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트레킹)

오산 독산성 산림욕장 및 세마대(洗馬臺) & 보적사(寶積寺)

 

수원 화성행궁 여행 겸 겸사겸사 인근에 있는 오산의 권율 장군이 활약하시던 세마대, 독산성을 보면서

주변을 둘러 쌓고 있는 독산성 자연휴양림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수원,병점 다음의 세마역이라는 신규 전철역에서 부터의 걷기는, 인근의 어르신을 만난 우연히 동행한 덕에

어르신이 자주 이용하시는 자연휴양림을 거쳐 주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정상의 세마대.독성을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백제시대 부터 쌓았던 독산성과 보적사는 주변의 경치와 더불어 이 곳의 명물이되어 있으며 오늘도

많은 산님,걷기님들이 부지런히 움직임을 보니 좋은 명승지라 여겨집니다.

 

 

※트레킹일지

  - 트레킹일시 : 2012년9월11일

  - 트레킹 코스 : 세마역-양산봉-세마대.보적사-산림욕장-한신대-병점역

                       (약7km  약3시간)

   - 트레킹 난이도 : ★☆☆☆☆

 

 1호선 세마역

 

 

 세마대까지 걸어서 약30여분

 

 

 대추나무

 

 

 탱자나무

 

 

 양산봉 쪽을 올라갑니다

 

 

 길이 전체적으로 순합니다

 

 

 푯말도 잘 되어있습니다

 

 

 연리지

 

 

 

 양산봉 입

 

 

 

 코스 안내가 잘 되있습니다

 

 

 주봉 양산봉

 

 

 

 

 

 

 

 

※보적사(寶積寺)

용주사 본말사지에 의하면 보적사는 창건당시 이세계 중생의 질병치료, 수명연장, 재화소멸, 의복, 음식 등을 만족케하고 
부처의 행을 닦아 무상보리의 진리를 터득케 한다는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을 정전          
독산성의 역사와 함께 오랜 세월을  같이 했고 있으며 
보적사란 이름이 지어진 것은  백제시대 보릿고개로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노부부가 겨우 쌀두되만이 남아 있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러 구차하게 사느니 차라리 부처님께 바치겠다고 결심한 후,
공양후 집에 돌아와 보니 곡간에 쌀이 가득차 있는 기적이 발생하였다고 하며 열심히 공양하여 
보화가 쌓인 신통력 있는 사찰이라 하여 보적사라 명명되었다고 한다.
 1988년 7월 27일 전통사찰 제34호 지정되어 있다.

 

 



 보적사 입구의 양쪽 석주

 

 

 독성산성 안내판

 

 

 잠자리가 놀다가자 합니다

 

 

 

 

 

 해탈의 문

 

 

 대웅전과 삼층석탑

 

 

 삼존불

 

삼성각

 

 

법당 앞 절구에 핀 연꽃

 

 

사찰 외부 전경

 

 

사찰에서 바라 본 세마대 인근

 

 

 

 

※ 오산 독산성(禿山城).세마대(洗馬臺) 

둘레 약 3,600m. 사적 제140호. 지정면적 33,997㎡. 현재 석축 약 400m가 남아 있고 4개의 성문이 있다.

일명 독성산성(禿城山城)이라고도 한다.

축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도성(都城)의 문호와 관련된 전략상의 요충지로 중요한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백제가 쌓았던 성으로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면서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 이용되었다.

1593년(선조 26) 7월에 전라도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權慄)이 근왕병(勤王兵) 2만명을 모집하여 북상하다가

이 성에 진을 치고 왜적을 물리쳤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듬해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불과 4일 만에 백성이 합심하여 수축을 하였다.

그러나 물[井泉]의 부족이 대군의 주둔을 어렵게 하여, 이 산성의 가장 큰 결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물의 부족은 세마대(洗馬臺)의 전설을 낳았다.

즉, 1593년 권율 장군이 주둔하고 있을 때 가토(加藤淸正)가 이끈 왜군이 이 벌거숭이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 한 지게를 산위로 올려보내 조롱하였다.

그러나 권율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백마를 산위로 끌어올려

 흰 쌀을 말에 끼얹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본 왜군은 산꼭대기에서 물로 말을 씻을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오판하고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 세마대는 1957년에 복원되었다.

 

 

  

 외견상 견고한 석축산성

 

 

 조금 올라가면 세마대

 

 

 지붕없이 범종이 노천에 있습니다

 

 

 독산성 및 세마대지 안내판

 

 

 세마대 정자

 

 

 멋진 현판 글씨

 

 

 활궁장

 

 

 

한신대학교로 하산

 

 

 

독산성 자체가 유수한 역사를 자랑하고 그 둘레길 또한 유순한 길로서 호젓합니다.

자연휴양림인 독산성과 보적사 주위를 걷는다는 자체가 행복입니다.

오산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당연합니다.

주말엔 자전거 라이더들이 잘 알려진 코스로서  많이 오신답니다.

마치 슬로우(SLOW) 같이 평안합니다.

교통도 좋고 길도 편하고 볼것도 있고 삼박자를 갖춘것 같습니다.

한번 다녀 오시지요.

감사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401년(백제 아신왕 10) 나라에서 창건했다고 한다. 세마산 독산성(禿山城) 내에 위치하며, 산성을 만들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주대식이 약사전을 헐고 현재의 대웅전을 지으면서 절 이름을 보적사(寶積寺)라고 고쳤다. 1986년 부임한 주지 스님 도광(道光)이 산성 안에 있는 세마대(洗馬臺)의 이름을 따서 '세마사(洗馬寺)'로 개칭하였으나, 이는 사찰 내부에서 비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말로 공식명칭은 보적사이다. 1986년 도광이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선실·요사채가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 좌상을 비롯하여 약사불상·지장보살상·십육나한상 등이 있다.
'보적사'라는 이름은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설에 따르면 춘궁기에 먹을 것이 쌀 한 되 밖에 되지 않던 노부부가, 이 쌀을 부처님께 공양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곳간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를 부처의 은혜로 여긴 부부는 그 후로 더욱 열심히 공양하였고 여기에서 '보적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편 '세마'라는 이름은 산성 안에 있는 세마대에서 유래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권율이 이 산성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왜군을 막고 있었다. 조선군의 저항이 거세자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산성에 쌀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당시 산성에는 물이 매우 귀했으나 권율은 이를 감추기 위해 쌀로 말을 씻는 시늉을 했고,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본 왜장은 산성에 쌀이 무척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물러났다고 한다. 그 뒤 말을 세워놓고 쌀로 씻은 곳을 세마대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누각이 있는데, 현판은 이승만이 쓴 것이다. 전통사찰 제 34호이며, 향토유적 제 8호로 지정되어있다
[출처] 보적사 | 두산백과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401년(백제 아신왕 10) 나라에서 창건했다고 한다. 세마산 독산성(禿山城) 내에 위치하며, 산성을 만들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주대식이 약사전을 헐고 현재의 대웅전을 지으면서 절 이름을 보적사(寶積寺)라고 고쳤다. 1986년 부임한 주지 스님 도광(道光)이 산성 안에 있는 세마대(洗馬臺)의 이름을 따서 '세마사(洗馬寺)'로 개칭하였으나, 이는 사찰 내부에서 비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말로 공식명칭은 보적사이다. 1986년 도광이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선실·요사채가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 좌상을 비롯하여 약사불상·지장보살상·십육나한상 등이 있다.
'보적사'라는 이름은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설에 따르면 춘궁기에 먹을 것이 쌀 한 되 밖에 되지 않던 노부부가, 이 쌀을 부처님께 공양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곳간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를 부처의 은혜로 여긴 부부는 그 후로 더욱 열심히 공양하였고 여기에서 '보적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편 '세마'라는 이름은 산성 안에 있는 세마대에서 유래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권율이 이 산성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왜군을 막고 있었다. 조선군의 저항이 거세자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산성에 쌀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당시 산성에는 물이 매우 귀했으나 권율은 이를 감추기 위해 쌀로 말을 씻는 시늉을 했고,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본 왜장은 산성에 쌀이 무척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물러났다고 한다. 그 뒤 말을 세워놓고 쌀로 씻은 곳을 세마대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누각이 있는데, 현판은 이승만이 쓴 것이다. 전통사찰 제 34호이며, 향토유적 제 8호로 지정되어있다
[출처] 보적사 | 두산백과
독산성(禿山城)은 백제시대에 축조하여 조선시대까지 사용했던 산성으로 군사적 요충지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임진왜란권율장군이 진을 치고 왜적을 물리쳤던 곳으로도 유명한데 권율이 산에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쌀을 말에 끼얹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그로 인해 독산성의 서장대는 세마대(洗馬臺)라고 불린다.
[출처] 독산성산림욕장 | 두산백과
독산성산림욕장 [ 禿山城山林浴場 ]
[출처] 독산성산림욕장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