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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漢詩

최치원 秋夜雨中(추야우중)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가을 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나,

세상에 알아 주는 이 없네.

창 밖엔 밤 깊도록 비만 내리는데,

등불 앞에 마음은 만리 밖을 내닫네

 

 

신라 말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이 지은 오언절구의 한시이다.

 비오는 가을밤에 자신을 알아줄 知己가 없는 외로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깊어가는 가을밤의 비바람 속에서 서정적 자아는 괴롭게 시를 읊조리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를 짓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더 고통스러운 것은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정적 자아는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등불을 마주하고 앉아 있으나 마음은 만리 밖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괴로움은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역사의 현장을 외면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밤중에 비가 온다는 것은 밖이 험난하기만 하니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을 암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등불이 켜져 있는 방안만 밝다 하고, 거기에 자신의 세계를 설정해 놓고서 만리의 행적을 마음 속으로 더듬을 뿐이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결구의 의미 내용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최치원의 귀국 이전의 작품이라고도 하고, 또는 귀국 후의 작품이라는 견해가 있어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계원필경>에도 수록되어 있을 않을 뿐 아니라, 그의 시 경향과 내용으로 보아 귀국 후의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시의 경향을 보면, 최치원이 고변의 종사관이 되기 이전의 시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작품들에서는 대체로 회의와 자조가 흔히 발견되나, 귀국의 길에 올랐을 때 읊은 것으로 보이는 작품에서는 그의 고고한 세계관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도 결구의 ‘만리심’은 언표(言表)에 나타난 그대로 만리 타국에 있는 작자의 심경이기보다는, 마음과 일이 서로 어그러져 세상과는 이미 천리 만리 떠나고 있는 작자의 방황하는 심회를 호소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귀국하여 벼슬이 아찬에까지 올랐으나 이때는 진성여왕의 난정으로 나라의 운세가 기울고 있었으므로, 몸과 마음을 의탁할 곳을 얻지 못하여 ‘시무십여조’를 올리고 스스로 가야산으로 숨어 든 만년의 행적은 곧 '만리심'의 실천 현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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