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훈 白光勳
1537(중종 32) 전남 장흥~ 1582(선조 15).
조선 중기의 문인.
최경창·이달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 불린다.
자는 창경(彰卿), 호는 옥봉(玉峰). 원래 관향은 수원이지만 선조가 해미(海美)로 귀양와 대대로 머물러 살았으므로 해미가 본관이다.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세인(世仁)이며, 〈관서별곡 關西別曲〉으로 유명한 광홍(光弘)의 동생이다.
이후백·박순에게 수학했으며 22세에는 진도에 귀양와 있던 노수신에게 배웠다.
28세인 1564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과거를 포기, 정치에 참여할 뜻을 버리고 산수를 방랑하며 시와 서도(書道)를 즐겼다.
그가 과거를 포기하게 된 구체적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한미한 가문과 당대의 정치적 상황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36세인 1572년 명나라 사신이 오자 노수신의 천거로 백의제술관(白衣製述官)이 되어 시와 글씨로 사신을 감탄하게 해 명성을 얻었다.
1577년 선릉참봉(宣陵參奉)이 되었으며, 이어 정릉(靖陵), 예빈시(禮賓寺), 소격서(昭格署)의 참봉을 지내면서 서울에 머물렀다.
그에게 관직생활은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지만 토지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적 기반이 미약했기 때문에 유일한 호구책으로 계속 관직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삼당시인으로 불리는 만큼 당풍(唐風)의 시들을 남겼다.
그의 시는 대부분 순간적으로 포착된 삶의 한 국면을 관조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전원의 삶을 다룬 작품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안정과 평화로 가득 찬 밝은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현실에서 오는 고통과 관직생활의 불만에 의해 상대적으로 강화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정구는 그의 문집 서(序)에서 "시대와 맞지 않아 생기는 무료·불평을 시로써 표출했다"고 하면서 특히 절구(絶句)를 높이 평가했다.
글씨에도 일가를 이루어 영화체(永和體)에 빼어났다.
1590년 강진의 서봉서원(瑞峰書院)에 제향되었다. 〈옥봉집〉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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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순거(寄文舜擧)-백광훈(白光勳) |
자보림하서계(自寶林下西溪)-백광훈(白光勳) |
보림사증별(寶林寺贈別)-백광훈(白光勳) |
쌍계원(雙溪園)-백광훈(白光勳) |
취제김중호의(醉題金仲皓衣)-백광훈(白光勳) |
제서상사별업(題徐上舍別業)-백광훈(白光勳) |
유별쌍계옹(留別雙溪翁)-백광훈(白光勳) |
애정원(哀淨源)-백광훈(白光勳) |
예상로취후(汭上路醉後)-백광훈(白光勳) |
제학림사묵죽(題鶴林寺墨竹)-백광훈(白光勳) |
제학림사묵죽(題鶴林寺墨竹)-백광훈(白光勳) |
곡소오(哭蘇澳)-백광훈(白光勳) |
만흥1(漫興1)-백광훈(白光勳) |
제학림사묵죽(題鶴林寺墨竹)-백광훈(白光勳) |
능소대하문적(陵霄臺下聞笛)-백광훈(白光勳) |
신거득석정(新居得石井)-백광훈(白光勳) |
증사준상인(贈思峻上人)-백광훈(白光勳) |
기정형경수(寄鄭兄景綏)-백광훈(白光勳) |
기양천유(寄梁天維)-백광훈(白光勳) |
억고죽(憶孤竹)-백광훈(白光勳) |
과용호(過龍湖)-백광훈(白光勳) |
기양천유(寄梁天維)-백광훈(白光勳) |
송백광훈환향(送白光勳還鄕)-임억령(林億齡) |
유증(有贈)-백광훈(白光勳) |
낙중별우(洛中別友)-백광훈(白光勳) 長安相送處(장안상송처) : 서울서 서로 헤어지는 처지 無語贈君歸(무어증군귀) : 그대가 떠나도 보내줄 말이 없구나 却向江南望(각향강남망) : 문득 강남 땅 바라보니 靑山又落暉(청산우낙휘) : 청산에는 또 해가 저무는구나 |
용강별성보(龍江別成甫)-백광훈(白光勳) |
능양북정(綾陽北亭)-백광훈(白光勳) 長堤日晩少人行(장제일만소인행) : 긴 뚝에 날이 저무니 행인이 드물어 楊柳靑靑江水聲(양류청청강수성) : 푸르고 푸른 버드나무 사이로 강물소리 들린다 爲是昔年別離地(위시석년별리지) : 지난날 이별한 땅인지라 不緣別離亦多情(불연별리역다정) : 이별하지 않아도 정이 짙어지는구나 |
개산(介山)-백광훈(白光勳) 秋山雨過夕陽明(추산우과석양명) : 가을산에 비 지나가 석양이 밝아지고 亂水交流引獨行(난수교류인독행) : 여기저기 산골물은 흘러 외로이 가는 나그네를 붙드네 岸上數村疏樹裡(안상수촌소수리) : 언덕 위에 집 몇 채와 성긴 나무 몇 그루 寂無人語有蟬聲(적무인어유선성) : 적막하고 사람소리 하나 없고 매미소리만 들리는구나 |
서군수제(徐君受第)-백광훈(白光勳) 西出松坊舊路疑(서출송방구로의) : 서쪽으로 소나무 고을 나오니 옛길이 어렴풋하여 |
춘망(春望)-백광훈(白光勳) 日日軒窓似有期(일일헌창사유기) : 무슨 기약이나 있는 듯 날마다 창에 기대고 捲簾時早下廉遲(권렴시조하렴지) : 일찌감치 발을 걷었다가 늦어서야 발을 내린다 春風正在山頭寺(춘풍정재산두사) : 봄바람 한창 산머리 절간에서 부는데 花外歸僧自不知(화외귀승자부지) : 꽃 너머로 돌아가는 스님은 알지도 못하는구나 |
즉사증승(卽事贈僧)-백광훈(白光勳) |
춘후(春後)-백광훈(白光勳) 春去無如病客何(춘거무여병객하) : 봄이 지나는 것을 병든 나그네가 어찌하랴 出門時少閉門多(출문시소폐문다) : 집을 나서는 일 적고 문 닫을 때가 많구나 杜鵑恐有繫華戀(두견공유계화련) : 두견새는 공연히 화려함을 좋아하여 啼在靑山未落花(제재청산미낙화) : 청산의 아직지지 않은 꽃에서 울고있구나 |
한천탄(寒川灘)-백광훈(白光勳) 寒川灘上水如藍(한천탄상수여람) : 한천탄에는 물빛이 쪽빛 같고 兩石巖西雪滿潭(양석암서설만담) : 양석암 서편에는 눈이 못에 가득하다 明月不逢騎鶴侶(명월불봉기학려) : 밝은 달빛 아래 학 탄 친구를 못 만나 夜深鳴笛下江南(야심명적하강남) : 깊은 밤 피리 불며 강남으로 내려간다 |
송고종(宋高宗)-백광훈(白光勳) 痛飮黃龍計亦疎(통음황룡계역소) : 황룡부에서 통음하려니 계획이 이미 소원하고 廷臣爭議拜穹廬(정신쟁의배궁려) : 조정 신하들 다투니 오랑캐를 섬기게 되었구나 江南自有全身地(강남자유전신지) : 장강 남쪽에 몸을 보전할 땅이 있어 河北空傳半臂書(하북공전반비서) : 하북에서는 공연히 밀서만 전했었구나 |
홍경사(弘慶寺)-백광훈(白光勳) |
송월(松月)-백광훈(白光勳) 手持一卷蘂珠篇(수지일권예주편) : 손에 쥔 한 권 책은 예주편 讀罷松壇伴鶴眠(독파송단반학면) : 송단에서 읽고나 학을 친구하여 잠 들었다 驚起中宵滿身影(경기중소만신영) : 한 밤에 놀라 깨어나니 몸에 가득 달그림자 冷霞飛盡月流天(냉하비진월류천) : 차가운 이내 없어지고 달은 하늘을 흘러간다 |
파산야화(巴山夜話)-백광훈(白光勳) |
만흥2(漫興2)-백광훈(白光勳) |
富春別墅(부춘별서)-白光勳(백광훈) |
竹籬(죽리)-白光勳(백광훈) |
松京有感(송경유감)-白光勳(백광훈) 五百年間瞥眼春(오백년간별안춘) : 오백년 세월이 잠깐 스치는 봄 같아 繁華無處覓遺塵(번화무처멱유진) : 번화한 그 시절 간 곳 없어, 남은 자취 찾아보니 傷心二十橋頭月(상심이십교두월) : 상심한 이십교 다리 위의 달이 留照悠悠行路人(유조유유행로인) : 머물러 유유히 길가는 나그네를 비춰주네 |
夫餘有感(부여유감)-白光勳(백광훈) 靑山重疊碧江流(청산중첩벽강류) : 산 첩첩, 강물은 흘러만 가네 不是金宮卽玉樓(불시금궁즉옥루) : 이곳 궁궐, 아니면 옥 같은 누각이라 全盛只今無問處(전성지금무문처) : 왕성했던 지난 일, 지금은 물어 볼 곳 하나 없어 月明潮落倚孤舟(월명조락의고주) : 조수에 밝은 달 빛, 외로운 배에 몸을 실었네 |
寄友(기우)-白光勳(백광훈) |
有懷(유회)-白光勳(백광훈) |
別家(별가)-白光勳(백광훈) |
回鄕(회향)-白光勳(백광훈) 江海茫茫路幾千(강해망망로기천) : 바다는 아득한데 길은 몇 천리던가 歸來隣山故依然(귀래인산고의연) : 돌아오는 산천은 엣 날 같구나 兒童恠我客顔改(아동괴아객안개) : 아이들은 나 이상하다 얼굴을 돌리네 異地光陰日抵年(이지광음일저년) : 타향살이 하루하루가 일년이었소 |
龍江別成浦(룡강별성포)-白光勳(백광훈) 千里柰君別(천리내군별) : 천리 먼 곳으로 임 보내니 나는 어쩌랴 起看中夜行(기간중야행) : 자다가 일어나, 임 가시는 밤 길 생각하네 孤舟去已遠(고주거이원) : 외로운 배는 떠나 이미 멀어지고 月落寒江鳴(월락한강명) : 달은 지고 차가운 강물도 울면서 흘러간다 |
송백광훈환향(送白光勳還鄕)-임억령(林億齡) 江月圓復缺(강월원복결) : 강 위의 달은 둥글었다 다시 이지러지고 庭梅落又開(정매락우개) : 뜰의 매화는 지고 또 피네 逢春歸未得(봉춘귀미득) : 봄이 와도 나는 돌아가지는 못하고 獨上望鄕臺(독상망향대) : 홀로 망향대에 올라본다 |
홍경사( 弘慶寺)-백광훈(白光勳) 秋草前朝寺(추초전조사) : 가을 풀 우거진 지난 왕조 고려의 절 홍경사 殘碑學士文(잔비학사문) : 비석엔 당시 선비들의 글귀만 남았구나 千年有流水(천년유류수) : 천년이 지나도록 물은 게속 흘러가고 落日見歸雲(낙일견귀운) : 지는 햇빛 아래 서서 돌아가는 구름만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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