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제법 날씨가 쌀쌀해졌지만 한낮에는 아직도 많이 덥습니다.
오늘 오전에 비어있는 시간을 활용하여 북한산 정릉의 청수장으로부터 시작하여 보국문-대동문-용암문-도선사-우이동으로 이어지는
잘 알려진 북한산 명품코스를 등산 하였습니다.
아침부터 가을 냄새를 맡으려는 산님들이 여기저기 울긋불긋한 등산복으로 산중을 수 놓습니다.
천천히 보통의 산행 속도 보다도 낮게 걸어보니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 옷깃을 여밉니다.
북한산성과 이어지는 잘 정비된 코스를 지나서 도선사로 넘어가니, 곧 있을 자녀의 대학입시에 염불 기도하시는 수 많은 어머니들이
도선사의 효험있다고 알려진 천년 마애석불 앞에 이른 오전 시간에도 불구하고 염원기도 중이 십니다.
나중에라도 자녀들이 부모님의 이런 간절한 마음을 알아 주시려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아침에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장소 다녀오니 오후가 활기찹니다.
북한산 보국문
※북한산 등산일지
-등산일시 : 2013년9월27일(금요일- 날씨 맑음)
-등산코스 : 정릉탐방센타-넓적바위-보국문-대동문-동장대-용암문-도선사-우이동 (약10km 약3.5시간)
-등산인원 : 혼자
-등산난이도 : ★★☆☆☆
북한산 정릉탐방센타(북한산 둘레길과 이어집니다)
보국문 방향으로 시작합니다
정릉계곡과 같이 갑니다
보국문까지 거의 계속 돌계단 오르막입니다
칼바위능선과 갈라집니다
샘이 이어집니다(영천,보국천)
드디어 보국문(補國門)- 북한산성과 같이 이어집니다(1711년 숙종때 축성)
※북한산성(北漢山城)
백제가 수도를 하남 위례성으로 정했을 때 도성을 지키던 북방의 성이다. 백제 개루왕 5년(132)에 세워진 곳으로,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을 때 현종이 고려 태조의 관을 이곳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우왕 13년(1387)에 성을 다시 고쳐지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 외곽을 고쳐짓자는 의견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 왕명으로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지었다.
성의 규모는 대서문, 동서문, 북문 등 13개의 성문과 불을 피우던 곳으로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다.
성내에는 중흥사를 비롯한 12개의 사찰과 99개의 우물, 26개의 작은 저수지, 그리고 8개의 창고가 있었다.
현재 북한산성에는 삼국시대의 토성이 약간 남아 있기는 하나 대개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으로 여장은 허물어 졌고,
대서문과 장대지·우물터·건물터로 생각되는 방어시설 일부가 남아있다. 이 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도성을 지키는 중요한 곳이었다.
지금의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 37년(1711) 4월 3일에 착수되었다. 엄청난 대공사였기 때문에 축성할 구간을 나누고 이를
3군문(三軍門)의 군인에 분담시켰으며, 노임을 주는 모역군을 두었다.
또한 각종 장인은 물론 도성의 가구를 대, 중, 소로 분류하여 3명, 2명, 1명씩을 동원해 도성민들을 축성에 참여시켰다.
이 때 3만 내지 4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부역에 동원되었는데, 당시 도성의 남자 인구가 10만 명이었다고 하니 전체 도성민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축성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불과 6개월 만인 그 해 10월 19일에 백운동, 만경봉, 용암봉, 문수봉, 의상봉 등 북한산의 연봉을
연결하는 석성을 완공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축성된 성곽의 길이는 약 9.5km에 달했다.
이 기간 동안 도성의 백성들은 자신이 먹을 것을 싸가지고와 힘든 노동을 견뎌야 했다. 실로 도성민들의 피와 땀으로
완성된 성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돌로 된 성벽만 남겨 놓은 채 모든 시설물들이 사라지고
다시 잡목 속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자료인용)
북한산성이 멋지게 휘돌아 갑니다
대동문(大東門)-1711년 숙종때 축성
대동문 앞 나무그늘에 스님들 담화중이십니다
용암문 방향 진행
동장대(東將臺) (장군의 지휘소 )1712년 숙종때 축조
나월봉,나한봉,의상능선 등 북한산 주요 봉우리
북한산-삼각산(백운대,인수봉,망경대)의 이름이 생각나는 3각뿔
천년고찰 용암사지(趾)와 폐 석탑
용암문(龍岩門)-1712년 축조
우이동 방향에서 바라 본 용암문
※도선사(道詵寺)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862년(경문왕 2)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도선은 이곳의 산세가 1,000년 뒤의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고 예견하고 절을 창건한 뒤,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서 마애관음보살상을 조각하였다고 한다.
그 뒤 조선 후기까지의 중건·중수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북한산성을 쌓을 때는 승병들이 이 절에서
방번(防番:보초 임무)을 서기도 하였다.
1863년(철종 14) 김좌근(金左根)의 시주로 중수하고 칠성각(七星閣)을 신축하였으며, 1887년(고종 24)에는
임준(任準)이 오층탑을 건립하고, 그 속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하였다.
1903년 혜명(慧明)이 고종의 명을 받아 대웅전을 중건하였으며, 1904년 국가기원도량(國家祈願道場)으로 지정받았다.
1916년 도선사의 중흥주인 청담 순호(靑潭淳浩) 스님이 주지로 취임하여 당시 박정희 대통령 및 육영수 여사 등의
시주로 도량을 중수하였다.
이어서 호국참회원을 건립하고 불교의 평화 염원에 입각한 실천불교와 생활불교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현재와 같은
큰 사찰로 면모를 일신하였다.
석불상은 도선이 조각했다는 마애관세음보살상으로 총 높이 8.43m이다.
영험이 있다고 하여 축수객들이 끊일 날이 없으며, 석불 앞에는 석탑과 석등이 있다.
또, 대웅전 옆의 뜰에는 보리수가 있는데, 200년 전에 인도에서 온 고승이 심었다고 한다.(자료인용)
※도선사 마애석불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道詵)이 절을 세운 후,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체 높이 8.43m의 마애관음보살상으로 신체는 원통형으로 되어 있다.
신비스러운 영험이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으며 석불 앞에는 석탑과 석등이 있다.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방치되었던 이 석불은 철종 14년(1863)에 나라의 기도도량으로 지정된 바도 있다.
불상 형태로 보아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마애불 계통을 이어받은 조선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자료인용)
도선사 국화꽃 축제
청담기념관(청담스님 추모관)
아침 일찍 정릉의 143번 버스 종점부터 걷기 시작하여 약3-4시간 후 돌아왔습니다.
이른 시간의 산이 주는 분위기는 고요함과 자연의 소리인듯 합니다 - 새소리.다람쥐소리,도토리 떨어지는 소리 등등.
가을이 오기 전에 계절의 마중을 나갔다고나 할까.?
아주 상쾌한 혼자만의 산행이었고 종종 자주 가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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