田庵)-허균(許筠)
백전암에서-허균(許筠)

星門洞壑鬱蒼氛(성문동학울창분) : 성문의 온 골짝에 푸른 안개 자욱하고
俯視鴻濛一氣曛(부시홍몽일기훈) : 홍몽을 굽어보니 온 기운이 자욱하도다
地逈危巖低出日(지형위암저출일) : 땅이 트이고 높은 바위에 솟는 해 나직하고
天垂削壁斷歸雲(천수삭벽단귀운) : 하늘 아래 깎은 벼랑에는 가는 구름 끊겼구나
山通內外群峯集(산통내외군봉집) : 안팎으로 산이 뚫려 뭇 봉우리 모여들어
川折東西兩派分(천절동서량파분) : 동서로 내가 터져 두 줄기로 갈라졌구나
庵內老禪方宴坐(암내로선방연좌) : 암자 안의 늙은 중은 편안히 앉았는데
笙簫不入耳中聞(생소불입이중문) : 귓속에 생소 소리 들려와 들리지도 않는구나

 

 

마하연(摩訶衍)-허균(許筠)
마하연-허균(許筠)

寶刹排雲上(보찰배운상) : 절이 구름 밀고 솟아오르니
珠宮奪日鮮(주궁탈일선) : 궁궐은 햇볕을 빼앗아 선명하구나
經函明貝葉(경함명패엽) : 불경 든 상자는 자개조각에 어리어
爐燼郁栴檀(로신욱전단) : 화로의 재는 전단이 향기로워라
僧自參禪坐(승자참선좌) : 중 스스로 참선하여 안자 있고
吾仍借榻眠(오잉차탑면) : 나는 이내 의자를 빌려 잠에 든다
夜闌風籟發(야란풍뢰발) : 밤이 늦자 바람소리 울려 퍼지고
笙鶴下三天(생학하삼천) : 신선세계 학들이 삼천에서 내려온다

 

 

 

 

망함산(望咸山)-허균(許筠)
함산을 바라보며-허균(許筠)

春泥泱沆沒平原(춘니앙항몰평원) : 봄의 흙탕물 가득 고여 한 벌을 묻었고
行過龍城縣郭門(행과용성현곽문) : 걸음은 용성 고을 성문을 지나가노라
指點兩山烽燧下(지점량산봉수하) : 가리키는 양산의 봉수대 바라보니
蒼蒼官樹暝煙昏(창창관수명연혼) : 창창한 저 나라 산 숲에 저녁 연기 어둑하다

 

 

제승권용서담운(題僧卷用西潭韻)-허균(許筠)
승권에 제하여 서담의 운을 쓰다-허균(許筠)

松花茗葉進僧飡(송화명엽진승손) : 송화는 차잎, 절간 음식 진상하니
愧把塵容對碧山(괴파진용대벽산) : 청산을 상대하는 세속 어굴 부끄럽다
林月未圓蘿逕暗(림월미원라경암) : 숲 속의 달 둥글지 않아 등라길 어둡고
峀雲初霽石樓寒(수운초제석루한) : 산 구름 구름 갓 개어 돌누각이 싸늘하구나
宦遊牢落秋將老(환유뢰락추장로) : 벼슬살이 서글프고 가을에 늙어가니
禪話留連夜向闌(선화류련야향란) : 참선 이야기 날 붙들어 밤마저 늦어진다
却恨勞生長役役(각한로생장역역) : 도리어 한스럽다, 피곤한 내 삶 오래도 힘겨워
白頭猶事馬蹄間(백두유사마제간) : 검은 머리 희어져도 말 위를 떠나지 못한다

 

 

신광사(神光寺)-허균(許筠)
신광사-허균(許筠)

宮殿麗巖腰(궁전려암요) : 궁전처럼 화려한 산허리
祥雲捧綺寮(상운봉기료) : 상서로운 구름 깁창을 받든다
檀施自公主(단시자공주) : 시주는 공주로부터 시작되고
結構在前朝(결구재전조) : 절 건축은 고려 때 했었도다
地布黃金燦(지포황금찬) : 황금이 찬란하게 땅에 깔리고
臺騫碧漢遙(대건벽한요) : 대가 높이 솟고, 은하수는 멀리 있다
瑞毫三界絢(서호삼계현) : 서광의 끝은 삼계에 현란하고
天樂六時調(천악륙시조) : 하늘 소리 육시에 조화롭구나
欹側週廊巧(의측주랑교) : 비스듬히 둘러선 회랑, 정교하고
森羅像設喬(삼라상설교) : 삼엄하게 모셔진 금상은 크다랗다
鴿驚風鐸翥(합경풍탁저) : 풍경 소리에 놀라 합새는 날고
龍抱火珠跳(룡포화주도) : 용은 화주를 껴안은 채 뛰논다
花雨霑瑤蓋(화우점요개) : 꽃비는 요대의 지붕을 적시고
燈輪切絳霄(등륜절강소) : 등꽃이 기둥은 불빛 하늘과 조화롭다
壯觀眞駭矚(장관진해촉) : 장관이라 참으로 눈이 휘둥글어지고
幽賞暫停軺(유상잠정초) : 수레 잠깐 멈추고 그윽히 구경하노라
蒲供陳淸淨(포공진청정) : 포단의 이바지는 청정하게 베풀어지고
禪談慰寂寥(선담위적요) : 참선 이야기는 적막을 위로해 주노라
經函明貝葉(경함명패엽) : 모든 불서는 패엽 위에 선명하거
鍾梵殷山椒(종범은산초) : 범종 소리는 산꼭대기에 은은하구나
苦海誠難涉(고해성난섭) : 고해를 건너가긴 정말 어렵고
慈航未易招(자항미역초) : 자비로운 인생 항새 부르기 쉽지 않다
還從舍利子(환종사리자) : 뒤미처 사리자를 따르리니
空界倘相邀(공계당상요) : 공계에서 혹시 서로 맞아줄는가

 

 

소연증주목(小讌贈主牧)-허균(許筠)
작은 연회에 주목에게 드리다-허균(許筠)

晩敞芙蓉堂(만창부용당) : 저녁이 되어 부용당을 활짝 여니
淸凝燕寢香(청응연침향) : 맑은 향기 연회 침상에 엉겨붙는구나
一尊開北海(일존개북해) : 한 동이 술 열어라, 북해 태수의 술자리
千騎下東方(천기하동방) : 천기마가 동방으로 내려가누나
山雨鏖殘暑(산우오잔서) : 산비는 남은 더위 물리치고
林風進夕涼(림풍진석량) : 숲 바람은 저녁 서늘한 바람 보내는구나
平生無劇飮(평생무극음) : 평생에 마음 놓고 마신 적 없으니
聊盡使君觴(료진사군상) : 애오라지 사군의 술은 기필코 다 마셔보리라

 

 

해주(海州)-허균(許筠)
해주-허균(許筠)

海西大都會(해서대도회) : 해주는 서해의 큰 도시
首陽爲雄藩(수양위웅번) : 수양대군이 큰 울타리로 여였다
繚隍帶複塹(료황대복참) : 둘러 있는 해자은 참호 두르고
擊柝嚴重門(격탁엄중문) : 치는 탁은 겹문이 장엄하도다
中藏萬家室(중장만가실) : 그 가운데 만호의 집이 들어앉아
列肆若雲屯(렬사약운둔) : 열지은 가게들이 구름 뭉친 듯하다
日夕賓旅集(일석빈려집) : 밤낮으로 손님들 모여들고
車馬何喧喧(차마하훤훤) : 말과 수레 어찌나 시끄러운지
自古稱難治(자고칭난치) : 예부터 다스리기 어렵다 했으니
幹者方剸煩(간자방전번) : 맡은 자는 지금 한창 번거로우라
近世苦數易(근세고수역) : 근세에는 너무도 자주 바뀌어
民吏瘦迎奔(민리수영분) : 관리와 백성들 영접에 다 여위었다
廨宇草如積(해우초여적) : 관아 지붕은 풀더미 쌓인 것 같아
盤皿半無存(반명반무존) : 그릇에는 남은 것이 절반도 없고
客至多厭色(객지다염색) : 객이 오면 싫증내는 기색이 많도다
蔬糲充饔飱(소려충옹손) : 거친 밥 푸성귀로 끼니 채우고
況我佐幕者(황아좌막자) : 하물며 나 같은 막좌의 신세야
其苦不可言(기고불가언) : 그 고초야 이루 다 말할 수 없도다
酸酒對腐臭(산주대부취) : 신 술에 썪은 냄새 대하게 되니
對之心煩冤(대지심번원) : 대할 적마다 울화 치미는구나
使旆幾時發(사패기시발) : 사신 행차 어느 때 출발할 건가
吾亦催吾軒(오역최오헌) : 나도 역시 내 가마를 재촉하련다
悵望故鄕路(창망고향로) : 서글피 고향 길 바라를 보니
日落秋雲屯(일락추운둔) : 해는 지는데 가을 구름 뭉치어 있다

 

 

우저만서(寓邸漫書)-허균(許筠)
집에서 마음대로 적다-허균(許筠)

春色何如畫省看(춘색하여화성간) : 상서성서 보노니, 봄빛이 어떠한가
輕陰漠漠杏花寒(경음막막행화한) : 엷은 그늘 아득아득 살구꽃 차갑구나.
病遭杯酒先心怯(병조배주선심겁) : 병 몸도 술맛 나, 마음 먼저 두렵지만
老讀詩書亦興闌(로독시서역흥란) : 늘그막에 글 읽으니 흥 또한 느긋하도다
冠在欲從神武掛(관재욕종신무괘) : 머리에 쓴 관 벗어, 신무문 위에 걸어두니
身强寧懾惠文彈(신강녕섭혜문탄) : 심신이 강건하니 어찌 혜문관에 위축되리오
浮沈且玩人間世(부침차완인간세) : 부침을 거듭하며 인간 세상 구경하며
昭代投簪却是難(소대투잠각시난) : 밝은 시대에 벼슬 버리는 일도 어렵도다
淸明節物已闌珊(청명절물이란산) : 청명절이라, 이미 시절의 경물들 무르익고
落盡園紅滿地斑(락진원홍만지반) : 동산 꽃 다 떨어져 땅에 가득 얼룩진다.
天外宿雲兜率院(천외숙운두솔원) : 하늘 밖의 뭉게구름 도솔원 그곳이라
夢中芳草洛迦山(몽중방초락가산) : 꿈속의 꽃다운 풀 <낙가산>에 있도다.
輕寒悄悄春侵幙(경한초초춘침막) : 가벼운 추위 쌀랑해도 봄은 장막을 찾고
小雨愔愔晝掩關(소우음음주엄관) : 작은 비 어둑하여 낮에도 문을 가렸도다.
自捲斑簾聊北望(자권반렴료북망) : 얼룩 대나무 발 올리고 북쪽을 바라보니
遠岺煙際點螺鬟(원령연제점라환) : 안개 서린 먼 봉우리 끝, 나환을 그린 듯

 

 

출방일음중해제생작(出榜日飮中解諸生作)-허균(許筠)
출방하는 날 술마시며 제생의 작품을 해석하다-허균(許筠)

仙籍初開淡墨渾(선적초개담묵혼) : 선적을 펼치자 옅은 먹빛 뒤섞여
風雷三級躍龍門(풍뢰삼급약룡문) : 바람소리 세 등급에 용문을 올랐다.
肯容懷璞重傷刖(긍용회박중상월) : 옥을 가져 발을 베인다면 될 일인지
却恐遺珠更抱冤(각공유주경포원) : 구슬 빠뜨려 다시 원한 품게 되리
蟾窟路通餘一桂(섬굴로통여일계) : 월궁에 길이 뚫려 하나 남은 계수나무
鹿鳴歌奏有朋樽(록명가주유붕준) : <녹명시>를 노래하니 벗과 술이 있구나.
臨觴自爲諸生祝(림상자위제생축) : 술잔을 앞에 두고 제생 위해 축하하니
素念元來不飽溫(소념원래불포온) : 의식 부족하면 생각이 처음과 같을까

 

 

북리춘유요(北里春遊謠)-허균(許筠)
북리 봄놀이 노래-허균(許筠)

紅泥雜花盈香陌(홍이잡화영향맥) : 홍니의 섞인 꽃이 향기로운 거리에 가득하니
惜花靑驄行不得(석화청총행불득) : 청총마꽃을 아껴 머뭇머뭇 가지 못한다.
綉窓雕戶閉宵寒(수창조호폐소한) : 비단 창, 화려한 문 잠긴 밤 기운 싸늘한데
愁眉淚臉藏春色(수미누검장춘색) : 근심스린 눈썹 눈젖은 뺨에 봄빛이 숨어 있다.
秋千索掛紅欄西(추천색괘홍난서) : 그네줄은 붉은 난간 서쪽에 걸렸는데
月照花影參差低(월조화영참차저) : 달 비추자 꽃그림자 들쭉날쭉 나직하다.
寶枕瑤衾選殘夢(보침요금선잔몽) : 보배로운 베개, 비단 이불 속에 낡은 꿈 헤어보며
西樓曉起流鶯啼(서루효기유앵제) : 서루에 새벽녘 기상에 꾀꼬리 울음 운다.
啼珠鳳蠟怨天曙(제주봉랍원천서) : 구슬 눈물 밀촛불에 날새는 것 원망하고
井下銀甁轆轤語(정하은병록로어) : 우물 아래 은병에는 녹로가 속삭이는구나.
彩箔玲瓏蝦捲鬚(채박령롱하권수) : 채색한 발이 영롱한데 발 걷히자
嬌雲一散無尋處(교운일산무심처) : 예쁜 구름 흩어져서 찾을 곳이 없구나.
衫羅葉葉秋煙碧(삼라엽엽추연벽) : 비단 적삼 주름마다 가을 연기 푸르니
香肌玉妬梅魂白(향기옥투매혼백) : 향기로운 살결은 매화 혼이 시샘한다.
十幅單綃染淚痕(십폭단초염누흔) : 열 폭의 단색 비단에 눈물 자국이 얼룩지니
煙中恨語招香魄(연중한어초향백) : 연기 속의 한스런 말이 향백을 부르는구나.
姑泉橋畔楊花飛(고천교반양화비) : 고천교 다릿가에 버들꽃이 휘날리니
金鞭錦勒探春歸(금편금륵탐춘귀) : 금빛 채찍 비단 굴레로 봄을 찾아 돌아간다.
雪衣傳語玉郞至(설의전어옥랑지) : 설의가 말 전하자 옥랑이 당도하니
纖纖素手開珠扉(섬섬소수개주비) : 가느다란 하얀 손이 구슬 문을 열어 준다.

 

 

문집완(文集完)-허균(許筠)
문집이 완성되어-허균(許筠)

四十三年攻翰墨(사십삼년공한묵) : 사십 삼 년을 문필에 전력하여
千金弊帚枉勞心(천금폐추왕노심) : 부질없은 노고한 마음 천금의 떨어진 빗자루
詩文十卷方書了(시문십권방서료) : 시문 열 권을 이제야 다 썼으니
從此惺翁不復吟(종차성옹불복음) : 나, 성옹은 이제부터 다시 읊지 않으리라

 

 

억권조제군(憶權趙諸君)-허균(許筠)
권(權)ㆍ조(趙) 제군을 기억하며-허균(許筠)

天涯悲作客(천애비작객) : 먼 하늘 가 서글픈 나그네 신세
澤畔恨離群(택반한이군) : 물가에 이별하는 무리들이 한스러워라.
花事今將盡(화사금장진) : 꽃의 일도 이제부터 다 끝나 가는데
鶯聲不欲聞(앵성불욕문) : 꾀꼬리 울음 듣고 싶지도 않아라.
親朋杳千里(친붕묘천리) : 친한 벗 천리 멀리 아득하니
日夕詠停雲(일석영정운) : 날 저물면 친구생각 노래 부르리라.

 

 

상춘(傷春)-허균(許筠)
봄날에 마음 상하여-허균(許筠)

抱疴常在暮春時(포아상재모춘시) : 저무는 봄날에 언제나 병을 알아
遊興蒼茫未易期(유흥창망미이기) : 다니는 흥취 아득하여 기약이 쉽지 않다.
欲貰濁酒貰客恨(욕세탁주세객한) : 막걸리 외상 받아 객의 한을 풀어보려니
杏花村畔乏靑旗(행화촌반핍청기) : 살구꽃 핀 마을에 푸른 깃발 끊겼어라.

 

 

홍도락진(紅桃落盡)-허균(許筠)
붉은 복숭아꽃잎 다 지네-허균(許筠)

南枝雨僽北枝摧(남지우추북지최) : 남쪽 가지 비에 혹독한 비에 북녘 가지 꺾여
寂寞香魂招不廻(적막향혼초불회) : 적막한 향기로운 넋은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다.
怊悵明年此翁去(초창명년차옹거) : 서글퍼라, 명년에 이 늙은이 떠나고 나면
不知花爲阿誰開(불지화위아수개) : 이 꽃은 뉘를 위해 피어 줄는지 모르겠노라.

 

 

야좌(夜坐)-허균(許筠)
밤에 앉아서-허균(許筠)

經卷橫烏几(경권횡오궤) : 경서는 검은 궤에 비껴 있고
香煙裊鴨鑪(향연뇨압로) : 향 연기는 압로에서 하늘거린다.
不知軒冕客(불지헌면객) : 모를겠네, 벼슬아치들
能似此翁無(능사차옹무) : 능히 이 늙은이와 같을 수 있을까.

 

 

억태허정(憶太虛亭)-허균(許筠)
태허정을 추억하며-허균(許筠)

遙憐鑑湖墅(요련감호서) : 아련히 감호의 들 정자 그리워라
煙景膩殘春(연경니잔춘) : 봄날의 경경에 남은 봄이 윤택하다
江燕語留客(강연어유객) : 강가의 제비 소리에 길손 머물고
林花飛趁人(임화비진인) : 숲 속 꽃잎은 날아다니며 사람을 따른다.
思將濯纓水(사장탁영수) : 장차 갓끈 씻은 물을 가져와
洗盡化衣塵(세진화의진) : 옷 더럽힌 먼지를 다 빨았으면 좋겠다.
羽翮在羅網(우핵재라망) : 날개깃이 그물 속에 갇혔으니
誰爲自身在(수위자신재) : 그 누가 스스로 자유로운 몸이 될거나.

 

 

후강(後岡)-허균(許筠)
뒷산에서-허균(許筠)

溪水淙潺亂石間(계수종잔난석간) : 어지러운 돌 사이로 시냇물 좔좔 쏟아지고
隔花幽鳥語關關(격화유조어관관) : 꽃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윽한 새소리 요란하다.
長風忽捲前林雨(장풍홀권전임우) : 긴 바람이 갑자기 눈앞의 숲속 비를 걷어가니
一抹斜陽映半山(일말사양영반산) : 한 가닥 비낀 햇살이 산 허리를 비추는구나.

 

 

억석주(憶石洲)-허균(許筠)
석주를 기억하며-허균(許筠)

楚塞身何遠(초새신하원) : 초나라 요새라 몸은 얼마나 먼지
秦關望漸賖(진관망점사) : 진관을 바라보니 점점 더 아득하다.
惟憐湘水夢(유련상수몽) : 다만 상수의 꿈이 사랑스러워
偏在故人家(편재고인가) : 유달리 옛 친구의 집에만 있도다.
恨入王孫草(한입왕손초) : 한스러움 왕손의 풀에 깃든다면
愁添蜀帝花(수첨촉제화) : 시름은 귀촉화에 더하는구나.
紉蘭行澤畔(인난행택반) : 난초 꿰어 패물 삼아 못 가를 거닐고
倚玉隔天涯(의옥격천애) : 의옥은 머나먼 하늘 끝에 있도다.
海黯停雲合(해암정운합) : 바다는 어둑한데 구름이 몰려들고
山橫落景斜(산횡낙경사) : 산은 비끼어 있고 저녁 해는 기우는구나.
春來有佳句(춘래유가구) : 봄에 지은 아름다운 글귀 있거든
莫惜問懷沙(막석문회사) : 아끼지 말고 굴원의 글에 물어보아라.

 

 

사회(寫懷)-허균(許筠)
회포를 적다-허균(許筠)

凄涼楚臣夢(처량초신몽) : 처량하다, 초나라 신하의 꿈
牢落野人期(뇌낙야인기) : 무료하다, 야인의 기약이어라.
徇祿憂終在(순녹우종재) : 관리의 녹을 따르니 근심은 있고
歸田計已違(귀전계이위) : 시골로 돌아갈 계획 이미 틀렸어라.
靑春對芳草(청춘대방초) : 한창 봄이라 고운 풀 마주 대하고
白日見遊絲(백일견유사) : 맑은 날이라 아지랑이를 보고 있어라.
卽此多幽興(즉차다유흥) : 이만해도 그윽한 흥취 그득하니
還如未病時(환여미병시) : 도리어 병들지 않았을 때와 같아라.

 

 

고우(苦雨)-허균(許筠)
궂은비-허균(許筠)

北客愁無奈(북객수무내) : 북쪽 나그네 수심을 어찌하나
連宵雨驟過(연소우취과) : 밤마다 비가 급하게도 내리는구나.
林昏銜暮瘴(임혼함모장) : 어둑한 숲 저문 안개 머금어 있고
溝溢漲晨波(구일창신파) : 도랑물 불어나 새벽 물결 첨치는구나.
委地紅將盡(위지홍장진) : 땅에 진 붉은 꽃 다 졌는데
侵堦碧漸多(침계벽점다) : 섬에 올라보니 푸른 이끼 불어난다.
空吟海嶠作(공음해교작) : 헛되니 내가 지은 해교작 시만 읊나니
誰與報羊何(수여보양하) : 누가 함께 양선지와 하장유에게 알려주리오

 

 

관장벽도위우소절(官墻碧桃爲雨所折)-허균(許筠)
관가 담장의 벽도화가 비에 꺾이어-허균(許筠)

瓊樹含嬌笑(경수함교소) : 고운 나무 교태로운 웃음 띠니
疑從閬苑移(의종랑원이) : 아마도 낭원에서 옮겨왔나 보다.
飄零因雨壓(표영인우압) : 휘날려 떨어짐은 비에 눌린 탓이고
摧折豈根萎(최절기근위) : 꺾여짐이 어찌 뿌리가 시들어 서랴.
屈子懷沙日(굴자회사일) : 굴원이 회사부 짓고 죽던 날
昭君出塞時(소군출새시) : 왕소군이 변새로 떠나는 때 같아라.
蜂愁粘落蕊(봉수점낙예) : 벌은 시름겨워 지는 꽃잎에 붙고
鶯怨啅殘枝(앵원탁잔지) : 꾀꼬리는 원망하여 낡은 가지를 쪼다.
物性元榮悴(물성원영췌) : 사물의 본성은 원래로 영화 몰락 있고
人生亦盛衰(인생역성쇠) : 인생 역시 성하면 쇠하기 마련이로다.
明年能再發(명년능재발) : 명년에는 능히 다시 피게 될 거나
天意諒難知(천의량난지) : 하늘 뜻은 진실로 알기가 어려워라.

 

 

견홍도(見紅桃)-허균(許筠)
홍도를 보고서-허균(許筠)

誰種緗桃殿晩春(수종상도전만춘) : 궁궐 늦봄에 복숭아는 누가 심었는지
絳紗幽袖映紅巾(강사유수영홍건) : 붉은 비단 소맷자락이 붉은 수건에 비친다.
牆頭日出嫣然笑(장두일출언연소) : 담장 머리 해 솟자 씽긋이 웃는구나.
何啻他鄕見故人(하시타향견고인) : 어찌 타향에서 옛 친구 본 것만 못하랴.

 

 

휘객독좌(撝客獨坐)-허균(許筠)
손님을 물리치고 홀로 앉아-허균(許筠)

經卷鑪香寂不譁(경권로향적불화) : 경서나 향로의 향이 말없이 고요하니
蕭然如在羽人家(소연여재우인가) : 신선의 집에 와 있는 듯이 소연하여라.
當堦暖日烘梅蕊(당계난일홍매예) : 섬돌에 닿은 따뜻한 햇살 매화 꽃 술 덥히고
撲戶輕颺墮柳花(박호경양타류화) : 창문을 때리는 가벼운 바람 버들꽃을 떨어뜨린다.
鄴瓦久乾抛兎翰(업와구건포토한) : 업와라는 벼루는 이미 말라 붓을 벌써 던지어
焦阬方熱試龍茶(초갱방열시용다) : 초강이란 차가 이제 막 더우니 용차나 맛보자꾸나.
休言地僻無來往(휴언지벽무래왕) : 궁벽한 땅이라서 왕래 전혀 없다 말하지 마소
自由山蜂趁兩衙(자유산봉진양아) : 산벌처럼 자유로워 하루 두 번 관아에 참가한다.

 

 

여사(旅舍)-허균(許筠)
여사에서-허균(許筠)

異地春將晩(이지춘장만) : 객지에 봄이 저물어가니
年光奈老何(연광내노하) : 나이는 늙어감을 어찌하나.
林花經雨少(임화경우소) : 숲 속 꽃들은 비 지나니 적어지고
鳥語得晴多(조어득청다) : 새 우는 소리는 날 개니 많아지는구나.
身世悠悠客(신세유유객) : 신세는 멀고 먼 나그네 신세
乾坤浩浩歌(건곤호호가) : 천지에 호방한 노래로구나.
忘生憑底物(망생빙저물) : 무엇을 의지하여 생을 잊었나
案上有楞伽(안상유릉가) : 상 위에는 능가경이 놓여 있었구나.

 

 

교거부사(僑居賦事)-허균(許筠)
교거(僑居)하며 일을 적다-허균(許筠)

放逐知前定(방축지전정) : 귀양살이 전생에 정해졌고
功名已後時(공명이후시) : 공명은 이미 때가 늦었도다.
惠州方飽飯(혜주방포반) : 혜주에서 막 배불리 먹고
儋守或觀棋(담수혹관기) : 담수나 더러는 바둑 구경한다.
海味餘霜蟹(해미여상해) : 바다 맛은 서리철 게가 남았고
園蔬只露葵(원소지로규) : 채소밭 나물은 이슬에 젖은 아욱뿐이어라.
吾生本爲口(오생본위구) : 우리의 삶이란 본래 먹기 위한 것이니
非是利妻兒(비시이처아) : 온갖 시비는 처자식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어라.

 

 

이소도(移小桃)-허균(許筠)
작은 복숭아나무를 옮기며-허균(許筠)

淸晨移得小桃來(청신이득소도래) : 맑은 새벽, 작은 복사나무를 옮겨와
細劚黃泥用意栽(세촉황이용의재) : 황토 땅 잘 파내어 마음 먹고 심었어라.
不識明年春二月(불식명년춘이월) : 모르겠어라, 명년 봄 이월이면
此花還向阿誰開(차화환향아수개) : 이 꽃은 도리어 누구를 향해 피어나리오.

 

 

이종앵도(移種櫻桃)-허균(許筠)
앵도를 옮겨 심으며-허균(許筠)

淺植幽厓奈爾何(천식유애내이하) : 응달 진 언덕에 얕게 묻힌 너를 어찌하나
孤根無路近陽和(고근무로근양화) : 외로운 뿌리에는 따뜻한 빛 가까이할 길 없구나.
移栽隙地勤封護(이재극지근봉호) : 빈 땅에 옮겨 심고 부지런히 돋우워주나니
爲待朱明結子多(위대주명결자다) : 여름철을 기다려 열매 많이 맺기 위해서니라

 

 

옥매화하용앵도화하운(玉梅花下用櫻桃花下韻)-허균(許筠)
옥매화 아래서 “앵도화하”를 용운하다-허균(許筠)

花事春猶淺(화사춘유천) : 꽃의 일은 봄이 오히려 얇아
南翁興已衰(남옹흥이쇠) : 남쪽 늙은이 흥이 이미 시들었다.
正憐微雨後(정련미우후) : 가랑비 지난 뒤라 정말 좋지 않으나
無那夕陽時(무나석양시) : 때마침 석양이라 어쩔 수가 없도다
浥露香先動(읍로향선동) : 이슬에 젖으니 향이 먼저 감돌다가
迎風態自遲(영풍태자지) : 바람 받으니 태도 절로 느려진다.
空嗟萬里客(공차만리객) : 부질없이 서글프다, 만 리 나그네여
垂老鬢如絲(수노빈여사) : 늙어가니 살쩍머리는 흰 실과 같구나.

 

 

용답춘운(用答春韻)-허균(許筠)
답춘을 용운하여-허균(許筠)

瘴雲霾日晦還明(장운매일회환명) : 습한 구름 날을 가려 어둡다 밝아지고
莫說春光比兩京(막설춘광비량경) : 봄빛을 두 서울에다 견주어 말을 마시라.
能使逐臣腸數盡(능사축신장수진) : 쫓겨난 신하로 애간장 자주 닳게 하니
隔林終日怪禽聲(격림종일괴금성) : 숲 건넌 쪽에 종일토록 괴이한 새소리 들린다

 

 

용대춘증운(用代春贈韻)-허균(許筠)
대춘증의 운을 사용하여-허균(許筠)

雪後山光浸水光(설후산광침수광) : 눈 온 뒤에 산 빛은 물빛에 젖어들고
酴醾將白阿槐黃(도미장백아괴황) : 여미는 희끗희끗 아괴는 노랗구나.
請君莫恨江南遠(청군막한강남원) : 바라기는, 그대 강남 멀다고 한탄 마오
風景元來似故鄕(풍경원래사고향) : 풍경이 원래 고향과 비슷합니다 그려.

 

 

주졸래위(主倅來慰)-허균(許筠)
주수가 와서 위로하다-허균(許筠)

鬖髿雲䯻卸金鈿(삼髿운고사금전) : 구름 같은 머리굽 금비녀 비껴
數曲蠻歌十二絃(수곡만가십이현) : 두어 가락 오랑캐 노래에 열두 줄 가야금
太守待人呈燭跋(태수대인정촉발) : 원님은 사람 대접에 초의 끝이 드러나는데
放臣娛客爇香煙(방신오객설향연) : 귀양살이 손님 환영하는 향연을 피우노라
閑情肯折章臺柳(한정긍절장대유) : 한가한 마음은 기꺼이 장대버들 꺾는데
促節疑傳相府蓮(촉절의전상부연) : 빠른 절(節)은 상부련을 전했는가 의아하다
强盡醁醽消積恨(강진록령소적한) : 거른 술 애써 말려 쌓인 한을 녹이는데
莫將衰白問群仙(막장쇠백문군선) : 부디 시든 백발 들어 군선에게 묻지말아라

 

 

초도함산(初到咸山)-허균(許筠)
함산에 처음 도착하여-허균(許筠)

穿巷緣溪路忽窮(천항연계로홀궁) : 개울 따라 길을 트니 문득 막달은 길
數椽茆店館墻東(수연묘점관장동) : 두어 칸 주막집 담 동쪽에 몸 던진다
縱無棨戟施門外(종무계극시문외) : 문 밖에는 지키는 시설은 없어도
尙有圖書在篋中(상유도서재협중) : 상자 속의 도서는 오히려 들어있도다
簌簌寒階飄竹雪(속속한계표죽설) : 찬 뜰에는 싹싹 대나무에 눈이 날리고
團團幽戶颯桐風(단단유호삽동풍) : 깊숙한 동그란 지게문에 오동 바람분다
寬恩似海甘留滯(관은사해감유체) : 바다 같은 너그러운 은혜에 기꺼이 머무니
休恨周南太史公(휴한주남태사공) : 주남 땅의 태사공일량 결코 원망하지 마시라

 

 

망함산(望咸山)-허균(許筠)
함산을 바라보며-허균(許筠)

春泥泱沆沒平原(춘니앙항몰평원) : 봄의 흙탕물 가득 고여 한 벌을 묻었고
行過龍城縣郭門(행과용성현곽문) : 걸음은 용성 고을 성문을 지나가노라
指點兩山烽燧下(지점량산봉수하) : 가리키는 양산의 봉수대 바라보니
蒼蒼官樹暝煙昏(창창관수명연혼) : 창창한 저 나라 산 숲에 저녁 연기 어둑하다

 

 

제승권용서담운(題僧卷用西潭韻)-허균(許筠)
승권에 제하여 서담의 운을 쓰다-허균(許筠)

松花茗葉進僧飡(송화명엽진승손) : 송화는 차잎, 절간 음식 진상하니
愧把塵容對碧山(괴파진용대벽산) : 청산을 상대하는 세속 어굴 부끄럽다
林月未圓蘿逕暗(림월미원라경암) : 숲 속의 달 둥글지 않아 등라길 어둡고
峀雲初霽石樓寒(수운초제석루한) : 산 구름 구름 갓 개어 돌누각이 싸늘하구나
宦遊牢落秋將老(환유뢰락추장로) : 벼슬살이 서글프고 가을에 늙어가니
禪話留連夜向闌(선화류련야향란) : 참선 이야기 날 붙들어 밤마저 늦어진다
却恨勞生長役役(각한로생장역역) : 도리어 한스럽다, 피곤한 내 삶 오래도 힘겨워
白頭猶事馬蹄間(백두유사마제간) : 검은 머리 희어져도 말 위를 떠나지 못한다

 

 

신광사(神光寺)-허균(許筠)
신광사-허균(許筠)

宮殿麗巖腰(궁전려암요) : 궁전처럼 화려한 산허리
祥雲捧綺寮(상운봉기료) : 상서로운 구름 깁창을 받든다
檀施自公主(단시자공주) : 시주는 공주로부터 시작되고
結構在前朝(결구재전조) : 절 건축은 고려 때 했었도다
地布黃金燦(지포황금찬) : 황금이 찬란하게 땅에 깔리고
臺騫碧漢遙(대건벽한요) : 대가 높이 솟고, 은하수는 멀리 있다
瑞毫三界絢(서호삼계현) : 서광의 끝은 삼계에 현란하고
天樂六時調(천악륙시조) : 하늘 소리 육시에 조화롭구나
欹側週廊巧(의측주랑교) : 비스듬히 둘러선 회랑, 정교하고
森羅像設喬(삼라상설교) : 삼엄하게 모셔진 금상은 크다랗다
鴿驚風鐸翥(합경풍탁저) : 풍경 소리에 놀라 합새는 날고
龍抱火珠跳(룡포화주도) : 용은 화주를 껴안은 채 뛰논다
花雨霑瑤蓋(화우점요개) : 꽃비는 요대의 지붕을 적시고
燈輪切絳霄(등륜절강소) : 등꽃이 기둥은 불빛 하늘과 조화롭다
壯觀眞駭矚(장관진해촉) : 장관이라 참으로 눈이 휘둥글어지고
幽賞暫停軺(유상잠정초) : 수레 잠깐 멈추고 그윽히 구경하노라
蒲供陳淸淨(포공진청정) : 포단의 이바지는 청정하게 베풀어지고
禪談慰寂寥(선담위적요) : 참선 이야기는 적막을 위로해 주노라
經函明貝葉(경함명패엽) : 모든 불서는 패엽 위에 선명하거
鍾梵殷山椒(종범은산초) : 범종 소리는 산꼭대기에 은은하구나
苦海誠難涉(고해성난섭) : 고해를 건너가긴 정말 어렵고
慈航未易招(자항미역초) : 자비로운 인생 항새 부르기 쉽지 않다
還從舍利子(환종사리자) : 뒤미처 사리자를 따르리니
空界倘相邀(공계당상요) : 공계에서 혹시 서로 맞아줄는가

 

 

소연증주목(小讌贈主牧)-허균(許筠)
작은 연회에 주목에게 드리다-허균(許筠)

晩敞芙蓉堂(만창부용당) : 저녁이 되어 부용당을 활짝 여니
淸凝燕寢香(청응연침향) : 맑은 향기 연회 침상에 엉겨붙는구나
一尊開北海(일존개북해) : 한 동이 술 열어라, 북해 태수의 술자리
千騎下東方(천기하동방) : 천기마가 동방으로 내려가누나
山雨鏖殘暑(산우오잔서) : 산비는 남은 더위 물리치고
林風進夕涼(림풍진석량) : 숲 바람은 저녁 서늘한 바람 보내는구나
平生無劇飮(평생무극음) : 평생에 마음 놓고 마신 적 없으니
聊盡使君觴(료진사군상) : 애오라지 사군의 술은 기필코 다 마셔보리라

 

 

해주(海州)-허균(許筠)
해주-허균(許筠)

海西大都會(해서대도회) : 해주는 서해의 큰 도시
首陽爲雄藩(수양위웅번) : 수양대군이 큰 울타리로 여였다
繚隍帶複塹(료황대복참) : 둘러 있는 해자은 참호 두르고
擊柝嚴重門(격탁엄중문) : 치는 탁은 겹문이 장엄하도다
中藏萬家室(중장만가실) : 그 가운데 만호의 집이 들어앉아
列肆若雲屯(렬사약운둔) : 열지은 가게들이 구름 뭉친 듯하다
日夕賓旅集(일석빈려집) : 밤낮으로 손님들 모여들고
車馬何喧喧(차마하훤훤) : 말과 수레 어찌나 시끄러운지
自古稱難治(자고칭난치) : 예부터 다스리기 어렵다 했으니
幹者方剸煩(간자방전번) : 맡은 자는 지금 한창 번거로우라
近世苦數易(근세고수역) : 근세에는 너무도 자주 바뀌어
民吏瘦迎奔(민리수영분) : 관리와 백성들 영접에 다 여위었다
廨宇草如積(해우초여적) : 관아 지붕은 풀더미 쌓인 것 같아
盤皿半無存(반명반무존) : 그릇에는 남은 것이 절반도 없고
客至多厭色(객지다염색) : 객이 오면 싫증내는 기색이 많도다
蔬糲充饔飱(소려충옹손) : 거친 밥 푸성귀로 끼니 채우고
況我佐幕者(황아좌막자) : 하물며 나 같은 막좌의 신세야
其苦不可言(기고불가언) : 그 고초야 이루 다 말할 수 없도다
酸酒對腐臭(산주대부취) : 신 술에 썪은 냄새 대하게 되니
對之心煩冤(대지심번원) : 대할 적마다 울화 치미는구나
使旆幾時發(사패기시발) : 사신 행차 어느 때 출발할 건가
吾亦催吾軒(오역최오헌) : 나도 역시 내 가마를 재촉하련다
悵望故鄕路(창망고향로) : 서글피 고향 길 바라를 보니
日落秋雲屯(일락추운둔) : 해는 지는데 가을 구름 뭉치어 있다

 

 

우저만서(寓邸漫書)-허균(許筠)
집에서 마음대로 적다-허균(許筠)

春色何如畫省看(춘색하여화성간) : 상서성서 보노니, 봄빛이 어떠한가
輕陰漠漠杏花寒(경음막막행화한) : 엷은 그늘 아득아득 살구꽃 차갑구나.
病遭杯酒先心怯(병조배주선심겁) : 병 몸도 술맛 나, 마음 먼저 두렵지만
老讀詩書亦興闌(로독시서역흥란) : 늘그막에 글 읽으니 흥 또한 느긋하도다
冠在欲從神武掛(관재욕종신무괘) : 머리에 쓴 관 벗어, 신무문 위에 걸어두니
身强寧懾惠文彈(신강녕섭혜문탄) : 심신이 강건하니 어찌 혜문관에 위축되리오
浮沈且玩人間世(부침차완인간세) : 부침을 거듭하며 인간 세상 구경하며
昭代投簪却是難(소대투잠각시난) : 밝은 시대에 벼슬 버리는 일도 어렵도다
淸明節物已闌珊(청명절물이란산) : 청명절이라, 이미 시절의 경물들 무르익고
落盡園紅滿地斑(락진원홍만지반) : 동산 꽃 다 떨어져 땅에 가득 얼룩진다.
天外宿雲兜率院(천외숙운두솔원) : 하늘 밖의 뭉게구름 도솔원 그곳이라
夢中芳草洛迦山(몽중방초락가산) : 꿈속의 꽃다운 풀 <낙가산>에 있도다.
輕寒悄悄春侵幙(경한초초춘침막) : 가벼운 추위 쌀랑해도 봄은 장막을 찾고
小雨愔愔晝掩關(소우음음주엄관) : 작은 비 어둑하여 낮에도 문을 가렸도다.
自捲斑簾聊北望(자권반렴료북망) : 얼룩 대나무 발 올리고 북쪽을 바라보니
遠岺煙際點螺鬟(원령연제점라환) : 안개 서린 먼 봉우리 끝, 나환을 그린 듯

 

 

출방일음중해제생작(出榜日飮中解諸生作)-허균(許筠)
출방하는 날 술마시며 제생의 작품을 해석하다-허균(許筠)

仙籍初開淡墨渾(선적초개담묵혼) : 선적을 펼치자 옅은 먹빛 뒤섞여
風雷三級躍龍門(풍뢰삼급약룡문) : 바람소리 세 등급에 용문을 올랐다.
肯容懷璞重傷刖(긍용회박중상월) : 옥을 가져 발을 베인다면 될 일인지
却恐遺珠更抱冤(각공유주경포원) : 구슬 빠뜨려 다시 원한 품게 되리
蟾窟路通餘一桂(섬굴로통여일계) : 월궁에 길이 뚫려 하나 남은 계수나무
鹿鳴歌奏有朋樽(록명가주유붕준) : <녹명시>를 노래하니 벗과 술이 있구나.
臨觴自爲諸生祝(림상자위제생축) : 술잔을 앞에 두고 제생 위해 축하하니
素念元來不飽溫(소념원래불포온) : 의식 부족하면 생각이 처음과 같을까

 

 

효좌시원(曉坐試院)-허균(許筠)
시원에 아침에 앉아-허균(許筠)

晨燎煇煌列棘分(신료휘황렬극분) : 새벽 횃불 찬란히 가시 울에 벌려있고
白袍庭下立如雲(백포정하립여운) : 뜰아래 흰 도포는 구름같이 늘어서 있다
龍淵欲霽豐城氣(룡연욕제풍성기) : 용연은 걷고 칼 기운 뻗혔는데
駿骨誰空驥北群(준골수공기북군) : 어느 준마가 기북의 무리를 석권할까
爭詑彎弧來破的(쟁이만호래파적) : 다투어 활을 당겨 과녁 뚫는 자랑들
幾人劘壘可嘗軍(기인마루가상군) : 몇 사람이 군사 내어 벽루를 뭉갤까
春官飮墨腸曾飽(춘관음묵장증포) : 예조에서 먹물 마셔 이미 배불러서
多愧今朝典校文(다괴금조전교문) : 오늘 아침 글 고사 맡은 것이 부끄럽구나

 

 

광주서사(光州書事)-허균(許筠)
광주에서 쓰다-허균(許筠)

鳳笙亭畔獨徘徊(봉생정반독배회) : 봉생정 정자 가에 외로이 서성이니
宋玉無心賦楚臺(송옥무심부초대) : 송옥에게는 고당부를 지을 생각 없었구나.
山鳥似迎佳客語(산조사영가객어) : 산새는 반가운 손님 맞아 이야기 하고
野梅如待故人來(야매여대고인래) : 들매화는 옛 친구 찾아옴을 기다리는 듯
愁侵衰鬢千莖雪(수침쇠빈천경설) : 시름은 귀밑에 천만 갈래 흰머리 찾아들고
恨結柔腸一寸灰(한결유장일촌회) : 부드러운 마음에 한 치 한이 맺히는구나.
公館漏闌廊月黑(공관루란랑월흑) : 공관에 밤이 늦어 달빛이 어둑하여
曲欄深閤影枚枚(곡란심합영매매) : 굽은 난간 깊은 누각에 그림자 아른거린다.

 

 

장향고장성(將向古長城)-허균(許筠)
고장성을 향하며-허균(許筠)

纔越蘆關境便佳(재월로관경편가) : 노령을 갓 넘으니 경개 문득 아름답고
丰茸蘅杜被溪崖(봉용형두피계애) : 우거진 두형 풀은 시냇가 둑을 뒤덮는다.
辛夷糝蕊催春事(신이삼예최춘사) : 신이는 꽃잎 날려 봄 일 재촉하는데
杜宇啼冤惱客懷(두우제원뇌객회) : 접동새는 한을 울어 나그네 가슴 설렌다.
身外功名損與奪(신외공명손여탈) : 몸 밖의 공명이야 주건 뺏건 무슨 상관
世間榮悴任安排(세간영췌임안배) : 인간세상 영고성쇠 운명의 안배에 맡긴다
林泉有約吾將隱(림천유약오장은) : 산수의 굳은 언약 내 장차 숨어들어
肯待年侵始乞骸(긍대년침시걸해) : 늙음을 기다려 은퇴하기를 청하련다.

 

 

양진당(養眞堂)-허균(許筠)
양진당-허균(許筠)

春陰漠漠映璇題(춘음막막영선제) : 봄 그늘 아득하여 추녀 끝을 비추고
欹枕東廂已午鷄(의침동상이오계) : 동상의 베개머리에 대낮의 닭이 운다
風裊篆煙縈檻細(풍뇨전연영함세) : 바람에 날린 화로 연기 난간을 돌아
雨含山翠滴簾低(우함산취적렴저) : 비 머금은 산안개 나직이 발에 내린다.
欄花解事迎人笑(란화해사영인소) : 들꽃은 일 아는 듯, 사람 맞아 웃고
谷鳥多情伴客啼(곡조다정반객제) : 골짝 새는 다정하여 나그네와 벗하여 운다.
非有別懷魂更斷(비유별회혼경단) : 이별이 싫다 하여 넋이 다시 끊어지고
故園今在渭橋西(고원금재위교서) : 위교의 서쪽에 있는 옛 동산이 그립구나.

 

 

전주(全州)-허균(許筠)
전주-허균(許筠)

沛鄕湯沐國陪都(패향탕목국배도) : 임금님 고향의 탕목, 나라의 배도이라
佳氣爲龍壯帝圖(가기위룡장제도) : 아름다운 용의 기운 제왕의 업이 웅장하다.
鷄犬至今知邑里(계견지금지읍리) : 개와 닭도 지금까지 고을을 알아보고
風雲長爲護枌楡(풍운장위호분유) : 바람 구름도 영원히 분유의 땅을 보호한다
時淸館宇曾巍煥(시청관우증외환) : 맑은 때에는 관정의 지붕은 우뚝 빛나고
亂後山川尙鬱紆(란후산천상울우) : 난리 뒤에도 산천은 아직도 울창하도다
南服雄藩稱第一(남복웅번칭제일) : 남방의 웅장한 울타리, 제일로 일컬어지고
詞臣安得借銅符(사신안득차동부) : 글 하는 신하가 어찌하면 동부를 빌릴 수있나

 

 

여산봉윤지중(礪山逢尹止中)-허균(許筠)
여산에 중지중을 만나다-허균(許筠)

珥筆承明直瑣闈(이필승명직쇄위) : 명령을 받들어 붓대 귀에 꽂고 번을 설 때
御香同襲侍臣衣(어향동습시신의) : 시종하는 신하 옷자락에 임금님의 향기 스며든다
天囷照夜千艘集(천균조야천소집) : 천균성이 비추는데, 천척의 배가 모여든다.
綉服輝春四牡騑(수복휘춘사모비) : 네 필 말이 달려 수놓은 옷이 봄에 빛나니
深喜聯衾俱逆旅(심희련금구역려) : 심히 기쁘기는 이불 갖춘 여관만큼 기쁘다.
不妨竝轡賞芳菲(불방병비상방비) : 고삐를 마주 잡은 풍경놀이도 좋은데
江南萬里花將發(강남만리화장발) : 수만리 강남땅에 꽃들은 장차 피어나리라
能憶金門對紫薇(능억금문대자미) : 자미원 마주 보던 금문이 생각나서
乘驄暫許外臺居(승총잠허외대거) : 총마 타고 잠깐 동안 외대에 머물러 본다.
回首靑雲跡漸疏(회수청운적점소) : 구름을 돌아보니 자취 점점 성글어지니
時輩雖嘲逐貧賦(시배수조축빈부) : 세상 사람들 양웅의 축빈주를 조롱해도
故人寧著絶交書(고인녕저절교서) : 친구들이야 어찌 혜강의 절교서를 지을까
春來花鳥添離恨(춘래화조첨리한) : 봄이 오니 꽃과 새는 이별의 한을 더하고
老至林泉憶弊廬(로지림천억폐려) : 늙어가니 살림의 누추한 초가집이 생각난다.却笑淸朝俱落拓(각소청조구락척) : 어이없구나, 밝은 조정 모두가 낙척을 당하다니
可容聯佩待公車(가용련패대공차) : 임금님의 부름을 기다리면, 짝 됨을 용납리라

 

 

조향천안(朝向川安)-허균(許筠)
아침에 천안을 향하여-허균(許筠)

黃泥滑滑馬行遲(황니활활마행지) : 황토 진흙 미끄러워 말 걸음 늦어
從旅相攀莫怨咨(종려상반막원자) : 지루한 나그네들 괴롭다 원망하는구나.
自有文章娛寂寞(자유문장오적막) : 쓸쓸함을 즐길 만한 문장 재주 지져
肯於名位恨差池(긍어명위한차지) : 명예와 지위 얻음에 차남을 한하는가.
人中懷璧元堪罪(인중회벽원감죄) : 사람 틈에 살자니 구슬 가진 것이 죄되고
暗裏投珠却見疑(암리투주각견의) : 어둠 속에 진주 던지니 도리어 의심 받는다.
此去不愁身更遠(차거불수신경원) : 여기 떠나면 몸 다시 멀어짐이 근심되는데
梅花消息已南枝(매화소식이남지) : 매화 소식 이미 남녘 가지쯤에 와 있으리라

 

 

자희(自戱)-허균(許筠)
혼자 놀며-허균(許筠)

承明夜直燭燃窓(승명야직촉연창) : 승명전의 야간당직, 촛불 돋우고
曾草絲綸筆似杠(증초사륜필사강) : 서까래 같은 붓이 조서를 초했도다
司馬漢廷誰曰兩(사마한정수왈량) : 한 나라에는 사마가 둘이라 누가 말하나
淮陰國士豈無雙(회음국사기무쌍) : 회음후 한신이 국사라 어찌 둘 둘이fi
年來謗焰空銷骨(년래방염공소골) : 해마다 오는 비방의 불꽃 뼛골을 녹이고
老去詩城豈受降(로거시성기수강) : 늙어가도 시성은 항복받기 어렵도다.
安得詞源傾峽水(안득사원경협수) : 어찌하면 사원이 골짝 물 기울여서
滔滔千里注潘江(도도천리주반강) : 우리나날 천 리가 넘실토록 반강에 쏟을까.

 

 

조발판교원(早發板橋院)-허균(許筠)
일찍 판교원을 떠나며-허균(許筠)

星倌催發趁晨鍾(성관최발진신종) : 새벽종 소리에 관원은 길 재촉하여
路出橋汀宿霧濃(로출교정숙무농) : 강다리를 벗어나니 짙은 안개 서려있다
春色暗回堤畔柳(춘색암회제반류) : 언덕 가의 능수버들에 봄빛이 돌고
日輪初湧馬前峯(일륜초용마전봉) : 말 앞의 봉우리에 해가 떠오른다.
平生翰墨才先退(평생한묵재선퇴) : 내 평생 글과 글씨 재주 먼저 뒤지고
淸世功名意轉慵(청세공명의전용) : 맑은 세상 공명에도 마음은 게을러진다.
早晩辦身方外去(조만판신방외거) : 조만간에 몸을 빼어 방외로 떠나려니
不妨人喚酒家傭(불방인환주가용) : 남이 나를 술꾼이라 불러도 상관없노라

 

 

이시사장향호남(以試士將向湖南)-허균(許筠)
시사로 호남을 가게 되어서-허균(許筠)

璽書朝下建章宮(새서조하건장궁) : 건장궁에 아침 새서(璽書)가 내려
驄馬翩翩豸綉紅(총마편편치수홍) : 치관에 수홍포이라 총마는 치닫는다.
敢達天人如董相(감달천인여동상) : 감히 천인에 이른 동상과 같아
祗慚詞賦擬揚雄(지참사부의양웅) : 양웅과 겨루는 사와 부로 부끄럽도다.
權仍漢郡掄方正(권잉한군륜방정) : 방정을 선발하는 한군의 권이이고
職是周官採國風(직시주관채국풍) : 국풍을 채집하는 주관의 직이로다
寄語湖南諸士子(기어호남제사자) : 호남의 선비들께 말을 먼저 묻노니
何人健筆氣霏虹(하인건필기비홍) : 어느 사람 억센 붓이 무지개를 날리게 될까

 

 

방자정어금오(訪子正於金吾)-허균(許筠)
금오에서 자정을 방문하고-허균(許筠)

男兒官止執金吾(남아관지집금오) : 사나이의 벼슬이 집금오에 그쳤지만
已覺聲名動漢都(이각성명동한도) : 명성은 이미 온 서울을 들썩이도다
郞署比來無輦過(랑서비래무련과) : 낭서는 근년 들어 수레 없이 지나니
馮郞頭白只窮途(풍랑두백지궁도) : 머리 흰 현량 풍랑은 풍핍을 어찌하나
風鐸琅璫徼卒呼(풍탁랑당요졸호) : 풍경 소리 뎅그렁 요졸이 호통치니
皂衣朱杖帀庭隅(조의주장잡정우) : 검정옷 붉은 막대다 뜰 모퉁이를 둘렀도다
看君仕宦偏輝赫(간군사환편휘혁) : 그대의 보니 유달리도 혁혁한데
黃紙書名却悔吾(황지서명각회오) : 조서에 이름 쓴 것이 도리어 후회되는구나
詩名少日許倫魁(시명소일허륜괴) : 젊은 시절 시명 무리 중의 우두머리
晩直金吾豈稱才(만직금오기칭재) : 늘그막 금오 벼슬이 재주에 맞다 하리까
能似漢家中尉豹(능사한가중위표) : 저 한 나라 중위표와 흡사하니
七言來和柏梁臺(칠언래화백량대) : 백량대에 모여 칠언시를 화답하였도다
權埒中書在昔時(권랄중서재석시) : 저 지난날 임시로 중서성에 있을 때
連宵歌管鬧西池(련소가관료서지) : 밤새도록 노래가 서지를 들썩여주었도다
太平故事能依舊(태평고사능의구) : 태평 시절 이야기들 예와 능히 같다하나
只好沈疴問女醫(지호침아문녀의) : 묵은 병은 여의원에게 묻는 것이 좋을거야

 

화룡담(火龍潭)-허균(許筠)
화룡못에서-허균(許筠)

深泓渟黛綠(심홍정대록) : 깊은 웅덩이 고인물 검푸른데
俯瞰何幽幽(부감하유유) : 굽어보니 어찌 그리도 으슥한가
兩崖滑而仄(량애활이측) : 양쪽 벼랑 미끄럽고 또 기울어져
竦身難久留(송신난구류) : 몸이 오싹하여 오래 서있기 어려워라
其下毒龍蟠(기하독룡반) : 이 밑에는 독룡이 도사려있고
霜葉不得投(상엽불득투) : 단풍잎을 던지지는 말아라
遊者愼跼足(유자신국족) : 구경꾼은 제발 발조심하여서
毋爲龍所求(무위룡소구) : 주린 용의 먹이감이 되지 말아라

 

 

원통사(圓通寺)-허균(許筠)
원통사-허균(許筠)

所徑獅子峯(소경사자봉) : 사자봉을 질러가는 길
得造圓通寺(득조원통사) : 원통사에 당도를 하였다
藤刺罥我衣(등자견아의) : 등덩굴 가시는 내 옷을 옭고
香葛澾我履(향갈달아리) : 내신은 칡덩굴은 미끌어진다
催藍涉石湍(최람섭석단) : 가마를 재촉하여 돌 여울 건너
赤葉滿虛隧(적엽만허수) : 단풍잎이 빈 웅덩일 가득하다
雲日映喬林(운일영교림) : 구름 낀 해는 높은 숲에 비친다
嵐霏捲微吹(람비권미취) : 바람 아지랑이 활짝 걷어 불고
入門老僧迎(입문로승영) : 문에 들자 늙은 중이 마중나온다
見我顔色喜(견아안색희) : 나를 보고 반기는 얼굴
言從二兄遊(언종이형유) : 둘째언니 따라 놀러 나갔다고 한다
探勝窮靈閟(탐승궁령비) : 명승지 찾아 신비로운 곳을 헤었다
出示軸中詩(출시축중시) : 두루마리 속의 시를 내보여
讀之還拭淚(독지환식루) : 읽어 보니 눈물이 절로 흐른다
哀哀斷絃情(애애단현정) : 이다지도 슬픈 건가 침구의 정이란 것이
杳杳看雲思(묘묘간운사) : 아득히 구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보덕굴(普德窟)-허균(許筠)
보덕굴-허균(許筠)

飛楹裊欲墜(비영뇨욕추) : 나는 듯 한 기둥 떨어질 듯
一柱承其半(일주승기반) : 기둥 하나 그 절반을 떠받들었다
萬古撑不俄(만고탱불아) : 만 년을 버티어 기울지 않아
直壓千尋岸(직압천심안) : 천 길의 언덕을 곧장 누르고 았구나
仰看霞甍張(앙간하맹장) : 고개 들어 노을 낀 처마 끝 쳐다보니
翼翼鶱霄漢(익익건소한) : 날개 치며 하늘을 날아오르는 듯하다
石磴恣攀緣(석등자반연) : 돌부리 마음대로 부여잡아 타오르니
翩然腋生翰(편연액생한) : 너울너울 겨드랑에 깃이 돋는구나
莎房開士居(사방개사거) : 거사의 방 열어보니 거사가 살고있어
金碧最燦爛(금벽최찬란) : 금벽이 너무나도 찬란하였다
刳木通幽泉(고목통유천) : 나무짝에 홈을 파 그윽한 샘과 통하니
酌飮煩疴散(작음번아산) : 한 번 따라 마셔니 헐떡증이 다 흩어진다
寄宿野無眠(기숙야무면) : 밤에 잠에 드니, 졸음 없어지고
風松澎耳畔(풍송팽이반) : 솔바람이 귓전을 메아리치는구나

 

 

만폭동(萬瀑洞)-허균(許筠)
만폭동-허균(許筠)

兩峽擘層崖(량협벽층애) : 두 협곡이 쪼개져 이룬 층층 골짝
百川潰其中(백천궤기중) : 온갖 내가 그 안에서 용솟음치는구나
噴流日澒洞(분류일홍동) : 뿜는 물결 날마다 골짝에 넘실대고
濺沫常溟濛(천말상명몽) : 뿌려대는 물방울 항상 자욱하여라
初驚蒼壁拆(초경창벽탁) : 처음은 푸른 벼랑 벌어진 것에 놀라
飛出雙白龍(비출쌍백룡) : 두 마리 하얀 용이 날아가 버린다.
細看天罅破(세간천하파) : 자세히 보니 하늘에 틈이 벌어지고
倒掛萬玉虹(도괘만옥홍) : 수많은 옥무지개 거꾸로 걸려있구나
轟霆當晝起(굉정당주기) : 벽력이 대낮에는 메아리로 일어나
亂石薄雷風(란석박뢰풍) : 우뢰 같은 바람에 늘어선 돌이 엷고
潭潭曲相瀦(담담곡상저) : 못마다 굽이져 웅덩이가 되었구나
咫尺跳波通(지척도파통) : 지척에서도 물이 튀어 오르고
壯觀駴我心(장관해아심) : 웅장한 경관 내 마음 떨게 하는구나
韙哉造化功(위재조화공) : 거룩하구나, 조화의 공이로다
康樂遊石門(강악유석문) : 강락 사운령은 석문에 노닐었고
謫仙望爐峯(적선망로봉) : 귀양 온 이태백은 향로봉 바라보았다
未知千載後(미지천재후) : 모르겠구나, 천 년이 지난 뒤의 일을
此景誰雌雄(차경수자웅) : 어느 곳이 이곳과 자웅을 겨루겠는가

 

 

숙정양사동상(宿正陽寺東廂)-허균(許筠)
정양사 동양에 묵으며-허균(許筠)

花宮隱映金芙蓉(화궁은영금부용) : 화궁은 금부용을 어리비치고
闍梨起打二更鍾(도리기타이경종) : 상좌중은 일어나 이경 종을 친다
試拓交窓一揮手(시척교창일휘수) : 손 한 번 휘둘러 두 창을 열어보니
涼月湧上樓東峯(량월용상루동봉) : 누대 동쪽 봉우리에 달 솟아오른다
桂影婆娑白銀闕(계영파사백은궐) : 흰 은빛 궁궐에 계영이 춤을 추니
千巖萬壑瓊瑤窟(천암만학경요굴) : 온 바위, 온 골짝이 경요의 굴이구나
天風翩翩吹我衣(천풍편편취아의) : 하늘 바람 살랑이며 내 옷을 펄렁이니
飄然八極神橫逸(표연팔극신횡일) : 팔방 끝에 날 듯이 정신이 황홀
怳疑身世陟珍臺(황의신세척진대) : 아마도 내 한 몸이 진대에 오른
浮丘仙人安在哉(부구선인안재재) : 물에 뜬 언덕의 신선님은 어디 있는가
不須鞭石橋滄海(불수편석교창해) : 돌 몰아서 창해에 다리 놓을 필요없어라

 

 

대학(待鶴)-허균(許筠)
학을 기다리며-허균(許筠)

待鶴鶴不至(대학학불지) : 기다려도 학이 오지 않으니
玄裳疑有無(현상의유무) : 신선 학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네
西湖杳何許(서호묘하허) : 서호는 아득하여 어디쯤인가
吾是舊林逋(오시구림포) : 나야 말로 바로 옛날의 임포였다네

 

 

영계수(詠桂樹)-허균(許筠)
계수나무르 노래하다-허균(許筠)

桂樹來南海(계수래남해) : 남해에서 건너온 계수나무
何年植此山(하년식차산) : 어느 해에, 이 산에 심어졌는지
天香風處落(천향풍처락) : 바람 있는 곳, 하늘 향기 떨어지니
疑是月中攀(의시월중반) : 아마도 달 속의 더위잡는 끈인가보다

 

 

개심대(開心臺)-허균(許筠)

개심대-허균(許筠)

昨日正陽樓(작일정양루) : 어저께는 정양루에 있었는데
仰睇萬玉巒(앙제만옥만) : 만 개의 옥 봉우리를 쳐다보았다
今朝開心臺(금조개심대) : 오늘 아침은 개심대에 와서
萬玉忽平看(만옥홀평간) : 만 개의 옥 봉우리를 평지에서 본다
地勢非陟高(지세비척고) : 지세가 높이 쳐든 것도 아닌데
何緣壓孱顔(하연압잔안) : 모든 산을 눌렀으니 무슨 연유일까
蔥蔥衆香城(총총중향성) : 비취색 파릇파릇한 저 중향성
雲表排琅玕(운표배랑간) : 옥처처럼 구름 밖에 널려져 있구나
霜酣晩楓染(상감만풍염) : 서리에 취한 물든 저 단풍나무
赩奕被崖丹(혁혁피애단) : 곱게도 온 비탈을 뒤덮었구나
浩歌望紫霄(호가망자소) : 붉은 노을 바라보며 호탕히 노래하니
若可靑天攀(약가청천반) : 청천을 더위잡고 오른 기분이로다
仙人空中下(선인공중하) : 신선처럼 공중에서 내려와
願借一白鸞(원차일백란) : 흰 난새 하나를 빌려타고 싶어라
跨之橫八極(과지횡팔극) : 그 난새 잡아 타고 천지팔방을 횡행하며
羨門同遊盤(선문동유반) : 신선 자고와 짝이 되어 함께 놀고 싶어라
百年亦掣電(백년역체전) : 백년의 긴 세월도 스치는 번개 같아
何必勞塵寰(하필로진환) : 어찌 꼭 속세에서 헤매야 하는가
從玆拂衣去(종자불의거) : 옷자락 활활 털고 여기서 떠나
去上蓬萊山(거상봉래산) : 어서 떠나 봉래산을 올라가 보자꾸나

 

 

영계수(詠桂樹)-허균(許筠)
계수를 노래하다-허균(許筠)

桂樹來南海(계수래남해) : 남해에서 온 저 계수나무
何年植此山(하년식차산) : 어느 해에 이 산에 심어졌는가
天香風處落(천향풍처락) : 바람이 이는 곳에 하늘 향기 풍기니
疑是月中攀(의시월중반) : 아마도 달 속에서 잡아온 것일 것이다

 

 

팔각전간불화(八角殿看佛畵)-허균(許筠)
팔각전에서 부처 그림을 보며-허균(許筠)

森嚴殿四壁(삼엄전사벽) : 팔각전 사면의 벽화는 삼엄한데
不知何時績(불지하시적) : 어느 때 그린 건지 알지도 못한다
儼然紫摩軀(엄연자마구) : 부처의 몸체가 우람하고
彩毫光炯碎(채호광형쇄) : 채색하는 붓끝은 번쩍거리며 빛난다
龍天來走趍(용천래주추) : 용천이 앞에 와 굽실대고
幢蓋雜環佩(당개잡환패) : 일산 깃대 패물들이 뒤섞여있다
左右護法神(좌우호법신) : 법신이 좌우로 옹위하고
努眼耿相對(노안경상대) : 부릅뜬 눈이 뚫을 듯이 마주본다
飛動颯精神(비동삽정신) : 날 듯이 움직여 정신이 삽상하여
淋漓露情態(림리로정태) : 흥건히 스며들어 마음이 드러난다
色昏意常新(색혼의상신) : 색은 흐려도 뜻은 항상 새로워져
妙法眞可愛(묘법진가애) : 신묘한 법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皆云吳道玄(개운오도현) : 모두들 말하기를, 오도자가
來畫垂千載(래화수천재) : 이것을 그려 천년을 전하였다 한다
道玄是貴臣(도현시귀신) : 오도자는 남의 나라 귀한 신하
何緣遊海外(하연유해외) : 무슨 연유로 해외에 노닐었겠나
野言不足憑(야언불족빙) : 떠도는 말을 어찌 다 믿을까
信者實聵聵(신자실외외) : 믿는 자는 진실로 무식한 소리
雖曰非道玄(수왈비도현) : 비록 오도자가 아니라 할지언정
的在新羅代(적재신라대) : 신라 시대 것만은 틀림이 없도다
物古藝亦殊(물고예역수) : 옛것에다 예술성마저 뛰어났으니
觀之自心快(관지자심쾌) : 쳐다보면 마음 절로 상쾌하도다
莫較吳與羅(막교오여라) : 오도자의 것과 신라 것을 비교말고
寶之毋欲壞(보지무욕괴) : 고이고이 간직하여 상하지 않게 할지라

 

 

정양서루(正陽西樓)-허균(許筠)
정양사 서루에서-허균(許筠)

萬峯秋盡玉參差(만봉추진옥참차) : 가을 다 간 일만 봉우리 옥돌 같아
笑倚西樓落日時(소의서루락일시) : 해질 무렵 서쪽 누대에 기대어 웃어본다
欲寫廬山眞面目(욕사려산진면목) : 여산의 진면목을 그리고야 싶지만
世間安有謫仙詞(세간안유적선사) : 이 세상에 어찌 신선의 시가 있을까

 

 

표훈사1(表訓寺1)-허균(許筠)
표훈사-허균(許筠)

玲瓏金碧纈林端(령롱금벽힐림단) : 영롱한 금벽이 수풀 끝에 얽혀있고
廣殿無人夕磬殘(광전무인석경잔) : 넓은 대전에는 아무도 없고 저녁 종소리 사라진다
疑有龍天來洒掃(의유룡천래쇄소) : 아마도 스님이 와 쇄소를 하나보다
爐煙霏作裔雲盤(로연비작예운반) : 화로에는 자욱한 연기 경사로운 구름이 서린다

 

 

표훈사2(表訓寺2)-허균(許筠)
표훈사-허균(許筠)

寺廢重新亦有緣(사폐중신역유연) : 폐한 절 새로 새우니 이 또한 인연
老師神力動諸天(로사신력동제천) : 늙은 스님 신력이 제천을 움직였구나
珠宮忽湧蓮花地(주궁홀용련화지) : 주궁이 갑자기도 연화꽃 땅에 솟아나니
想被曇無笑輾然(상피담무소전연) : 생각할수록 보살 담무가는 벙실벙실 웃어댄다

 

 

명연(鳴淵)-허균(許筠)
명연-허균(許筠)

陰竇窺䆗窱(음두규규조) : 그늘진 구멍, 아득하고 깊어
幽幽黮環灣(유유담환만) : 깊숙한 물빛 검게 돌아 둥글다
下有千歲虯(하유천세규) : 아래에는 천년 묵은 이무기놈
佶栗深處蟠(길률심처반) : 한 구석 깊은 곳에 힘차게 서려 있다
有時吐白氣(유시토백기) : 이따금 하얀 기운 뱉어 내니
霏作煙漫漫(비작연만만) : 비가 안개되어 자욱하구나
何時變雷雨(하시변뢰우) : 어느 때야 천둥과 비로 변하여
飛上瑤臺端(비상요대단) : 신선 사는 저 곳, 끝으로 날아오르나

 

 

종망고대하(從望高臺下)-허균(許筠)
망고대에서 내려와-허균(許筠)

躋險闖窾崖(제험틈관애) : 험한 길을 올라라 빈 비탈을 나오며
臨幽憩潭洞(림유게담동) : 깊숙한 곳에 다다라 골짜기 못에 쉬었다
亂流屢褰裳(란류루건상) : 어지러운 물살에 자주 바지를 걷으며
危杠僅移踵(위강근이종) : 위태한 외다리라 겨우겨우 발꿈치 옮겨간다
牽藤幾投距(견등기투거) : 등나무 끌며 몇 번이나 멀리 다리를 뻗었던가
驀澗先賈勇(맥간선가용) : 먼저 용기를 내어 골짝물을 뛰어넘으니
臺唇仰干霄(대진앙간소) : 누대머리는 치솟아 하늘 바라보며 지킨다
巖腹如側罋(암복여측옹) : 바위의 가운데느 항아리 기울인 것 같고
滑蘇上玲瓏(활소상령롱) : 위는 영롱하여 미끄러질 듯하여라
深淵下濛澒(심연하몽홍) : 아래로 음산한 것은 깊은 저 못이어라
斷广跼還眩(단엄국환현) : 징검다리 딛자 현기증이 일어 몸을 굽힌다
鐵絙攀仍恐(철환반잉공) : 쇠줄 끈을 붙잡아도 이내곧 두려워진다
進一步澾魂(진일보달혼) : 한 걸음 내딛어도 정신이 미끌어지는 듯 하다
俯睨駭神竦(부예해신송) : 밑을 보니 정신이 놀라 아찔해지고
踰險心始豫(유험심시예) : 험한 비탈을 넘어서야 마음 갈앉는다
躋嶺目方縱(제령목방종) : 마루턱에 오르니 눈이 사방으로 열리어
衆壑瞰嶙峋(중학감린순) : 울뚝불뚝 가파른 온 골짜기가 내려다보인다
郡巒拱巃嵷(군만공롱종) : 여러 산봉우리는 가파른 산을 둘러싸고
冷風飛蘭林(랭풍비란림) : 불어오는 선들바람이 난초숲을 날린다
天籟引韶鳳(천뢰인소봉) : 자연의 소리는 갖은 음악소리 끌어오는데
傍隒得蓮宮(방엄득련궁) : 곁에 있는 낭떠러지에 절집이 있구나
翔空抗虹棟(상공항홍동) : 아름드리 기둥은 날 듯이 공중 솟아있어
息倦抛隱囊(식권포은낭) : 보따리 내던지고 피로를 풀어본다
充飢列蒲供(충기렬포공) : 널려진 공양으로 주림 채우고
興極反輕生(흥극반경생) : 흥이 지극하여 목숨을 가볍게 여겼지만
魄悸猶思痛(백계유사통) : 넋이 놀라니 오히려 생각이 고통스러워진다
留戒後至徒(류계후지도) :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경계하노니
其思性命重(기사성명중) : 목숨이 귀한 것임을 깊이 생각이나 하시오

 

 

영원사(靈源寺)-허균(許筠)
영원사-허균(許筠)

螺宮高削翠芙蓉(나궁고삭취부용) : 깎아지른 산빛에 절이 우뚝 솟아
日出金霏射牖濃(일출금비사유농) : 해가 돋자 금빛 짙게 창문을 쏘아댄다
舍利舊藏多寶塔(사리구장다보탑) : 사리는 예부터 다보탑에 감췄는데
沙彌猶扣下堂鍾(사미유구하당종) : 상좌중은 오히려 하당(下堂)의 종을 친다
蓮花晝集聽經鳥(연화주집청경조) : 낮에는 연꽃에 새가 모여 독경 소리 듣고
雲氣秋盤入洞龍(운기추반입동룡) : 구름 기운 가을에 서리어 용이 골에 든다
絶境偶拚人外賞(절경우변인외상) : 외딴 곳에 우연히 인간 밖 경치 보아
振衣伋陟望高峯(진의급척망고봉) : 옷 떨쳐 입고 곧바로 망고봉에 오른다

 

 

시왕백천동(十王百川洞)-허균(許筠)
시왕백천동에서-허균(許筠)

陰洞窺靚深(음동규정심) : 어둑한 골짜기 그 깊은 곳 들여보며
回川涉泱漭(회천섭앙망) : 넘실넘실 돌아드는 하천을 아득히 건너간다
線路仄峻崖(선로측준애) : 오솔길은 험한 언덕에 매달려 있고
嵌壁環穹嶂(감벽환궁장) : 깊은 골짜기벽은 높은 산을 둘렀구나
搜奇忘險艱(수기망험간) : 좋은 경치 더듬어 찾다가 험한 것도 잊고
陟高勞偃仰(척고로언앙) : 높은 데를 올르다 피곤하여 엎드려 쳐다본다
匯磵怒湍崩(회간노단붕) : 성낸 물결 무너져 급한 소를 이루고
拔地危峯上(발지위봉상) : 땅을 뽑아 올린 듯 높은 봉우리 솟아있다
斷硿屢改屐(단공루개극) : 끊어진 벼랑에서 신을 몇 번이나 고쳐 신고
傾巖費移杖(경암비이장) : 경사진 바위에는 지팡이도 옮기지 못한다
瀑流洒還空(폭류쇄환공) : 폭포는 물 뿌리다가 도로 잠잠해지고
石角森相向(석각삼상향) : 돌 머리는 쭝긋쭝긋 서로 맞서 늘어섰다
葱倩楓括交(총천풍괄교) : 파릇파릇 풍괄은 서로 엉켜있고
晻靄霏煙漲(엄애비연창) : 어둑한 물안개는 아른아른 연기처럼 퍼진다
冥詮幸遐討(명전행하토) : 신비한 법전을 멀리 찾자아
逸境留淸賞(일경류청상) : 뛰어난 곳에 맑은 구경거리 남기는구나
勝景愜幽悁(승경협유연) : 좋은 경치는 깊숙한 정에 흡족하고
玄悟快煩想(현오쾌번상) : 현묘한 깨우침 번뇌를 쾌히 씻어낸다
縣閬通絶港(현랑통절항) : 낭현은 절항과 서로 통해서
喬簫非遠響(교소비원향) : 선인 왕교의 퉁소소리 먼 곳이 아니구나
謫籍尙通班(적적상통반) : 귀양살이 오히려 반과 통하거늘
天梯咸飛爽(천제함비상) : 공중에 친 사닥다리도 더러는 날아오른다
芝車倘下來(지차당하래) : 선인이 수레 타고 만약에 내려온다면
一笑解世網(일소해세망) : 한번 웃으며 세상살이 얽힘을 풀어주리라

 

 

장안사(長安寺)-허균(許筠)
장안사에서-허균(許筠)

化城眺生臺(화성조생대) : 방편교인 화성에서 생대를 보니
洞宮依崇岫(동궁의숭수) : 통궁은 높은 봉을 의지해 있었다
突兀騫鳳甍(돌올건봉맹) : 우뚝하여 봉맹이 나를 듯하고
參差列雲構(참차렬운구) : 들쭉날쭉 운구가 줄지어 있었다
藻井倒垂蓮(조정도수련) : 마름 떠 있는 우물에 연꽃 거꾸로 대롱거리고
虹梁屈承霤(홍량굴승류) : 무지개 다리는 구부러져 처마 물 받는구나
纏龍覆金龕(전룡복금감) : 서린 용은 금감을 뒤덮었고
伏猊蹲瑤甃(복예준요추) : 엎드린 사자의 요추에 웅크렸구나
法像煥巍崇(법상환외숭) : 법 갖춘 형상은 빛나고 높고 높았고
鬼物紛決驟(귀물분결취) : 귀신 물건들은 어지러이 달아나려 하는구나
玉毫絢彤霄(옥호현동소) : 부처의 백호상인 옥호는 붉은 하늘 비치고
紺霞弄晴晝(감하롱청주) : 감(紺)색 노을은 맑은 날에 흩날리는구나
貝葉當午飜(패엽당오번) : 대낮이면 불경을 뒤적거리고
洪鍾候晨扣(홍종후신구) : 새벽이면 큰 쇠종을 두들겨대는구나
旃檀妙香焚(전단묘향분) : 전단 향나무에 묘한 향불 타올라
闥婆天樂奏(달파천악주) : 달파라 천당의 음악이 울려퍼지고
珪幣萃捨施(규폐췌사시) : 구슬과 폐백은 시주물건으로 모여드는구나
人天極趍走(인천극추주) : 사람과 하늘이 모두 늦게도 가고
夙齡遐賞違(숙령하상위) : 이른 나이에 먼리 구경가는 일 어겼도다
玆遊壯觀富(자유장관부) : 이곳에는 놀아보니 볼만한 경치 많기도 하다
探奇情始愜(탐기정시협) : 좋은 경치 찾는 일 내 마음에 흡족하여
討幽計方售(토유계방수) : 그윽한 벽촌을 찾을 계획 이제야 이루는구나
稽首不動尊(계수불동존) :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전에 움직이지 않으니
天眼非虛覯(천안비허구) : 천당의 안목 헛되게 보는 것 아니도다
空花捐起滅(공화연기멸) : 눈 앞에 헛된 망상 소멸하는 것 버리고
正法無聲臭(정법무성취) : 바른 법도에는 소리와 냄새도 하나 없도다
洗心願歸依(세심원귀의) : 마음 씻고 귀의하길 원하나니
燈燈在傳授(등등재전수) : 등과 등을 잇는 것은 진리를 전함에 있도다

 

 

환희령(歡喜嶺)-허균(許筠)
환희령에서-허균(許筠)

陟巘眺蓬萊(척헌조봉래) : 봉우리에 올라 봉래산 바라보니
瓊峯四面開(경봉사면개) : 구슬같은 봉우리사방으로 열렸구나
蒼茫日月色(창망일월색) : 까마득한 해빛과 달빛
照耀金銀臺(조요금은대) : 금은대를 밝게 비추는구나
高嘯千巖動(고소천암동) : 높은 휘파람 일천 바위가 흔들리고
長風萬里來(장풍만리래) : 긴 바람은 만리를 불어오는구나
王喬在何處(왕교재하처) : 신선 왕교 사는 곳은 어느 곳인가
天外鶴飛回(천외학비회) : 하늘 밖에 학이 돌아 날아드는구나

 

 

통구(通溝)-허균(許筠)
통구에서-허균(許筠)

度澗攀危逕(도간반위경) : 시내 지나 위태로운 길 오르니
山腰棧閣分(산요잔각분) : 산허리에 잔교가 나누어지는구나
孤村昏細雨(고촌혼세우) : 외로운 마을엔 가랑비 자욱하고
遠岫起寒雲(원수기한운) : 먼 봉우리에서 찬 구름 피어나고
田父時相値(전부시상치) : 시골 늙은이들 이따금 서로 만나니
樵歌遠或聞(초가원혹문) : 나무꾼 소래소리 멀리서 들려온다
臨溪問茅店(림계문모점) : 개천에 다다라 주막집 찾으니
煙樹已斜曛(연수이사훈) : 이내 어린 숲에는 이미 햇살 기운다

 

 

숙금성(宿金城)-허균(許筠)
금성에서 묵으며-허균(許筠)

縣郭依山樾(현곽의산월) : 고을 성곽 산기슭에 붙어
荒齋俯樹林(황재부수림) : 낡은 집은 나무 숲을 굽어본다
使君能館穀(사군능관곡) : 원님이 먹을 양식 주시니
行子有歡心(행자유환심) : 나그네 마음이 흐뭇도 하다
客久秋强半(객구추강반) : 오랜 타향살이에 가을도 깊어
談餘夜向深(담여야향심) : 이야기 끝에 밤 깊어간다
風簾閃燈影(풍렴섬등영) : 주렴에 부는 바람에 등잔 어른거리고
雨砌澁蟲音(우체삽충음) : 뜨락에 비 내리고 벌레 소리 시끄럽다
玉膾絲絲斫(옥회사사작) : 실오리처럼 생선회를 썰어서
香醪細細斟(향료세세짐) : 맛있는 술 조금씩 따라 마신다
窮途一飽足(궁도일포족) : 궁할 때는 한 번 포식도 만족스러워
感激意難任(감격의난임) : 감격하여 마음에 맞기기도 어렵구나

 

 

노객부원(老客婦怨)-허균(許筠)
늙은 나그네 아낙의 원망-허균(許筠)

東州城西寒日曛(동주성서한일훈) : 동주 성 서쪽, 차가운 해 뉘엿뉘엿
寶蓋山高帶夕雲(보개산고대석운) : 우뚝한 보개산이 저녁 구름 감싸 있다
皤然老嫗衣藍縷(파연로구의남루) : 머리 허옇게 센 늙은 할미, 남루한 옷차림
迎客出屋開柴戶(영객출옥개시호) : 손님 맞아 방을 나와 사립문을 열어준다
自言京城老客婦(자언경성로객부) : 스스로 말하기를, 서울 늙은 나그네 아낙
流離破産依客土(류리파산의객토) : 파산하여 떠돌다가 객지에 사는 신세가 되었다오
頃者倭奴陷洛陽(경자왜노함락양) : 저 지난날 왜놈들이 서울을 함락시켜
提携一子隨姑郞(제휴일자수고랑) : 외 아들 손에 잡고 시어머니와 남편 따라
重跡百舍竄窮谷(중적백사찬궁곡) : 삼백리 길 걷고 걸어 깊은 골에 숨어왔소
夜出求食晝潛伏(야출구식주잠복) : 밤에 나와 밥을 빌고 낮에는 숨어 살았소
姑老得病郞負行(고로득병랑부행) : 시모 늙어 병을 얻어 남편이 업고 가니
蹠穿崢山不遑息(척천쟁산불황식) : 험한 산길에 발바닥이 다 뚫어져도 쉴지도 못했소
是時天雨夜深黑(시시천우야심흑) : 이런 때, 비는 내려 밤이 더욱 캄캄하니
坑滑足酸顚不測(갱활족산전불측) : 길 미끄럽고 다리 시러워 언제 넘어질지 몰랐소
揮刀二賊從何來(휘도이적종하래) : 칼 휘두르는 두 왜적은 어디서 왔는지
闖暗躡蹤如相猜(틈암섭종여상시) : 어둠 속에 머리 내밀며 서로 다투어 뒤를 밟아
怒刃劈脰脰四裂(노인벽두두사렬) : 성난 칼날 목을 갈라서 목이 찢어졌소이다
子母倂命流冤血(자모병명류원혈) : 어미와 아들 다 죽어 원한의 피 흐르고
我挈幼兒伏林藪(아설유아복림수) : 나는 어린아이를 끌고 덤불 속에 엎드렸소
兒啼賊覺驅將去(아제적각구장거) : 아이 울음에 들켜 잡혀가고 말았으니
只餘一身脫虎口(지여일신탈호구) : 내 한 몸 겨우 남아 호랑이 굴을 벗어났지만
蒼黃不敢高聲語(창황불감고성어) : 허둥지둥 경황없어 소리 높여 말조차 못했소
明朝來視二骸遺(명조래시이해유) : 다음 날 아침 와서 보니 두 시체 버려져
不辨姑屍與郞屍(불변고시여랑시) : 시모인지 남편인지 분간할 길 없었다오
烏鳶啄腸狗嚙骼(오연탁장구교격) : 솔개와 까마귀 창자 쪼고, 들개는 살 뜯으니
虆梩欲掩憑伊誰(라리욕엄빙이수) : 삼태기와 흙수레로 덮어가리려해도 누가 도와주랴
辛勤掘得三尺窞(신근굴득삼척담) : 석 자 깊이 구덩이를 천신만고로 겨우 파서
手拾殘骨閉幽坎(수습잔골폐유감) : 남은 뼈골 손수 모아 봉토하고 나니
煢煢隻影終何歸(경경척영종하귀) : 의지 없는 외그림자 끝내는 어디로 돌아갈까
隣婦哀憐許相依(린부애련허상의) : 이웃 아낙 슬피 여겨 함께 살자 하여
遂從店裏躬井臼(수종점리궁정구) : 이 주막에 더부살이 방아 찧고 물 길렀소
餽以殘飯衣弊衣(궤이잔반의폐의) : 남은 밥 먹여 주고 낡은 옷 입혀 주어
勞筋煎慮十二年(로근전려십이년) : 지치고 마음졸이기 열두 해가 되었다오
面黧髮禿腰脚頑(면려발독요각완) : 주름진 얼굴, 듬성머리, 허리도 다리도 뻐근한데
近者京城消息傳(근자경성소식전) : 근자에 서울 소식 드문드문 들려왔소
孤兒賊中幸生還(고아적중행생환) : 내 불쌍한 아이는 적중에서 다행히도 살아나와
投入宮家作蒼頭(투입궁가작창두) : 대궐에 투숙하여 창두가 되었다 하오
餘帛在笥囷倉稠(여백재사균창조) : 옷장에는 남은 비단, 창고에는 곡식 가득하니
娶婦作舍生計足(취부작사생계족) : 장가들고 집 마련하여 생계가 풍족하다 하나
不念阿孃客他州(불념아양객타주) : 타관살이 나그네 처지 제 어미께 생각 못하니
生兒成長不得力(생아성장불득력) : 낳은 아들 성장해도 그 덕을 보지 못하오
念之中宵涕橫臆(념지중소체횡억) : 생각할수록 한밤중에 눈물이 가슴 적시고
我形已瘁兒已壯(아형이췌아이장) : 내 꼴은 다 시들고 아들은 이미 장년이 되었소
縱使相逢詎相識(종사상봉거상식) : 설사 서로 만나더라도 알아볼 리 있을까
老身溝壑不足言(로신구학불족언) : 늙은 몸 구렁에 버려지는 건 더 말할 나위 없거니
安得汝酒澆父墳(안득여주요부분) : 너의 술이라도 얻어 아비 묘에 올려볼 수 없겠는가
嗚呼何代無亂離(오호하대무란리) : 아 슬프구나, 어느 시대인들 난리야 없으랴만
未若妾身之抱冤(미약첩신지포원) : 이 못난 여편네가 품은 원한은 아직도 없었으리라

 

 

풍전역(豐田驛)-허균(許筠)
풍전역에서-허균(許筠)

早霜初落雁呼群(조상초락안호군) : 이른 서리 처음 내리자 기러기는 무리를 부르고
天外遙岑起暝雲(천외요잠기명운) : 하늘 밖의 아득한 봉우리에 어두운 구름 피어오른다
日暮傍山投古驛(일모방산투고역) : 곁 산에는 날 저무는데 옛날 역을 찾아드니
馬前紅葉正紛紛(마전홍엽정분분) : 말 앞에는 붉은 나뭇잎이 우수우수 흩날려 뜰어진다

 

 

금수담정경서작(金水潭正卿墅作)-허균(許筠)
수당 김정경의 별장에서짓다-허균(許筠)

層嶂帶茅茨(층장대모자) : 층계진 산이 띳집을 둘러싸고
煙蘿斂暝姿(연라렴명자) : 등라(藤蘿)에는 어둑한 이내 걷혔다
誰知靜者意(수지정자의) : 고요히 사는 자의 뜻 뉘라 알랴
不負故人期(불부고인기) : 친구의 기약을 저버리지 않는다
日落巖泉媚(일락암천미) : 해가 지니 바윗가 샘은 한결 곱고
風生竹樹悲(풍생죽수비) : 바람 부니 대나무는 스걸퍼진다
東峯有初月(동봉유초월) : 동녘 산봉우리에 초생달 오르면
謝朓得新詩(사조득신시) : 사조는 새로운 시를 지어 얻겠구나

 

 

포천도중(抱川道中)-허균(許筠)
포천 가은 주에-허균(許筠)

刈稻人歸郭(예도인귀곽) : 벼 베고 성 밖에서 돌아오는데
銜蘆雁下田(함로안하전) : 갈대를 문 기러기는 밭에 날아내린다
歲華行暮矣(세화행모의) : 이 해도 저물어가는데
客況轉凄然(객황전처연) : 나그네 처지 절로 처량만하구나
遠岫斜呑日(원수사탄일) : 먼 산은 비스듬히 해를 삼키고
孤村半帶煙(고촌반대연) : 외진 마을 절반이 안개 속에 가린다
平生倦遊恨(평생권유한) : 평생동안 놀이에 지쳐버려
容鬢近彫年(용빈근조년) : 안색과 모발(毛髮) 어느덧 시드는구나

 

 

속곡가(續曲歌)-허균(許筠)
속곡가-허균(許筠)

十四爲君婦(십사위군부) : 열 네 살에 당신 아내되어
二十去君家(이십거군가) : 스물에 당신 집을 떠났지요
路逢相識者(노봉상식자) : 길에서 아는 사람 만나
寄君雙蔕花(기군쌍체화) : 쌍체화를 보내드립니다
心中不得語(심중부득어) : 마음 속을 말로 못하고
腹作車輪轉(복작거륜전) : 배에서만 수레바퀴만 굴렀다오
我是歡家妻(아시환가처) : 나는 곧 임의 집 아낙네 였건만
思歡不可見(사환불가견) : 임이 그리워도 볼 수 없다오

 

 

정주도중(定州道中)-허균(許筠)
정주로 가는 길에-허균(許筠)

王程冉冉出西關(왕정염염출서관) : 사신길 가고 또 가 서관을 벗어나
昨夜鄕園夢裏還(작야향원몽리환) : 어젯밤에는 꿈속에 고향에 돌아갔소
暖日羸驂行正苦(난일리참행정고) : 날 덥고 말도 지쳐 걷기가 정말 괴로워
天邊何處定州山(천변하처정주산) : 하늘가 어느 곳이 정주의 산천인가

 

 

백상루1(百祥樓1)-허균(許筠)
백상루-허균(許筠)

高樓架層霄(고루가층소) : 높은 누 치솟은 하늘
下有長江流(하유장강류) : 아래로 긴 강이 흘러간다
暇日扶我病(가일부아병) : 틈을 내 병든 몸 이끌고
攀陟聊淹留(반척료엄류) : 더위잡고 오르다 잠시 쉰다
仰看香爐峯(앙간향로봉) : 고개 들어 향로봉 바라보니
紫翠雲外浮(자취운외부) : 붉고 푸른 빛 구름 밖에 떠있고
何當理蠟屐(하당리랍극) : 어찌하면 밀랍 바른 신 신고
直躋最上頭(직제최상두) : 곧장 저 최상봉을 올라보나
仙期若汗漫(선기약한만) : 신선이 되기는 너무도 막연하고
黯然生覊愁(암연생기수) : 얽매인 세상살이 암울하구나
緬想獨徘徊(면상독배회) : 아련히 홀로 서성대노니
西日下簾鉤(서일하렴구) : 서산의 지는 해는 발에 걸렸구나
人生無百歲(인생무백세) : 인생이란 백 살도 못사는데
物役爲煩憂(물역위번우) : 물욕에 팔려 근심만 번거롭구나
名利赤徒爾(명리적도이) : 명예도 이익도 모두가 헛된 것
奈何不早休(내하불조휴) : 어찌 진작 그만두지 못했는가
行將畢王事(행장필왕사) : 이제라도 왕사를 끝마친다면
投紱歸巖幽(투불귀암유) : 벼슬살이 그만두고 산골로 돌아가자
寄語鶴上人(기어학상인) : 학을 탄 사람에게 말 부치노니
肯許仍丹丘(긍허잉단구) : 즐겁게 선경놀일 허락하게나

 

 

객야기사(客夜記事)-허균(許筠)
객사에서 밤에 짓다-허균(許筠)

燈花悄悄閃風帷(등화초초섬풍유) : 등잔불빛 시름겹게 바람 이는 휘장에 번쩍
夢罷窓櫳缺月窺(몽파창롱결월규) : 꿈에서 깨어나니 조각달은 창문을 엿보는구나
陌上遊人歸未盡(맥상유인귀미진) : 언덕 위에 노는 사람 아직 돌아다가지 않고
夜闌猶聽玉參差(야란유청옥참치) : 밤늦도록 옥퉁소 소리는 들렸다가 말았다 한다

 

 

초하성중작(初夏省中作)-허균(許筠)
초여름 성 안에서-허균(許筠)

田園蕪沒幾時歸(전원무몰기시귀) : 전원이 황폐하니 언제나 돌아가나
頭白人間宦念微(두백인간환념미) : 머리 희어지는 인간세상, 벼슬생각 없다
寂寞上林春事盡(적막상림춘사진) : 적막한 상림에는 봄날이 다 가는데
更看疎雨濕薔薇(경간소우습장미) : 성긴 비에 젖은 장미 다시 또 보는구나

 

 

정유조천록(丁酉朝天錄)-허균(許筠)
정유조천록-허균(許筠)

傳通抹桑寇(전통말상구) : 소식들으니, 왜국이 우리나라 짓밟아와
潛邀下瀨師(잠요하뢰사) : 바다에 목을 지켜 수군을 기습하였다 하네
戈舡俄渰水(과강아엄수) : 병선이 파도 속에 뒤집어져
都護摠輿屍(도호총여시) : 통제사라 수사가 다 죽었다 하네
漢將能誅粤(한장능주월) : 한나라 장군은 능히 월나라 베었지마는
周居恐邑岐(주거공읍기) : 주 나라는 두려워 기산으로 도읍 옮겼다네
中宵坐垂涕(중소좌수체) : 한밤중에 홀로 앉아 눈물 쏟으니
憂憤有誰知(우분유수지) : 이 근심과 이 분통을 그 누가 알아주리요

 

 

정유조천록(丁酉朝天錄)-허균(許筠)
정유조천록-허균(許筠)

時序屬高秋(시서속고추) : 절기가 한가을이 되니
流年暗中失(류년암중실) : 이 해도 모르는 사이에 거의 지났다
賞月有佳篇(상월유가편) : 달 구경에 아름다운 시 있으니
才情推第一(재정추제일) : 재주와 정조가 제일이라 추천합니다
正値秋風節(정치추풍절) : 가을 바람 제 시절을 이제 만나니
金波漲滿天(금파창만천) : 금물결 하늘 가득 출렁이는구나
夜闌偏皎潔(야란편교결) : 늦은 밤이 유달리 희고 깨끗하니
淸景最今年(청경최금년) : 금년 들어 제일 맑은 경치이로다
浩彩流銀漢(호채류은한) : 하얀 빛깔 은하수로 흐르고
寒輝漾玉京(한휘양옥경) : 찬 빛깔은 서울에 넘실거린다
嫦娥如欲語(항아여욕어) : 항아가 무슨 말 하고 싶은 듯
轉作十分明(전작십분명) : 완전히 둥글어져 저렇게 밝아졌도다
携影步中庭(휴영보중정) : 그림자에 이끌려 뜰 가운데로 걸어가니
寒光徹人骨(한광철인골) : 싸늘한 빛이 뼛골에 스며드는구나
傳語李謫仙(전어리적선) : 적선 이태백에게 소식 전하노니
把酒來問月(파주래문월) : 술 들고 와 저 달에게 물어보소서
對酒惜淸景(대주석청경) : 술을 대하니 맑은 빛이 아까워져
愴然傷客心(창연상객심) : 먼 나그네 마음이 서글퍼지는구나
古來人望月(고래인망월) : 예부터 사람마다 달 봤지만
何者到如今(하자도여금) : 어떤 사람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가
故國亦明月(고국역명월) : 내 고향도 밝은 달은 마찬가지
居人愁寂寥(거인수적요) : 집안 사람 시름겨워 허전도 하리라
應憐萬里客(응련만리객) : 응당 만 리 나그네를 불쌍히 여겨
天畔度今宵(천반도금소) : 하늘가서 이 밤을 지새고 있도다
北里姬彈瑟(북리희탄슬) : 북촌에선 미인이 비파를 타고
東隣客按歌(동린객안가) : 동촌에선 나그네 노래를 부르노라
吟詩酬勝景(음시수승경) : 시 읊으며 좋은 경치 답하노니
月色爲誰多(월색위수다) : 달빛은 뉘를 위해 더욱 밝아지는가

 

 

제도(帝都)-허균(許筠)
제왕의 도읍-허균(許筠)

帝都何巍巍(제도하외외) : 제왕의 도읍이라, 어찌 그리도 우람한지
樓殿鬱雲虹(루전울운홍) : 누각과 궁전에 구름과 무지개 솟아오른다
熾昌二百載(치창이백재) : 불꽃처럼 번창한 이백여 년
赫業行其雄(혁업행기웅) : 빛난 업적이 이렇게도 웅장하도다
治風遍宇內(치풍편우내) : 다스리던 풍교가 사해에 두루 미치고
文物盛寰中(문물성환중) : 예악과 문물은 온 세상에 가득하도다
天子朝月朔(천자조월삭) : 천자는 초하룻날 조회를 보아
曉闢明光宮(효벽명광궁) : 새벽에 명광궁이 활짝 열리는구나
鳴環集百辟(명환집백벽) : 옥패소리 울리니 사방에서 제후가 모여들고
拂霧朝群公(불무조군공) : 안개를 헤치고 뭇 공경들이 조회한다
仗引鉤陳轉(장인구진전) : 의장이 구진을 인도하여 돌아나오자
鍾鳴閶闔通(종명창합통) : 종이 울려 대궐문으로 통해지는구나
黼座擁裔雲(보좌옹예운) : 보좌엔 오색 구름 옹위 하여
怳若日出東(황약일출동) : 마치 해가 동쪽에서 솟는 듯하구나
遠人重譯至(원인중역지) : 먼 나라 사람들 위해 역관이 와서
萬里來觀風(만리래관풍) : 만 리를 와서 문물을 구경을 하는구나
庭實列貢篚(정실렬공비) : 뜰에는 실로 조공 폐백이 줄지어 늘어서
拜舞瞻重瞳(배무첨중동) : 배알하며 천자를 우러러본다
嗟爾箕封客(차이기봉객) : 아, 우리 기자 나라 사람들에게
渥澤偏其洪(악택편기홍) : 끼친 은택 유달리 크도다
微禹吾其魚(미우오기어) : 우의 치수 아니었으면 우리는 고기밥 신세니
感涕祝華嵩(감체축화숭) : 감격에 찬 눈물로써 만수무강을 비나이다
東海尙揚波(동해상양파) : 동해에선 아직도 난리가 있어
中丞受彤弓(중승수동궁) : 중승이 공을 세워 붉은 활을 받았다
願言宣九伐(원언선구벌) : 원컨대, 널리 토벌하여
終使除群兇(종사제군흉) : 여러 흉한 도적을 깨끗이 없애주소서
耕鑿再粒民(경착재립민) : 백성들 농사지어 밥 먹이면서
永頌吾皇功(영송오황공) : 영원히 우리 황제의 공을 찬송드립니다

 

 

통주(通州)-허균(許筠)
통주에서-허균(許筠)

通州控帝州(통주공제주) : 통주는 황성을 끼고
轉餉此咽喉(전향차인후) : 곡식을 운반하는 중요한 길목이다
廛市陳蕃貨(전시진번화) : 시장에는 외국 물건 널려져 있고
江橋集海舟(강교집해주) : 강의 다리에는 바다의 배들이 모여든다
逢人皆越客(봉인개월객) : 만나는 사람은 모두가 월나라 사람
沽酒上津樓(고주상진루) : 술 사 들고 진루로 올라보노라
遊子空留聽(유자공류청) : 길손이 공연히 머물러 듣노니
蕭蕭兩鬢秋(소소량빈추) : 두 귀밑머리에 찾아오는 쓸쓸한 가을 바람

 

 

계주(薊州)-허균(許筠)
계주에서-허균(許筠)

向晩譙笳咽(향만초가인) : 저물녘, 성에 피리소리 울리자
翩翩探騎旋(편편탐기선) : 나풀나풀 정탐병이 도는구나
山低天襯薊(산저천친계) : 산은 낮아 하늘은 계주에 붙고
野曠樹浮燕(야광수부연) : 들판은 넓어 나무는 연경에 뜨있구나
漸覺皇居近(점각황거근) : 황성이 가까움을 점점 깨닫게 되니
還敎客寢便(환교객침편) : 나그네 잠자리도 편안해지는구나
漁陽豪俠地(어양호협지) : 어양은 협객들이 사는 땅이라
擊鼓尙鏜然(격고상당연) : 북소리가 아직도 두둥둥 울리는구나

 

 

영평부(永平府)-허균(許筠)
영평부에서-허균(許筠)

盧龍城裏日初曛(로룡성리일초훈) : 노룡성 안에 날 저물자
右北山頭結陣雲(우북산두결진운) : 우북산 꼭대기에 뭉게구름 모이나
共說單于來牧馬(공설단우래목마) : 모두들 말하기를, 오랑캐 와서 말 먹이며
漢家誰是李將軍(한가수시리장군) : 한 나라의 이장군이 누구냐고 말한다네

 

 

산해관(山海關)-허균(許筠)
산해관에서-허균(許筠)

地理臨滄海(지리림창해) : 땅은 바다에 임해있는데
長垣接固原(장원접고원) : 긴 담장은 고원에 맞닿았구나
關防嚴暴客(관방엄폭객) : 관방은 난폭한 놈에 엄하고
管鑰壯重門(관약장중문) : 관약은 겹겹문이 튼튼하도다
四野桑麻室(사야상마실) : 사방 들엔 상마의 집
連營戊己屯(련영무기둔) : 잇닿은 집들은 무기고이로다
太平無戰伐(태평무전벌) : 태평하여 전쟁이 없어
民物荷聖恩(민물하성은) : 백성들과 여러 가지 임금의 은혜로다
絶塞開雄鎭(절새개웅진) : 변방에 웅대한 진지가 열려 있고
重關設巨防(중관설거방) : 중요한 관문이라 방어망도 거대하구나
治兵副都尉(치병부도위) : 군사를 맡은 이는 부도위요
留鑰職方郞(류약직방랑) : 열쇠를 쥔 사람은 직방랑이로다
邑屋歌蕃曲(읍옥가번곡) : 읍의 집에서는 번곡을 부르고
津橋稅浙商(진교세절상) : 진교에는 절강 상인들에게 세금을 물린다
遠客胡不樂(원객호불악) : 먼 나그네 어찌 즐겁지 않으리오
賖酒勸君賞(사주권군상) : 술을 주며 맛 좀 보라 권하는구나

 

 

행산(杏山)-허균(許筠)
행산에서-허균(許筠)

遠客愁無睡(원객수무수) : 먼 길 나그네 시름겨워 잠도 오지 않고
新涼入鬢絲(신량입빈사) : 올 해의 차가운 바람은 귀밑머리 찾아든다
雁聲天外遠(안성천외원) : 기러기 소리 하늘 밖에 멀어지고
蟲語夜深悲(충어야심비) : 밤 깊어 벌레 소리 처량도 들려온다
勳業時將晩(훈업시장만) : 공업을 세우기에는 때 장차 늦어지고
漁樵計亦遲(어초계역지) : 어부와 나무꾼으로 돌아갈 계획도 늦어진다
起看河漢轉(기간하한전) : 일어나 바라보니 은하수는 돌아가고
曉角動城埤(효각동성비) : 새벽 고동소리는 성벽에 요동치는구나

 

 

영원성(寧遠城)-허균(許筠)
영원성-허균(許筠)

橫梢走馬驀長坡(횡초주마맥장파) : 달리는 말 채찍질 하여 긴 둑 내달아
年少相逢意氣多(년소상봉의기다) : 소년들 서로 만나니 의기가 양양하구나
笑脫羅衫沽美酒(소탈라삼고미주) : 웃으며 비단 두루막 벗고 맛있는 술 사
倡樓留唱女郞歌(창루류창녀랑가) : 청루에 머물러 쉬면서 여랑가를 부르는구나

 

 

북진보관왕묘(北鎭堡關王廟)-허균(許筠)
북진보 관왕의 사당-허균(許筠)

門前古碣臥苔中(문전고갈와태중) : 문 앞의 옛 비석 이끼 속에 깔려있고
蕭颯叢林一畝宮(소삽총림일무궁) : 소조한 풀숲에 한 이랑 묘궁터로구나
殿角幡幢明夕照(전각번당명석조) : 전각의 깃발은 저녁 노을에 눈부시고
墻頭杉檜響凄風(장두삼회향처풍) : 담 머리엔 삼나무와 회나무의 찬 바람 소리로다
丹靑畫壁雲雷壯(단청화벽운뢰장) : 단청한 그림 벽에는 구름과 뇌성 요란하고
香火空堂鬼物雄(향화공당귀물웅) : 향불 타는 빈 사당에 괴물이 웅장하도다
莫把紙錢招怨魄(막파지전초원백) : 종이 돈으로 원한에 사무친 혼백 부르지 말라
杜鵑啼血野花紅(두견제혈야화홍) : 두견새 울어 피 토하여 들꽃이 빨갛게 되었도다

 

 

광녕(廣寧)-허균(許筠)
광녕-허균(許筠)

都護曾開府(도호증개부) : 일찍이 도호부가 개설되고
中丞更築壇(중승경축단) : 중승이 다시 단을 쌓았었다
旌旗飜日暗(정기번일암) : 깃발들은 해를 가려 어둑하고
戈甲照霜寒(과갑조상한) : 갑옷 창은 서리 비쳐 싸늘하구나
碣石瞻天近(갈석첨천근) : 갈석산 쳐다보니 하늘은 가깝고
開原拓地寬(개원척지관) : 개원이라 개척한 땅 넓기도 하다
皇圖憑此壯(황도빙차장) : 중국 영토도 이 든든한 곳 의지하니
貙虎尙桓桓(추호상환환) : 호랑이 같은 군졸들 지금도 당당하도다

 

 

주필산가(駐驆山歌)-허균(許筠)
주필산의 노래-허균(許筠)

蒼山如龍回斷麓(창산여룡회단록) : 푸른산이 용처럼 끊어진 산기슭을 돌아
蜿蜒斗起臨平陸(완연두기림평륙) : 구불구불 치솟아 평평한 땅을 내려보는구나
何年萬乘勞遠征(하년만승로원정) : 어느 해가 되어야 만승천자 원정에 지칠까
往往行人拾遺鏃(왕왕행인습유족) : 이따금 길가는 사람들 떨어진 화살촉을 줍는구나
喜功好大不足云(희공호대불족운) : 공 세우기 좋아하는 수나라 황제 말할 나위 없고
秦皇漢武俱驕君(진황한무구교군) : 진시황과 한무제도 다같이 교만한 임금이로다
區區蜂蠆亦有毒(구구봉채역유독) : 작다고 얕볼 건가 봉채에도 독이 있는데
鳴鏑忽犯玄衣軍(명적홀범현의군) : 소리내며 날아가는 화살이 현의군에 침범했도다
安市城頭鼓紞紞(안시성두고담담) : 안시성 꼭대기선 북소리 둥둥 울려
英公黑麾沙塵暗(영공흑휘사진암) : 이적의 검은 깃발에 모래먼지 자욱하도다
百疋賜縜徒勸忠(백필사운도권충) : 비단 백필 주어서 부질없이 충성 권하여도
寧使蘇文驚破膽(녕사소문경파담) : 어찌 연개소문이 놀라 쓸개가 터지게 하리오
坐令銀海帶箭傷(좌령은해대전상) : 앉아서 명하다가 눈에 화살 맞아 상처입었다지만
此說之傳亦荒唐(차설지전역황당) : 이 말의 전해짐도 황당한 것이로다
玆行雖得一仁貴(자행수득일인귀) : 이 걸음에 설인귀는 얻었지만
其奈人歌武媚娘(기내인가무미낭) : 사람들이 측천무후 비웃어 노래하니 어찌하리오
太子宮中銅馬咽(태자궁중동마인) : 태자궁 앞에는 동마가 목이 메어 울고
房州城中日如血(방주성중일여혈) : 방주성 안에는 해빛이 핏빛처럼 붉었구나
泉下阿☐亦有言(천하아☐역유언) : 저승에 간 양제도 할 말 있으려나
唐室之存僅一髮(당실지존근일발) : 당 나라 왕실의 보존이 겨우 간발의 차이로다

 

 

고평(高平)-허균(許筠)
고평-허균(許筠)

大野通蒲類(대야통포류) : 큰 들판은 포류로 통하고
長墻限槿原(장장한근원) : 긴 담장은 우리나라땅을 경계짓는구나
風悲邊馬動(풍비변마동) : 바람소리 구슬프니 말이 설레고
日落虜塵昏(일락로진혼) : 해가 넘어가니 오랑캐 땅 먼지일어 깜깜하다
未賦從軍樂(미부종군악) : 종군의 즐거움을 읊지 못하니
徒傷去國魂(도상거국혼) : 나라를 떠나가는 마음만 상하는구나
哀笳數聲發(애가수성발) : 슬픈 피리소리 몇 가락 울려퍼지니
不夕掩譙門(불석엄초문) : 저녁 때도 아닌데 망루의 문을 닫는구나

 

 

회원관(懷遠關)-허균(許筠)
회원관-허균(許筠)

設鎭臺隍壯(설진대황장) : 대황시 웅장한 곳에 진을 치니
防胡節制强(방호절제강) : 절제사는 강하도다, 오랑캐 막는구나
土風餘俠窟(토풍여협굴) : 지방 풍속에 의협심 남아있고
民俗雜氈鄕(민속잡전향) : 민간습속에 야만성이 섞여있구나
旅館人誰問(려관인수문) : 여관을 묻는이가 누가 있으리오
殊方歲漸涼(수방세점량) : 이역이라 한해도 서늘해 간다
孤燈照無睡(고등조무수) : 외론 등불 비추어 잠은 오지않아
候雁已南翔(후안이남상) : 가을철 기러기는 벌써 남으로 날아간다

 

 

두관참(頭關站)-허균(許筠)
두관참에서-허균(許筠)

川流漭沆野蒼茫(천류망항야창망) : 냇물은 넘실거리고 벌판은 아득한데
古戌悲笳斷客腸(고술비가단객장) : 옛 수자리 슬픈 피리 나그네 간장을 끊는다
始覺塞城秋候早(시각새성추후조) : 변방의 가을철은 이렇게도 빠른가
夜深蛩韻已依床(야심공운이의상) : 밤 깊으니 뀌뚜라미 소리 침상에 들려온다

 

 

도강작(渡江作)-허균(許筠)
강을 건너며 짓다-허균(許筠)

今日日之良(금일일지량) : 오늘은 일진이 좋은 날
我車儼載脂(아차엄재지) : 내 수레에 넉넉히 기름칠했다
紛然冠盖至(분연관개지) : 떠들썩하게 관리들이 줄지어 와서
祖道江之湄(조도강지미) : 전별잔치를 강가에서 벌여주는구나
長波隘連舫(장파애련방) : 긴 물결엔 배들이 들어차 막히고
簫鼓中流悲(소고중류비) : 중류에 울리는 북소리 구슬프구나
勸君湏盡觴(권군회진상) : 권하노니, 이 술잔은 다 비워야 하네
親愛從此辭(친애종차사) : 정다운 사람들과 이제는 떠나야한다니
前途杳何許(전도묘하허) : 갈 길은 아득한데 얼마나 되는가
燕薊路逶遲(연계로위지) : 연경과 계주는 너무도 먼 곳이도다
丈夫貴壯遊(장부귀장유) : 대장부는 장한 외유를 귀히여기는데
兒女徒傷離(아녀도상리) : 아녀자는 이별을 서러워하는구나
篙師起引棹(고사기인도) : 사공은 일어나 노를 저으니
頃刻越川抵(경각월천저) : 순식간에 압록강을 넘어가는구나
回首古長城(회수고장성) : 고개 돌려 옛날의 긴 성을 바라보니
瞑靄沉垣埤(명애침원비) : 어둑한 아지랑이 성가퀴에 잠기었도다
日落關塞黑(일락관새흑) : 해 지니 국경지방은 깜깜해 오고
夜深徒旅飢(야심도려기) : 밤 깊으니 오직 나그네는 배가 고프구나
猶憐故鄕月(유련고향월) : 고향달은 언제나 정다우니
萬里來相隨(만리래상수) : 만리 먼 곳까지 나를 따라오는구나

 

 

의주(義州)-허균(許筠)
의주에서-허균(許筠)

暑氣淸長簟(서기청장점) : 더운 기운도 대자리에서는 맑아지고
江煙濕遠林(강연습원림) : 강 안개는 먼 숲속으로 스며드는구나
拓窓今夜月(척창금야월) : 창을 여니 오늘 밤 달이 휘영청 밝고
欹枕故人心(의침고인심) : 베개 베고 누우니 옛친구 그리워지는구나
悄悄悲秦贅(초초비진췌) : 쓸쓸하구나, 처가살이 서글픈 일
寥寥動越吟(요요동월음) : 적적하구나, 월의 노래 절로 생기는구나
夜涼無客夢(야량무객몽) : 서늘한 밤, 나그네 꿈 못 이루는 것은
非爲候蟲音(비위후충음) : 벌레 울음 기다리는 마음만은 아니로다

 

 

등전문령(登箭門嶺)-허균(許筠)
전문령에 올라서-허균(許筠)

行登箭門嶺(행등전문령) : 달려가 전문령을 올라보니
斜日照前旌(사일조전정) : 지는 해가 앞 깃발을 비춘다
萬里他鄕路(만리타향로) : 만리 떨어진 타향길에
三年久客情(삼년구객정) : 삼 년 기나긴 나그네 심정이로다
雲邊開大陸(운변개대륙) : 구름 가에 큰 땅이 열리고
波外隱關城(파외은관성) : 파도 밖은 관성이 보일 듯 말 듯 하구나
民吏多相識(민리다상식) : 백성과 아전들 아는 사람 많아서
慇懃滿路迎(은근만로영) : 은근히 길에 가득 몰려와 맞아주는구나

 

 

거련관(車輦館)-허균(許筠)
거련관에서-허균(許筠)

暫借松陰臥(잠차송음와) : 잠간 솔 그늘 빌려 누우니
都忘畏日烘(도망외일홍) : 여름 햇볕 두려운 줄 전혀 몰랐다
脩然殘夢破(수연잔몽파) : 깨끗이 남은 꿈 깨어버리니
吹面有和風(취면유화풍) : 얼굴로 불어드는 부드러운 바람이라

 

 

선천(宣川)-허균(許筠)
선천-허균(許筠)

纔入宣川館(재입선천관) : 선천객사에 들어서자
軒窓野望通(헌창야망통) : 창 밖으로 넓은 들판 훤히 보인다
喬林藏畏景(교림장외경) : 큰 숲은 따가운 햇볕 감추고
高檻受長風(고함수장풍) : 높은 난간은 긴 바람을 맞는구나
爽覺詩功進(상각시공진) : 시힘이 솟는 것 상쾌히 느끼고
慵抛酒聖中(용포주성중) : 술에 취하여 게으름을 날려버렸다
坐看階藥爛(좌간계약란) : 뜰에 가득 작약꽃 바라보니
何似妓裙紅(하사기군홍) : 어찌 기생의 다홍치마 같은가

 

 

정주도중(定州道中)-허균(許筠)
정주가는 길에-허균(許筠)

王程冉冉出西關(왕정염염출서관) : 사신길 달려 서관을 벗어나자
昨夜鄕園夢裏還(작야향원몽리환) : 어젯밤 고향길 꿈 속에 다녀왔다.
暖日羸驂行正苦(난일리참행정고) : 더워 지친 말로 걷기도 괴로우니
天邊何處定州山(천변하처정주산) : 하늘가 어느곳이 정주 고을 산천일까

 

 

 

공강정(控江亭)-허균(許筠)
공강정에서-허균(許筠)

江煙漠漠水悠悠(강연막막수유유) : 강 안개 아득하고 강물은 유유한데
江上紅亭雨未休(강상홍정우미휴) : 강위의 붉은 정자에 비가 그치지 않는다
歸雁豈能忘北土(귀안기능망북토) : 돌아가는 저 기러기 북녘 땅 잊겠는가
落花偏自逐東流(락화편자축동류) : 지는 꽃은 저대로 동류수를 따라가는구나
謾吟王粲登樓恨(만음왕찬등루한) : 누에 오른 왕찬 한을 노래하노라니
區耐虞飜去國愁(구내우번거국수) : 나라 떠난 우번의 한을 견디어 보노라
萬里嚴程天共遠(만리엄정천공원) : 엄정가는 만리길이 하늘처럼 멀어
雲邊何處是皇州(운변하처시황주) : 구름가 어느곳이 임금 계신 고을일까

 

 

백상루(百祥樓)-허균(許筠)
백상루에서-허균(許筠)

高樓架層霄(고루가층소) : 높은 누대 하늘까지 솟고
下有長江流(하유장강류) : 아래로 긴 강이 흘르는구나
暇日扶我病(가일부아병) : 쉬는 날은 병든 몸 끌고 나가
攀陟聊淹留(반척료엄류) : 더위잡고 올라라 고요히 쉰다
仰看香爐峯(앙간향로봉) : 고개 들어 향로봉 바라보니
紫翠雲外浮(자취운외부) : 붉고 푸른 것이 구름 밖에 더다닌다
何當理蠟屐(하당리랍극) : 어찌하면 밀랍 신 신고
直躋最上頭(직제최상두) : 바로 최고봉을 올라볼까
仙期若汗漫(선기약한만) : 그러나 신인의 기약은 가득하고
黯然生覊愁(암연생기수) : 막연하게도 얽매인 세상살이 수심겨워라
緬想獨徘徊(면상독배회) : 홀로 서성이며 배회하니
西日下簾鉤(서일하렴구) : 서녘의 지는 해는 발 아래로 내려간다
人生無百歲(인생무백세) : 사람의 삶 백년도 안되건만
物役爲煩憂(물역위번우) : 물욕에 팔려 근심만 번거롭도다
名利赤徒爾(명리적도이) : 명예 이익 모두가 헛된 것이거늘
奈何不早休(내하불조휴) : 어찌하여 그만두질 못했었던가
行將畢王事(행장필왕사) : 이제라도 벼슬살이 마치면
投紱歸巖幽(투불귀암유) : 인띠 풀고 산골로 돌아가리라
寄語鶴上人(기어학상인) : 학을 탄 사람에게 말 부치노니
肯許仍丹丘(긍허잉단구) : 기꺼이 선경놀이 허락할 것인가

 

 

객야기사(客夜記事)-허균(許筠)
객사의 밤에 적다-허균(許筠)

燈花悄悄閃風帷(등화초초섬풍유) : 등잔불은 시름겨워 바람부는 휘장에 흔들리고
夢罷窓櫳缺月窺(몽파창롱결월규) : 꿈을 깨어라, 조각달은 창롱을 엿보는구나
陌上遊人歸未盡(맥상유인귀미진) : 언덕 위 노는 사람들은 돌아갈 걸 잊은 듯
夜闌猶聽玉參差(야란유청옥참차) : 밤 늦도록 옥퉁소 소리 듣고 있는 듯하도다.

 

 

서경도중(西京道中)-허균(許筠)
평양가는 길에-허균(許筠)

牢落栽松院(뢰락재송원) : 창망하도다, 재송원이여
凄涼南浦橋(처량남포교) : 처량하다, 남포의 다리로다
江山如宿昔(강산여숙석) : 강산은 옛날과 같은데
臺館半焚燒(대관반분소) : 관사는 절반이나 불타버렸구나
謾自悲興廢(만자비흥폐) : 부질없이 흥망을 슬퍼할 뿐
憑誰破寂寥(빙수파적요) : 누구를 의디하여 적막함 벗어날까
東風知客意(동풍지객의) : 봄바람은 나그네의 뜻을 알고
吹送木蘭橈(취송목란요) : 목란의 놀이배로 불어오는구나

 

 

등광원루(登廣遠樓)-허균(許筠)
광원루에 올라-허균(許筠)

高閣憑風逈(고각빙풍형) : 높은 누각 바람에 의지하여 아득하니
閑登不待招(한등불대초) : 한가로이 올라가 부름을 기다리지 않는다
亂離餘舊賞(란리여구상) : 난리가 겹치어도 옛 정취는 남아
吟眺始今朝(음조시금조) : 오늘 아침에야 두루 돌아보노라.
雨洗靑山近(우세청산근) : 비에 씻긴 청산은 눈앞에 가깝고
煙沈綠野遙(연침록야요) : 연기에 잠긴 푸른 들판은 아득하도다.
翛然忘遠客(소연망원객) : 먼 나그네 시름 소연히 잊어버리니
西日下長橋(서일하장교) : 서쪽에 지는 해는 긴 다리 아래로 내려간다

 

 

추야작(秋夜作)-허균(許筠)
가을밤에 짓다-허균(許筠)

高閣夜沈沈(고각야침침) : 높은 누각 밤이라 침침하고
衰燈伴客吟(쇠등반객음) : 시든 등잔만 길손의 짝이로다
寒宵坐惆悵(한소좌추창) : 차가운 방에 쓸쓸히 앉아있으니
風雨滿西林(풍우만서림) : 비바람이 서쪽 숲에 가득하도다

 

 

야객(夜客)-허균(許筠)
밤손님-허균(許筠)

客夜人無睡(객야인무수) : 나그네 신세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아
微霜枕簟寒(미상침점한) : 첫서리 베개와 이불마저 싸늘하구나
故林歸不得(고림귀불득) : 고향 동산에 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新月共誰看(신월공수간) : 새로운 저 달을 누구와 같이 바라보랴
北里調砧急(북리조침급) : 북녘 마을 다듬잇소리 빠르기도 한데
西隣品笛殘(서린품적잔) : 서녘 이웃 피릿소리에 여운이 남는구나
倚楹仍悵望(의영잉창망) : 기둥에 몸 기대어 서글피 바라보니
鳴雁在雲端(명안재운단) : 울고 가는 기러기 구름 끝을 날는구나

 

 

방림(芳林)-허균(許筠)
향기로운 숲-허균(許筠)

入峽春猶在(입협춘유재) : 산골에 드니 아직 봄기운
沿溪草正芳(연계초정방) : 개울 따라 풀이 막 향기롭구나
歇鞍投古驛(헐안투고역) : 말 안장 풀고 옛 역사에 투숙하여
欹枕借匡床(의침차광상) : 침상 빌어 베개에 몸을 기대었네
怪鳥多幽響(괴조다유향) : 이상한 새의 그윽한 울음소리
高林有晩香(고림유만향) : 높은 숲에 늦향기 가득하구나
勞生幾時息(노생기시식) : 피곤한 인생 어느 때나 쉬게 되나
雙鬢惜流光(쌍빈석류광) : 두 귀밑 머리에 흐르는 세월 아쉽기만 하여라

 

 

定州(정주)-許筠(허균)
정주-許筠(허균)

此來無興愛良宵(차래무흥애량소) : 여기 오니 좋은 밤 즐길 기분 나지 않아
萬里關山路正遙(만리관산로정요) : 만 리 관산 길, 길이 너무나 멀도다.
錦瑟玉觴無意緖(금슬옥상무의서) : 거문고 옥 술잔에도 기분이 나지 않는데
燭花如淚背屛蕉(촉화여루배병초) : 촛불 꽃은 눈물처럼 병풍의 파초를 등졌구나

 

 

良策(양책)-許筠(허균)
좋은 책락-許筠(허균)

空館夜超超(공관야초초) : 빈 공관이라 밤이 길기도 하여
羅帷捲寂寥(라유권적요) : 고요에 못 견디어 비단 휘장을 걷는다.
初寒微霰集(초한미산집) : 첫 추위에 싸락눈 조금 내리고
永夜朔風驕(영야삭풍교) : 북풍은 교만스레 긴 저녁 내내 불어오네.
飄泊情長倦(표박정장권) : 떠돌자니 정은 노상 게을러지고
譏讒骨已銷(기참골이소) : 모략 속에 내 뼈는 이미 녹아버렸구나.
關河信難越(관하신난월) : 관하를 넘기 참 어려우니
天外絳河遙(천외강하요) : 하늘 밖 은하수 아스라이 멀도다.

 

 

守歲(수세)-許筠(허균)
한해를 지키며-許筠(허균)

舊歲隨更盡(구세수경진) : 묵은 해 밤과 다 가버리고
新年趁曉來(신년진효래) : 새해는 새벽 따라 오는구나.
光陰眞可惜(광음진가석) : 세월이란 참으로 아까운 것
客子轉堪哀(객자전감애) : 나그네 몸 더욱 서글퍼지는구나.
寶瑟頻移柱(보슬빈이주) : 보슬은 자주자주 기둥을 옮기고
香醪正滃杯(향료정옹배) : 맛있는 술은 잔에 넘칠 듯 찰랑이네.
明朝已三十(명조이삼십) : 밝은 아침이면 이미 내 나이 서른 살
衰病兩相催(쇠병량상최) : 늙음과 질병이 서로 재촉 하는구나.

 

 

留別(유별)-許筠(허균)
유별-許筠(허균)

此行何日更歸來(차행하일경귀래) : 이제 가면 어느 날 다시 오게 되려는가
淚酒羅衫意轉哀(루주라삼의전애) : 비단 적삼에 눈물 뿌려 마음은 한결 서글퍼지네.
行到江南逢驛使(행도강남봉역사) : 강남에 와 역의 관리 만나 보니
暗香先入嶺頭梅(암향선입령두매) : 그윽한 향기 먼저 고개 머리 매화에서 풍겨오네.

 

 

客夜(객야)-許筠(허균)
객야-許筠(허균)

客夜人無睡(객야인무수) : 객지의 밤에 잠은 오지 않고
微霜枕簟寒(미상침점한) : 첫서리에 이부자리마저 싸늘하구나.
故林歸不得(고림귀불득) : 고향땅 가려 해도 못 가는 신세
新月共誰看(신월공수간) : 새로운 달을 누가와 함께 보겠는가.
北里調砧急(북리조침급) : 북녘 마을 다듬질 소리 급한데
西隣品笛殘(서린품적잔) : 서녘 이웃에 피리소리 여운 남기네.
倚楹仍悵望(의영잉창망) : 기둥에 몸을 의지하고 추창히 바라보니
鳴雁在雲端(명안재운단) : 울며 가는 저 기러기 구름 끝을 나는구나

 

 

落花8(낙화8)-許筠(허균)
낙화-許筠(허균)

墮葉因風各自飛(타엽인풍각자비) : 떨어진 잎 바람 따라 각자 날아
一飄簾幕一汚池(일표염막일오지) : 하나는 주렴 위로 하나는 못 쪽으로 날아가네.
誰知榮辱皆天分(수지영욕개천분) : 누가 알리, 영화와 치욕이 모두 천분인 것을
不是封姨用意爲(불시봉이용의위) : 바람의 신인 봉이 마음 써서 그런 것 결코 아니라네.

 

 

落花7(낙화7)-許筠(허균)
낙화-許筠(허균)

桃李爭誇富貴容(도이쟁과부귀용) : 복사꽃 오얏꽃 다투며 부귀를 자랑하며
笑他篁竹與寒松(소타황죽여한송) : 다른 대나무 소나무를 쓸쓸하다 비웃는구나.
須臾九十春光盡(수유구십춘광진) : 잠깐사이 봄 석 달이 지나가버리고
惟有松篁翠萬重(유유송황취만중) : 오직 소나무 대나무만 있어 만 겹 푸르구나.

 

 

落花6(낙화6)-許筠(허균)
낙화-許筠(허균)

繁紅流落委香塵(번홍유락위향진) : 번거로운 붉은 꽃잎 날아 떨어져 향불 재 속에 버려지니
風雨無情斷送春(풍우무정단송춘) : 비바람도 무정해라, 기어이 꺾어 봄을 보내버려 하는구나.
不是漢皐捐佩女(불시한고연패녀) : 주나라의 정교보에게 한고에서 패물 준 여인 아닐진대
定應金谷墮樓人(정응금곡타루인) : 응당 금곡원 누대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이리라.

 

 

落花5(낙화5)-許筠(허균)
낙화-許筠(허균)

怊悵深紅更淺紅(초창심홍경천홍) : 서글프다, 짙붉음이 연붉음 되고
一時零落小庭中(일시영락소정중) : 일시에 다 떨어져 작은 뜰에 가득 찼네
不如留着靑苔上(불여유착청태상) : 검푸른 이끼 위에 머무는 만 못하거니
猶勝吹吹西復東(유승취취서복동) : 여전히 좋은 듯 바람 따라 서에서 또 동으로 불어드네.

 

 

落花4(낙화4)-許筠(허균)
낙화-許筠(허균)

怨蝶慇懃護墮芳(원접은근호타방) : 원한 많은 나비들 은근히 떨어진 꽃 감싸주며
小園斜日斷人腸(소원사일단인장) : 작은 동산 지는 해에 사람 애가 끊어지네
東君似識傷春意(동군사식상춘의) : 동황(東皇)님은 상춘의 마음 알기라도 하는 듯
吹作回風舞一場(취작회풍무일장) : 회오리바람 불어 한 마당 춤이라도 추어보세.

 

 

落花3(낙화3)-許筠(허균)
낙화-許筠(허균)

凄風苦雨晩來多(처풍고우만래다) : 처량한 바람 지겨운 비가 저녁에 많이 내려
墮素如煙泣綺羅(타소여연읍기라) : 비단에 떨어진 꽃이 안개 속 눈물짓는 여인 같아라.
應是三郞西幸蜀(응시삼랑서행촉) : 아마도 당현종 삼랑이 서쪽으로 행차하듯
玉顔零落馬嵬坡(옥안영락마외파) : 임금님은 마외 언덕에서 영락을 당하셨나보다.

 

 

落花2(낙화2)-許筠(허균)
낙화-許筠(허균)

落地飄紅點點香(락지표홍점점향) : 땅에 져서 날리는 붉은 꽃, 꽃마다 향기롭고
晩風吹去上銀床(만풍취거상은상) : 늦바람 불어와 은상 위로 올라오네.
誰知寂寞臨春閣(수지적막임춘각) : 누가 알리오, 쓸쓸히 봄 누각에 올라
留得徐娘半面粧(유득서낭반면장) : 양나라 원제의 비인 서랑의 반만 화장한 얼굴 얻을 줄을

 

 

落花1(낙화1)-許筠(허균)
낙화-許筠(허균)

橫風作意擺嬋娟(횡풍작의파선연) : 비낀 바람 움직인 뜻은 고운 꽃을 흔들고
紅雨霏霏落滿天(홍우비비낙만천) : 붉은 비 부슬부슬 하늘에 가득 떨어지네.
恰似瑤池春宴散(흡사요지춘연산) : 요지의 봄 잔치 모임에 흩어지려는 듯
墮鬟飄髻積金筵(타환표계적금연) : 쪽진 머리 귀 밑머리 금 자리에 쌓인 듯 하네

 

 

夢作(몽작)-許筠(허균)
꿈에 지음-許筠(허균)

門前碑臥綠苔中(문전비와록태중) : 문 앞에는 비석이 넘어져 푸른 이끼 덮였고
蕭風叢林一畝宮(소풍총림일무궁) : 숲 속엔 차가운 바람불고 한 이랑 궁(宮)이 있네.
殿角幢幢明夕照(전각당당명석조) : 전각(殿角)의 깃발에 저녁 빛 밝고
牆頭杉檜響凄風(장두삼회향처풍) : 담장 머리 삼나무는 찬 바람 소리 울리네.
丹靑畫壁雲雷壯(단청화벽운뇌장) : 단청이라 그림 벽에 구름 번개 웅장하고
香火空堂鬼物雄(향화공당귀물웅) : 향불 핀 빈 당은 괴물처럼 웅장하네
莫把紙錢招怨魂(막파지전초원혼) : 지전(紙錢)을 가지고 원혼(怨魂)을 부르지 마소
杜鵑啼血野花紅(두견제혈야화홍) : 두견이 울어 피를 쏟아 들꽃들이 붉어있네

 

 

移小桃用惜落花韻(이소도용석낙화운)-許筠(허균)
앵두를 옮겨심으며 석락화의 운을 쓰다-許筠(허균)

淺植幽厓奈爾何(천식유애내이하) : 응달에 얕게 묻힌 네 신세를 어찌할까
孤根無路近陽和(고근무로근양화) : 외로운 뿌리 따뜻한 빛을 가까이할 길이 없어라.
移栽隙地勤封護(이재극지근봉호) : 틈새 땅에 옮겨 심고 부지런히 돋워주니
爲待朱明結子多(위대주명결자다) : 여름철을 기다려 열매 많이 맺기 위해서라오

 

 

苦雨用望水韻(고우용망수운)-許筠 許筠(허균)
고우로 망수의 운을 쓰다-許筠 許筠(허균)

北客愁無奈(북객수무내) : 북녘 나그네 시름을 어찌하라고
連宵雨驟過(연소우취과) : 밤마다 비가 이리도 급히 지나가나.
林昏銜暮瘴(임혼함모장) : 숲은 깜깜한데 저문 안개 머금고
溝溢漲晨波(구일창신파) : 도랑물 불어나 새벽 물결 넘치는구나.
委地紅將盡(위지홍장진) : 땅에 떨어진 붉은 꽃 거의 다 지고
侵堦碧漸多(침계벽점다) : 섬돌을 올라오니 푸른 이끼 차츰 많아진다.
空吟海嶠作(공음해교작) : 지은 시만 홀로 부질없이 읊으니
誰與報羊何(수여보양하) : 누구와 함께 양하에게 알려줄까.

 

 

見紅桃用紫微韻(견홍도용자미운)-許筠(허균)
홍도를 보고 자미의 운을 쓰다-許筠(허균)

誰種緗桃殿晩春(수종상도전만춘) : 누가 상도를 심어 늦은 봄을 지키는가,
絳紗幽袖映紅巾(강사유수영홍건) : 붉은 비단 그윽한 소맷자락 홍건을 비추누나.
牆頭日出嫣然笑(장두일출언연소) : 담장 머리에 해 오르자 방실방실 웃음 지으며
何啻他鄕見故人(하시타향견고인) : 타향에서 친구들을 본 것 같도다.

 

 

用答春韻(용답춘운)-許筠(허균)
답춘의 운을 쓰다-許筠(허균)

瘴雲霾日晦還明(장운매일회환명) : 습한 구름이 날을 흐려 어둡다가 다시 밝아지고
莫說春光比兩京(막설춘광비량경) : 이 봄 빛을 두 서울과 견주어 말하지 말게나.
能使逐臣腸數盡(능사축신장수진) : 쫓겨난 신하의 애간장을 자주 닳게 하나니
隔林終日怪禽聲(격림종일괴금성) : 숲 너머에선 종일토록 괴이한 새의 소리 들려온다.

 

 

文集完用閑吟韻(문집완용한음운)-許筠(허균)
문집이 완성되어 한음의 운을 쓰다-許筠(허균)

四十三年攻翰墨(사십삼년공한묵) : 사십삼 년을 글과 그림에 전력하니
千金弊帚枉勞心(천금폐추왕노심) : 천금과 폐추가 마음 노고를 헛되이 하는구나.
詩文十卷方書了(시문십권방서료) : 열 권의 사와 문을 이제야 다 마치니
從此惺翁不復吟(종차성옹불복음) : 성옹은 이제부터 다시 짓지 않겠소

 

 

望咸山用望江州韻(망함산용망강주운)-許筠(허균)
함산을 바라보며 망주운의 운을 쓰다-許筠(허균)

春泥泱沆沒平原(춘니앙항몰평원) : 봄이라 흙탕물은 온 벌판을 묻고
行過龍城縣郭門(행과용성현곽문) : 행렬은 용성 고을 성문을 지나간다.
指點兩山烽燧下(지점량산봉수하) : 양산의 봉수대(烽燧臺)를 손가락질하여 가리키는데
蒼蒼官樹暝煙昏(창창관수명연혼) : 창창한 관로의 길 숲에 저녁연기 어둑하다

 

 

見紅桃用紫微韻(견홍도용자미운)-許筠(허균)
홍도를 보고 견미의 운을 쓰다-許筠(허균)

誰種緗桃殿晩春(수종상도전만춘) : 누가 상도를 심어 전각에 늦은 봄을 만들어
絳紗幽袖映紅巾(강사유수영홍건) : 붉은 비단 소맷자락 홍건을 비추는구나.
牆頭日出嫣然笑(장두일출언연소) : 담장 머리 해 오르자 방실방실 웃음 짓네.
何啻他鄕見故人(하시타향견고인) : 어찌 잠시라도 타항에서 벗님네를 볼 것이냐

 

 

用答春韻(용답춘운)-許筠(허균)
담춘의 운을 사용하여-許筠(허균)

瘴雲霾日晦還明(장운매일회환명) : 습한 구름 해 가려 어둡다가 다시 밝아
莫說春光比兩京(막설춘광비량경) : 봄빛을 두 서울에다 견주어 말하지 말라
能使逐臣腸數盡(능사축신장수진) : 쫓겨난 신하 자주 애타게 하니
隔林終日怪禽聲(격림종일괴금성) : 숲 너머 종일토록 기이한 새소리 들려온다

 

 

省中遇雨(성중우우)-許筠(허균)
성안에서 비를 만나-許筠(허균)

睡起高軒爽(수기고헌상) : 졸다가 일어니 높은 마루 서늘하고
遙空殷遠雷(요공은원뢰) : 먼 공중에 우레 소리 은은히 들려오네.
疾風驅雨至(질풍구우지) : 빠른 바람에 비 몰고 밀려드는데
驚電漏雲回(경전루운회) : 놀란 번개 돌아 구름 사이로 새어나오네..
泱漭奔流漲(앙망분류창) : 드넓게 달려온 물은 넘실거리고
離披宿莽摧(리피숙망최) : 여기저기 어지럽게 풀은 쓰러져 있네
斜陽天忽捲(사양천홀권) : 지는 해는 문득 활짝 걷히고
霽色滿蓬萊(제색만봉래) : 갠 하늘빛 봉래궁에 가득하구나.

 

 

全州(전주)-許筠(허균)
전주-許筠(허균)

沛鄕湯沐國陪都(패향탕목국배도) : 고향의 탕목이요 나라의 부도이라
佳氣爲龍壯帝圖(가기위룡장제도) : 아름다운 용의 기운 제업이 웅장하다.
鷄犬至今知邑里(계견지금지읍리) : 개와 닭도 이제 읍리를 알고
風雲長爲護枌楡(풍운장위호분유) : 바람과 구름 영원토록 분유를 호위하네.
時淸館宇曾巍煥(시청관우증외환) : 맑은 개울 집들은 우뚝하고 빛나는데
亂後山川尙鬱紆(란후산천상울우) : 난리 후 산천만은 아직도 울창하구나.
南服雄藩稱第一(남복웅번칭제일) : 남방의 이방 국가로는 제일이라 일컬으니
詞臣安得借銅符(사신안득차동부) : 문신이 어찌하면 장군이 되어볼까.

 

 

郭山東廂(곽산동상)-許筠(허균)
곽산의 동편 행랑-許筠(허균)

錦席奏哀絲(금석주애사) : 바단 방석에 들려오는 애진한 거문고 소리
胡姬復在玆(호희부재자) : 고운 오랑캐 계집 또다시 여기 있구구나.
秋雲平海盡(추운평해진) : 가을구름 잔잔한 바다에 끝없이 깔리고
暝色赴杯遲(명색부배지) : 어둔 빛은 술잔에 더디 드는구나.
見慣人情熟(견관인정숙) : 익히 바라보니 인정이 친숙해지고
驩終客意悲(환종객의비) : 즐거움이 다하니 나그네 마음 서글퍼지는구나.
寒巖桂花在(한암계화재) : 차가운 골짜기에 계화가 피어 있으니
招隱有新詩(초은유신시) : 숨어 사는 선비 불러 새로운 시나 지어보세.

 

 

過圃隱舊宅歌(과포은구댁가)-許筠(허균)
포은의 구택을 지나며-許筠(허균)

圃隱先生在麗末(포은선생재려말) : 포은 정 선생은 고려 말엽에
忠節凜然不可奪(충절름연불가탈) : 충절이 늠름하여 빼앗을 수 없도다
豈惟理學傳不傳(기유리학전불전) : 어찌 성리학만을 전하였을까.
公在巖廊國幾活(공재암랑국기활) : 조정에 임 계실 땐 나라도 살았도다.
神嵩王氣五百終(신숭왕기오백종) : 송악산의 왕기는 오백 년에 끝이 나고
金尺夜下壽康宮(금척야하수강궁) : 금척(金尺)은 하룻밤에 수강궁으로 내려갔네.
公也垂紳不動色(공야수신불동색) : 공은 은띠 띠고 태연자약하였고
隱若虎豹蹲深叢(은약호표준심총) : 호랑이가 깊은 숲에 도사린 듯 깊이 앉아 있었네.
善竹橋頭一腔血(선죽교두일강혈) : 선죽교 다리 위의 한 줄기 피
名與西山並崷崒(명여서산병추줄) : 이름은 우뚝하여 서산과 나란하여
城邑南遷朝市空(성읍남천조시공) : 도성이 남으로 옮겨 조정의 거리는 비었지만
遺祠香火猶芬苾(유사향화유분필) : 옛 사당의 향불은 아직도 끊임없구나.
我從四耐尋宅基(아종사내심댁기) : 나는 사내 형을 따라 집터를 찾아보니
頹垣野蔓生離離(퇴원야만생리리) : 무너진 담장에 풀 덩굴만 엉기었네.
山風蕭蕭落日黑(산풍소소락일흑) : 산바람은 쓸쓸하고 지는 해 어둑해져
暝煙冪樹啼禽悲(명연멱수제금비) : 저문 연기 나무숲 덮고 새는 슬피 우는구나.
悄然愴古抆我淚(초연창고문아루) : 초연히 옛일을 슬퍼하노니 내 눈물을 닦노니
仁者必祿天何醉(인자필록천하취) : 어진 사람에게 복 주는 법인데 하느님이 취하셨나
男兒一死固難逃(남아일사고난도) : 남아의 한 번 죽음 원래 피하기 어려워라
寧欲將身徇忠義(녕욕장신순충의) : 차라리 죽을진대 충의를 따르련다.
君不見三軍府裏羅劍鋩(군불견삼군부리라검망)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삼군이 정부안에 무기를 벌여놓고
忘君易嫡違天常(망군역적위천상) : 임금을 속이고 적자를 바꿔치어 강상을 거역하였네.
締構纔畢謝晦死(체구재필사회사) : 음모가 끝나자 공모자인 사회가 죽고 마니
中橋暴死非人殃(중교폭사비인앙) : 선죽교 가운데서 난폭히 죽은 것이 사람 재앙 아니라네.

 

 

平壤旅夜(평양려야)-許筠(허균)
평양 여관의 밤-許筠(허균)

夕霽天氣冷(석제천기랭) : 저녁 비 개자 날씨 싸늘해지고
閒房來遠風(한방래원풍) : 한가한 여관방에 먼 바람이 찾아든다.
誰知今夜會(수지금야회) : 누가 알리, 오늘밤 이 자리에
却有故人同(각유고인동) : 뜻밖에 임과 함께 만날 줄을
月射金蕉白(월사금초백) : 차가운 파초에 달빛 비춰 하얗고
花依鳳蠟紅(화의봉랍홍) : 꽃은 밀랍 촛불에 엉기어 빨갛구나.
鄕園望不極(향원망불극) : 고향 동산 바라봐도 끝이 없어
消息碧雲中(소식벽운중) : 소식은 저 푸르른 구름 속에 전해오려나.

 

 

入東堂作(입동당작)-許筠(허균)
동당에 들어가 짓다-許筠(허균)

通才自古罕兼優(통재자고한겸우) : 겸비한 인재는 예로부터 드문 것인데
文體三場矧異流(문체삼장신이류) : 하물며 문체는 삼장의 시험이 다 다름에야
涑水詞章非四六(속수사장비사륙) : 사마광의 문장은 사륙체가 아니고
江都文學只春秋(강도문학지춘추) : 강도 시대의 문학은 다만 춘추이로다.
專門或可追轅伏(전문혹가추원복) : 전문으로는 혹시 원고(轅固)와 복생(伏生)을 따를지언정
博習安能繼孔周(박습안능계공주) : 박습이야 어찌 공자와 주공을 계승하리오.
日下半庭蠶食葉(일하반정잠식엽) : 뜰 절반에 해 내리자 누에는 뽕잎 갉아 먹고
幾人雄猛奪頭籌(기인웅맹탈두주) : 몇 사람이나 용맹하게 윗자리를 빼앗을까. 

 

 

有懷2(유회2)-許筠(허균)
감회가 있어-許筠(허균)

倦鳥何時集(권조하시집) : 지친 새는 어느 때 모여들지 모르고
孤雲且未還(고운차미환) : 외로운 구름은 흘러 다시 돌아오지 않는구나.
浮名生白髮(부명생백발) : 덧없는 이름 때문에 백발만 늘어나고
歸計負靑山(귀계부청산) : 돌아갈 내 계획은 청산을 저버리는구나.
日月消穿榻(일월소천탑) : 세월은 부질없이 흘러만 가고
乾坤入抱關(건곤입포관) : 천지는 벌써 밤이 되는구나.
新詩不縛律(신시불박률) : 새로운 시는 음률에 구속되지 않아
且以解愁顔(차이해수안) : 근심스런 얼굴을 풀어주는구나

 

 

有懷1(유회1)-許筠(허균)
감회가 있어-許筠(허균)

功名非我輩(공명비아배) : 공명은 우리들 것 아니니
書史且相親(서사차상친) : 책이나 우선 가까이해보자
泉壑待逋客(천학대포객) : 자연은 은자를 기다리는데
津梁誰故人(진량수고인) : 진량에는 친구들 누구 있던가.
危途靑鬢換(위도청빈환) : 위태한 인생길에 푸른 귀밑 변해가고
舊業白雲貧(구업백운빈) : 옛 살림살이 흰 구름 따라 점점 빈한하다.
但自賦歸去(단자부귀거) : 다만 귀거래를 노래한다면
山中瑤草春(산중요초춘) : 산속의 아름다운 풀들은 봄빛이라네.

 

 

在郡夕作(재군석작)-許筠(허균)
시골에 있으면서 저녁에 짓다-許筠(허균)

靑煙一抹起官庖(청연일말기관포) : 푸른 연기 한 가락 관청의 부엌에 일더니
麛卵熊蹯薦案肴(미란웅번천안효) : 사슴 새끼 곰 발바닥 안주로 올렸구나
飽飯不容公事了(포반불용공사료) : 배불리 밥만 먹고 공사에는 등한하니
詩人應有素餐嘲(시인응유소찬조) : 시인에게 응당 소찬의 조롱이 있으리라

 

 

聞罷官作1(문파관작1)-許筠(허균)
파관 소식을 듣고 짓다-許筠(허균)

久讀修多敎(구독수다교) : 불경 수다교를 오랫동안 읽었지만
因無所住心(인무소주심) : 마음에 확고히 얻은 마음이 없도다.
周妻猶未遣(주처유미견) : 불교 믿은 주옹은 아내를 보내지 않았고
何肉更難禁(하육갱난금) : 제나라 하윤은 고기를 금식하기 어려웠다네.
已分靑雲隔(이분청운격) : 벼슬과 멀어진 것을 이미 아는데
寧愁白簡侵(녕수백간침) : 관리를 탄핵하는 글 어찌 근심하랴
人生且安命(인생차안명) : 인생이란 제 운명에 편안해야 하리니
歸夢尙祇林(귀몽상기림) : 돌아갈 꿈은 여전히 기림 숲 속 절간에 있네.

 

 

聞罷官作2(문파관작2)-許筠(허균)
파관 소식을 듣고 짓다-許筠(허균)

禮敎寧拘放(예교녕구방) : 예교(禮敎)가 어찌 자유를 구속하리오
浮沈只任情(부침지임정) : 성하고 쇠하는 것 다만 정에 맡길 뿐이라네.
君須用君法(군수용군법) : 그대는 그대 법을 써야 할 것이고
吾自達吾生(오자달오생) : 내 스스로 내 삶을 살아야 한다네.
親友來相慰(친우래상위) : 친한 벗은 와서 서로 위로하는데
妻孥意不平(처노의불평) : 처자들은 마음속으로 불평하는구나.
歡然若有得(환연약유득) : 흐뭇하여 얻은 바가 있는 듯하니
李杜幸齊名(이두행제명) : 다행히 이백과 두보가 이름을 날리네..

 

 

大關嶺(대관령)-許筠(허균)
대관령-許筠(허균)

五日行危棧(오일행위잔) : 닷새 동안 아스라한 잔도를 건너
今朝出大關(금조출대관) : 오늘 아침 대관령을 벗어났구나.
弊廬俄在眼(폐려아재안) : 내 집이 어느새 눈에 보이니
遠客忽開顔(원객홀개안) : 먼 나그네 갑자기 얼굴을 펴는구나.
鉅野諸峯底(거야제봉저) : 큰 들이 여러 봉우리들 밑에 있다면
長天積水間(장천적수간) : 긴 하늘은 쌓인 물 사이에 있구나.
微茫煙靄外(미망연애외) : 희미하고 아득히 아지랑이 밖으로
一點四明山(일점사명산) : 한점 솟은 산이 바로 사명산이구나.

 

 

用代春贈韻(용대춘증운)-許筠(허균)
대춘증의 운을 빌어-許筠(허균)

雪後山光浸水光(설후산광침수광) : 눈 온 뒤라 산색은 물빛에 젖어들고
酴醾將白阿槐黃(도미장백아괴황) : 여미는 희어지고 아괴는 노랗구나
請君莫恨江南遠(청군막한강남원) : 그대들 강남땅이 멀다고 한탄 말라.
風景元來似故鄕(풍경원래사고향) : 풍경이 원래 고향과 비슷하다오.

 

 

憶鑑湖(억감호)-許筠(허균)
감호를 기억하며-許筠(허균)

我家住在鑑湖西(아가주재감호서) : 내 집은 감호의 서쪽에 있으니
千巖萬壑如會稽(천암만학여회계) : 온갖 바위와 골짜기는 회계와 같구나.
愛看魚鳥放山澤(애간어조방산택) : 물고기와 새를 구경하기를 좋아하여 산과 못을 찾으니
笑遺名利同筌蹄(소유명리동전제) : 명예와 이욕을 남기는 것은 비웃나니 통발 같은 구속이라네.
偶然獻賦蓬萊殿(우연헌부봉래전) : 우연히 부(賦)를 지어 봉래전에 올렸더니
爭賞彩筆如虹霓(쟁상채필여홍예) : 뛰어난 문체 무지개 같다하여 다투어 칭찬하네.
金門避世困索米(금문피세곤색미) : 대궐에서 피하니 쌀도 사지 못해 궁하여
東洛十聽秋蛩嘶(동락십청추공시) : 동락에서 십년을 가을벌레 소리 들었노라
素衣化盡鬢如雪(소의화진빈여설) : 흰 옷은 새까맣고 살쩍 털은 눈 같이 희어지니
回首祖州歸夢迷(회수조주귀몽미) : 조주를 회상하매 돌아가는 꿈 희미하도다.
空敎轉喉屢觸諱(공교전후루촉휘) : 공연스레 입을 놀려 여러 번 기휘(忌諱)를 저촉하니
未免懲熱仍吹虀(미면징열잉취제) : 징벌이 바람 불 듯 불고 나물 버무리듯 함을 면치 못하네.
燕雀徒誇集阿閣(연작도과집아각) : 제비와 참새 같은 무리들은 저 언덕 누각에 서로 모인 것만 자랑하고
神龍或自蟠泥沙(신용혹자반니사) : 신성한 용들은 혹 스스로 모래 진흙을 밝는구나.
人間萬事固如是(인간만사고여시) : 인간의 모든 일이 진실로 이와 같으니
有脚不踏靑雲梯(유각불답청운제) : 다리는 있는데도 청운의 사다리를 밟지 못하네.
鬼門關外客路闊(귀문관외객로활) : 귀문관 밖에는 나그네 다니는 길만 널찍하니
同時俊髦猶金犀(동시준모유금서) : 같은 시대 젊은 인제 금서대(金犀帶)를 둘렀는데
樊翮翩翾不自擧(번핵편현불자거) : 울안에 갇힌 새는 스스로 날지 못하네.
哀鳴幾憶南枝棲(애명기억남지서) : 슬피 울며 몇 번이나 남쪽 가지의 둥지를 그리워했던가.
黃茆蕭蕭川接海(황묘소소천접해) : 누른 잔디는 쓸쓸하고 맷물은 바다 닿아
瘴煙盡黑蘆笋齊(장연진흑로순제) : 대낮에도 습기 많고 갈대 순은 오복하구나.
客軒煩墊坐深甑(객헌번점좌심증) : 객실은 사뭇 더워 깊은 시루 속에 앉은 듯
桐陰日午啼彩鷄(동음일오제채계) : 한낮의 오동나무 그늘에 빛깔 고운 닭이 우는구나.
忍飢無處通假借(인기무처통가차) : 아무리 굶주려도 빌릴 곳은 전혀 없고
鰻魚苦臭田多稗(만어고취전다패) : 장어는 냄새 사납고 논에는 피도 많구나.
思君見君不可得(사군견군불가득) : 그대가 그리워 만나려 해도 만날 길이 없어
有酒孰共斟玻瓈(유주숙공짐파려) : 술은 있는데 그 누구와 함께 옥잔을 나눌까.
半生離合足悲喜(반생이합족비희) : 반생의 이별과 만남이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소.
長嗟人事極多睽(장차인사극다규) : 아, 사람의 일이란 너무도 어긋나는 일이 많아
陽和布澤但蘇槁(양화포택단소고) : 온화한 기운 북돋우고 은혜 입혀서 시든 물건 살려내려
東路自此鞭歸驪(동로자차편귀려) : 여기서 동쪽 길로 말을 몰아 돌아가리라
故園松菊尙三逕(고원송국상삼경) : 옛 동산 소나무와 국화꽃은 아직도 세 오솔길
自斷晩歲安農畦(자단만세안농휴) : 늙어지면 농사터에 편안히 묻히기로 스스로 결심했소.
風流丘壑吾輩事(풍류구학오배사) : 산에서의 풍류가 우리들의 일상이니
鵬路莫更思攀躋(붕로막갱사반제) : 벼슬길에 오를 생각 다시는 말아야지
我自康健子亦壯(아자강건자역장) : 내 스스로 강건하고 그대 또한 건장하니
探勝不妨相提携(탐승불방상제휴) : 서로 손 마주 잡고 좋은 경치 찾는 것 방해나 받지 말게나.
蟾宮藍島舊有約(섬궁람도구유약) : 섬강의 푸른 섬에 묵을 언약 있는데
幾日伴子同耕犁(기일반자동경리) : 몇날이 되어야 그대와 짝이 되어 밭을 갈게 될까.

 

 

漫吟(만음)-許筠(허균)
한가히 읊다-許筠(허균)

睡罷高樓上(수파고루상) : 높다란 누각에서 잠이 깨니
閑吟意轉慵(한음의전용) : 한가한 읊으니 생각이 느긋하다
捲簾黃鳥語(권렴황조어) : 주렴을 걷으니 꾀꼬리 노래하고
憑檻綠陰濃(빙함록음농) : 난간에 기대니 푸른 기운 짙어지네.
亂水通平野(란수통평야) : 물들은 넓은 들을 통해 가는데
孤煙羃遠峯(고연멱원봉) : 외로운 연기는 먼 산봉우를 감싸는구나.
同心二三子(동심이삼자) : 마음이 맞는 두세 사람이
臨眺且從容(림조차종용) : 함께 구경을 하니 조용하기도 하다.

 

 

聽杜鵑用畫眉鳥韻(청두견용화미조운)-許筠 (허균)
두견의 울음을 듣고 화미조의 운을 빌리다-許筠 (허균)

流血飜身樹樹移(유혈번신수수이) : 피 흘리고 몸 뒤집어 나무들을 옮겨가니
前聲乍亮後聲低(전성사량후성저) : 앞소리는 살짝 높고 뒷소리는 나직하구나.
萬事不如歸去好(만사불여귀거호) : 만사가 돌아가는 일보다 더 좋지는 않아서
隔窓終夜盡情啼(격창종야진정제) : 창 너머서 밤새도록 목 놓아 정을 다해 울어제친다.

 

 

飮新茶2(음신차2)-許筠(허균)
새 차를 마시며-許筠(허균)

消渴能呑七椀無(소갈능탄칠완무) : 목이 말라 거뜬히 일곱 잔을 마시니
屛除煩痞勝醍醐(병제번비승제호) : 답답증을 없애주니 제호보다 낫도다.
湖南採摘嘗偏美(호남채적상편미) : 호남에서 따온 것이 유달리 좋다 하니
從此天池口僕奴(종차천지구복노) : 이로부터 천지는 입맛의 상전과 종이로다

 

 

飮新茶1(음신차1)-許筠(허균)
새 차를 마시며-許筠(허균)

新劈龍團粟粒鋪(신벽용단속립포) : 용단을 새로 쪼개어 속잎을 달여 놓으니
品佳能似密雲無(품가능사밀운무) : 좋은 품종이 밀운보다 낫도다.
依然雪水閑風味(의연설수한풍미) : 의연히 눈 녹인 물의 한가한 풍미이니
遮莫諸傖號酪奴(차막제창호락노) : 모든 사람들이여 낙노라 부르지 마시라.

 

 

백사정(白沙汀) -許筠(허균)
백사정-許筠(허균)

雪積廻灣淨(설적회만정) : 눈이 쌓여 둥그런 물굽이 깨끗한데
瓊鋪闊岸紆(경포활안우) : 넓고 오목한 강 언덕에 구슬 깔렸구나
銀河通玉府(은하통옥부) : 은하수는 옥부 통해 흐르고
瑤海湛氷壺(요해담빙호) : 보석같은 바다 얼음병보다 맑아
履迹行疑陷(이적행의함) : 신발자국 다니면 빠질 듯 하고
松梢看似無(송초간사무) : 소나무 가지는 보아도 없는 것 같구나.
長歌答明月(장가답명월) : 길게 노래불러 밝은 달에 답하니
吾是述郞徒(오시술랑도) : 내가 곧 화랑 술랑의 무리로다.

 

 

망해암(望海庵) -許筠(허균)
망해암-許筠(허균)

西峯蘭若試攀緣(서봉란약시반연) : 서쪽 봉우리의 절 망해암에 올라보니
杯視滄溟意豁然(배시창명의활연) : 잔같이 넓고 푸른 바다에 가슴속이 후련하다.
萬里帆檣通上國(만리범장통상국) : 만 리 먼 돛단배는 중국과 통하는데
六時鍾梵動諸天(육시종범동제천) : 육시의 범종소리는 제천을 울리는구나
濟州隱約波濤外(제주은약파도외) : 제주도는 보일 듯 말 듯 파도 저 밖이요
蓬島微茫杖屢前(봉도미망장루전) : 봉래도는 아득하나 지팡이 바로 앞이구나.
始覺壯遊窮宇宙(시각장유궁우주) : 이 장관을 구경함이 우주를 꿰뚫는 일임을 알았으니
欲招笙鶴下群仙(욕초생학하군선) : 피리와 학을 불러 신선들을 불러오고 싶어라

 

 

여회(旅懷)-許筠(허균)
나그네 회포-許筠(허균)

瑤絃一曲動文君(요현일곡동문군) : 거문고 한 곡조 탁문군을 불러일으키니
關塞蒼蒼日欲 (관새창창일욕훈) : 국경관문은 아득하고 날조차 저물어간다.
落葉滿庭門早掩(낙엽만정문조엄) : 낙엽은 뜰에 가득 문 일찍 닫혔는데
雁聲偏向客中聞(안성편향객중문) : 기러기 소리 유달리 나그네에게만 들려온다.

 

 

閭陽(여양)-許筠(허균)
여양-許筠(허균)

塞近秋防緊(새근추방긴) : 변방 근처에 가을 방어 급한데
途長客意厭(도장객의염) : 여장은 길어 나그네 마음 싫증만 난다
馬煩知日昃(마번지일측) : 말은 지치고 해는 기울고
鵰急覺風嚴(조급각풍엄) : 매가 빨리 날아가니 바람이 심하구나.
廢堡聞城角(폐보문성각) : 황폐한 성의 보루에는 호각소리 들리고
荒鄽辨酒렴(황전변주렴) : 황폐한 성에는 주막의 깃발 펄럭인다.
探詩自排悶(탐시자배민) : 시를 찾아 스스로 근심 잊나니
不害撚寒髥(불해년한염) : 찬 수염을 쓰다듬는 것도 해롭지는 않으리

 

 

通州(통주)-許筠(허균)
통주-許筠(허균)

通州控帝州(통주공제주) : 통주 고을은 황성을 끼고 있어
轉餉此咽喉(전향차인후) : 곡식을 수송하는 요긴한 길목이다
廛市陳蕃貨(전시진번화) : 시장에는 외국 물건 널려있고
江橋集海舟(강교집해주) : 강의 다리에는 바닷배 모여든다.
逢人皆越客(봉인개월객) : 사람들을 만나면 다 월나라 사람 같아
沽酒上津樓(고주상진루) : 술 사 들고 진의 누각으로 올라온다.
遊子空留聽(유자공류청) : 나그네 고연히 머무르며 들으니
蕭蕭兩鬢秋(소소량빈추) : 두 귀밑머리에 스며든 가을이 쓸쓸하다

 

 

佛頂樓(불정누)-許筠(허균)
불정대-許筠(허균)

衆谷星門大(중곡성문대) : 많은 골짜기라 별 뜨는 문은 크고
千巖佛頂尊(천암불정존) : 천 개의 바위라 불정은 높기만 하다
諸峰齊日觀(제봉제일관) : 여러 봉우리 해 돋는 곳과 높이가 같고
瀑布瀉天門(폭포사천문) : 폭포의 물은 하늘 문으로 쏟아지는구나.
窅爾雲平壑(요이운평학) : 구름은 평평한 골짜기에 까려 아득하고
俄然海浴旽(아연해욕돈) : 이윽고 바다에서 해가 돋는구나
坐來星斗滅(좌래성두멸) : 앉아보니 뭇별은 다 사라지고
曙色動鷄園(서색동계원) : 새벽빛이 계원에 밝아오는구나

 

 

成佛庵(성불암)-許筠(허균)
성불암-許筠(허균)

深樹僧房小(심수승방소) : 울창한 숲에 승방은 작고
層巒石路分(층만석로분) : 층층 둘러싼 산에 돌길이 나뉘어 있네.
中宵初見月(중소초견월) : 밤이 깊어서야 달을 보았는데
滄海闊無雲(창해활무운) : 넓은 바다는 활짝 트여 구름 한점 없네.
香氣諸天降(향기제천강) : 향기는 하늘에서 내려오지만
鐘聲下界聞(종성하계문) : 종소리는 땅에서 들리어오네.
冷然人境外(냉연인경외) : 시원하다, 인간 밖 세상이라
不恨久離群(불한구리군) : 사람들과 오래 떨어진 것이 한스럽지 않네.

 

山映樓(산영루)-許筠(허균)
산영루-許筠(허균)

赤葉驚秋晩(적엽경추만) : 단풍에 늦가을인 줄 알았으니
黃花似故園(황화사고원) : 국화꽃 활짝 피어 내 고향 동산 같구나.
盤筵羅郡餼(반연나군희) : 소반에는 고을 선물이 차려있고
菘葍御僧飱(숭복어승손) : 배추는 스님들 만찬으로 올라있구나
亞使知名早(아사지명조) : 아사는 이미 이름을 알고 지내고
齋郞宿契敦(재랑숙계돈) : 재랑도 우이가 두터운 사이라네.
偶然成勝集(우연성승집) : 우연히 좋은 모임 가졌으니
落日澰淸尊(낙일렴청존) : 지는 해에 맑은 술잔엔 술이 흘러넘치네.

 

摩訶衍(마하연)-許筠(허균)
마하연-許筠(허균)

寶刹排雲上(보찰배운상) : 절이 구름을 밀치고 솟아
珠宮奪日鮮(주궁탈일선) : 집은 햇빛을 받아 곱기도 하다
經函明貝葉(경함명패엽) : 경전함에는 패엽경이 빛나고
爐燼郁栴檀(노신욱전단) : 화로에는 전단향이 그윽하다
僧侶參禪坐(승려참선좌) : 승려는 참선에 들고
吾仍借榻眠(오잉차탑면) : 나는 걸상을 빌려 잠이 들었다
夜闌風藾發(야란풍뢰발) : 밤이 이슥해지자 바람소리 들리고
笙鶴下三天(생학하삼천) : 신선의 학이 세상으로 내려오네.

 

 

火龍潭(화룡담)-許筠(허균)
화룡담-許筠(허균)

深泓渟黛綠(심홍정대록) : 깊은 웅덩이, 물이 짙은 눈썹 같아
俯瞰何幽幽(부감하유유) : 내려보니 너무나 으슥하다.
兩岸滑而仄(양안골이측) : 둘러싼 두 벼랑은 미끄럽고 비탈져
竦身難久留(송신난구류) : 몸이 오싹 오래 있기조차 두려워라
其下毒龍蟠(기하독룡반) : 그 아래에는 독룡이 도사려
霜葉不得投(상엽불득투) : 단풍진 나뭇잎도 못 던진다네.
遊者愼跼足(유자신국족) : 구경꾼들 부디 발 조심하시어
無爲龍所爲(무위룡소위) : 용의 희생이 되지 마소.

 

 

偶興(우흥)-許筠(허균)
우연히 흥에 겨워-許筠(허균)

南窓睡起葛巾低(남창수기갈건저) : 남창에서 잠에서 깨니 갈건이 내려오고
滿院濃陰樹色迷(만원농음수색미) : 원에 가득한 짙은 그늘은 풀색과 혼돈되네.
蹤迹久淹滄海上(종적구엄창해상) : 바닷가에 오랫동안 종적을 감추고 사는데
鄕山遙在碧峯西(향산요재벽봉서) : 고향산은 멀리 푸른 봉우리 서쪽에 있다
花殘菜隴黏香蝶(화잔채롱점향접) : 채소밭에 꽃이 남아 나비가 날아들고
日轉桑園響午鷄(일전상원향오계) : 뽕나무 밭에 햇빛 드니 낮닭이 우는구나.

 

 

感興(감흥)-許筠(허균)
마음의 흥취-許筠(허균)

中夜起四望(중야기사망) : 한밤에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니
晨辰麗晴昊(신진려청호) : 새벽별들이 맑은 하늘에 곱다
溟波吼雪浪(명파후설랑) : 어두운 바다의 물결은 눈보라에 소리치고
欲濟風浩浩(욕제풍호호) : 건너려니 바람이 심하구나.
少壯能幾時(소장능기시) : 젊음이 얼마나 지탱할까
沈憂使人老(침우사인로) : 근심에 잠기나 사람이 늙는구나.
安得不死藥(안득불사약) : 어찌하면 불사약을 얻어
乘鑾戱三島(승란희삼도) : 난새 타고 삼도를 노닐어 볼까나

 

 

客夜記事(객야기사)-許筠(허균)
나그네가 밤에 적다-許筠(허균)

燈花悄悄閃風帷(등화초초섬풍유) : 등불은 시름겨워 바람 이는 휘장 안에서 껌뻑껌뻑
夢罷窓櫳缺月窺(몽파창롱결월규) : 꿈 깨보니 창문 안을 조각달이 엿보네
陌上遊人歸未盡(맥상유인귀미진) : 길가에 노는 사람 돌아갈 일 잊고서
夜闌猶聽玉參差(야란유청옥참차) : 밤늦도록 여전히 옥퉁소 소리 들고있다

 

 

車輦館(거련관)-許筠(허균)
거련관-許筠(허균)

暫借松陰掛(잠차송음괘) : 솔 그늘 잠깐 빌어 누웠더니
都忘畏日烘(도망외일홍) : 햇볕 따가운 것 전부 잊었소
脩然殘夢破(수연잔몽파) : 남은 잠, 꿈속에서 완전히 깨니
吹面有和風(취면유화풍) : 얼굴에 부는 바람 따뜻하여라

 

 

小桃(소도)-許筠(허균)
소도화-許筠(허균)

二月長安未覺春(이월장안미각춘) : 이월 서울은 채 봄도 느끼지 못하는데
墻頭忽有小桃顰(장두홀유소도빈) : 담장엔 작은 복숭아꽃 눈짓하네
嫣然却向詩翁笑(언연각향시옹소) : 아리따운 웃음 도리어 늙은 시인을 향하여 웃네
如在天涯見故人(여재천애견고인) : 마치 먼 타향에서 옛 친구 본 듯

 

 

出郊(출교)-許筠(허균)
교외에 나와-許筠(허균)

秋熟郊原喜(추숙교원희) : 가을이 무르익어 들판은 즐겁고
歡聲達近聞(환성달근문) : 기뻐서 지르는 소리 가까이로 들려오네
家家傾白酒(가가경백주) : 집집마다 막걸리 기울이고
處處割黃雲(처처할황운) : 곳곳마다 누런 벼를 베는구나
可笑無田客(가소무전객) : 우습구나, 이 몸은 땅 하나 없는 나그네 신세
空書乞米文(공서걸미문) : 헛되이 쌀 구걸 편지만 쓰다니
城東借三畝(성동차삼무) : 성 동쪽에 세 이랑 밭을 빌려서
何日事耕耘(하일사경운) : 어느 날에 밭 갈고 김매어볼까

 

 

聞罷官作(문파관작)-許筠(허균)
파직 소식을 듣고-許筠(허균)

禮敎寧拘放(예교녕구방) : 예절의 가르침이 어찌 자유를 구속하랴
浮沈只任情(부침지임정) : 인생의 부침은 단지 마음에 달려있네
君須用君法(군수용군법) : 그대들은 마땅히 그대들 법을 따르고
吾自達吾生(오자달오생) : 나는 스스로 나의 삶을 이루리라
親友來相慰(친우래상위) : 친구들은 와서 위로하고
妻孥意不平(처노의불평) : 처자와 자식들은 속으로 불평을 하네
歡然若有得(환연약유득) : 기쁘게 스스로 만족함은
李杜幸齊名(이두행제명) : 이백이나 두보처럼 이름 얻어리라

 

 

杏山(행산)-許筠(허균)
행산에서-許筠(허균)

身客愁無睡(신객수무수) : 몸은 나그네 신세, 근심으로 잠 못 이루고
新凉入鬢絲(신량입빈사) : 가을 찬 기운 귀밑털을 파고드네
雁聲天外遠(안성천외원) : 기러기 울음소리 하늘 밖으로 멀어지고
蟲語夜深悲(충어야심비) : 풀벌레 소리, 밤 깊어 더욱 슬퍼라
勳業時將晩(훈업시장만) : 공훈을 이루기는 때가 늦었고
漁樵計亦遲(어초계역지) : 고기잡고 나무하기 또한 늦었소
起看河漢轉(기간하한전) : 일어나 바라보니 은하수 돌아가고
曉角動城埤(효각동성비) : 새벽 나팔소리는 성벽을 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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