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漢詩

정약용(丁若鏞) 다수

정약용丁若鏞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형원·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실용지학·이용후생을 주장하면서 주자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각종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했다.
다산은 30대초까지는 아직 젊은 중앙관료로서 경학사상 등 학문체계는 물론 사회현실에 대한 경험과 인식이 깊지 못했다. 그의 학문과정과 생애 후기는 주로 유배생활의 시기이다. 그는 출중한 학식과 재능을 바탕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신유사옥 후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되었는데, 그는 이곳에서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여 그의 학문체계를 완성했다

유형원(柳馨遠)·이익(李瀷)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실용지학(實用之學)·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하면서 주자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각종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했다. 본관은 나주(羅州). 소자는 귀농(歸農). 자는 미용(美庸)·송보(頌甫), 호는 사암(俟菴). 자호는 다산(茶山)·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 당호(堂號)는 여유(與猶). 아버지는 진주목사(晉州牧使) 재원(載遠)이며, 어머니는 해남윤씨(海南尹氏)로 두서(斗緖)의 손녀이다. 경기도 광주시 초부면(草阜面) 마재[馬峴]에서 태어났다. 다산의 생애와 학문과정은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에 따른 유배를 전후로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되며 그의 사회개혁사상 역시 이에 대응되어 나타난다.

먼저 전기에 해당하는 시기는 주로 관료생활의 시기이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고 15세에 서울로 올라온 후 이가환(李家煥)과 자신의 매부인 이승훈(李承薰) 등으로부터 이익의 학문을 접했다. 이미 이때부터 이익과 같은 학자가 될 것을 결심하고 그의 제자인 이중환(李重煥)·안정복(安鼎福)의 저서를 탐독했다. 이처럼 유교경전과 선학의 학문을 연구하는 한편 과거에 응시할 준비를 하여, 1783년(정조 7) 경의진사(經義進士)가 되었다. 이무렵 이벽(李檗)을 통하여 서양의 자연과학과 천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서양서적을 접했다. 1789년 문과에 급제한 후 이듬해 검열이 되었으나 공서파(攻西派)의 탄핵을 받아 해미(海美)에 유배되었다가 10일 만에 풀려났다. 곧이어 지평·수찬을 지내고 1794년 경기도암행어사로 파견되었다. 이듬해 동부승지·병조참의가 되었으나 주문모사건(周文謨事件)에 연루되어 금정찰방(金井察方)으로 좌천되었다. 그뒤 다시 소환되어 좌부승지·병조참지·동부승지·부호군·형조참의 등을 지내며 규장각의 편찬사업에도 참여했다.

다산은 30대초까지는 아직 젊은 중앙관료로서 경학사상 등 학문체계는 물론 사회현실에 대한 경험과 인식이 깊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도암행어사를 비롯하여 금정찰방 곡산부사(谷山府使) 등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농촌사회의 모순과 폐해를 직접 목격하고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며 이를 실천해보고자 했다. 1799년 중앙정계에 있을 때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응지진농서 應旨進農書〉의 검토를 통해 토지문제를 농업체제 전반과 연결시켜 구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되었는데, 이후 기본 생산수단인 토지 문제의 해결이 곧 사회정치적인 문제 해결의 근본이라고 인식하고 현 농업체제를 철저히 부정한 위에 경제적으로 평등화를 지향하는 개혁론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1799년에 저술한 〈전론 田論〉의 여전제(閭田制)는 이같은 논리가 가장 강렬하게 반영된 것이었다. 여전제의 내용은 토지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지주제를 부정하고 토지 국유를 원칙으로 하는 기초 위에, 향촌을 30가구의 여(閭) 단위로 재편성한 다음 여장(閭長)의 통솔하에 공동노동을 통해 경작하고 농민의 투하노동력을 기준으로 생산물을 분배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관련된 조세제도 개혁책으로서 정액제(定額制)를 취하고, 역제(役制)의 경우 재편성된 향촌제도와 관련시켜 병농일치(兵農一致)를 원칙으로 하면서 호포제(戶布制)로의 개혁을 고려했다. 이러한 여전제의 보급을 위해서 여내(閭內) 농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고 무위도식하는 선비들에게 실생활에 필요한 직업으로의 전환을 유도하고자 했다. 이처럼 여전제는 농민경제의 균산화(均産化)와 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동시에 생산성 향상을 통한 사회적 부의 증대를 위해 노동력의 기능을 강조한 공동농장·협동농장적 경영론이다. 이는 종전의 한전론(限田論)·균전론(均田論) 등 토지분배에만 초점을 맞춘 개혁론에 비해 농업생산의 사회화 문제 등 농업생산이나 농업경영 전반의 변혁까지도 포괄하는 논리였다. 그러나 시행의 전제가 되는 국유화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당장 실현될 수 없었던 토지개혁방안이었다. 특히 〈전론〉에서 농업생산의 사회화 문제와 연결하여 공상(工商)을 농업에서 완전 분리시켜 독립적 사회분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한 점이 주목되는데, 이는 당시 상품화폐경제와 수공업 발전의 현실을 염두에 둔 견해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농업생산에 주력하는 중농정책(重農政策)이 견지되어 사족의 상업·공업에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전개한 것은 아니었다. 이상의 사회개혁론과 궤를 같이하여 혁신적 정치개혁론으로 제시된 것이 〈원정 原政〉·〈원목 原牧〉이다. 여기에서 그는 아래로부터의 정치개혁 이념을 표방하고 있다. 〈원정〉에서 "토지의 균등한 분배를 왕정의 제일책으로 삼고 물화의 유통과 교환을 촉진하며 지방생산력의 불균등 발전을 완화하고 정치적 권리를 균등하게 해야 한다"고 하여 파격적인 체제개혁론을 주장했으며 이는 만년에 저술한 정치권력론·역성혁명론으로서의 〈탕론 湯論〉과 이념적 기초를 같이한다. 그는 〈원목〉에서 태고 이래 민(民)의 자유의사와 선거에 의해 이장(里長)·면정(面正)·주장(州長)·제후(諸候)·천자(天子) 등 각 계층의 통치자들이 발생했음을 지적하고 이들이 만약 민의 이익에 부합되는 일을 하지 않고 자기들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행동하는 경우, 민은 자신들의 자유의사로써 통치자를 교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국가발생에 관한 학설을 담고 있는 것으로 자본주의 발생 초기 유럽의 사회계약설과 유사한 논리가 되며 해석에 따라서는 정치의 민주주의적 합의제, 선거제, 법치주의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유럽의 경우와 달리 당시의 역사발전 사실과 부합되지 않으며, 다만 극도로 부패한 봉건사회에 대한 반기로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이같은 정치개혁론은 그의 사회 경제개혁론과 함께 당시의 현실 속에서 혁명을 수반하지 않고는 실현불가능한 이상론이며 궁극적인 지향점은 밝혔으나 상호 유기적인 관련을 지니면서 체제 전반에 대한 개혁론으로 체계화되기는 어려웠다.

그의 학문과정과 생애 후기는 주로 유배생활의 시기이다. 그는 출중한 학식과 재능을 바탕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1800년 정조가 죽은 후 정권을 장악한 벽파는 남인계의 시파를 제거하기 위해 1801년 2월 천주교도들이 청나라 신부 주문모를 끌어들이고 역모를 꾀했다는 죄명을 내세워 신유사옥을 일으켰다. 이때 이가환·이승훈·권철신(權哲身)·최필공(崔必恭)·홍교만(洪敎萬)·홍낙민(洪樂敏), 그리고 형인 약전(若銓)·약종(若鍾) 등과 함께 체포되었으며, 2월 27일 출옥과 동시에 경상북도 포항 장기(長鬐)로 유배되었다. 그해 11월 전라남도 강진(康津)으로 이배되었는데, 그는 이곳에서의 유배기간 동안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여 그의 학문체계를 완성했다. 특히 1808년 봄부터 머무른 다산초당은 바로 다산학의 산실이었다. 1818년 이태순(李泰淳)의 상소로 유배에서 풀렸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을 연마했다. 61세 때에는 〈자찬묘지명 自撰墓誌銘〉을 지어 자서전적 기록으로 정리했다. 그는 유배생활에서 향촌현장의 실정과 봉건지배층의 횡포를 몸소 체험하여 사회적 모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인식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유배의 처참한 현실 속에서 개혁의 대상인 사회와 학리(學理)를 연계하여 현실성있는 학문을 완성하고자 했다. 〈주례 周禮〉 등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독자적인 경학체계의 확립과 '일표이서'(一表二書)를 중심으로 한 사회전반에 걸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사회개혁론이 이때 결실을 맺었다(→ 색인 : 다산학).

먼저 〈경세유표 經世遺表〉는 "나라를 경영하는 제반 제도에 대하여 현재의 실행 여부에 구애되지 않고 경(經)을 세우고 기(紀)를 나열하여 우리 구방(舊邦)을 새롭게 개혁해보려는 생각에서 저술했다"고 하여 당시 행정기구와 법제 및 경제제도를 대폭적으로 개혁하고자 한 것이다. 〈경세유표〉의 구성은 경전에서의 이념적 모델을 제시하고 다음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제도의 변천과정을 아울러 참조하여 개혁론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목민심서 牧民心書〉는 "고금의 이론을 찾아내고 간위(奸僞)를 열어젖혀 목민관에게 주어 백성 한 사람이라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마음씀이다"라고 하여 현 국가체제를 인정한 위에서 목민관을 중심으로 한 향촌통치의 운영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흠흠신서 欽欽新書〉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옥사에 대해 "백성의 억울함이 없기를 바라는 뜻"에서 통치자의 인정(仁政)·덕치(德治)의 규범을 명확히 하고자 저술되었다. 제도개혁에 있어서 〈경세유표〉가 전국적 범위에서 국왕·국가가 집행할 것을 모색한 데 비해 〈목민심서〉는 군현의 범위에서 목민관에 의해 수행되어야 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흠흠신서〉는 〈목민심서〉의 형전(刑典) 부분을 보충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같이 일표이서는 저술동기와 내용에서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상호 유기적인 관련 속에서 1817~22년에 기초, 완성되어 후기 개혁론의 대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일표이서의 개혁론은 경학사상체계와 상호 유기적인 관련을 가지면서 체계화되었다. 정약용은 〈주례〉 속에서 '호천상제'(昊天上帝)의 개념을 원용한 상제관(上帝觀)을 형성하여 전통적인 천명사상(天命思想)을 매개로 이를 군주와 연결하고 있다. 그러나 천명은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바뀌어 항상 유덕(有德)한 사람에게 옮겨진다는 것이다. 덕의 유무는 민심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므로 군주권의 근원은 결국 민의에 달려 있는 것이며, 천명 그 자체가 통치권의 궁극적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다산은 군주를 정점으로 한 통치질서를 회복하여 치세(治世)의 근본을 확립하고자 했지만 그와 동시에 군주의 우월성은 민의에 의해 한계가 규정된다는 논리를 강조했다. 상제와 직결된 왕권과 상제와 직결된 민의 자주권 회복에 의해 하나의 통일된 통치체계를 수립하려 할 때 그 모습은 중앙집권체제의 확립으로 나타나며 사적 중간지배층의 배제는 필수적인 사안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표이서에서 표방되는 개혁론은 전기에 비해 훨씬 온건한 것인데 이는 역설적으로 그가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현실을 크게 고려하면서 실현 가능한 점진적인 방안, 단계론적 시행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경세유표〉의 〈전제 田制〉에서는 우선 토지국유제하 농민의 개별적 점유를 원칙으로 하는 정전제(井田制)를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토지국유의 실현이 불가능한 상태를 전제하여 차선책으로 정전제에서 동시에 시행되었던 구일세제법(九一稅制法)만이라도 원용하려는 방안을 제기했다. 이는 토지제도의 개혁보다는 국가재정과 밀접한 조세제도의 개혁, 일체의 중간수탈 배제를 목적으로 한 운영의 합리화를 통해서 현안을 해결하려고 한 것으로서 점진적이고 과도기적인 개혁방안이라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다산은 사민구직(四民九職)의 직업분화와 직업의 전문화를 강조하고 사회분업을 통한 경제발전의 길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먼저 상업의 경우 농업과 완전히 분리시켜 대등하게 발전시키며 상업적 이윤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조세개혁을 통해 상인들을 보호하며 해외 상업을 발전시키려 했다(→ 색인 : 이용후생학파). 이를 위해 동전의 유통을 촉진시키고 금화·은화와 같은 고액화폐의 발행으로 원격지간 교역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즉 상업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되 특권적 대상인은 억제하고 중소상인은 보호하는 방식을 도모했다. 다음으로 수공업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기술도입론을 강조했다. 〈목민심서〉에서는 지방 차원에서 민간 직물업에 관련된 기술도입을 역설했고 〈경세유표〉에서는 토목공사기술 등을 국가 차원의 제도개혁을 통해 적극 도입하고자 했다. 이는 그의 중앙관제 개혁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것이다. 즉 기술도입의 주체인 국가기구가 강력하게 민간산업을 보호·통제하고 기간산업을 관장함으로써 대상인의 횡포에서 중소수공업자를 보호하려 했다. 국영광산론 역시 천연의 부에 대한 특권층의 자의적 이용을 배제하여 국가 통제하에 두며 그 이익을 공전(公田) 매입에 돌림으로써 전체적으로 소농민의 이익이 되게 하는 방안이었다. 이밖에 도량형의 전국적 통일, 물화유통을 촉진하기 위한 교통수단의 정비를 제안했다. 이는 18세기말과 19세기초 유통경제의 발전과정을 염두에 둔 논리일 뿐만 아니라 그의 체제 전반에 걸친 개혁론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가 제기한 개혁론의 철학적 기초에는 주자학과 대비되는 면모가 있었다. 첫째, 주자학이 천인합일(天人合一)에 기초하여 인간과 자연 사이에 일리(一理)로서의 태극이 관통하고 있음을 주장한 데 비해 다산은 천도(天道)와 인간세계를 분리하여 각각 존재의 법칙과 당위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주자학의 계급성과 불평등한 인간관을 비난하고 인간세계의 질서는 변화 가능한 것으로 여기며 요순 3대의 제도에서 그 규범을 찾으려고 했다. 한편 그는 천인분리를 상정하면서도 절대적인 인격적 주재자로서의 천의 존재를 별도로 언급했다. 이때 천은 모든 인간과 개별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간은 모두 존엄한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둘째, 기질에 따른 인간성의 차등설을 비판하고 우수한 능력자는 특정 신분에서만 배출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의 능력주의는 신분제에 입각한 국가의 교육, 과거, 인사제도에 대한 개혁론으로 연결되었다. 셋째, 욕망관[人心道心說]에서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되 적절한 통제가 병행되어야 함을 말했다. 무제한적으로 욕구를 인정하는 것은 특권층의 입장과 통하는 것이라 본 그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외적 환경에 좌우된다고 보아 구체적인 사회제도의 정비를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는 주관적 심성 문제에 치중한다거나 도덕적인 호소에 의한 해결방안을 내세우는 주자학과 대별되는 주장이다. 그는 전통적 관념론에 몰두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론적 세계관을 지향했다. 이에 따라 천문·기상·지리·물리 등 제반 자연현상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이를 적극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그의 자연과학 사상의 기초는 우주관에서 비롯되는데, 전통적인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을 논박하고 서학과 지리학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지원설(地圓說)에 관해 논증했다. 물리학적인 현상의 본질을 규명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여 볼록 렌즈가 태양광선을 초점에 집중시켜 물건을 태우는 원리, 프리즘의 원리를 이용한 사진기 효과 등을 밝혀냈다. 또한 종두법(種痘法)의 실시와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종두심법요지 種痘深法要旨〉를 저술했고, 각종 약초의 명칭·효능·산지·형태 등을 조사 검토하여 생물학적인 연구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은 구체적인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술개발로 연결되어 농기계, 관개수리시설 및 도량형기를 발명하고 정비했다. 또한 한강의 배다리[舟橋]를 설계하고, 수원성의 축조시 거중기·고륜(鼓輪)·활차(滑車) 등의 건설기계를 창안했다. 이와 함께 〈기예론 技藝論〉에서는 방직기술·의학·백공(百工)기술을 발전시킬 것을 강조했으며 〈원정〉에서는 수리관개사업·식수(植樹)·목축·수렵·채광기술 및 의학을 깊이 연구해야 농민들이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과학정책론을 제시했다.

 

 

 

 

 

독립(獨立)-정약용(丁若鏞)
홀로 서서-정약용(丁若鏞)

秋山衰颯暮湍哀(추산쇠삽모단애) : 가을 산 바람소리 저녁 여울 처량한데
獨立江亭意味裁(독립강정의미재) : 강가 정자에 홀로 서니 마음은 머뭇거린다.
風鴈陣欹還自整(풍안진의환자정) : 기러기 떼는 허물어 졌다 발라지고
霜花莟破未輕開(상화함파미경개) : 국화꽃은 시들어 다시 피지 못하하는구나.
空懷竹杖游僧院(공회죽장유승원) : 공연히 죽장 짚고 절을 유람하려 생각하니
徑欲瓜皮汎釣臺(경욕과피범조대) : 이내 다시 작은 배로 낚시배에 떠 볼까 하나.
百事思量身已老(백사사량신이노) : 온갖 일 생각해도 몸 이미 늙었는지라
短檠依舊照書堆(단경의구조서퇴) : 짧은 등잔불은 옛날처럼 책더미에 비추는구나.

 

 

승발송행( 僧拔松行)-정약용(丁若鏞)
스님이 소나무를 뽑는구나-정약용(丁若鏞)

白蓮寺西石廩峰(백련사서석름봉) : 백련사 서쪽편의 석름봉 산기슭에
有僧彳亍行拔松(유승척촉행발송) : 어떤 중이 이리저리 다니며 소나무를 뽑아내고 있네.
稚松出地纔數寸(치송출지재수촌) : 어린 소나무 싹이 터서 땅위로 두어 치 자라
嫩幹柔葉何丰茸(눈간유엽하봉용) : 여린 줄기에 포름한 잎사귀 어찌 저리 탐스러운가.
嬰孩直須深愛護(영해직수심애호) : 어린 생명 모름지기 사랑하고 보호해야 하겠거니
老大況復成虯龍(노대황부성규룡) : 하물며 자라서 커지면 용이 틀어오르듯 되겠거늘
胡爲觸目皆拔去(호위촉목개발거) : 저 중은 어이하여 눈에 뛰는 대로 쏙쏙 뽑아버려
絶其萌蘖湛其宗(절기맹얼담기종) : 그 싹을 아주 말려 소나무라면 멸종시키려 든단 말가.
有如田翁荷鋤携長欃(유여전옹하서휴장참) : 마치 부지런한 농부 호미 괭이 들고 밭에 나가
力除稂莠勤爲農(력제랑유근위농) : 가라지 잡초를 뽑아서 곡식을 잘 가꾸듯
又如鄕亭小吏治官道(우여향정소리치관도) : 또 마치 향정의 대로를 닦느라고
翦伐茨棘通人蹤(전벌자극통인종) : 가시덤불 잡목을 베서 인마를 통하게 하듯이
又如蔿敖兒時樹陰德(우여위오아시수음덕) : 또 마치 옛날 손숙오가 어린 시절 음덕을 쌓느라고
道逢毒蛇殲殘凶(도봉독사섬잔흉) : 길에서 독사를 만나자 때려잡아 해악을 제거하듯
又如髬鬁怪鬼披赤髮(우여비리괴귀피적발) : 또 마치 더벅머리 괴기가 붉은 머리털 더풀더풀
拔木九千聲訩訩(발목구천성흉흉) : 나무 구천 그루 잡아 뽑으며 시끌시끌 떠들어대듯
招僧至前問其意(초승지전문기의) : 그 중을 불러와서 나무 뽑는 연유를 물어보니
僧咽不語淚如?(승열불어루여?) : 중은 울먹이며 말 못하고 눈이 이슬이 적시는구나.
此山養松昔勤苦(차산양송석근고) : 이 산은 양송(養松)을 전부터 공들여 하였거든요
闍梨苾蒭遵約恭(도리필추준약공) : 스님 상좌 모두 조심해서 법도를 삼가 지켰으니
惜薪有時餐冷飯(석신유시찬냉반) : 땔나무 아끼느라 찬 음식 먹기도 하고
巡山直至鳴晨鍾(순산직지명신종) : 산을 순시하다 보면 새벽종 소리 듣기 일쑤였지요.
邑中之樵不敢近(읍중지초불감근) : 읍내 초군들도 감히 범접을 못했거늘
況乃村斧淬其鋒(황내촌부쉬기봉) : 촌의 나무꾼들이야 도끼 들고 얼씬이나 하였나요.
水營小校聞將令(수영소교문장령) : 수영의 군교들이 장영 받고 들이닥쳐
入門下馬氣如蜂(입문하마기여봉) : 절 문간에서 말을 내리는데 그 기세는 벌떼 덤비듯
枉捉前年風折木(왕착전년풍절목) : 작년 바람에 부러진 소나무를 일부러 벤 것으로 트집잡아
謂僧犯法撞其胸(위승범법당기흉) : 중을 보고 금송을 범하였다 가슴을 들이치니
僧呼蒼天怒不息(승호창천노불식) : 중은 하늘에 호소해도 분노가 식지 않지만
行錢一萬纔彌縫(행전일만재미봉) : 어찌 합니까, 돈 만 닢을 바쳐 겨우 액땜 하였지요.
今年斫松出港口(금년작송출항구) : 금년에는 벌목을 하게 해서 항구로 모두 운반하는데
爲言備倭造艨艡(위언비왜조몽당) : 말인즉 왜구를 방비해서 병선을 만든다 하였으되
一葉之舟且不製(일엽지주차불제) : 조각배 한 척도 당초에 만들지 않았으니
只赭我山無舊容(지자아산무구용) : 속절없이 우리의 산만 옛모습 잃고 벌거숭이 되었네요.
此松雖稚留則大(차송수치유칙대) : 이 잔솔 지금은 어리지만 그대로 두면 크게 자랄 터이라
拔出禍根那得慵(발출화근나득용) : 화근을 뽑아버리는 일 어찌 게을리하오리까.
自今課拔如課種(자금과발여과종) : 이제부턴 소나무 뽑아내기 소나무 심듯 할 일이니
猶殘雜木聊禦冬(유잔잡목료어동) : 잡목이나 남겨두면 겨울에 화목으로 쓰겠지요.
官帖朝來索榧子(관첩조래색비자) : 오늘 아침 공문이 내려와 비자를 급히 바치라 하니
且拔此木山門封(차발차목산문봉) : 장차 이 나무도 뽑아버리고 절간문 봉해야겠네요.

 

 

음주2(飮酒2)-정약용(丁若鏞)
음주-정약용(丁若鏞)

細馬爭門入(세마쟁문입) : 섬세하고 좋은 말은 다투어 들고
豐貂滿院來(풍초만원래) : 고관들이 들어와 집에 가득하도다.
直愁衣帶熱(직수의대열) : 우선 의대가 달아오를까 걱정되어
故傍酒家廻(고방주가회) : 일부러 술집 곁으로 다가 가보노라.
牢落聊全性(뢰락료전성) : 덤뿍 마셔도 에오라지 끄떡없어야 하나
嶔崎任散才(금기임산재) : 고결한 자가 방탕해지기도 하노라.
所欣惟自適(소흔유자적) : 스스로 만족함이 제일 기쁜 일
莫笑坳堂杯(막소요당배) : 우묵한 집 술잔이라도 비웃지 말게나.

 

 

음주1(飮酒1)-정약용(丁若鏞)
음주-정약용(丁若鏞)

麴米醺皆好(국미훈개호) : 술은 취하게 하니 모두가 좋아
雲和抱更斜(운화포갱사) : 거문고를 게다가 비스듬히 안는다.
獨思千載友(독사천재우) : 혼자서 천 년 전 벗을 생각하고
不向五侯家(불향오후가) : 권세 있는 집안엔 가지도 않는다.
物態寧無變(물태녕무변) : 만물이 어찌 변함이 없겠으랴만
吾生奈有涯(오생내유애) : 어이하여 우리 인생 죽음이 있을까
閒看庭日轉(한간정일전) : 뜰을 옮겨 가는 해 그림자 보게나
花影幾枝叉(화영기지차) : 꽃 그림자 몇 가지로 갈라지는가를

 

 

차운영산목(次韻詠山木)-정약용(丁若鏞)
산묵을 차운하여 읊다-정약용(丁若鏞)

孟夏入山中(맹하입산중) : 초여름에 산 속에 들어오니
綠溪芳草蒨(록계방초천) : 푸른 시냇가 방초가 무성하다.
醉眼纈淺綠(취안힐천록) : 취한 눈에 옅은 녹색 어른거리고
十里鋪素絹(십리포소견) : 십 리 벌이 흰 명주 펼쳐진 듯 하다.
茸茸不盈尺(용용불영척) : 우거진 풀은 한 자도 차지 않아
石徑細如線(석경세여선) : 돌길은 실처럼 가늘어라.
昔我童時游(석아동시유) : 옛날 내가 어릴 시절 노닐 적엔
蒼翠鬱采絢(창취울채현) : 푸른빛이 무성히도 고왔다.
全山夏木糾(전산하목규) : 온 산에 여름 숲 들어차고
滿谷古藤莚(만곡고등연) : 골짝 가득 묵은 등나무 넝쿨 뻗어있다.
日月今幾何(일월금기하) : 세월 지금 얼마나 흘렀는가.
桑海驚轉眄(상해경전면) : 잠깐 세월 큰 변천이 놀랍구나.
春山一蕭瑟(춘산일소슬) : 봄 산도 하나같이 쓸쓸한데
感我桑下戀(감아상하련) : 나의 그리운 마음 느껴진다.
吾生亦已老(오생역이로) : 내 인생도 이미 늙었으니
忘情卽爲便(망정즉위편) : 정을 잊는 것이 곧 편안하리라.
依遲出洞去(의지출동거) : 천천히 걸어 골짜기를 나가니
舊游懷黃卷(구유회황권) : 옛 친구가 서책을 품고 온다.
恢新期老宿(회신기로숙) : 절을 확장하기를 노승과 약속했으니
物理有窮變(물리유궁변) : 만물 이치란 궁하면 변하는 것이로다.

 

 

산목(山木)-정약용(丁若鏞)
산 속 나무들-정약용(丁若鏞)

首夏氣布濩(수하기포호) : 초여름 날 기운이 널리 퍼지니
山木交蔥蒨(산목교총천) : 산의 나무들이 서로 푸르러진다.
嫩葉含朝暉(눈엽함조휘) : 여린 잎새는 아침 햇살 머금어
通明曬黃絹(통명쇄황견) : 볕에 쪼인 누런 명주처럼 밝아진다.
濃綠遞相次(농록체상차) : 짙은 녹음 서로 번갈아 번져
邐迤引界線(리이인계선) : 비스듬하게 경계선을 이루는구나.
松栝羞老蒼(송괄수노창) : 소나무는 늙은 게 부끄러워서
新梢吐昭絢(신초토소현) : 가지 끝에 고운 싹을 뱉어 내는구나.
壽藤亦生心(수등역생심) : 해묵은 등나무 넝쿨도 또한 마음이 있어
裊裊舒蔓莚(뇨뇨서만연) : 간들간들 넝쿨을 쭉쭉 뻗어 간다.
要皆非俗物(요개비속물) : 요컨대 모두가 속물이 아닌지라
熙怡共幽眄(희이공유면) : 서로 기뻐하며 그윽이 구경하는구나.
幸無簪組累(행무잠조누) : 다행히도 벼슬에 얽매이지 않는데
奚復室家戀(해부실가연) : 어찌 다시 집안일을 연연하리오.
躋攀旣費勞(제반기비로) : 부여잡고 오를 제 이미 피곤해져
享受宜自便(향수의자편) : 기쁨을 누림이 절로 만족하리라.
靜究生成理(정구생성리) : 생성의 이치를 조용히 연구해 보면
足以當書卷(족이당서권) : 충분히 서책 읽은 것과 같으리라.
高秋滿山紅(고추만산홍) : 한 가을 온 산이 붉게 단풍드니
重來覽時變(중래람시변) : 다시 와서 계절의 변화를 보리라.

 

 

회동악(懷東嶽)-정약용(丁若鏞)
동악을 그리워하며-정약용(丁若鏞)

東嶽絶殊異(동악절수이) : 동악은 다른 산과 너무나 달라니
紫崿疊靑㟽(자악첩청㟽) : 붉은 벼랑 푸른 봉이 겹겹이 쌓구나.
雕鍥入纖微(조계입섬미) : 새기고 깎은 공이 극히 섬세하여
神匠洩機巧(신장설기교) : 조물주의 묘한 솜씨 드러나 있구나.
仙賞委瀛壖(선상위영연) : 선경의 구경거리 해변에 있어
幽姿獨窈窕(유자독요조) : 맑은 자태 홀로 맑고도 그윽하구나.
惜無棲隱客(석무서은객) : 애석하다, 은거하는 객 하나 없다니
瀟洒脫塵表(소쇄탈진표) : 깨끗이 속세의 모습을 활짝 벗어있거늘

 

 

추야(秋夜)-정약용(丁若鏞)
가을밤-정약용(丁若鏞)

情結林泉愛(정결림천애) : 사랑스런 임천에 정이 있어
門臨車馬音(문임차마음) : 문 밖에 오가는 수레와 말소리
竹欄勤點綴(죽란근점철) : 대난간을 열심히 엮어두고
花木强蕭森(화목강소삼) : 꽃나무 잎 시들어 앙상하도다
涼露枝枝色(량로지지색) : 찬 이슬 가지마다 빛 찬란하고
秋蟲喙喙吟(추충훼훼음) : 가을벌레 저마다 울음 운다
獨行還獨坐(독행환독좌) : 혼자 걷다 돌아와 혼자 앉으니
明月照幽襟(명월조유금) : 밝은 달이 깊숙한 가슴에 비춘다

 

 

양강우어자(楊江遇漁者)-정약용(丁若鏞)
양강에서 고기잡이를 만나다-정약용(丁若鏞)

一翁一童一小年(일옹일동일소년) : 늙은이, 어린아이 그리고 소년
楊根江頭一釣船(양근강두일조선) : 양근강 머리에 고깃배 한 척
船長三丈竿二丈(선장삼장간이장) : 배 길이 세 발, 낚싯대 두 발
數罟數十鉤三千(수고수십구삼천) : 촘촘한 거물 몇 개, 낚싯바늘 삼천
少年搖櫓踞船尾(소년요노거선미) : 노 젓는 소년 배 꼬리에 걸터앉아
童子炊菰坐鐺邊(동자취고좌당변) : 어린아이 줄 삶으며 솥가에 앉아있다
翁醉無爲睡方熟(옹취무위수방숙) : 늙은이 술에 취해 깊은 잠에 들고
兩脚挂舷仰靑天(양각괘현앙청천) : 두 다리를 뱃전에 걸고 푸른 하늘 본다
日落江湖浪痕白(일락강호랑흔백) : 강호에 해 져고 흰 물결 일렁이는데
山根水浸村煙碧(산근수침촌연벽) : 산뿌리에 물 잠기고 마을 연기 푸르다
少年呼童攪翁起(소년호동교옹기) : 소년이 어린아이 불러 늙은이 깨우는데
魚兒撥刺天將夕(어아발랄천장석) : 새끼고기 뛰놀고 해는 저물어 가는구나
中流布網去復還(중류포망거복환) : 중류에다 그물 치고 갔다가 돌아오는데
上下刺船如梭擲(상하자선여사척) : 배 저으며 위아래 오가는 베틀북 같도다
伊軋唯聞柔櫓聲(이알유문유노성) : 삐걱 빼각 노 젓는 소리 들려오는데
蒼茫不辨雲水色(창망불변운수색) : 푸르러 물인지 구름인지 구별 못한다
黃昏收網泊柳浪(황혼수망박류랑) : 황혼에 그물 걷어 유랑에다 배를 대어
摘魚落地聞魚香(적어락지문어향) : 고기 잡아 땅에 던지니 고기 냄새 풍긴다
松鐙細數柳條貫(송등세수류조관) : 관솔불 밝혀 두고, 버들에다 세어 꿰어
鐙光照數銅龍長(등광조수동용장) : 그 불빛 물에 비치니 길다란 동룡이라
野夫估客爭來看(야부고객쟁래간) : 농부와 장사꾼들 서로 와 보면서
鏗鏗擲錢錢滿筐(갱갱척전전만광) : 땡글땡글 던진 돈이 상자에 그득하다
水宿風餐了無恙(수숙풍찬료무양) : 풍찬노숙을 하면서도 아무런 병 없고
浮家汎宅聊徜徉(부가범택료상양) : 둥실 뜬 배 집을 삼아 여유 있게 노닌다
人間富貴非善賈(인간부귀비선가) : 부귀 탐내는 인간들 장사를 못하여
盡將僞樂沾眞苦(진장위락첨진고) : 가짜 즐거움 누리려다 괴로움만 사버린다
朝將軒冕飾聖賢(조장헌면식성현) : 아침이면 성현인 양, 의관 차리고 뽐내고
暮設刀俎待夷虜(모설도조대이노) : 저녁이면 칼 도마로 원수처럼 대한다
跼蹐常如荷轅駒(국척상여하원구) : 수레 찬 망아지처럼 언제나 절절거리고
鬱悒眞同落圈虎(울읍진동락권호) : 답답하기 참으로 우리에 갇힌 호랑이로다
籠雉耿介不戀豆(농치경개불연두) : 새장의 꿩 깔끔함은 콩 탐내지 않은 것이고
塒鷄啁哳生嫌怒(시계조찰생혐노) : 닭장 닭들 조잘거림은 시기하기 때문이다
何如江上一漁翁(하여강상일어옹) : 어찌하여 강 위의 고기잡이 늙은이
隨風逐水無西東(수풍축수무서동) : 바람 따라 물결 따라 동서도 없도다
維州利害漠不聞(유주리해막불문) : 유주의 이해도 전혀 알지 못하고
東林勝敗俱成聾(동림승패구성롱) : 동림의 승패 역시 역시 귀를 막고 산다
蘋洲蘆港作園圃(빈주노항작원포) : 물풀 갈대 우거진 섬 그게 바로 정원이라
葦被篷屋爲帲幪(위피봉옥위병몽) : 갈대 이불 쑥대 지붕 안식처가 거기로다
會攜二兒入苕水(회휴이아입초수) : 나도 두 자식 데리고 소내에 들어서
令當一少與一童(영당일소여일동) : 소년 노릇 동자 노릇 하나씩 맡게하리라

 

 

체풍숙대탄(滯風宿大灘)-정약용(丁若鏞)
바람에 갇혀 대탄에서 묵다-정약용(丁若鏞)

已識瞿唐惡(이식구당악) : 구당 험함을 알면서
猶希舶趠平(유희박초평) : 배길 평탄하길 바란다
江豚頗得意(강돈파득의) : 상되지 는 꽤나 좋겠지만
檣燕似留行(장연사유행) : 돛대 위 제비 못 가게 하는듯
拄笏靑山靜(주홀청산정) : 뺨 괴고 보니 청산 고요한데
維舟白日傾(유주백일경) : 배를 매자 해가 서산에 기운다
不須衝險隘(불수충험애) : 험한 길 무릅쓸 것 없으니
濡滯且謀生(유체차모생) : 체류하며 살 길 찾아보리라

 

 

가흥강방선(嘉興江放船)-정약용(丁若鏞)
가흥강에 배를 띄우고-정약용(丁若鏞)

久厭山谿險(구염산계험) : 산 계곡 길 험하여 싫증나
翻思水路便(번사수로편) : 편리한 뱃길편으로 바꾸었다
悵違丹穴約(창위단혈약) : 단양 동굴 가자던 약속 어기고
獨上蘂州船(독상예주선) : 홀로 예주의 배에 올랐다
兩岸風煙麗(양안풍연려) : 양 언덕 풍경 수려하고
中流顧眄專(중류고면전) : 중류에 이르니 사방이 다 보인다
沙茸抽紫穎(사용추자영) : 모래밭엔 자색 풀싹 뽑혀있고
澗蘗綴黃姸(간벽철황연) : 개울에는 횡경나무에 튼 노랗고 예쁜 움
山晩禽吭滑(산만금항골) : 산에 해 지고 새소리 유창한데
堤暄馬戲儇(제훤마희현) : 날이 따뜻하여 둑에 말들도 잘 논다
游絲沙氣盛(유사사기성) : 모래 위의 아지랑이 너울거리고
移櫓水紋圓(이노수문원) : 노 저으면 수면은 둥근 파문 이룬다
娟妙飛峯出(연묘비봉출) : 예쁘장한 봉우리 날 듯이 나타나고
逶迤臥柳遷(위이와류천) : 비스듬한 버드나무가 휙휙 지나간다
盤渦趨急瀨(반와추급뢰) : 소용돌이치는 물 센여울로 흐르고
惡石吼驚泉(악석후경천) : 울퉁불퉁 바위에 부딪쳐 놀란 샘물
拂拂風醒酒(불불풍성주) : 씽씽 부는 바람에 술 깨고
搖搖水擊舷(요요수격현) : 찰랑찰랑 넘치는 물 뱃전을 친다
悠然出平地(유연출평지) : 저 멀리 평지가 나타나고
開朗見靑天(개랑견청천) : 명랑한 푸른 하늘이 나타난다
世界重重豁(세계중중활) : 가도 가도 드넓은 세계로다
人煙曲曲連(인연곡곡연) : 굽이굽이 연기가 자욱하고
險夷常遞換(험이상체환) : 험하고 평탄한 길 바뀌어 나타난다
憂樂每相牽(우락매상견) : 걱정과 즐거움 언제나 서로 끌리어
狹陋傷時俗(협루상시속) : 마음이 조잡하여 시속 슬퍼한다
優遊謝罪愆(우유사죄건) :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놀면서
庶將江海志(서장강해지) : 내 이제 강해에 뜻을 펼치어 보리라
暫絶市朝緣(잠절시조연) : 시조와는 잠시 인연 끊어버리고
去國鴟夷子(거국치이자) : 나라 버리고 떠난 치이자처럼 된다
能詩賈浪仙(능시가랑선) : 시 잘하는 가랑선도 있지 않았다
未應容大瓠(미응용대호) : 큰 박은 쓰이기 어려운 것이며
久已怯虛弦(구이겁허현) : 빈 활만 보고도 겁먹는 새와 같도다
愼索長安米(신색장안미) : 장안의 쌀 찾기 조심스럽도다
謀歸潁尾田(모귀영미전) : 영수 가의 밭으로 돌아갈 생각이도다
沈潛收銳氣(침잠수예기) : 침착하게 젊은 예기 거둬들여
放達送流年(방달송유년) : 세월을 자유롭게 보내고 있도다
此計心常有(차계심상유) : 이런 마음 항상 있어 왔었지만
今朝興渺然(금조흥묘연) : 오늘 따라 흥취가 야릇하도다
曾聞堯舜世(증문요순세) : 들은 말이지만, 요순 시대에는
猶有隱箕巓(유유은기전) : 기산에 숨어 산 자 있지 않았도다

 

 

체우숙이애(滯雨宿梨厓)-정약용(丁若鏞)
비에 갇혀 이애에서 묵다-정약용(丁若鏞)

風起靑楓亂(풍기청풍란) : 바람 일어 푸른 단풍잎 흩날려
江鳴白雨來(강명백우래) : 소나기 내리자 강물 소리들려온다
蕭蕭吹面入(소소취면입) : 쌀쌀하게 얼굴로 불어드니
細細作紋回(세세작문회) : 잔잔하게 파문이 일어 도는구나
煙火依隣艓(연화의린접) : 이웃 거룻배에 밥 짓는 연기
維纚近釣臺(유리근조대) : 낚시터 가까이에 배 매두었도다
朝袍憐最困(조포련최곤) : 벼슬아치 너무 피곤하여 가련하니
潦倒濁醪盃(료도탁료배) : 느슨하게 탁주잔을 기울여보세나

 

 

증성수(贈惺叟)-정약용(丁若鏞)
깨어있는 늙은이에게-정약용(丁若鏞)

老朽猶奇骨(노후유기골) : 늙어 허약해도 뛰어난 풍골
丰茸憶舊髥(봉용억구염) : 푸짐하던 옛 수염이 생각난다
水程千嶂窅(수정천장요) : 물길의 노정은 천 길이나 깊은데
山閣一燈尖(산각일등첨) : 산 속의 집에는 뾰족한 등불 하나
辰弁音猶在(진변음유재) : 진한과 변한의 소리 아직도 남아
庚申涕共沾(경신체공첨) : 경신 년에는 모두 눈물 흘렸으리라
明朝泛淸壑(명조범청학) : 내일 아침 맑은 계곡에 배 띄우면
秋色滿汀蒹(추색만정겸) : 가을빛이 물가 갈대숲에 가득하리라

 

 

차운렬수단오일견기(次韻洌水端午日見寄)-정약용(丁若鏞)
열수가 단오일에 보내온 시에 차운하다-정약용(丁若鏞)

仲夏滔滔草樹香(중하도도초수향) : 오월에는 온 세상 풀과 나무 향기 가득
楝花風盡麥朝涼(련화풍진맥조량) : 봄바람마저 다하고 보리는 아침에 서늘하다.
秧田閣閣鳴蛙鼓(앙전각각명와고) : 못자리논엔 개구리가 울고
葦箔重重結繭房(위박중중결견방) : 갈대잠박에 누에는 겹겹이 집을 짓는다.
老病那堪天向熱(로병나감천향열) : 늙고 병들어 어찌 더워지는 기후 견디며
幽憂仍與日俱長(유우잉여일구장) : 숨은 근심은 해와 함께 길기만 하도다.
何當掃盡蟲蟲氣(하당소진충충기) : 어찌하면 무더운 기운을 쓸어버리고
催遣陰官決土囊(최견음관결토낭) : 서둘러 비를 내리어 땅구멍을 터뜨릴까
田翁時作小沈冥(전옹시작소침명) : 촌 늙은이 수시로 얼마씩 취하여
薄薄茅柴缺缺甁(박박모시결결병) : 초가 못생긴 단지에 맛없는 막걸리로다.
餘肄丰茸桑更綠(여이봉용상경록) : 남은 싹 무성해라 뽕잎은 다시 푸르고
初香輕輭艾猶靑(초향경연애유청) : 첫 향기 부드러워라 쑥은 더욱 푸르다.
天時已見開重午(천시이견개중오) : 천시는 이미 오월 오일이 되었는데
老物何堪作半丁(노물하감작반정) : 늙은 나는 어찌 장정의 절반이나 할까.
政恐詩人歌鮮飽(정공시인가선포) : 시인이 배부르기 어렵다 노래한 게 두려워
愁看魚罶映三星(수간어류영삼성) : 통발에 삼성이 비춤을 시름겨워 바라본다.
七扶庭上一筵堂(칠부정상일연당) : 칠부 길이의 대청 위 한 자리의 마루
兀兀中安缺足床(올올중안결족상) : 한가운데 발 없는 걸상만을 안치했도다.
畏日偏添殘客熱(외일편첨잔객열) : 뜨거운 햇살은 나그네에게 더위 더하고
雌風分與庶民涼(자풍분여서민량) : 습한 바람은 서민들과 서늘함을 나누는구나.
一年長束迎人榻(일년장속영인탑) : 일 년 동안 길이 손님 맞는 걸상을 묶었으나
萬事全空結客場(만사전공결객장) : 손님과 사귀는 일이 전혀 없었도다
塵俗幫纏安用此(진속방전안용차) : 세속을 따르자면 어찌 이래서 되겠는가
不如閉眼且回光(불여폐안차회광) : 눈 감고 신선되는 회광 하는 것만 못하다.
閒人酒盡卽愁初(한인주진즉수초) : 한가한 사람 술 다하면 시름이 생기나니
終日無聊坐隱蒲(종일무료좌은포) : 종일토록 무료히 포단에 기대 앉았노라.
簾額周旋惟燕子(렴액주선유연자) : 주렴 위에 왕래하는 건 오직 제비들
樹陰團伏總鷄雛(수음단복총계추) : 나무 그늘에 모여앉은 건 병아리들이로다.
繞階草長何曾植(요계초장하증식) : 뜨락의 풀 절로 자라나니 누가 심었는가
排闥山來不待呼(배달산래부대호) : 부르지 않았는데 문만 열면 산이 다가온다.
試覓此心那個是(시멱차심나개시) : 시험 삼아 찾노니 이 마음이 어떤 것인가
公然言語□虛無(公然言語□허무) : 공연스레 말만하나 진정 허무하니라.
是人疾疹與生生(시인질진여생생) : 이 사람의 질병은 생명과 생겨났으니
流水浮雲一任情(류수부운일임정) : 흐르는 물 뜬구름처럼 일체를 뜻에 맡긴다.
浥雨榴花開造次(읍우류화개조차) : 비에 젖은 석류꽃은 창졸간에 피어나고
引風匏蔓走縱橫(인풍포만주종횡) : 바람 끄는 박넝쿨은 종횡으로 뻗어난다.
桑田日永鷄鳴午(상전일영계명오) : 해 긴 뽕나무밭에선 낝에 닭이 울고
芹徑泥深鳥叫晴(근경니심조규청) : 진흙탕 미나리 길엔 새가 갠 날에 지저귄다.
惆悵美人天末遠(추창미인천말원) : 슬프다 내 님, 하늘 끝에 멀리 있어
朅來余目幾時成(걸래여목기시성) : 서로 만남이 어느 때나 이뤄질런가.
不把他家較自家(불파타가교자가) : 다른 집 사람 끌어다 자신에 비교한다.
蚊虻草樹共生涯(문맹초수공생애) : 모기같은 벌레나 초목도 생애는 한가지
少猶澹泊惟啖菜(소유담박유담채) : 젊어서도 담박하여 채소만 먹었도다.
老益淸虛不啜茶(노익청허불철다) : 늙어서 더욱 청허하여 차마저 안 마시어
流水何妨循屈曲(류수하방순굴곡) : 흐르는 물, 굴곡을 따르니 무엇에 어려울까.
亂山端合鏟谽谺(난산단합산함하) : 봉우리들은 골짜기를 감추기에 합당하고
今辰果祭陳君否(금신과제진군부) : 이번 단오절에 과연 진군을 제사지냈을까
西瀝南苞莫謾誇(서력남포막만과) : 서력과 남포를 부질없이 자랑하여
駸駸一病在冥間(침침일병재명간) : 위급해지는 질병으로 저승길을 헤매다가
自得君詩舊觀還(자득군시구관환) : 그대 시를 얻고부터 옛 모양을 되찾도다.
煙雨門臨西折水(연우문림서절수) : 안개와 비 속의 문, 서쪽 꺾인 물에 닿고
雲霞坐擁北來山(운하좌옹북래산) : 운하 속에 앉아 북쪽 산을 포옹하는구나.
固窮免被心神擾(고궁면피심신요) : 곤궁함을 견디어 심신의 동요를 면하고
久臥從敎手脚頑(구와종교수각완) : 오래 누웠으니 팔다리가 뻣뻣해지는구나.
滿眼風光消受好(만안풍광소수호) : 눈에 가득한 좋은 경치에 즐거움 누리며
試從何處另求閒(시종하처령구한) : 어느 곳으로 좇아 따로 한가함을 찾으리오.
萬事全無可更嘗(만사전무가갱상) : 만사가 다시 경험할 것이 전혀 없어
風輪眩轉玩流光(풍륜현전완유광) : 바람 바퀴 도는 속에 세월을 즐기도다.
仙姑老去蓮俄白(선고노거연아백) : 선녀는 늙어가매 연꽃은 이미 희어
鬼叟歸來石是黃(귀수귀래석시황) : 귀신 노인 돌아오니 그게 바로 누런 돌이라.
五畝猶存容歇泊(오무유존용헐박) : 집 한 칸 아직 있으니 생활하기 편하고
三聲長在寄歡康(삼성장재기환강) : 삼성이 길이 있어 즐거움과 평안함 부쳤다.
年來是事消除盡(년래시사소제진) : 근년에는 이런 일이 씻은 듯이 없어지니
不向時人說短長(시인설단장) : 시인들을 향하여 좋고 나쁨을 말하지 말어라.

 

 

유제족부예산공산거(留題族父禮山公山居)-정약용(丁若鏞)
족부 예산공이 사시는 산간 집에 머물며 짓다-정약용(丁若鏞)

澗邊小墟落(간변소허락) : 시냇가 작은 언덕배기
桑柘菀交枝(상자울교지) : 산뽕나무 무성하게 가지가 얽혔구나.
野麥蘇春凍(야맥소춘동) : 들판에 보리는 얼었다 봄에 다시 돋고
村鷄領晩兒(촌계령만아) : 마을 닭은 늦새끼 거느렸구나.
罷官生事拙(파관생사졸) : 벼슬 그만두니 살아가기 옹색하나
留客雅言遲(유객아언지) : 손님 머물게 하여 좋은 얘기 나눈다.
信宿驚舒重(신숙경서중) : 이틀 밤을 자면서 진중한 정에 놀라
低頭愧昔時(저두괴석시) : 옛날이 부끄러워 고개 숙이고 말았노라

 

 

족부이부공산장부득정전괴석(族父吏部公山莊賦得庭前怪石)-정약용(丁若鏞)
족부 이 부공 산장에서 뜰 앞에 있는 괴석을 읊다-정약용(丁若鏞)

夫子不好怪(부자불호괴) : 선생은 괴이한 것 좋아하지 않았는데
胡爲蓄怪石(호위축괴석) : 어찌하여 괴석을 저렇게 쌓아 두었을까
卑險莫如禹(비험막여우) : 검소하기 우임금과 같은 이도 없었으니
猶然充貢額(유연충공액) : 일정량을 공물의 금액으로 정하였도다.
鬱林亦廉士(울림역렴사) : 울림 역시 청렴한 선비였으니
鎭船非瓦礫(진선비와력) : 배에 실을 것은 기와 조약돌이 아니었던가.
譎詭多竅穴(휼궤다규혈) : 진기하게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어
離奇有骨骼(리기유골격) : 이리저리 이상한 뼈대를 갖추고 있도다
雲根侵淸泉(운근침청천) : 구름 뿌리 맑은 샘에 잠기고
淋淋帶蒸液(림림대증액) : 방울방울 물방울이 맺히어 있구나.
觚稜潑淺紫(고릉발천자) : 모난 곳에는 옅은 자색이 돌고
苔髮滋鮮碧(태발자선벽) : 이끼가 더욱 선명하게 푸르구나
峯崿森成列(봉악삼성열) : 산봉우들은 높고 길게 늘어서고
厓谷細相闢(애곡세상벽) : 언덕과 골짜기 좁다랗게 열려있도다
泥黏一株松(니점일주송) : 진흙에 붙여진 한 그루 소나무
遠勢似千尺(원세사천척) : 멀리 보아 천척이나 되는 듯하도다.
渾如古木根(혼여고목근) : 흡사 해묵은 나무 뿌리 같고
擁腫縐襞積(옹종추벽적) : 울퉁불퉁 주름잡혀 있는 것 같도다
頑肥槩見黜(완비개견출) : 모양이 오동통하면 대개 다 내버리니
所崇在癯瘠(소숭재구척) : 좋은 것이 살이 없이 수척한 것이로다.
三峯特崷崒(삼봉특추줄) : 유독 뾰족한 봉우리 셋
舊載豐川舶(구재풍천박) : 옛날 풍천에서 실어온 것인가
豐川扼浿口(풍천액패구) : 풍천이 패강 어귀에 위치하니
湊集多金帛(주집다금백) : 황금과 비단이 많이 모여드는구나.
黃金與翠石(황금여취석) : 황금과 취석 두 가지 중에서
智者知所擇(지자지소택) : 슬기로운 자는 고를 것을 스승으로 알고있다네

 

 

가흥강방선(嘉興江放船)-정약용(丁若鏞)
가흥강에 배 띄우고-정약용(丁若鏞)

久厭山谿險(구염산계험) : 산길 험한 것 싫증 나
翻思水路便(번사수로편) : 뱃길 편리하다 생각 바꾸었다
悵違丹穴約(창위단혈약) : 단양 동굴 가자던 약속 어기고
獨上蘂州船(독상예주선) : 홀로 예주가는 배에 올랐다
兩岸風煙麗(양안풍연려) : 양 언덕의 풍경이 수려하여
中流顧眄專(중류고면전) : 물 한가운데서는 사방이 다 보인다
沙茸抽紫穎(사용추자영) : 모래밭 부들에서 자색 풀싹 뽑아드니
澗蘗綴黃姸(간벽철황연) : 계곡의 횡경나무 노랗게 들어찼구나
山晩禽吭滑(산만금항골) : 산에 해 지면 새들의 노랫소리 부드럽고
堤暄馬戲儇(제훤마희현) : 날씨도 따뜻하여 둑에는 말들도 잘 논다
游絲沙氣盛(유사사기성) : 아지랑이 모래 위에 아른거리고
移櫓水紋圓(이노수문원) : 노 저으가면 물에는 둥근 파문이 진다
娟妙飛峯出(연묘비봉출) : 고운 산봉우리 날 듯이 나타나고
逶迤臥柳遷(위이와류천) : 비스듬히 누운 버드나무 지나간다
盤渦趨急瀨(반와추급뢰) : 소용돌이치는 여울물 세차게도 흘러
惡石吼驚泉(악석후경천) : 울퉁불퉁 바위에 부딪쳐 놀라서 소리친다
拂拂風醒酒(불불풍성주) : 씽씽 부는 바람에 술이 깨고
搖搖水擊舷(요요수격현) : 찰랑찰랑 넘치는 물 뱃전을 때린다
悠然出平地(유연출평지) : 아득히 먼 곳에서 평지가 나타나고
開朗見靑天(개랑견청천) : 눈 앞에는 훤히 푸른 하늘이 보인다
世界重重豁(세계중중활) : 가도 가도 드넓은 세상
人煙曲曲連(인연곡곡연) : 굽이굽이 안개가 자욱하다
險夷常遞換(험이상체환) : 험하고 평탄한 길 늘 서로 바뀌고
憂樂每相牽(우락매상견) : 걱정과 즐거움도 언제나 서로 끄는구나
狹陋傷時俗(협루상시속) : 마음이 좁아 세상 풍속 슬퍼하다
優遊謝罪愆(우유사죄건) : 한가히 놀면서 나의 허물 사죄하노라
庶將江海志(서장강해지) : 바라노니, 이제 강해에 뜻을 두고
暫絶市朝緣(잠절시조연) : 세상 풍조와는 잠시 인연 끊으리라
去國鴟夷子(거국치이자) : 나라 버리고 떠난 치이자 되고
能詩賈浪仙(능시가랑선) : 시 잘하는 가랑 선인처럼 되리라
未應容大瓠(미응용대호) : 아직은 큰 박처럼 수용되기 어렵고
久已怯虛弦(구이겁허현) : 빈 활만 보고도 겁 먹는 새 같은 신세로다
愼索長安米(신색장안미) : 장안의 쌀조차 조심스럽게 찾아
謀歸潁尾田(모귀영미전) : 영수가의 밭으로 갈 생각이로다
沈潛收銳氣(침잠수예기) : 침착하게 젊은 예기 거두어 두고
放達送流年(방달송유년) : 방달하게 자유롭게 세월을 보내고 싶도다
此計心常有(차계심상유) : 이러한 마음 항상 있어 왔지만
今朝興渺然(금조흥묘연) : 오늘 아침 따라 흥취가 야릇하도다
曾聞堯舜世(증문요순세) : 일찍이 들었노라, 그 옛날 요순임금 시대에도
猶有隱箕巓(유유은기전) : 기산머리에 숨어 산 자 있지 않았던가

 

 

남자주타어(藍子洲打魚)-정약용(丁若鏞)
남자주에서 고기를 잡다-정약용(丁若鏞)

打魚每趁麥黃天(타어매진맥황천) : 매 번 보리누름에 고기를 잡으니
巨網橫流一字連(거망횡류일자련) : 세찬 물결에 큰 그물 일자로 연했다
立表始愁驅貉遠(입표시수구맥원) : 표지를 세우자니 오소리 달아날까 걱정
括囊方識籠鵝全(괄낭방식농아전) : 고기를 담으매 그제야 고기 잡은 것을 알았다
茶爐亂眼風中沸(다로난안풍중비) : 차 화로에는 어지러이 바람 속에 차가 끓는데
葡架明珠露共懸(포가명주로공현) : 시렁 위의 맑은 포도는 이슬처럼 매달렸구나
不有威靈由地主(불유위령유지주) : 이 지방 원님의 위령이 아니었다면
銀鱗那得滿歸船(은린나득만귀선) : 은빛 물고기를 어찌 배에 가득 잡을 수 있을까

 

 

야(夜)-정약용(丁若鏞)
밤에-정약용(丁若鏞)

黯黯江村暮(암암강촌모) : 어둑어둑 강촌에 날이 저물어
疏籬帶犬聲(소리대견성) : 성긴 울타리에 개 짖는 소리 가득
水寒星不靜(수한성불정) : 물결소리 차가우니 별빛이 고요하지 않아
山遠雪猶明(산원설유명) : 산이 머니 눈빛이 오히려 밝도다
謀食無長策(모식무장책) : 식생활 영위함엔 좋은 계책이란 없고
親書有短檠(친서유단경) : 책을 가까이하려니 짧은 등잔이 있도다
幽憂耿未已(유우경미이) : 깊은 근심 끝없이 떠나지 않으니
何以了平生(하이료평생) : 어떻게 일평생을 마칠 수 있으리오

 

 

산목(山木)-정약용(丁若鏞)
산의 나무-정약용(丁若鏞)

首夏氣布濩(수하기포호) : 초여름 기운 널리 퍼져가
山木交蔥蒨(산목교총천) : 산의 나무들 모두가 짙어는구나
嫩葉含朝暉(눈엽함조휘) : 어린 나뭇잎 아침 햇살 머금고
通明曬黃絹(통명쇄황견) : 볕 에 씻긴 노란 명주처럼 밝구나
濃綠遞相次(농록체상차) : 짙은 녹음 서로 번갈아 들고
邐迤引界線(리이인계선) : 비스듬하게 한계선을 긋는구나
松栝羞老蒼(송괄수노창) : 소나무 향나무는 늙어 부끄럽고
新梢吐昭絢(신초토소현) : 가지 끝에 새 싹을 뱉는구나
壽藤亦生心(수등역생심) : 해묵은 등나무 넝쿨도 마음 드러내어
裊裊舒蔓莚(뇨뇨서만연) : 간들간들 넝쿨들을 죽죽 뻗어 내는구나
要皆非俗物(요개비속물) : 요컨대 이 모두가 속물이 아니어서
熙怡共幽眄(희이공유면) : 서로 기쁜 표정으로 그윽히 구경 하는구나
幸無簪組累(행무잠조누) : 다행히도 벼슬에 얽매이는 마음 없어
奚復室家戀(해부실가연) : 어찌 다시 집안일에 연연하리오
躋攀旣費勞(제반기비로) : 풀과 나무 부여잡고 오르니 벌써 피곤하나
享受宜自便(향수의자편) : 기쁨을 누림이 의당 절로 편안하도다
靜究生成理(정구생성리) : 생성의 이치를 조용히 연구해보니
足以當書卷(족이당서권) : 충분히 책 읽은 것과 서로 같구나
高秋滿山紅(고추만산홍) : 높은 가을 하늘, 온 산엔 붉은 단풍 가득하니
重來覽時變(중래람시변) : 다시 와서 계절의 살펴보고 싶어라

 

 

억여행(憶汝行)-정약용(丁若鏞)
너가 돌아감을 생각함-정약용(丁若鏞)

憶汝送我時(억여송아시) : 네가 나를 떠나보낼 때
牽衣不相放(견의불상방) : 옷자락 부여잡고 놓지 않았다
及歸無歡顔(급귀무환안) : 돌아와도 네 기쁜 얼굴빛 없었고
似有怨慕想(사유원모상) : 원망하는 생각을 품은 듯했었다
死痘不奈何(사두불내하) : 마마로 죽는 것은 어찌하지 못하나
死也豈不枉(사야기불왕) : 종기로 죽었으니 억울하지 않은가
雄黃利去惡(웅황이거악) : 악성 종기 잘 낫는 웅황 썼는데
陰蝕何由長(음식하유장) : 나쁜 균이 그 어찌 그렇게 자랐는지
方將灌蔘茸(방장관삼용) : 인삼 녹용 먹이려 했는데
冷藥一何佞(냉약일하녕) : 냉약은 어찌 그리도 황당한가
曩汝苦痛楚(낭여고통초) : 지난번 네 어머니 고통 겪는데
我方愉佚宕(아방유일탕) : 나는 한창 즐겁게 놀고 있었다니
撾鼓綠波中(과고록파중) : 푸른 물결 속에서 장구를 치고
携妓紅樓上(휴기홍루상) : 붉은 누각 위에서 기생을 끼고 놀다니
志荒宜受殃(지황의수앙) : 마음이 빗나가면 재앙 받나니
惡能免懲創(악능면징창) : 어찌 능히 징계를 면할 것인가
送汝苕川去(송여초천거) : 너를 소천 마을 떠나보내어
且就西丘葬(차취서구장) : 서산의 기슭에다 묻어 주리라
吾將老此中(오장노차중) : 내 장차 그 속에서 여생 보내며
使汝有依仰(사여유의앙) : 너에게 의지할 곳 있게 하리라

 

 

춘일과최씨계상초당(春日過崔氏溪上草堂)-정약용(丁若鏞)
어느 봄날 최씨의 개울가 초당을 지나며-정약용(丁若鏞)

窈窕南溪曲(요조남계곡) : 남쪽 개울 굽어드는 한적한 곳
蕭然一草廬(소연일초려) : 쓸쓸히 자리 한 움집 한 채있도다
門臨千丈石(문임천장석) : 문 앞엔 천길 바위 가 정면에 있고
楣著八分書(미저팔분서) : 상인방엔 팔분서 붙어 있구나
僻巷饒花樹(벽항요화수) : 외진 마을 꽃나무 만발하고
殘田足菜蔬(잔전족채소) : 척박한 밭에는 나물 냄새 가득하다
室中常有酒(실중상유주) : 방안에는 항상 술이 있고
生理未全疏(생리미전소) : 생활은 그런대로 궁함은 면하였구나

 

 

입춘일제용동옥벽(立春日題龍衕屋壁)-정약용(丁若鏞)
입춘에 용동집의 벽에 짓다-정약용(丁若鏞)

人生處兩間(인생처양간) : 인생이란 천지간에 있어
踐形乃其職(천형내기직) : 남긴 자취 타고난 그의 천직이라
下愚泯天良(하우민천양) : 우매한 자 본연의 천성을 잃고
畢世營衣食(필세영의식) : 평생 동안을 먹고 살기 위해 바친다
孝弟寔仁本(효제식인본) : 효도와 공손은 곧 어진 마음이 근본
學問須餘力(학문수여력) : 학문은 그 남은 힘으로 할 것이로다
若復不刻勵(약복불각려) : 만약에 다시 각고의 노력 없으면
荏苒喪其德(임염상기덕) : 그럭저럭 그 덕을 잃어버리고 만다

 

 

전려와병(田廬臥病)-정약용(丁若鏞)
시골집 병석으로 누워-정약용(丁若鏞)

始爲殘書至(시위잔서지) : 당초에 남은 책 끝내려하니
翻嗟一病纏(번차일병전) : 어긋났도다, 병이 몸을 감는구나
閉門黃葉裏(폐문황엽리) : 나뭇잎은 누런데 문능 닫고서
煮藥碧松前(자약벽송전) : 푸른 소나무 앞에서 약을 달인다
髮亂從人理(발난종인리) : 산란한 머리 손질 남의 손을 빌리고
詩成只口傳(시성지구전) : 지어진 시를 입으로 전할 뿐이어라
起看西去路(기간서거로) : 일어나 서쪽으로 가는 길 바라보니
風雪滿寒天(풍설만한천) : 눈바람이 찬 하늘에 가득 불어온다

 

 

춘일배부승주부한양(春日陪父乘舟赴漢陽)-정약용(丁若鏞)
봄날 숙부님을 모시고 배로 한양으로 가면서-정약용(丁若鏞)

旭日山晴遠(욱일산청원) : 밝은 아침, 산은 개어 아득하고
春風水動搖(춘풍수동요) : 봄바람에 물결이 일렁거린다
岸廻初轉柁(안회초전타) : 언덕은 굽어져 배 키를 돌리고
湍駛不鳴橈(단사부명요) : 여울물길 빨라 노 소리도 나지 않는다
淺碧浮莎葉(천벽부사엽) : 옅고 푸른 물결에 풀 그림자 뜨있고
微黃着柳條(미황착유조) : 연노란 빛 버들가지에 물들었구나
漸看京闕近(점간경궐근) : 서울에 가까워짐이 점점 눈에 보이니
三角鬱岧嶢(삼각울초요) : 삼각산이 우뚝하게 높이도 솟아있다

 

 

유수종사(游水鐘寺)-정약용(丁若鏞)
수종사에서-정약용(丁若鏞)

垂蘿夾危磴(수라협위등) : 드리운 댕댕이 넌출이 비탈에 끼어
不辨曹溪路(불변조계로) : 조계로 가는 길을 구별하지 못하겠다
陰岡滯古雪(음강체고설) : 그늘 진 언덕에 옛 구름 머물고
晴洲散朝霧(청주산조무) : 맑게 갠 섬에는 아침 안개 흩어진다
地漿湧嵌穴(지장용감혈) : 땅에서는 솟는 물은 골짜기로 흐르고
鐘響出深樹(종향출심수) : 종소리는 깊은 나무숲에서 울려온다
游歷自玆遍(유력자자편) : 산을 주유함이 여기서 시작되니
幽期寧再誤(유기녕재오) : 그윽한 만날 약속 어찌 다시 그릇 되리

 

 

별가오십유팔일시득가서지희기아(別家五十有八日始得家書志喜寄兒)-정약용(丁若鏞)
집 떠나 오십팔일에 편지를 받고 기뻐서 자식에게 부치다-정약용(丁若鏞)

杜詩先獲我(두시선획아) : 두시가 먼저 내 마음을 읊었구나
書到汝爲人(서도여위인) : 서찰이 왔으니 너도 사람이 됐었구나
物外江山靜(물외강산정) : 세상 밖, 강산은 고요하고
寰中母子親(환중모자친) : 천지에 어머니와 자식은 가까우니라
驚疑那免疾(경의나면질) : 놀란 나머지 병이라도 나겠지
生活莫憂貧(생활막우빈) : 사는 것 가난하다 너무 걱정 말아라
黽勉治蔬圃(민면치소포) : 부지런히 남새밭이나 가꾸면
淸時作逸民(청시작일민) : 청명한 시대되어 평안한 백성 되리라

 

 

기아(寄兒)-정약용(丁若鏞)
자식에게-정약용(丁若鏞)

京華消息每驚心(경화소식매경심) : 서울 소식 올 때마다 놀라는 내 마음
誰道家書抵萬金(수도가서저만금) : 집에서 온 편지 만금이라 누가 말했나
愁似海雲晴復起(수사해운청복기) : 시름은 구름처럼 개었다 다시 일고
謗如山籟靜還吟(방여산뢰정환음) : 비방은 소리처럼 잠잠하다 다시 읊는구나
休嗟世降無巢谷(휴차세항무소곡) : 세상이 말세라서 소곡같은 따르는 이 없고
差喜門衰有蔡沈(차희문쇠유채침) : 가문은 쇠했어도 채침같은 후계자가 있도다
文字已堪通簡札(문자이감통간찰) : 편지를 나눌 만큼 문자공부는 되었으니
會敎經濟着園林(회교경제착원림) : 살림에 착안하여 경제공부를 해두어라

 

 

해남리(海南吏)-정약용(丁若鏞)
해남 아전-정약용(丁若鏞)

客從海南來(객종해남래) : 객이 해남에서 오다가
爲言避畏途(위언피외도) : 겁나는 길을 피해서 왔노라
坐久喘未定(좌구천미정) : 한참 앉아 있어도 숨이 가라앉지 않아
怖㥘猶有餘(포겁유유여) : 아직도 겁에 질린 기색이 남아있도다
若非値豺狼(약비치시랑) : 승냥이나 이리를 만난 것이 아니라면
定是遭羌胡(정시조강호) : 틀림없이 오랑캐를 만난 모양이리라
催租吏出村(최조이출촌) : 조세를 독촉하는 관리 마을에 나타나
亂打東南隅(난타동남우) : 동남 구석구석을 난타질 하는구나
新官令益嚴(신관령익엄) : 신관 사또의 명령은 더욱 엄하여
程限不得踰(정한불득유) : 기한을 넘길 수가 없다고 하는구나
橋司萬斛船(교사만곡선) : 주교사 소속의 만곡들이 배들이
正月離王都(정월리왕도) : 정월에 벌써 서울을 떠났다 하는구나
滯船必黜官(체선필출관) : 배가 정체되면 파직을 당하니
鑑戒在前車(감계재전차) : 종전부터 조심하는 일이었다오
嗷嗷百家哭(오오백가곡) : 집집마다 통곡소리 시끄러워도
可以媚櫂夫(가이미도부) : 그것으로는 사공들 끄떡도 안한다
吾今避猛虎(오금피맹호) : 나는 지금 사나운 호랑이 피해왔으니
誰復恤枯魚(수복휼고어) : 물 마른 땅 마른 고기를 누가 구해줄까
泫然雙淚垂(현연쌍루수) : 주루룩 두 눈에 눈물이 떨어져
條然一嘯舒(조연일소서) : 조연히 한 번 긴 한숨 내쉬노라

 

 

용산리(龍山吏)-정약용(丁若鏞)
용산 아전-정약용(丁若鏞)

吏打龍山村(리타용산촌) : 아전들이 용산 고을에 들이닥쳐
搜牛付官人(수우부관인) : 소를 뒤져 관리에게 넘겨주는구나
驅牛遠遠去(구우원원거) : 그 소 몰고 멀리멀리 가니
家家倚門看(가가의문간) : 집집마다 대문 밖에서 보고만 있었다
勉塞官長怒(면새관장노) : 사또님 노여움만 막으려 할 뿐
誰知細民苦(수지세민고) : 약한 백성 고통을 그 누가 알아주리오
六月索稻米(육월색도미) : 유월달에 쌀을 찾나키
毒痡甚征戍(독부심정수) : 고달프기 수자리 생활보다 더 심하도다
德音竟不至(덕음경불지) : 나라의 좋은 소식은 끝내 오지 않고
萬命相枕死(만명상침사) : 수많은 생명 모두다 죽게 되었도다
窮生儘可哀(궁생진가애) : 제일 불쌍한 건 가난한 백성
死者寧哿矣(사자녕가의) : 죽는 편은 오히려 더 낫구나
婦寡無良人(부과무량인) : 남편 없는 과부
翁老無兒孫(옹노무아손) : 자식 손자 없는 늙은이
泫然望牛泣(현연망우읍) : 빼앗긴 소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노라
淚落沾衣裙(루락첨의군) : 눈물 떨어져 저고리 치마 다 적신다
村色劇疲衰(촌색극피쇠) : 마을 모양새가 심히 피폐한데도
吏坐胡不歸(리좌호불귀) : 아전놈 어찌 돌아가지 않는가
甁甖久已罄(병앵구이경) : 쌀독 바닥난 지 이미 오래거늘
何能有夕炊(하능유석취) : 무슨 수로 저녁밥 지을 수 있나
坐令生理絶(좌령생리절) : 죽치고 앉아 산 목슴 죽게 하니
四隣同嗚咽(사린동오인) : 동네마다 목메어 우는구나
脯牛歸朱門(포우귀주문) : 소를 잡아 권문세가에 바쳐야
才諝以甄別(재서이견별) : 거기에서 관리의 능역 구별한다니

 

 

애절양(哀絶陽)-정약용(丁若鏞)
남근을 자른 것을 애앒아 하다-정약용(丁若鏞)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 노전마을 젊은 아낙 통곡소리 길구나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 현문을 향해 곡하다가 하늘에 울부짖는다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 군인 간 지아비가 돌아오지 않는 겨우 있으나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 남자로서 남근을 자른 일 들어본 일이 없도다
舅喪已縞兒未澡(구상이호아미조) : 시아버지는 삼상 나고 갓난애 물도 안 말랐는데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 할아버지,아버지,아들 삼대가 다 군보에 올랐다니
薄言往愬虎守閽(박언왕소호수혼) : 관가로 가서 호소해도 호랑이 같은 문지기 지키고
里正咆哮牛去皁(이정포효우거조) : 이정은 으르렁대며 마굿간 소를 몰아간다
磨刀入房血滿席(마도입방혈만석) : 칼을 갈아 방에 드니 자리에는 피가 흥건하고
自恨生兒遭窘厄(자한생아조군액) : 아들 낳아 군액한 형편 맞은 것 스스로 한탄한다
蠶室淫刑豈有辜(잠실음형기유고) : 무슨 죄가 있어서 잠실에서 음형을 당하는가
閩囝去勢良亦慽(민건거세양역척) : 민 땅 자식들 거세한 것도 정말로 슬픈 일이로다
生生之理天所予(생생지리천소여) : 자식 낳고 또 낳음은 하늘이 정한 이치
乾道成男坤道女(건도성남곤도녀) : 하늘 도는 아들 되이나 땅의 도는 딸이 되었구나
騸馬豶豕猶云悲(선마분시유운비) : 말과 돼지 거세함도 서럽다 말하는데
況乃生民恩繼序(황내생민은계서) : 대 이어갈 생민들 생각하면 말을 더해 뭣하리오
豪家終歲奏管弦(호가종세주관현) : 부호들은 일년내내 풍류나 즐기면서
粒米寸帛無所捐(입미촌백무소연) :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도다
均吾赤子何厚薄(균오적자하후박) : 똑같은 우리 백성 어찌 그리도 후하고 박한가
客窓重誦鳲鳩篇(객창중송시구편) : 객창에서 거듭하여 시경의 시구편을 외워본다

 

 

영수석(詠水石)-정약용(丁若鏞)
물과 돌을 노래하다-정약용(丁若鏞)

泉心常在外(천심상재외) : 냇물 마음은 항상 밖에 있어
石齒苦遮前(석치고차전) : 돌 이뿌리 막힌 것 괴롭기만 하다
掉脫千重險(도탈천중험) : 천 겹의 험한 곳을 흔들며 지나야
夷然出洞天(이연출동천) : 평탕하게 골짜기를 벗어난다오

 

 

타맥행(打麥行)-정약용(丁若鏞)
보리타작-정약용(丁若鏞)

新蒭獨酒如湩白(신추독주여동백) : 새로 거른 막걸리 젖빛처럼 희고
大碗麥飯高一尺(대완맥반고일척) : 큰 사발에 보리밥이 높기가 한 자로다
飯罷取耞登場立(반파취가등장입) : 밥 먹고 도리깨 잡고 마당에 나서니
雙肩漆澤翻日赤(쌍견칠택번일적) : 검게 탄 두 어깨가 햇볕에 번쩍인다
呼邢作聲擧趾齊(호형작성거지제) : 응헤야 소리 내며 발 맞춰 두드리니
須叟麥穗都狼藉(수수맥수도랑자) : 삽시간에 보리 이삭 온 마당에 가득하다
雜歌互答聲轉高(잡가호답성전고) :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고
但見屋角紛飛麥(단견옥각분비맥) : 다만 지붕 위에 어지러운 보리티끌 뿐이구나
觀其氣色樂莫樂(관기기색락막락) :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고
了不以心爲形役(료불이심위형역) :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음을 알았도다
樂園樂郊不遠有(락원락교불원유) :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니
何苦去作風麈客(하고거작풍주객) : 어찌하여 벼슬길 떠나는 것 고민하고 있는가

 

 

고시(古詩)-정약용(丁若鏞)
고시-정약용(丁若鏞)

燕子初來時(연자초래시) : 제비 한 마리 처음 날아온 때라
喃喃語不休(남남어불휴) : 지지배배 그 소리 그치지 않는구나
語意雖未明(어의수미명) : 말하는 뜻 분명히 알 수 없지만
似訴無家愁(사소무가수) : 집 없는 서러움을 호소하는 듯 하도다
楡槐老多冗(유괴로다용) : 느릅나무 홰나무 늙어 구멍이 많은데
何不此淹留(하불차엄유) : 어찌하여 이곳에 깃들지 않는가
燕子復喃喃(연자복남남) : 제비는 다시 지저귀며
似與人語酬(사여인어수) : 사람에게 말을 주고 받는 듯
楡冗款來啄(유용관래탁) : 느릅나무 구멍은 황새가 쪼고
槐冗蛇來搜(괴용사래수) : 홰나무 구멍은 뱀이 와서 뒤진다 하는구나

 

 

견여탄(肩輿歎)-정약용(丁若鏞)
가마꾼의 탄식-정약용(丁若鏞)

人知坐輿樂(인지좌여락) : 사람들 가마 타는 즐거움 알아도
不識肩輿苦(불식견여고) : 가마 메는 괴로움은 모른다
肩輿山峻阪(견여산준판) : 가마 메고 험한 산길 오르면
捷若蹄山麌(첩약제산우) : 빠르기 산 타는 노루 같고
肩輿不懸崿(견여불현악) : 가마 메고 비탈길 내려오면
沛如歸笠羖(패여귀립고) : 빠르기 우리로 돌아가는 염소 같아라
肩輿超谽谺(견여초함하) : 가마 메고 깊은 골짝 건너면
松鼠行且舞(송서행차무) : 소나무 다람쥐도 같이 춤춘다
側石微低肩(측석미저견) : 바위 옆 지나며 어깨 낮추고
窄徑敏交服(착경민교복) : 오솔길 지나면서 종종걸음 걸어간다
絶壁頫黝潭(절벽부유담) : 검푸른 저수지 절벽에서 내려보니
駭魄散不聚(해백산불취) : 놀라서 혼백이 아찔하기만 하도다
快走同履坦(쾌주동리탄) : 평지는 밟듯이 날쌔게 달려
耳竅生風雨(이규생풍우) : 귀에서 비바람 소리 나는구나
所以游此山(소이유차산) : 이 산에 유람하는 까닭은
此樂必先數(차악필선수) : 이런 즐거움이 먼저 따진다오
紆回得官岾(우회득관점) : 근근히 관첩을 얻기만 해도
役屬遵遺矩(역속준유구) : 역속들을 법대로 모셔야 하는데
矧爾乘傳赴(신이승전부) : 하물며 말타고 행차하는 한림에게야
翰林疇敢侮(한림주감모) : 누가 감히 못 하겠다 거절하리
領吏操鞭扑(령이조편복) : 아전은 채찍 들고 감독 맡고,
首僧整編部(수승정편부) : 수승은 격식 차려 맞을 준비하는구나
迎候不差限(영후불차한) : 높은 분 영접에 기한을 어기리오
肅恭行接武(숙공행접무) : 엄숙한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는구나
喘息雜湍瀑(천식잡단폭) : 가마꾼 숨소리 여울 폭포 소리에 섞이고
汙漿徹襤褸(오장철람루) : 해진 옷에 땀이 베어 젖어 가는구나
度虧旁者落(도휴방자락) : 외진 모퉁이 지나니 옆 사람 뒤처지고
陟險前者傴(척험전자구) : 험한 곳 오를 때엔 앞 사람 숙여야 하는구나
壓繩肩有瘢(압승견유반) : 밧줄에 눌리어 어깨에는 자국 나고
觸石趼未瘉(촉석견미유) : 돌에 채인 발 미쳐 낫지도 않는구나
自痔以寧人(자치이영인) : 자기는 병들면서 남을 편하게 해 주니
職與驢馬伍(직여려마오) : 하는 일 당나귀와 같구나
爾我本同胞(이아본동포) : 너와 나 본래는 동포이고
洪勻受乾父(홍균수건부) : 한 하늘 부모삼아 다 같이 생겼도다
汝愚甘此卑(여우감차비) : 너희들 어리석어 이런 천대 감수하니
吾寧不愧憮(오녕불괴무) : 내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吾無德及汝(오무덕급여) : 나에게는 너에게 미칠 덕이 없지만
爾惠胡獨取(이혜호독취) : 내 어찌 너의 은혜 혼자 받겠는가
兄長不憐弟(형장불련제) : 형이 아우를 사랑치 않으니,
慈衰無乃怒(자쇠무내노) : 자애로운 늙은 아비 노하지 않겠는가
僧輩楢哿矣(승배유가의) : 중들은 그래도 나은 편인데
哀彼嶺不戶(애피령불호) : 고개 아래 백성들은 가련하기만 하다
巨槓雙馬轎(거공쌍마교) : 큰 깃대 앞세우고 쌍마 수레 타고 오니
服驂傾村塢(복참경촌오) : 촌마을 사람들 모조리 동원하여 뚝에 가득하다
被驅如太鷄(피구여태계) : 닭처럼 개처럼 내몰리어
聲吼甚豺虎(성후심시호) : 소리치고 꾸중하기 범보다 더 심하구나
乘人古有戒(승인고유계) : 가마 타는 사람 지킬 계율 있었지만
此道棄如土(차도기여토) : 지금은 이 계율 흙같이 버렸구나
耘者棄其鋤(운자기기서) : 밭 갈다가 징발되면 호미 내던지고
飯者哺以吐(반자포이토) : 밥 먹다가 징발되면 먹던 음식 뱉어야 한다
無辜遭嗔暍(무고조진갈) : 죄 없이 욕 먹고 꾸중 들으며
萬死唯首俯(만사유수부) : 일만 번 죽어도 머리는 조아려야 하는구나
顦顇旣踰艱(초췌기유간) : 병들고 지쳐서 험한 고비 넘기면
噫吁始贖擄(희우시속로) : 아, 비로소 포로 신세 면하는구나
浩然揚傘去(호연양산거) : 사또는 일산 쓰고 호연히 떠날 뿐
片言無慰撫(편언무위무) : 한 마디 위로의 말 남기지 않는구나
力盡近其畝(력진근기무) : 기진 맥진 논밭으로 돌아오면
呻唫命如縷(신금명여루) : 지친 몸, 신음 소리가 실낱 같도다
欲作肩與圖(욕작견여도) : 가마 메는 그림 그려서
歸而獻明主(귀이헌명주) : 돌아가 임금님께 바치고 싶구나

 

 

등남원광한루(登南原廣寒樓)-정약용(丁若鏞)
남원 광한루에 올라-정약용(丁若鏞)

層城曲壘枕寒流(층성곡루침한류) : 층층 성벽 굽은 보루는 강을 베고 누웠는데
萬馬東穿得一樓(만마동천득일루) : 만마관 동녘을 지나오니 한 누각이 나타나네
井地已荒劉帥府(정지이황유수부) : 유수의 고을에는 정전 이미 묵었고
關防舊鞏帶方州(관방구공대방주) : 대방의 나라 요새로서 예로부터 철벽이었다네
雙溪草綠春陰靜(쌍계초록춘음정) : 쌍계의 푸른 풀에 봄그늘 고요하고
八嶺花濃戰氣收(팔령화농전기수) : 팔령에 꽃은 만발하고 전쟁의 기운 걷혔구나
烽火不來歌舞盛(봉화불래가무성) : 봉화불 오르지 않고 노래와 춤 성하거니
柳邊猶繫木蘭舟(유변유계목란주) : 수양버들 가지에는 아직 목란 배가 묶여있네

 

 

우복동가(牛腹洞歌)-정약용(丁若鏞)
우복동가-정약용(丁若鏞)

俗離之東山似甕(속리지동산사옹) : 속리산 동편에 산이 항아리 같아
古稱中藏牛腹洞(고칭중장우복동) : 옛날부터 그 속에 우복동이 감추어져 있다네
峯回磵抱千百曲(봉회간포천백곡) : 봉우리는 두을고 골짝물은 천 구비 백 굽이 둘러
衽交褶疊無綻縫(임교습첩무탄봉) : 여민 옷섶 겹친 주름 터진 곳도 없네
飛泉怒瀑恣喧豗(비천노폭자훤회) : 나는 샘과 성난 폭포가 마음껏 떠들며
壽藤亂刺相牽控(수등난자상견공) : 다래덩굴 가시나무가 얼기설기 막고 있네
洞門一竇小如管(동문일두소여관) : 출입문은 대롱만큼 작은 구멍 하나라네
牛子腹地纔入峒(우자복지재입동) : 송아지가 배를 따에 붙여야 들어갈 정도라네
始入峭壁猶昏黑(시입초벽유혼흑) : 들어서면 가파른 절벽이 깜깜해도
稍深日月舒光色(초심일월서광색) : 조금 깊이 들어가면 해와 달 천천히 빛나고
平川斷麓互映帶(평천단록호영대) : 평평한 시냇물에 끊어진 산자락이 비쳐 흐르네
沃土甘泉宜稼穡(옥토감천의가색) : 기름진 땅 맛있는 샘물 농사짓기 알맞아
仇池淺狹那足比(구지천협나족비) : 얕고 좁은 구지와 어찌 비교가 되리오
漁子徊徨尋不得(어자회황심불득) : 어부가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아낼 수 없다네
玄髮翁嗔白髮兒(현발옹진백발아) : 머리 검은 영감이 백발 된 자식을 꾸짖고
熙熙不老眞壽域(희희불노진수역) : 백 년 가도 늙지 않는 정말 장수의 고장이라네
迂儒一聞心欣然(우유일문심흔연) : 멍청한 선비 소문 듣고서 마음이 흔연하여
徑欲往置二頃田(경욕왕치이경전) : 빨리 가서 두어마지기 밭이라도 차지하였다네
竹杖芒屩飄然去(죽장망교표연거) : 죽장망훼 차림으로 훌쩍 찾아떠나니
繞山百帀僵且顚(요산백잡강차전) : 백 바퀴나 산을 돌다 지치고 쓰러졌다네
天晴疑聞風雨響(천청의문풍우향) : 멀쩡한 하늘에서 비바람소리 들리는 듯하고
世晏如見干戈纏(세안여견간과전) : 편안한 세상에 전쟁이라도 난 것 같았다네
爭投茂朱覓山谷(쟁투무주멱산곡) : 무주구천동 달려가서 골짜기 찾아 헤매다가
幸與此洞相接連(행여차동상접연) : 다행히도 우복동과 서로 연결되었다데
三韓開國嗟已久(삼한개국차이구) : 삼한이 개국한 지가 얼마나 오래인가
如蠶布紙蕃生口(여잠포지번생구) : 종이 위에 누에 깔리듯 인구가 너무 많아
樵蘇菑墾足跡交(초소치간족적교) : 나무하고 밭 일구고 발 안 닿는 곳 없는데도
詎有空山尙鹵莽(거유공산상로망) : 남아 있는 빈 산지가 어디에 있을 겠는가
藉使寇來宜死長(자사구래의사장) : 적이 쳐들어와도 마땅히 나라 위해 죽어야지
汝曹豈得絜妻子(여조기득혈처자) : 너희들 처자 데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且督妻舂納王稅(차독처용납왕세) : 아내가 방아찧어 나라에 세금 바치게 해야지
嗚呼牛腹之洞世豈有(오호우복지동세기유) : 아아 우복동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채약사(採藥詞)-정약용(丁若鏞)
약초 캐는 노래-정약용(丁若鏞)

采藥復采藥(채약복채약) : 약을 캐고 또 약을 캐면서
迢遞躋巖谷(초체제암곡) : 높이 바위골짝을 오른다네
手中三尺鑱(수중삼척참) : 손에는 석 자 보습을 들고서
處處靈根斸(처처령근촉) : 곳곳에서 약초 뿌리를 찍는다네
風吹微雨來(풍취미우래) : 바람이 불고 가랑비가 내리면
嫩芽初舒綠(눈아초서녹) : 연한 싹이 푸르게 나온다네
尋苗涉幽澗(심묘섭유간) : 싹 찾아 깊은 골짝기에도 들고
引蔓穿深竹(인만천심죽) : 덩굴 따라 깊숙한 대밭 찾아
長懷鹿門隱(장회녹문은) : 길이 녹문의 숨어사는 이를 그리워하고
思酬小山曲(사수소산곡) : 소산곡을 화답해 부르고 싶다네
不獨駐流年(불독주류년) : 다만 흐르는 세월 멈추게 하지 못하니
聊以謝淆俗(료이사효속) : 혼탁한 속세를 떠나고 싶다네

 

 

과야인촌거(過野人村居)-정약용(丁若鏞)
시골 사람들의 마을을 지나면서-정약용(丁若鏞)

野彴平疇外(야박평주외) : 외나무다리 건너 들판 저 밖에
荒村一兩家(황촌일양가) : 한두 집 황량한 마을이 있도다
敗籬新綴竹(패리신철죽) : 터진 울타리 새로 대나무로 엮고
小圃未舒花(소포미서화) : 작은 채마밭에는 꽃은 아직 피지도 않았다
冷落餘書架(냉낙여서가) : 초라한 일상 남은 책만 남있고
艱難有釣槎(간난유조사) : 어려운 처지에도 낚싯배는 있다
狐丘幸遂願(호구행수원) : 고향에 가고픈 소원만 이루어진다면
生理不須嗟(생리불수차) : 사는데에 슬퍼할 일도 없겠다

 

 

茶山八景詞8(다산팔경사8)-丁若鏞(정약용)
다산팔경의 노래-丁若鏞(정약용)

小溪廻合抱晴巒(소계회합포청만) : 작은 시내 감돌아 맑은 묏부리 감싸 있고
翠鬣紅鱗矗萬竿(취렵홍린촉만간) : 푸른 갈기 붉은 비늘 같은 소나무 높기가 만간이로구나
正到絲簧聲沸處(정도사황성비처) : 거문고며 피리 소리 들끓는 곳에 바로 있나니
天風吹作滿堂寒(천풍취작만당한) : 온 집이 차갑도록 천풍이 불어오는구나

 

 

茶山八景詞7(다산팔경사7)-丁若鏞(정약용)
다산팔경의 노래-丁若鏞(정약용)

淺雪陰岡石氣淸(천설음강석기청) : 눈 덮인 응달 언덕에 바위 가운 첨명하고
穹柯墜葉有新聲(궁가추엽유신성) : 높은 가지 비는 잎에 신비한 소리나는구나
猶殘一塢蒼筤竹(유잔일오창랑죽) : 아직도 남아 있는 언덕의 어린 대나무
留作書樓歲暮情(유작서루세모정) : 공부 다락 세모의 정경을 머물러 지켜주는구나

 

 

茶山八景詞6(다산팔경사6)-丁若鏞(정약용)
다산팔경의 노래-丁若鏞(정약용)

風靜芳池鏡樣磨(풍정방지경양마) : 바람 잔 풀 우거진 못이 거울처럼 맑으면
名花奇石水中多(명화기석수중다) : 이름난 꽃 기괴한 돌 물 속에 많이 있구나
貪看石罅幷頭菊(탐간석하병두국) : 바위틈에 병두국화 두고두고 보기 탐해
剛怕魚跳作小波(강파어도작소파) : 고기 뛰어 물결 일까 그것이 너무 겁나는구나

 

 

茶山八景詞5(다산팔경사5)-丁若鏞(정약용)
다산팔경의 노래-丁若鏞(정약용)

巖苗參差帶薄雲(암묘삼차대박운) : 작은 바위더미에 엷은 구름 덮이고
經秋石髮長圓紋(경추석발장원문) : 가을을 난 바위털이 동그랗게 길게 자랐구나
仍添颯杳臙脂葉(잉첨삽묘연지엽) : 이에 연지같은 붉은 잎이 우수수 보태지면
濃翠輕紅不細分(농취경홍불세분) : 짙은 푸름과 옅은 붉음이 자세히 분간되지 않는구나

 

 

茶山八景詞4(다산팔경사4)-丁若鏞(정약용)
다산팔경의 노래-丁若鏞(정약용)

黃梅微雨著林梢(황매미우저림초) : 황매가 가랑비에 숲 마무 가지에 젖으면
千點回紋水面交(천점회문수면교) : 수면에는 천 개나 동그랗게 물방울 인다네
晩食故餘三兩塊(만식고여삼양괴) : 저녁밥 일부러 두세 덩어리 남겼다가
自憑藤檻飯魚苗(자빙등함반어묘) : 등나무 난간에 기대앉아 고기새끼 먹이 준다네

 

 

茶山八景詞3(다산팔경사3)-丁若鏞(정약용)
다산팔경의 노래-丁若鏞(정약용)

山葛萋萋日色姸(산갈처처일색연) : 산 칡은 우거지고 햇살은 부드러워
小爐纖斷煮茶煙(소노섬단자차연) : 작은 화롯불에 차 달이던 가는 연기 끊어지네
何來角角三聲雉(하래각각삼성치) : 어디선가 깍깍대는 세 마디 꿩소리
徑破雲牕數刻眠(경파운창수각면) : 구름 창문 열리니 잠시 든 잠을 깨우네

 

 

茶山八景詞2(다산팔경사2)-丁若鏞(정약용)
다산팔경의 노래-丁若鏞(정약용)

山家簾子水紋漪(산가렴자수문의) : 산촌의 집안 발 밖에 일렁이는 잔물결
照見樓頭楊柳枝(조견루두양유지) : 누대 앞에 흔들리는 버들 가지 비춰보니네
不是巖阿有飛雪(불시암아유비설) : 바위에 눈 날리는 것이 아니라
春風吹絮弄淸池(춘풍취서농청지) : 봄바람이 버들 솜 날려 맑은 못물 놀린다네

 

 

茶山八景詞1(다산팔경사1)-丁若鏞(정약용)
다산팔경의 노래-丁若鏞(정약용)

響牆疏豁界山腰(향장소활계산요) : 산허리를 경계로 소리 울리게 쳐진 담장
春色依然畫筆描(춘색의연화필묘) : 붓으로 그린 듯 봄빛이 변함없네
愛殺一溪新雨後(애살일계신우후) : 비가 멎고 난 뒤 개울이 너무 좋아
小桃紅出數枝嬌(소도홍출수지교) : 복사꽃 몇 가지가 뻗어나와 예쁘게 펴 있구나

 

 

池閣月夜(지각월야)-丁若鏞(정약용)
목가 누각의 달밤-丁若鏞(정약용)

芳池月色可淸宵(방지월색가청소) : 풀우거진 못에 어린 달빛 맑은 밤
露結蛛懸見柳梢(로결주현견유초) : 이슬 맺히고 거미 매달린 버들가지 보인다
忽有一泓生眼底(홀유일홍생안저) : 갑자기 깊은 웅덩이 눈 아래 하나 생겨
微風吹作海門潮(미풍취작해문조) : 산들바람 불어와 바다 문 앞에 조수를 만드는구나

 

 

淡泊(담박)-丁若鏞(정약용)
담박-丁若鏞(정약용)

淡泊爲歡一事無(담박위환일사무) : 담박을 좋게 여기니 아무런 일도 없어
異鄕生理未全孤(이향생리미전고) : 타향살이도 그렇게 외롭지만은 않다네
客來花下攜詩卷(객래화하휴시권) : 손님 오면 꽃 아래서 시집을 들고보고
僧去牀間落念珠(승거상간낙념주) : 스님 떠난 침상에는 염주가 떨어져 있다네
菜莢日高蜂正沸(채협일고봉정비) : 장다리에는 한낮이면 벌이 들끓고
麥芒風煖雉相呼(맥망풍난치상호) : 보리 까트라기에 바람 따스하면 꿩들이 서로 부른다네
偶然橋上逢隣叟(우연교상봉린수) : 우연히 다리 위에서 이웃 늙은이 만나
約共扁舟倒百壺(약공편주도백호) : 조각배 함께 타고 술을 실컷 기울이기로 약속했다네

 

 

池上絶句(지상절구)-丁若鏞(정약용)
못 위에서 적구를 짓다-丁若鏞(정약용)

煖風吹髮度芳池(난풍취발도방지) : 따뜻한 바람 머리털 날리며 못 위를 지나는데
池上橫筇獨坐遲(지상횡공독좌지) : 못 위에서 대지팡이 비껴들고 혼자 서성이노라
老滑禽簧無澁處(노활금황무삽처) : 노련한 새의 노랫소리는 껄끄러운 데 없고
嫩黃楓葉勝紅時(눈황풍엽승홍시) : 노랗게 돋은 단풍잎이 붉은 꽃보다 더 예쁘구나

 

過南塘浦(과남당포)-丁若鏞(정약용)
남당포를 지나며-丁若鏞(정약용)

南塘村口暮潮還(남당촌구모조환) : 남당마을 입구에 저녁 밀물 밀려오고
浦浦泥沙綠水間(포포이사녹수간) : 포구는 갯벌과 푸른 물 사이에 보이네
鹽戶生涯隣蟹穴(염호생애린해혈) : 갯마을 한평생을 게구멍과 이웃이요
漁莊風俗近魚蠻(어장풍속근어만) : 어부의 풍속은 고기잡이 그것과 가깝다네
秋雲遠冪陳璘島(추운원멱진린도) : 저 멀리 가을 구름 진린의 섬 덮고
落日斜明李穎山(낙일사명리영산) : 지는 해는 옆살로 이영의 산을 비쳐주네
北望巖厓千萬疊(북망암애천만첩) : 북녘으로 바위산을 바라보니 천겹 만겹 겹쳐있어
從來無路見鄕關(종내무노견향관) : 종래부터 고향바라볼 길이 전혀 없다네

 

 

送金直閣邁淳入檗溪次三淵韻8(송김직각매순입벽계차삼연운8)-丁若鏞(정약용)
벽계로 들어가는 김 직각 매순을 보내면서 삼연의 운에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靜憶鏗筇響(정억갱공향) : 지팡이 울리는 소리 고요히 생각하니
雲蹊九曲深(운혜구곡심) : 구곡 굽은 구름길이 깊기도 하여라.
定無遷木志(정무천목지) : 정히 크게 출세할 뜻 없어
應惹考槃心(응야고반심) : 응당 은거할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水石淸堪坐(수석청감좌) : 수석은 맑아 앉을 만하고
巖花煖不禁(암화난불금) : 바위 꽃은 따뜻하여 금할 수 없구나.
龍山絶湫隘(용산절추애) : 용산은 대단히 좁고 험한 곳이니
何似此溪潯(하사차계심) : 어떻게 이 시냇물 가만 하겠는가.

二疊2(이첩2)-丁若鏞(정약용)
두 번째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釣游斯地自桑蓬(조유사지자상봉) : 한창 시절부터 이곳에서 낚시질하였고
鐵馬延緣接水鍾(철마연연접수종) : 철마산 길게 뻗어와 수종사에 이어졌네.
管領雲山三百曲(관령운산삼백곡) : 운산 삼백 굽이를 맡아서 다스려
回頭風浪一千重(회두풍랑일천중) : 머리 돌려보니 풍랑은 일천 겹이네.
觚稜跂望同秋燕(고릉기망동추연) : 대궐을 바라보는 마음 가을 제비 같고
經卷叢殘奈夏蟲(경권총잔내하충) : 성현의 책들 많으나 견문 좁은 여름벌레임을 어찌할까
今日逢君話文字(금일봉군화문자) : 오늘 그대를 만나 문자를 얘기하니
弇園疑對李攀龍(엄원의대이반룡) : 마치 감원의 시 잘 지는 이반룡을 마주한 듯하네.

 

 

三疊2(삼첩2)--丁若鏞(정약용)
세 번째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短發殘莖一任蓬(단발잔경일임봉) : 짧고 쇠잔한 머리털 흐트러지게 버려두고
藥爐欹側傍茶鍾(약로의측방다종) : 기울어진 화로 곁에 찻잔을 겸했네.
鸚鸕酒算須三百(앵로주산수삼백) : 앵로 술잔은 삼백 배를 기울여야 하거니와
虎豹天門本九重(호표천문본구중) : 호랑이들 지키는 천문은 본래 아홉 겹이라네.
末路生涯同鋌鹿(말로생애동정록) : 말로 생애는 다급해진 사슴과 같고
老年懺悔在雕蟲(노년참회재조충) : 노년의 참회는 자잘한 기예에 있네.
今秋大有金山計(금추대유금산계) : 올 가을엔 금산에 갈 계획이 크게 있으니
逝挹瓊漿酹瀑龍(서읍경장뢰폭룡) : 가서 구슬 잔에 물을 떠서 폭포에 제사지내리라.

 

 

四疊4(사첩4)-丁若鏞(정약용)
네 번째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野外深棲託藋蓬(야외심서탁조봉) : 들 밖에 깊이 명아주와 쑥을 의탁해 사니
歸來長樂不聞鍾(귀래장락불문종) : 돌아와선 장락궁 종소리를 듣지 못하네.
花濃夕步巡三帀(화농석보순삼잡) : 꽃이 고와서 저녁엔 세 바퀴를 돌아 거닐고
山暖春衣去一重(산난춘의거일중) : 산이 따뜻하여 봄 옷 한 겹을 벗었네.
身後文章書墨鰂(신후문장서묵즉) : 죽은 뒤에 남기지 않기 위해 묵즉으로 기록하고 
世間腸胃食黃蟲(세간장위식황충) : 세상 사람의 위장은 황충같은 벌레도 먹는다네.
殘年漸熟溫存計(잔년점숙온존계) : 남은 인생은 점차 편히 보존할 계책을 익히니
螻蟻如今慣制龍(루의여금관제용) : 개미가 이제는 용을 제압하기에 익숙하게 되었네. 

 

 

出淸平洞口(출청평동구)-丁若鏞(정약용)
청평의 동구를 나오면서-丁若鏞(정약용)

石逕騎牛十里廻(석경기우십리회) : 돌길에 소를 타고 십 리나 돌아 나와
壽藤披豁洞天開(수등피활동천개) : 묵은 등나무 넝쿨 헤치니 계곡이 열리는구나.
澄江一面漣漪水(징강일면련의수) : 맑은 강물 전체에 잔물결 이니
曾作淸平瀑布來(증작청평폭포래) : 일찍이 청평 폭포에서 내려온 물이로구나.

 

 

五疊5(오첩5)-丁若鏞(정약용)
다섯 번째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夫子之心猶有蓬(부자지심유유봉) : 선생님의 마음엔 아직 막힌 마음이 있으니
莫云流水會牙鍾(막운유수회아종) : 흐르는 물로 참된 친구 만났다고 말하지 말라
古今愁髮三千丈(고금수발삼천장) : 고금에 시름하는 머리털은 삼천 길이요
只尺詩城百二重(지척시성백이중) : 지척에 시의 성벽은 한없이 겹치었네.
已道中原交鴈雉(이도중원교안치) : 이미 중원의 사대부와 사귈 것을 말했는데
不過窮海註魚蟲(불과궁해주어충) : 고작 궁색한 조선의 문자하는 사람만 되었네.
向來馬訾沈篇翰(향래마자침편한) : 지난번 마자수에 서적을 빠뜨린 것은
應是觀江賄怒龍(응시관강회노용) : 응당 강구경하며 성낸 용에게 뇌물을 주네.

 

 

簡寄閑村趙逸人(간기한촌조일인)-丁若鏞(정약용)
한촌 조 일인에게 적어 부치다-丁若鏞(정약용)

龍門寺下別(용문사하별) : 용문사 아래서 서로 헤어지니
秋樹憶蕭森(추수억소삼) : 가을 나무 쓸쓸하기만 했었네.
白屋移何易(백옥이하역) : 초막집 옮기기가 어찌 쉬우랴
靑山隱更深(청산은경심) : 푸른 산에 숨어삶이 더욱 깊어 졌네.
俗淳蘇酒渴(속순소주갈) : 풍속이 순후하니 술 부족 해소되고
村僻恣詩淫(촌벽자시음) : 마을 궁벽하니 마음대로 시를 짓네.
蒲柳慚衰弱(포류참쇠약) : 부끄러워라, 창포와 버들처럼 약한 몸으로
空懷五嶽心(공회오악심) : 공연히 다섯 큰 산을 구경하려 한다네.

 

 

淸平寺觀瀑4(청평사관폭4)-丁若鏞(정약용)
청평사에서 폭포(서천 폭포)를 구경하다-丁若鏞(정약용)
 
殷地西川瀑(은지서천폭) : 크나큰 땅 서천의 폭포여
祈星太乙壇(기성태을단) : 태을단에선 별에 기원하노라.
建瓴天下勢(건령천하세) : 동이의 물은 천하의 힘이요
危榻日中寒(위탑일중한) : 높은 걸상은 낮에도 춥구나.
龍尾螺螄轉(용미라사전) : 용꼬리는 나선형으로 돌고
犧尊饕餐蟠(희존도찬반) : 술그릇엔 식 탐하는 짐승이 서려있구나.
分流三百道(분류삼백도) : 삼백 가닥으로 나뉘어 흐르지만
究竟一飛湍(구경일비단) : 끝내는 한 여울이 된다네.

 

 

淸平寺觀瀑3(청평사관폭3)-丁若鏞(정약용)
청평사에서 폭포(와룡담 폭포)를 구경하다-丁若鏞(정약용)
 
鐵壁先天鑄(철벽선천주) : 견고한 절벽은 이미 자연으로 만들어지고
銅函一矩方(동함일구방) : 아늑한 웅덩이는 정사각형인데
更添新雨力(경첨신우력) : 새로 내린 비의 힘을 를 다시 보태어
因沸太和湯(인비태화탕) : 태화탕을 부글부글 끓여대는구나.
銳欲穿山入(예욕천산입) : 예리함은 산을 뚫고 들어갈 듯하고
喧能撼樹涼(훤능감수량) : 시끄러움은 숲을 흔들어 서늘하게 하는구나.
遊人多錯過(유인다착과) : 나그네가 잘못 찾아오는 일 많으니
叢翳護龍光(총예호용광) : 나무숲이 가리어 용의 광채를 보호하는구나.

 

 

淸平寺觀瀑2(청평사관폭2)-丁若鏞(정약용)
청평사에서 폭포(구송정 폭포)를 구경하다-丁若鏞(정약용)

天垂雙練帶(천수쌍련대) : 하늘은 두 가닥 폭포를 드리우고
山出九松亭(산출구송정) : 산은 구송의 정자를 내놓았구나.
飄忽飛仙駕(표홀비선가) : 신속함은 하늘 나는 신선의 수레 같고
平鋪演戲庭(평포연희정) : 널리 퍼지면 연극 마당 같구나.
急聲愁變怪(급성수변괴) : 급한 소리는 변괴인가가 걱정되고
餘力見調停(여력견조정) : 남은 힘은 평온해짐을 보겠구나.
灑落風林氣(쇄락풍림기) : 시원하게 떨어지네, 시원한 바람 숲의 기운이여
渾令宿醉醒(혼령숙취성) : 숙취에서 완전히 깨어나게 하는구나.

 

 

淸平寺觀瀑1(청평사관폭1)-丁若鏞(정약용)
청평사에서 폭포(경운대 폭포)를 구경하다-丁若鏞(정약용)

百變渟流勢(백변정류세) : 멎고 흐르는 형세 수없이 변하나
由來一道泉(유래일도천) : 그 유래는 오직 한 줄기 샘이라네.
走時誰迫汝(주시수박여) : 달아나듯 흐를 때는 누가 널 다그쳤는가.
留處忽蕭然(류처홀소연) : 머무른 곳은 문득 쓸쓸하구나.
怊悵花俱往(초창화구왕) : 꽃이 함께 따라가는 것은 서글퍼지고
雄豪石不遷(웅호석불천) : 호걸답게도 돌은 조금도 옮겨가지 않는구나.
須知出山日(수지출산일) : 알겠노라, 물이 산을 나가는 날에는
浩淼作平川(호묘작평천) : 아득히 평평한 냇물을 이루겠구나.

 

 

昭陽亭懷古(소양정회고)-丁若鏞(정약용)
소양정에서 옛일을 회상하다-丁若鏞(정약용)

漁子尋源入洞天(어자심원입동천) : 어부가 무릉도원 찾아가듯 고을로 들어가니
朱樓飛出幔亭前(주루비출만정전) : 화려한 누각이 나는 듯이 수레 앞에 나타나네.
弓劉割據渾無跡(궁유할거혼무적) : 궁씨 유씨 나누어 차지했으나 그 자취가 전혀 없고
韓貊交爭竟可憐(한맥교쟁경가련) : 한과 맥이 서로 다투었으나 끝내 가련할 뿐이네.
牛首古田春草遠(우수고전춘초원) : 우수의 옛 땅에는 봄풀이 아득하고
麟蹄流水落花姸(인제유수낙화연) : 인제의 흐르는 물엔 떨어진 꽃이 고와라
紗籠袖拂嗟何補(사농수불차하보) : 아, 깁으로 싸고 소매로 떠는 것이 무슨 보탬이 되리오.
汀柳斜陽獨解船(정유사양독해선) : 석양에 강가의 버드나무에서 홀로 닻줄 푼다.

 

 

牛首州和成都府(우수주화성도부)-丁若鏞(정약용)
우수주에서 두보의 <성도부>시에 화답하다-丁若鏞(정약용)

命僕理歸楫(명복리귀즙) : 하인 시켜 돌아갈 배 다스리니
水風吹衣裳(수풍취의상) : 강바람이 옷에 불어오는구나.
暮宿牛首村(모숙우수촌) : 저물어 우수촌에서 자고
顧瞻詳四方(고첨상사방) : 자세히 사방을 두루 살펴보노라.
嗟玆樂浪城(차자락랑성) : 아, 이 낙랑성이여
冒名云貊鄕(모명운맥향) : 맥향이라는 이름이 얻었지만
木皮不能寸(목피불능촌) : 나무껍질은 한 치 크기로 자라지도 못하고
地暄發生早(지훤발생조) : 땅이 따뜻하여 초목이 빨리 자라
首夏葉已蒼(수하엽이창) : 초여름이면 나뭇잎이 이미 푸르네.
鳲鳩樹樹喧(시구수수훤) : 뻐꾸기는 나무마다 울어대고
黃鳥弄柔簧(황조농유황) : 꾀꼬리는 유연한 가락을 울리는구나.
南韓昔巡撫(남한석순무) : 신라왕이 엣 적에 순무하고부터
漢使川無梁(한사천무량) : 한 나라 사신의 발길이 끊기었도다.
勒石久埋沒(륵석구매몰) : 비석마저 오래도록 묻혀 버려서
小水梁若濊(소수량약예) : 작은 물의 교량이나 예맥의 일은
其名本無光(기명본무광) : 그 이름이 본래 드러나지 않았다네.
國史有誰讀(국사유수독) : 우리나라 역사가 있어도 누가 읽을 사람이 있을까.
登覽深悲傷(등람심비상) : 올라 보니 마음이 매우 슬퍼지는구나.

 

 

幾落閣和石櫃閣(기락각화석궤각)-丁若鏞(정약용)
기락각에서 두보의 <석궤각>시에 화답하다-丁若鏞(정약용)

絶峽破積陰(절협파적음) : 깊은 골짝에 쌓인 그늘 헤쳐보니
晨霞照江赤(신하조강적) : 새벽노을 강물을 붉게 비추네.
高臨不測淵(고임불측연) :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못 아래로 보고
仰蒙將落石(앙몽장락석) : 올려보니 돌은 떨어질 듯하네.
名都此北門(명도차북문) : 이곳이 명도의 북쪽 문이라
嚴扃鎖鐵壁(엄경쇄철벽) : 철벽으로 엄격하게 닫아 놓았네.
輕舟漫自棄(경주만자기) : 가벼운 배는 멋대로 버려 두고
躡屩隨山客(섭교수산객) : 짚신을 신고서 산의 나그네를 따른다네.
魄慄不敢前(백율불감전) : 혼이 떨려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新泥印虎跡(신니인호적) : 새로운 범 발자국이 진흙에 찍혀있네.
水石本閒事(수석본한사) : 자연경치 구경은 원래 한가한 일인데
顧爲誰所迫(고위수소박) : 생각해보건대, 그 누구에게 다그침을 받았던가.
性好那可節(성호나가절) : 내 맘에 좋으니 어찌 절제하리오.
糜麈悅林澤(미주열림택) : 사슴은 본디 숲과 못을 좋아한다네.
賢哉李自玄(현재이자현) : 훌륭하도다, 이자현은
深山自此適(심산자차적) : 깊은 산에서 스스로 이렇게 유유자적하였구려.

 

 

馬跡山和鹿頭山(마적산화록두산)-(정약용)
마적산에서 두보의 <녹두산>시에 화답하다-(정약용)

暮投馬跡山(모투마적산) : 날 저물어 마적산에 투숙하여
酒醒喉更渴(주성후경갈) : 술 깨자 다시 목이 마르도다.
園亭迓風涼(원정아풍량) : 동산의 정자에서 바람을 맞으니 시원하니
卽此已披豁(즉차이피활) : 여기는 바로 확 트인 곳이구나.
四隣競勞問(사린경노문) : 사방에서 서로 와서 위문하는데
少長禮弗越(소장예불월) : 노소가 다 예를 정중히 하는구나.
長松蔭崇阿(장송음숭아) : 낙락장송은 높은 언덕 그늘지우고
嘉穀連平闊(가곡연평활) : 좋은 곡식은 넓은 들에 가득하여라.
緬懷司馬徽(면회사마휘) : 멀리 사마휘를 생각하니
水鑑淸映發(수감청영발) : 거울 같은 물에서 맑은 빛이 발하는구나
博學復精硏(박학복정연) : 널리 배우고, 정밀히 연구하여
疑殆鮮所闕(의태선소궐) : 의심스럽고 위태한 것 빼먹지 않았도다.
踽踽宇縣內(우우우현내) : 나는 천하에 외로운 처지로
獨成支離兀(독성지리올) : 혼자서 꼽추와 다리병신 겸했는데
履玆生長村(이자생장촌) : 생장하던 이 마을에 다시 돌아와 보니
憶念柏下骨(억염백하골) : 그 옛날 백하골이 생각나는구나.
惜無臥龍冠(석무와룡관) : 아수운 것은 오룡관 없어
隱此乳虎窟(은차유호굴) : 이 무서운 곳에 숨은 것이로구나.
大器多晩成(대기다만성) : 큰 인물은 흔히 늦게 이뤄지나니
賢聖罕早達(현성한조달) : 현인과 성인들은 일찍 이루어진 이가 드물었으니
魯叟恨苗秀(노수한묘수) : 노수는 싹트는 것을 한하였고
五十希延活(오십희연활) : 오십 살까지 살기를 희망했다네.
遺經尙自隨(유경상자수) : 우경은 오히려 스스로 따라서
每照空樑月(매조공량월) : 매번 빈 들보의 달에 비추어본다.

 

 

昭陽渡和水廻渡(소양도화수회도)-丁若鏞(정약용)
소양도에서 두보의<수회도>시에 화답하다-丁若鏞(정약용)

牛馬立渡頭(우마립도두) : 소와 말들은 나룻가에 서 있고
沙水復平安(사수복평안) : 백사장 흐르는 물은 평온하구나.
氣色近都邑(기색근도읍) : 풍경이 점점 도읍에 가까워지니
曠莽無險難(광망무험난) : 넓게 트이어 험난한 곳은 없도다.
江繞朱樓鬯(강요주루창) : 강이 둘러있어 붉은 누각 훤하고
山遠平蕪寬(산원평무관) : 산이 멀어 편평한 들판 넓도다.
便娟有柔態(편연유유태) : 부드러운 자태가 있어 예쁘고.
麤惡羞狂瀾(추오수광란) : 추악하여 광포한 파도에 부끄럽구나.
土性利稻棉(토성이도면) : 흙질은 벼와 목화에 알맞아
終古無饑寒(종고무기한) : 예부터 의식은 굶주림이 없었도다.
仙源抵雪嶽(선원저설악) : 이 물 근원이 설악산에 이르렀다가
到此九折盤(도차구절반) : 여기까지 아홉 번을 굽어 돈다.
吾聞洗蔘水(오문세삼수) : 내가 들으니 산삼을 씻은 물은
不令津液乾(불령진액건) : 나루의 물이 마르지 않게 하는구나.
寤寐五色泉(오매오색천) : 자나깨나 오색천의 물을
何由得一餐(하유득일찬) : 어떻게 해서라도 한번 얻고 싶어라

 

 

新淵渡和桔柏渡(신연도화길백도)-丁若鏞(정약용)
신연도에서 두보의 <길백도>시에 화답하다-丁若鏞(정약용)

愛此仙源水(애차선원수) : 이 선원의 물은 사랑스러워
本出長安橋(본출장안교) : 본래 장안사 장안교에서 나온 것이데.
夙昔名山願(숙석명산원) : 평소 명산을 구경하고 싶은 소원
到老竟蕭蕭(도노경소소) : 늘그막에도 끝내 이루지 못했네.
今行可窮覽(금행가궁람) : 이번 길에야 다 구경하게 되니
衣帶遠飄颻(의대원표요) : 허리띠가 멀리 바람에 나부끼네.
吾聞狌首峽(오문성수협) : 내가 성수협의 물소리를 들어보니
灘瀨益宣驕(탄뢰익선교) : 여울이 더욱 위세를 부린다네.
悵然中改路(창연중개로) : 초연하게 중도에 길을 바꾸어
後期不可要(후기불가요) : 후일의 기약은 바랄 수도 없네.
妻孥絆閒身(처노반한신) : 처자식이 한가한 몸 구속하니
愧赧顔發潮(괴난안발조) :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붉어지네.
遙遙桔柏渡(요요길백도) : 머고 먼 저 길백 나루
詩句兩寂寥(시구양적요) : 두보의 시구 다 적적하기만 하네
空羨賈客船(공선가객선) : 공연히 부러운 건 그 장삿배에
蜀薑交海椒(촉강교해초) : 촉강과 해초가 섞여 있는 것이라네.

 

 

石門和劍門(석문화검문)-丁若鏞(정약용)
석문에서 두보의 <검문>시에 화답하다-丁若鏞(정약용)

二儀忽昭廓(이의홀소곽) : 하늘과 땅이 갑자기 환해지고
野色噫何壯(야색희하장) : 아! 들 빛이 어이 그리 웅장한가.
悚息俄縱弛(송식아종이) : 두려워 숨죽이다 바로 마음 풀리어
散朗疑所向(산랑의소향) : 너무도 산만하고 밝아 향할 곳을 모르겠네.
蕞爾曾亦國(최이증역국) : 작지마는 또한 나라였기에
天作有殊狀(천작유수상) : 하늘이 지은 것이 특별함이 있네.
石門復奇譎(석문복기휼) : 돌문은 또 기괴하기도 하여
漁人常夜傍(어인상야방) : 어부가 밤이면 늘 그 곁에 있다네.
緬思興廢跡(면사흥폐적) : 아득히 흥망성쇠의 자취를 생각하니
千載動哀愴(천재동애창) : 천 년 후에 비애를 느끼네.
金湯旣失守(금탕기실수) : 금성탕지의 방어를 잃음으로써
土人恣誅放(토인자주방) : 그 지역 사람들이 제멋대로 죽이고 내쳤네.
韓漢競奕棋(한한경혁기) : 조선과 중국이 서로 힘을 겨루어
蚤莫紛得喪(조막분득상) : 불일간에 득실이 분분하였네.
廉鑡逞智詐(염착령지사) : 염치라는 이는 간사한 지혜를 부렸지만
樂浪竟不王(락랑경불왕) : 낙랑에서 끝내 왕 노릇을 못 했네.
策書雖未具(책서수미구) : 대책서는 비록 갖춰 있지 않지만
英俊莫相讓(영준막상양) : 영준함은 서로 내리지 양보하지 않았네.
微滅隨流水(미멸수류수) : 흐르는 물 따라 모두 쇠멸하고
寂黙餘靑嶂(적묵여청장) : 푸른 산만이 묵묵히 서 있다네.
哀哉夷貊事(애재이맥사) : 슬프도다, 이맥의 일이여
俛仰一惆悵(면앙일추창) : 굽어보고 쳐다보며 한번 탄식한다네.

 

 

懸燈峽和龍門閣(현등협화용문각)-丁若鏞(정약용)
현등협에서 두보의 <용문각>시에 화답하다-丁若鏞(정약용)

懸燈古蘭山(현등고난산) : 현등산은 옛 난산이라
絶壁戴焦土(절벽대초토) : 절벽이 탄 흙을 이고 있네.
兩厓欲相撞(양애욕상당) : 양쪽 절벽이 서로 닿을 듯하여
束峽昏萬古(속협혼만고) : 좁은 골짜기 만고에 어둡다네.
直愁礙人肩(직수애인견) : 어깨 부딪칠까 걱정되고
江流通一縷(강유통일루) : 강물은 한 실오라기처럼 통하네.
高葉搖天風(고엽요천풍) : 높은 나뭇잎은 하늘에서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崩湍掀地柱(붕단흔지주) : 거센 여울물은 땅 기둥을 흔드네.
攢峯蝕太陽(찬봉식태양) : 뭇 산봉우리는 태양을 삼키고
淸晝騰霾雨(청주등매우) : 맑은 낮에도 흙비가 날리네.
決知陷鬼門(결지함귀문) : 도깨비 구덕에 빠질 것만 같은데
歸路將焉取(귀로장언취) : 돌아갈 길을 장차 어디서 찾을지
山脊稍彎環(산척초만환) : 산등성이는 약간 활처럼 동그랗고
水勢開夾庾(수세개협유) : 물 형세는 협유를 열어 논 듯하네.
漸聞鷄犬聲(점문계견성) : 점차 닭 울고 개 짖는 소리 들리고
籬落遠可數(리락원가수) : 멀리 인가의 울타리를 헤아릴 수도 있네

 

 

三嶽和五盤(삼악화오반)-丁若鏞(정약용)
삼악에서 두보의 오반시에 화답하다-丁若鏞(정약용)

崔崔席破嶺(최최석파령) : 높고 높은 큰 저 석파령은
是蓋三嶽餘(시개삼악여) : 대체로 삼악산 줄기라네.
雖無娟妙峯(수무연묘봉) : 비록 아름답고 묘한 봉우리는 없지만
捍禦頗不疎(한어파불소) : 국경의 방비는 조금도 소홀하지 않네.
王調與崔理(왕조여최리) : 왕조라는 사람과 최리라는 사람이
浪作釜中魚(랑작부중어) : 공연히 솥 안의 고기가 되었네.
漢吏空越海(한리공월해) : 한나라 관리가 고연히 바다 건너왔으니
鬱鬱安能居(울울안능거) : 답답하여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漠漠淸流關(막막청류관) : 아득하다, 저 청류관
草木嫩初舒(초목눈초서) : 초목의 새싹이 막 돋아나네.
亭郵杳相望(정우묘상망) : 역참은 아득히 바라보이는데
榛莽誰能除(진망수능제) : 우거진 잡초를 누가 제거할 것인가.
古城餘斷堞(고성여단첩) : 옛 성은 끊어진 가퀴만 남아있고
破寺寄空墟(파사기공허) : 부서진 절은 빈터에 붙어있네.
因知人世間(인지인세간) : 이로서 알겠네, 세상살이가
處處委蘧廬(처처위거려) : 곳곳마다 여관에 붙여짐을 알겠네

 

 

超然閣和飛仙閣(초연각화비선각)-丁若鏞(정약용)
초연각에서 두보의 비선각시에 화답하다-丁若鏞(정약용)

側岸吹長風(측안취장풍) : 언덕 곁으로 긴 바람 불어오니
麥芒偃衆毫(맥망언중호) : 보리 까끄라기 여러 털 드러누웠네.
人虎相與居(인호상여거) : 사람과 범이 서로 같이 살아
籬柵締縛牢(리책체박뢰) : 울타리에 견고하게 얽어매어있네.
飛棧接崩磴(비잔접붕등) : 높은 잔도는 무너진 비탈길을 있고
黝潭蹴素濤(유담축소도) : 푸른 못은 하얀 파도를 튕겨 내는데
不見牛馬行(불견우마행) : 마소가 다니는 것 보이지 않고
唯聞麏麚號(유문균가호) : 노루들의 우는 소리만 들리네.
關鎖此重疊(관쇄차중첩) : 변방의 산이 이렇게 단단히 막혀
貊國天上高(맥국천상고) : 예맥 나라가 하늘 위에 높았네.
彭吳攀帝命(팽오반제명) : 팽오는 황제의 명을 받들고 와서
鑿通何太勞(착통하태노) : 길 뚫느라 어이 그리 수고했던가.
危峭下礌石(위초하뢰석) : 가파른 산에서 돌덩이가 떨어진다면
性命將焉逃(성명장언도) : 이 목숨을 어떻게 보전하리오.
罾船泛中流(증선범중류) : 고기잡이배는 중류에 떠 있고
信宿羨汝曹(신숙선여조) : 밤을 묵은 너희들이 정말 부럽다네.

 

 

虎吼阪和木皮嶺(호후판화목피령)-丁若鏞(정약용)
호후판에서 두보의 목피령시에 화답하다-丁若鏞(정약용)

開頭屈雲北(개두굴운북) : 첫머리 굴운의 북쪽은
峽深無成村(협심무성촌) : 골짝이 깊어 마을이 없네.
惡灘號惶恐(오탄호황공) : 황공탄이라 불리는 사나운 여울이
哮怒當山門(효노당산문) : 산 어귀에 당하여 포효하며 분노하네.
玆是瀑布類(자시폭포류) : 이것은 곧 폭포의 종류이니
不可湍瀨論(불가단뢰론) : 여울이라고 할 수 없네.
靜天生疾飆(정천생질표) : 고요한 하늘에 빠른 바람 일어나
瀟瀟忘春暄(소소망춘훤) : 소슬하여 따스한 봄을 잊게 하네.
目眩心腎駭(목현심신해) : 눈이 어지럽고 심장이 놀래어
山嶽愁同奔(산악수동분) : 산악도 같이 치달을까 걱정스러워.
神威震木道(신위진목도) : 신기한 위엄은 나뭇길을 진동시키고
聲聞特最尊(성문특최존) : 그 이름 그 명성은 특별히 가장 높네.
艱崎度絶險(간기도절험) : 어렵게 험한 곳을 지나서
復得整乾坤(복득정건곤) : 다시 하늘과 땅이 바로잡히니
林木色昭明(임목색소명) : 숲의 나무 빛은 밝고
波濤霽狂昏(파도제광혼) : 파도의 사나움도 잔잔하네.
囊也咎作舟(낭야구작주) : 지난 날 배 만든 일을 허물하노니
直欲誶軒轅(직욕수헌원) : 곧장 황제헌원씨를 책망하고 싶네.
喘息思小憩(천식사소게) : 숨이 하도 가빠 조금 쉬려고
繫纜依山根(계람의산근) : 닻줄 매고 산기슭 의지해 있네.
黃黧赴綠陰(황려부록음) : 누런 꾀꼬리 녹음으로 날아들어
蔥然時景繁(총연시경번) : 푸르구나, 계절 풍경 무성도 하네
新晴水更肥(신청수갱비) : 날이 막 개자 물은 다시 불어나고
草沒沙無㾗(초몰사무량) : 풀이 덮여 모래톱은 흔적도 없네.
虎吼差可怕(호후차가파) : 호후차가 무서운 곳이란 말
船中聞者存(선중문자존) : 일찍이 배 안에서 들은 사람 있네.
命酒嚼乾肉(명주작건육) : 술 불러 마른 고기로 안주하면서
且以收飛魂(차이수비혼) : 몹시 놀란 넋을 수습한다네.

 

 

早發南一原和同谷縣(조발남일원화동곡현)-丁若鏞(정약용)
일찍 남일원을 출발하며 두보의 동곡현시에 화답하다-丁若鏞(정약용)

不風且曳纜(불풍차예람) : 바람 안 불면 장차 닻줄 끌고
得風斯掛席(득풍사괘석) : 바람이 불면 곧 자리에 돛을 걸어라.
每懷煙波叟(每懷煙波叟) : 연파의 늙은이를 생각할 때마다
苕霅泛其宅(초삽범기택) : 초계와 삽계에 그 집을 띄웠다.
東過水石村(동과수석촌) : 동쪽으로 수석 고을을 지나니
尙想檗溪僻(상상벽계벽) : 오히려 벽계의 후미진 곳이 생각난다.
哲人重神養(철인중신양) : 철인은 정신수양을 귀중히 여겨
恥爲形所役(치위형소역) : 몸을 이기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네.
國境縱褊小(국경종편소) : 우리 국토가 비록 좁아도
竟逸多可適(경일다가적) : 뜻 흥겨우면 갈 곳은 많다네.
雪嶺舒經枝(설령서경지) : 눈 내린 고개에는 지난 해 가지에 잎 피리니
蓄藏奇泉石(축장기천석) : 기괴한 돌과 샘을 감추고 있어서라네.
戀結似焦渴(연결사초갈) : 그리운 마음에 목이 타
志欲沾一滴(지욕첨일적) : 마음은 한 방울 물이라도 마시고 싶네.
阨窮無所得(액궁무소득) : 운수가 궁색하여 얻은 것은 없으나
尙能外欣慼(상능외흔척) : 기쁨과 슬픔은 떠날 수가 있건만
惜此軀殼鈍(석차구각둔) : 애석한 건 이 몸뚱이가 정말 둔하여
無由徧行跡(무유편행적) : 사방을 두루 다닐 행적 없다네.
勉爲水中鳧(면위수중부) : 힘써 물에 뜬 오리가 되어서
仰冀雲間翮(앙기운간핵) : 구름으로 날기를 바랄뿐이네

 

 

獨立(독립)-丁若鏞(정약용)
홀로 서서-丁若鏞(정약용)

秋山衰颯暮湍哀(추산쇠삽모단애) : 가을 산은 쓸쓸하고 저녁 여울 물소리 애절하고
獨立江亭意味裁(독립강정의미재) : 강가 정자에 홀로 서니 산란한 마음 어쩔 수 없네
風鴈陣欹還自整(풍안진의환자정) : 바람에 나는 기러기 행렬 기울었다 다시 갖춰지고
霜花莟破未輕開(상화함파미경개) : 국화송이는 터지고도 선뜻 피지 못하네
空懷竹杖游僧院(공회죽장유승원) : 공연히 죽장 짚고 절간을 유람하려가
徑欲瓜皮汎釣臺(경욕과피범조대) : 작은 배를 낚싯대에 띄어 보려네.
百事思量身已老(백사사량신이노) :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몸은 이미 늙었고
短檠依舊照書堆(단경의구조서퇴) : 짧은 등잔불만 옛날처럼 책 더미를 비추네.

 

 

雲月(운월)-丁若鏞(정약용)
구름과 달-丁若鏞(정약용)

堆堆黑絮勢豪雄(퇴퇴흑서세호웅) : 쌓이고 쌓인 검은 솜 같은 구름 기세 웅장하여
孤月無援泛太空(고월무원범태공) : 외로운 달은 도우는 이 없어 홀로 큰 공중에 떴있네
以逸待勞應善計(이일대노응선계) : 편안함으로서 수고로음을 대하는 것이 좋은 계책이거늘
怪他奔入亂雲中(괴타분입난운중) : 어지러운 구름 속으로 달려드는 저 달이 괴이하네.
月一雲多未可爭(월일운다미가쟁) : 달은 하나인데 구름은 많아 싸울 수가 없네.
吐呑離合任雲情(토탄리합임운정) : 뱉고 삼키고 떠나고 합함을 구름의 마음에 맡겼는데
頑雲度了無餘翳(완운도료무여예) : 이제 완악한 구름 지나가고 가린 것 없어져
領得靑天到曉明(영득청천도효명) : 푸른 하늘 차지하자 날이 이미 밝아졌구나

 

 

抵寺(저사)-丁若鏞(정약용)
절에 이르러-丁若鏞(정약용)

澗口薄薄寒照沒(간구박박한조몰) : 개울 어귀 가물고 차가운 해 넘어가고
山風蕭蕭吹鬚髮(산풍소소취수발) : 산바람 소슬한데 바람은 내 수염에 불어온다.
靑楓丹欇遞組絢(청풍란섭체조현) : 푸른 단풍과 붉은 까치콩 서로 꼬여있고
壽藤怪蔓恣詰屈(수등괴만자힐굴) : 괴이한 다래에 덩굴은 구불구불 마음대로구나.
暗水琮琤石氣冷(암수종쟁석기냉) : 맑은 물 사이로 졸졸 흘러 돌은 차갑고
塵脾俗腸頗自醒(진비속장파자성) : 먼지 끼고 속된 내 속이 시원하구나.
浮圖泐破蜂作窠(부도륵파봉작과) : 불탑은 무너져 벌들이 집을 짓고
偶人老朽菌生頂(우인노후균생정) : 다 썩은 허수아비 이마에 버섯이 돋고
入門蕪廢見香臺(입문무폐견향대) : 문안에 들어서니 사방은 황폐하고 향대만 보이네.
足令信者興愴哀(족영신자흥창애) : 부처님 믿는 자는 누구나 슬픈 생각 일어나네.
學士新銘有顔色(학사신명유안색) : 학사의 새 비명에 안색이 도니
扶藜讀碑重徘徊(부려독비중배회) : 청려 지팡이 짚고 비문 읽으며 이리저리 배회하네.

 

 

穉子寄栗至(치자기률지)-丁若鏞(정약용)
자식이 밤을 부쳐오다-丁若鏞(정약용)

頗勝淵明子(파승연명자) : 도연명 자식보다 조금은 낫도다
能將栗寄翁(능장률기옹) : 아비에게 밤 부쳐왔으니
一囊分瑣細(일낭분쇄세) : 한 주머니 하찮은 것이지만
千里慰飢窮(천리위기궁) : 천리 밖 배고픔을 위로해서 겠지
眷係憐心曲(권계련심곡) : 아비 생각 잊지 않은 그 마음이 예쁘고
封緘憶手功(봉함억수공) : 봉할 때의 그 손놀림이 아른거리네
欲嘗還不樂(욕상환불악) : 먹으려 하니 되레 마음에 걸려
惆悵視長空(추창시장공) : 물끄러미 먼 하늘을 바라다보네.

 

 

有歎(유탄)-丁若鏞(정약용)
한탄스러워-丁若鏞(정약용)

去國張平子(거국장평자) : 나라 떠난 평자 장형이 있었고
思家杜少陵(사가두소릉) : 집 생각하던 두소릉도 있었다네.
無緣貽玉案(무연이옥안) : 옥소반을 줄 사람 없으니
何處置淸氷(하처치청빙) : 어디에 이 맑은 얼음을 놓아둘까.
澗樹仍同色(간수잉동색) : 시냇가 나무들은 모두 같은 색
山雲自數層(산운자수층) : 산에 구름도 층층이 여러 층이네.
空令狐鼠輩(공령호서배) : 공연히 여우와 쥐 같은 무리들
憑恃自欺凌(빙시자기릉) : 믿고서 스스로 날뛰게 만든다네.

 

 

薄醉(박취)-丁若鏞(정약용)
조금 취하여-丁若鏞(정약용)

薄醉排炎瘴(박취배염장) : 얼근하여 무더운 기운은 모르겠으나
長風憶水亭(장풍억수정) : 바람 잘 닿는 물가 정자가 그리워지네
性豪憐鷙鳥(성호련지조) : 성품 호방하여 매와 수리가 가엾어
身繫羨浮萍(신계선부평) : 매여있는 몸 부평초 처지가 부러워라
病習張機論(병습장기론) : 병들었기에 장기의 의서 내용을 익히고
飢抛陸羽經(기포육우경) : 배가 고파 육우의 줄기는 버렸었네.
鄕愁與國計(향수여국계) : 고향 생각과 나라 걱정에
朝暮視滄溟(조모시창명) : 아침 저녁 넓고 푸른 바다만 바라본다네.

 

 

遣興(견흥)-丁若鏞(정약용)
기분풀이-丁若鏞(정약용)

蠻觸紛紛各一偏(만촉분분각일편) : 함부로 부딪히며 분분하여 제각기 옳다하니
客窓深念淚汪然(객창심념루왕연) : 객창에 누워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솟는구나.
山河擁寒三千里(산하옹한삼천리) : 산과 물은 고작해야 삼천 리가 한정인데
風雨交爭二百年(풍우교쟁이백년) : 비바람 일으키며 서로 이백 년을 싸우웠구나.
無限英雄悲失路(무한영웅비실로) : 수많은 영웅호걸 길을 잃고 슬퍼했고
幾時兄弟耻爭田(기시형제치쟁전) : 어느 때나 형제들이 밭을 다투는 것 부꺼럽게 여길까
若將萬斛銀潢洗(약장만곡은황세) : 저 은하수 퍼내려서 말끔히 씻어버리면
瑞日舒光照八埏(서일서광조팔연) : 밝은 햇살 밝은 빛이 온누리에 비추리라

 

 

田園(전원)-丁若鏞(정약용)
전원에서-丁若鏞(정약용)

田園偕隱結心期(전원해은결심기) : 전원에서 함께 숨어살자 마음을 굳혔더니
不意人生有別離(부의인생유별리) : 생각지도 않게 인생에는 이별이 있구나
春去空懷松葉酒(춘거공회송엽주) : 봄이 가니 공연히 송엽주가 생각나고
月明誰聽木蘭詞(월명수청목난사) : 달은 밝은데 누가 목란사를 듣고있는가
孤鶯坐樹應須友(고앵좌수응수우) : 외로운 꾀꼬리는 나무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고
雙燕營巢好養兒(쌍연영소호양아) : 제비는 쌍쌍 집을 지어 새끼를 잘 기르리라.
莫把閒愁催白髮(막파한수최백발) : 쓸데없는 수심으로 백발을 재촉 말고
時將手札慰相思(시장수찰위상사) : 수시로 서찰 써서 그리움을 달래자.

 

 

遣悶(견민)-丁若鏞(정약용)
시름을 달래다-丁若鏞(정약용)

輕陰閣雨日曈曨(경음각우일동롱) : 가벼운 구름 살짝 끼었다 뒤이어 해가 돋아
小圃穿籬接水筒(소포천리접수통) : 울을 뚫고 대통에 물을 끌어 채마밭에 대었다네
萵葉綠時飛鷰母(와엽록시비연모) : 상추잎이 푸르를 때 제비는 날아들고
芥臺黃處睡鷄翁(개대황처수계옹) : 겨자 새움 누른 곳에서 장닭은 졸고 있네
野氓食土寧知樂(야맹식토녕지락) : 들판에서 흙을 먹는 농민이 어찌 낙을 알거나
君子畸人莫恨窮(군자기인막한궁) : 남다른 군자라면 가난함을 한하지 말아야지
山裏鋤園作家戒(산리서원작가계) : 산 속에서 밭매도록 집안 단속 그렇게 하고
不敎辛苦一經通(불교신고일경통) : 고통스럽게 경전 알려고 하지 않게 해야겠네

 

 

愁(수)-丁若鏞(정약용)
근심-丁若鏞(정약용)

山葛靑靑棗葉生(산갈청청조엽생) : 산에는 칡덩굴 푸르르고 대추잎 나고
長鬐城外卽裨瀛(장기성외즉비영) : 장기성 바깥은 바로 작은 바다라네
愁將石壓猶還起(수장석압유환기) : 수심은 바위로 눌러놓으려도 다시 일고
夢似煙迷每不明(몽사연미매불명) : 꿈길은 연기처럼 언제나 희미하기만 하네
晩食强加非口悅(만식강가비구열) : 늦게 밥을 더 먹는 것 밥맛 있어 아니고
春衣若到可身輕(춘의약도가신경) : 봄옷이 오면 몸이 한결 가벼울 거야
極知想念都無賴(극지상념도무뢰) : 생각 생각 모두가 부질없는 생각이로세
良苦皇天賦七情(량고황천부칠정) : 정말로 괴로운 것은 하늘이 내게다 칠정을 준것이네

 

 

煙(연)-丁若鏞(정약용)
담배-丁若鏞(정약용)

陸羽茶經好(육우다경호) : 육우가 남긴 다경도 좋고
劉伶酒頌奇(유령주송기) : 유령의 주송도 특이하도다
淡婆今始出(담파금시출) : 담배가 지금 새로 나와서
遷客最相知(천객최상지) : 귀양살이하는 자에게 제일이네
細吸涵芳烈(세흡함방열) : 가만히 빨아들이면 향기 물씬하고
微噴看裊絲(미분간뇨사) : 가늘게 내뿜으면 하늘하늘 실이 되네
旅眠常不穩(여면상불온) : 여관 잠자리가 늘 편치 못하여
春日更遲遲(춘일갱지지) : 봄날이 더욱 지루하기만 하네

 

 

鳥嶺(조령)-丁若鏞(정약용)
새재-丁若鏞(정약용)

吾觀陰雨備(오관음우비) : 내가 보기엔 사전의 대비책이
最於鳥嶺堅(최어조령견) : 무엇보다 새재 굳게 지카는 최선책이었네
重關鐵葉扉(중관철엽비) : 이중 관문에 철로 만든 문짝
樓櫓摩中天(루노마중천) : 치솟은 망루도 하늘에 닿을 듯 하고
天險旣難越(천험기난월) : 이 천험의 요새지는 넘기도 어렵다네.
人謀何獨偏(인모하독편) : 사람들의 생각이 어찌하여 홀로 치우쳤을까
若遂廢亭障(약수폐정장) : 요새가 만약 아예 없었던들
便可高枕眠(변가고침면) : 덩그렇게 베개 베고 잠잤을 수 있었겠지
荊榛暗風磴(형진암풍등) : 바람부는 어두운 돌비탈에 잡목 우거지니
誰與通人煙(수여통인연) : 누가 무슨 수로 안개 속에서 남과 통래할 것인가
攻守無常勢(공수무상세) : 공격과 수비는 상황 따라 달라야지
膠柱難調絃(교주난조현) : 교주고슬로는 줄 고르기 어려운법이라
秋風廓無翳(추풍곽무예) : 추풍령도 확 트여 막힘이 없어
八羊平如田(팔양평여전) : 팔양령도 평평하여 밭 같구나
隄防正在此(제방정재차) : 막아야 할 곳이 정작 여기인데
疏闊自昔賢(소활자석현) : 옛날부터 그리 엉성하게 터놓다니
亡羊莫補牢(망양막보뢰) : 염소 잃고 우리 고치지 말고
得魚休忘筌(득어휴망전) : 고기 잡았어도 통발은 잊지 말아야지
暫憩松根石(잠게송근석) : 소나무 뿌리 바위에서 잠시 쉬면서
長嘯望山巓(장소망산전) : 산꼭대기 바라보며 읊조려 보노라.

 

 

石隅別(석우별)-丁若鏞(정약용)
석우촌에서 이별-丁若鏞(정약용)

蕭颯石隅村(소삽석우촌) : 쓸쓸하다, 석우촌
前作三叉岐(전작삼차기) : 먼저 가야 할 길 세 갈래로 갈리었네
二馬鳴相戲(이마명상희) : 두 마리 말 장난하며 서로 소리며
似不知所之(사불지소지) :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느가 보다
一馬且南征(일마차남정) : 한 마리는 남으로 갈 말이고
一馬將東馳(일마장동치) : 한 마리는 동으로 달려야 할 말이라네
諸父皓須髮(제부호수발) : 삼촌들께선 머리와 수염 하얗고
大兄涕交頤(대형체교이) : 큰 형님은 눈물이 턱에 흘러내린다
壯者且相待(장자차상대) : 젊은이들이야 장래에 다시 만날 수도 있겠으나
耆耋誰得知(기질수득지) : 노인들 일이야 누가 알 것인가
斯須復斯須(사수복사수) : 잠깐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白日已西敧(백일이서기) : 해가 이미 서산에 기울었네
行矣勿復顧(행의물복고) : 가자꾸나, 다시는 돌아보지 말고
黽勉留前期(민면유전기) : 애써 다시 만날 기약을 한다네

 

 

詠木氷(영목빙)-丁若鏞 (정약용)
나무의 얼을꽃을 읊다-丁若鏞 (정약용)

江邊千萬樹(강변천만수) : 강가의 천만 그루 나무
一夜盡成翁(일야진성옹) : 하룻밤 사이 모두 늙은이로 변했네
投合緣同氣(투합연동기) : 기운이 투합하여 저리 어울려
雕鎪賴鉅工(조수뢰거공) : 조각된 모습 대단한 장인 솜씨같네.
輕搖風絮白(경요풍서백) : 솜같이 하얗게 바람에 가벼이 흔들리고
寒透日華紅(한투일화홍) : 차가운 날씨에 햇빛 붉게 투시되어 보이네
退老身何補(퇴로신하보) : 늙어 물러난 몸 어대에 보탬될가
深居樂歲豐(심거악세풍) : 깊이 들어앉아 풍년이나 즐겨보세

 

 

李廷年學官見訪(이정년학관견방)-丁若鏞 (정약용)
이정년 학관이 방문하다-丁若鏞 (정약용)

敦厚聞先訓(돈후문선훈) : 돈후한 성품을 선생님 통해 들었더니
經過見素心(경과견소심) : 겪어보니 그의 마음 알겠네
語從詩律細(어종시율세) : 그의 말은 시와 같이 자상하고
貌得典刑深(모득전형심) : 모습은 법도가 몸에 깊이 베어있네
小醉庭花影(소취정화영) : 뜰에 핀 꽃 그늘 아래서 잠시 취했다가
孤歸井柳陰(고귀정류음) : 우물가 버들 그늘로 혼자 돌아간다
騷人盡窮老(소인진궁노) : 시인묵객 모두가 궁하고 늙어
倚杖一沈吟(의장일침음) : 지팡이 짚고서 한 번 중얼거려 읊어보네

 

 

元 陵輓詞(元 릉만사)-丁若鏞(정약용)
영조 임금 만사-丁若鏞(정약용)

蠟炬連宮陌(납거연궁맥) : 횃불 궁중 길에 늘어서고
龍輴度御溝(용순도어구) : 임금님 상여 대궐 도랑을 건너간다.
山巒猶自立(산만유자립) : 산봉우리 혼자 서 있고
江漢不能流(강한불능류) : 강물도 목이 메어 흐르지도 못하는구나.
德澤涵窮蔀(덕택함궁부) : 덕성과 은혜를 궁한 백성 흠뻑 끼치고
眞游屬寢丘(진유속침구) : 진정으로 휴식하려 능침으로 돌아가시네.
嗚呼信英主(오호신영주) : 아! 진실로 훌륭한 임금이셨네
謨烈照千秋(모열조천추) : 그 뛰어난 정책 천추에 빛나리라

 

 

陪家君還苕川(배가군환초천)-丁若鏞(정약용)
아버지를 모시고 소천으로 돌아오다-丁若鏞(정약용)

春風滿天地(춘풍만천지) : 봄바람 온 세상에 가득 하고
拍拍吹人衣(박박취인의) : 산들산들 옷깃에 불어오는구나.
自玆返鄕里(자자반향리) : 이로부터 고향 땅에 돌아가면
寧復有是非(령복유시비) : 그 어찌 시시비비 다시 있으리.
園田一二頃(원전일이경) : 우리집 남새밭 한두 이랑
土軟蔬果肥(토연소과비) : 토질 부드러워 채소 과일 탐스럽다
剓爒雖不備(이료수불비) : 찌고 구운 고기야 준비하지 못했지만
亦足充吾饑(역족충오기) : 또한 주린 창자 채울 만은 하다네.
勞心養鷄豚(노심양계돈) : 노력하여 닭 돼지 기르며 산다면
王政可無違(왕정가무위) : 왕도 정치 전혀 문제가 없으리라.
陶然樂天倫(도연악천륜) : 흐뭇하게 천륜을 즐기니
此事良所稀(차사양소희) : 이 일이야말로 정말 귀한 것이라네.

 

 

冬日領內赴京踰鳥嶺作(동일영내부경유조영작)-丁若鏞(정약용)
아내와 서울로 가던 중 조령을 넘으며-丁若鏞(정약용)

嶺路崎㠊苦不窮(영노기허고불궁) : 고갯길은 험하디 험하여 끝없이 이어지고
危橋側棧細相通(위교측잔세상통) : 높고 기울어진 절벽 다리를 조심조심 지나간다
長風馬立松聲裏(장풍마입송성이) : 거센 솔바람 소리에 말이 주춤거리고
盡日行人石氣中(진일행인석기중) : 종일토록 길가는 사람 바위 기운 속을 지난다.
幽澗結冰厓共白(유간결빙애공백) : 깊은 골짜기가 얼어 비탈과 함께 희고
老藤經雪葉猶紅(노등경설엽유홍) : 시들은 덩굴 지나간 눈발에 잎이 오히려 붉네.
到頭正出鷄林界(도두정출계림계) : 입구에 이러니 마침내 계림의 경계 벗어나
西望京華月似弓(서망경화월사궁) : 서쪽으로 서울 바라보니 달은 그믐달이구나.

 

 

到荷潭(도하담)-丁若鏞(정약용)
하담에 도착하여-丁若鏞(정약용)

南郡山川美(남군산천미) : 남녘 고을은 산천이 아름답고
東阡歲月移(동천세월이) : 동녘 밭은 세월이 변하였구나.
却將新婦至(각장신부지) : 문득 신부 데리고 고향에 오니
空惹里人悲(공야리인비) : 고연히 마을 사람 슬픔을 자아낸다.
松下來誰問(송하래수문) : 솔 밑에 찾아온 자 누군지 물어보고
莎邊坐共遲(사변좌공지) : 잔디 가에 한참 동안 함께 앉았다네.
飛飛點衣雪(비비점의설) : 날리는 눈송이는 옷에 떨어져
悽愴似庚寅(처창사경인) : 처량한 이내 마음은 어머니 돌아가신 경인 년과 같다네

 

 

舟橋行(주교행)-丁若鏞(정약용)
배다리의 노래-丁若鏞(정약용)

漢水何其廣(한수하기광) : 한강의 물은 넓고 넓어 끝이 없고
其深不可量(기심불가량) : 그 깊어서 잴 수도 없도다.
有時起駭波(유시기해파) : 이따금 거센 물결 일어나면은
中有蛟龍藏(중유교룡장) : 그 속에 교룡이 숨어 있다네.
千艘織如練(천소직여연) : 천 척의 배 베 짜듯 늘어섰으니
孰謂川無梁(숙위천무량) : 어느 뉘 다리 없는 강이라 하는가.
聖孝結舜慕(성효결순모) : 우리 임금 효성은 순임금 효성을 간직하시어
每歲覲隋岡(매세근수강) : 해마다 선친 묘소 참배하신다.
漢文馳峻坂(한문치준판) : 한 문제 험한 언덕 달리려 할 제
袁盎戒垂堂(원앙계수당) : 원앙이 수당으로 경계했노라.
恭知千乘主(공지천승주) : 사모하여 알겠노라, 제후국 군왕으론
不用一葦航(부용일위항) : 조각배 써서는 안 되는 걸.
綠浪迷天委(녹랑미천위) : 푸른 물결 하늘 끝 아스라하고
流波截地綱(류파절지강) : 흐르는 물은 땅줄기 갈라놓는구나.
旌旗絢光影(정기현광영) : 수많은 깃발의 현란한 그림자
搖蕩無定方(요탕무정방) : 일정한 방향 없이 흔들려 나부낀다..
願爲烏與鵲(원위오여작) : 원하노니, 까막까치 위하여
塡河俾爾康(전하비이강) : 강물을 메워 너희들로 하여금 편케 하기를.

 

 

七月三日寫景(칠월삼일사경)-丁若鏞(정약용)
칠월삼일 경치-丁若鏞(정약용)

龍氣吹腥過釣臺(용기취성과조대) : 용의 기운 같은 것이 비린내 풍기며 낚시터를 지나가고
紫筠簾戶黑成堆(자균렴호흑성퇴) : 자색 대발 주렴 밖에는 검은 구름 쌓이네.
二三點滴蛙先聒(이삼점적와선괄) : 두서너 방울 듣자 개구리가 먼저 떠들고
西北風兼犢亂回(서북풍겸독란회) : 곁들여 부는 서북풍에 송아지들 야단이로구나.
已看百谷噴飛溜(이간백곡분비유) : 골짝마다 뿜어 날리는 물방울은 보았지만
忽有孤雲曳斷雷(홀유고운예단뢰) : 갑자기 구름 하나가 천둥소리 끌고 오네.
薄晩溪橋虹彩歇(박만계교홍채헐) : 해질 녘 개울 다리에 무지개가 걷히더니
夕陽紅處數峯來(석양홍처수봉래) : 석양빛에 붉어진 봉우리가 눈앞에 닿아온다

 

 

踰秋風嶺(유추풍령)-丁若鏞(정약용)
추풍령을 넘으며-丁若鏞(정약용)

二白飛騰脊勢强(이백비등척세강) : 태백산 소백산 두산은 산세도 웅장하고
神龍於此地中藏(신용어차지중장) : 이곳의 신용은 땅속에 숨어있도다.
溪通北地趨黃澗(계통북지추황간) : 개울은 북쪽 땅으로 통하고 황간으로 달려
山出西枝繞赤裳(산출서지요적상) : 산은 서쪽 지류로 뻗어 적상산을 에워쌌도다.
每向高峯增塹壘(매향고봉증참루) : 높은 산봉우리 향해 우뚝우뚝 성벽은 쌓았지만
誰知平陸是關防(수지평육시관방) : 평평한 뭍이 요새란 걸 어느 누가 알겠는가.
淸州大野開千里(청주대야개천리) : 청주 고을 큰 들판은 천리나 열려있으니
一據秋風便搤吭(일거추풍편액항) : 한번 추풍령 빼앗기면 멱살을 잡히리라.

 

 

晩晴(만청)-丁若鏞(정약용)
늦게 개다-丁若鏞(정약용)

晩涼收雨氣(만량수우기) : 서늘한 늦바람에 비 걷히고
晴色入禪樓(청색입선루) : 갠 하늘 빛 절의 누대로 비춰든다.
映日峯黃嫩(영일봉황눈) : 빛나는 햇빛에 봉우리 누렇고
含風竹翠柔(함풍죽취유) : 바람 머금은 대나무 푸른 채 흔들린다.
心隨滄海遠(심수창해원) : 마음은 푸른 바다 따라 멀리 있는데
身與老僧謀(신여노승모) : 몸은 늙은 중과 함께 이야기한다.
怊悵玆山路(초창자산노) : 허전하고 서글픈 이 산길에서는
潮頭見小舟(조두견소주) : 밀려오는 물결에 작은 배만 보이는구나.

 

 

獨笑(독소)-丁若鏞(정약용)
혼자 웃다-丁若鏞(정약용)

有粟無人食(유속무인식) : 곡식 있어도 먹을 사람 없는데
多男必患飢(다남필환기) : 아들 많은 자는 배고파 걱정이구나.
達官必憃愚(달관필창우) : 높은 벼슬아친 꼭 바보이어야 한다면
才者無所施(재자무소시) : 재주 있는 자는 써먹을 곳이 없는 걸세
家室少完福(가실소완복) : 모든 복 다 갖춘 집안 적고
至道常陵遲(지도상릉지) : 최고의 길은 늘 쇠퇴하기 마련이어라
翁嗇子每蕩(옹색자매탕) : 늙은 아비 인색하면 자식 방탕하기 마련이고
婦慧郞必癡(부혜랑필치) : 아내가 지혜로우면 사내는 꼭 어리석도다.
月滿頻値雲(월만빈치운) : 달이 차면 구름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화개풍오지) : 꽃이 피면 바람이 망쳐놓는구나
物物盡如此(물물진여차) : 천지만물 다 이러한 것이니
獨笑無人知(독소무인지) : 혼자 웃는 내 웃음 아는 사람 아무도 없어라

 

 

曉坐(효좌)-丁若鏞(정약용)
새벽에 일어나 앉아-丁若鏞(정약용)

缺月生殘夜(결월생잔야) : 날 샐 무렵 뜬 조각달
淸光能幾何(청광능기하) : 그 맑은 빛 얼마나 갈까.
艱難躋小嶂(간난제소장) : 작은 산 간신히 기어올라
無力度長河(무력도장하) : 힘 없이 긴 강을 힘이 건너간다.
萬戶方酣睡(만호방감수) : 집집마다 단잠에 빠졌는데
孤羈獨浩歌(고기독호가) : 나그네 혼자 호탕하게 노래 부른다.

 

 

寺夕(사석)-丁若鏞(정약용)
저녁에 절에서-丁若鏞(정약용)

落日隱脩杪(낙일은수초) : 지는 해 긴 나무 끝에 숨어들고
池光幽可憐(지광유가련) : 잔잔한 못에 비친 빛이 사랑스럽구나.
新蒲猶臥水(신포유와수) : 새로운 부들 물 위에 누웠고
疏柳正含煙(소유정함연) : 성긴 버드나무는 연기를 품었구나.
小滴遙承筧(소적요승견) : 멀리서 흠대로 끌어온 물방울
餘流暗入田(여류암입전) : 차고 남으면 잠잠히 밭으로 흘러든다.
誰將好丘壑(수장호구학) : 누가 이렇게 좋은 골짜기 가져와
留與數僧專(유여수승전) : 중들에게만 남겨주었는가.
纖月風林外(섬월풍임외) : 초승달은 바람 부는 숲에 걸려있고
幽泉露碓邊(유천로대변) : 노천 방앗간에는 그윽한 샘물 흐른다.
巖巒收氣色(암만수기색) : 바위도 산도 기색이 잠기고
籬塢積雲煙(리오적운연) : 울타리와 언덕은 안개구름에 싸여 있다.
鍾動隨僧粥(종동수승죽) : 종소리 울리자 중들은 죽을 먹고
香銷伴客眠(향소반객면) : 향불은 꺼지고 객과 잠이 들었구나.
潛嗟古賢達(잠차고현달) : 아, 옛 성현과 도사들도
多少愛逃禪(다소애도선) : 중 되기 좋아한 자 많았었다.
百鳥眠皆穩(백조면개온) : 온갖 새들은 다 깊이 잠들고
悲鳴獨子規(비명독자규) : 슬피 우는 것은 오직 두견새뿐이구나.
畸孤寧有匹(기고녕유필) : 외로운 신세 어찌 짝인들 있겠는가.
棲息苦無枝(서식고무지) : 깃들 나무 가지조차도 없어 괴로워라.
眇眇春風憶(묘묘춘풍억) :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오면 추억에 잠기고
蒼蒼夜色疑(창창야색의) : 창창한 밤이 되면 더 불안해진다.
月沈人正睡(월심인정수) : 달이 지고 사람들도 잠들어버리면
淸絶竟誰知(청절경수지) : 너무나 청아한 것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山亭値雨(산정치우)-丁若鏞(정약용)
산 속 정자에서 비를 만나다-丁若鏞(정약용)

小檻新成織錦坊(소함신성직금방) : 작은 집을 새로 직금 고을에 지으니
黃리啼歇綠陰長(황리제헐록음장) : 꾀꼬리 울음 그치고 녹음은 우거졌구나.
驚雷忽破層空暗(경뢰홀파층공암) : 갑작스런 뇌성벽력 터져 층층 하늘이 깜깜하고
快雨仍瀉半日涼(쾌우잉사반일량) : 쏟아지는 빗줄기에 한나절이 시원하다.
亂溜侵人移枕簟(란류침인이침점) : 어지러운 낙숫물 사람에 튀겨 자리를 옮기니
餘歡留客進茶湯(여환유객진다탕) : 기분 좋아은 나머지 손님을 붙들어 차 끓여서 권했다
朝官却在喧卑處(조관각재훤비처) : 조정관리 떠들썩하게 아래에 있더니
車馬衝泥入建章(차마충니입건장) : 거마가 진창을 지나 궁궐로 들어간다.

 

 

望龍門山(망용문산)-丁若鏞(정약용)
용문산 바라보며-丁若鏞(정약용)

縹渺龍門色(표묘용문색) : 아득한 저 용문산 빛
終朝在客船(종조재객선) : 아침이 다가도록 객선을 비춘다.
洞深惟見樹(동심유견수) : 골짜기 깊어 나무만 보일 뿐
雲盡復生煙(운진복생연) : 구름 걷히니 연기 피어오른다.
早識桃源有(조식도원유) : 복숭아 언덕 있는 줄을 알고 있지만
難辭紫陌緣(난사자맥연) : 화려한 서울 거리와 인연 끊기 어려워라.
鹿園棲隱處(록원서은처) : 보이지 않는 곳에 절이 있으리니
悵望好林泉(창망호림천) : 바라보니 숲과 물이 좋아 보인다.

 

 

 

送金直閣邁淳入檗溪次三淵韻7(송김직각매순입벽계차삼연운7)-丁若鏞(정약용)
벽계로 들어가는 김 직각 매순을 보내면서 삼연의 운에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送客因臨水(송객인림수) : 손 보내고 물가에 서서
如僧强出菴(여승강출암) : 스님 따라 억지로 암자를 나서네.
未能踰絶險(미능유절험) : 험한 곳을 다니지 못해
聊與泛回潭(료여범회담) : 애오라지 함께 깊은 물에 떠서 노닌다네.
悵望靑峯疊(창망청봉첩) : 추창이 첩첩 푸른 봉우리 바라보고
追隨白鳥三(추수백조삼) : 하얀 물새를 따르기도 한다네.
力衰心更切(역쇠심경절) : 힘은 쇠하나 마음은 더욱 간절하여
解纜只空慙(해람지공참) : 닻줄 풀고 떠나니 공연히 부끄럽기만 하다네

 

 

送金直閣邁淳入檗溪次三淵韻6(송김직각매순입벽계차삼연운6)-丁若鏞(정약용)
벽계로 들어가는 김 직각 매순을 보내면서 삼연의 운에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愷弟金閨彦(개제금규언) : 화락하고 공손한 문학의 선비
沈淪了不愁(심윤료불수) : 어려움에 처해도 전혀 걱정치 않는구나.
渚鷗元喜水(저구원희수) : 갈매기는 원래 물을 좋아하는데
宮燕敢悲秋(궁연감비추) : 집 제비가 가을을 슬퍼하리오.
小郡敷慈惠(소군부자혜) : 작은 고을 맡아 자혜 베풀고
殘經駁謬悠(잔경박류유) : 잔경에서는 황당한 말들을 반박했다네.
綠驍波正穩(녹효파정온) : 녹효의 물결이 정히 잔잔한지라
恣意溯淸流(자의소청류) : 마음대로 맑은 물살 오르내린다네.

 

 

送金直閣邁淳入檗溪次三淵韻5(송김직각매순입벽계차삼연운5)-丁若鏞(정약용)
벽계로 들어가는 김 직각 매순을 보내면서 삼연의 운에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風流遺響遠(풍류유향원) : 풍류의 남은 향기 은은하고
丘壑引懷長(구학인회장) : 산수를 그리는 생각은 길기만 하도다.
門外鬱林石(문외울림석) : 문 밖엔 운림의 돌이 놓여있고
山中華子岡(산중화자강) : 산속은 바로 화자의 언덕이구나.
地深思嚮晦(지심사향회) : 땅이 그윽하니 은거할 생각나고
花落且含章(화락차함장) : 꽃은 떨어져도 그 아름다움 남는구나.
四十年來事(사십년내사) : 사십 년 동안 겪어 온 일들을
回頭一渺茫(회두일묘망) : 머리 돌려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하여라

 

 

送金直閣邁淳入檗溪次三淵韻4(송김직각매순입벽계차삼연운4)-丁若鏞(정약용)
벽계로 들어가는 김 직각 매순을 보내면서 삼연의 운에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久迷江總岸(구미강총안) : 오래도록 강총의 언덕을 헤매었으나
今作魏謨家(금작위모가) : 이제 와선 위모의 집안이 되었네.
霞潤衫初裛(하윤삼초읍) : 놀의 안개는 삼베 적삼에 막 젖어들고
峯燒飯有沙(봉소반유사) : 화전을 일구니 밥에는 모래가 섞여있네
每心思爽塏(매심사상개) : 매번 마음은 훤히 트인 것을 생각하고
無力置汚邪(무력치오사) : 무력하여 척박한 토지도 사지 못하니
寂寞東籬下(적막동리하) : 저 적막한 동쪽 울타리 밑에
須栽百本花(수재백본화) : 모름지기 백 포기 꽃이나 심으리라.

 

 

送金直閣邁淳入檗溪次三淵韻3(송김직각매순입벽계차삼연운3)-丁若鏞(정약용)
벽계로 들어가는 김 직각 매순을 보내면서 삼연의 운에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荊嶺騎牛路(형령기우로) : 가시고개 언덕에 소타고 다니던 길
迢迢已十春(초초이십춘) : 초초히 이미 십 년이 흘렀구나.
壽藤蒙自古(수등몽자고) : 묵은 등 넝쿨은 예부터 덮여있고
窪石洗如新(와석세여신) : 우묵한 바위는 새것처럼 깨끗하구나.
尙友空千載(상우공천재) : 천 년 전 사람을 부질없이 벗삼아
相知定幾人(상지정기인) : 지기지우는 정히 몇 사람이나 될까.
重逢問津者(중봉문진자) : 나루터 묻는 사람 다시 만나서
携手話尋眞(휴수화심진) : 서로 손잡고 진리 찾는 일 얘기하리라.

 

 

送金直閣邁淳入檗溪次三淵韻2(송김직각매순입벽계차삼연운2)-丁若鏞(정약용)
벽계로 들어가는 김 직각 매순을 보내면서 삼연의 운에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黃蘗溪邊屋(황벽계변옥) : 시냇가 황벽나무 집
淵翁此掩扉(연옹차엄비) : 연옹이 여기서 문을 닫고 지냈네.
達人非果忘(달인비과망) : 달인은 세상을 잊지 않고
君子本憂違(군자본우위) : 군자는 본래 어긋남을 근심한다네.
衣不緇塵染(의불치진염) : 옷은 세상 먼지에 물들지 않았고.
身將碧巘圍(신장벽헌위) : 몸은 푸른 산봉우리로 둘러싸였네.
至今蘿帳裏(지금라장리) : 지금도 여라 넝쿨 장막 속에는
遺馥在林霏(유복재림비) : 남은 향기가 숲 속에 자욱하다네.

 

 

送金直閣邁淳入檗溪次三淵韻1(송김직각매순입벽계차삼연운1)-丁若鏞(정약용)
벽계로 들어가는 김 직각 매순을 보내면서 삼연의 운에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夙昔林棲志(숙석림서지) : 평소 산림에 은거할 마음 있었는데
如今雪滿頭(여금설만두) : 이제는 백발이 머리에 가득하도다.
只緣龍蟄晩(지연용칩만) : 다만 용의 칩거가 늦음을 인연하여
忽已雀羅投(홀이작라투) : 문득 이미 새그물을 칠 만하구나.
桑海空陳跡(상해공진적) : 상전벽해는 묵은 자취일 뿐
蓴江失早秋(순강실조추) : 순채와 오강은 이른 가을 잃었구나.
素懷無證處(소회무증처) : 평소의 생각을 증험할 곳 없어
頹墮更何求(퇴타경하구) : 쇠퇴한 몸이 다시 무엇을 구하리까.

 

 

又以一篇分呈洌樵及穉修伯仲季林諸公2(우이일편분정렬초급치수백중계임제공2)-丁若鏞(정약용)
또 한 편을 지어 열초 및 치수의 백씨ㆍ중씨와 계림 등 제공에게 나누어 올리다-丁若鏞(정약용)

達人有大眼(달인유대안) : 통달한 사람은 큰 안목이 있어
俗物不盈眄(속물불영면) : 속물은 눈에도 차지 않는다네.
場屋亦戲墨(장옥역희묵) : 과거장도 필묵 희롱하는 곳이라
丈夫非所戀(장부비소련) : 대장부가 연연한 바는 아니라네
君平旣相棄(군평기상기) : 군평은 진작부터 벼슬길을 포기하고
屛居良自便(병거량자편) : 은거하여 참으로 편안했다네.
炯炯金閨姿(형형금규자) : 빛나는 한림학사의 풍채로서
老却詩千卷(노각시천권) : 늙어도 천 권의 시 속에 살아가네.
作詩寄諸子(작시기제자) : 시 지어 여러 자식에게 부쳐
世事浮雲變(세사부운변) : 세상일은 뜬구름처럼 변하는구나.

 

 

又以一篇分呈洌樵及穉修伯仲季林諸公1(우이일편분정렬초급치수백중계임제공1)-丁若鏞(정약용)
또 한 편을 지어 열초 및 치수의 백씨ㆍ중씨와 계림 등 제공에게 나누어 올리다-丁若鏞(정약용)

難忘洌水岸(난망렬수안) : 열수의 언덕을 잊기 어려워
春殘綠蕪蒨(춘잔록무천) : 늦은 봄에도 푸름이 무성하구나.
高手撫凌雲(고수무능운) : 높은 솜씨는 청운을 능가하고
不才較黃絹(불재교황견) : 재주는 부족해도 좋은 시구 비교하네.
水鍾屋上拳(수종옥상권) : 수종사는 지붕 위의 주먹이요
驍江枕下線(효강침하선) : 효강은 베개 밑의 실같도다.
幽居養太素(유거양태소) : 한적하게 살면서 본성을 기르고
戲墨時復絢(희묵시복현) : 필묵 놀리면 때로 문채도 단다네.
超識出拘臼(초식출구구) : 뛰어난 식견은 틀에 매이질 않고
拙辭斂蔓莚(졸사렴만연) : 졸렬한 글은 넝쿨을 걷듯 하다네.

 

 

渡頭口占以一篇分呈洌樵楊山2(도두구점이일편분정렬초양산2)-丁若鏞(정약용)
나루터에서 구점하여 열초와 양산에게 한 편씩 나누어 드리다-丁若鏞(정약용)

士處江湖風瀏瀏(사처강호풍류류) : 강호에 사는 선비는 바람 시원하여
白頭不向紅塵走(백두불향홍진주) : 늘어서까지 세속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我亦東西南北人(아역동서남북인) : 나 또한 동서남북으로 떠도는 사람
隨風不作顚狂柳(수풍불작전광유) : 바람 따라 미친 듯 넘어지는 버드나무 되지 않으리.
城寰斂跡世稀合(성환렴적세희합) : 성중과 행적을 끊으니 세상 사람과 맞지 않도다.
野屋放談人不咎(야옥방담인불구) : 시골집에서 이야기나 나누니 누구도 나무라지 않네.
淸游興盡憺將歸(청유흥진담장귀) : 맑은 놀와 흥취 다하니 슬퍼서 돌아가려 하니
坡上信息良非偶(파상신식량비우) : 파상이 술 끊었단 소식이 우연이 아니었구려
見我謂我太猖狂(견아위아태창광) : 나를 보고 나를 미치광이라 말하지만
狂士曾爲聖所取(광사증위성소취) : 미친 선비는 일찍이 성인이 취했던 바라오.
我有謾吟神相會(아유만음신상회) : 내 부질없이 읊어도 마음이 서로 통하니
白癡先生眞吾友(백치선생진오우) : 백치 선생은 참으로 나의 친구이로세.

 

 

渡頭口占以一篇分呈洌樵楊山1(도두구점이일편분정렬초양산1)-丁若鏞(정약용)
나루터에서 구점하여 열초와 양산에게 한 편씩 나누어 드리다-丁若鏞(정약용)

朝從斗陵出煙藪(조종두릉출연수) : 아침에 두릉에서 안개 낀 늪으로 나가니
斗陵江上何所有(두릉강상하소유) : 두릉의 강가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晴雲鳥下黑水隈(청운조하흑수외) : 갠 하늘에 새는 흑수가로 로 내려오고
積石灘鳴二江口(적석탄명이강구) : 돌 쌓인 여울물은 두 강의 어귀를 울린다.
江山勝境快意歸(강산승경쾌의귀) : 강산의 좋은 경치에 유쾌히 돌아오고
華軸聯題又大手(화축연제우대수) : 화려한 시축에 시를 쓴 것이 또 큰 솜씨였네
洌水丈人不喜詩(렬수장인불희시) : 열수의 어른은 시 짓기를 좋아하지 않고
坡上居士亦止酒(파상거사역지주) : 파상의 거사는 또한 술을 끊었도다.
風流文采各自如(풍유문채각자여) : 풍류와 문채는 각각 서로 개성이 있어
客裏光陰不全負(객리광음불전부) : 객지의 세월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았다네.
聚散悠悠無定態(취산유유무정태) : 만나고 헤어짐은 아득하여 정해진 형태가 없는데
回首滄波碧瀏瀏(회수창파벽류류) : 머리 돌리니 푸른 물결에 바람이 시원도하구나.

 

 

耄甚自嘲五絶句5(모심자조오절구5)-丁若鏞(정약용)
늙음이 심한 거을 조롱하여 지은 오언절구-丁若鏞(정약용)

年光恰對衡峯矗(년광흡대형봉촉) : 세월이 흐름이 우뚝한 형봉을 마주한 것 같고
時候今逢澤腹堅(시후금봉택복견) : 기후는 어제 물이 꽁꽁 얼어버린 때이라네.
綠隱牕戶深生暈(녹은창호심생훈) : 푸른 그늘 창 아래에 등잔불 빛 흐릿하고
駸駸將及仲尼肩(침침장급중니견) : 말달리듯 바삐 공자의 나이를 따라가는구나.

 

 

耄甚自嘲五絶句4(모심자조오절구4)-丁若鏞(정약용)
늙음이 심한 거을 조롱하여 지은 오언절구-丁若鏞(정약용)
 
投老深知老可悲(투노심지노가비) : 늙어보니 늙음이 슬프다는 걸 깊이 알겠네
高年稱慶是全癡(고년칭경시전치) : 나이 높다고 경하하는 건 완전한 어리석어라
眞如旅舍將歸客(진여여사장귀객) : 참으로 곧 돌아갈 여관의 나그네와 같아
恰到蕭晨秣馬時(흡도소신말마시) : 써늘한 새벽에 말먹일 때가 된 것과 꼭 같다오.

 

 

耄甚自嘲五絶句3(모심자조오절구3)-丁若鏞(정약용)
늙음이 심한 거을 조롱하여 지은 오언절구-丁若鏞(정약용)

刀牙竹脚玻瓈眼(도아죽각파려안) : 닳은 치아, 마른 다리, 흐릿한 눈
軒適詩中寫得全(헌적시중사득전) : 헌적의 시에서 표현을 아주 잘 했는데.
只有一言要續尾(지유일언요속미) : 단지 거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면
胡桃髻子火珠懸(호도계자화주현) : 호두만한 상투에 구슬까지 달려 있다네

 

 

耄甚自嘲五絶句2(모심자조오절구2)-丁若鏞(정약용)
늙음이 심한 거을 조롱하여 지은 오언절구-丁若鏞(정약용)
 
癡聾本分戒煩苛(치롱본분계번가) : 노망과 귀머거리는 원래 번거로움 경계해야 하나니
百事含容偶一呵(백사함용우일가) : 모든 일을 모른 체하다가 우연히 한 번 꾸짖는다.
自視惺憁無過誤(자시성총무과오) : 스스로는 정신 총하여 아무 잘못 없건마는
衆推爲耄可如何(중추위모가여하) : 모두가 날 노망했다고 하는 것을 어찌하리오

 

 

耄甚自嘲五絶句1(모심자조오절구1)-丁若鏞(정약용)
늙음이 심한 거을 조롱하여 지은 오언절구-丁若鏞(정약용)

哄堂大噱隔簾帷(홍당대갹격렴유) : 주렴 밖에서 떠들썩하게 웃는 소리 들려
定有人間絶倒奇(정유인간절도기) : 사람들에게 포복절도할 일이 있는 듯하네.
徐起呼兒問委折(서기호아문위절) : 천천히 일어나 아이 불러 그 곡절 물어보니
但云無事偶相嬉(단운무사우상희) : 별일 없이 우연히 서로 즐겼다고만 하네.

 

 

謝桑村朴逸人惠桑葉四絶句4(사상촌박일인혜상엽사절구4)-丁若鏞(정약용)
뽕잎을 보내 준 상촌 박 일인에게 사례하는 뜻으로 네 수를 짓다-丁若鏞(정약용)
 
日日靑絲繫樹頭(일일청사계수두) : 나날이 푸른 실을 나무 머리에 매고
儘敎花發任蜂偸(진교화발임봉투) : 꽃 피워 벌이 훔쳐 가도록 내버려 두네
夕陽人散逢搖落(석양인산봉요락) : 사람들은 흩어지고 쓸쓸한 석양을 만나
閒看空枝掛木鉤(한간공지괘목구) : 빈 가지에 나무 거는 갈고리를 한가히 바라보네.

 

 

謝桑村朴逸人惠桑葉四絶句3(사상촌박일인혜상엽사절구3)-丁若鏞(정약용)
뽕잎을 보내 준 상촌 박 일인에게 사례하는 뜻으로 네 수를 짓다-丁若鏞(정약용)

老蠶腰肚暈微黃(노잠요두훈미황) : 늙은 누에 배와 허리 약간 노랗게 되니
急索今朝上馬桑(급색금조상마상) : 오늘 아침에 상마상을 급히 구하였다네.
知有樵靑渡江水(지유초청도강수) : 알았다, 계집종이 저 강물을 건너가면서
少留麥麨待飢腸(소류맥초대기장) : 보릿가루 약간 두어 주린 속을 기다리네.

 

 

謝桑村朴逸人惠桑葉四絶句2(사상촌박일인혜상엽사절구2)-丁若鏞(정약용)
뽕잎을 보내 준 상촌 박 일인에게 사례하는 뜻으로 네 수를 짓다-丁若鏞(정약용)

荊桑如鏤魯桑圓(형상여루노상원) : 형상의 잎은 은 뽀족하고 노상의 잎은 둥근데
一樹傾筐直百錢(일수경광직백전) : 백 전어치나 되는 비싼 것을 한 바구니나 보내 주네.
屋裏蠶飢非不愛(옥리잠기비불애) : 우리 집의 주린 누에는 당연히 좋아하지만
遠來赤脚也堪憐(원래적각야감련) : 멀리서 온 종아이는 참으로 애처롭구나.

 

 

謝桑村朴逸人惠桑葉四絶句1(사상촌박일인혜상엽사절구1)-丁若鏞(정약용)
뽕잎을 보내 준 상촌 박 일인에게 사례하는 뜻으로 네 수를 짓다-丁若鏞(정약용)

日長山北小柴荊(일장산북소시형) : 산 북쪽 날은 긴데 작은 초막집 하나
道是河南慰禮城(도시하남위례성) : 말하자면 이곳이 하남의 위례성이라네.
寂歷斷碑芳草路(적력단비방초로) : 방초 우거진 길에 조각난 비석 쓸쓸하고
數株桑樹乳鳩鳴(수주상수유구명) : 몇 그루 뽕나무에서 어린 비둘기 울어댄다.

 

 

臨別又題(림별우제)-丁若鏞(정약용)
작별에 임하여 또 제하다-丁若鏞(정약용)

山客歸山不可留(산객귀산불가류) : 산객이 산으로 돌아가니 만류할 수 없고
前期檻外水長流(전기함외수장유) : 전일 기약에 난간 밖의 물결이 끝없이 흘러가네.
久閑筋力勞還健(구한근역노환건) : 오래 휴양한 근력은 피로해도 건강하나
垂老猖狂死乃休(수노창광사내휴) : 다 늙어서도 미쳐 날뛰는 일은 죽어야 끝나리라.
意到則來何必約(의도칙내하필약) : 마음 있으면 오면 되지 약속할 필요 어디 있나
話闌而別莫須愁(화란이별막수수) : 실컷 이야기하고 이별하니 시름할 것 없구나.
吳鹽蜀枲船相續(오염촉시선상속) : 오나라 소금과 촉나라 모시 실은 배가 서로 이어지니
玆是仙人太乙舟(자시선인태을주) : 이것이 바로 신선 세계의 태을의 배로다.

 

 

追和呂承旨天眞寺之作(추화여승지천진사지작)-丁若鏞(정약용)
여 승지의 천진사 시를 추후에 화답하다[-丁若鏞(정약용)

看山不待一錢求(간산불대일전구) : 산구경하니 돈도 하나 안 드는데
夏木鶯聲盡意幽(하목앵성진의유) : 여름 숲 꾀꼬리 소리에 그윽한 속마음 다하여라.
人是會心同向子(인시회심동향자) : 사람은 마음이 맞으면 서로 같은 것을 향하고
泉如悅耳卽嵩丘(천여열이즉숭구) : 샘 소리 듣기 좋으니 바로 숭산이구나.
梵樓疊嶂成孤坐(범루첩장성고좌) : 겹겹 산봉우리 안에 절은 외로이 앉아 있고
粥鼓斜陽念舊游(죽고사양념구유) : 석양의 죽고 소리에 옛 놀던 때 생각나네.
明日君從靑瑣去(명일군종청쇄거) : 내일 그대가 조정으로 떠나 버리면
阿誰重理問津舟(아수중리문진주) : 그 누가 나루 묻는 배를 다시 다스리겠소.

 

 

五月十二日乘舟到松坡擬題尹友屋壁(오월십이일승주도송파의제윤우옥벽)-丁若鏞(정약용)
오월 십이일 배를 타고 송파에 가 윤씨 친구 집 벽에 의제하다-丁若鏞(정약용)

茅茨依舊碧江潯(모자의구벽강심) : 초막집은 푸른 강가에 그대로 있는데
晩福溫存慰此心(만복온존위차심) : 늦복을 잘 지키어 내 마음 위로가 되는구나.
羸僕老能調㺚馬(리복노능조달마) : 수척한 늙은 마부 마을 잘 부리고
穉孫黠已弄奚琴(치손힐이롱해금) : 어린 손자는 영리하여 해금을 다루네.
詩皆散佚猶盈卷(시개산일유영권) : 시는 다 흩어졌지만 그래도 시권에 그득하고
酒曰離開亦細斟(주왈리개역세짐) : 술은 끊었으나 조금씩은 마시는구려.
只是水煩村巷隘(지시수번촌항애) : 다만 이곳이 물은 많으나 마을은 좁아
何如從我近雲林(하여종아근운임) : 나를 따라 구름 숲 가까이로 오는 게 어떨까
縣符應待之期廻(현부응대지기회) : 현령의 직책이 응당 육 년이 되어야 돌아오는데
其奈精神在釣臺(기내정신재조대) : 마음은 낚시터에 있으리니 어찌하나.
腰軟若將懷祿住(요연약장회록주) : 허리는 약해서 장차 녹봉을 연연할 듯한데
脾淸畢竟棄官來(비청필경기관내) : 비위는 맑아서 필경 벼슬 버리고 돌아오리라.
依然大地無田㽝(의연대지무전례) : 너른 땅에 여전히 논밭 하나 없지만
約略頹齡有酒杯(약략퇴령유주배) : 약략한 늙은 나이에 술잔은 항상 있다네.
駿馬文皮蕃鍚賚(준마문피번양뢰) : 천리마에 범 가죽과 하사품도 많아라
聖朝曾許冠軍才(성조증허관군재) : 성조에서 일찍이 군인의 재주로 받은 것이라네.

 

 

次韻酬石泉(차운수석천)-丁若鏞(정약용)
석천에게 차운하여 수답하다-丁若鏞(정약용)

人生如漂霞(인생여표하) : 인생은 마치 떠도는 노을과 같아
根蒂靡攸依(근체미유의) : 뿌리도 꼭지도 의지할 곳 없어라.
駝情浩無際(타정호무제) : 낙타처럼 달리고 싶은 마음 끝없는데
寄命良獨微(기명량독미) : 타고난 운명은 진실로 미약하다네.
趣舍紛萬殊(취사분만수) : 나가고 머무름은 모두 다르지만
所好不可磯(소호부가기) : 좋아하는 건 막을 수 없어구나.
斂跡求墜緖(렴적구추서) : 자취 감추고 무너진 실마리 찾아
微言希發揮(미언희발휘) : 보잘 것 없는 말도 발휘시키길 바라니
淵哉姬與孔(연재희여공) : 깊기도 하구나, 주공과 공자의 도여
契合洵無違(계합순무위) : 진실로 서로 계합함이 어김없는데
能瞻不能往(능첨불능왕) : 보기만 하고 그곳을 거치지는 못하다니.
殆類辟且痱(태류벽차비) : 절름발이 풍병 환자와 흡사하구나.
齒髮倏已衰(치발숙이쇠) : 치아와 머리털 어느새 이미 쇠하여
暮色隨流暉(모색수유휘) : 흐르는 세월 따라 늙어만 가는구나.
喘息如爛絲(천식여란사) : 실 낱 같은 생명만 붙어 있을 뿐
幾何朝露晞(기하조노희) : 머지않아 아침 이슬 마르듯 하리라.
忽遇賢達士(홀우현달사) : 갑자기 현달한 선비를 만난다면
願從欲奮飛(원종욕분비) : 원컨대 그를 따라 옛날처럼 힘차게 일어나
珠肆捃墜珍(주사군추진) : 구슬 가계에서 떨어진 보배를 줍고
蘭室嗅餘馡(란실후여비) : 난초 온실에서 남은 향내를 맡고 싶구나.
水樓貯書史(수누저서사) : 물가의 누각에 서책을 저장하고
淸晝靜垂幃(청주정수위) : 맑은 낮에 조용히 휘장 친다.
銜哀戀泉隧(함애련천수) : 슬픔 머금고 황천길을 생각하고
潔身潛郊畿(결신잠교기) : 몸 깨끗이 하여 근교에 은거하리라.
硏經辨蔀惑(연경변부혹) : 경서를 연구하여 의혹된 걸 변별하고
敷藻揚淸徽(부조양청휘) : 시문 지어 맑은 풍취 드날리리라.
遐邁辛叔重(하매신숙중) : 뛰어나게 고상한 사람은 신숙중이요
穴居臺孝威(혈거대효위) : 굴 파고 살았던 이는 대효위로다.
雅言刪浮華(아언산부화) : 바른 말로 화려한 것을 깎아 내리고
勁毫鏟脆肥(경호산취비) : 곧은 붓으로 무르고 살진 것을 대패질한다.
沖淡絶志歆(충담절지흠) : 담박함으로 부러워하는 마음 끊고
訒黙鞱心非(인묵도심비) : 과묵함으로 그릇된 마음 덮어버린다.
妙辭吐愉鬯(묘사토유창) : 절묘한 말을 유쾌하게 뱉어내니
逌然無怨誹(유연무원비) : 의기양양하여 원망과 비방 없어진다.
奇文溯鄦杜(기문소허두) : 뛰어난 문장은 허두를 소급하고
曼流接洙沂(만유접수기) : 장원한 흐름은 수기와 연접하였네.
粲粲詩書故(찬찬시서고) : 빛나고 빛나는 시서의 일은
編簡綴瓊璣(편간철경기) : 서책에 주옥처럼 엮어져 있도다.
瓦當與碑孔(와당여비공) : 고대의 와당과 비공에 대하여는
觀者如蜂圍(관자여봉위) : 구경하는 사람 벌떼처럼 둘러싸네.
頹頹淆漓中(퇴퇴효리중) : 쇠퇴하고 혼탁해진 이 세상에
孤標惜古稀(고표석고희) : 뛰어난 풍채 고희가 애석하도다.
結交知所跂(결교지소기) : 교분을 맺음에도 힘쓸 바를 알거니와
望道誰禦睎(망도수어희) : 도를 바라노니 누가 그리워함을 막으랴.
孶孶躡後塵(자자섭후진) : 부지런히 공의 뒤를 따르려 하나
杳若攀雲旂(묘약반운기) : 구름 깃발 잡기가 마냥 아득했다네.
夙願欣已充(숙원흔이충) : 기쁘구나, 숙원을 이미 이룩했으니
微斯誰與歸(미사수여귀) : 여기를 버려두고 누구에게 돌아가리오.

 

 

次韻奉酬玄谿令公(차운봉수현계영공)-丁若鏞(정약용)
차운하여 현계 영공에게 받들어 수답하다-丁若鏞(정약용)

呂公白鶴身(여공백학신) : 여공은 백학같이 몸으로
煙霞寓長眄(연하우장면) : 산수에 살며 길이 눈을 부치었네.
畫省太悤悤(화생태총총) : 화성에서는 너무도 바빴고
丹壑常戀戀(단학상연연) : 단학을 마음속으로 항상 연연했네.
自言七不堪(자언칠부감) : 스스로 입곱 가지를 감당하지 못해
未諳當世便(미암당세편) : 당세의 편안함을 모르겠고 하네.
琳宮曁幔亭(림궁기만정) : 만정에서 노닐 적에는
傑作新裝卷(걸작신장권) : 뛰어난 작품이 새로 책이 되었네.
共勉白頭憐(공면백두련) : 힘써 늘그막까지 서로 동정하니
不愁素絲變(불수소사변) : 흰 실이 변할까를 걱정하지 않는다네.

 

 

癸巳六月二十七日東樊至(계사육월이십칠일동번지)-丁若鏞(정약용)
계사년 유월 이십칠일에 동번이 오다-丁若鏞(정약용)

筍輿入洞暝煙凝(순여입동명연응) : 가마가 골짜기에 드니 저녁 연기 어리고
柔艣聲生喜氣騰(유로성생희기등) : 노 젓는 그 소리에 기쁜 마음 넘치네.
豆萊田中黃犢路(두래전중황독로) : 밭 가운데 콩깍지는 누런 송아지의 길이고
槿花籬裏草蟲燈(근화이리초충등) : 울타리 무궁화는 풀벌레의 등불이네
不須題句詩肝照(불수제구시간조) : 반드시 시구 적어 마음 속 비춰 보지 않아도
已覺還魂睡眼澄(이각환혼수안징) : 돌아오는 영혼의 눈동자 맑은 것 이미 알았네.
自是風門連水榭(자시풍문연수사) : 이곳 바람 나오는 문이 수사와 연결되어
未妨留滯度炎蒸(미방유체도염증) : 머물러서 더운 여름 보내기에 방해되지 않겠네.

 

 

舟過夢烏亭(주과몽오정)-丁若鏞(정약용)
배를 타고 몽오정을 지나다-丁若鏞(정약용)

興廢偏傷過客心(흥폐편상과객심) : 흥망성쇠에 과객의 마음을 유독 상하고
夢烏亭子隱高林(몽오정자은고임) : 몽오정이 높은 숲 속에 숨어 있다네.
荒蹊半沒羊蹄綠(황혜반몰양제록) : 반이나 묻힌 황량한 오솔길에 양의 발자국 분명하고
破瓦猶殘鴨脚陰(파와유잔압각음) : 남아 있는 기와 조각엔 오리다리 무늬 남아있네.
白馬淸流空涕淚(백마청유공체루) : 백마가의 푸른 버들은 눈물만 흘리고
黃驪舊族劇銷沈(황여구족극소침) : 황려의 구족들은 몹시도 침체해졌네.
水邊臺榭多新主(수변대사다신주) : 물가의 높은 정자에는 새 주인이 많아
欲賦靈光悵獨吟(욕부영광창독음) : 영광부를 지으려 슬피 홀로 읊는다네.

 

 

尹正言挽詞(윤정언만사)-丁若鏞(정약용)
윤 정언에 대한 만사-丁若鏞(정약용)

丹旐悠揚寫正言(단조유양사정언) : 정언이라 쓴 명정이 길이 펄럭이고
秋風衰草赴高原(추풍쇠초부고원) : 가을바람 쇠잔한 풀 높은 언덕을 향하네.
玄端設飾方纔了(현단설식방재료) : 조복 꾸미는 일은 겨우 마치었고
天降庚牌始到門(천강경패시도문) : 조정에서 내린 경패는 비로소 도착했네.
龍穴嬉春事隔晨(용혈희춘사격신) : 용혈에서 봄놀이한 건 어제 일과 같고
絡蹄如玉鱠如銀(락제여옥회여은) : 낙제는 옥 같고 생선회는 은빛 같았네
誰生誰死休分別(수생수사휴분별) :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었다고 구별 말라
已作當時一隊人(이작당시일대인) : 당시에 이미 한 무리 사람을 이루었다네
茶山簫鼓鬧芬華(다산소고료분화) : 다산에 퉁소와 북소리 소란하게 들릴 적에
頭揷雙條御賜花(두삽쌍조어사화) : 그대는 어사화 두 가닥을 머리에 꽂았는데
演戲場邊數株柳(연희장변수주유) : 당시의 연희장가에 두어 그루 버드나무에는
別時已復集昏鴉(별시이복집혼아) : 헤어질 때 이미 황혼 녘 까마귀가 날았다네

 

 

斗尾値大雷(두미치대뢰)-丁若鏞(정약용)
두미에서 큰 천둥을 만나다-丁若鏞(정약용)

迅雷必變憶尼公(신뢰필변억니공) : 생각건대 공자는 빠른 번개 소리에 얼굴이 변하고
飛電流光白晝同(비전유광백주동) : 번갯불 번쩍번쩍, 대낮과 같구나.
急勢擊崩千仞壁(급세격붕천인벽) : 급한 형세 천 길의 절벽을 무너뜨리고
聲威轟動四方風(성위굉동사방풍) : 소리 위엄은 사방 바람 크게 진동시키네.
九天閶闔臨頭上(구천창합림두상) : 구천의 문은 바로 머리 위에 임해 있고
半世愆殃在眼中(반세건앙재안중) : 반평생의 죄악들은 한눈에 떠오르네.
莫把艄工作烏喙(막파소공작오훼) : 뱃사공 붙들고 까마귀 부리 울리지 말아라
共看明月吐山東(공간명월토산동) : 동산에 떠오르는 밝은 달을 함께 보리라.

 

 

斗尾値逆風(두미치역풍)-丁若鏞(정약용)
두미에서 역풍을 만나다-丁若鏞(정약용)

自從耳順聽天公(자종이순청천공) : 육십 세가 되면서부터 자연에 순응하노니
浩蕩胸懷觸處同(호탕흉회촉처동) : 호탕한 회포가 이르는 곳마다 마찬가질세
適野恭沾洗臉雨(적야공첨세검우) : 들판에 가서는 뺨 씻는 비에 공손히 젖고
登舟欣受打頭風(등주흔수타두풍) : 배를 타서는 머리 치는 바람을 기꺼이 받네.
愁城不戰而能下(수성불전이능하) : 시름의 성을 싸움 않고도 능히 함락시키면
樂國由來在此中(낙국유내재차중) : 낙원이 예로부터 이 가운데 있는 거라네
好坐吟成未了句(호좌음성미료구) : 조용히 앉아 마치지 못한 시구 읊어 채우면서
白蘋演漾任西東(백빈연양임서동) : 흰 마름꽃 동서로 둥둥 떠가게 내버려 두네.

 

 

仁字二首2(인자이수2)-丁若鏞(정약용)
인자에 대하여-丁若鏞(정약용)

姑將惻隱唯斯人(고장측은유사인) : 짐짓 측은지심을 가지고 이 사람에게 답하여
說與齊梁勸愛民(설여제량권애민) : 제와 양을 설득해서 백성을 사랑하라 권했는데
復禮爲仁由克己(복례위인유극기) : 복례와 위인이 본래 극기에서 생기니
孔顔傳授是精神(공안전수시정신) : 이것이 곧 공자 안자가 전수한 정신이라네

 

 

仁字二首1(인자이수1)-丁若鏞(정약용)
인자에 대하여-丁若鏞(정약용)

人以治人是二人(인이치인시이인) : 사람으로서 사람을 다스림에 바로 두 사람이 있으니
二人之際卽爲仁(이인지제즉위인) : 두 사람의 교제하는 것이 곧 인이 된다네.
東方木德生生理(동방목덕생생리) : 우리나라에는 목덕에 생생한 이치가 있는데
何與君臣父子親(하여군신부자친) : 군신의 의리와 부자의 친함은 그 관련이 어떠한가

 

 

恕字二首2(서자이수2)-丁若鏞(정약용)
서자에 대하여-丁若鏞(정약용)

曲禮三千一貫之(곡례삼천일관지) : 곡례의 삼천 항목이 하나로써 관통되나니
求仁莫近更無疑(구인막근경무의) : 인을 구하는 것보다 더 가까운 것 없으니 의심하지 말라.
休將一理談高妙(휴장일리담고묘) : 한 이치를 가지고 고묘함을 논하지 말라
吾道由來在邇卑(오도유래재이비) : 우리의 도는 원래부터 가까운 곳에 있다네.

 

 

恕字二首1(서자이수1)-丁若鏞(정약용)
서자에 대하여-丁若鏞(정약용)
 
人心端的己心如(인심단적기심여) : 남의 마음도 단적으로 내 마음과 같나니
克己徇人恕有餘(극기순인서유여) : 사욕 이겨 남을 따르면 용서함에 남음이 있지만
若把縱容看作恕(약파종용간작서) : 만일 내버려 두는 걸 서로 용서로 본다면
和人和己納溝渠(화인화기납구거) : 남과 내가 같이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敬字二首2(경자이수2)-丁若鏞(정약용)
경자에 대하여-丁若鏞(정약용)

未發前光孰見夫(미발전광숙견부) : 정이 발하기 전의 광경을 누가 보았나
明知敬與此工殊(명지경여차공수) : 경이 이 공부와 서로 다름을 환히 알겠다.
同安縣裏鐘聲斷(동안현리종성단) : 동안 고을 안에 종소리가 끊어지어라.
吾輩如今篤信朱(오배여금독신주) : 우리들은 지금까지 주희 선생을 굳게 믿는다

 

 

敬字二首1(경자이수1)-丁若鏞(정약용)
경자에 대하여-丁若鏞(정약용)

心先有嚮敬纔生(심선유향경재생) : 마음이 먼저 향함이 있어야 경이 겨우 생기나니
長老君親禮以行(장로군친례이행) : 장로군친을 예로써 받들어야 하느니라.
莫道靜中無一事(막도정중무일사) : 고요한 가운데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지 말라
潛心對越是功程(잠심대월시공정) : 마음 가라앉히어 하늘 대함이 바로 노력하는 과정이라네.

 

 

性字四首4(성자사수4)-丁若鏞(정약용)
성자에 대하여-丁若鏞(정약용)

如來藏性本然淸(여래장성본연청) : 여래자의 성품은 원래부터 맑다고 하는데
說在楞嚴妙法經(설재릉엄묘법경) : 그 말이 능엄경과 묘법경에 있다네.
無始本然觀自在(무시본연관자재) : 처음과 끝도 없이 본연으로 관자재함은
中庸首句可同評(중용수구가동평) : 중용의 첫 구절과 동등하게 평가할 만하네.

 

 

性字四首3(성자사수3)-丁若鏞(정약용)
성자에 대하여-丁若鏞(정약용)

節性忍性又何哉(절성인성우하재) : 절성과 인성은 또 무슨 말인가
王制遙從召誥來(왕제요종소고래) : 왕제의 말은 멀리 소고로부터 온 것
嗜好所名還假借(기호소명환가차) : 기호로 이름 지은 것은 가차한 것
古今論性儘雙排(고금론성진쌍배) : 고금에 성을 논함에는 둘 모두 배열하였네.

 

 

性字四首2(성자사수2)-丁若鏞(정약용)
성자에 대하여-丁若鏞(정약용)

從惡如崩勢固然(종악여붕세고연) : 악 따르기 쉬운 건 형세가 본래 그러하고
可善可惡又微權(가선가악우미권) :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할 수 있는 것도 권리이네
一勢一權看作性(일세일권간작성) : 하나의 형세와 권리를 성으로 보았으니
荀揚於此媿前賢(순양어차괴전현) : 진실로 순자 양자가 이점에서 전현에 미치지 못하네.

 

 

性字四首1(성자사수1)-丁若鏞(정약용)
성자에 대하여-丁若鏞(정약용)

雉欲山棲鴨欲川(치욕산서압욕천) : 꿩은 산에서 살기 원하고 오리는 물에서 살고자 하고
稻宜水種黍宜田(도의수종서의전) : 벼는 논에 심어야하고 기장은 밭에 심어야 한다네.
吾人嗜善斯爲性(오인기선사위성) : 우리 인간이 선을 좋아함은 곧 본성인지라
鄒喩元從嗜好邊(추유원종기호변) : 맹자의 가르침은 원래 기호를 따른 것이네.

 

 

又令左衡作隨試老筆次韻東坡(우령좌형작수시노필차운동파)-丁若鏞(정약용)
권좌형으로 하여금 노필 시험한 운을 따라 짓게 하고 또 동파의 운에 차하다-丁若鏞(정약용)

出谷遷喬摠轉蓬(출곡천교총전봉) : 골짝을 나와 교목에 옮겨감도 모두 유랑신세라
憐君玉貌已龍鍾(련군옥모이용종) : 옥 같은 그대 얼굴 이미 쇠한 것이 가련하구나.
家常菜食羅三九(가상채식라삼구) : 집에서는 항상 삼구 동안 채소만 차려 먹지만
詩似蕉心蘊數重(시사초심온수중) : 시는 파초의 속처럼 여러 겹이 쌓였다네.
活計會從ꝃ地鼠(활계회종리지서) : 생활 계책은 이제 두더지를 따르지만
晩途難作齮書蟲(만도난작기서충) : 늘그막이라 책벌레가 되기는 어렵구나.
如今文字都無用(여금문자도무용) : 이제는 문자를 도무지 쓸 데가 없으니
良苦朱泙學宰龍(량고주평학재용) : 참으로 용 잡는 것을 배운 주팽이 괴로워라

 

 

贈尹鍾遠唯靑(증윤종원유청)-丁若鏞(정약용)
윤 종원 유청에게 주다-丁若鏞(정약용)

見爾☐然欲酸鼻(견이☐연욕산비) : 너를 보니 눈물이 줄줄나고 코가 시큰해져
念爾考顔如玉粹(염이고안여옥수) : 너의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하면 얼굴이 관옥 같았네.
盛年憶在明禮坊(성년억재명례방) : 한창 시절 명례방에 있을 때를 생각하니
苦心就我談文字(고심취아담문자) : 열심히도 나한테 와서 문자를 서로 이야기 하였네.
傳餐小奴字朝陽(전찬소노자조양) : 밥 나르는 작은 종, 이름은 조양인데
靑袱髹盤致午餽(청복휴반치오궤) : 푸른 보자기 검은 쟁반에 점심을 내어왔었네
瓌詞譎句動驚人(괴사휼구동경인) : 뛰어난 사구가 자주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樊翁聞之稱異瑞(번옹문지칭이서) : 번옹도 들어 보고 좋은 징조라 칭찬했다네.
蘭蕙彫零吁可惜(란혜조령우가석) : 아, 뛰어난 사람 일찍 간 건 애석하나
萍梗漂流亦遠謫(평경표류역원적) : 떠돌이 신세 내 또한 멀리 귀양 왔다네.
覆巢猶完孔融兒(복소유완공융아) : 엎어진 새집이라도 공융의 아이처럼 안전하다네.
蜀地空過揚雄宅(촉지공과양웅택) : 촉 땅에 부질없이 양웅의 집을 들렀고
仇池小有此洞天(구지소유차동천) : 구지산의 소유천이 바로 이 동천이라네.
我來爾存嗟機緣(아래이존차기연) : 내가 오자 너도 있으니 아, 진정 기이한 인연이구나.
鳳穴奇毛色殊衆(봉혈기모색수중) : 봉의 새끼라 겉모양 의당 범상치 않으나
䵷井小觀頗可憐(와정소관파가련) : 우물 안 개구리의 소견이 자못 가련하구나.
楚甥羸弱承秦贅(초생리약승진췌) : 초생은 파리하고 약하여 진췌를 이었고
石田茅屋蕭蕭然(석전모옥소소연) : 척박한 밭 오두막이 쓸쓸하기만 하구나.
幸有良士常隣近(행유량사상린근) : 다행히 훌륭한 선비가 늘 가까이 있으니
探賾硏幾毋自捐(탐색연기무자연) : 늘 진리를 탐구하여 스스로 포기 하지 말라.

 

 

贈李楘參奉丈(증이목참봉장)-丁若鏞(정약용)
이 목 참봉 어른에게 주다-丁若鏞(정약용)

山海分携兩老儒(산해분휴양노유) : 산과 바다로 갈라 살던 두 늙은 선비
相逢此日劇歡娛(상봉차일극환오) : 서로 만난 오늘이 너무도 기쁘고 즐겁네.
惜乎已落張蒼齒(석호이락장창치) : 애석하구나, 이미 다 빠져버린 장창의 이가
恨不從遊綺皓鬚(한불종유기호수) : 흰 수염 기리계를 따라 놀지 못한 것이 한스럽네.
籬下石田催晩種(리하석전최만종) : 울 밑의 척박한 밭엔 늦 파종을 재촉하고
門前水岸漲春蕪(문전수안창춘무) : 문 앞의 강가에는 봄풀에 물이 충만하고
移居徑欲分仙洞(이거경욕분선동) : 거쳐를 옮겨 당장에 선경의 고을을 나눠 가져서
與作朱陳嫁娶圖(여작주진가취도) : 같이 주씨 진씨의 가취도를 만들고 싶네. 

 

 

菜花亭新成權左衡適至次韻東坡聊試老筆(채화정신성권좌형)適至次韻東坡聊試老筆-丁若鏞(정약용)
채화정을 새로 지었는데 권좌형이 마침 왔으므로, 동파의 시에 차운하여 애오라지 노필을 시험하는 바이다-丁若鏞(정약용

菜花蝴蝶嬉春風(채화호접희춘풍) : 채소 꽃의 나비가 봄바람을 즐기고
翁性樂此兒更同(옹성락차아경동) : 이를 좋아한 늙은이는 마음 아이들과 같네.
芥臺菘跗相間綠(개대숭부상간록) : 개자 송자의 받침은 서로 간격 생겨 푸르고
鐵梅穠桃他自紅(철매농도타자홍) : 매화꽃 복숭아꽃은 제 나름대로 붉네.
陳蝶菴後兒畫蝶(진접암후아화접) : 진접암 뒤에선 아이가 나비를 그리는데
纖細却超靑皐翁(섬세각초청고옹) : 섬세하기가 도리어 청고옹 넘어서네.
以此亭懸菜花額(이차정현채화액) : 이 정자에 채화라는 편액을 달고서
活描鬚股移綃中(활묘수고이초중) : 나비의 수염 다리를 생초에 잘 묘사하네.
家貲悉辦鹽井外(가자실판염정외) : 살림살이를 염정 밖에 모두 마련하니
漁採何須紫燕海(어채하수자연해) : 고기잡이를 어찌 자연 바다에서만 하리오
事要先咬菜根(사요선교채근) : 나무뿌리를 먹어야만 일 할 수 있나니
汪生此言朱子佩(왕생차언주자패) : 왕생의 이 말을 주자께서 경계로 삼았다네.
且置三九庾郞憐(차치삼구유랑련) : 가련해라 유랑의 삼구는 제쳐두고서라도
本無十千何公錢(본무십천하공전) : 하공의 심천의 돈은 처음부터 없었다네.
菜史接續無虛日(채사접속무허일) : 채화의 역사 이어져 없는 날이 없고
今朝又記瓜花發(금조우기과화발) : 오늘 아침 또 오이꽃 핀 것을 기록하였네

 

 

二疊(이첩)-丁若鏞(정약용)
두 번째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亭絶低小受長風(정절저소수장풍) : 정자 몹시 낮고 작으나 먼 바람 받아들여
爽涼乃與飛樓同(상량내여비루동) : 시원하기는 바로 높은 누각과 마찬가진데
今年種樹一百本(금년종수일백본) : 금년에 꽃나무 일백 그루를 심어 놨으니
僥幸殘齡享嫣紅(요행잔령향언홍) : 요행히 여생 동안 고운 꽃구경을 누리리라
旣無歌瑟堪析子(기무가슬감석자) : 이미 노래 비파는 자식에게 나눠 줄 것 없고
唯有癡聾解作翁(유유치롱해작옹) : 오직 어리석고 귀먹어 늙은이 될 줄만 아네
深居玩易此亭裏(심거완이차정리) : 이 정자에 깊이 앉아 주역이나 연구한다면
何渠不若蕭漢中(하거불약소한중) : 어찌 소하의 한중 생활만 못하리오.
草庵昔在南徼外(초암석재남요외) : 옛날엔 초막집이 남쪽 교외에 있었기에
兒曹日泣瞻淸海(아조일읍첨청해) : 아이들이 날마다 울면서 청해를 바라보았지.
此亭彈琴復讀書(차정탄금복독서) : 이 정자에선 거문고 타고 또 글도 읽나니
如今去喪無不佩(여금거상무불패) : 이제는 상이 끝나 차지 않은 것이 없다네.
菜花之名天見憐(채화지명천견련) : 채화정의 이름을 하늘도 어여쁘게 보아
百菜蕃廡多算錢(백채번무다산전) : 온갖 채소 무성하여 돈 될 것도 많은데
君來適値天中日(군래적치천중일) : 그대가 마침 단오일에 여기를 왔으니
爲我善禱淸歌發(위아선도청가발) : 날 위해 맑은 노래 불러서 빌어 주게나.

 

 

三疊(삼첩)-丁若鏞(정약용)
세 번째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五月五日滿亭風(오월오일만정풍) : 오월 오일에 정자에 바람 가득하고
山雨欲來雲色同(산우욕래운색동) : 산에 비 내리려고 구름도 모여드네.
櫻桃含口菖揷髻(앵도함구창삽계) : 앵두 입에 머금고 창포 머리에 꽂고
鄕村兒女亦靑紅(향촌아여역청홍) : 시골의 아녀들 또한 푸르게 붉게 꾸몄네.
帖子應敎昔詞客(첩자응교석사객) : 교지 받들어 첩자 짓던 옛날의 문인이
麥穗監打今田翁(맥수감타금전옹) : 이제는 보리타작 감독하는 늙은이라네.
爲君轟飮此亭上(위군굉음차정상) : 그대 위해 이 정자에서 실컷 마시게
不無磈礧餘胸中(불무외뢰여흉중) : 가슴속에 남은 응어리가 없지 않을 것이네.
羨君名字掀域外(선군명자흔역외) : 그대 이름을 나라 밖에 떨친 것 부러워
足跡如吾限溟海(족적여오한명해) : 나의 발자취는 나라 밖을 못 나갔다네.
布衣之極隨星槎(포의지극수성사) : 사신 행차 따른 건 포의의 극치이거니
翰林如夢鳴霞佩(한림여몽명하패) : 꿈만 같구나, 예전앤 한림에서 패옥을 울렸다네.
旣歸而餓無人憐(기귀이아무인련) : 돌아와 굶주릴 땐 가련히 여기는 이 없고
反思屋頭三十錢(반사옥두삼십전) : 도리어 지붕머리 삽 십 전을 생각했네.
枉信九命惜往日(왕신구명석왕일) : 벼슬하길 잘못 믿었던 지난날이 애석하여
誰謂三含以時發(수위삼함이시발) : 세 번 봉한 입을 때맞춰 말하라고 누가 말했나.

 

 

四疊(사첩)-丁若鏞(정약용)
네 번째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昔延州來觀國風(석연주래관국풍) : 옛날에 연주래가 상국 풍을 구경했는데
吾子遊燕事相同(오자유연사상동) : 그대가 연경에 간 일과 서로 같도다.
榕村漁洋頗煜霅(용촌어양파욱삽) : 용촌과 어양은 퍽 광채를 발휘했는데
非關額上貂鑲紅(비관액상초양홍) : 초피모와 양홍에 관계된 것이 아니로구나.
秩宗翰墨先數紀(질종한묵선수기) : 에부의 문필로는 먼저 기균을 꼽게 되고
寶蘇金石皆稱翁(보소금석개칭옹) : 보소의 금석문은 모두 옹방강을 일컫네.
筆洞經說誰傳習(필동경설수전습) : 필동의 경문 해설은 누가 전해 익힐까.
格致都在首章中(격치도재수장중) : 격물치지가 모두 대학 첫째 장에 있다네.
我生茫茫九州外(아생망망구주외) : 나는 아득히 구주의 밖에서 태어나
鱅魚水豹辰弁海(용어수표진변해) : 진한 변한 사이에 바다표범 되었다네.
聞四庫名望洋若(문사고명망양약) : 사고의 명망 들으니 망양지탄이 나오고
駕二酉者纔淵佩(가이유자재연패) : 장서 중에 수레에 실은 것은 겨우 연과 패 두 책 뿐
苞銀走鋪尙可憐(포은주포상가련) : 돈 싸들고 서점에 가는 것도 가련하거늘
況我賣書當酒錢(황아매서당주전) : 더구나 내 책을 팔아 술값에 충당함에서야
莫辭沽酒遲今日(막사고주지금일) : 술 사 먹고 오늘 더 늦어질 일 사양치 마시고
西風打頭船不發(서풍타두선불발) : 서풍이 몹시 불어 배가 떠나지 못한다네.

 

 

五疊(오첩)-丁若鏞(정약용)
다섯 번째 차운하다-丁若鏞(정약용)

別來門館多悲風(별래문관다비풍) : 작별 이후 집에는 슬픈 바람만 불어오고
二十二年今始同(이십이년금시동) : 이십이 지나 비로소 함께 모였네.
適此良辰煙景美(적차량진연경미) : 이 좋은 계절에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
蕉尾舒綠榴綻紅(초미서록류탄홍) : 파초 잎 푸르고 석류꽃도 피어나네.
我如老蠶將就繭(아여노잠장취견) : 나는 늙은 누에처럼 곧 고치로 들어가
子亦未幾終成翁(자역미기종성옹) : 자네도 얼마 안 가서 늙은이가 되리네.
章句之腐詩之癖(장구지부시지벽) : 글자나 글귀에 매달리거나 시에 치우치는 병폐는
二者不類皆不中(이자불류개불중) : 둘이 서로 다르지만 다 부당한 일이네.
黑水西溪摠方外(흑수서계총방외) : 흑수의 서쪽 개울은 모두 경계 밖이요
紫瀾回風亦苦海(자란회풍역고해) : 자색 물결에 회오리바람 또한 괴로운 바다로다.
雖非枘鑿兩相違(수비예착양상위) : 비록 도끼 자루와 구멍이 서로 어긋나진 않지만
眞可弦韋各自佩(진가현위각자패) : 참으로 성품에 따라 스스로 살펴야만 하네.
接隣要受蚿夔憐(접린요수현기련) : 이웃해 서로 돕고 사는 현과 기의 애틋함을 받아
徙山嗟無買山錢(사산차무매산전) : 산을 옮기려 해도 아, 산 살 돈이 없다네.
斂華須報桑楡日(렴화수보상유일) : 겉치레 거두어 응당 만년에 보답을 해야 하리니
老夫此語由衷發(노부차어유충발) : 늙은이 이 말은 충심에서 나온 거라네.

 

過漁家(과어가)-丁若鏞(정약용)
어부의 집을 지나며-丁若鏞(정약용)

婆娑城下盡漁村(파사성하진어촌) : 파사성 아래는 모두가 어촌인데
夜雨沙磯見漲痕(야우사기견창흔) : 밤비로 모래톱에 물 불었던 흔적 보이네.
渚草汀花無限好(저초정화무한호) : 물가에 풀과 물가 꽃들 너무 좋아서
一篙春水度朝昏(일고춘수도조혼) : 장대 하나 폭의 물길을 아침저녁 건넌다네

 

 

飮酒2(음주2)-丁若鏞(정약용)
술 마시며-丁若鏞(정약용)

細馬爭門入(세마쟁문입) : 길들인 좋은 말 다투어 들고
豐貂滿院來(풍초만원래) : 고관들 몰려와 집에 가득하다
直愁衣帶熱(직수의대열) : 의대가 달아오를까 걱정되어
故傍酒家廻(고방주가회) : 짐짓 옆 술집으로 간다.
牢落聊全性(뢰락료전성) : 마셔도 취하지 않아야 하지만
嶔崎任散才(금기임산재) : 고상한 자 방탕해지기도 한다.
所欣惟自適(소흔유자적) : 스스로 만족함이 기쁜 것이니
莫笑坳堂杯(막소요당배) : 우묵한 잔이라도 비웃지 말라.

 

 

飮酒1(음주1)-丁若鏞(정약용)
술 마시며-丁若鏞(정약용)

麴米醺皆好(국미훈개호) : 술은 취하게 만들어서 좋고
雲和抱更斜(운화포갱사) : 거문고는 꼭 안기어 비스듬히 눕네.
獨思千載友(독사천재우) : 혼자서 천 년 전 친구 생각 하고
不向五侯家(불향오후가) : 권세 있는 집안으로는 가지 않는다.
物態寧無變(물태녕무변) : 만물 형태 어찌 변함이 없을까만
吾生奈有涯(오생내유애) : 어이하여 우리 인생 끝이 있을까
閒看庭日轉(한간정일전) : 뜰에서 옮겨 가는 해 그림자 바라보면
花影幾枝叉(화영기지차) : 꽃 그림자 몇 가지로 갈라지던가.

 

 

花下獨酌(화하독작)-丁若鏞(정약용)
꽃 아래서 혼자 술 마시며-丁若鏞(정약용)

烏帽秋風裏(오모추풍리) : 가을바람 속에 모자 쓰고
蕭然坐菊花(소연좌국화) : 국화 앞에 쓸쓸히 앉아 본다.
絶憐幽艶色(절련유염색) : 그윽이 풍기는 예쁜 색깔이 너무 좋아
能慰寂寥家(능위적요가) : 고적한 사람을 위로해준다
黃擺輝輝日(황파휘휘일) : 빛나는 태양 아래 누렇게 널려 있어
紅吹澹澹霞(홍취담담하) : 담담한 노을빛에 붉은 꽃잎 날아든다.
石公今不見(석공금불현) : 이제 석공은 보이지 않고
淸影任橫斜(청영임횡사) : 해맑은 그림자만 비스듬히 비춰든다

 

 

登淸心樓(등청심루)-丁若鏞(정약용)
청심루에 올라-丁若鏞(정약용)

楊柳堤頭畫閣淸(양류제두화각청) : 버드나무 우거진 뚝 위에 단청한 누각 산뜻하고
澄江一面錦紋平(징강일면금문평) : 맑은 강 수면에 비단물결 고요하도다
黃驪寶馬波無跡(황려보마파무적) : 황려보마 헤엄쳐도 물결에 마무 흔적도 없고
玄鶴仙人洞有名(현학선인동유명) : 검은 학 탄 신선은 고을 이름으로 남아있도다
斷港經春芳草遍(단항경춘방초편) : 봄 지난 가파른 강기슭에 향기로운 풀 가득하고
晴煙送雨遠帆明(청연송우원범명) : 비 개이고 안개 걷혀 먼 돛단배 뚜렷이 보인다
漁村薄酒難成醉(어촌박주난성취) : 어촌의 탁주잔에 취한 기운 돌지 않는데
西北浮雲動客情(서북부운동객정) : 서북 하늘 뜬구름은 나그네 마음 흔드는구나

 

 

述志2(술지2)-丁若鏞(정약용)
내 품은 뜻은-丁若鏞(정약용)

嗟哉我邦人(차재아방인) : 아, 우리나라 사람들 애닯아라
辟如處囊中(벽여처낭중) : 주머니 속에 처한 듯하도다
三方繞圓海(삼방요원해) : 삼면으로 바다에 에워싸여
北方縐高崧(북방추고숭) : 북방애는 산맥이 누르고 있도다
四體常拳曲(사체상권곡) : 사지를 항상 펴지 못하니
氣志何由充(기지하유충) : 기상과 마음을 어찌 채울 수 있을까
聖賢在萬里(성현재만리) : 성현은 만 리 먼 곳에 있으니
誰能豁此蒙(수능활차몽) : 누가 능히 이 몽매함 밝혀 줄까
擧頭望人間(거두망인간) : 고개 들고 온 세상 바라보아도
見鮮情瞳曨(견선정동롱) : 보이는 것 드물고 마음만 답답하도다
汲汲爲慕傚(급급위모효) : 남의 것 모방하기 급급하고
未暇揀精工(미가간정공) : 결점은 미처 정밀히 따지지 못하네
衆愚捧一癡(중우봉일치) : 여러 바보들 한 천치를 치켜세워
裾唅令共崇(거함령공숭) : 왁자지껄 함께 받들게 된다네.
未若檀君世(미약단군세) : 단군 시재보다 못하나니
質朴有古風(질박유고풍) : 그 때는 질박하고 고풍이 있었다네

 

 

述志1(술지1)-丁若鏞(정약용)
내 품은 뜻은-丁若鏞(정약용)

弱歲游王京(약세유왕경) : 어린시절 서울에서 놀다가
結交不自卑(결교부자비) : 친구 교제 비겁하지 않았다네
但有拔俗韻(단유발속운) : 속기 벗은 운치 있어
斯足通心期(사족통심기) : 이점이 속마음과 통할 수 있었다네
戮力返洙泗(륙력반수사) : 힘 다해 공맹의 도 따르고
不復問時宜(불복문시의) : 두 번 다시 세상을 묻지 않았다네
禮義雖暫新(예의수잠신) : 예의를 비록 잠깐 차렸으나
尤悔亦由玆(우회역유자) : 허물을 후회함이 이에서 또한 생겼다네
秉志不堅確(병지불견확) : 지닌 뜻 확고하지 않으면
此路寧坦夷(차로영탄이) : 내 걷는 이 길이 어찌 순탄하리오
常恐中途改(상공중도개) : 항상 중도에 변하여

 

 

歲暮(세모)-丁若鏞 (정약용)
한해가 저무는데-丁若鏞 (정약용)

歲暮樓山雪正深(세모루산설정심) : 세모라 누산에 눈이 한창 쌓였는데
絶無車馬到溪陰(절무차마도계음) : 시내 개울이 깊어 찾는 말과 수레 하나 없네.
恒存洒脫塵埃氣(항존쇄탈진애기) : 세상 벗어날 생각 항상 가지고
遂有硏窮宇宙心(수유연궁우주심) : 마침내 우주의 진리 탐구할 마음 생기었네.
富貴極天終有盡(부귀극천종유진) : 하늘에 닿는 부귀도 아할 때가 있고
風煙滿地可相尋(풍연만지가상심) : 땅에 가득한 바람과 안개 찾아봄도 좋겠네.
休將妄念商量去(휴장망념상량거) : 헛된 마음 갖고 함부로 생각 말고
未信奇材老鄧林(미신기재노등림) : 뛰어난 인재 등림에서 늙는 것 믿지 못하겠네

 

 

憶李兄(억이형)-丁若鏞(정약용)
이형을 생각하며-丁若鏞(정약용)

陂塘秋水夜生涼(피당추수야생량) : 비탈 저수지의 가을 물에 밤기운 서늘하고
西北天高雲氣揚(서북천고운기양) : 서북방 높은 하늘 구름도 걷히었다.
水面荷花千萬朶(수면하화천만타) : 물위의 연꽃은 천만 송이 피어나는데
與誰臨賞作年芳(여수임상작년방) : 나는 누구와 즐기며 올 해의 추억을 만들까

 

 

宿荷潭(숙하담)-丁若鏞(정약용)
하담에서 묵으며-丁若鏞(정약용)

惆悵西歸櫂(추창서귀도) : 서글퍼라, 서로 돌아가는 배여
微茫已七年(미망이칠년) : 어느새 칠년 세월 아득하구나.
緇冠今突爾(치관금돌이) : 지금은 치포관을 우뚝 쓰고
華蓋獨翩然(화개독편연) : 마차의 덮개 홀로 펄펄 날린다.
宿草纏初雪(숙초전초설) : 묵은 풀은 첫눈에 얽히고
高檆冪暮煙(고檆멱모연) : 저녁연기 높은 삼나무를 덮는다.
啁啾有棲雀(조추유서작) : 둥지에 깃든 참새들이 짹짹거리고
那禁涕漣漣(나금체련련) : 흐르는 눈물 어찌 금할 수 있으리.

 

구우(久雨)-정약용(丁若鏞)
장마비-정약용(丁若鏞)

窮居罕人事(궁거한인사) : 궁하게 사노라니 찾는 사람 없어
恒日廢衣冠(항일폐의관) : 항상 의관도 갖추지 않고 살았네.
敗屋香娘墜(패옥향낭추) : 낡은 집엔 향낭각시 떨어져있고
荒畦腐婢殘(황휴부비잔) : 황량한 들판에 팥꽃만 시들어 있네
睡因多病減(수인다병감) : 병 많아 잠마저 줄어들고
愁賴著書寬(수뢰저서관) : 글 짓는 일로써 수심을 달래본다
久雨何須苦(구우하수고) : 장마가 지루한들 어찌 괴롭다하리
晴時也自歎(청시야자탄) : 날이 개어도 스스로 탄식하는 것을

 

 

耽津漁歌4(탐진어가4)-丁若鏞(정약용)
탐진어가-丁若鏞(정약용)

楸洲船到獺洲淹(추주선도달주엄) : 추자도 장사배가 고달도에 이르러
滿載耽羅竹帽簷(만재탐라죽모첨) : 제주도 죽모첨을 가득 싣고 왔네
縱道錢多能善賈(종도전다능선고) : 돈 잘 버는 장사라 말들하지만
鯨波無處得安恬(경파무처득안념) : 곳곳에 고래 같은 파도치니 어찌 마음 편할까

 

 

耽津漁歌3(탐진어가3)-丁若鏞(정약용)
탐진어가-丁若鏞(정약용)

松燈照水似朝霞(송등조수사조하) : 관솔불이 물에 비춰 아침노을 같고
鱗次筒兒植淺沙(린차통아식천사) : 모래뭍에는 대나무 홈통들이 고기비늘처럼 꽂혀있네
莫遣波心人影墮(막견파심인영타) : 물속에 사람의 그림자 비춰들게 하지 마오
怕他句引赤胡鯊(파타구인적호사) : 공연히 큰 상어 불러올까 두렵네

 

 

耽津漁歌2(탐진어가2)-丁若鏞(정약용)
탐진어가-丁若鏞(정약용)

三汛纔廻四汛來(삼신재회사신래) : 새물 겨우 잦아들면 네물이 밀려와
鵲漊波沒舊漁臺(작루파몰구어대) : 까치 파도의 물결이 어대였던 곳을 덮어버리네
漁家只道江豚好(어가지도강돈호) : 어촌에서는 복어만 좋다고 하여
盡放鱸魚博酒杯(진방로어박주배) : 농어를 죄다 값 싼 술과 바꿔버리네

 

 

耽津漁歌1(탐진어가1)-丁若鏞(정약용)
탐진어가-丁若鏞(정약용)

桂浪春水足鰻鱺(계랑춘수족만려) : 계량 봄물에 뱀장어 많고
橕取弓船漾碧漪(탱취궁선양벽의) : 활선에 몸을 싣고 양양한 푸른 물결 지나간다
高鳥風高齊出港(고조풍고제출항) : 높새바람 높이 불고, 배는 일제히 출항하여
馬兒風緊足歸時(마아풍긴족귀시) : 만선으로 돌아 올 때, 마파람 몰아치네

 

 

耽津農歌5(탐진농가5)-丁若鏞(정약용)
탐진농가-丁若鏞(정약용)

秧雇家家婦女狂(앙고가가부녀광) : 집집마다 모내기 품으로 여자들이 미친 듯 바빠
不曾刈麥助盤床(불증예맥조반상) : 보리 베는 남편의 일도 도우려 하지 않는다네
輕違李約趍張召(경위이약추장소) : 이씨네 약속 가볍게 어기고 장씨네 부름 따라가니
自是錢秧勝飯秧(자시전앙승반앙) : 이 때부터 돈모가 밥모보다 낫다 하네

 

 

耽津農歌4(탐진농가4)-丁若鏞(정약용)
탐진농가-丁若鏞(정약용)

穮蔉從來不用鋤(표곤종래불용서) : 종래에는 김매고 북주기에 호미 쓰지 않고
手搴稂莠亦須除(수건랑유역수제) : 잡초 뽑을 때도 뿌리까지 뽑지 못 했네
那將亦脚蜞鍼血(나장역각기침혈) : 다리에 방개 붙어 침을 쏘아 흐르는 피, 이를 어쩌나
添繪銀臺遞奏書(첨회은대체주서) : 이 피로 그린 그림, 주서 대신 은대에 올렸으면

 

 

耽津農歌3(탐진농가3)-丁若鏞(정약용)
탐진농가-丁若鏞(정약용)

洌水之間丈二鍬(렬수지간장이초) : 한강변에 두 길 되는 가래는
健夫齊力苦酸腰(건부제력고산요) : 장정이 힘을 다해도 호리가 아프다는데
南童隻手持短鍤(남동척수지단삽) : 남쪽 아이들 한 손에 가래 잡고
容易治畦引灌遼(용이치휴인관요) : 쉽게 논 갈고 물대기 하네

 

 

耽津農歌2(탐진농가2)-丁若鏞(정약용)
탐진농가-丁若鏞(정약용)

稻田洩水須種麥(도전설수수종맥) : 논에 물 뺀 뒤에는 보리를 심어야 하고
刈麥卽時還揷秧(예맥즉시환삽앙) : 보리를 베고 난 후에는 바로 모내기 하세
不肖一日休地力(불초일일휴지력) : 땅의 힘을 하루라도 놀리지 말고
四時嬗變色靑黃(사시선변색청황) : 철따라 청색, 황색으로 아름답게 변하네

 

 

耽津農歌1(탐진농가1)-丁若鏞(정약용)
탐진농가-丁若鏞(정약용)

臘日風薰雪正晴(﨟일풍훈설정청) : 섣달 납일에 훈풍 부니 눈이 개이고
籬邊札札曳犂聲(리변찰찰예리성) : 울타리 밖에는 쟁기 끄는 소리
主翁擲杖嗔傭懶(주옹척장진용라) : 주인 영감 몽둥이 내던지며 머슴에게 화를 내며
今歲纔翻第二耕(금세재번제이경) : 두 번 갈이를 이제야 시작한다고 호통친다

 

 

耽津村謠5(탐진촌요5)-丁若鏞(정약용)
탐진촌요-丁若鏞(정약용)

水田風起麥波長(수전풍기맥파장) : 논에 바람이니 보리밭이 물결치고
麥上場時稻揷秧(맥상장시도삽앙) : 보리타작할 때에 모내기 시작되네
菘菜雪天新葉綠(숭채설천신엽녹) : 배추는 눈 내리는 날에 파랗게 새잎 나고
鷄雛蜡月嫩毛黃(계추사월눈모황) : 섣달에 깐 병아리는 노란 털이 예쁘다

 

 

耽津村謠4(탐진촌요4)-丁若鏞(정약용)
탐진촌요-丁若鏞(정약용)

崩城敗壁枕寒丘(붕성패벽침한구) : 차가운 언덕 위, 무너진 성벽
鐃吹黃昏古礎頭(뇨취황혼고초두) : 황혼에 주춧돌에 징소리 울려온다
諸島年年空斫木(제도년년공작목) : 해마다 여러 섬에 헛되이 나무만 찍어내고
無人重建聽潮樓(무인중건청조누) : 청조루 누각을 중건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耽津村謠3(탐진촌요3)-丁若鏞(정약용)
탐진촌요-丁若鏞(정약용)

海岸篔簹百尺高(해안운당백척고) : 해안가 왕대나무 백 척이나 되었는데
如今不中釣船篙(여금불중조선고) : 지금은 낚싯배의 상앗대도 못 하겠네
園丁日日培新笋(원정일일배신순) : 정원사들 날마다 새 죽순 길러내어
留作朱門竹瀝膏(유작주문죽력고) : 대궐에 진상할 죽력제 약제를 만든 탓이네

 

 

耽津村謠2(탐진촌요2)-丁若鏞(정약용)
탐진촌요-丁若鏞(정약용)

山茶接葉冷童童(산다접엽냉동동) : 동백나무에 달린 잎사귀 차갑고 싱싱한데
雪裏花開鶴頂紅(설리화개학정홍) : 눈 속에 꽃이 피어 학 머리처럼 붉도다
一自甲寅鹽雨後(일자갑인염우후) : 갑인 어느 하루 소금 비 맞은 후엔
朱欒黃盡櫾枯叢(주란황진요고총) : 등자나무 유자나무 색 다 바래고 마른 나무 다 되었네

 

 

耽津村謠1(탐진촌요1)-丁若鏞(정약용)
탐진촌요-丁若鏞(정약용)

樓犁嶺上石漸漸(루리영상석점점) : 누리령 고개위에 돌 우뚝 솟아
長得行人淚酒沾(장득행인루주첨) : 길이 행인들 술에 눈물 떨군다
莫向月南瞻月出(막향월남첨월출) : 남쪽으로 달 향해, 달 떠는 것 보지마오
烽烽都似道峰尖(봉봉도사도봉첨) : 봉마다 도봉산 봉우리인양 뾰족하다오

 

 

客中書懷(객중서회)-丁若鏞(정약용)
나그네 속마음-丁若鏞(정약용)

北風吹我如飛雪(북풍취아여비설) : 북풍이 흰눈처럼 날리어 내게 불어오고
南抵康津賣飯家(남저강진매반가) : 나는 남으로 강진 땅 주막에 와있네
幸有殘山遮海色(행유잔산차해색) : 다행히 산들이 바다를 가려주고
好將叢竹作年華(호장총죽작연화) : 대나무 숲 해마다 꽃처럼 아름다워지네
衣綠地瘴冬還減(의녹지장동환감) : 당 풍토병이 심하여 옷은 겨울에 더 벗어야하고
酒爲愁多夜更加(주위수다야갱가) : 근심이 많아 밤에는 더욱 술을 마시네
一事纔能消客慮(일사재능소객려) : 나그네 수심을 삭여주는 한 가지 일
山茶已吐臘前花(산다이토납전화) : 동백나무 이미 붉은 꽃을 토해내고 있네

 

 

新年得家書(신년득가서)-丁若鏞(정약용)
새해에 고향집 편지를 받고-丁若鏞(정약용)

歲去春來漫不知(세거춘래만부지) : 세월이 흘러, 봄이 온 것도 알지 못하고
鳥聲日變此堪疑(조성일변차감의) : 새소리 날마다 변하니 이 무슨 일인가 했네
鄕愁値雨如虅蔓(향수치우여등만) : 봄비에 고향생각 등나무 덩굴같이 헝클어지고
瘦骨輕寒似竹枝(수골경한사죽지) : 수척한 나의 몰골 작은 추위에도 대나무처럼 말랐네
厭與世看開戶晩(염여세간개호만) : 세상일 보기 싫어 늦게야 문을 열고
知無客到惓衾遲(지무객도권금지) : 찾는 손님 없으니 이불 개기 귀찮아라
兒曹也識鎖閑法(아조야식쇄한법) : 고향의 아들 쇄한법을 알아보고
鈔取醫書付一鴟(초취의서부일치) : 의서 뽑아 한질을 부쳐왔네
千里傳書一小奴(천리전서일소노) : 하인은 천리 먼 길 편지를 전해오니
短檠茅店獨長吁(단경모점독장우) : 주막 등잔 아래 홀로 앉아 길게 탄식하네
稚兒學圃能懲父(치아학포능징부) : 어린 아이 농사 배워 아비를 징계하고
病婦緶衣尙愛夫(병부편의상애부) : 병든 아내 옷을 지어 아직도 나를 생각하네
憶嗜遠投紅穤飯(억기원투홍穤반) : 내 식성 알아서 찹쌀을 보내주니
救飢新賣鐵投壺(구기신매철투호) : 굶주림 면하려 새로 철투호도 팔았다네
旋裁答札無他語(선재답찰무타어) : 즉석에서 답장편지 무슨 말을 더 할까
飭種桑염數百株(飭種桑염수백주) : 뽕나무 수백 그루 정성들여 심어라 했네

 

 

驚雁(경안)-丁若鏞(정약용)
기러기-丁若鏞(정약용)

銅雀津西月似鉤(동작진서월사구) : 동작나루 서쪽에 갈고리 같은 초승달
一雙驚雁度沙洲(일쌍경안도사주) : 기러기 한 쌍 모래톱을 날아간다
今宵共宿蘆中雪(금소공숙로중설) : 오늘밤은 갈대밭 눈 속에서 자나
明日分飛各轉頭(명일분비각전두) : 내일은 자기 길로 나뉘어 날아간다

 

 

山樓夕坐(산루석좌)-丁若鏞(정약용)
산속 누대에 저적에 혼자 앉아-丁若鏞(정약용)

山樓角歇度昏鴉(산루각헐도혼아) : 피리소리 끊어진 산 속 누각, 황혼 녘 까마귀 날고
獨立庭心見露華(독립정심견노화) : 뜰에 나 혼자 이슬 꽃을 바라본다
風裏疎篁交碎月(풍이소황교쇄월) : 바람 부는 성긴 대숲에 이리저리 달빛 부서지고
雨餘殘菊臥開花(우여잔국와개화) : 비 온 뒤라 남은 국화 넘어진 채 다시 꽃피네
香糕薦廟思京國(향고천묘사경국) : 햇곡식으로 빚은 떡 사당에 올리니, 서울생각 간절하고
濁酒招隣羨野家(탁주초인선야가) : 막걸리로 이웃 부르니, 시골집이 부럽구나
我昔漢陽城裏住(아석한양성이주) : 나 지난 날 한양성에 살았는데
不知何事到天涯(부지하사도천애) : 무슨 일로 머나 먼 곳, 이곳에 와 있는지 모르겠네

 

 

自笑(자소)-丁若鏞(정약용)
나를 비웃으며-丁若鏞(정약용)

自笑吾生鬢未班(자소오생빈미반) : 우습다, 내 인생 반백도 되기 전에
太行車轍苦間關(태행거철고간관) : 험한 태행산 올라가는 수레 같아, 고비마다 괴로워라
破書千卷入金闕(파서천권입금궐) : 천권의 책을 읽어 대궐에 들었으나
買宅一區留碧山(매댁일구유벽산) : 지금은 집 한 채 마련하여 푸른 산골에 머문다네
形與影隣來海上(형여영인래해상) : 외로운 몸 나 혼자 바닷가로 오니
謗隨名至滿人間(방수명지만인간) : 비방이 이름 따라 와 세상에 가득하네
小樓値雨成高臥(소루치우성고와) : 비를 만나 작은 누대에 높이 누우니
似是馬曹終日閑(사시마조종일한) : 곧 마부들 조일토록 너무도 편안해 보여라

 

 

歎貧(탄빈)-丁若鏞(정약용)
가난을 탄식하네-丁若鏞(정약용)

請事安貧語(청사안빈어) : 일마다 안빈낙도 청해도
貧來却未安(빈래각미안) : 가난해 지니 편하지 않네
妻咨文采屈(처자문채굴) : 마누라 바가지에 얼굴빛 비굴해지고
兒餒敎規寬(아뇌교규관) : 아이들 굶주림에 엄하게 못 하겠네
花木渾蕭颯(화목혼소삽) : 꽃과 나무 확연히 쓸쓸해지고
詩書摠汗漫(시서총한만) : 시 짓고 글 읽는 것, 모두 지루해
陶莊籬下麥(도장리하맥) : 기와집 울타리 아래 쌓인 보리도
好付野人看(호부야인간) : 좋게 말하여 시골 사람들 눈요기라오

 

 

宿汀村(숙정촌)-丁若鏞(정약용)
강 마을에 묵으며-丁若鏞(정약용)

落日凄凄盡(락일처처진) : 지는 해 쓸쓸히 넘어가고
春江泯泯流(춘강민민류) : 봄 강물은 민민히 흘러간다
風微魚更食(풍미어갱식) : 바람은 하늘하늘 고기는 다시 입질하고
林黑鳥爭投(임흑조쟁투) : 숲은 어두워지고 새들은 둥지 찾아 날아든다
宿纜依蒲岸(숙람의포안) : 부들 가득한 강 언덕엔 고깃배 매여 있고
荒蹊間麥疇(황혜간맥주) : 거칠어진 작은 길 사이로 보리밭 보이네
望門還暫立(망문환잠립) : 사립문 바라보고 잠깐 우두커니 서서보니
村色信淸幽(촌색신청유) : 시골 풍경은 정말로 맑고 그윽하다

 

 

過景陽池(과경양지)-丁若鏞(정약용)
경양지를 자나며-丁若鏞(정약용)

雜樹臨官道(잡수임관도) : 잡목 우거진 곳에서 국도를 보니
芳池近驛樓(방지근역루) : 역루 가까이에 방초 우거진 못 있네
照顔春水遠(조안춘수원) : 아득히 넓은 봄 못물에 얼굴 비춰보니
隨意晩雲浮(수의만운부) : 저녁 구름도 제 뜻대로 두둥실 떠 있네
竹密妨行馬(죽밀방행마) : 대나무 울창하여 말 지나기 어렵고
荷開合泛舟(하개합범주) : 연꽃이 활짝 피어 뱃놀이 제격이네
弘哉灌漑力(홍재관개역) : 대단하구나, 관개 사업의 힘이여
千畝得油油(천무득유유) : 천 이랑 논들이 기름지게 되었구나

 

 

白雲(백운)-丁若鏞(정약용)
백운-丁若鏞(정약용)

秋風吹白雲(추풍취백운) : 가을바람 불어 흰 구름 흩어져
碧落無纖蘙(벽락무섬예) : 푸른 하늘엔 티끌 한 점 없구나
忽念此身輕(홀념차신경) : 갑자기 몸 가벼워진 것 같아
飄然思出世(표연사출세) : 가벼이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어라

 

 

篙工歌(고공가)-丁若鏞(정약용)
사공의 노래-丁若鏞(정약용)

我本山中採藥翁(아본산중채약옹) : 나는 원래 산속에서 약 캐는 늙은이
偶來江上爲篙工(우래강상위고공) : 우연히 강에 와 사공이 되었소
西風吹斷西江道(서풍취단서강도) : 서풍이 불어 서쪽 강 길이 끊겨
却向東江遇東風(각향동강우동풍) : 이제 동으로 가려다 동풍을 만나소
豈其風吹故違我(기기풍취고위아) : 어찌 바람이 불어 내 뜻을 어기랴
我自不與風西東(아자불여풍서동) : 내 스스로 바람의 동서를 같이하지 못한 것이라네
已焉哉莫問風非與我是(이언재막문풍비여아시) : 아, 바람은 그릇되고 내가 옳은지 묻지 말라
不如採藥還山中(불여채약환산중) : 약 캐러 다시 산으로 돌아감만 못 하네

 

 

遣興(견흥)-丁若鏞(정약용)
흥에 겨워-丁若鏞(정약용)

蠻觸紛紛各一偏(만촉분분각일편) : 함부로 다투며 각자 고집 피웠네
客愁深念淚汪然(객수심념루왕연) : 객지의 나그네 서러워 눈물이 절로 나네
山河擁塞三千里(산하옹색삼천리) : 산하는 옹색하여 삼천리
風雨交爭二百年(풍우교쟁이백년) : 비바람 세월 이백년을 서로 싸웠네
無限英雄悲失路(무한영웅비실로) : 무수한 영웅호걸 길 잃어 서러워하고
幾時兄弟恥爭田(기시형제치쟁전) : 몇 번이나 형제들은 재산을 다투었는가
若將萬斛銀潢洗(약장만곡은황세) : 만약에 온갖 재물 은하수 맑은 물에 씻을 수 있다면
瑞日舒光照八埏(서일서광조팔연) : 저 성스러운 햇빛으로 온 누리를 밝히리라

遣憂十二章(견우십이장)-丁若鏞(정약용)
근심을 보내다-丁若鏞(정약용)

1장
鳧吏未必偏(부리미필편) : 부리가 반드시 외진 지역이 아니고
震朝未必中(진조미필중) : 전조가 꼭 중앙인 것도 아니어라.
團團一丸土(단단일환토) : 둥글고 둥근 땅 덩어리
本自無西東(본자무서동) : 본래는 서쪽도 동쪽도 없는 것이네.

2장
盡茹天下書(진여천하서) : 천하 서적을 다 소화하고
竟欲吐周易(경욕토주역) : 주역으로 나타내려 했는데
天欲破其慳(천욕파기간) : 하늘이 내가 아끼는 것 깨뜨리려
賜我三年謫(사아삼년적) : 나에게 삼년 귀양살이를 주었구나.

3장
有天容我頂(유천용아정) : 하늘 있어 내 머리 놀릴 수 있고
有地容我足(유지용아족) : 땅이 있어 내 발도 놀릴 수 있도다.
有水兼有穀(유수겸유곡) : 물이 있고 곡식도 있어서
自來充我腹(자래충아복) : 언제든지 스스로 내 배는 채운다네.

4장
富貴固一夢(부귀고일몽) : 부귀도 원래 한 꿈속이요
窮阨亦一夢(궁액역일몽) : 곤궁과 재앙도 똑같이 꿈이로다.
夢覺斯已矣(몽각사이의) : 꿈에서 깨고 나면 그뿐인 것을
六合都一弄(육합도일농) : 육합이라는 이 모던 것 하나의 장난거리인 것을.

5장
歷數世間累(력수세간누) : 이 세상 어려움 하나하나 헤아려 보면
妻孥居上頭(처노거상두) : 아내와 자식들이 최고 걸림돌이도다.
誰知出家者(수지출가자) : 누가 알랴 집을 나온 자
浩蕩成玆遊(호탕성자유) : 이리도 호탕하게 놀 수 있는 것을

6장
塗豕故相逐(도시고상축) : 흙밭 돼지와도 상종 하고
糞蛆方自甘(분저방자감) : 똥구더기라도 이제 달게 여기는데
毛嬙與淳母(모장여순모) : 모장이나 순모야
且置不須談(차치불수담) : 그냥 둬야지 반드시 말 할 필요도 없으니.

7장
登高常慮墜(등고상려추) : 높은 데 오르면 항상 떨어질까 염려되고
旣墜心浩然(기추심호연) : 떨어지고 나면 마음 오히려 후련해지는구나.
仰見軒冕客(앙견헌면객) : 초헌 타고 의관 갖춘 자들 쳐다보면
纍纍方倒懸(류류방도현) : 위태로워 거꾸로 매달린 것 같도다.

8장
富貴以行惡(부귀이행악) : 부유함과 존귀함으로 나쁜 짓 하는 것
猶如虎傅翼(유여호부익) : 호랑이에게 날개를 붙여준 셈이어라.
吾今鳥鎩翮(오금조쇄핵) : 나는 지금 깃 잘린 새가 되어
寡虐以爲德(과학이위덕) : 조금 사납게 구는 것으로 덕 삼는다네.

9장
君看食魚者(군간식어자) : 고기 먹는 사람을 그대는 보았지요
味毒俱入腹(미독구입복) : 맛과 함께 독까지 먹는 것이라네.
旣不享其味(기불향기미) : 그 맛을 즐기지 않는다면
亦不吐其毒(역불토기독) : 그 독을 토하지도 않을 것이네.

10장
孩兒無故啼(해아무고제) : 어린 아이 까닭 없이 울고
無故孩然笑(무고해연소) : 까닭 없이 어린 아이 해죽 웃기도 한다
歡戚本無故(환척본무고) : 기쁘고 슬픈 건 본래 까닭이 없는 것
年齡有長少(년령유장소) : 나이만 어른 애가 있을 뿐이라네.

11장
未展人常惜(미전인상석) : 뜻을 못 폈을 땐 사람들이 아껴주다가
旣施人議短(기시인의단) : 일단 써 보이면 사람들은 단점만 말하는구나.
所以巢許倫(소이소허윤) : 그래서 소보 허유 무리들이
掉頭就閒散(도두취한산) : 머리를 흔들고 일을 맡지 않고 한가히 산다네.

12장
民飢不我怨(민기불아원) : 백성들이 굶주려도 나를 원망치 않을 것이고
民頑我不知(민완아부지) : 백성들이 무지해도 나는 모른다네.
後世論我曰(후세논아왈) : 후세에 나를 논하여 말하기를
得志必有爲(득지필유위) : 뜻대로 되었다면 반드시 무언가 했으리라고 하리라.

 

 

憂來十二章(우래십이장)-丁若鏞(정약용)
근십십이장-丁若鏞(정약용)

1장
弱齡思學聖(약령사학성) : 어려서는 성인이 되고 싶었고
中歲漸希賢(중세점희현) : 중년에 와 점점 현자라도 바랐는데
老去甘愚下(노거감우하) : 늙어서는 하우도 감수하고 있으니
憂來不得眠(우래부득면) : 그 걱정으로 잠 못 자겠네.

2장
不生宓羲時(불생복희시) : 복희 시대에 태어나지 못해
無由問宓羲(무유문복희) : 복희에게 물을 길이 없고
不生仲尼世(불생중니세) : 공자님 시절에 태어나지 못해
無由問仲尼(무유문중니) : 중니에게 물을 방법도 없도다.

3장
一顆夜光珠(일과야광주) : 한 알의 야광주를
偶載賈胡舶(우재가호박) : 우연히 오랑캐 장삿배에 실었다가
中洋遇風沈(중양우풍침) : 바다 중앙에 풍파 만나 침몰되어
萬古光不白(만고광불백) : 만고토록 그 빛 빛나지 않네..

4장
唇焦口旣乾(진초구기건) : 입술 타고 입은 이미 말라
舌敝喉亦嗄(설폐후역사) : 혀도 갈라지고 목도 다 쉬었네.
無人解余意(무인해여의) : 내 마음 아는 자 아무도 없고
駸駸天欲夜(침침천욕야) : 너울너울 밤만 오려고 하는구나.

5장
醉登北山哭(취등북산곡) : 취해 북산에 올라 통곡하니
哭聲干蒼穹(곡성간창궁) : 통곡소리 하늘로 오르네.
傍人不解意(방인불해의) : 곁 사람들 속도 모르고
謂我悲身窮(위아비신궁) : 나 더러 신세 궁해 슬퍼한다 하는구나.

6장
酗誶千夫裏(후수천부리) : 술에 취해 떠드는 천 명 속에서
端然一士莊(단연일사장) : 단아하게 선비 한 사람 앉아있구나.
千夫萬手指(천부만수지) : 그 천 명 만 손가락 모두가 손가락질하며
謂此一夫狂(위차일부광) : 이 한 선비 미쳤다고 말을 한다네.

7장
無可奈何老(무가나하노) : 늙어가는 것을 어찌 할까
無可奈何死(무가나하사) : 어쩔 수 없이 죽어야지
一死不復生(일사불복생) : 한번 죽으면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데
人間天上視(인간천상시) : 인간 세상을 천상으로 알고 있는가.

8장
紛綸眼前事(분륜안전사) : 헝클어진 눈앞의 일들
無一不失當(무일불실당) : 옳게 된 것 하나도 없는데
無緣得整頓(무연득정돈) : 그를 정리할 길이 하나 없어
撫念徒自傷(무념도자상) : 깊이 생각하면 마음만 아프다오.

9장
以心爲形役(이심위형역) : 마음을 육신 노예 삼았다고
淵明亦自言(연명역자언) : 도연명도 스스로 말을 했지만
百戰每百敗(백전매백패) : 백 번 싸워야 백 번 다 지니
自視何庸昏(자시하용혼) : 이 몸 왜 이리 멍청한지.

10장
太陽疾飛靃(태양질비확) : 태양이 날아가는 소리같이 빠르고
銃丸不能追(총환불능추) : 총알도 따를 수가 없다네.
無緣得攀駐(무연득반주) : 그를 잡아맬 길이 없어
念此腸內悲(염차장내비) : 이를 생각하면 슬프기만 하구나.

11장
虎狼食羊羖(호랑식양고) : 범과 이리는 어린양을 잡아먹고
朱血膏吻唇(주혈고문진) : 붉은 피가 입술에 낭자하구나.
虎狼威旣立(호랑위기립) : 범과 이리 위세가 이미 당당하여
狐ꟙ贊其仁(호토찬기인) : 여우 토끼는 인자하다고 하는구나.

12장
榮榮小桃樹(영영소도수) : 예쁘고 조그마한 복사나무
方春花滿枝(방춘화만지) : 봄철이면 가지마다 꽃이지만
歲暮有摧折(세모유최절) : 저물어 이리저리 꺾이고 나면
蕭蕭非故姿(소소비고자) : 쓸쓸하기 옛 자태 결코 아니라네.

 

 

登瑞石山(등서석산)-丁若鏞(정약용)
서석산에 올라-丁若鏞(정약용)
 
瑞石衆所仰(서석중소앙) : 석산은 뭇사람이 우러르는 곳
厜㕒有古雪(수㕒유고설) : 높이 솟아 해묵은 눈이 아직 남아있다.
不改渾沌形(불개혼돈형) : 태고 적의 형상 고치지 않고
眞積致峻巀(진적치준찰) : 쌓고 쌓아 우뚝하구나.
諸山騁纖巧(제산빙섬교) : 주위의 여러 산은 정교하고
刻削露骨節(각삭노골절) : 깎고 새겨 뼈가 드러났구나.
將登邈無階(장등막무계) : 올라오려 할 때는 층계도 없더니
及遠知卑列(급원지비열) : 멀리 오자 산하가 낮음을 알겠네.
僻行皭易顯(벽행작이현) : 모난 행동 간단히 드러나지만
至德闇難別(지덕암난별) : 지극한 덕 덮여 분별이 어려워라.
愛茲磅礴質(애자방박질) : 사랑스러워라, 이 산의 충만한 본질
涵蓄靳一洩(함축근일설) : 고스란히 머금어 빈틈이 없구나.
雷雨不受鏟(뢰우불수산) : 천둥과 폭우에도 깎이지 않아
謹保天所設(근보천소설) : 조물주 만든 그대로구나.
自然有雲霧(자연유운무) : 자연히 구름 안개 피어 나
時滄下土熱(시창하토열) : 때때로 푸른 바다 아래 땅의 열기 식혀주네

 
 

독좌음(獨坐吟)-정약용(丁若鏞)
혼자 앉아서-정약용(丁若鏞)

世云棄我我忘身(세운기아아망신) : 세상 나를 버리고, 나는 내 몸 잊었구나
七尺浮沈付與人(칠척부심부여인) : 일곱 자 내 몸을 남에게 맡겨 버리는가
偶落江湖明月夜(우락강호명월야) : 밝은 달밤, 우연히 강 호수에 나오니
水晶界上不生塵(수정계상불생진) : 수정 같은 세계에는 먼지 하나 생기지 않아
村南村北百花光(촌남촌북백화광) : 마을 남북쪽에 온갖 꽃이 활짝 피어
翁意逢春欲變郞(옹의봉춘욕변랑) : 늙은이가 봄을 만나 소년이 되고 싶구나
笑問壚婆連日債(소문로파연일채) : 선술집 노파에게 연일 진 빚 웃으며 물으며
鷄毛筆記枕邊牆(계모필기침변장) : 닭털 붓으로 베개 머리 벽에다 적어두노라
從古脩名向此求(종고수명향차구) : 예로부터 좋은 명성을 여기에서 구하나니
窮途天許可人由(궁도천허가인유) : 하늘이 허락한 궁한 길을 사람에서 찾을까
靈均若使身榮達(영균약사신영달) : 굴원이 만일 자신이 영달을 누리게 했다면
未必離騷在案頭(미필리소재안두) : 이소경이 반드시 지어지기는 않았으리라
園收橡栗禦窮冬(원수상률어궁동) : 정원의 상수리와 밤을 거두어 겨울 대비했는데
還怪春來懶作農(환괴춘래나작농) : 도리어 이상하구나, 봄날엔 농사짓기 싫증난다
但遣村隣操耒耜(단견촌린조뢰사) : 다만 이웃 사람 보내어 쟁기 대신 잡혀
不妨忘食獨搘筇(불방망식독지공) : 식사도 잊고 홀로 지팡이 의지함을 방해마라
悲歡回互變三飧(비환회호변삼손) : 슬픔과 기쁨 서로 돌아 끼니마다 변하고
龍爛泥沙海化鯤(용란니사해화곤) : 용은 진흙에서 시들고, 바다 새는 붕새로 변한다
至竟人間無好事(지경인간무호사) : 필경에는 인간 세상에 좋은 일이 없으리니
不須招返未歸魂(불수초반미귀혼) : 돌아가 오지 못하는 넋을 불러 올 것도 없도다
樂事元來轉眼空(락사원래전안공) : 즐거운 일은 원래 순식간에 없어지고
臨分却恨有相逢(임분각한유상봉) : 헤어지며 문득 서로 만날 수 있기를 한하는구나
遙憐客散樽空後(요련객산준공후) : 아득히 가련하다, 손님들 가고난 뒤 술통은 다 비고
矮屋悲吟臥孔融(왜옥비음와공융) : 낮은 집에 홀로 누워서 슬피 글을 읊던 공융이여
曾業文章擬代耕(증업문장의대경) : 일찍이 글을 업으로 삼아 농사 대신 벼슬 하려 하였으나
誤尋徑路入愁城(오심경로입수성) : 지름길 잘못 찾아 근심의 성에 들었구나
田翁常做閑閑樂(전옹상주한한락) : 시골 늙은이는 항상 한가하고 여유 있는 것은
賴是平生不識丁(뢰시평생불식정) : 곧 평생에 고무래 정자도 모르는 무식 때문이로다
海山休說路三千(해산휴설로삼천) : 동해의 봉래산이 삼천 리 밖 있는 것 말하지 말라
已作陳人六十年(이작진인육십년) : 이미 진부한 인생 육십 평생이 다 되었도다
肯逐劉安鷄犬後(긍축유안계견후) : 즐겨 유안의 닭과 개의 뒤를 따라
金丹滿握不昇天(금단만악불승천) : 단약을 가득 쥐고 하늘에 오르지 않으리오
雨後遙山別樣孤(우후요산별양고) : 비 온 뒤의 먼 산은 유별나게 고적하니
故人天末見頭臚(고인천말견두려) : 옛 사람 하늘 끝에서 머리를 내밀었구나
雲窓做得搘頣夢(운창주득지신몽) : 구름 창에 기대어 턱 받치고 꿈꾸니
百尺樓前萬頃湖(백척루전만경호) : 백 척의 누각 앞에는 만 이랑의 호수로다
水盡南天信使稀(수진남천신사희) : 물 다한 남쪽 하늘가엔 소식도 드물어
秋來誰製芰荷依(추래수제기하의) : 가을이 오면 누가 은자의 옷을 지어주리
無因鼓枻江潭去(무인고설강담거) : 뱃전 두드리며 강호로 떠나가려니
遙唱滄浪對夕暉(요창창낭대석휘) : 석양을 마주보며 멀리 창랑가를 부르노라
騎牛不到況乘驄(기우불도황승총) : 소 탄 사람도 안 오는데 더구나 말을 탄 사람 오랴
隱几蕭然草屋中(은궤소연초옥중) : 쓸쓸히 초막집에 와상에 기대앉으니
隔紙非無寬世界(격지비무관세계) : 종이 창 밖으로 더 넓은 세계 없지 않지만
平生羞作鑽窓蜂(평생수작찬창봉) : 평생에 창문 뚫는 벌 되기는 부끄럽구나
休將言說惹賓筵(휴장언설야빈연) : 빈객이 모인 자리에서 언설을 일으키지 말고
妨我閒中撫一絃(방아한중무일현) : 한가로이 일 현금 타는 나를 방해 놓지 말아라
謂傲謂狂都任汝(위오위광도임여) : 오만하다 미쳐다 하더라도 모두 네게 맡겨 두고
西風無樹不鳴蟬(서풍무수불명선) : 가을 바람에 매미 울지 않는 나무는 없도다
平生求友少蘭金(평생구우소란금) : 평생 친구를 찾았으나 진정한 친구 드물고
身後何人識碣陰(신후하인식갈음) : 죽은 뒤에 그 누가 묘갈비 기록을 알아보리오
不爲傳玄留篋草(불위전현유협초) : 양자운처럼 상자 속에 태현경을 갖춰놓고
子雲千載待知音(자운천재대지음) : 천 년 뒤에 알아 줄 이 있길 기다리겠노라
窮居未必友朋疏(궁거미필우붕소) : 곤궁해도 꼭 친구가 멀어지지만은 않으니
將夢爲眞覺屬虛(장몽위진각속허) : 꿈을 참인 줄 알았는데 깨고 보니 허무한 처지로다
記得山中前夜雨(기득산중전야우) : 기억하건대, 산 속의 지난 밤 내린 비에
同心騎馬到階除(동심기마도계제) : 친한 친구가 말 타고 마당가에 이르렀구나
柴荊終日爲誰關(시형종일위수관) : 가시 사립문 종일토록 누굴 위해 닫아놓고
抱得群窮不放還(포득군궁불방환) : 여러 궁한 귀신들을 품에 안고 내보내지 않아
已料展禽官合黜(이료전금관합출) : 전금이 벼슬길에서 쫓겨날 줄 이미 알았도다
那堪牧犢老因鰥(나감목독로인환) : 소 먹이는 늙은이 홀아비 신세를 어찌 견디며
循階㶁㶁水悲鳴(순계괵괵수비명) : 섬돌 돌아 콸콸 흐르는 물소리 슬피 울리는구나
惆悵淸宵獨坐情(추창청소독좌정) : 서글프다, 맑은 밤에 홀로 앉은 이내 마음이여
只有空山一片月(지유공산일편월) : 오직 사람 없는 텅 빈 산에 조각달이 밝아
天涯分與故人明(천애분여고인명) : 하늘 저 편의 친구와 밝음을 나누고 있도다
今古乾坤閒靜身(금고건곤한정신) : 고금천지에 한가롭고 조용한 이내 몸
爲僧悔作下山人(위승회작하산인) : 중이 됐다가 하산한 사람 된 것을 후회하노라
春過喚醒看花夢(춘과환성간화몽) : 봄이 지난 뒤, 불러 꽃구경하는 꿈 깨어났다
一上禪牀滿地塵(일상선상만지진) : 선상에 한번 오르니 온 세상에 티끌 가득
若將煙水論嚴光(약장연수론엄광) : 강호에 은거한 일을 엄광과 논한다면
不若無名杜五郞(불약무명두오랑) : 이름 없던 저 두오랑보다 못할 것이다
一室坐來三十載(일실좌래삼십재) : 한 방에 삼십 년이나 가만히 앉아
更無一步到東牆(경무일보도동장) : 한 발짝도 동쪽 담장 밖을 나가지 않았다
吾生無用亦無求(오생무용역무구) : 나의 인생 쓸모없고, 또한 바라는 것도 전혀 없어
吾在吾廬吾自由(오재오려오자유) : 나는 내 집에서 내 자유대로 지낼 뿐인데
今日偶看庭草長(금일우간정초장) : 오늘은 우연히 뜰에 자라난 풀을 보았노라
門前無客罷梳頭(문전무객파소두) : 문전에 오는 손 없어 머리도 빗지 않으며
歸來不覺過三冬(귀래불각과삼동) : 돌아온 뒤로는 어느덧 삼동이 지났구나
我學無生兒學農(아학무생아학농) : 나는 삶이 없길 배우고 아이는 농사를 배우니
聞說錫山山路改(문설석산산로개) : 들으니, 석산에는 산길을 고쳤다하니
要尋蹊徑懶携筇(요심혜경나휴공) : 좁은 길 찾아 천천히 지팡이 끌고 간다
悠悠晨夕廢饔飧(유유신석폐옹손) : 아득한 나날을 아침저녁 끼니 폐하고
六魄如登北海鯤(육백여등북해곤) : 여섯 넋이 마치 북해의 곤어를 탄 듯하구나
出世也須無異法(출세야수무이법) : 출세하는 게 응당 다른 방법 전혀 없나니
虛無無處不神魂(허무무처불신혼) : 허무한 곳에 있으니 신령하지 않은 곳이 없구나
鬱蒸自合多陰雨(울증자합다음우) : 무더우면 저절로 장마가 많은 법
涼月淸宵不易逢(량월청소불역봉) : 서늘한 달빛 맑은 밤을 만나기 쉽지 않다
龍井玉壺天籟靜(용정옥호천뢰정) : 차와 술에는 자연의 소리 고요하고
瀟湘露下竹融融(소상로하죽융융) : 소상강 이슬 아래에는 대숲이 무성하다
婦餉新菑子出耕(부향신치자출경) : 며느리는 새밭으로 밥 내가고, 아들은 밭을 가니
山窓花木自東城(산창화목자동성) : 산창의 꽃나무들은 동성에서 피어난다
老傖已向勤中過(로창이향근중과) : 이 늙은이도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 왔는데
力役初除籍上丁(력역초제적상정) : 호적상에 장정의 부역이 이제 막 면제되었구나
種桃何必歲三千(종도하필세삼천) : 어찌 씨앗하나 심는데 삼천 년이나 필요하며
一核剛投十八年(일핵강투십팔년) : 씨 하나를 심은 지 바야흐로 십팔 년이나 쓰리오
方丈小庭千尺樹(방장소정천척수) : 방장산 작은 뜰엔 천척의 나무가 있고
吾廬亦有洞中天(오려역유동중천) : 나의 집에도 또한 신선 세상이 있도다
病鶴歸來瘦影孤(병학귀래수영고) : 병든 학이 돌아오니 파리한 형상 외롭구나
濠梁淸淺照頭臚(호양청천조두려) : 호량의 맑은 물에 머리가 환히 비치니
求魚何不隨鷗鷺(구어하불수구로) : 고기를 잡는자가 어찌 갈매기를 따르지 않으리오
無數鰷鱨在五湖(무수조상재오호) : 피라미 자가사리가 오호에 무수히 많은데
我愛花紅紅便稀(아애화홍홍편희) : 나는 붉은 꽃 좋아하는데 붉은 꽃은 드물구나
經年綠暗暗人衣(경년록암암인의) : 지나온 여러 해에 녹음이 내 옷을 어둡게 하니
日光不識何時過(일광불식하시과) : 세월은 어느 새, 다 지나갔는지 도무지 모르겠노라
有客到門常落暉(유객도문상락휘) : 손이 문 앞에 이르면, 언제나 저녁 해는 지고
南隣有客繫靑驄(남린유객계청총) : 남쪽 이웃에 손님이 있어 청총마 매어두었다
京洛風光邸報中(경락풍광저보중) : 서울의 풍광이 관보 안에 실려 있으니
聽說新聞皆似舊(청설신문개사구) : 듣자 하니, 새 소식이 모두 옛 소식 같구나
南柯庭蟻午衙蜂(남가정의오아봉) : 남가군의 뜰의 개미요 일하는 벌이로다
靑樓珠箔綺羅筵(청루주박기라연) : 청루의 구슬 주렴, 화려한 비단 자리
鶯鷰爭春傍管鉉(앵연쟁춘방관현) : 관현악 연주 속에 꾀꼬리 제비가 봄을 다툰다
終歲未曾嫌寂寞(종세미증혐적막) : 한해가 다가도록 적막함을 싫어 않으니
何煩吾樹有新蟬(하번오수유신선) : 어찌 번거로이 내 나무에 새 매미 울어대는가
中天亦日耀黃金(중천역일요황금) : 중천의 붉은 태양 황금빛으로 빛나니
始見黃鸝在綠陰(시견황리재록음) : 비로소 녹음 속의 꾀꼬리를 보는구나
頭白不禁啼一句(두백불금제일구) : 머리 희어져 울음 금치 못한다는 한 글귀
去將嬌滑向知音(거장교골향지음) : 가서 좋은 소리로 친구를 향해 울어야지
力弱元來種植疏(력약원래종식소) : 힘 약해서 원래 나무 심는 일 거의 없는데
紫薇花早碧窓虛(자미화조벽창허) : 백일홍 꽃나무는 일찍 창틈에 푸르러 있구나
機心猶與蠨蛸角(기심유여소소각) : 간사한 마음 오히려 갈거미와 서로 겨루는구나
枝上牽絲自起除(지상견사자기제) : 가지 위의 거미줄을 스스로 일어나 없애나니
見說胡塵暗九關(견설호진암구관) : 듣건데, 오랑캐들 소란하여 대궐이 캄캄하니
鷦鷯何幸早知還(초료하행조지환) : 뱁새가 어이 다행히 일찍 돌아올 줄 알겠는가
鰥官似我人皆笑(환관사아인개소) : 나같이 외로운 벼슬아치를 남들이 다 비웃는다
今日方知人不鰥(금일방지인불환) : 오늘에야 비로소 사람은 외롭지 않음을 알고
三更推枕聽雷鳴(삼경추침청뢰명) : 삼경에 베개 밀쳐내고 천둥소리 듣는다
風雨南來亦動情(풍우남래역동정) : 남녘서 몰아 온 비바람에 또 마음이 움직이니
自是要將星斗洗(자시요장성두세) : 이는 본디 수많은 별들을 깨끗이 씻으려하는구나
去爭山月半輪明(거쟁산월반륜명) : 반 둥근 산 위 달과 밝음을 겨루려 함이로다
紛總總中剩此身(분총총중잉차신) : 수다히 많은 사람 중에 이 몸이 남아 돌아
不知還是鬼邪人(불지환시귀사인) : 이 몸이 귀신인지 사람인지 알지 못하겠다
憑將窓明窓暗色(빙장창명창암색) : 장차 하루하루 흐르는 세월
一刹那間了一塵(일찰나간료일진) : 어느 한순간에 한 티끌이 되고 말리라
收拾歸來冷眼光(수습귀래냉안광) : 수습하여 돌아오매 눈빛이 늙었구나
曾經塗抹做新郞(증경도말주신랑) : 일찍이 어린 시절에 신랑이 되었다가
此身已似菩提樹(차신이사보제수) : 이 몸은 이미 저 보리수와 같아
分付枝柯莫出墻(분부지가막출장) : 가지만 나눠 주고 담장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天地何嘗廢蚓鳴(천지하상폐인명) : 천지가 어찌 지렁이 울음소리 없애어
物生那得盡無情(물생나득진무정) : 모든 생물, 어찌 제 뜻을 다 펴지 못하는가
此心炯炯常如日(차심형형상여일) : 이 마음은 항상 저 태양처럼 맑아
想像重泉夜亦明(상상중천야역명) : 아마도 죽은 구천의 밤 또한 밝도다
窮老應無分外求(궁로응무분외구) : 궁한 늙은이 응당 분수 밖의 요구가 없고
霽行潦止摠悠悠(제행료지총유유) : 비 개면 가고, 비 오면 머뭄이 한가로다
光光來得光光去(광광래득광광거) : 빛나게 오고, 빛나게 가는구나
只個靑天在我頭(지개청천재아두) : 푸른 하늘만 내 머리 위에 있을 뿐
回薄天時屬大冬(회박천시속대동) : 시절이 돌고 돌아 한겨울에 이르렀구나
吾衰不復夢羲農(오쇠불부몽희농) : 이 몸 노쇠하여 복희씨 신농씨 꿈꾸지 않는다
衡門自足洋洋樂(형문자족양양락) : 초막집에서 절로 양양한 즐거움 족하니
肯向焦原更著筇(긍향초원경저공) : 어찌 다시 지팡이 짚고 불탄 언덕 향하리오
書生談治慕罋飧(서생담치모옹손) : 서생이 정치를 논하면서 끼니를 연연하니
何異南人說北鯤(하이남인설북곤) : 남쪽 사람이 북해의 곤어를 논함과 어찌 다른가
我自逍遙蚊睫上(아자소요문첩상) : 나는 스스로 모기 눈썹 위에 소요하는 자니
不敎門弟賦招魂(불교문제부초혼) : 제자들에게 <초혼부>를 짓지 않게 하여라
餘生已覺萬緣空(여생이각만연공) : 남은 생애, 이미 온갖 인연 헛되었음을 알아
媿殺今秋菊再逢(괴살금추국재봉) : 올 가을에 국화를 다시 만나 부끄럽도다
臥想黃泉團骨肉(와상황천단골육) : 생각건대 황천에 가서 혈육들이 서로 만나면
冥間應自樂融融(명간응자락융융) : 저승에서 응당 절로 즐거움이 넘치리라
本無一畝可躬耕(본무일무가궁경) : 본래 한 이랑도 몸소 농사지을 땅 없어
朶却空頣舊在城(타각공신구재성) : 헛 입맛만 다시면서 그 옛날 성 안에 있도다
一斥窮鄕身便老(일척궁향신편로) : 궁향에 한번 버려져 몸이 문득 늙고
不堪與國更充丁(불감여국경충정) : 나라 위해 다시 병사로 충원될 수도 없구나
恒沙世界渺三千(항사세계묘삼천) : 항하의 모래 세상 아득한 삼천 년
淵谷城隍遞萬年(연곡성황체만년) : 못과 골짝 성과 해자가 만년을 번갈았구나
莫道人人均賦授(막도인인균부수) : 사람마다 똑같이 주어졌다 말하지 말라
本無聲臭可尋天(본무성취가심천) : 하늘은 본디 소리도 냄새도 찾을 수 없으니
炎海氷山跡也孤(염해빙산적야고) : 더운 바다, 얼음 산은 자취도 외롭다
老年明白舊頭臚(로년명백구두려) : 늙어서도 그 머리는 분명 그 머리구나
江山在處無賓主(강산재처무빈주) : 강산은 있는 곳마다, 손님도 주인도 없으니
免向君王乞鑑湖(면향군왕걸감호) : 군왕께 감호를 구걸하는 일은 면하였다오
地冷柴門鳥雀稀(지냉시문조작희) : 싸늘한 가시 사립문에는 새들도 날지 않고
芰荷秋盡返初衣(기하추진반초의) : 마름과 연잎 가을에 다 시들어 처음 옷으로 바꿔 입었다
待看庭樹東西影(대간정수동서영) : 정원의 나무 동서의 그림자를 기다려 눈여겨 바라보니
消却前榮冉冉暉(소각전영염염휘) : 석양은 뉘엿뉘엿 앞 처마를 넘어가는구나
騎牛較好舊乘驄(기우교호구승총) : 소 타는 일이 말 탄 것보다 좋기만 하다
隨分狂歌草澤中(수분광가초택중) : 분수에 따라 풀 우거진 못에서 소리쳐 노래하다
至竟蠕蠕唯待化(지경연연유대화) : 결국엔 꿈틀거리다 죽을 때만 기다리노라
人生何異入窠蜂(인생하이입과봉) : 인생살이가 집에 든 벌들과 무엇이 다르리오
權將草席代芳筵(권장초석대방연) : 임시 거적자리로 꽃다운 자리 대신하니
亦有江禽勝管鉉(역유강금승관현) : 물새의 소리 또한 관현악보다 낫구나
萬事不生間計較(만사불생간계교) : 온갖 일 생기지 않고 간간이 생각할 일 생기니
老年淸寂似枯蟬(노년청적사고선) : 노년의 맑고 적막함이 매미 허물 벗은 매미 신세로다
月出波心萬濤金(월출파심만도금) : 물결에 달 떠오니, 온 물결이 금빛지고
水天晴碧解雲陰(수천청벽해운음) : 물과 하늘 맑고 푸르러 구름이 그늘 걷힌다
翛翛忽覺淸人聽(소소홀각청인청) : 우수수 이는 소리가 문득 귀를 맑게 하니
問是風音是樹音(문시풍음시수음) : 묻노니, 이것이 바람 소리인가 나무 소리인가
說仙說佛計全疏(설선설불계전소) : 신선이나 부처에 대해선 전혀 생각함이 없어
都把吾身寄太虛(도파오신기태허) : 이 내 몸 몽땅 가져다 태허에 부치노라
透得局中休歇法(투득국중휴헐법) : 세상을 쉽게 사는 법을 터득하니
亂紛紛地玩乘除(란분분지완승제) : 수다히 어지러운 곳에서 그 틈을 즐기노라
天生萬物不相關(천생만물불상관) : 하늘이 내린 만물, 서로 상관할 일 없어
妙法單傳是八還(묘법단전시팔환) : 이심전심의 오묘한 법이 바로 팔환의 방법이로다
說與先生休計較(설여선생휴계교) : 선생에게 말하노니, 계교 쓰지 마시고
人鰥何必勝官鰥(인환하필승관환) : 사람 외로움이 어찌 반드시 벼슬 외로움 이기리오

 

 

'한국 漢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철(鄭澈)  (0) 2015.03.16
정지상(鄭知常)  (0) 2015.03.16
정몽주(鄭夢周) 다수  (0) 2015.03.15
정도전(鄭道傳) 다수  (1) 2015.03.15
장유(張維) 다수  (0) 2015.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