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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漢詩

조광조(趙光祖) 다수

 

조광조 趙光祖

조선 전기의 학자·정치가.
중종 때 도학정치를 주창하며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시행했으나, 훈구 세력의 반발을 사서 결국 죽음을 당했다.
20세 때 김종직의 학통을 이은 김굉필의 문하에서 가장 촉망받는 청년학자로서 사림파의 영수가 되었다.

 조광조의 정치관은 유교를 정치와 교화의 근본으로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왕도정치의 구체적 실현방법으로 왕이나 관직에 있는 자들이 몸소 도학을 실천궁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을 지치주의·도학정치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훈구파의 반발을 샀고, 모략에 의해 사사되었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조선 개국공신 온(溫)의 5대손이며, 아버지는 감찰 원강(元綱)이다.

17세 때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 무오사화로 희천에 유배중인 김굉필(金宏弼)에게 학문을 배웠다.

이때부터 시문은 물론 성리학의 연구에 힘을 쏟았고, 〈소학 小學〉·〈근사록 近思錄〉 등을 토대로 하여 이를 경전에 응용하는 등, 20세 때 김종직(金宗直)의 학통을 이은 김굉필의 문하에서 가장 촉망받는 청년학자로서 사림파의 영수가 되었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김굉필이 연산군의 생모 윤씨의 폐위에 찬성했다 하여 윤필상(尹弼商)·이극균(李克均) 등과 함께 처형되면서 가족과 제자들까지도 처벌당하게 되자, 조광조도 유배당하는 몸이 되었다.

 정계의 현실을 몸소 겪은 그는 유배지에서 학업에만 전념했다.

1510년(중종 5)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했는데, 이때는 연산군 시절의 폐해에 느낀 바 있어 '정군심'(正君心)·'치군지'(致君知)를 급선무로 삼아 〈대학〉의 도를 역설하는 한편, 도학정치·철인정치를 주장한 대자성 유숭조(柳崇祖)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515년 조지서사지(造紙署司紙)라는 관직에 초임되었고, 이어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전적·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면서 왕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해에 장경왕후(章敬王后)가 죽고 중종의 계비 책봉문제가 논의될 때, 박상(朴祥)·김정(金淨) 등이 폐위된 신씨(愼氏)의 복위를 상소하다 반정공신(反正功臣)인 대사간 이행(李荇)의 탄핵으로 유배되자, 정언으로 있던 조광조는 대사간으로서 상소자를 벌함은 언로(言路)를 막는 결과가 되어 국가의 존망과 관계된다고 주장하여 오히려 이행 등을 파직하게 했다.

 그뒤 수찬을 거쳐 호조·예조의 정랑을 역임했다. 그는 왕의 신임을 바탕으로 입시(入侍)할 때마다 도학정치를 역설했다.

당시는 연산군이 정치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직후로 정치적 분위기를 새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 시대적 추세였고, 중종은 조광조의 정치사상을 바탕으로 이상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조광조의 정치관은 유교를 정치와 교화의 근본으로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왕도정치(王道政治)의 구체적 실현방법으로 왕이나 관직에 있는 자들이 몸소 도학을 실천궁행(實踐躬行)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을 지치주의(至治主義)·도학정치라고 했다.

그는 지치(이상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스림의 근본인 군주의 마음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되며, 군주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정체(政體)가 의지하여 설 수 없고 교화가 행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 뜻을 세움이 크고 높아 시류(時流)에 구애되지 않아야 함을 논하고, '조종(祖宗)의 옛 법을 갑자기 고칠 수는 없지만 만일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역시 변통(變通)이 있어야 한다'라고 하는 변법주의(變法主義)를 주장했다.

한편 지난날의 사림의 참화를 거울 삼아, 임금이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의 공을 이룸으로써 마음을 밝혀 군자와 소인을 분별해야 이상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송순지남행(送順之南行)-조광조(趙光祖)
순지의 남행을 전송하여-조광조(趙光祖)

慈母保赤子(자모보적자) : 인자한 어미가 어린애를 보호함에
莫學中兒情(막학중아정) : 배우지 아니해도 아이의 마음에 맞춘다.
吾民此有口(오민차유구) : 우리 백성에게 입이 있으니
我志當先明(아지당선명) : 나의 뜻을 마땅히 먼저 밝혀야 한다.
濟物固分事(제물고분사) : 사물을 구제함은 진시로 분수에 맞는 일이요
素學爲今行(소학위금행) : 평소 배운 것을 백성 위해 이제 행하리라.
化宣君能否(화선군능부) : 교화를 펴는 일을 그대 능히 할 수 있을까.
最父子弟兄(최부자제형) : 가장 먼저 부자형제로부터 해야 하리라.
大雅曾未聞(대아증미문) : 대아를 아직 듣지 못했으니
汚染何由淸(오염하유청) : 오염을 무엇으로 말미암아 맑게 할까.

 

 

추야주중봉별김자유지임영천(秋夜舟中奉別金子由之任榮川)-조광조(趙光祖)
가을밤 배 안에서 김자유가 영천으로 부임함을 전별하다-조광조(趙光祖)

才傑應時運(재걸응시운) : 재주 뛰어남은 시운에 응하였고
登庸簡上心(등용간상심) : 등용은 임금의 마음에 간택이 되었구나.
豸威烏扇肅(치위오선숙) : 해치의 위엄에 검은 부채 엄숙하고
虎略塞垣深(호략새원심) : 호랑이 지략은 변방에 깊숙하였다.
再折淸都桂(재절청도계) : 두 번 청도의 계수나무를 꺾고
重鳴宓子琴(중명복자금) : 거듭 복자천의 거문고를 타는구나.
萊衣兼晝錦(래의겸주금) : 효도와 출세를 겸하였으니
壽席雪盈簪(수석설영잠) : 환갑연에 흰 머리털이 비녀에 가득하여라.

 

 

증장맹우(贈張孟羽)-조광조(趙光祖)
장맹우에게 드리다-조광조(趙光祖)

平生技倆路岐頭(평생기량로기두) : 평생의 기량이 갈림길이 있어
白首窮途謾抱愁(백수궁도만포수) : 백발에 곤궁하게 근심을 안고 있다.
上帝聰明元在我(상제총명원재아) : 상제의 총명이 원래 내게 있어
向來名利不曾求(향래명리불증구) : 이후론 명리를 일찍이 구하지 않았다.

 

 

송순지남행(送順之南行)-조광조(趙光祖)
순지의 남행을 전송하며-조광조(趙光祖)

大道久寂寞(대도구적막) : 대도가 오래도록 적막하니
異議今崢嶸(이의금쟁영) : 이단들이 이제 우뚝하구나.
渾渾千丈波(혼혼천장파) : 혼혼한 천 길의 물결
黃流欲揜淸(황류욕엄청) : 황하의 물이 맑은 물 덮치려한다.
王澤滯莫下(왕택체막하) : 왕의 은택이 막혀 내려가지 못하니
殘氓無自生(잔맹무자생) : 쇠잔한 백성들이 스스로 살 수가 없다.
嘗聞古君子(상문고군자) : 일찍이 들으니 예날 군자들은
歎靡逢君明(탄미봉군명) : 임금의 총명함 만나지 못함을 탄식하였다.
維時難再得(유시난재득) : 오직 기회는 다시 번 얻기 어려우니
爲君鳴不平(위군명불평) : 임금 위해서 공평하지 못함을 울라.

 

 

조매계위만(曺梅溪偉輓)-조광조(趙光祖)
매계 조위 만가-조광조(趙光祖)

梅溪先逝寒暄弔(매계선서한훤조) : 매계가 먼저 죽어 한훤당을 조상하니
野史當年感愴多(야사당년감창다) : 야사에 전한 당시에는 감상과 슬픔 많았어라.
聞道河陽猶有子(문도하양유유자) : 들으매 하양에 오히려 그대가 있어
霜天如見一黃花(상천여견일황화) : 서리 내린 날, 한 떨기 국화를 보는 듯 하여라.

 

 

증송재(贈松齋)-조광조(趙光祖)
송재에게 주다-조광조(趙光祖)

特松凌雲碧(특송능운벽) : 우뚝한 소나무 푸른 구름 능멸하고
孤月照氷寒(고월조빙한) : 외로운 달은 얼음 비춰 차갑구나.
欲識先生節(욕식선생절) : 선생의 절개를 알아보려면
請取松月看(청취송월간) : 청컨대, 소나무와 달을 취해서 보시라.

 

 

제강청로은난죽병(題姜淸老隱蘭竹屛)-조광조(趙光祖)
강청로의 난죽 병풍에 제하다-조광조(趙光祖)

筍生俄茁葉(순생아줄엽) : 죽순이 나서 조금 만에 잎이 나오더니
稚長却成竹(치장각성죽) : 어린것이 자라 문득 대나무가 되었구나.
觀物做工夫(관물주공부) : 물건을 보고 공부를 삼으니
如斯期進學(여사기진학) : 이와 같이 하여 학문의 진보를 기약하세

 

 

송순지남행(送順之南行)-조광조(趙光祖)
순지의 남행을 전송하며-조광조(趙光祖)

君行屬春時(군행속춘시) : 그대 가는 것이 봄날에 속하니
天地養仁和(천지양인화) : 천지가 인애와 화목을 기르는구나.
活油江新流(활유강신류) : 활발하게도 강물은 새로이 흐르고
丰茸草生坡(봉용초생파) : 무성하게도 풀은 언덕에 돋아나는구나.
道逈千里盡(도형천리진) : 길은 멀어 천리나 아득히 뻗히고
眼中幾歷多(안중기력다) : 눈 안에는 지나온 것이 얼마나 많았는가.
君子惟心遠(군자유심원) : 군자는 오직 마음으로 멀리 보나니
無非意所加(무비의소가) : 뜻이 더할 바가 아님이 없다.
他年聞報政(타년문보정) : 다른 해에 정사를 보고해 들려 주면
須憶此日歌(수억차일가) : 모름지기 이 날의 노래를 꼭 기억하시라.

 

 

강호정회유(江湖亭會遊)-조광조(趙光祖)
강호정에서 모여 놀다-조광조(趙光祖)

洛陽西畔海門東(낙양서반해문동) : 낙양 서쪽 언덕, 바다 관문 동쪽
地勢逶迤壑勢雄(지세위이학세웅) : 지세는 구불지고 골짜기 형세는 웅장하다.
八九人家山影裏(팔구인가산영리) : 여덟 아홉 되는 인가는 산 그늘 속에 있고
兩三禽語水聲中(양삼금어수성중) : 두 세 마디 새소리는 물소리 속에서 들린다.
淸風入戶繩床冷(청풍입호승상냉) : 맑은 바람 지게문으로 들니 평상 서늘하고
返照侵簾酒杯空(반조침렴주배공) : 넘어가는 햇빛 주렴에 드는데 술잔이 비었다.
踏遍名園花事歇(답편명원화사헐) : 이름난 동산을 두루 다녀 꽃구경 마치니
春光隨我杖頭紅(춘광수아장두홍) : 봄빛은 나를 따라와 지팡이 머리가 붉다

 

 

제강청로은난죽병(題姜淸老隱蘭竹屛)-조광조(趙光祖)
강청로의 난죽 평풍에 제하다-조광조(趙光祖)

南巡飄不返(남순표불반) : 남으로 순행하다 표연히 돌아오지 못하니
哭帝喪英皇(곡제상영황) : 순제가 아황과 여영을 잃음을 곡하였다.
血染成斑竹(혈염성반죽) : 피는 물들여서 소상의 얼룩진 대나무 되고
淚沾漾碧湘(누첨양벽상) : 눈물은 적셔 푸른 상수의 물결을 붇게 한다.

 

 

송순지남행(送順之南行)-조광조(趙光祖)
순지의 남행을 전송하며-조광조(趙光祖)

扶時有所歸(부시유소귀) : 때를 붙잡아 돌아갈 곳 있으니
適幾尤陳力(적기우진력) : 기미를 맞추어 더욱 힘을 베풀라.
習流慣可人(습류관가인) : 시류를 익혀 가인에 익숙하니
奈如戕善俗(내여장선속) : 어찌 착한 풍속을 해칠 수 있을까.
聖主方轉化(성주방전화) : 성주께서 교화를 펴고 계시니
東丘欣日出(동구흔일출) : 우리 나라에 기쁜 해가 솟아오른다.
款款效忠信(관관효충신) : 정성되게 충성과 믿음 본받으니
莫此更何得(막차갱하득) : 이것 말고 다시 무엇을 얻을까.
天威嚴咫尺(천위엄지척) : 하늘의 위엄이 지척에 엄숙하니
一誠毋移易(일성무이역) : 한결같은 정성을 옮겨 바꾸지 말라.

 

 

증송재(贈松齋)-조광조(趙光祖)
송재에게-조광조(趙光祖)

特松凌雲碧(특송능운벽) : 우뚝한 소나무는 구름을 능멸하여 푸르고
孤月照氷寒(고월조빙한) : 외로운 달은 얼음을 비춰 차갑구나
欲識先生節(욕식선생절) : 선생의 절개를 알고자 하려면
請取松月看(청취송월간) : 청컨대, 소나무와 달을 취해 모셨으면

 

 

강호정회유(江湖亭會遊)-조광조(趙光祖)
강호정에 모여 놀다-조광조(趙光祖)

洛陽西畔海門東(낙양서반해문동) : 낙양 서편 언덕이요 바다 관문의 동쪽에
地勢逶迤壑勢雄(지세위이학세웅) : 지세는 구불구불하고 골짜기의 형세는 웅장하다
八九人家山影裏(팔구인가산영리) : 여덟이나 아홉 되는 人家는 산 그늘 속에 있고
兩三禽語水聲中(양삼금어수성중) : 두 세 마디 새소리 흐르는 물소리 소리에 들려온다
淸風入戶繩床冷(청풍입호승상냉) : 청풍이 창문에 들어오니 승상이 서늘하고
返照侵簾酒杯空(반조침렴주배공) : 지는 해빛 발에 드는데 술잔은 비었구나
踏遍名園花事歇(답편명원화사헐) : 이름난 동산을 두루 다니며 꽃구경을 마치니
春光隨我杖頭紅(춘광수아장두홍) : 봄빛이 나를 따라 지팡이 머리를 붉게 비춘다

 

 

詠琴(영금)-趙光祖(조광조)
거문고를 읊다-趙光祖(조광조)

瑤琴一彈千年調(요금일탄천년조) : 좋은 거문고 내어 한번 천년 곡조를 타니
聾俗紛紛但聽音(농속분분단청음) : 소리를 잘 모르는 자, 분분히 소리로만 듣는구나.
怊悵鐘期沒已久(초창종기몰이구) : 아, 종자기 이미 죽었으니
世間誰知伯牙心(세간수지백아심) : 세상에서 누가 백아의 마음을 알아줄까

 

 

송안순지구례(送安順之求禮)-조광조(趙光祖)
안순지를 구례로 보내며-조광조(趙光祖)

君行屬春時(군행속춘시) : 그대 떠나는 날, 화창한 봄이라
天地養仁和(천지양인화) : 세상은 어질고 평화로워라
活潑江新流(활발강신류) : 사방에 물 녹아, 강물은 새로워라
耒茸草生坡(뢰용초생파) : 새싹 돋아나고, 언덕엔 풀이 자라네
道逈千里遠(도형천리원) : 길은 멀어 천리 길
眼中歷幾多(안중역기다) : 지난 일 돌이켜 보면, 산 넘고 물 건넌 일 몇 번이던가
君子惟心遠(군자유심원) : 군자의 마음이란 넓어야 하는 것
無非意所加(무비의소가) : 마음 쓸 곳이 없지 않도다
他日聞報政(타일한보정) : 훗날에 잘 다스린 일 소문 들리먼
須憶此日歌(수억차일가) : 오늘의 이 노래 다시 부르리

 

 

릉성적중(綾城謫中)-조광조(趙光祖)
능성으로 귀양가서-조광조(趙光祖)

誰憐身似傷弓鳥(수연신사상궁조) : 나 화살 맞은 새, 누가 불쌍히 여길까
自笑心同失馬翁(자소심동실마옹) : 말 잃고 외양간 고친 노인 신세라 스스로 웃어보네
猿鶴定嗔吾不返(원학정진오불반) : 원숭이와 학도 돌이킬 수 없다 화를 내는데
豈知難出覆盆中(기지난출복분중) : 엎질러진 물 돌이키기 어려움을 어찌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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