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찰순례

강남도심 속 천년고찰 봉은사(奉恩寺)

 

도심 속의 천년고찰

조선시대 성종과 중종의 명복을 비는 원찰

최근 매스컴에 많이 오르내리는 강남의 유명사찰 봉은사를 이르는 말이 많습니다.

 

직장생활하면서 가까이 있던 봉은사, 이 봉은사의 포근함에 가끔 가 보았던 기억이 있고

또한 멀리는 2002년 월드컵 공개응원하러 갔을때가 생각나고, 가까이는 약2년전에 아는 형님의 권유로 일요법회

참석한것이 생각나는 봉은사!

경기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산이 수도산(修道山),  건너의  코엑스의 화려함과 잘 어울려버린 수도산 봉은사

어제(2012.05.30) 코엑스에 갈 일이 있어서 부처님 오신날이 이틀 지난 봉은사를 비가 오락가락하는날

도반님들과 다녀 왔습니다. 

 

 

※봉은사(奉恩寺) 안내 (자료인용)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인 조계사 직영사찰에 속한다.

이 절의 기원은 794년(원성왕 10)에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창건한 견성사(見性寺)이다.

1498년에 정현왕후(貞顯王后)가 성종의 능인 선릉(宣陵)을 위해 중창하고 봉은사라고 절이름을 바꾸었다.

1551년에 문정왕후(文貞王后)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보우선사(普雨禪師)를 이 절의 주지로 삼았다.

이때 양주(楊州)의 회암사(檜巖寺)를 전국 제일의 수선도량으로 삼는 동시에 봉은사는 선종수찰(禪宗首刹)로

봉선사(奉先寺)는 교종갑찰(敎宗甲刹)로 하는 승과(僧科)를 부활하여 불교재흥정책을 폈다.

1562년 보우선사가 중종의 능인 정릉(靖陵)을 선릉의 곁으로 옮기고 이 절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병화를 입어 소실된 것을 1637년(인조 15)에 경림(敬林)과 벽암(碧巖)이 중건했다.

1912년에 31본산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1939년 실화(失火)로 주요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1941년 주지 도평(道平)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코엑스 아셈센타에서 본 봉은사

 

 

 일주문(전면)- 일주문돌기둥이  7m

 

 

 진여문(眞如門)(후면)

봉은사에서는 일주문을 진여문으로 부른다한다

진여(眞如)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뜻하며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절대의 진리를 이른다.진여문에 들어선다는 것은 곧 진리를 찾아간다는 의미

 

 

 좌우 사천왕

 

 

 입구의 단아함이 돋보입니다

오른편에는 부도전과 공덕비가 있음

 

 

 법왕루(法王樓)

대웅전과 마주한 누각으로서 사시예불,대법회와 기도 수행장소

3,300분의 관세음 원불상을 모심

 

 

 대웅전 앞마당- 삼층석탑과 석등,연등이 아름답다

 

 

 대웅전-정면5간 측면4간의 다포계 팔각지붕

 현판은 김정희 글씨

 

 

 중앙에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불,좌우에 아마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심

화려한 단청과 어우러진 닫집과 후불탱화가 매우 장엄함 

 

 

대웅전 멋진 문살

 대웅전의 기둥과 창호,지붕의 추녀,용마루 등 한국 전통목재 건축물의 아름다움

 

 

 인근 첨단 아파트와의 부조화스런 조화(?)

 

 

지장전

 

 

 영산전-가장 전경이 좋은 곳으로 알려 진 온후한 기도처

 

 

석가모니를 주불로 하고 좌우에 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모셨으며

양 옆에는 16아라한(나한)이 옹위하고 있다

 

 

 북극보전(北極寶殿)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산을 모신 전각으로 일반적으로는 칠성각으로 불리우나

봉은사에서는 특이하게 북극보전이라 불리우고 있다

 

 

 영각

 

 

 미륵대불

금강역사가 8면에 조각,미륵불은 왼손에 용화주를 들고 있는 독특한 형상

높이 23미터의 미륵하생 신앙을 표현(석재는 익산에서 공수)

마침 관조스님의 "부처님의 손"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관조스님 사진전- 부처님의 손 (행사자료 인용)

 

지난 5월 17일부터 6월 6일까지 강남 봉은사 미륵전과 미륵대불 주변에서는 관조스님(1943-2006)의

'부처님의 손' 사진과, 각각의 불상에 대한 한국의 대표시인 19명의 시를 모은 '부처님의 손' 시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봉은사 사진전은 국립춘천박물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이어 세번째 전시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관조스님의 사진작품 20점을 비롯해, 이근배, 오세영, 오탁번, 유안진, 강은교, 김광규,

 김기택, 김명인, 김용택, 도종환, 문인수, 문정희, 안도현, 윤금초, 이문재, 이상국, 이영춘, 정현종, 허만하 등

한국의 대표시인 19명의 시와 함께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법어도 전시되고 있다.

전시되는 사진 및 시 작품들은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 약사여래좌상을 비롯해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본존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등 전국 각지의 불보살 수인(手印)들이다.

 

※관조스님

관조스님은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 사진작가이다. 스님은 젊은 나이에 해인사 승가대학 제 7대 강주를 역임하고

부산 범어사 총무국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학식을 갖췄지만 이후 참선에 정진했다.

이와 함께 화엄정신이 깃든 사진영상을 통해 일반 사진작가들이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스님은 부처님의 손, 즉 수인(手印)을 통해 화엄의 세계를 보고자 했다.

스님의 작품에서는 작고 하찮은 미물이나 남들이 관심을 두지않는 것을 순간에 담아 이를 우주적인 관심으로

확장시킨 것이 특징이다. 작은 것을 통해 전체를 보고자 했던 화엄정신이라는 불교 철학적 사색이 깃들어 있다.

 

 

사진전 안내 배너

 

스님 유작 약 20여점 전시

 

미륵전

 

 

판전

봉은사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셨다

판전 안에는 화엄경 소초 등 3,438점의 경판을 안치중이다

 

 

판전의 편액

추사 김정희가 쓴 판전 편액이다. 노숙한 명필의 경지를 잘 보여준다

낙관의 "칠십일과병중작"에서 보듯이 추사 김정희가 1856년에 과천의 병상에서 썻으며

쓰고서 3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는  설이 있다

 

 

봉은선원- 뒷길의 오솔길

 

 

범종각

 

운하당

보우당

 

선불당(選佛堂)

조선 중기 이후에 스님이 되기 위해 치러야 했던 승과를 실시하던 곳

 

종루

 

넓직한 법당 내부

 

해수관음상

 

향적원(공양간)

 

 

흥선대원군 영세 불망비(永世不忘碑)-봉은사와의 인연

 

 비문 내용은 이렇다 - '왕실에서 받은 절(봉은사) 소유 땅 일부가

 그 주변 농토와 섞여 지주들과 여러 해에 걸쳐 소유권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흥선대원위(군)께서 문제된 토지를 절(봉은사)에 돌려주게 했다.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어 그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주지승이 고종 7년 경오년(1870년)에 이 불망비를 세운다

 

추사 김정희 기적비(記績碑)

추사에 대한 감회를 일으키는 비 - 봉은사에서 최후를 마친 추사를 추모

 

 

화려한 연등

 

 

법왕루와 종루사이 작은 인공 연못

 

 

 부처님 오신날에 제작된 구조물들 ▼▼▼

 

 

 

 

관음성지 - 봉은사 엠블렘

 

 

봉은사 향로- 보물제321호

 

 

 

 

 

 

부처님 오신날이 지나고 오후에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갑자기 다녀 온 봉은사

주변의 화려함과 어울리는 1200년된 고찰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가를 잠시 생각해 봅니다.

경기고등학교 위의 수도산은 산이라기 보다는 작은 언덕에 불과하지만 그 산속에 서려있는

모든 문화재와 전각의 고풍스러움에 이곳을 지나는 순례자의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이 절앞의 너른 벌판에서 스님들의 과거 시험인 승시(僧試)가 열리는 것이 상상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일도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