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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트레킹)

강동구 일자산(一字山)

 

올 겨울엔 겨울다운 추위나 눈다운 눈이 없이 겨울이 가려나 봅니다.

요사이 날씨가 꼭 이대로 겨울이 끝날것이라 단정은 못하겠지만 두꺼운 외투가 부담스럽네요.

즐거운 토요일- 오전엔 바쁜일을 치루고 오후 좀 늦은 시간에, 걷고 싶어서 강동구 일자산을 찾았다.

예전에 두어번 가봤던 재미있는 일자산은 말 그대로 높지 않은 산을 일자(一字)로 간다.

그렇다고 높낮이가 심한것도 아니고 평범한 일자산은 이 곳 강동구(둔촌동)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일자산 트레킹 일지

-일시 : 2015년 1월24일 토요일 날씨 맑음

-동반 : 혼자

-난이도 : ★☆☆☆

 

 

 

 

 

 

 

 

보훈병원 정문 옆으로가서 횡단보도 건너면서 시작합니다

 

 

황토흙 산행입구가 건강해 보입니다

 

 

 

 

 

 

 

 

 

 

 

 

※둔촌(遁村) 이집(李集) 선생

1327(충숙왕 14)∼1387(우왕 13). 고려 후기의 학자·문인.

본관은 광주(廣州). 초명은 원령(元齡). 자는 호연(浩然), 호는 둔촌(遁村). 광주 향리 당(唐)의 아들이다

충목왕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문장을 잘 짓고 지조가 굳기로 명성이 높았다.

1368년(공민왕 17) 신돈(辛旽)의 미움을 사 생명의 위협을 받자, 가족과 함께 영천으로 도피하여 고생 끝에 겨우 죽음을 면하였다.

1371년신돈이 주살되자 개경으로 돌아와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여주천녕현(川寧縣)에서

전야(田野)에 묻혀 살면서 시를 지으며 일생을 마쳤다.

그의 시에는 꾸밈과 우회보다는 직서체(直敍體)에 의한 자연스럽고 평이한 작품이 많다.

그는 당시 임심문(任深文)을 비롯한 60명에 달하는 많은 인물들과 시로써 교유하였다.

특히,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과의 친분이 두터웠다.

문집 부록에 실린 삼은(三隱)의 기(記)·서(序)·서(書)는 그와 삼은과의 관계를 잘 알 수 있게 하여준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그가 조선조에 벼슬을 지냈다고 잘못 기록되어 있는데, 1611년(광해군 3) 8대손인 영의정 이덕형(李德馨)의

주청이 받아들여져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바로잡혀지게 되었다.

광주의 구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둔촌유고≫가 있다 -자료인용

 

 

 

 

 

 

 

서울둘레길의 코스이면서 멀리는 검단산이 보인다

 

 

 

산이 얼었다 녹으면서 질퍽거리는 곳이 몇군데 있다

 

 

분명히 산행에 대한 배려는 좋다

 

 

둔촌 이집선생에 대한 후담이 많은 일자산

 

 

해맞이 기념비

 

 

해맞이 광장

 

 

곳곳에 간벌로 잘려서 정돈된 나무들이 좌우에 많이 눈에 띈다

 

 

하남시 초이동

 

 

일자산 끝- 체력단련장

 

 

명일근린공원 방향 하산

 

 

6시경되니 깜깜하네요

 

 

오늘 시골에서 어제 올라오신 부모님 생신 준비에 분주했던 시간을 마치고 가까운 걷기코스를 찾았다.

예전에 친구들과 몇번 와 봤던 산이다. 그때는 일자산을 지나쳐서 한강쪽 끝(고덕산)까지 걸었던 걸로 기억한다.

부모님이 자식 집에 오셔서 하루밤 묵으시고 생신상 받으시고 영화-국제시장-도 구경하시고 점심식사 후 떠나셨다.

일자산 혼자 걷는 중에 시골에 잘 도착하셨다는 어머니의 맑은 목소리 전화에 또 한번 감사드린다.

부모님 살아 계실때 잘해야 한다는데,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건만

아직도 정말 아직도 잘 모르겠다.-아니 정말 미흡하다는 말이 맞을것 같다.

 

일자산(一字山)의 산이름이 주는 솔직함이 정말 순수하고 좋다.

평범함에서 오는 친근함이 올때마다 마음이 드는 좋은 트레킹 코스임에 틀림없다.

다음엔 일자산에서 성내천을 거쳐 대모산쪽으로 이어봐야 겠다.

좋은 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