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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漢詩

변계량(卞季良) 수기 외

 

 

 

변계량(卞季良)

1369(공민왕 18)~ 1430(세종 12).
조선 초기의 문신.

정도전·권근의 뒤를 이어 조선초 관인문학을 좌우했던 인물이다. 20년 동안이나 대제학을 맡고 성균관을 장악하면서 외교문서를 쓰거나 문학의 규범을 마련했다. 본관은 밀양. 자는 거경(巨卿), 호는 춘정(春亭). 아버지는 검교판중추원사(檢校判中樞院事) 옥란(玉蘭)이며, 어머니는 제위보부사(濟危寶副使) 조석(曺碩)의 딸이다. 1385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교주부(典校主簿), 비순위정용랑장(備巡衛精勇郞將) 겸 진덕박사(進德博士)가 되었다. 1392년 조선 건국 때 천우위중령중랑장(千牛衛中領中郞將) 겸 전의감승(典醫監丞)이 되었다. 1407년(태종 7) 문과중시에 을과 제1인으로 뽑혀 당상관이 되고 예조우참의가 되었다. 태종말까지 예문관대제학·예조판서·의정부참찬 등을 지내다가 1420년(세종 2) 집현전이 설치된 뒤 집현전대제학이 되었다. 당대의 문인을 대표할 만한 위치에 이르렀으나 전대의 이색과 권근에 비해 격이 낮고 내용도 허약해졌다는 평을 받았다. 그에게 있어 문학은 조선 왕조를 찬양하고 수식하는 일이었다. 〈태행태상왕시책문 太行太上王諡冊文〉에서는 태조 이성계를 칭송하면서 조선 건국을 찬양했고, 경기체가인 〈화산별곡 華山別曲〉에서는 한양도읍을 찬양했다. 정도전에게 바친 〈봉정정삼봉 奉呈鄭三峰〉에서도 정도전이 완벽한 인재라고 칭송했다. 〈태조실록〉의 편찬과 〈고려사〉를 고치는 작업에 참여했고, 기자묘(箕子墓)의 비문과 〈낙천정기 樂天亭記〉·〈헌릉지문 獻陵誌文〉을 편찬했다. 저서에 춘정집〉 3권 5책이 있다. 거창의 병암서원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수기(睡起)-변계량(卞季良)

茆簷日靜小窓明(묘첨일정소창명) : 처마 끝에 해 뜨니 봉창이 밝아지고
窓外靑山作畫屛(창외청산작화병) : 창 밖에 푸른 산은 병풍이 되었구나
宿醉醒來時政午(숙취성내시정오) : 정오쯤에 숙취가 가시어서
手開爐火煖茶甁(수개노화난다병) : 화롯불 열어 놓고 찻물을 끓인다

 
 
설청(雪晴)-변계량(卞季良)

風急雪花飄若絮(풍급설화표야서) : 불어오는 강풍에 눈꽃은 솜처럼 날리고
山晴雲葉白於綿(산청운엽백어면) : 산이 개니 구름 잎사귀 솜보다 더 희구나
箇中莫怪無新句(개중막괴무신구) : 여기서 좋은 시 없음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佳興從來未易傳(가흥종내미역전) : 예부터 좋은 흥취 쉽게 전하지 못한다하네
 
 
초동우야(初冬雨夜)-변계량(卞季良)

旅窓冬夜靜(려창동야정) : 객창의 겨울밤은 고요하고
危坐轉悠哉(위좌전유재) : 무릎 꿇고 앉으니 갈수록 한적하다
夢斷三更雨(몽단삼갱우) : 삼경의 빗소리에 꿈에서 깨어
心驚十月雷(심경십월뇌) : 시월의 뇌성에 내 마음이 놀란다
壁燈熏散秩(벽등훈산질) : 벽에 걸린 등불은 흩어진 책들 그을리고
爐火沒深灰(노화몰심회) : 화로의 불씨는 깊은 재 안에 있고
少壯須勤力(소장수근력) : 젊을 때 부지런히 공부 할지니
光陰自解催(광음자해최) : 세월은 저절로 재촉해서 흘러간다
 
 
숙산사(宿山寺)-변계량(卞季良)

山半古時寺(산반고시사) : 산 속은 태반이 옛날 절이고
居僧多白頭(거승다백두) : 사시는 스님도 모두가 흰 머리
禪枝寒磬動(선지한경동) : 추녀에는 차가운 풍경소리 들리고
佛殿晩香浮(불전만향부) : 불전에는 저녁 향연이 피어오른다.
塔影中庭月(탑영중정월) : 뜨락에 달빛에 탑 그림자 생기고
松聲萬嶺秋(송성만령추) : 만산은 가을이라 솔잎소리 들려온다
隔林城市近(격림성시근) : 숲 너머 성시가 더욱 가까워져
一夜且淹留(일야차엄류) : 하룻밤 임시로 머물러 보노라
 
 

독좌정류선달(獨坐呈柳先達)-변계량(卞季良)
雨後靑靑苔色新(우후청청태색신) : 비 온 뒤 푸릇푸릇, 이끼 빛 새롭고
空庭惟有燕來頻(공정유유연내빈) : 빈 뜰에 제비만 빈번하게 날아드는구나
科頭箕踞茅簷畔(과두기거모첨반) : 관 안 쓴 채 처마머리 걸터앉아 있다가
時復題詩寄故人(시복제시기고인) : 때때로 다시 시 지어서 친구에게 보내노라

 
 
불출(不出)-변계량(卞季良)

幽意自多愜(유의자다협) : 한적한 마음 나로는 흡족한데
竟無賓客來(경무빈객내) : 끝내 손님은 찾아오지 않는구나
酒杯浮蟻嫰(주배부의눈) : 술잔에는 쌀알 둥둥 떠 있고
花朶近人開(화타근인개) : 꽃가지는 가까이서 꽃을 피운다
試筆添詩藁(시필첨시고) : 시험 삼아 시고에다 시를 써 보고
移牀掃石苔(이상소석태) : 평상을 옮겨 돌이끼 쓸어 냈도다
數旬仍不出(삭순잉부출) : 수십 일 동안을 그대로 나가지 않아
冠帶暗生埃(관대암생애) : 어느새 관대에 먼지가 쌓였구나
 
 
월야(月夜)-변계량(卞季良)

焚香一室足淸幽(분향일실족청유) : 한 바에 향불 피워 맑고도 그윽한데
衾簟涼生暑氣收(금점량생서기수) : 대자리에 차가워져 더위가 가시는구나
直到夜深難作夢(직도야심난작몽) : 밤 깊도록 잠들기도 어려워
月華星彩動新秋(월화성채동신추) : 환한 달빛 찬란한 별빛 초가을을 비추누나
 
 
신추우야(新秋雨夜)-변계량(卞季良)

忽忽逢秋意易悲(홀홀봉추의역비) : 갑자기 가을 되자 마음이 서글퍼지고
坐看楓葉落庭枝(좌간풍엽낙정지) : 앉아서 바라보니, 뜰 나뭇가지 떨어진다
算來多少心中事(산내다소심중사) : 마음 속 괴로운 심사 가만히 생각하는데
月暗疎窓夜雨時(월암소창야우시) : 달빛 어두워진 성긴 창가에 밤비가 내린다
 
 
신흥(晨興)-변계량(卞季良)

殘夜涼侵簟(잔야량침점) : 새벽 서늘한 기운 대자리에 들고
窓虛露氣通(창허노기통) : 창문이 비어 이슬 기운 스며든다
四鄰明宿火(사린명숙화) : 사방의 이웃에 등불을 밝고
萬井動晨鍾(만정동신종) : 마을마다 새벽종이 울려온다
日出疎煙外(일출소연외) : 엷게 낀 노을 밖에 해 떠오르고
秋生積雨中(추생적우중) : 지루한 장마 끝에 가을이 찾아왔다
幽棲忘盥櫛(유서망관즐) : 깊숙이 살다 보니 세수와 빗질도 잊었는데
客至强爲容(객지강위용) : 손님이 찾아와 억지로 단장했지요
 
 
야우(夜雨)-변계량(卞季良)

小雨冥冥久未晴(소우명명구미청) : 보슬비 부슬부슬 오랫동안 개이지 않아
連雲接塞暗重城(련운접새암중성) : 구름 떼 변방에 닿아 성마다 깜깜하여라
無端更向空階滴(무단갱향공계적) : 실없이 빈 계단에 또 빗방울 뿌리어
遮莫幽人夢不成(차막유인몽부성) : 숨어사는 사람의 꿈일랑 막지 말아라
 
 
감흥7(感興)7-변계량(卞季良)

千門桃與李(천문도여리) : 집집이 복숭아꽃 배꽃 피었는데
當春各爭媚(당춘각쟁미) : 봄을 맞아 제각기 아름다움 뽐낸다
兒女竟耽翫(아녀경탐완) : 아녀자들 모여서 구경을 하더니
爛熳誇富貴(난만과부귀) : 시끄럽게 서로들 부귀를 과시한다
一夕龍火飛(일석룡화비) : 어느 날 저녁에 뇌성벽력 일자
摧脫卽枯卉(최탈즉고훼) : 남김없이 떨어져 고목이 되었구나
不見南山松(부견남산송) : 남산의 소나무를 보지 못 했는가
歲寒含晩翠(세한함만취) : 겨울이 되어도 늦도록 푸른 빛 머금은 것을
 
 
감흥6(感興)6-변계량(卞季良)

綺樓何鮮明(기누하선명) : 화려한 누각 어찌 그리도 선명한가
照耀浮雲邊(조요부운변) : 뜬구름 가에까지 그 빛이 찬란하도다
樓中有佳女(누중유가녀) : 누대 안에 아리따운 여자 있어
容色妖且姸(용색요차연) : 그 얼굴과 몸매 요염하고도 고와라
一笑竟不發(일소경부발) : 한 번 웃음도 짓지 않으니
芳心誰爲傳(방심수위전) : 고운 마음 누구에게 전할러지 모른다
試取鳴琴彈(시취명금탄) : 시험 삼아 거문고를 가져다 연주하니
哀響飛靑天(애향비청천) : 서글픈 소리 푸른 하늘로 날아간다
願爲君子逑(원위군자구) : 바라건데, 군자의 배필 되어서
偕老終百年(해노종백년) : 한 평생 다하도록 함께 사는 일이라네
 
 
감흥5(感興)5-변계량(卞季良)

嶙峋有古柏(인순유고백) : 첩첩 산중에 묵은 측백나무
托根深山中(탁근심산중) : 깊은 계곡에 뿌리를 내렸구나
霜露日夜催(상노일야최) : 서리가 밤낮으로 막지마는
臥壑如蟄龍(와학여칩룡) : 웅크린 용처럼 계곡에 누었구나
豈乏梁棟材(개핍량동재) : 어찌하여 동량의 재목 못 될까
所嗟無良工(소차무량공) : 훌륭한 목수가 없어 한탄스럽다
我來久吁怪(아내구우괴) : 나 여기 와서 오래도록 이상히 여겼는데
柯葉嘶悲風(가엽시비풍) : 가지와 잎이 쓸쓸한 바람에 흐느끼는구나
棄捐勿復道(기연물복도) : 접어두고 다시는 얘기하지 말자
此恨今昔同(차한금석동) : 이런 한탄은 예나 지금 모두가 같은 것을
 
 
감흥4(感興)4-변계량(卞季良)

春蠶復秋蛾(춘잠복추아) : 봄철 누에 가을에는 나방되니
歲月無停期(세월무정기) : 세월은 그야말로 멈출 때가 없도다
人生非金石(인생비금석) : 인생은 쇠나 돌이 아니거니
少年能幾時(소년능기시) : 젊은 시절 그 얼마나 보낼 수 있으리오
馳名日拘束(치명일구속) : 명예에 치달아 날마다 얽매이니
靜言心傷悲(정언심상비) : 마음이 슬글퍼짐을 조요히 말해 본다
旣壯不努力(기장부노력) : 장성해서 학문에 노력하지 않아
白首而無知(백수이무지) : 백발이 되도록 아는 것이 전혀없도다
思之一長歎(사지일장탄) : 이를 생각하며 한 번 길게 탄식하며
庶幾來可追(서기내가추) : 앞으로 노력하여 쫓을 수 있기를 바라노라
 
 

감흥3(感興)3-변계량(卞季良)

瑞蓮出衆卉(서련출중훼) : 상서로운 연꽃, 초목 중에 뛰어나
不染亦不靡(부염역부미) : 물들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도다
結根非其地(결근비기지) :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서
生此東海涘(생차동해사) : 이곳 동해가에 자라나는구나
我行適見之(아항적견지) : 내가 길 가다가 때마침 눈에 보고
悲歎未能已(비탄미능이) : 비탄한 마음 그치지 않는구나
世無濂溪翁(세무렴계옹) : 이 세상에 염계노인 가고 없으니
誰知是君子(수지시군자) : 연꽃이 군자인 줄 그 누가 알리오
政恐霜雪逼(정공상설핍) : 정말로 두렵도다, 서리와 눈 오면
紅芳難久恃(홍방난구시) : 붉은 꽃 오래도록 보기가 어려우리라

 
감흥2(感興)2-변계량(卞季良)

吾聞神仙人(오문신선인) : 이 몸은 들었네, 신선된 이는
高步餐紫霞(고보찬자하) : 고상하게 거닐며 붉은 노을 먹고
逍遙壺中天(소요호중천) : 호천을 혼자서 한가롭게 놀다가
流光任蹉跎(유광임차타) : 세월이야 가든 말든 개의치 않음을
我生異於是(아생이어시) : 나의 삶은 이것과는 아주 달라
撫琴良歎嗟(무금량탄차) : 거문고 어루만지며 탄식 하였도다
充腸用禾稼(충장용화가) : 배를 채우려먼 농사 지어야 하고
煖身以絲麻(난신이사마) : 몸을 덥리려면 옷을 걸쳐야 한다
但願崇令德(단원숭령덕) : 다만 좋은 덕성을 높이기를 소원할 뿐
壽夭心靡他(수요심미타) : 수명의 길이에는 다른 마음 없도다
 
 
감흥1(感興)1-변계량(卞季良)

肅肅風露涼(숙숙풍노량) : 쓸슬한 바람과 이슬 차가워
輝輝星月明(휘휘성월명) : 휘황찬란한 별과 달은 밝기도 하다
悄然坐長夜(초연좌장야) : 긴긴 밤을 외롭게 혼자서 앉으니
百感由中生(백감유중생) : 온갖 감회가 가슴 속에 이는구나
男兒貴立身(남아귀립신) : 사나이는 입신이 귀중하노니
出處諒難輕(출처량난경) : 출처를 살펴서 가벼이 할 수 없도다
忘義決性命(망의결성명) : 사람들은 의리 잊고 천성도 팽개치며
碌碌徒求榮(녹녹도구영) : 녹록하게도 다만 영화 구하는구나
子晉亦何爲(자진역하위) : 자진이여, 그대는 또 무슨 일로
緱山獨吹笙(구산독취생) : 구산에서 외로이 생황을 불었는가
無可無不可(무가무부가) : 가하지도 불가하지도 않노니
大聖初難名(대성초난명) : 큰 성인은 처음부터 이름짓기 어렵도다
 
 
동지(冬至)-변계량(卞季良)

繡紋添線管灰飛(수문첨선관회비) : 비단에 선 두르고 관회가 날리니
冬至家家作豆糜(동지가가작두미) : 동지날 집집마다 팥죽을 쑤는구나
欲識陽生何處是(욕식양생하처시) : 처음 양의 기운 어디서 이는지 알고 싶노니
梅花一白動南枝(매화일백동남지) : 매화꽃 한 흰꽃이 남쪽 가지에서 꿈클거린다
 
 
숙부흥사(宿復興寺)-변계량(卞季良)

失路投山寺(실로투산사) : 길을 잃고 산사에 드니
人傳是復興(인전시부흥) : 사람들이 이곳을 부흥사라 이전한다
青松唯見鶴(청송유견학) : 푸른 소나무에는 오직 학만 보이고
白日不逢僧(백일불봉승) : 대낮에도 스님을 만나 볼 수 없도다
古壁留金像(고벽류금상) : 오랜 벽에는 금 부처상이 있고
空梁耿玉燈(공량경옥등) : 빈 들보에는 옥등잔 불빛이 깜박거린다
前軒頗淸切(전헌파청절) : 앞마루가 자못 정결하니
過客獨來憑(과객독래빙) : 지나는 나그네 홀로 와서 기대노라
 
 
차령통사벽상운(次靈通寺壁上韻)-변계량(卞季良)

地僻塵機息(지벽진기식) : 땅이 궁하여 세상 마음 사라지고
樓高暑氣微(루고서기미) : 누각이 높으매 더운 기운 사라진다
鳥隨鳴磬下(조수명경하) : 새는 울리는 경쇠소리 따라 날아내리고
僧趁暮鍾歸(승진모종귀) : 중은 저눌녘 종소리에 맞추어 돌아 온다
移石雲生袖(이석운생수) : 돌을 옮겨 앉으니 구름은 소매에서 일어나고
看松露滴衣(간송로적의) : 솔을 우러러 보니 옷자락에 이슬이 젖어든다
秋霜山菓熟(추상산과숙) : 가을 서리에 산과일 익어가는데
更此扣岩扉(경차구암비) : 다시 여기서 바윗문을 두드리노라
 
 
제청계산행상인원(題靑溪山行上人院)-변계량(卞季良)

石路千崖盡(석로천애진) : 돌 길은 천길 절벽에서 끝나고
香煙一室淸(향연일실청) : 향 연기 피어오르는 맑은 한 선실이로다
客來求煮茗(객래구자명) : 손은 와서 차 끓여달라 청하고
僧坐自飜經(승좌자번경) : 중은 앉아 스스로 경적을 뒤적인다
樹老何年種(수로하년종) : 나무는 오래되었는데 어느 해에 심었는지
鍾殘半夜聲(종잔반야성) : 종소리 잦아지니 한밤이 되었구나
悟空人事絶(오공인사절) : 공을 깨달아 세속의 일을 다잊고
高臥樂無生(고와악무생) : 높이 누워 무를 아는 삶을 즐기는구나
 
 

제승사(題僧舍)-변계량(卞季良)

俗客來參佛(속객래참불) : 속객이 찯아와 부처님 뵙는데
高僧坐誦經(고승좌송경) : 고승은 가만히 앉아 경을 외우시네
晝燈熏古壁(주등훈고벽) : 낮 등불이 옛 벽을 그슬리고
老檜響空庭(노회향공정) : 늙은 전나무는 빈 뜰에서 소리를 내네
塔立三層白(탑립삼층백) : 탑은 솟아 세 층이 희고
山回四面青(산회사면청) : 산은 둘러 사면으로 푸르구나
禪窓更無事(선창경무사) : 선방에 다시 아무 일 없으니
終日倚風欞(종일의풍령) : 종일토록 바람부는 난간에 기대었도다

 
 
등성거산금신사(登聖居山金神寺)-변계량(卞季良)

攀蘿登絶頂(반라등절정) : 칡 덩굴을 잡고 정상에 올라보니
碧殿拱寒虛(벽전공한허) : 푸른 전각이 찬 허공에 꽂혀 있구나
佛古稱尊者(불고칭존자) : 불상은 오래되었는데 존자라 일컫고
山靈號聖居(산령호성거) : 산은 신령스러워 성거라 이름하는구나
鍾聲雲外落(종성운외락) : 종소리는 구름 밖으로 떨어지고
松影月中疏(송영월중소) : 솔 그림자는 달빛 속에 성글구나
最愛安禪子(최애안선자) : 가장 사랑스러운 안선자여
渠心政自如(거심정자여) : 선정에 든 이 마음 정말 자약하구나
 
 
시위(試闈)-변계량(卞季良)

春闈曾見士如林(춘위증견사여림) : 봄날 대궐에서 보았노니 선비들 수풀 같아
萬萬花容有淺深(만만화용유천심) : 수많은 꽃빛 짙기도 하고 옅기도 하구나
李白桃紅都自取(리백도홍도자취) : 흰 오얏이나 붉은 복숭아 모두 스스로 취하니
天工造物本無心(천공조물본무심) : 조물주가 만물 만듦은 번래 무심하여라
 
 
차자강운(次子剛韻)-변계량(卞季良)

關門一室淸(관문일실청) : 닫힌 문, 한 칸 방이 맑기도 한데
烏几淨橫經(오궤정횡경) : 책상에는 정갈히 경전이 가로 놓여있다
纖月入林影(섬월입림영) : 초승달은 숲 그늘로 비춰들고
孤燈終夜明(고등종야명) : 외로운 등불이 밤새도록 밝구나
 
 
復興寺(부흥사)-卞季良(변계량)

失路投山寺(실노투산사) : 길을 잃어 산사에 드니
人傳是復興(인전시부흥) : 사람들이 이곳이 부흥사 절이라 하네
靑松唯見鶴(청송유견학) : 푸른 소나무엔 학
白日不逢僧(백일불봉승) : 낮에 스님은 만나지 못했네
古壁留金像(고벽류금상) : 낡은 벽에는 금부처상
空樑耽玉燈(공량탐옥등) : 빈 대들보에는 옥 등잔
前軒頗淸切(전헌파청절) : 앞 마루방이 너무 깨끗하고 단출하여
過客獨來憑(과객독내빙) : 지나던 손이 혼자 와서 쉬어가네
 
 

寄鼎谷(기정곡)-卞季良(변계량)

蓬轉東南影與身(봉전동남영여신) : 동서남북 여기저기 떠돈 신세
舊情誰復似雷陳(구정수복사뢰진) : 그 누구와 뇌진 같이 옛 정을 회복할까
病深藥物渾無賴(병심약물혼무뢰) : 병이 깊어 온갖 약물 소용없고
吟苦詩篇頗有神(음고시편파유신) : 시를 읊으니 기분 다소 편안하네
虛白連天江群曉(허백연천강군효) : 하늘까지 텅 빈 공간, 날 새어 강은 밝아지고
暗黃浮地柳是春(암황부지류시춘) : 누른 먼지 이는 땅에 버드나무, 이제 봄이라
自憐令節情懷惡(자연령절정회악) : 좋은 시절에 도리어 내 마음 서글퍼져
題句時還寄故人(제구시환기고인) : 때때로 시를 지어 그대 내 친구에게 부쳐본다

 
 

장부경도장단도중기정정곡(將赴京都長湍途中寄呈鼎谷)-변계량(卞季良)

蓬轉東南影與身(봉전동남영여신) : 이내몸과 그림자 동남으로 떠도는데
舊情誰復似雷陳(구정수복사뇌진) : 옛정으로는 그 누가 뇌의와 진중과 같을까
病深藥物渾無效(병심약물혼무효) : 병 깊어서 약물이 전혀 효과 없지만
吟苦詩篇頗有神(음고시편파유신) : 애써 시편 읊조리니 다소 정신이 든다.
虛白連天江郡曉(허백련천강군효) : 빈 하늘 저쪽으로 강 고을에 새벽 오고
暗黃浮地柳郊春(암황부지류교춘) : 누런빛 땅에 일고 버들나무 들판은 봄.
自憐令節情懷惡(자련령절정회악) : 가련하다, 좋은 계절에 회포 씁쓸하여
題句時還寄故人(제구시환기고인) : 시를 지어 때때로 고인에게 부쳐 본다.

 
 

금신사(金神寺)-변계량(卞季良)

金神洞府深復深(금신동부심복심) : 금신동 그 골짜기는 깊고도 깊은데
時有老僧邀獨尋(시유노승요독심) : 때때로 늙은 스님 맞으려 홀로 찾았다.
鹿麋穩眠草如織(녹미온면초여직) : 사슴이 편히 잠든 곳, 풀은 베 짠 듯한데
蝙蝠亂飛山正陰(편복난비산정음) : 박쥐가 어지러이 날자 산그늘이 내린다.
石根嵓泉碎玉斗(석근암천쇄옥두) : 바위 아래 돌샘의 물소리 옥 부셔지듯
風吹蘿月散黃金(풍취나월산황금) : 바람은 담쟁이덩굴 사이로 황금 달빛 흩는다.
曉來欲覺聞鍾坐(효내욕각문종좌) : 새벽 잠 깰 무렵 앉아 종소리에 듣는데
當日少陵知此心(당일소능지차심) : 그 날의 소릉도 이 마음을 느꼈으리라.

 
 

원중(原仲)-변계량(卞季良)

長嘯飄然海一隅(장소표연해일우) : 바닷가 귀퉁이에서 길게 읊으며 떠았으니
早年行路正荒蕪(조년항노정황무) : 젊은 날 떠 돈 길이 황량하기 그지없구나.
不才自合居蓬蓽(부재자합거봉필) : 재주 없어 초야에 살아야 마땅하나
高興時時滿八區(고흥시시만팔구) : 높은 흥취 때때로 사방팔방에 넘쳐치는구나

 
 

우음1(偶吟1)-변계량(卞季良)

螢雪辛勤十載餘(형설신근십재여) : 고생하며 공부한지 십여 년에
少年豪氣塞堪輿(소년호기새감여) : 소년의 호기가 천지에 충만하다.
一庭綠草春將半(일정녹초춘장반) : 정원에 푸른 풀, 봄이 반이나 지나
且取星書强卷舒(차취성서강권서) : 달력 가져다가 억지로 천천히 넘긴다

 
 

우음2(偶吟2)-변계량(卞季良)

易數元來未易窮(역삭원내미역궁) : 주역 수리는 원래 쉽게 연구되지 않지만
先生能向一中通(선생능향일중통) : 선생은 일관되게 집중하여 통달하게 되었다.
天根月窟曾探躡(천근월굴증탐섭) : 천근과 월굴을 일찍이 찾아 오르니
須信堯夫在海東(수신요부재해동) : 우리나라에도 요부 소옹같은 학자 있으리라

 
 

우중간이화(雨中看梨花)-변계량(卞季良)

梨花着雨映簷端(리화착우영첨단) : 배꽃에 빗물 매달려 처마 끝에 빛나는데
終日無人獨憑欄(종일무인독빙난) : 종일토록 아무도 없어 혼자 난간에 기대었다.
恰似明妃在胡虜(흡사명비재호노) : 흡사 왕소군이 흉노족에 시집가니
玉顔雙淚不曾乾(옥안쌍누부증건) : 옥같은 얼굴에 두 줄기 눈물 마르지 않았단다

 
 

모춘즉사(暮春卽事)-변계량(卞季良)

落花撩亂入風欞(낙화료난입풍령) : 지는 꽃잎 요란하게 풍령으로 날아
灑面頻敎醉夢驚(쇄면빈교취몽경) : 얼굴에 부딪쳐서 취한 꿈 자주 깨운다.
應是東君好詩者(응시동군호시자) : 이는 틀림없이 봄 신이 시를 좋아하여
深嗔才子太無情(심진재자태무정) : 시인의 무심함에 심하게도 노하였단다

 
 

견흥(遣興)-변계량(卞季良)

寂寞家何事(적막가하사) : 적막하여 집에 할 일도 없는데
淸明日漸長(청명일점장) : 청명이 돌아오니 점점 해만 길어진다.
暖風吹午夢(난풍취오몽) : 따뜻한 바람은 낮잠에 불어오고
幽草自春香(유초자춘향) : 그윽한 풀은 절로 봄 향기 풍기는구나.
遣興披書帙(견흥피서질) : 유흥을 달래고자 책을 펼쳐 보고
寬心索酒觴(관심삭주상) : 마음을 펴 보고자 술잔을 찾는단다.
向來眞趣足(향내진취족) : 여태껏 정말로 유흥에 만족했는데
誰復憶羲皇(수복억희황) : 누가 다시 복희씨를 생각하리오.

 
 

차영통사벽상운(次靈通寺壁上韻)-변계량(卞季良)

地僻塵機息(지벽진기식) : 치우쳐 사니 세속 기미 사라지고
樓高暑氣微(누고서기미) : 누대가 드높아서 더위마저 가신다.
鳥隨鳴磬下(조수명경하) : 새들은 풍경 소리 따라 내려가고
僧趁暮鍾歸(승진모종귀) : 스님은 저녁 종소리 따라 돌아온다.
移石雲生袖(이석운생수) : 돌멩이 옮기자 소매 속 구름 일고
看松露滴衣(간송노적의) : 소나무 쳐다보자 이슬에 옷이 적신다.
秋霜山菓熟(추상산과숙) : 가을 서리 내려 산과일이 익어
更此叩巖扉(갱차고암비) : 또다시 암벽의 사립문을 두드렸다

 
 
층봉리(層峯裏)-변계량(卞季良)

寂寞蘿窓底(적막나창저) : 적막해라, 여라 덮인 나직한 창가
惟聞澗水聲(유문간수성) : 오직 골짜기 물소리만 들리는구나.
淸心談佛性(청심담불성) :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 얘기하고
叉手問僧名(차수문승명) : 양손을 모으고 스님 이름 물었단다.
遊宦誠無策(유환성무책) : 벼슬살이 정말로 대책이 없으니
烟霞合鍊形(연하합련형) : 자연 속에서 몸을 단련해야 하리라.
坐來山正靜(좌내산정정) : 앉았노라니 산은 고요하여
一鳥不曾鳴(일조부증명) : 한 마리의 새들도 울지 않는구나
 
 

병중(病中)-변계량(卞季良)

幽棲地僻客來遲(유서지벽객내지) : 외진 거처에 찾아오는 손님 드물어
門掩苔痕欲上扉(문엄태흔욕상비) : 문 걸어두니 이끼가 사립문 올라간다.
巢燕似應憐我病(소연사응련아병) : 제비는 병든 나를 가련히 여겼는지라
簷前終日語還飛(첨전종일어환비) : 처마에서 종일토록 지저귀다 다시 난다

 
 

기동창(寄東窓)-변계량(卞季良)

祖翁多積善(조옹다적선) : 할아버지에게 적선이 많으니
故此有賢孫(고차유현손) : 그래서 어진 손자가 있을 것이다.
詩態春雲麗(시태춘운려) : 시어는 봄날의 구름같이 곱고
容儀白玉溫(용의백옥온) : 용모는 백옥처럼 따뜻하구나.
林花依屋角(림화의옥각) : 수풀의 꽃은 집모퉁이에 우거지고
庭樹到窓根(정수도창근) : 정원의 나뭇가지 창 아래로 뼜혔구나.
窮巷誰曾過(궁항수증과) : 궁벽한 마을에 누가 찾아오나
殘經手自翻(잔경수자번) : 떨어진 경전만 손으로 뒤적이고 있다.

 
 

기양곡(寄陽曲)-변계량(卞季良)

落落隴西彦(낙낙롱서언) : 뛰어난 농서의 선비인데
早年成大家(조년성대가) : 소년부터 대가를 이루었단다.
新篇惟我共(신편유아공) : 새 시를 지음에 오직 나와 같이 하니
高義更誰過(고의갱수과) : 그 높은 의리를 다시 누가 당해낼까
樹密聞幽鳥(수밀문유조) : 빽빽한 숲에 그윽한 새소리 들리고
簷虛對晩花(첨허대만화) : 처마는 비었는데 저녁 꽃만 보고 있다.
佳辰看又近(가신간우근) : 아름다운 계절이 다시 다가오니
身病欲如何(신병욕여하) : 몸이 병들었으니 하고 싶은들 어찌하나.

 
 

수기1(睡起1)-변계량(卞季良)

地僻家何事(지벽가하사) : 사는 곳 궁벽하니 집안에 무슨 일 있나
簷虛日自斜(첨허일자사) : 처마는 비었는데 석양 절로 기우는구나.
幽人初睡覺(유인초수각) : 한가한 사람이 막 낮잠을 깨어나자
開遍一林花(개편일림화) : 온 숲에 꽃들이 여기저기 활짝 피었구나

 
 

수기2(睡起2)-변계량(卞季良)

墻樹花初盛(장수화초성) : 담장 가 나무에 꽃송이 만발하고
庭苔綠漸深(정태녹점심) : 정원의 이끼는 갈수록 더 푸르구나.
蝶飛如有約(접비여유약) : 나비 날아다님이 약속이나 있는 듯
人立自長吟(인립자장음) : 사람은 홀로 서서 길게 시를 읊조린다

 
 
관음굴(觀音窟)-변계량(卞季良)

聖居山東天磨西(성거산동천마서) : 성거산 동쪽, 천마산 서쪽
觀音之窟幽且淸(관음지굴유차청) : 관음굴은 한적하고 깨끗하다.
朴淵水下垂玉虹(박연수하수옥홍) : 박연에서 물 쏟아져 무지개 토하고
倚祥臺逈干靑冥(의상대형간청명) : 기대어선 의상대 아득히 창공 솟아있다.
兩箇石佛是眞象(량개석불시진상) : 두 개의 석불은 바로 진상이고
白頭老僧非世情(백두노승비세정) : 백발의 노승은 속세의 정 없었다.
生平遊歷未曾有(생평유력미증유) : 평생 일찍이 유람한 적 없었어
殷勤掃壁題姓名(은근소벽제성명) : 벽을 쓸어 성명 써 보고 싶었어한다
 
 

오음(午吟)-변계량(卞季良)

綠樹陰濃近午天(녹수음농근오천) : 푸른 나무 짙은 그늘 정오가 가까운데
白雲當戶正如綿(백운당호정여면) : 흰 구름은 문 앞에 다가와 무명베 같도다.
鳥啼花落茅齋靜(조제화낙모재정) : 새 울고 꽃 지는 조용한 띳풀 서재에서
剩得蒲團盡日眠(잉득포단진일면) : 왕골 자리에 누워서 종일토록 잠들었단다

 
 

무제(無題)-변계량(卞季良)

軒冕從來世所誇(헌면종내세소과) : 관직은 옛날부터 세상 자랑거리
相公須信聖恩加(상공수신성은가) : 공은 임금님 은혜 입었음 믿어야 해요.
卽今門戶光輝大(즉금문호광휘대) : 오늘날 가문이 빛나고 성대하나
況乃高堂白髮何(황내고당백발하) : 고당에 백발 된 어버이를 어찌하시려나

 
 

시위(試闈)-변계량(卞季良)

春闈曾見士如林(춘위증견사여림) : 봄철 과장에 선비들 숲처럼 모였는데
萬萬花容有淺深(만만화용유천심) : 수만 가지 꽃 모양으로 깊고 옅음 있단다.
李白桃紅都自取(리백도홍도자취) : 오얏 희고 복숭아 붉음은 스스로 취했으니
天工造化本無心(천공조화본무심) : 하늘님의 조화는 본래부터 무림한 것이란다

 
 

동지일조조(冬至日早朝)-변계량(卞季良)

金碧輝輝映道周(금벽휘휘영도주) : 금장식이 찬란하다, 길거리마다
九門寒漏促更籌(구문한누촉갱주) : 구중궁궐 차가운 물시계 시간을 재촉한다.
鷄人報曉開天闕(계인보효개천궐) : 계인이 새벽을 알려 대궐문이 열리자
鸞鷺盈庭拜冕旒(난노영정배면류) : 궁정의 신하들이 임금님께 하례한다.
雲近御牀分五色(운근어상분오색) : 구름은 용상 가까이서 오색으로 나뉘고
山呼聖壽獻千秋(산호성수헌천추) : 산들도 외치노라, 천추에 임금님의 장수를.
佳辰況是陽初動(가신황시양초동) : 아름다운 계절에 따뜻한 기운 태동하니
蹈舞歌時敢自休(도무가시감자휴) : 춤추며 노래 부르는 때라 스스로 휴식했도다

 
 

상즉위명조수조하(上卽位明朝受朝賀)-변계량(卞季良)

天命人歸在嗣王(천명인귀재사왕) : 천명과 인심이 주상에게 돌아가니
勃興垂拱正當陽(발흥수공정당양) : 분연히 일어나 공수하고 남쪽으로 앉으셨다.
絳侯撥亂開新業(강후발난개신업) : 강후 주발이 난리를 평정하고 새 업을 여니
漢室從玆獲再昌(한실종자획재창) : 한 나라가 이에 다시 번창했었다.
文武分行庭左右(문무분항정좌우) : 문무관은 조정의 좌우에 도열하고
冕旒臨下殿中央(면류림하전중앙) : 주상은 면류관 차림으로 중앙에 임하셨도다.
永安宗社伊誰力(영안종사이수력) : 종사가 안정된 건 누구의 힘이었든가
應使斯民竟不忘(응사사민경부망) : 백성들이 마음속으로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차양곡운1(次陽谷韻1)-변계량(卞季良)
珠翠城都百萬家(주취성도백만가) : 비취 빛 구슬 같은 도성의 온갖 집들
春濃何處不開花(춘농하처부개화) : 봄이 무르익었으니 어느 곳인들 안 필까.
吟餘却想池塘草(음여각상지당초) : 읊조린 여가에 연못의 초목을 상각하니
倍覺君居興轉賖(배각군거흥전사) : 그대 집안의 흥취가 낫은 것을 느꼈어라

 
 

차양곡운2(次陽谷韻2)-변계량(卞季良)

晴窓終日聽春禽(청창종일청춘금) : 갠 창에서 종일토록 봄 새소리 들리는데
門靜無人可共吟(문정무인가공음) : 찾은 이 아무도 없어 함께 읊지 못했도다.
賴有寄來詩句在(뢰유기내시구재) : 다행히도 부쳐 준 시 한 편 있었기에
能將破却憶君心(능장파각억군심) : 그대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을 삭였도다

 

 

곡최시중(哭崔侍中)-변계량(卞季良))

奮威匡國鬢星星(분위광국빈성성) : 무용 떨쳐 충성하다 백발이 되니
學語街童盡識名(학어가동진식명) : 말 배우는 아이들도 그 이름은 다 안다.
一片壯心應不死(일편장심응부사) : 한 조각 장한 마음 반드시 죽지 않고 살아
千秋永與太山橫(천추영여태산횡) : 천추토록 영원토록 태산과 함께 비껴 있으리라.

 
 

증양곡(贈陽谷)-변계량(卞季良)

金銀珠玉本非珍(금은주옥본비진) : 금은과 주옥은 본래는 보배가 아니니
賤貨須當學古人(천화수당학고인) : 모름지기 재화를 천시하고 옛사람 배워야지
自愧未能求至寶(자괴미능구지보) : 부끄럽구나, 지극한 보배는 구하지 못하고
徒然縱欲喪天眞(도연종욕상천진) : 공연히 욕심만 부리다가 천진한 마음만 상했구나.

 
 

차전운(次前韻)-변계량(卞季良)

街頭垂柳動輕黃(가두수류동경황) : 길가에 수양버들 연 노란 색
處處春濃碧草芳(처처춘농벽초방) : 곳곳이 봄빛 짙어 초목이 빛 향기롭다.
想得玉人情思好(상득옥인정사호) : 그 사람은 지금쯤 기분이 좋아져
吟時正値酒杯香(음시정치주배향) : 향기로운 술잔 들고 시를 읊고 있을 거야.

 
 

차동창가영매운(次東窓家詠梅韻)-변계량(卞季良)

陌上輕塵萬丈黃(맥상경진만장황) : 거리에 가벼운 흙먼지 하늘이 온통 누렇다
宦途何處賞幽芳(환도하처상유방) : 벼슬살이에 어디에서 그윽한 꽃나무 감상하나.
箇中端合高人在(개중단합고인재) : 그 중에는 고상한 사람에게 맞은 곳 있으니
雙樹梅花一院香(쌍수매화일원향) : 두 그루 매화나무 꽃이 온 집안이 향기롭구나

 
 
중려월야휴주(中慮月夜携酒)-변계량(卞季良)

咫尺紅塵一室淸(지척홍진일실청) : 지척에 속세, 한 방이 청아하다
故人相見眼雙靑(고인상견안쌍청) : 친구와 서로 만나니 두 눈에 가득 반가움.
擧杯題句團欒語(거배제구단란어) : 술잔 들고 시를 쓰며 단란하게 이야기 하니
直到中宵月滿庭(직도중소월만정) : 바로 한밤까지 이르니 정원에 달빛이 가득하다.
 
 

우야억황생원(雨夜憶黃生員)-변계량(卞季良)

孤吟疎雨不堪聽(고음소우부감청) : 혼자 시를 읊다가 빗소리 듣기 거북하여
燈下悠悠夢未成(등하유유몽미성) : 등불 아래서 아득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憶昔共尋龍鳳寺(억석공심룡봉사) : 옛날에 그와 함께 용봉사를 찾으니
臥聞終夜打窓聲(와문종야타창성) : 밤새도록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었었다

 
 

무진십일월초이일이갱(戊辰十一月初二日二更)-변계량(卞季良)

建子之月哉生明(건자지월재생명) : 동짓달 초이틀 초승달이 밝아오니
風雨颯沓驅雷霆(풍우삽답구뇌정) : 비바람 몰아치고 벽력까지 치는구나.
龍蛇未蟄山岳摧(룡사미칩산악최) : 산악이 흔들거리니 용과 뱀 잠 못 들고
杞國得不憂天傾(기국득부우천경) : 기 나라에서는 하늘 무너질까 걱정하리라.
憂來徑欲彈素琴(우내경욕탄소금) : 걱정되어 거문고 퉁기고 싶으나
鍾期已去無人聽(종기이거무인청) : 종자기가 세상 떠나 들어줄 이 없구나.
天心仁愛曷有極(천심인애갈유극) : 하늘이 아끼는 마음 끝도 없어라.
空令讀書者歎驚(공령독서자탄경) : 헛되이 책 읽은 이가 경탄을 자아낸다

 
 

도한강(渡漢江)-변계량(卞季良)

跨馬出城郭(과마출성곽) : 말을 타고 성곽 문을 나와서
停鑣下釣臺(정표하조대) : 재갈 풀어 놓고 조대로 내려간다.
長江一鳥去(장강일조거) : 긴 강에는, 새 한 마리 날아가고
落照數帆來(낙조삭범내) : 지는 햇볕 속, 몇 척의 범선이 온다.
樵爨依灘集(초찬의탄집) : 밥 짓는 연기는 여울에 모여 있고
茅茨傍岸開(모자방안개) : 초가집은 언덕 곁에 죽 늘어서 있다.
平生湖海志(평생호해지) : 평생 동안 간직한 강호에 사는 뜻
渡了却徘徊(도료각배회) : 한강 건너자 도리어 배회하게 되는구나

 
 

무(霧)-변계량(卞季良)

宿霧連三日(숙무련삼일) : 삼 일 간 연속 안개가 뒤덮으니
重陰蔽大明(중음폐대명) : 몇 겹의 음기가 태양을 가렸구나.
鳥歸迷古木(조귀미고목) : 둥지로 가는 새들은 고목을 잃었고
人立失前程(인립실전정) : 사람은 선 채로 갈 길을 잃었구나.
霑濕還如雨(점습환여우) : 습기에 젖어들어 비 맞은 듯 하고
熹微未放晴(희미미방청) : 희미한 날씨는 아직 개지 않는구나.
病夫偏自愛(병부편자애) : 병든 사나이 유독 제 몸을 아끼어
醇酹獨頻傾(순뢰독빈경) : 혼자서 연거푸 전국술을 따라 마신다.

 
 
모춘즉사(暮春卽事)-변계량(卞季良)

落花撩亂入風欞(낙화료난입풍령) : 낙화는 어지럽게 풍령으로 날아들어
灑面頻敎醉夢驚(쇄면빈교취몽경) : 얼굴에 부딪쳐 취한 꿈을 자주 깨운다.
應是東君好詩者(응시동군호시자) : 반드시 봄의 신이 시를 좋아 하리니
深嗔才子太無情(심진재자태무정) : 시재 있는 무심한 자에게 노한 것이리라
 
 

거두(巨蠹)-변계량(卞季良)

巨蠹巨蠹從何來(거두거두종하내) : 큰 좀 벌레야 큰 봄벌레야 어디에서 왔나
來此東國爲國災(내차동국위국재) : 이 동방에서 찾아와서 나라의 재앙이 되었지.
食盡松柏與梓漆(식진송백여재칠) : 송백과 가래나무 옻나무 남김없이 먹어 치우니
山空野闊惟蒿萊(산공야활유호래) : 산이 비고, 들이 거칠어져 쑥대만 남았구나.
嗟爾巨蠹食不厭(차이거두식부염) : 아, 너 큰 좀 벌레는 물리도 않고 먹어치우니
萬姓疾首徒哀哀(만성질수도애애) : 백성들이 머리에 병이 생겨 탄식만 하는구나.
安得壯士一去之(안득장사일거지) : 어찌하면 장사 얻어 단번에 없애버리어
再使國中多良材(재사국중다량재) : 다시금 나라 안에서 좋은 재목 많이 생기게 하나.

 
 

연어(鳶魚)-변계량(卞季良)

鳶魚分上下(연어분상하) : 소리개와 물고기 상하로 나뉘어 있으니
自是天機動(자시천기동) : 이러한 현상이 하늘 기능이 작용됨이다.
道在穹壞間(도재궁괴간) : 도는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나니
須知人物共(수지인물공) : 사람이나 사물이 함께 한 것인 줄 알아한다

 
 

기동창(寄東窓)-변계량(卞季良)

祖翁多積善(조옹다적선) : 할아버지가 선한 일을 많이 하니
故此有賢孫(고차유현손) : 이런 까닭에 훌륭한 손자가 생기노라.
詩態春雲麗(시태춘운려) : 시어는 봄날의 구름처럼 아름답고
容儀白玉溫(용의백옥온) : 용모는 새하얀 옥처럼 따뜻하도다.
林花依屋角(림화의옥각) : 숲속 꽃들은 집모퉁이에 우거지고
庭樹到窓根(정수도창근) : 뜰의 나뭇가지 창가에 뻗어 왔구나.
窮巷誰曾過(궁항수증과) : 궁벽한 마을에 그 누가 찾아올까
殘經手自翻(잔경수자번) : 해진 경전만 손으로 뒤적이고 있도다

 
 

병중(病中)-변계량(卞季良)

幽棲地僻客來遲(유서지벽객내지) : 외진 곳에 조용히 사니, 찾는 손님 더디고
門掩苔痕欲上扉(문엄태흔욕상비) : 문을 덮은 이끼가 사립문을 올라간다.
巢燕似應憐我病(소연사응련아병) : 둥지에 깃든 제비는 병든 나를 불쌍히 여겨
簷前終日語還飛(첨전종일어환비) : 종일토록 처마 아래서 지저귀며 날아 오는구나.

 
 

기양곡(寄陽谷)-변계량(卞季良)

落落隴西彦(낙낙롱서언) : 농서 땅에서 제일 뛰어난 선비
早年成大家(조년성대가) : 젊어서 대가를 이루었도다.
新篇惟我共(신편유아공) : 새 글은 지으면 오직 나와만 함께 하니
高義更誰過(고의갱수과) : 그대의 높은 의리 그 누가 능가하리오
樹密聞幽鳥(수밀문유조) : 나무는 빽빽한데 새 소리 들리고
簷虛對晩花(첨허대만화) : 처마는 비어있고 늦어 피는 꽃을 본다.
佳辰看又近(가신간우근) : 아름다운 계절이 지금 또 다가오니
身病欲如何(신병욕여하) : 병든 이 몸으로 어찌해야 하는가

 
 

송승환산(送僧還山)-변계량(卞季良)

寺在深山茅幾重(사재심산모기중) : 절은 깊은 산에 있고 띠풀이 에워싸니
只應猿鳥得相從(지응원조득상종) : 원숭이와 새들만 서로 따라다닌다.
一枝藤杖穿雲去(일지등장천운거) : 한 가지 등나무 지팡이가 구름 속 뚫고 가나
回首人寰卽螻封(회수인환즉루봉) : 속세를 돌아보면 개미집에 불과한 것을.

 
 

수기(睡起)-변계량(卞季良)

杏花初發柳初陰(행화초발류초음) : 살구꽃 피자 버들나무 그늘 생기고
滿目春光日轉深(만목춘광일전심) : 눈에 가득 봄 풍경 날마다 짙어진다.
睡覺午窓情思少(수교오창정사소) : 창가에서 낮잠 깨니 생각이 멍해져
居然得句自長吟(거연득구자장음) : 거연히 시구 얻어 스스로 길게 읊어본다

 
 

기청계산혜상인(寄淸溪山惠上人)-변계량(卞季良)

南望淸溪一髮微(남망청계일발미) : 남으로 청계산 바라보니 터럭처럼 희미한데
山中蘭若夢依俙(산중난야몽의희) : 산중의 절간들이 꿈속에 희미하다.
曉猿野鶴應相怨(효원야학응상원) : 아침 원숭이와 들판의 학들이 원망하리니
遊子如今未擬歸(유자여금미의귀) : 떠도는 나그네는 지금도 돌아가지 않았구나

 
 

기양곡겸정중려(寄陽谷兼呈中慮)-변계량(卞季良)

佳節偏堪作勝遊(가절편감작승유) : 좋은 계절 더욱 유람하기 좋아라
眼看春意不能休(안간춘의부능휴) : 눈에 본 그 봄이 정을 금할 길 없다.
風吹弱柳黃金色(풍취약류황금색) : 바람 불어 수양버들 황금빛 나부끼고
雪漲晴湖碧玉流(설창청호벽옥류) : 눈 녹은 맑은 호수물 벽옥처럼 푸르다.
多事卽今難浪迹(다사즉금난낭적) : 다사한 오늘날은 유람하기 어려우니
一杯何處可開愁(일배하처가개수) : 어디서 한 잔 술오 수심을 덜어볼까.
乘閒好約梅軒子(승한호약매헌자) : 한가한 틈을 타서 매헌과 약속하여
共詠新詩上酒樓(공영신시상주누) : 새로 지은 시 읊으며 주루로 올르리라.

 
 

등금신사(登金神寺)-변계량(卞季良)

縹緲金神寺隔烟(표묘금신사격연) : 아득히 넌 금신사에 노을이 끼고
初登却似上靑天(초등각사상청천) : 처음 올라가자 푸른 하늘인가 싶었다.
星臨戶牖開山脊(성림호유개산척) : 별들은 창에 닿아 산등성이 펼쳐있고
風動幢幡照日邊(풍동당번조일변) : 바람은 깃발 흔들어 태양 가에 펄럭인다.
眼見高僧曾悟道(안견고승증오도) : 고승을 보아하니 일찍이 도를 깨쳐
誰能此地共安禪(수능차지공안선) : 누가 능히 이곳에서 함께 편히 참선할까
自嗟熱惱無終極(자차열뇌무종극) : 번뇌가 끝이 없어 탄식하고 있다가
溪水松聲爲肅然(계수송성위숙연) : 개울물 소리, 솔잎 소리에 숙연지는구나.

 
 

조춘유회기우인(早春有懷寄友人)-변계량(卞季良)

客裏逢新歲(객리봉신세) : 객지에서 새해를 만나니
春光憶故鄕(춘광억고향) : 봄 풍경에 고향 생각이 난다.
園蔬含嫰碧(원소함눈벽) : 밭의 채소는 싹 머금어 푸르고
江柳動輕黃(강류동경황) : 강가의 버들잎에 연 노랑이 감돈다.
擧目傷時物(거목상시물) : 고개 들어보나 시사에 상심되어
開襟託酒觴(개금탁주상) : 옷깃을 풀어 놓고 술잔에 맡기었다.
惟應舊交在(유응구교재) : 옛날에 사귀던 벗들이 남아 있으리니
書札不相忘(서찰부상망) : 편지 나누면서 서로 잊지나 말아 다오.

 
 

문앵(聞鶯)-변계량(卞季良)

忽聽新鸎細柳邊(홀청신앵세류변) : 가느다란 버들 가, 꾀꼬리 노래
恐他豪俠暗彎弦(공타호협암만현) : 호협한 그 사람 몰래 활줄 당길라.
莫令閨女頻傾耳(막령규녀빈경이) : 규방 처녀 자주 귀 기울이지 말게 하라
應是傷心誤少年(응시상심오소년) : 반드시 마음 상해 젊은 청춘 그르칠라

 
 

수양행(首陽行)-변계량(卞季良)

瞻彼首陽山之幽(첨피수양산지유) : 그 수양산의 그윽한 곳 바라보니
我思古人何悠悠(아사고인하유유) : 옛 사람 생각하는 내 심정이 이리도 깊은가
棄國不啻若弊屣(기국부시야폐사) : 나라 버리는 것을 헌 신발 버리듯이 하니
睥睨四海歸于周(비예사해귀우주) : 세상이 주나라로 돌아감을 흘겨보는구나
周家王業惟日彊(주가왕업유일강) : 주 나라 왕업이 날마다 강해지자
赫怒欲救斯民瘡(혁노욕구사민창) : 크게 노해 백성의 상처를 구제하려하였구나
三千一心貔虎士(삼천일심비호사) : 한 마음 된 삼천 명의 용맹한 무사들
勢甚建瓴誰得當(세심건령수득당) : 막강한 그 세력 그 누가 감히 맞서리오
奮髥一語柱殷衰(분염일어주은쇠) : 분연연한 한 마디 말로 은나라 기둥 되려했으나
確乎大經難可違(확호대경난가위) : 확고한 큰 섭리 어기기 어려웠도다
黃鉞白旄色沮喪(황월백모색저상) : 황월과 백모에 사기가 꺾이어
天爲之高地爲卑(천위지고지위비) : 하늘은 높아지고 땅은 낮아졌도다
翻然歸來首陽峽(번연귀내수양협) : 마음을 바꿔 먹고 수양산골 들어가니
寧餓不食周粟粒(녕아부식주속립) : 굶어 죽어도 주의 곡식 먹지 않았도다
高歌採薇竟無悔(고가채미경무회) : 채미가 노래하며 끝내 후회하지 않았으니
淸風萬古吹六合(청풍만고취륙합) : 그 맑은 바람 천지에 만고에 부는구나

 
 

송승남귀(送僧南歸)-변계량(卞季良)

飄然一枝杖(표연일지장) : 표연한 지팡이 하나
去去向何山(거거향하산) : 어느 산을 향해서 떠나시는가
抱病知交態(포병지교태) : 병을 앓고서야 우정을도 알아
吟詩送別顔(음시송별안) : 시 지어서 떠나는 사람을 송별하네
孤程千壑裏(고정천학리) : 뭇 계곡 속 외로운 길에서
幽夢白雲間(유몽백운간) : 흰 구름 사이로 한가로이 꿈꾼다네
且問南遊遍(차문남유편) : 또다시 묻노니 남쪽을 유람하고
寧幾日還 (寧幾日還 ) : 정녕 어느 때야 돌아 오시렵니까

 
 

야좌(夜坐)-변계량(卞季良)

小爐熾炭復張燈(소노치탄복장등) : 작은 화로에 불 지피고 등불 다시 켜서
坐盡深更水欲氷(좌진심갱수욕빙) : 밤 깊도록 앉으니 물 얼어버리려 하누나
除却煎茶更無事(제각전다갱무사) : 차 달이는 일말고는 다시 더 일이 없어
向來情事淡於僧(향내정사담어승) : 근래 내 심사가 스님보다 더 담박하여라

 
 

만흥(漫興)-변계량(卞季良)

爲客崇陵寺(위객숭능사) : 숭릉사의 나그네 된 몸
沈綿不出門(심면부출문) : 집에 들어 문 밖에도 나가지 않아
片心包宇宙(편심포우주) : 조그만 마음은 우주를 싸고
佳興在風雲(가흥재풍운) : 기꺼운 흥취 풍운 속에 산다네
世故多翻覆(세고다번복) : 세상일이란 무수히 뒤집어지는 법
塵機正糾紛(진기정규분) : 티끌 속 사정이야 요란하리라
渺然伊呂輩(묘연이려배) : 까마득한 옛날의 이윤과 여상
千載揖餘芬(천재읍여분) : 천 년의 뒤의 남은 향기에 경건해진다

 
 
증별인조경(贈別人朝京)-변계량(卞季良)

擬從逆旅送征鞍(의종역려송정안) : 객사에서 사행을 전송할까 했는데
其乃沈綿晝閉關(기내심면주폐관) : 낮에도 문 닫고 병으로 누었으니 어찌할까
惟有思君千里夢(유유사군천리몽) : 꿈속에서도 그대를 천 리 멀리 따라가
相將直到紫金山(상장직도자금산) : 바로 장차 자금산에 이르는 것뿐이리라
 
 
송인귀녕(送人歸寧)-변계량(卞季良)

天寒霜雪頻(천한상설빈) : 날씨 추워져 눈과 서리 빈번히 날리는데
之子遠寧親(지자원녕친) : 그대는 먼 곳으로 부모님 문안 가신다지
爲問重逢日(위문중봉일) : 다시 만날 날을 물어보니
新春定暮春(신춘정모춘) : 새봄이나 늦어도 늦봄은 될 거라고 하였네
 
 
동지(冬至)-변계량(卞季良)

繡紋添線管灰飛(수문첨선관회비) : 비단에 선 두르고 관의 재가 날리니
冬至家家作豆糜(동지가가작두미) : 동지에 집집마다 팥죽을 쑤었는구나
欲識陽生何處是(욕식양생하처시) : 양의 기운 어디에서 생기는지 알고 싶은데
梅花一白動南枝(매화일백동남지) : 매화의 남쪽 가지 하얀 망울 터뜨린다
 
 
팔관대회(八關大會)-변계량(卞季良)

鴛鴦會此儼成行(원앙회차엄성항) : 원앙들 모여서 엄숙히 줄 지어
再拜揚休禮度彰(재배양휴례도창) : 재배하고 덕을 드러내니 예절이 빛난다
千步脩廊分左右(천보수낭분좌우) : 좌우에는 천보의 긴 행랑 펼쳐있고
半空危殿拱中央(반공위전공중앙) : 반공 솟은 전각 중앙에 서 우뚝하다
風飄鳳管雲烟斷(풍표봉관운연단) : 바람에 나부끼는 봉관이 노을에 사라진다
山擁龍旗日月光(산옹룡기일월광) : 용의 깃발을 산이 끼니 일월이 빛난다
朝罷百僚開錫宴(조파백료개석연) : 조회 뒤에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자
一庭微雪報嘉祥(일정미설보가상) : 정원에 날린 눈발이 상서로운 해를 알린다
 
 

아일(衙日)-변계량(卞季良)

壽寧宮殿鬱嵯峨(수녕궁전울차아) : 수녕궁궐, 그 궁전 높이 솟았는데
千載松都氣勢嘉(천재송도기세가) : 천 년 송도, 그 기세가 좋기도 하여라.
玉漏已殘催曙色(옥누이잔최서색) : 옥루에 물 떨어져 새벽을 재촉하는데
滿庭冠佩正相磨(만정관패정상마) : 뜰에는 관료들이 막 빽빽이 들어서는구나

 
 

야좌정중려(夜坐呈中慮)-변계량(卞季良)

入夜思君切(입야사군절) : 밤이 들자 그대 생각 간절해
高吟獨未眠(고음독미면) : 소리 높여 시 읊으며 잠들지 못했다.
牀風搖燭影(상풍요촉영) : 평상의 바람에 촛불 그늘 흔들리고
簷雨慢琴絃(첨우만금현) : 처마의 빗물에 거문고가 무색하구나.
世路吾垂翅(세노오수시) : 험한 세상 이내몸 자신감을 잃었는데
名場子着鞭(명장자착편) : 그대들은 채찍 들고 명장으로 달려간다.
知心更誰在(지심갱수재) : 내 마음을 알아줄 사람 어디 있나
得句卽相傳(득구즉상전) : 시구를 얻었기에 바로 그대에게 전하노라.

 
 

황생원별후(黃生員別後)-변계량(卞季良))

黃生相別未經旬(황생상별미경순) : 황 생원과 이별한 지 열흘도 안 되어
只是通家入夢頻(지시통가입몽빈) : 다만 통가의 정인지 꿈속에서 자주 보았다.
相得驛亭今夜月(상득역정금야월) : 오늘밤 역정의 저 달을 쳐다보며
不眠應說宦遊人(부면응설환유인) : 잠 못 자며 벼슬사는 이 사람을 얘기하리라

 
 

우음(偶吟)-변계량(卞季良)

萬物元來只一身(만물원내지일신) : 만물은 원래 내 한 몸에서 출발하니
前脩多是貴爲仁(전수다시귀위인) : 선배들은 모두가 인을 귀중히 여겼도다.
却從箇裏須知本(각종개리수지본) : 개별 사물에서 근본을 알아야 하나니
先自齊家乃及人(선자제가내급인) : 먼저 집안 다스리고 남을 다스려야 하니라

 
 

병기(病起)-변계량(卞季良)

伏枕傷心久(복침상심구) : 병석에 누워 상심한지 오래인데
登樓發興長(등누발흥장) : 누대에 올라보니 한없이 흥겹구나.
江山多態度(강산다태도) : 강과 산이 모양이 다양하니
時節到重陽(시절도중양) : 구월 구일 중양절이 돌아왔구나.
處處黃花嫰(처처황화눈) : 가는 곳마다 노란 꽃이 새롭고
家家白酒香(가가백주향) : 집집마다 막걸리 향기를 피우리라.
何如連袂坐(하여련몌좌) : 어찌하면 그대와 나란히 앉아
談笑引輕觴(담소인경상) : 이야기 나누며 가벼운 술잔 나눌까

 
 

구일등석방남령(九日登石房南嶺)-변계량(卞季良)

秋晩風高松桂香(추만풍고송계향) : 가을 저물고 산바람 높고 솔향기 가득
登臨山勢北來長(등림산세배내장) : 올라 보니 산세가 북쪽으로 길게 뻗혀있다.
自憐少壯成佳會(자련소장성가회) : 기꺼워라, 나 젊은 날, 이 좋은 모임 가졌다니
落帽還須更擧觴(낙모환수갱거상) : 모자는 떨어져 벗겨져도 다시 술잔을 들어본다.

 
 
차양곡약중구등고운(次陽谷約重九登高韻)-변계량(卞季良)

人世多悲少有懽(인세다비소유환) : 세상일에 슬픔 많고 기쁜 일 적으니
百年身事損朱顔(백년신사손주안) : 백 년 평생의 이 신세도 청춘이 줄어든다.
如今九日佳期近(여금구일가기근) : 아름다운 구일 오늘이 가까워지니
須把芳罇對碧山(수파방준대벽산) : 반드시 향기로운 술잔 마주 들고 청산을 보자.
 
 
송우박사(送禹博士)-변계량(卞季良)

手拂斑衣賦遠征(수불반의부원정) : 색동옷 벗어 놓고 먼 길 떠나는데
飄然行色似流星(표연항색사류성) : 거침없는 그 행색이 유성과 같았었지요.
勸來別袖酒花暖(권내별수주화난) : 이별의 옷소매 권하는 술 따뜻하고
載却離鞍詩葉淸(재각리안시엽청) : 떠나는 말안장에 싣는 시는 청아하였어요.
極目鄕山橫釰戟(극목향산횡일극) : 눈에 가득한 고향에 창칼이 비꼈으니
傷心野草點丹靑(상심야초점단청) : 마음이 아프게도 들풀에 얼룩진 핏자국.
君歸好向同年道(군귀호향동년도) : 그대가 돌아가서 동년에게 일러 주게나
莫惜因風寄一聲(막석인풍기일성) : 인편에 한 마디 소식 아낌없이 전하라고
 
 

야좌1(夜坐1)-변계량(卞季良)

望來微月半天斜(망내미월반천사) : 눈썹처럼 가는 달 바라보니 반공에 비껴있고
向曉虛窓露氣多(향효허창노기다) : 새벽 되어가자 빈 창가에 이슬 기운 축축하다.
自是身閒無早晩(자시신한무조만) : 지금부터 한가로워 빠르고 이른 것 없는지라
臥聽南畝促鳴珂(와청남무촉명가) : 남쪽 밭에 누워서 들으니 벌레 소리 재촉한다

 
 
야좌2(夜坐2)-변계량(卞季良)

秋宵坐到白河沈(추소좌도백하심) : 가을밤에 앉아있으니 은하수가 지는데
鬱鬱傷心獨撫琴(울울상심독무금) : 울적하게 마음 아파 홀로 거문고 타노라.
政覺居民無聚散(정각거민무취산) : 살고 있는 백성들은 흩어지지 않는지라
鷄鳴狗吠古猶今(계명구폐고유금) : 닭 울고 개 짖는 소리 예나 지금 같구나
 
 

중추야억양곡(中秋夜憶陽谷)-변계량(卞季良)

西風吹枕夜悠悠(서풍취침야유유) : 서풍 베갯머리에 불어 가을밤 아득한데
病客無聊坐擁裘(병객무료좌옹구) : 병든 나그네 무료하여 이불 쓰고 앉았도다.
滿地月明如白晝(만지월명여백주) : 대지에 달 밝아 대낮 같은데
玉人何處獨登樓(옥인하처독등누) : 그대는 어디서 혼자 누대에 올랐을까

 
 
연어(鳶魚)-변계량(卞季良)

鳶魚分上下(연어분상하) : 소리개 물고기 아래위로 나누어져
自是天機動(자시천기동) : 이러한 현상에서 하늘의 조화가 작동한다.
道在穹壞間(도재궁괴간) : 도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나니
須知人物共(수지인물공) : 사람과 사물이 공유한 줄 알아야 한다
 
 

기양곡(寄陽曲)-변계량(卞季良)

思君日日獨登樓(사군일일독등누) : 그대를 생각하며 날마다 홀로 누대에 올라
滿目江山展畫圖(만목강산전화도) : 눈에 가득히 강산을 그림처럼 펼쳐졌단다.
爲報秋來多勝槩(위보추내다승개) : 가을에는 좋은 경관 많다고 알려줬지만
題詩還似去年無(제시환사거년무) : 시 짓는 솜씨는 지난해보다 못한 것 같다오

 
 

사루만망(寺樓晩望)-변계량(卞季良)

湖海秋風起(호해추풍기) : 호수와 강에 가을바람 이니
旅遊心正悲(려유심정비) : 다니는 나그네 마음이 정말 슬프다.
一身曾不定(일신증부정) : 이 한 몸 일찍이 정처 없었는데
二子故相隨(이자고상수) : 두 사람이 서로 따라 다니었다.
失學名難著(실학명난저) : 배울 기회 잃어 이름나기 어려워
思親淚易垂(사친누역수) : 어버이 생각하며 눈물 흘렸었단다.
舊交惟爾輩(구교유이배) : 옛날에 사귄 사람 너희뿐이라
時復共題詩(시복공제시) : 때로는 같이 시를 짓기도 하였었다.

 
 

등용박산절정(登龍縛山絶頂)-변계량(卞季良)

龍縛聞名久(룡박문명구) : 용박이라 산 이름 들어온지 오래
今來到上頭(금내도상두) : 오늘에야 비로소 정상에 올랐구나.
平看飛鳥背(평간비조배) : 날아가는 새 등이 바로 보이고
俯瞰大江流(부감대강류) : 아래로 굽어보니 대동강이 흘러가는구나.
地坼山河闊(지탁산하활) : 갈라진 대지에 산하가 광활하고
天圍島嶼幽(천위도서유) : 하늘이 둘러싼 섬들은 그윽하구나.
京都在何許(경도재하허) : 서울은 어디 쯤에 있는 것인가
登眺却生愁(등조각생수) : 올라와서 바라보니 갑자기 수심만 생겨난다

 
 

우제(偶題)-변계량(卞季良)

寓居龍鳳寺(우거룡봉사) : 임시로 용봉사에 머물러서
白晝掩苔扉(백주엄태비) : 대낮에도 사립문 닫아 놓았다.
歲月丹靑古(세월단청고) : 세월에 단청이 오래되고
風霜樹木奇(풍상수목기) : 풍상을 거친 나무가 기이하다.
壁燈熏佛坐(벽등훈불좌) : 벽 위의 등불은 불좌에 스미고
山翠暎僧衣(산취영승의) : 푸른 산 빛은 스님 옷을 비춘다.
城市高堂在(성시고당재) : 성 안에 부모님 계시니
思之却自悲(사지각자비) : 생각나니 갑자기 스스로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