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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순례

충남 당진의 천년고찰 영탑사(靈塔寺)

 

 

매년 부처님 오신날(음력 초팔일)  전날이 시골의 조모 제사가 있어서 올해는 마침 연휴를 맞이하여

이틀 전(2013년 5월15일)에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이곳 당진은 백제 문화권의 일원으로서 예산.홍성.서산.태안 등과 같이 옛날의 유물과 문화재가 곳곳에 서려있고

그 중에 면천에 있는 천년고찰 영탑사(靈塔寺)와 정미면에 있는 안국사지(安國寺址)를 찾았습니다.

우선 영탑사를 소개합니다.

 

 

 

 

※ 충남 당진의 영탑사(靈塔寺)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면 성하리 상왕산(象王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이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현재의 대방(大房) 앞에 5층석탑을

세운 뒤 영탑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무학대사(無學大師)가 현재의 법당 자리에 있던 천연암석에 불상을 조각하고 절을 중건하였으며,

대방 앞 정원에 있던 5층 석탑을 법당 뒤의 바위 위로 이전하였다.

1760년(영조 36)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영탑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1798년에는 지윤(智允)이

유리광전을 중수하였다.

그 뒤 1911년에 신도들이 중수하였으며, 1928년에 이민동(李敏東)이 노전(爐殿)을 중건하였다.

1988년에는 법당을 신축하였고, 1992년에는 화재로 노전이 소실되었으나 최근 복원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당우로는 법당을 비롯, 유리광전·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정면 3칸의 유리광전 안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1호인 약사여래상이 양각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형 범종이 있다.

또, 법당 뒤에는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216호로 지정된 자연암석을 기단으로 하여 세운 7층 석탑이 있는데,

 원래 5층 석탑이었으나 1911년의 중수 때 2층을 더 올려 7층으로 하였다고 한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보물 제409호인 금동삼존불상이 있다.

또, 요사채의 수미단 위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다.

이 삼존불은 최근에 인천에서 옮겨온 것이며, 조각수법으로 보아 몽고불(蒙古佛)로 추정되고 있다.(자료인용)

 

 

 

 

사찰입구

 

 

 

 

 

입구의 영천(靈泉)  - 완만한 둥근 바위에 음각

 

 

 

 

 

입구의 멋진 고목이 많습니다

 

 

 

 

 

그 흔한 일주문도 없이 거대한 고목 양쪽 두 그루가 마치 일주문처럼 맞이한다.

 

 

 

 

 

 

장엄한 입구를 지나계단에 오르면  넓직한 대웅전의 앞뜰이 나타난다

 

 

 

 

 

 

영탑사 대웅전

 

 

 

 

영탑사 대웅전 삼존불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 삼존좌상

 

 

약50㎝ 크기인 비로자나 금동삼존불(보물 제409호)을 도난당했다가 회수된 이후, 일반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사진은 자료화면)

 

 

 

 

 

 

 

 

 

영탑사 범종 - 영탑사에는 범종루나 범종각도 없다

 

 

1760년 2월 가야사 법당의 금종을 100근의 금을 녹여서 만든다(乾隆25年 庚辰2月 伽倻寺法堂金鍾百斤金入重造成也)는

기록과 함께 덕산ㆍ홍주ㆍ면천지역에 거주하면서 시주한 신도들의 이름이 양각되어 있다.

네 발을 힘차게 펼치고 있는 용의 굽혀진 몸통 아래에 달려 있는 동종은 음통(音筒)이 없이 조그만 구멍이 있고,

유곽에는 간략화된 연화문 유두를 배치하고 유곽 사이에 원형의 두광을 새긴 보살입상이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양식이다.
(자료인용)

 

 

 

 

 

 

 

영탑사 산신각 - 최근 건축된 듯 합니다

 

 

 

영탑사 유리광전(琉璃廣殿)

 

 

 

 

 

영탑사 약사여래상(마애불)-자연암반에 새긴 약사여래불

 

 

 

유리광전은 원래 자연암반에 약3.5m의 약사여래 마애불을 조각한 뒤 이 마애불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곳에 전각을

지은 것인데, 약사여래의 얼굴 형체는 비교적 뚜렷하지만 하반신은 묻혀서 잘 보이지 않다.

또, 전체적으로 미완성된 불상처럼 엉성한데, 몸체에 비해서 얼굴이 크고, 많이 마모되었을 뿐 아니라 약사불의 특징인

손에 약상자를 쥔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다 (자료인용)

 

 

 

 

 

 

 

 

 

영탑사 칠층석탑

 

 

고려 말 보조국사 지눌이 불사를 할 때 금당 앞에 5층탑을 세웠으나 여말 무학 대사가 천연 바위에 약사여래 마애불을

조각하면서 석탑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2층을 더 올렸다고 한다. (자료인용)

 

 

 

 

 

 

 

영탑사 요사채

 

 

 

 

 

공양간 앞의 많은 장독 항아리

 

 

 

 

 

 

 

서해안시대를 맞아서 당진만 일대는 석문방조제, 대호방조제를 비롯해서 국가산업공단이 만들어져 옛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내륙 쪽에는 역사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있다.

 

한말 흥선대원군과도 연관이 있을 법한 이곳 영탑사!

영탑사가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부처의 진신을 이르는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하고, 절 이름도 ‘영험한 탑(靈塔)’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영험한 탑이 유리광전 뒤에 있는

 7층 석탑을 의미하는 것인지 여부는 좀 더 체계적인 조사와 고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중생은 미륵불을 기다리고 돌부처는 중생을 기다린다"는 말을 곰곰히 되새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