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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들

연필로 쓰기

김훈 산문
연필로 쓰기(2019)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ㅡ본문에서ㅡ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원고를 쓰는 우리 시대의 몇 남지 않은 작가 김훈이 스스로의 무기이자 악기, 밥벌이의 도구인 연필에 대한 이야기로 포문을 여는 산문집이다

김훈의 ‘연필로 쓰기’는 ‘몸으로 쓰기’다. 그리고 ‘가까운 글쓰기’다. 기계가 없어도, 마땅한 공간이 없어도, 희망이나 전망이 없어도, 호수공원 벤치에서, 빗길에 배달라이더가 넘어져 짬뽕 국물이 흐르고 단무지가 조각난 거리에서, 그는 관찰하고 듣고 쓰고 있다. 그렇게 쓴 글들이 이 책으로 묶였다.
가장 더러운 똥에서부터 그의 마음속 고결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순신에 이르기까지-김훈이 몽당연필로 겨우 붙들어둔 문장들이 여기에 남았다. 이 책은 70대의 김훈이 연필로 꾹꾹 눌러쓴 산문들이다.

ㅡ연필은 나의 삽이다.
ㅡ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ㅡ연필은 짧아지고 가루는 쌓인다.
ㅡ한강 하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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