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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트레킹)

조선왕릉 선릉(宣陵) & 정릉(靖陵)

오후에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오늘(6/14일) 집 가까운 선릉(宣陵)에 다녀왔습니다.

물론 몇년전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릉(陵)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이라하니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한가롭게 오후를 거닐면서 자신을 돌아 볼 뜻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선릉,정릉(宣陵 靖陵)--(자료인용)

선릉은 9대 성종과 부인 정현왕후의 무덤이다.
성종은 유교사상을 정착하여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사림을 성장시켜 훈구세력을 견제하고,

정치기반을 조성함으로써 조선 초기의 전반적인 체제를 안정시켰다.

선릉은 왕릉과 비릉이 각각 다른 산등성이에 있는 동원이강의 형식으로 왼쪽 등성이의 비릉에는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고, 다른 석물들은 왕릉과 같으며 『국조오례의』를 따르고 있다.

왕릉에는 12면의 병풍석을 세우고 그안에 동물의 머리에 사람의 모습을 한 십이지신상을 새겼으며,

세조의 광릉 이후 세우지 않았던 병풍석을 성종의 선릉부터 다시 세웠다.

난간석은 12칸이며 그 밖에 양석·호석·망주석·문인석 등의 석물이 있다.

문·무인석의 얼굴은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나 몸통은 입체감이 없다.

정릉은 11대 중종의 무덤이다.
중종은 연산군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기위해 노력하였으나, 개혁파와 공신파의 정치적 논쟁이 끊이지 않아 조정이 안정되지 못하였다.
정릉은 원래 중종 제1계비인 장경왕후의 무덤인 희릉의 오른쪽 언덕에 있었으나

2계비인 문정왕후 윤씨가 풍수지리상 불길하다고 하여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무덤 주변의 석물은 선릉의 석물제도를 본떴다. 조선왕릉 중 왕만 단독으로 있는 무덤은

후대에 왕릉이 된 단종의 장릉을 제외하고 태조의 건원릉과 중종의 정릉뿐이다.

임진왜란 때는 선·정릉의 양릉이 훼손되는 변을 겪게 된다.

재실(齋室)은 양릉의 사이에 있으며, 여름철의 침수를 피하기 위해 층단에 지었는데 이러한 예는 선릉·정릉 뿐이다.

 

 

 2호선 선릉역에서 50미터에 있습니다

 

 

 매표소(입장료  1,000원/1인)

 

 

 안내판

 

 

 역사문화관- 조선시대 왕, 정치사가 요약정리됨

 

 

 선릉 전체가 숲단지입니다

 

 

 홍살문

 

 

 풀뽑기 봉사활동이 인상적입니다

 

 

 선릉 정자각

 

 

 제수진설도 안내판

 

 

 기신제 안내판

 

 

 비각

 

 

 먼저 성종대왕릉으로 갑니다

 

 

 외국인도 많습니다

 

 성종대왕릉

 

 

 문인석들

 

 

 무인석

 

 

 계비인 정현왕후릉 방향

 

 

 정현왕후릉

 

 

 산책로가 많고 잘 정리되었습니다

 

 

 중종의 릉 입구

 

 

정자각 및 중종릉

 

 

숲속의 한적함이 옛고취와 잘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