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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홍릉 영휘원 & 숭인원(永徽園과 崇仁園)

 

홍릉수목원 가면서 만나는 영휘원사거리 - 안암동.청량리인근 사거리.

언제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으나 오늘 가 봅니다.(2013년10월20일)

근대 조선말기의 애잔한 사연이 있고 안타깝기만 한 영휘원과 숭인원은 작지만 많은 뜻을 함축하는 장소입니다.

 

 

 

 

※영휘원과 숭인원(永徽園과 崇仁園)

1991년 10월 25일 제361호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소재하는 능으로 지정면적은 5만 5015㎡이다.

경내에 함께 있는 엄귀비의 손자 이진(李晉:英親王의 아들)의 묘인 숭인원(崇仁園)도 사적에 포함된다.

엄귀비는 1854년 증찬정(贈贊政) 엄종삼(嚴鍾三)의 장녀로 태어나, 8세에 입궐하여 명성황후(明成皇后:閔妃)의 시위상궁이 되었으며

명성황후가 가 1896년 을미사변으로 일본군에 의해 시해된 뒤 아관파천(俄館播遷) 때고종을 모신 후 후궁이 되어 영친왕(英親王:李垠)을

낳았다.

1911년 7월 20일 58세에 죽어,위패는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칠궁에 봉안되고 시신은 이 곳에 묻혔다.

원래 이 곳은 황실의 가족묘지로 정한 곳인데, 명성왕후의 능인 홍릉(洪陵)이 있어 이 일대를 홍릉이라 일컬었으나, 홍릉 자체는 1919년

3월 경기도 미금시 금곡동(金谷洞)에고종과 합장하기 위해 옮겨졌다.

묘의 시설로는 봉분·곡장(曲墻)·혼유석(魂遊石)·문인석(文人石)·장명등(長明燈)·석양(石羊)·석호(石虎) 등이 있고,

사초지(莎草地)도 조성되어 있다.

묘 앞에 정자각(丁字閣)·비각(碑閣)·홍살문이 있으며, 영휘원과 숭인원을 관리하는 재실(齋室)도 세워져 있다. (자료인용)

 

 

 

 

※묘(墓)와 원(園). 릉(陵)의 차이점

묘, 원, 릉. 여기서 크게 나누자면 묘와 원,릉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릉와 원의 경우엔 왕과 왕비의 묘지에 붙는 명칭입니다.

그래서 정조의 무덤이 건릉이고, 성종과 성종의 계비의 무덤이 서울 강남구에 있는 선릉이 있습니다.

이렇게 왕와 왕비의 묘지가 릉이라 불리우는데, 원의 경우엔 왕이 되지 못했지만 자식이 왕이 된 경우

혹은 왕세자 세자비 왕세손과 세손비의 묘지를 원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예외로 세자의 무덤이 릉으로 추존된 경우도 있는데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무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또한 묘는 위에 능원 이외를 다 묘라 칭합니다.

(자료인용)

 

 

 

 

 

정문에 꼬마관객이 단체로 입장합니다

 

 

 

 

 

 

홍릉 수목원 입구에 사거리에 있습니다

 

 

 

 

 

 

입구의 영휘원과 숭인원의 안내현판

 

 

 

 

 

 

 

영휘원입구와 홍살문

 

 

 

 

 

 

영휘원 안내판

영휘원은 조선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씨의 원(무덤)이고, 숭인원은 조선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영왕, 영친왕이라고도 함)의

 큰아들 이진의 원(園)이다.

 

 

 

 

 

엄씨 묘소

 

 

순헌귀비 엄씨는 엄진삼의 장녀로 8살에 입궐하여 명성황후의 시위상궁이 되었다가 1897년 아들 은을 낳아 귀인이 된 후

순헌황귀비 칭호를 받고 경선궁에 살았다.

그 후 여성들의 신교육을 위해 1905년 양정의숙과 1906년 진명여학교을 설립하였고, 명신여학교(현 숙명여자대학교)가

 재정난을 겪자 200만평 땅을 기증하기도 했다.

엄귀비는 일본이 고종황제를 태왕으로, 순종황제는 조선왕으로, 순종황제의 이복동생인 의민황태자를 영친왕으로 강등시킨

 시기를 보냈으며, 의민황태자가 일본에 볼모로 간 후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훈련받는 모습도 활동사진으로 보게 된다.

1911년 7월 20일, 춘추 58세에 서거하여, 순헌(純獻)의 시호가 내려지고, 8월에 양주 천수산(天秀山)에 무덤을 만들고, 원호를 영휘라 하였다.

신위는 청와대 경내 칠궁에 있는 덕안궁에 모셔져 있다.

 

 

 

 

정자각과 비각

 

 

 

 

 

 

천연기념물 산사나무

 

 

 

 

 

 

 

산사나무 안내문

 

 

 

 

 

 

 

숭인원 입구

 

 

 

 

 

 

숭인원 안내판

영휘원은 조선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씨의 원(무덤)이고, 숭인원은 조선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영왕, 영친왕이라고도 함)의

 큰아들 이진의 원(園)이다.

 

 

 

 

 

홍살문

 

 

 

 

 

 

정자각과 비각

 

 

숭인원에 안장된 이진은 1921년 8월 일본에서 태어나 부모(의민황태자, 이방자여사)와 일시 귀국하였으나, 이듬해 5월, 생후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의 풍습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장례를 치룰 수가 없었으나, 순종황제가 이진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어른의 장례와 같게 치르도록 하고

 원호를 숭인(崇仁)으로 내리고, 할머니인 순헌귀비 엄씨의 영휘원 남측에 조영하였다.

 

 

 

 

비각 안의 비석

 

 

 

 

 

 

무심한 봉분 옆 소나무

 

 

 

 

 

 

참으로 슬픈 근대사의 사연이 있는 곳입니다.

명성왕후의 능인 홍릉이 금곡으로 이전할때 함께 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고 우리가 계속 보존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봉분 가까이 접근이 않되서 좀 서운하기는 했지만 보존 차원이라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해설하여 주시는 어르신도 박식하시고 특히 친절하셔서 존경을 표합니다.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좋은 곳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입장료- 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