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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漢詩

권근 숙감로사 외

 

권근(權近, 1352~1409)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학자. 호는 양촌(陽村),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글재주가 좋아 1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조선 건국 후에는 대사성·중추원사 등의 벼슬을 지내면서 새 왕조의 기틀을 잡는 데 이바지하였다. 외교면에서는 조선과 명의 관계를 잘 끌어가는 데 이바지하였다. 《양촌집》《입학도설》 등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입학도설》은 후에 이황·장현광 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숙감로사(宿甘露寺)-권근(權近)

煙蒙古寺曉來淸(연몽고사효래청) : 연기 자욱한 옛절 새벽에 맑아지고
湛湛庭前柏樹靑(담담정전백수청) : 이슬 내린 뜰 앞에 잣나무가 푸르다.
松韻悄然寰宇靜(송운초연환우정) : 소나무 운치는 초연하고 세상 고요한데
涼風時拂柳絲輕(량풍시불유사경) : 서늘한 바람 때로 가벼이 버들가지 흔든다

 
 

풍하(風荷)-권근(權近)

亭亭相倚竝(정정상의병) : 서로 기대어 우뚝 하더니
嫋嫋自推移(뇨뇨자추이) : 저절로 밀려서 하늘거린다.
莫噵無持操(막도무지조) : 지조가 없다고 이르지 말라
掉頭非詭隨(도두비궤수) : 머리 흔들어도 간사함 아니라.

 
 

기전산하(畿甸山河)-권근(權近)

疊嶂環畿甸(첩장환기전) : 첩첩 산봉오리 경기에 둘러 있고
長江帶國城(장강대국성) : 긴 강은 서울 도성에 띠를 둘렀구나.
形勝自天成(형승자천성) : 아름답고 좋은 형세 절로 이루어져
眞箇是玉京(진개시옥경) : 정말로 이것이 서울의 터전이로구나.
道里均皆適(도리균개적) : 길과 마을이 고르게 모두 알맞고
原田沃可耕(원전옥가경) : 들밭은 기름져 농사지을 만하구나.
富庶樂昇平(부서악승평) : 백성이 넉넉하여 태평 즐기니
處處有歌聲(처처유가성) : 곳곳에서 노래 소리 들리는구나.

 
 

오호도(嗚呼島)-권근(權近)

蒼蒼海中山(창창해중산) : 창창한 바다 속 산
萬古浮翠色(만고부취색) : 만고에 뜬 푸른 빛이여
觀者盡嗚呼(관자진오호) : 보는 자는 모두 슬퍼하고
爲弔田橫客(위조전횡객) : 전횡의 빈객을 위해 조문한다.
一士足可王(일사족가왕) : 잘 걷은 선비로 왕도 되는데
擾擾多五百(요요다오백) : 요란스럽게 오백 명이나 되었단다.
天命已有歸(천명이유귀) : 천명 갈 곳은 이미 정해 있어
人固難容力(인고난용력) : 진시로 사람 힘으로 정히 어렵다.
苟得小者侯(구득소자후) : 진실로 작게는 제후 자리 얻어도
猶可存宗祏(유가존종석) : 오히려 종묘 사직 보존하리라.
如何却自裁(여하각자재) : 어찌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以比經溝瀆(이비경구독) : 구독에 목맨 자와 견주었는가.
死輕尙能堪(사경상능감) : 죽음이 가벼운 것이라 생각되어도
義重寧屈辱(의중영굴욕) : 의리는 귀중하니 어찌 굴욕을 당할까.
田宗旣已亡(전종기이망) : 전씨의 집안은 다 멸망했으니
烏止干誰屋(오지간수옥) : 까마귀 누구의 집에 내려앉을까.
欲報平生恩(욕보평생은) : 평소의 은덕을 보답하려고
殉身是其職(순신시기직) : 내 한 몸 버리는 것이 그 직분이라.
烈烈志士心(열열지사심) : 열렬한 지사의 마음을
永與雲水白(영여운수백) : 구름과 물처럼 영원리 함께하리라.
至今有遺哀(지금유유애) : 지금까지 남은 슬픔 있나니
凜凜秋氣積(늠름추기적) : 늠름히 쌓여진 저 추상같은 운이여.
山飛海亦枯(산비해역고) : 산이 날고 바다 다 말라도
忠憤無終極(충분무종극) : 충성과 울분은 다할 날 없으리로다

 
 

신정운(新亭韻)-권근(權近)

春來野草正芬菲(춘래야초정분비) : 봄이 오니 들판 풀빛 참으로 꽃답다
一上新亭萬慮微(일상신정만려미) : 새 정자 올라보니 온갖 생각 사라진다
鶯弄樹陰求友語(앵롱수음구우어) : 숲속의 꾀꼬리들 친구 찾는 노래
鷰隨簷影帶雛飛(연수첨영대추비) : 처마 끝의 제비는 새끼 끌고 날아간다
淸霜席上風吹帽(청상석상풍취모) : 서리 엉긴 자리 위, 바람은 갓에 불어
短日尊前雪集衣(단일존전설집의) : 해 짧은 술상 머리에 눈이 옷에 쌓인다
過眼四時無限景(과안사시무한경) : 사철의 온갖 경치 눈 스쳐 지나가니
先生宴坐翫天機(선생연좌완천기) : 선생은 편히 앉아 천기를 구경하신다

 
 

장단노상환경작(長湍路上還京作)-권근(權近)

出城三日靡遑安(출성삼일미황안) : 성을 나간 삼일에 편안할 틈 없어
恐有天章下九關(공유천장하구관) : 천장이 구관에서 내려올까 두렵다오
依樣葫蘆慙薄技(의양호로참박기) : 호로병 본을 뜨니 재주 얕아 부끄럽고
不材樗擽玷淸班(불재저력점청반) : 쓸모없는 저력같은 신세로 맑은 벼슬 더럽힌다
尙憐湍水朝宗遠(상련단수조종원) : 장단 물은 어여쁘다 바다로 빠지
遙望崧山漂緲間(요망숭산표묘간) : 송악산 바라보니 아득한 사이에 있도다
芳草長程風日暖(방초장정풍일난) : 방초 우거진 먼 길, 바람과 햇빛 따뜻하고
行吟兀兀跨驢還(행음올올과려환) : 나귀 등에 높이 앉아 시 읊고 돌아가노라

 
 

입직정제동사(入直呈諸同舍)-권근(權近)

宮漏頻傳夜向晨(궁루빈전야향신) : 물시계 소리 잦아 새벽이 다가오고
花屛錦帳靜無塵(화병금장정무진) : 꽃병풍, 비단 휘장 먼지 하나 없도다
三年諫職成何事(삼년간직성하사) : 간관의 직책 삼년에 무슨 일을 이루었나
深鬼昌黎著諍臣(심귀창려저쟁신) : 창려의 쟁신론 읽기도 부끄럽기만 하도다

 
 

계해제야입직간원(癸亥除夜入直諫院)-권근(權近)

夜與年將盡(야여년장진) : 이 밤은 한 해와 다 가버비고
春隨漏以生(춘수루이생) : 물시계를 따라 봄은 생겨나는구나
居然添甲子(거연첨갑자) : 부질없이 갑자만 더하게 하고
又此賀元正(우차하원정) : 또 이곳에서 새해를 축하드립니다
曠職言何補(광직언하보) : 제 구실 다 못하니 어찌 다 돕고
無才老可驚(무재노가경) : 재주 없어 늙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千門未開鎖(천문미개쇄) : 일천 문 자물쇠 다 열지 못하여
不寐聽鷄聲(불매청계성) : 잠 안 자고 닭 소리에 귀 기울인다

 
 
윤령평군만사(尹鈴平君挽辭)-권근(權近)

累世衣冠裔(루세의관예) : 여러 대 걸친 벼슬아치 후손
平生富貴全(평생부귀전) : 평생동안 부귀가 온전했도다
循良有遺愛(순량유유애) : 좋은 정치로 자애를 남겨
强健享稀年(강건향희년) : 건강하여 고희의 수를 누린다
一夢精鬼祕(일몽정귀비) : 혼백은 한 꿈인양 감춰버리고
千秋德譽傳(천추덕예전) : 덕망을 천추에 전하오리까
信知多積善(신지다적선) : 진실로 적선이 많은 걸 아노니
濟濟子孫賢(제제자손현) : 수많은 자손들 어진 분들이로다
 
 

춘만즉사(春晩卽事)-권근(權近)

綠樹園林已暮春(록수원림이모춘) : 녹수원 숲은 이미 저문 봄날
綿蠻鳥語惱幽人(면만조어뇌유인) : 지저귀는 새소리 애간장 태운다
風吹弱柳初飛絮(풍취약류초비서) : 실버들에 바람 불어 솜털 흩날려
雨壓殘花已委塵(우압잔화이위진) : 시든 꽃 비에 눌려 티끌에 버려졌다
縱飮仍成長日醉(종음잉성장일취) : 실컷 마셔서 하루종일 취하기 마련
吟詩能得幾篇新(음시능득기편신) : 시 읊어 몇 편 새로운 시 얻었도다
今朝欲解餘酲在(금조욕해여정재) : 오늘 아침 남아있는 술독 풀려하여
更覓淵明漉酒巾(갱멱연명록주건) : 도연명의 녹주건을 다시 찾아보노라

 
 

차영주소루시운(次永州小樓詩韻)-권근(權近)

鄭君爲政似前修(정군위정사전수) : 정군의 다스림은 전대 현인 같아
端合明時出宰州(단합명시출재주) : 밝은 때 고을 맡으니 합당하구나.
闕下分符宣聖化(궐하분부선성화) : 대궐 아래 병부 나눠 임금님 교화 펴고
邑中歌袴解民愁(읍중가고해민수) : 읍 안의 바지 노래가 백성 근심 풀어준다.
千畦沃壤開簾見(천휴옥양개렴견) : 천 이랑 기름진 땅, 발 걷으면 보이나니
一帶長川繞檻流(일대장천요함류) : 띠처럼 긴 내는 난간을 둘러 흐른다.
十載宦途將老大(십재환도장노대) : 십 년 벼슬길에 늙고 지치니
謫來江海得淸遊(적래강해득청유) : 강해에 귀양와서 한가로이 노니노라

 
 

점마행록(點馬行錄)-권근(權近)

受命辭中禁(수명사중금) : 명령 받자 대궐에 인사 올리고
開程向塞州(개정향색주) : 길을 떠나 변방 향해 가노라
只知王事急(지지왕사급) : 급한 것은 나라 일임을 아노라
曾信此生浮(증신차생부) : 떠돌며 사는 관리 인생임을 믿노라
松岳晴雲暖(송악청운난) : 송악산 갠 날, 구름 따뜻하고
金郊去路脩(금교거로수) : 금교라 갈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行行催馬過(행행최마과) : 가고 또 가며 가는 말을 채질하여
漸遠却回頭(점원각회두) : 점점 멀어지니 다시 고개를 돌려본다

 
 

차요사시운(次遼使詩韻)-권근(權近)

中天白日破群陰(중천백일파군음) : 중천의 밝은 해 온갖 어두운 것 깨뜨리니
四海蒼生免陸沈(사해창생면육침) : 온 누리 백성들이 외적의 도둑질 면했지요
聲敎遠漸通使節(성교원점통사절) : 이름 난 가르침 멀리 미쳐 사신이 왕래하니
材華高步冠儒林(재화고보관유림) : 재주와 식견이 뛰어나 유림의 으뜸입니다
逢迎自幸蒙靑眼(봉영자행몽청안) : 만나본 것 영광스러운데 반겨 맞아주시니
終始相堅有赤心(종시상견유적심) : 처음부터 끝까지 굳건한 것 진심이 있어서지요
珍重新篇煩寄示(진중신편번기시) : 진중한 시를 자주자주 지어 보내주시니
朗吟秋夜撫瑤琴(낭음추야무요금) : 가을 밤에 낭랑이 읊조리며 거문고를 뜯습니다
秋來古館肅陰陰(추래고관숙음음) : 가을이자 머무시는 사관은 그늘에 쌀쌀한데
坐對芸編炷水沈(좌대운편주수침) : 앉아서 책을 보며 향불을 피우시고 계십니다
藉甚美名傳汗竹(자심미명전한죽) : 아름운 명망은 역사에 길이 전하시며
凜然淸節映霜林(름연청절영상림) : 늠름한 맑은 절개 서리 내린 숲에도 비칩니다
初筵坦率慚非禮(초연탄솔참비례) : 처음 만난 자리가 예에 맞지 않음도 부끄러운데
傾蓋從容寫此心(경개종용사차심) : 조용히 술 나누며 제의 마음 풀어주십니다
最喜東方民慍解(최희동방민온해) : 기쁘구려, 우리 동방 백성의 불만 다 풀려서
薰風吹自五絃琴(훈풍취자오현금) : 훈훈한 그 바람이 오현금에서 불어옵니다

 
 

초옥가(草屋歌)-권근(權近)

京都繁庶十萬家(경도번서십만가) : 서울은 번화나니 집이 십만 호
朱欄碧瓦競紛奢(주란벽와경분사) : 붉은 난간 푸른 기와 사치를 다툰다
就中草屋小如蝸(취중초옥소여와) : 그 가운데 달팽집 같은 초가집 있어
上雨旁風猶得遮(상우방풍유득차) : 위의 비, 옆의 바람은 막을 수 있었다
晨昏自安亦足誇(신혼자안역족과) : 아침 저녘 편안다고 자랑도 할 만한네
燥濕有備夫何嗟(조습유비부하차) : 건조하고 습함에도 대비가 있어 무엇을 걱정하리
門掩寒天雀可羅(문엄한천작가라) : 문 닫긴 추운 날애눈 새그물도 칠 수 있고
簷虛永日宜烏絲(첨허영일의오사) : 처마 트인 긴 날엔 오사모 쓰고 자유로워라
窓前夜涼延月華(창전야량연월화) : 서늘한 밤, 창앞에 달빛이 비쳐들고
屋頭春暖開梨化(옥두춘난개이화) : 따뜻한 봄날, 지붕 머리엔 배꽃이 피어있다
中有碩人寬且薖(중유석인관차과) : 집안에는 너그럽고 관대한 큰 선비 있어
上窺姚姒窮無涯(상규요사궁무애) : 청렴하고 가난하기는 순임금, 요임금을 넘보노라
茅茨土階聖德蔑以加(모자토계성덕멸이가) : 초가지붕, 흙계단도 성덕을 더할 수 없고
周基陶復如綿瓜(주기도복여면과) : 주나라 터전인 양, 흙집과 목화밭의 외와 같도다
豊中臥龍今已遐(풍중와룡금이하) : 풍중 땅의 와룡 선생은 이제 이미 멀어졌으니
風雲欻起淸塵沙(풍운훌기청진사) : 풍운 일 듯 일어나 어지러운 세상 맑히소서
杜陵大雅軼騷些(두릉대아질소사) : 두릉의 두보의 문장이 굴원의 이소보다 낫고
成都之堂名與劍閣爭嵯峨(명여검각쟁차아) : 성도의 초가 명성이 검각산보다 낫도다
榱題數仞非所嘉(최제수인비소가) : 석까래 앞머리 나온 좋은 집 바라지 않나니
峻宇雕牆顚覆多(준우조장전복다) : 높은 집, 좋은 담장 부잣집 망하는 집 많았도다
蓽門圭竇養天和(필문규두양천화) : 사맆대문 작은 문, 가난도 하늘의 이치 기르나니
肯羨邵夫安樂窩(긍선소부안낙와) : 소요부, 안락선생을 부러워하노라
客來隔屋酒可賖(객래격옥주가사) : 손이 오면 건넛집에서 술을 사다가
醉中脫帽相吟哦(취중탈모상음아) : 취하여 갓을 벗어던지고 서로 시를 읊었노라
任看白月疾如梭(임간백월질여사) : 세월이 북처럼 빨리 가도 난 좋고
予髮種種顔常酡(여발종종안상타) : 머리털 희어졌으나 낯빛은 늘 붉도다
涪湛信命於我何(부담신명어아하) : 인생의 부침은 천명에 달린 것, 내게 무슨 상관
先生此道無疵瑕(선생차도무자하) : 선생의 이러한 도에는 아무런 험이 없도다
早年賓興捷大科(조년빈흥첩대과) : 어린 나이에 과거시험 보아 대과 급제하고
聚陞淸要紆靑緺(취승청요우청왜) : 벼슬 올라 청직 요직 두루 다 거쳤었지요
曾從西海療民瘥(증종서해료민채) : 일찌기 서해에서 민폐 다스리시고
至今猶唱甘棠歌(지금유창감당가) : 이제껏 감당의 노래 그치지 않습니다
我昔同日拜宣麻(아석동일배선마) : 나도 그 옛날, 같은 날에 직첩을 받아
朝趨諫苑肩相磨(조추간원견상마) : 간원에 나아가 서로 어깨 함께했었지요
知公才是馬中驊(지공재시마중화) : 공의 재주 말 중에도 천리 준마임을 알고
異産固應生渥洼(이산고응생악와) : 특별한 재주, 반드시 악와 땅에서 나셨으리라
長途逸足正奔波(장도일족정분파) : 먼 길을 빠른 발로 한창 달리시니
駑駘在後空唅呀(노태재후공함하) : 조롱말은 뒤떨어져 헛되이 아함만 쳤습니다
偶因一蹶放山阿(우인일궐방산아) : 우연히 한 번 거꾸러져 시골로 내침 받으시더니
驤首更得鳴玉珂(양수갱득명옥가) : 머리 들고, 또다시 방울 울리십니다
駿骨不宜駕鼓車(준골불의가고차) : 준마는 소금 수레에는 알맞지 않아
終當籋雲飮天河(종당섭운음천하) : 종당에는 구름 밟고 은하수를 마셔버릴 것이리라

 
 

북풍가(北風歌)-권근(權近)

六月北風吹正狂(육월북풍취정광) : 유월에도 북풍이 미친 듯 불어
朝朝天氣如秋凉(조조천기여추량) : 아침마다 날씨는 서늘한 가을이로다
蓬蓬拂拂隨激揚(봉봉불불수격양) : 씽씽 휘볼아 치는 바람에
聲如萬騎嗚刀鎗(성여만기오도쟁) : 일 만 군사들 칼과 창 부딪는 소리로다
或如烈火猛勢張(혹여렬화맹세장) : 훨훨 타는 불길처럼 기운 떨쳐가고
惑如怒濤趨壑忙(혹여노도추학망) : 성낸 물결 골짜기로 쏟아지듯 다망하다
田苗欲秀半已黃(전묘욕수반이황) : 논에는 벼이삭 패려다가 노랗게 되었구나
農夫恐失西成望(농부공실서성망) : 농부들은 흉년들까 서편을 바라보는구나
況是連旬遭亢陽(황시련순조항양) : 더구나 열흘을 이어 불볕이 드니
可憐草木同罹殃(가련초목동리앙) : 초목마저 재앙을 받다니 가련하도다
有時雲升雨欲滂(유시운승우욕방) : 이따금 구름 솟아 비가 오려하다가
吹漓杲杲穿日光(취리고고천일광) : 몇 방울 떨어지곤 햇볕이 쨍쨍하다
昌黎千載遺文章(창려천재유문장) : 한 창려의 문장 천 년을 이어와도
上訴無由通帝傍(상소무유통제방) : 상제님께 호소할 길이 없구나
風伯愈怒尤披猖(풍백유노우피창) : 바람은 노한 듯 더욱 기승 부리는구나
天人感應何杳茫(천인감응하묘망) : 천인의 감응 어찌 이리도 아득한지
五事得失休咎彰(오사득실휴구창) : 임금의 다섯 인품으로 화복은 정해지니
我時官曹忝省郞(아시관조첨성랑) : 이때에 나는 간관(諫官)의 직분에 있었도다
曠職不言常括囊(광직불언상괄낭) : 공연지 직분만 차지하고 늘 입 다물고
朝衙夕直空趨蹌(조아석직공추창) : 아침 출근하고 저녁 숙직하며 공연히 바빠했노라
滿眼塵沙官道長(만안진사관도장) : 흙먼지는 눈에 가득하고 관도는 머니
嗚呼不得知時藏(오호불득지시장) : 아, 때를 알아 그만두고 숨지살지도 못하노라

 
 

증오부령언기(贈吳部令偃機)-권근(權近)

一室庭除靜(일실정제정) : 온 집안 뜨락이 고요하고
三年旅況孤(삼년려황고) : 삼년의 나그네 처지 외롭지 않겠는가
官閑詩有集(관한시유집) : 관리생활 한가로워 시가 모여 책이 되고
隣近酒堪酤(인근주감고) : 가까운 이웃이라 계명주인들 못 사겠는가
下榻賓朋至(하탑빈붕지) : 벗님네 찾아오면 걸상 내려 깔고
摳衣弟子趨(구의제자추) : 제자는 달려 나와 옷 걷어 맞으리라
多慙鄙賤者(다참비천자) : 부끄럽도다, 야비하고 천한 자들
汨汨混泥塗(골골혼니도) : 더러운 탁류 속에 뒤섞여 사는구나

 
 
기지명시3(紀地名詩3)-권근(權近)

黃縣秋風晩(황현추풍만) : 황현에 늦가을 바람일고
青州落日沈(청주락일침) : 청주에 지는 해가 잠기는구나
浿江歸路阻(패강귀로조) : 패강에는 돌아가는 길 막히고
渤海客愁深(발해객수심) : 발해에는 나그네 시름이 깊어진다
方丈疑無有(방장의무유) : 방장산은 있는지 없지 의심스럽고
嗚呼弔古今(오호조고금) : 오호도에서 고금을 조상하노라
隅夷東表地(우이동표지) : 우이 동표의 땅에서
渺渺望鷄林(묘묘망계림) : 아득히 계림을 바라보노라
 
 
기지명시2(紀地名詩2)-권근(權近)

雨暗沙門島(우암사문도) : 비내려 사문도 어둡고
風高碣石山(풍고갈석산) : 바람은 갈석산에 높이 분다
燕鴻今已至(연홍금이지) : 연 나라 기러기 이미 왔는데
遼鶴幾時還(료학기시환) : 요 땅의 학은 언제 돌아오려나
水接蓬瀛闊(수접봉영활) : 물은 봉영에 접해 광활하고
雲橫海岱閑(운횡해대한) : 구름은 해대에 비껴 날아 한가롭다
扶蘇何處在(부소하처재) : 부소가 어디에 있는가
夢繞紫霞間(몽요자하간) : 꿈은 자하동 사이를 떠돈다
 
 
기지명시1(紀地名詩1)-권근(權近)

北渡桑乾水(북도상건수) : 북으로 상건수를 건너고
南浮楊子江(남부양자강) : 남으로 양자강에 떠가노라
金陵朝萬國(금릉조만국) : 금릉에서 만국의 조회를 받고
鍾阜鎭中邦(종부진중방) : 종부는 중원을 진압하는구나
齊魯宗親盛(제로종친성) : 제 나라ㆍ노 나라 종친이 성하고
幽并醜虜降(유병추로강) : 유주와 병주는 추로가 항복하였구나
三韓非化外(삼한비화외) : 삼한이 덕화 밖이 아니라
松岳氣鴻厖(송악기홍방) : 송악의 기운이 크고 또 도탑도다
 
 
즉사(卽事)-권근(權近)

夜深新月照天明(야심신월조천명) : 밤 깊어 초생달이 새벽 하늘 비추는데
行路相驚避富平(행로상경피부평) : 길 가는 이 서로 놀라 부평을 피하는구나
未進白龍魚服戒(미진백룡어복계) : 흰 용이 고기로 변한 경계의 말씀 올리지 못해
多慙諫院得題名(다참간원득제명) : 간원에 이름을 얻은 것을 못내 부끄럽도다
 
 
금거사설중기우유추암(金居士雪中騎牛遊皺巖)-권근(權近)

雪裏深山特地奇(설리심산특지기) : 눈 속의 깊은 산이 너무나 기이해
遊觀牛背任行遲(유관우배임행지) : 소 타고 나가 가는 대로 맡겨 느릿느릿
皺巖可是非人境(추암가시비인경) : 추암은 과연 세상 인간세상 아닌지나
長使儒仙爲賦詩(장사유선위부시) : 언제나 유선으로 시를 짓게 하는구나
 
 
제류소년산수도(題柳少年山水圖)-권근(權近)

墨池龍起雨濛濛(묵지룡기우몽몽) : 묵지에 용이 일어나니 비가 쏟아지고
石走江翻鬼泣空(석주강번귀읍공) : 돌이 밀리고 강이 뒤집혀 귀신이 허공에서 운다
一陣好風天地霽(일진호풍천지제) : 한 줄기 좋은 바람 불어와 천지가 활짝 개이니
分明元化在胸中(분명원화재흉중) : 분명히 천지의 조화가 가슴 속에 있었구나
 
 
봉래역회고(蓬萊驛懷古)-권근(權近)

祖龍鞭石竟無功(조룡편석경무공) : 조룡이 채찍질했으나 마침내 공이 없었으니
誰見神仙不死翁(수견신선불사옹) : 누가 신선 주에 죽지 않는 신선을 보았던가
三十五年眞一瞥(삼십오년진일별) : 진시황 삼십 오년이 눈 깜짝할 사이었으니
從敎鮑臭滿車中(종교포취만차중) : 아들 호해는 포어의 냄새를 수레에 가득차게 하였도다
 
 
격옹도(擊甕圖)-권근(權近)

玉斗碎時虧覇業(옥두쇄시휴패업) : 옥두가 부서질 때 이미 패업은 이지러지고
珊瑚擊處有驕心(산호격처유교심) : 산호를 처깨뜨리는 곳에 교만한 마음이 있도다
爭如幼日多奇氣(쟁여유일다기기) : 어찌 어릴 때의 그 기특한 기상이 있음 만하리오
倉卒全人慮已深(창졸전인려이심) : 급한 때에 사람을 건졌으니 생각이 이미 깊었다
 
 
탐라(耽羅)-권근(權近)

蒼蒼一點漢羅山(창창일점한라산) : 파릇파릇 한 점 한라산이
遠在洪濤浩渺間(원재홍도호묘간) : 만경창파 아득한 속에 멀리 있구나
人動星芒來海國(인동성망래해국) : 사람이 별따라 이동해 섬나라에 오고
馬生龍種入天閑(마생룡종입천한) : 말은 용의 자손을 낳아 하늘 울타리로 들왔구나
地偏民業猶生遂(지편민업유생수) : 땅이 구석져도 백성들은 일이 있어 살아가고
風便商帆僅往還(풍편상범근왕환) : 바람 불어 장사배가 겨우 오고 갈 뿐이로다
聖代職方修版籍(성대직방수판적) : 성군시대의 직방에서 판적을 다시 만들 때
此方雖陋不須刪(차방수루불수산) : 이 고장 구석지지만 부디 빠뜨리지 마옵소서
 
 
영모정(永慕亭)-권근(權近)

倜儻壯元郞(척당장원랑) : 무리에 뛰어난 장원 급제 사나이
落落志節奇(낙낙지절기) : 지조와 절개도 뛰어났었다네
拜命使絶域(배명사절역) : 임금의 명령 받들고 외국에 가니
國耳忘吾私(국이망오사) : 나라 정보 위해 자신의 사사로움 잊었다네
樓船去不反(루선거불반) : 배 타고 떠나가 오지 못하니
杳杳終難追(묘묘종난추) : 아득하여 찾아가기도 어렵구나
孝子抱永慕(효자포영모) : 효자라 길이 사모하는 마음 품어
慼慼多苦思(척척다고사) : 가슴이 쓰라리고 괴로이 그리워하네
晨興日東望(신흥일동망) : 새벽에 일어나 동쪽 일본을 바라보니
滄海何淪漪(창해하륜의) : 큰 바다 어찌 그리도 넓고도 출렁이는가
海水亦云淺(해수역운천) : 바닷물이 얕아진다고도 말 하지만
此恨無有涯(차한무유애) : 이 한은 그칠 때가 있으리오
海水有時竭(해수유시갈) : 바닷물이 마를 때더 온다 하지만
此恨無窮期(차한무궁기) : 이 한이 다하는 날은 없으리라
賢孫構新亭(현손구신정) : 어진 손자가 새로운 정자를 세우고
欲寓心所悲(욕우심소비) : 마음의 슬픔을 부치려 합니다
哀哀起攀呼(애애기반호) : 서러워 부여잡고 일어나 통곡하니
柏樹多枯枝(백수다고지) : 잣나무에는 특별히 마른 가지 많다오
居諸照下土(거제조하토) : 이 땅에 비춰주는 저 해와 달
出自東方來(출자동방래) : 스스로 동쪽에서 솟아오른다
音容不可接(음용불가접) : 목소리도 얼굴도 접할 길 없어
涕淚常自垂(체루상자수) : 눈물만이 저절로 흘러내린다
邈矣墳上草(막의분상초) : 아득해라 분묘 위에 돋아난 풀
西靡空離披(서미공이피) : 서쪽으로 쏠리어 우거져있다오
由來忠孝門(유래충효문) : 예로부터 충신 효자의 가문은
餘慶當不衰(여경당불쇠) : 남은 경사 쇠하지 않는 법이로다
伯道未有子(백도미유자) : 백도가 아들을 못 두었으니
天道何無知(천도하무지) : 하늘의 도는 어찌 그리도 무심한가
應令讀記者(응령독기자) : 응당 기록을 읽는 사람은
千載增歎噫(천재증탄희) : 천년이 지나도 한탄은 더해지리라
 
 
중추3(仲秋3)-권근(權近)

僮奴吹笛老僧歌(동노취적노승가) : 아이 종은 피리 불고, 늙은 중은 노래하니
蹇父呼來把琵琶(건부호래파비파) : 건부를 불러와 비파를 잡게하였도다
誰信陽村多興味(수신양촌다흥미) : 누가 나 양촌이 흥취가 많은 것을 믿으리오
謫來奇事亦堪誇(적래기사역감과) : 귀양온 이래 기이한 일들 또한 자랑할 만하여라
 
 
중추2(仲秋2)-권근(權近)

秋風玉露洗銀河(추풍옥로세은하) : 가을바람과 옥 같은 이슬이 은하를 씻은 듯
月色由來此夜多(월색유래차야다) : 달빛은 예부터 이런 밤이 좋았다
惆悵浮雲能蔽日(추창부운능폐일) : 슬프게도 뜬구름이 해를 가려버리니
停杯一問欲如何(정배일문욕여하) : 술잔을 멈추고 한번 묻노니, 어쩌자는 것인가를
 
 
중추1(仲秋1)-권근(權近)

去歲逢秋齊魯東(거세봉추제노동) : 지난해에는 제와 노의 동쪽에서 맞았는데
如今謫在益山中(여금적재익산중) : 지금은 익산으로 귀양와 있다네
年年佳節思歸客(년년가절사귀객) : 해마다 명절에 돌아가기를 생각하는 나그네
得酒愁顔又一紅(득주수안우일홍) : 술을 얻으니 수심스런 얼굴 다시 한번 붉어지네
 
 

등지관사서봉(登止觀寺西峯)-권근(權近)

地僻山藏寺(지벽산장사) : 땅이 외져 산은 절을 감춰
溪回水繞樓(계회수요루) : 개울물은 돌아 누대를 감싸흐른다
煮茶聞軟語(자차문연어) : 차 달이는데 부드러운 말소리 들려
策杖上高丘(책장상고구) : 지팡이 짚고 높은 언덕에 올라왔노라
野菊寒含露(야국한함로) : 들국화 차갑게 이슬을 머금고
巖藤老帶秋(암등로대추) : 바위 위의 등덩굴 시들어 가을빛을 띠었구나
京都知幾里(경도지기리) : 서울은 여기서 몇 리나 되더냐
登眺極悠悠(등조극유유) : 높은 데 올라 바라보니 너무도 아득하구나

 
 
詠金剛山(영금강산)-權近(권근)

雪立亭亭千萬峰(설립정정천만봉) : 천만 산봉우리 눈처럼 정정히 서있고
海雲開出玉芙蓉(해운개출옥부용) : 바다의 구름 속에서 옥부용이 피어난다
神光蕩漾滄溟闊(신광탕양창명활) : 햇빛이 출렁이는 바닷물결 끊없이 넓고
淑氣蜿蜒造化鐘(숙기완연조화종) : 맑은 기운 구불구불 조화가 모여들었구나.
突兀岡巒臨鳥道(돌올강만임조도) : 우뚝 솟은 산봉우에는 험한 길이 나있고
淸幽洞壑秘仙蹤(청유동학비선종) : 맑고 그윽한 골짜기에는 신선의 자취 숨겨있다
東遊便欲凌高頂(동유편욕능고정) : 동으로 놀다 문득 높은 비로봉에 올라
俯仰鴻濛一盪胸(부앙홍몽일탕흉) : 천지를 굽어보고 올려보니 가슴이 씻겨진다
 
 
全州懷古(전주회고)-權近(권근)


巨鎭分南北(거진분남북) : 큰 진은 남북으로 나누어 있고
完山最可奇(완산최가기) : 이곳 완산이 가장 젊묘하도다
千峰鐘王氣(천봉종왕기) : 수 천 봉우리 왕기가 모이고
一代啓鴻基(일대계홍기) : 한 시기 이곳에 궁터를 열었다
 
 
齒落(치락)-權近(권근)

曾恃年芳兩鬢靑(증시년방양빈청) : 젊어선 귀밑머리털의 푸름만 믿고
無心修煉學黃庭(무심수련학황정) : 도가의 황정경에 마음을 쓰지 않았더니
可憐牙齒如秋葉(가련아치여추엽) : 가련하다, 어금니가 가을 잎처럼 빠져
頭上霜來便自零(두상상래편자령) : 머리 위에 서리 내리자 저절로 떨어지네.
 
自嘲(자조)-權近(권근)

欲閱詩書眼已昏(욕열시서안이혼) : 시와 글을 보려 해도 눈이 이미 어둡고
將從人語耳難聞(장종인어이난문) : 남의 말 따르자니 들을 수도 없네.
吟詩只可因排悶(음시지가인배민) : 시 읊음은 울적함을 풀 수 있음에서니
把筆焉能用著文(파필언능용저문) : 붓 잡은들 어떻게 글 지을 수 있겠는가.
偶爾有形疑造物(우이유형의조물) : 우연히 생긴 몸 조물주를 의심하고
嗒然喪我似離群(탑연상아사이군) : 멍하니 나를 잃을 때는 인간세상 떠난 듯하네.
更將何事關胸次(경장하사관흉차) : 다시는 무슨 일을 마음에 두랴
富貴眞同一片雲(부귀진동일편운) : 부귀는 진정 한 조각 구름이어라
 
 

自毁(자훼)-權近(권근)

吾家多善慶(오가다선경) : 우리 집 경사 많은데
我道不元亨(아도불원형) : 우리 유가의 도는 형통하지 못하였네.
章句盜名字(장구도명자) : 글귀만 배운 학문으로 이름을 훔쳤고
勳盟叨寵榮(훈맹도총영) : 공훈의 반열에 참여되어 은총을 더럽혔네.
當官曾是曠(당관증시광) : 관직에 있으면서 직무에 게을러져
處事豈能精(처사기능정) : 일 처리에 어찌 정밀하였을까.
以此至衰老(이차지쇠노) : 이렇게 늙음에 이르렀으니
恐辜仁主明(공고인주명) : 임금님 총명 욕되게 할까 두려워라

 
 
鷄雛(계추)-權近(권근)

愛養鷄雛謹護藏(애양계추근호장) : 병아리 사랑하여 조심히 기르는 것은
知仁遺訓要無忘(지인유훈요무망) : 어짐을 알라는 유훈을 잊지 않기 바란다네.
憐渠不廢晨昏職(련거불폐신혼직) : 너 새벽을 알려주는 일 잘 지키니
在我當除日月攘(재아당제일월양) : 나는 함부로 죽여 세월을 버리지 않겠노라.
夢白直須安賦命(몽백직수안부명) : 흰 닭을 꿈에 보고 천명을 알아
舐丹難與學仙方(지단난여학선방) : 단약을 먹고 신선되는 법 배우기 어렵네.
古來得失何時了(고래득실하시료) : 예부터의 득실은 어느 때에 끝나리.
遭縛宜令老社傷(조박의령노사상) : 노두가 묶인 닭 보고 슬퍼함이 마땅하다네.
 
 
自譽(자예)-權近(권근)

吾家多積善(오가다적선) : 우리 집안 적선이 많아
於我最光亨(어아최광형) : 나에게 와서 가장 영광을 누렸네.
父作封君貴(부작봉군귀) : 아버지는 봉군이 되고
兒承駙馬榮(아승부마영) : 아이는 부마의 영광 입었네.
有居何患陋(유거하환루) : 거처에 어이 누추함을 근심하며
當食不求精(당식불구정) : 음식에 정미한 맛을 구하리오.
尙足供衰老(상족공쇠노) : 늙은이 생활에 오히려 흡족하니
晨昏謝聖明(신혼사성명) : 아침저녁 항상 임의 은총에 감사드리네
 
 
客至(객지)-權近(권근)

客至門前不出迎(객지문전불출영) : 손님이 문전에 와도 나아가 만나지 못함은
病餘殘喘僅偸生(병여잔천근투생) : 병 않고 난 뒤에 남은 숨결 겨우 삶다네.
步雖信杖還欹倒(보수신장환의도) : 걸음은 지팡이에 의지해도 도리어 넘어지고
坐必憑軒得穩平(좌필빙헌득온평) : 앉을 때 난간에 기대어야 편안하다네.
案上詩書曾掃地(안상시서증소지) : 책상 위에 시와 책 없어진 지 오래고
鏡中霜雪更添莖(경중상설경첨경) : 거울 보니 흰머리만 더욱 더해 가는구나.
布衣已覺封留足(포의이각봉류족) : 포의로 봉후로 남아 족함 줄 알았나니
辟穀多慙藥未成(벽곡다참약미성) : 생식을 하려 하나 약 만들어 부끄럽구나
 
 
杏花(행화)-權近(권근)

一林殘雪未全銷(일림잔설미전소) : 온 숲의 남은 눈 모두 녹지도 않았는데
曉雨晴來上樹梢(효우청래상수초) : 새벽 비 개자 나뭇가지에 눈이 돋았구나.
嫩日釀成和氣暖(눈일양성화기난) : 따스한 햇살이 온화한 기운 자아내면
微酡顔色更驕饒(미타안색경교요) : 불그레한 꽃 빛이 더욱 풍성하겠구나.
 
 
五味子(오미자)-權近(권근)

朱實離離綠蔓長(주실이이록만장) : 알알이 붉은 알, 푸른 덩굴 뻗혀
酸甛霜後可時嘗(산첨상후가시상) : 시고 단 그 맛은 서리 뒤에 때맞춰 맛보리라.
山齋採掇勤蒸曬(산재채철근증쇄) : 산재에선 따 모아 정성들여 쪄 말리고
藥院題封謹護藏(약원제봉근호장) : 약원에선 이름 써서 봉하여서 조심스레 간직하네.
病眼訝看丹鼎粒(병안아간단정입) : 병든 눈 단정의 선약인가 의아하여 살펴보고
渴喉欣飮紫霞漿(갈후흔음자하장) : 마른 목구멍 자하장 양 기쁘게 마시네
胸中査滓眞堪洗(흉중사재진감세) : 가슴에 막힌 것들 정말로 시원히 씻어내니
兩腋生風信有方(양액생풍신유방) : 두 겨드랑이 바람 생기는 처방 진실로 있겠네
 
 
五加皮(오가피)-權近(권근)

吾加稱有五星精(오가칭유오성정) : 오가피에 다섯 별의 정기 있다 하여
十月收根五月莖(십월수근오월경) : 시월에는 뿌리를 거두고, 오월에는 줄기를 거두었네.
豈但飮時喉自潤(기단음시후자윤) : 어찌 마실 때 목구멍만 부드러울 뿐이리오
能令老去眼還明(능령노거안환명) : 늙은이의 어두운 눈도 도로 밝혀준다네.
烹來茶鼎味何苦(팽래다정미하고) : 차 볶는 솥에 삶은 맛은 그리도 쓰더니
點入酒杯香益淸(점입주배향익청) : 한 방울 술잔에 들면 향기 더욱 맑아지네.
倘是仙方眞有效(당시선방진유효) : 아무튼 이 선약 참 효험 있나니
衰年齒髮可成嬰(쇠년치발가성영) : 늙은이의 치아와 모발이 어린아이 되겠네
 
 
蓄菜(축채)-權近(권근)

十月風高肅曉霜(십월풍고숙효상) : 시월이라 바람 거세고 새벽엔 서리
園中蔬菜盡收藏(원중소채진수장) : 울타리 밭에 가꾼 소채 다 거두어들였네.
須將旨蓄禦冬乏(수장지축어동핍) : 맛있게 김장하여 겨울철에 대비하니
未有珍羞供日嘗(미유진수공일상) : 진수성찬 없어도 입맛 절로 나는구나.
寒事自憐牢落甚(한사자련뇌락심) : 겨우살이에 쓸쓸한 나가 가엾어
殘年偏覺感懷長(잔년편각감회장) : 늙은 삶이라 감회가 깊음을 알겠노라.
從今飮啄焉能久(종금음탁언능구) : 앞으로 먹고 마심 어찌 오래 가리오
百歲光陰逝水忙(백세광음서수망) : 백년 광음은 흘러가는 물처럼 빠르다네
 
 
豆腐(두부)-權近(권근)

碾破黃雲雪水流(년파황운설수류) : 맷돌에 누른 구름 갈아서 눈 같은 흰 물 흐르면
揚湯沸鼎火初收(양탕비정화초수) : 끓는 솥의 물 식히려고 타는 불 거두어본다.
凝脂濯濯開盆面(응지탁탁개분면) : 하얀 비계 엉긴 동이 열어 놓으니
截玉紛紛滿案頭(절옥분분만안두) : 옥 같이 자른 두부덩이가 상머리에 가득하다.
自幸饔餐猶不廢(자행옹찬유불폐) : 아침저녁에 두부 있음 다행으로 여겨 그만두지 않으니
何須蒭豢更煩求(하수추환경번구) : 구태여 고기 음식 번거로이 구하리오
病餘日用唯眠食(병여일용유면식) : 병 앓고 난 뒤에 하는 일이란 자고 먹을 뿐
一飽眞堪萬事休(일포진감만사휴) : 한 번 배부르니 만사를 잊을 만하구나.

 
西苽(서고)-權近(권근)

外裝蒼璧內藏氷(외장창벽내장빙) : 밖은 파란 옥으로 치장하고 속에는 얼음 담았는데
善釋枯腸滯氣凝(선석고장체기응) : 마른 창자 막여 엉킨 기운을 잘도 푸는구나.
性淨旣曾懷皎潔(성정기증회교결) : 성질이 맑아서 깨끗함을 품었고
體圓終不露觚稜(체원종불로고능) : 형체는 둥글어 모남을 드러내지 않네.
蔓延地上寧容蟻(만연지상령용의) : 땅 위에 뻗은 덩굴 개미인들 용납하리
剝在盤中亦絶蠅(박재반중역절승) : 쟁반에 베어 놓아도 파리 또한 오지 않네.
堪笑蒲桃州可博(감소포도주가박) : 못내 우습구나, 포도가 고을에 널리 퍼졌어도
願爲奴僕自難應(원위노복자난응) : 수박의 노복이 되려고 해도 될 수가 없다네
 
 
盆蓮(분연)-權近(권근)

庭畔難開沼(정반난개소) : 뜰 가에 연못 파기 어려우면
盆中可種蓮(분중가종연) : 동이에 연을 심으면 좋으리라.
泥心抽碧玉(니심추벽옥) : 진흙 속에서 파란 구슬 솟아나니
水面疊靑錢(수면첩청전) : 물 위에 푸른 동전 포개어 쌓였네.
派自濂溪出(파자렴계출) : 물줄기는 염계로부터 흘러나왔고
根從華岳連(근종화악연) : 뿌리는 화약산에서 뻗어 나왔네.
何嫌花未折(하혐화미절) : 꽃 꺾지 못한다고 혐오할 게 무엇이랴
坐對興悠然(좌대흥유연) : 앉아 보기만 해도 흥취가 유연하네
 
 
梨(이)-權近(권근)

山菓來從大谷中(산과래종대곡중) : 산의 과일은 본디 큰 계곡에서 나오니
盈籃氣味帶霜風(영람기미대상풍) : 바구니에 넘치는 그 기운과 맛 서리 기운 띠었네.
玉膚露洽咽喉潤(옥부로흡인후윤) : 하얀 살에 스민 이슬 목구멍 부드럽고
金色香淸耳目通(금색향청이목통) : 금빛 껍질 향긋한 냄새 귀와 눈이 트이네
苦索何須嫌稚子(고삭하수혐치자) : 애타게 찾는 마음 어찌 아이를 나무랄까
珍藏愼莫笑衰翁(진장신막소쇠옹) : 아껴 감추는 늙은이 심정 비웃지 말라
千回上樹今難得(천회상수금난득) : 무수히 나무에 오르내리던 시절 이제는 얻기 어렵나니
老病年來恨不窮(노병년래한불궁) : 늙고 병든 세월 오니 끝없이 한스럽네.

 
柹(시)-權近(권근)

葉落園紅境自深(엽락원홍경자심) : 잎이 지자 빨간 과원은 경물도 고요하고
赬虯遺卵滿秋林(정규유란만추림) : 교룡의 붉은 알이 가을 숲에 가득하구나.
金丹散向千枝結(금단산향천지결) : 장수의 묘약은 가지마다 흩어져 매달렸고
霞液均分萬顆斟(하액균분만과짐) : 이슬은 덩이마다 고루 들어 있네.
固蔕自能承上澤(고체자능승상택) : 단단한 꼭지는 하늘의 은혜 받았고
含章常用沃君心(함장상용옥군심) : 문채를 감춤은 임금 마음 윤택하게 하는 데 쓰이네.
牧翁解道如飛將(목옹해도여비장) : 목은 이색이 홍시를 비장이라 비유하여
破陣功高亘古今(파진공고긍고금) : 적진 깨뜨린 공 고금에 높다 하였네.

 
薏苡(의이)-權近(권근)

場圃秋高百ꜘ登(장포추고백곡등) : 장포에 가을하늘 높고 백곡이 풍성한데
葉間珠實綴如繩(엽간주실철여승) : 잎 사이 구슬 알 줄줄이 매달렸구나.
老衰已覺病難療(노쇠이각병난료) : 늙은 병 치료하기 어려움을 알았나니
滋補尙思方有徵(자보상사방유징) : 기혈 보함에 효험 있음을 생각하네.
可向東陵瓜地種(가향동릉과지종) : 동쪽 구릉 외밭에 심을 만하여
何憂南海謗言興(하우남해방언흥) : 남해에서 헐뜯는 말 어찌 근심하리오.
朝來更啜一杯粥(조래갱철일배죽) : 아침에 다시 죽 한 그릇 마시니
欲伴赤松嗟未能(욕반적송차미능) :신선인 적송자를 따르려 해도 못하는 게 슬프도다.

 
薑(강)-權近(권근)

通神去穢德何殊(통신거예덕하수) : 정신 맑게 하고 악취 물리치니 그 덕 얼마나 특별하며
不撒吾曾學聖謨(불살오증학성모) : 끊지 않고 먹는 것을 성인의 지혜에서 배웠네.
生處陰陽皆欲備(생처음양개욕비) : 자라는 곳에는 음양이 갖추어져야 하고
用時乾濕各相須(용시건습각상수) : 쓸 때에는 생것과 마른 것 각각 다르다네.
深藏細壤懷金卵(심장세양회금란) : 가는 흙에 깊이 묻혔으니 금계란 같고
挑入輕籃帶雪鬚(도입경람대설수) : 바구니에 따 담으니 흰 수염 달렸네.
牢落冷齋添氣味(뢰락냉재첨기미) : 쓸쓸하고 차가운 집에 맛을 돋구니
莫將三篚笑寒儒(막장삼비소한유) : 많은 보배 가졌다고 가난한 선비 웃지 말라.
 
 
選女(선녀)-權近(권근)

九重思窈窕(구중사요조) : 구중 깊은 궁궐에서 요조숙녀 생각하여
萬里選娉婷(만리선빙정) : 만 리 먼 나라의 예쁜 처녀 뽑아가네.
翟茀行迢遞(적불행초체) : 왕비의 마차 타고 가는 길은 멀기도 한데
鯷岑漸杳冥(제잠점묘명) : 고국은 점점 아득하여지는구나.
辭親語難訣(사친어난결) : 어버이를 떠나도 차마 하직 인사 못하니
忍淚拭還零(인루식환영) : 참던 눈물 닦으면 또 떨어지네.
惆悵相離處(추창상리처) : 서글프다, 서로 이별한 곳
群山入夢靑(군산입몽청) : 고향 여러 산들 꿈속에 푸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