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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들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퇴계의 부정이 담긴 편지들.

퇴계 이황(1501~1570)은 생전에 약3000통의

편지가 지금까지 전한다.

본 책에서는 아들 준에게 쓴 약 500통의 편지중

164통의 편지가 소개된다.

퇴계선생이 40세 때부터 17살로 처가에가서

살고 있는 맏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보이기 시작.

 

여기에 소개되는 편지는 맏아들 준에게 보낸 편지.

가정의 크고 작은 온갖일들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어

한 생활인으로서의 퇴계의 진면목을 엿볼수 있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퇴계는 참으로 자상하고

세밀하고 또 철저한 분 이었다.

아들에게 공부를 열심히하여 과거시험에도 붙고

또 남들처럼 벼슬도 허여 입신 출세할것을 권하

기도 하지만 대인관계에 있어 구체적인 행위준칙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일러주는 아버지였다.

 

 

#퇴계 이황

자는 경호.호는 지산.퇴계.

연산군7년 경북 안동 도산에서 진사 이식의 여섯째

아들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퇴계의 아버지는 서당을

지어 교육하려던 뜻을 펴지 못한 채,퇴계가 태어난지

7개월만에 40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퇴계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대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벼슬을 시작하여 끊임없이 학문을 연마

하여 순탄한 관료생활을 보내던 퇴계는 종3품인

성균관 대성사에 이른 43세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갈 뜻을 품는다.

이후 세차례나 귀향과 소환을 반복하면서 고향에서

연구.강의.저술에 전렴한 퇴계는 50세 이후에는

고향의 한적한 시냇가에 한서암과 계상성당 및

도산서당을 세우고,그의 학덕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문인들을 가리키면서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

하였다.

물러난 후에도 조정에서는 계속하여 높은 관직을 제수

하였으나 거듭 사직 상소를 올려, 받지 않았으며

마지못해 잠시 나갔다가도 곧 사퇴하여 귀향하기를

반복하다가 70세가 되던 선조3년 세상을 떠났다.

 

고봉 기대승과의 4단7정에 관한 논쟁을 통해 학문적

논쟁의 모범을 보여주고, 성리학의 성심론을 크게

발전 시키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계몽전의.송계원명이학통론.퇴계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