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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漢詩

기대승 우봉일률병기소람 외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조선 선조 때의 성리학자. 호는 고봉(高峯)이고,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155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선조 때에는 벼슬이 대사간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있어 독학으로 공부하여 중국 고전에도 능하였다. 32세 때 이황·김인후 등의 제자가 되어 성리학을 연구한 끝에, 대학자들도 미처 깨닫지 못한 새로운 학설을 내놓아 스승들을 놀라게 하였다. 특히 스승인 이황과 8년 동안이나 편지로 학문에 대한 논쟁을 벌였던 사실을 유명하다. 이황은 그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하여 그를 제자로서가 아닌 동등한 학자로서 대하였다고 한다.

 

 

 

우봉일율병기소람(又奉一律倂祈笑攬)-기대승(奇大升)

竄逐歸來鬢欲蒼(찬축귀래빈욕창) : 쫓겨나 돌아왔을 때 귀밑털은 하랗게 되려하였데
二人相見喜何量(이인상견희하량) : 두 사람의 서로 만나는 기쁨 어이 다 측량하리오
恩催驛馬班初綴(은최역마반초철) : 성은이 역마를 재촉하자 관복을 처음 입게 되어
夢繞庭闈路正長(몽요정위로정장) : 부모 계신 가정을 꿈속에 맴도니 갈 길은 정말 멀어
奉養難便堪愛日(봉양난편감애일) : 봉양이 편치 못하니 가는 해가 아쉬워
經綸未展足迴腸(경륜미전족회장) : 경륜을 펴지 못해 응당 마음속이 괴로워진다
東風解凍晴江闊(동풍해동청강활) : 동풍에 얼음이 풀려 강물이 활짝 트이어
扶老還京事不妨(부로환경사불방) : 늙은 몸 이끌고 서울로 가는 일, 방해받지 앉으리라

 
 

부벽루(浮碧樓)-기대승(奇大升)

錦繡山前寺(금수산전사) : 금수산 앞 영명사

大同江上樓(대동강상루) : 대동강 위 부벽루라
江山自古今(강산자고금) : 강과 산은 고금이 그대로인데
往事幾春秋(왕사기춘추) : 지나간 일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
粉壁留佳句(분벽류가구) : 장식한 벽에는 좋은 시 남아 있고
蒼崖記勝遊(창애기승유) : 이끼 낀 바위에는 즐겁게 논 일 새겨 있네
경舟不迷路(경주부미로) : 배도 갈 길을 잃지 않거니
余亦沂淸流(여역기청류) : 나도 물처럼 맑게 흘러가리라

 
 

무과록명도(武科錄名圖)-기대승(奇大升)

高棟深簷敞一廳(고동심첨창일청) : 높은 기둥 깊은 추녀 온 청사가 넓은데
縓衣髹案凜儀形(전의휴안름의형) : 붉은 옷, 검은 책상 늠름한 기품이어라.
門前騰蹋鞍鞿耀(문전등답안기요) : 문 앞에는 나는 듯한 안장과 굴레 빛나고
階下睢盱面目熒(계하휴우면목형) : 뜨락에 아래 흘겨보는 눈빛이 번득이어라.
標咎斥停悲墮井(표구척정비타정) : 허물을 들춰 물리치니 대열에서 누락됨 슬프고
注名推試喜緣宴(주명추시희연연) : 이름을 기록 등용되니 합격되어 기쁘구나.
那知繪事開丹禁(나지회사개단금) : 회사(繪事)가 궁중에 열릴 줄을 어찌 알았으랴
物色生輝荷寵靈(물색생휘하총령) : 물색에 빛이 나니 은총에 감사하여라

 
 

상퇴계선생(上退溪先生)-기대승(奇大升)

寵渥徵金馬(총악징금마) : 두터운 총애로 금마의 부름 받아
恩榮覲北堂(은영근북당) : 성은의 영화로 북당을 뵈었습니다
塵埃凰短羽(진애황단우) : 진토에 묻힌 봉황은 깃이 짧아
風雨雁聯行(풍우안연행) : 풍우 속에서도 기러기는 줄을 잇습니다
喜託新知益(희탁신지익) : 기꺼이 새로 사귄 벗들을 의탁하였으니
驚看別語忙(경간별어망) : 작별의 소리 분망함에 놀며며 보았습니다
渾深孤露感(혼심고로감) : 혼연히 깊은 외로운 이슬의 감회가 깊어
延望疚中腸(연망구중장) : 목 빼어 바라니 마음 속에 병이 났습니다

 
 

압구정(狎鷗亭)-기대승(奇大升)

荒榛蔓草蔽高丘(황진만초폐고구) : 거친 숲에 엉킨 풀이 높은 언덕 뒤덮어
緬想當時辦勝遊(면상당시판승유) : 아득히 당시를 생각하니 명승지임을 알겠다
人事百年能幾許(인사백년능기허) : 인간의 한백년 그 얼마나 되는가
滿江煙景入搔頭(만강연경입소두) : 강에 가득한 안개 풍경, 번잡한 머리에 든다

 
 

주중취기(舟中醉氣)-기대승(奇大升)

江頭盡醉偶佳期(강두진취우가기) : 나루터 만취가 하기 우연한 좋은 기회
杯酒淋灕欲濕衣(배주림리욕습의) : 잔술이 흥건하여 옷을 적시려하는구나
牽興不須愁日晩(견흥불수수일만) : 흥에 겨워 저무는 것도 두렵지 않아
題詩且可餞春歸(제시차가전춘귀) : 시를 쓰면서 봄을 전송하여 돌아가련다
風煙冉冉猶相惹(풍연염염유상야) : 바람 날라는 연기 하늘하늘 일어나고
花絮紛紛只自飛(화서분분지자비) : 꽃같은 버들솜, 분분히 스스로 날아다닐 뿐
仙夢一宵超物外(선몽일소초물외) : 신선의 꿈 하룻밤에 속세를 벗어나
世間塵土莫來圍(세간진토막래위) : 세간의 흙먼지이여, 나를 에워싸지 말아라

 
 

남루중망소지객(南樓中望所遲客)-기대승(奇大升)

郡芳寂如掃(군방적여소) : 뭇 꽃들은 쓸은 듯 적막하고
春去何促迫(춘거하촉박) : 봄은 왜 그다지 빨리 가는가
幽懷不自寫(유회불자사) : 깊은 감회를 스스로 쏟지 못해
要此素心客(요차소심객) : 이처럼 마음 맞는 손님 있어야 하네
遙遙望已久(요요망이구) : 멀리멀리 바라본 지 이미 오래 되니
徘徊愁日夕(배회수일석) : 배회하며 해가 저물까 근심스러워라
長湖蘸明月(장호잠명월) : 긴 호수에 명월이 잠겼으니
晤言誰與適(오언수여적) : 누구와 함께 정담을 나눌 것인가
微風激樹枝(미풍격수지) : 가는 바람 나무 가지를 부딪혀
瀟瀟助余慼(소소조여척) : 쓸쓸히도 나의 슬픔 더하는구나
重城想如咫(중성상여지) : 여러 겹 성에도 생각은 지척 같아
渺渺雲嶺隔(묘묘운령격) : 아득히 구름 낀 산이 가로는구나
燈燼欲頻垂(등신욕빈수) : 등불 심지는 자주 처지는데
園蔬竟虛摘(원소경허적) : 정원의 채소도 공연히 뜯어 놓는다
對卷悄無寐(대권초무매) : 책을 대하고 초조히 잠 못 이루어
微義嗟難析(미의차난석) : 깊은 글 뜻 안타깝게도 풀기 어렵도다
頹思遽如何(퇴사거여하) : 잊고서 잠들고 싶으니 갑자기 웬일일까
夢裏飜相覿(몽리번상적) : 꿈속에서 도리어 서로 만나보자꾸나

 
 

기유호제자(寄遊湖諸子)-기대승(奇大升)

湖上淸陰護落花(호상청음호낙화) : 호상의 맑은 그늘 떨어지는 꽃 보호하니
出遊無伴坐吟哦(출유무반좌음아) : 나가도 노닐 친구 없어 앉아서 시만 읊는다
諸生剩欲來挑興(제생잉욕내도흥) : 제생은 모두 와서 흥을 돋우려 하는데
倦客何堪共酌窪(권객하감공작와) : 지친 나그네 어찌 함께 술잔 채워 대작할까
不風微煙橫素鏡(不풍미연횡소경) : 연기 바람 없어 맑은 거울처럼 비껴있는데
且看完月闖靑螺(차간완월틈청라) : 둥근 달이 먼 산마루에 떠오름 보게 되리라
暮春光景今如許(모춘광경금여허) : 늦은 봄의 풍경이 지금 저러한데
病與愁纏只自嗟(병여수전지자차) : 병과 시름 얽혀 스스로 탄식할 뿐이다

 
 
歷訪朴孝伯(력방박효백)-奇大升(기대승)

逢君話疇昔(봉군화주석) : 그대를 만나 옛이야기 나누면서
濁酒聊自斟(탁주료자짐) : 애오라지 탁주를 스스로 따르네.
微風動新竹(미풍동신죽) : 가는 바람 대숲에 일자
時有一蟬吟(시유일선음) : 때때로 매미 소리 들려오네
 
 
邀月亭韻(요월정운)-奇大升(기대승)

夫君才氣合乘車(부군재기합승차) : 그대의 재주와 기운은 수레를 탈만한데
遁跡江湖放浪餘(둔적강호방랑여) : 강호에 숨어 방랑한 나머지 자취를 감추었네
載酒引船風色嬾(재주인선풍색란) : 술을 싣고 배를 타니 풍색은 조용하고
藝花扶杖月華虛(예화부장월화허) : 꽃 심고 지팡이 짚으니 달빛도 밝은데
經心舊學惟心也(경심구학유심야) : 옛 학문에 마음을 다스리니 오직 한 마음
脫手新詩更賁如(탈수신시경분여) : 새로운 시에 손을 대니 다시 흥겨워지네.
雨露九天應下漏(우로구천응하루) : 하늘의 비와 이슬은 당연히 내려오려니
直長威望壓周廬(직장위망압주려) : 직장의 위엄과 명망이 주려를 압도하리라.
 
 
偶吟(우음)-奇大升(기대승)

報本空餘詠采蘋(보본공여영채빈) : 조상 제사엔 공연히 채빈의 제사만 남았구나
故山遙憶露濡春(고산요억로유춘) : 고향 산을 아득히 생각하니 이슬 젖은 봄이었네.
棲遲且作塵中客(서지차작진중객) : 깃들어 사는 것은 아직 세상속의 나그네요
歸去聊憑夢裏人(귀거료빙몽리인) : 돌아감은 애오라지 꿈속의 사람에게 의지한다네.
古木蒼松誰是主(고목창송수시주) : 고목된 푸른 소나무 누가 주인일까
淸溪白石久無隣(청계백석구무린) : 맑은 시내 흰 돌에는 오래도록 이웃도 없구나.
何時得遂田園興(하시득수전원흥) : 어느 때 전원의 흥취 이루어
兄弟相看一笑新(형제상간일소신) : 형제끼리 서로 보며 한 번 웃어볼까
落日悠悠獨倚欄(락일유유독의란) : 지는 해에 유유히 홀로 난간 기대니
眼中人事似飛湍(안중인사사비단) : 눈앞에 사람의 일들이 나는 물결 같구나
衛生誰畜三年艾(위생수축삼년애) : 병을 고쳐 삶을 지키려 누가 삼년 된 쑥을 비축하나
謀食爭緣百尺竿(모식쟁연백척간) : 식록을 꾀해 다투어 백척의 간두를 타는구나.
萬里雲山空疊翠(만리운산공첩취) : 만리에 구름과 산 헛되이 푸르름 쌓였고
幾家高閣謾流丹(기가고각만류단) : 몇 집의 높은 누각 단청이 흐르는구나.
衰榮不覺同歸盡(쇠영불각동귀진) : 쇠하고 영화로움 깨닫지도 못하고 모두 다하리니
堪笑吾生作計難(감소오생작계난) : 나의 생애 계획하기 어려움은 우습기만 하구나.
 
 
蔥秀山(총수산)-奇大升(기대승)

蔥秀溪山好(총수계산호) : 총수산 계곡은 아름다워
儒仙舊揭名(유선구게명) : 유선이 예부터 이름을 걸었네
巉巖神所鑿(참암신소착) : 가파른 바위 신이 깎아 놓았고
澄澈鏡如明(징철경여명) : 맑은 물은 거울같이 밝도다.
暗竇寒泉冽(암두한천렬) : 어둑한 구멍에 차가운 샘물 맑고
陰崖細草榮(음애세초영) : 그늘진 벼랑에는 잔잔한 풀도 무성하다.
經過愜幽賞(경과협유상) : 지나는 곳마다 그윽한 구경 흡족하니
一笑散塵纓(일소산진영) : 한번 웃으며 풍진의 갓끈 흩어버린다
 
 
千山雪漲溪(천산설창계)-奇大升(기대승)

風墮千山雪(풍타천산설) : 바람이 천산의 눈 떨어뜨리니
寒溪漲欲平(한계창욕평) : 찬 시내 물 불어나 평평해지네.
潮光凝不退(조광응불퇴) : 조수에 어리어 물러가지 않고
月色曉猶明(월색효유명) : 달빛은 새벽이 되어도 밝기만하구나
巖谷猿啼冷(암곡원제랭) : 바위 골짝에 잔나비 쓸쓸히 울고
松梢鶴夢驚(송초학몽경) : 소나무 가지에 학도 꿈에 놀라는구나.
遙知灞橋上(요지파교상) : 아득히 알겠노라, 패교의 위에는
詩興未應淸(시흥미응청) : 시흥이 응당 맑지 못하리라
 
 
山堂寒日(산당한일)-奇大升(기대승)

一室空山裏(일실공산리) : 외딴집 빈 산 속에 있으니
蕭條歲欲窮(소조세욕궁) : 쓸쓸한 채로 한 해는 저물고자 하네.
凍泉時自汲(동천시자급) : 언 샘물 때때로 몸소 길어오고
枯蘖且相烘(고얼차상홍) : 마른 등걸 서로 불을 사른다네.
靜憩窓間日(정게창간일) : 조용하게 창 사이 햇볕에 쉬고
閒聽谷口風(한청곡구풍) : 한가로이 골짝 입구 바람 소리 듣노라
生涯聊可慰(생애료가위) : 생애를 애오라지 달랠 만하니
此意與誰同(차의여수동) : 이 뜻을 누구와 함께 하리오
 
 
讀書(독서)-奇大升(기대승)

讀書求見古人心(독서구견고인심) : 글 읽을 때는 옛사람의 마음을 보아야 하니
反覆唯應着意深(반복유응착의심) : 반복하며 마음을 깊이 붙여 읽어야 하느니라.
見得心來須體認(견득심래수체인) : 보고 얻음 마음에 들어오면 반드시 체험해야 하며
莫將言語費推尋(막장언어비추심) : 언어만 가지고서 추리하여 찾으려 하지 말라
 
 
夜成(야성)-奇大升(기대승)

寒夜不成夢(한야불성몽) : 차가운 밤에 꿈도 꾸지 못하고
孤吟對短檠(고음대단경) : 외로이 읊으며 등잔불 마주보네.
月上照疏竹(월상조소죽) : 달 떠올라 성긴 대밭을 비추니
窓明分細蝱(창명분세맹) : 창은 밝아져 작은 벌레도 보이네.
隣犬元多警(린견원다경) : 이웃 개들은 원래 깨우침 많고
村舂自送聲(촌용자송성) : 마을에선 방아 찧는 소리 저절로 들리네.
黙黙誰開抱(묵묵수개포) : 침묵만 흐르니 누구와 회포를 나눌까
悠悠百感生(유유백감생) : 내 마음에 아득히 온갖 감회가 생겨나네
 
 
次吳牧使韻(차오목사운)-奇大升(기대승)

自喜文翁化(자희문옹화) : 스스로 문옹의 교화를 기뻐하다가
還應託有隣(환응탁유린) : 도리어 의탁하는 이웃이 되었다네.
笑談蠡測海(소담려측해) : 웃으며 이야기 나누나 전복껍질로 바다를 알겠는가.
酬唱蘖生春(수창얼생춘) : 시를 주고받음 움나무 봄을 만났구나.
曜德輝南極(요덕휘남극) : 밝은 덕은 남쪽 끝에 빛나고
懸情拱北辰(현정공북진) : 매달린 정은 북극성을 끼고 있구나.
風雲他日會(풍운타일회) : 다른 날에 풍운 되어 모이면
洪量鎭甘辛(홍량진감신) : 넓은 도량으로 감과 신을 진정시키리라
 
 

鄭孝子詩(정효자시)-奇大升(기대승)

巍然錦城山(외연금성산) : 우뚝한 금성산이
南紀鎭爲雄(남기진위웅) : 남쪽 땅 지덕을 눌러 웅장하구나.
名都據形勝(명도거형승) : 이름난 도읍이 명승지 차지하니
物産不獨豐(물산불독풍) : 물산만 풍부한 것만이 아니도다.
村村自喬木(촌촌자교목) : 마을마다 큰 나무 서있고
下維德人宮(하유덕인궁) : 그 아래에는 덕 있는 사람들의 집이 몰려있구나.
事親極其孝(사친극기효) : 부모님을 섬김에 그 효심 지극하니
精誠與天通(정성여천통) : 그 정성 하늘에 통하는구나.
耈壽錫無疆(구수석무강) : 장수를 누림도 끝이 없어
八十顔始紅(팔십안시홍) : 나이 팔십에도 얼굴이 붉으시다.
時從鄕老會(시종향로회) : 때로는 시골 노인들과 함께 모이니
儀度儘躬躬(의도진궁궁) : 예의가 모두 다 참으로 공손하도다.
怡怡談故事(이이담고사) : 기쁘게 옛일을 이야기하니
白叟皆趨躬(백수개추궁) : 백발노인들 모두 몸소 모여드는구나.
太守竦且敬(태수송차경) : 태수도 어려워하고 존경하여
意欲達黈聰(의욕달주총) : 임금에게 아뢰려고 하였다네
小子未有知(소자미유지) : 소자는 아는 것이 없지만
卓行徒仰嵩(탁행도앙숭) : 높은 행실만 우러를 뿐이로세
綴詩挹餘光(철시읍여광) : 시를 지어 남은 빚 거둬들이니
萬古垂高風(만고수고풍) : 만고에 높은 바람 드리우리라

 
 
訪朴大均(방박대균)-奇大升(기대승)

綠江一棹興悠然(록강일도흥유연) : 푸른 강에서 노를 저으니 흥이 절로 나는데
來訪煙波老病仙(래방연파로병선) : 안개 낀 물결은 병든 신선을 늙게 하네.
人事可堪輸白眼(인사가감수백안) : 인간만사를 백안으로 보니 어이 견디며
窮通更莫問蒼天(궁통경막문창천) : 궁하고 통하는 것 다시 저 푸른 하늘에 묻지 말아요.
秋林漠漠風吹急(추림막막풍취급) : 가을 숲 막막한데 바람은 세차게 몰아치고
寒雨蕭蕭葉殞筵(한우소소엽운연) : 찬비 쓸쓸하니 나뭇잎 그 자리에 바로 떨어지네.
相對一尊談笑地(상대일존담소지) : 서로 만나 한잔 술로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
黃花何意管流年(황화하의관류년) : 누런 국화꽃이 흐르는 세월과 무슨 상관이리
 
 
次松川韻(차송천운)-奇大升(기대승)

最愛桐花照酒杯(최애동화조주배) : 오동나무 꽃이 술잔에 비추는 광경이 가장 좋아
笑談應得鬱懷開(소담응득울회개) : 웃으며 이야기하니 울적하고 답답한 마음 풀만도 하네.
江頭細路渾疑暗(강두세로혼의암) : 강가의 오솔길 모두 어둑하니
策馬猶須信轡回(책마유수신비회) : 말에 채찍질 말고 가는 대로 맡겨 돌아가려네
 
 
遊七頭草亭(유칠두초정)-奇大升(기대승)

溪行盡日寫幽襟(계행진일사유금) : 종일토록 개울 거닐며 마음 속 회포 푸는데
更値華林落晩陰(경치화림락만음) : 다시 화려한 숲에는 저녁 그늘이 깔리는구나.
稿薦石床人自夢(고천석상인자몽) : 돌상에 짚방석에 누우니 저절로 꿈에 들고
遠山疎雨一蟬吟(원산소우일선음) : 먼 산에 잠깐 비 내린 뒤, 매미가 울어댄다.
 
 

題扇(제선)-奇大升(기대승)

鑠景流空地欲蒸(삭경류공지욕증) : 쇠가 햇볕에 녹아 흐르고 땅도 찌는 듯한데
午窓揮汗困多蠅(오창휘한곤다승) : 점심때 창가에서 땀을 뿌리며 몰리는 파리에 성가시다
憐渠解引淸風至(련거해인청풍지) : 저 부채가 청풍을 끌어올 줄 아니 기특하니
何必崑崙更踏氷(하필곤륜경답빙) : 어찌 반드시 곤륜산에 가 얼음을 밟아야만 하랴
團扇生風足(단선생풍족) : 둥근 부채 바람이 잘 일으키니
秋來奈爾何(추래내이하) : 가을이 오면 너를 어이할까
爲君多少感(위군다소감) : 너를 위해 다소간 느낌이 있나니
寒熱不同科(한열불동과) : 차고 더움이란 본래 같이 논할 수는 없는 것이네.

 
 

雨中(우중)-奇大升(기대승)

只今身世已迷津(지금신세이미진) : 지금 이 몸은 이미 건널 나루터를 잃고
獨臥空堂雨襲人(독와공당우습인) : 빈집에 홀로 누워 비에 젖는다.
日暮未堪長鋏拔(일모미감장협발) : 날 저무니 긴 칼을 뽑지 못하고
夜深猶許短檠親(야심유허단경친) : 밤이 깊어 오히려 등잔불과 가깝구나.
疎煙漠漠疑封戶(소연막막의봉호) : 연기도 자욱하여 문을 닫은 듯
密葉陰陰欲蓋隣(밀엽음음욕개린) : 나뭇잎은 어둑하여 이웃 고을 가렸구나.
幽興撩詩應爛熳(유흥료시응란만) : 그윽한 흥취 시흥을 돋우어 기분 좋으니
一杯相屬趁芳辰(일배상속진방진) : 한 잔 술을 서로 권하며 좋은 계절 즐겨보세

 
 

偶吟(우음)-奇大升(기대승)

春到山中亦已遲(춘도산중역이지) : 산중에 봄이 와 벌써 늦봄이라
桃花初落蕨芽肥(도화초락궐아비) : 복숭아꽃 떨어지자 고사리 싹 돋아나네
破 煮酒仍孤酌(파당자주잉고작) : 깨진 냄비에 술 데워 혼자서 마시고
醉臥松根無是非(취와송근무시비) : 취하여 소나무 밑에 누우니 시빗거리 하나 없네.

 
從牧伯飮(종목백음)-奇大升(기대승)

風靜天開矢道明(풍정천개시도명) : 바람 자고 맑은 날 활쏘기 시합 하니
傳觴破的善哉爭(전상파적선재쟁) : 술잔을 돌리며 과녁 맞히어 좋은 경쟁이로다.
罰籌已覺蝟毛積(벌주이각위모적) : 벌주가 한도 없이 쌓였음을 알고
定是寒儒浪自驚(정시한유랑자경) : 빈한한 선비가 바로 부질없이 놀래는구나
 
 

喜雨(희우)-奇大升(기대승)

同風鏖暑隮氛氳(동풍오서제분온) : 바람과 같이 더위 쫓으니 무지개가 서고
瓦響騷騷夜轉聞(와향소소야전문) : 기와에 소란한 비 소리는 밤에 더욱 요란하네.
已覺滂沱均率土(이각방타균솔토) : 이미 충분하고 전국에 고루 온 것 알았으니
還將豐穰祚明君(환장풍양조명군) : 오히려 풍년을 임금에게 축복 드리세
郊原浩渺猶翻日(교원호묘유번일) : 들판은 넓어 아득한데 햇살은 번쩍이고
澗谷蒼茫欲漲雲(간곡창망욕창운) : 골짜기는 창망하여 구름이 넘치네.
巖寺閉門紬古史(암사폐문주고사) : 바위 위 절간에서 문 닫고 옛 일 살피는데
映空芳篆擢爐薰(영공방전탁로훈) : 공중에 서리는 향 연기가 화로에서 피어오르네.

 

夏景(하경)-奇大升(기대승)

蒲席筠床隨意臥(포석균상수의와) : 부들방석 대나무 침상에 편하게 누우니
虛欞疎箔度微風(허령소박도미풍) : 창과 성긴 발로 미풍이 불어든다
團圓更有生涼手(단원경유생량수) : 둥근 부채질에 다시 서늘해지니
頓覺炎蒸一夜空(돈각염증일야공) : 찌는 듯한 더위 이 밤에는 없어졌구나.

 
 

同諸友步月甫山口號(동제우보월보산구호)-奇大升(기대승)

친구들과 함께 보산에서 달빛을 거닐며 소리치다-奇大升(기대승)
涼夜與朋好(량야여붕호) : 서늘한 밤 친구들과 함께
步月江亭上(보월강정상) : 강가 정자에서 달빛을 거닐었네.
夜久風露寒(야구풍로한) : 밤이 깊어지자 바람과 이슬 차가워지니
悠然發深想(유연발심상) : 나도 몰래 깊은 생각에 잠기었네

 
 
別山(별산)-奇大升(기대승)

扶輿淸淑此焉窮(부여청숙차언궁) : 수레로 아름답고 맑은 이 곳에 이르니 길은 다하고
磅礴頭流氣勢雄(방박두류기세웅) : 크나큰 두류산 기세가 웅장하구나.
萬古橫天瞻莽莽(만고횡천첨망망) : 만고에 비낀 하늘은 볼수록 망망하여라.
三才拱極仰崇崇(삼재공극앙숭숭) : 삼재가 북극에 조공하니 올려보니 높고도 높구나.
元精固護張猶翕(원정고호장유흡) : 그 원기 굳게 지키니 퍼지다 다시 뭉쳐지고
潛澤流行感卽通(잠택류행감즉통) : 잠긴 은택 흘러내려 느끼면 통하는구나.
多少往來人不盡(다소왕래인불진) : 많은 사람들 왕래하여 그치지 않으니
却慙靈境祕祝融(각참령경비축융) : 축융을 숨긴 신령한 경계가 오히려 부끄럽구나.
 
 

縱筆(종필)-奇大升(기대승)

淸風動萬松(청풍동만송) : 맑은 바람에 소나무들 물결치고
白雲滿幽谷(백운만유곡) : 흰 구름은 그윽한 골짜기에 가득하구나.
山人獨夜步(산인독야보) : 산에 사는 사람 혼자 밤에 걷노라니
溪水鳴寒玉(계수명한옥) : 개울물은 찬 옥구슬 구르듯이 소리 내며 흐른다

 
 
圍棋(위기)-奇大升(기대승)

空堂閑坐且圍棋(공당한좌차위기) : 빈 방에 한가히 앉아 바둑판 둘러싸고
撥得幽懷自一奇(발득유회자일기) : 그윽한 회포 풀어보니 저절로 하나의 기이함이로다.
蜩甲形骸眞欲幻(조갑형해진욕환) : 허물 벗는 매미처럼 진지하게 탈 바꾸려 하고
蛛絲意緖政堪遲(주사의서정감지) : 거미가 줄치듯이 생각의 실마리는 신중하구나.
涪翁妙句心能會(부옹묘구심능회) : 부옹의 묘한 글귀 속으로 짐작하며
商皓神機手已知(상호신기수이지) : 상산 네 호탕한 선비의 신기한 기미도 손이 벌써 알았구나.
戲罷一場成浩笑(희파일장성호소) : 한 판 끝내고 호탕하게 웃으니
綠楊黃鳥亂啼時(록양황조란제시) : 푸른 버들 속 꾀꼬리가 어지럽게 우는 때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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