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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조

시조 16 가지 모음

 

시조 16 가지 모음

 

간밤에 부던 바람에  첨부이미지

                                    정민교

  간밤에 부던 바람에 만정도화 다 지거다

  아이는 비를 들고 쓸오려 하는고야

  낙환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슴하리요


  -- 지은이: 정민교(1697__1731)

            호는 한경자, 한계  조선 숙종 때 사람으로 '청구영언'의 서문을 쓴 정내교의 아우이다

  -- 말뜻

         만정도화: 뜰에 가득히 피어 있는 복숭아꽃

         지거다: 지었다  '__거다'는 '__었다, __았다'로 과거시제 종결어미

         쓸오려: '쓸려'의 아어형

         하는고야: 하는구나!  '__고야'는 감탄형 종결어미

         낙환들: 낙화인들  떨어진 꽃인들

  -- 감상

  지난밤 불던 바람에 뜰에 가득 피어 있던 아름다운 복숭아꽃이 다 떨어져 버렸다  철 모르는

  아이 놈은 비를 들고 그것을 다 쓸어 버리려고 하는구나  아서라, 떨어진 꽃인들 꽃이 아니냐

  구태여 쓸어 무엇하겠느냐  그냥 두고 보는 것이 더 풍취 있는 일이 아니냐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사람, 멋을 아는 사람은 낙화나 낙엽, 또는 겨울에 내린 첫눈 따위를

  박박 쓸어 버리지 않는 법이다  박박 쓸어 버린다고 해서 깨끗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슨 고정 관념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다  그 고정 관념, 그 선입관, 그

  '작은 나'를 떨어 버릴 줄 모르는 사람은 마음에 '집착'이 있는 사람, 마음을 바꿀 수 없는

  사람, '작은 나'에 사는 사람이다

 

 

꽃 지고 속잎 나니  첨부이미지

                                    신흠

  꽃 지고 속잎 나니 시절도 변하거다

  풀 속의 푸른 벌레 나비되어 나타난다

  뉘라서 조화를 잡아 천변만화 하는고


  -- 지은이: 신흠  52. 참고

  -- 말뜻

       속잎: 풀이나 나무의 꼭대기 줄기 가운데에 돋아나는 잎사귀

       변하거다: 변하였다

       뉘라서: '누가 능히'의 뜻으로, 시조의 종장 첫머리에 흔히 쓰인다

       조화를 잡아: 조화를 부리어  조화는 조물주의 작용  삼라만상을 만들어 기르는 힘

       천변만화: 천만 가지로 변화함  불가사의한 변화

  -- 감상

  그렇게도 한창이던 꽃이 어느덧 지고, 뒤이어 속잎이 힘차게 돋아 오르니 철도 이제 바뀌었다

  꽃피는 계절에서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이 되었구나  또 풀 속에 있던 푸른 벌레들도 이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다  식물뿐만이 아니라 동물도 이렇게 변화를 계속하는구나!

  그런데 그 누가 조화를 부리어 이렇게 천변만화를 하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천지간에 일어나는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은 그 누구의 조화일까?  여기에서 철학이 생기고, 종교가 싹트고, 과학이

  형성되어지는 것이리라.


국화야 너는 어이  첨부이미지

                                   이정보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다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 지은이: 이정보(1693__1766)

            자는 사수, 호는 삼주  영조 때에 이조판서, 예조판서, 대제학을 지냈으며, 젊어서 지평으로 있을

            때에 탕평책을 반대하는 '시무11조'를 올려 파직된 적도 있다 글씨와 한시에 능하였고, 시조도 78수나

            남긴 대가이다

  -- 말뜻

       삼월동풍: 따뜻한 봄바람  우리 나라의 봄바람은 거의 동풍이다

       낙목한천: 나뭇잎이 다 떨어진 추운 날

       피었는다: 피었느냐  '__는다, __난다, __나다'는 의문형 종결어미

       오상고절: 매서운 서리를 이겨내는 꿋꿋하고 높은 절개

 -- 감상

  국화야, 너는 어째서 모든 꽃들이 다투어 피는 따뜻한 봄을 다 지나 보낸 뒤에, 나뭇잎이

다 떨어져 버린 쓸쓸하고 추운 늦가을에 너 혼자서 외로이 피어 있느냐  생각컨대 그 매서운

서리, 한번 내리면 모든 식물이 다 시들어 버리는, 그 서리를 이겨 내는 높고 굳센 기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너뿐인가 하노라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를 지사의 절개에 비유하여 기린 노래이다  꽃이란 따뜻한 봄철에

핀다는 일반적인 개념을 깨뜨리고, 추운 가을에 핀다는 파격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는 국화이기에 받는 것이다.

 

 

농암에 올라 보니  첨부이미지

                                    이현보

  농암에 올라 보니 노안이 유명이로다

  인사이 변한들 산천이야 가실까

  암전의 모수모구이 어제 본듯 하여


  -- 지은이: 이현보(1467__1555)

            자는 비중, 호는 농암  호조 참판 등 여러 벼슬을 거쳤다  자연을 노래한 많은 시조를 지었으며,

            10장으로 전하던 '어부사'를 5장으로 고쳐 지은 것이 '청구영언'에 실려 전한다  또 '농암집'이라는

            시문집이 있다 

            호조참판 때에 은퇴하려 하자, 임금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굳이 고향으로 내려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본뜬 시조 '귀거래사'를 지었다

  -- 말뜻

        농암: 지은이의 고향인 경상도 예안군 분천리 분강 가에 있는 바위 이름인데, 이것을 그의 호로 삼았다 

              바위 위에 초당을 짓고 살았는데, 흐르는 강물 소리 때문에 아래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

              다하여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노안;늙은이의 눈

       유명: 오히려 밝다

       인사이: 사람의 일이  인간세상의 일이  주격 조사 '__가'가 아직 안 쓰이던 흔적이 이것이다

              '모수모구이'도 마찬가지

       가실까: 변할까

       모수모구이: 물과 언덕들이  무슨 강, 무슨 언덕 할 것을 특정 지명 대신 이렇게 통틀어서 부른

  -- 감상

  지은이가 벼슬을 그만둔 70세 때, 고향으로 돌아와 그리던 산수를 돌아보고 감회에 젖어

지은, 이른바 '농암가'라는 것이다

  오래간만에 농암에 올라 보니, 노안이 더욱 밝아진 듯, 고향 산천이 선하기만 하구나  사람에

관한 일들은 변한 것이 많지만, 산천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내가 오른 농암 앞에 펼쳐져

흐르는 이 물, 저 언덕들이 어제 본 듯 변함없이 예전의 모습 그대로구나  오래간만에 그리운

고향 산천을 다시 보니 그 어떤 부귀영화에 비할 수 없는 반가움과 즐거움이 절로 우러나는구나

어린 아이처럼 자연을 반기는 옛선비의 모습이다.


대동강 달 밝은 밤에  첨부이미지

                                    윤유

  대동강 달밝은 밤에 벽한사를 띄워 두고

  연광정 취한 술이 부벽루에 다 깨거다

  아마도 관서가려는 예뿐인가 하노라


  -- 지은이: 윤유(1674__ ?)

            자는 백숙, 호는 만하  조선조 숙종 때에 이조, 형조, 호조의 판서를 역임하였고, 글씨를 잘 썼다

            평양에서 읊은 시조 두 수가 전한다

  -- 말뜻

  벽한사: '벽한'은 푸른 하늘과 은하수이니 하늘을 말하고, 신선이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뗏목이 벽한사이다

  연관정: 평양 대동문 옆, 대동강가의 절벽 위에 서 있는 큰 정자로서 경치가 매우 좋다  평야의 의기 계월향이

         임진왜란 때에 왜장을 부둥켜 안고 대동강 물속으로 떨어졌다는 곳 왜장 소서행장과 명나라 자웃 심유경

          이 강화 담판을 여기에서 하였다

        고려의 시인 김황원의 유명한 시 "장성일면옥옥수 대야동두점점산(긴 성을 끼고 돌며 대동강은 굽이쳐

        흐로고, 넓은 들 동쪽 끝에는 산들이 울멍줄멍)"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대시인 김황원도 이 정자에 올라 그 풍광의 웅장함에 압도되어, 하루 종일을 끙끙거리다가 겨우 이 한 수

        를 남기고 소리쳐 울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부벽루: 모란봉 중턱 대동강가 천야만야한 낭떠러지 위에 나는 듯이 솟아 있는 누각이다 

         바로 눈 아래에 수양버들이 덮인 능라도가 바라보이며, 또 옆에서는 영명사의 은은한 범종 소리가

         제행무상을 알려 준다  그리고 여기서 바라다보이는 대동강의 경치는 길게 세로로(가로가 아닌) 보는

         강물의 경치로서는 유례가 없을 만큼 독특한 절경이라고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원문에 부벽교로 되어 있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부벽루'의 잘못된 표기이다

  관서가려: 관서지방(평안도0이 아름다운 경치

대동강 뱃놀이는 천하일품이다  연관정 밑에서 술과 미색을 싣고, 병풍을 둘러친

듯한 청류벽 밑을 지나 백은탄에 부서지는 달빛을 타고 부벽루에 이르는 풍경은 천하 일품이라는

말이 허풍이 아님을 맛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관서의 절경이 여기뿐인가 하노라'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도선이 비봉에 올라  첨부이미지

                                    김수장

  도선이 비봉에 올라 국도를 정하올제

 

  자좌오향으로 성궐을 이뤘는데 좌청룡 우백호와 남주작 북현무는 귀격으로 벌려 있고 전대하

  한강수는 여천지 근원이라  태묘는 가좌하고 사단은 가우로다  삼봉이 수려하니 인걸이 호준하고

  와우산 유덕하니 민식이 풍족이라  성계신숭하여 억만년지무강이샷다

 

  하늘이 주오신 뜻을 받들어 만만세를 누리소서


  -- 지은이: 김수장  21. 참고

  -- 말뜻

  도선: 신마말: 고려초의 유명한 스님. 그의 '음양지리설'과 '풍수상지법'은 고려, 이조를 통하여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 설이다  그가 지은 '도선비가'는 당시 신비적 예언서로 여겨졌다

  비봉: 북한산에 있는 봉우리  진흥왕 순수비가 있다

  자좌오향: 자방을 등지고 오방을 향하여 앉다  곧 정남향으로 앉는 것

  좌청룡: 주산에서 갈라져 나간 왼쪽 산줄기

  우백호: 주산에서 갈라진 오른쪽 산줄기  청룡은 동쪽, 백호는 서쪽임

  남주작 북현무: 주산에서 본 남쪽과 북쪽 산을 이름  고분 벽화 같은 것을 보면 동서남북에 청룡, 백호, 주작

                (붉은 봉황을 상징), 현무(거북을 상징)를 배치하였다

  귀격: 귀히 될 상격

  전대하: 앞쪽에 띠 모양으로 흐르는 강  여기에서는 물론 한강을 이른다

  여천지 근원: 천지와 더불어 그 근원을 같이하다

  태묘: 종묘

왼쪽이 가하다

  사단: 사직단  임금이 지신과 곡신에게 제사 지내던 제단  지금의 사직공원에 그 유적이 있다

  삼봉: 삼각산, 북악산, 인왕산, 또는 삼각산(북한산)의 백운, 인수, 국망의 세 봉우리

  호준: 호걸스럽고 준수함  인물이 뛰어남

  와우산: 서울 서강의 뒷산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민식: 민생  먹을 것은 백성의 하늘(식위민천)이라는 말이 있다  농사가 잘되어 식량이 넉넉하다

  성계신승: 성신이 계승한다는 말이니, 거룩하신 임금이 대대로 왕위를 이어나간다는 뜻이다

  이샷다: __이시도다!  감탄과 존경의 뜻을 가진 종결어미


  -- 감상

  한양은 도선 큰스님이 일찍이 명당으로 점친 서울터인데, 여기에 도읍한 조선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노래이다.

 

 

두류산 양단수를  첨부이미지

                                   조식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에라

  아이야 무릉이 어디오 나는 옌가 하노라


  -- 지은이: 조식  23. 참고

  -- 말뜻

  두류산: 지리산의 다른 이름  지리, 두류 등으로도 쓰였다

  양단수: 쌍계사를 중심으로 두 갈래로 흐르던 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을 말한다

  산영조차: 산 그림자마저  산 그림자까지도

  잠겼에라: 잠겼구나!  잠겼도다!   '__에라'는 감탄형 종결어미

  무릉: 무릉도원  선경  별천지

  옌가: 여기인가


  -- 감상

  지리산의 양단수가 절경이라는 것을 전에는 말로만 들었는데 이제 실제로 와서 내 눈으로

보니 복숭아꽃잎이 떠 있는 맑은 물에 산 그림자까지 잠겨 있구나!  아, 별천지 무릉도원이

바로 여기로구나  이곳이야말로 선경이 아니고 무엇이냐?

  지은이는 만년에 이곳 덕산동에 은거하면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생애를 바치었다

'도하 뜬 맑은 물은 물에 산 그림자까지 잠겨 있구나!' 이 얼마나 멋진 포착인가.

 


      101. 말없은 청산이요  첨부이미지

                                     성혼

  말없는 청산이요 태없는 유수로다

  값없은 청풍이요 임자없은 명월이라

병없는 몸이 분별없이 늙으리라


  -- 지은이: 성혼(1535__1598)

  자는 호원, 호는 우계, 묵암  일찍부터 이율곡과 교분이 두터웠으나, 학설에 있어서는 이퇴계의 이기호발설을 지지, 기발이승일도설을 주장하는 율곡과 사단칠정에 대하여 6년 동안이나 논쟁을 벌인 일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글씨도 잘 썼으며, 임진왜란 때 광해군의 부름으로 잠시 좌참판을 지냈고, 인조 때에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 말뜻

  태없은: 일정한 모양이 없이 변화가 무쌍한

  분별없이: 근심걱정 없이  '분별'은 속인의 하잘것없는 주견 때문에 생기는 잔걱정


  -- 감상

  '없은'을 장마다 두 번씩 6번을 되풀이하여, 이 시조의 뼈대를 삼았는데 그것이 운율에 묘미를 더해 준다 

   아무 데도 얽매인 데 없는 대자연 속에서 풍운 유수와 함께 세속을 멀리하고 유유자적하는 심정을 소탈하게

   읊었다 

   60평생을 거의 벼슬하지 않고 학자로서, 자유인으로서 살아간 지은이의 풍모가 이 한 수에 승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말이 놀라거늘  첨부이미지


  말이 놀라거늘 혁 잡고 굽어보니

  금수청산이 물 속에 잠겼어라

  저 말아 놀라지 마라 이를 보러 하노라


  -- 말뜻

  혁: 세  고삐  말고삐  고삐의 옛말은 세인데, 구개음화 현상에 의하여 '혁'이 될 수 있으니 혁(가죽 혁) 자를

      쓴 것이다

  금수청산: 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다운 청산  단풍이 곱게 물든 아름다운 경치의 산으로 보아도 좋으리라


  -- 감상

  타고 가던 말이 갑자기 놀라기에 고삐를 치켜잡고 내려다보니, 금수 같은 청산이 물 속에 잠겨 있구나! 

  파랗게 맑은 물 속에 그림자진 산의 경치는 한결 더 아름답고 멋이 있다  말아! 놀랄 것 없다 

  물 속에 잠긴 금수청산의 아름다운 이 경치를 나는 보아야겠다

  이 시의 밀도 높은 짜임새를 눈여겨 보자  말도 놀라는 물 속에 잠긴 금수청산, 나는 그것을 보아야겠다  말과 

  사람과 금수청산이 하나가 되었구나! 우리 나라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은 맑고 곱기가 세계에 유례가 없다고 한다

  손을 담그면 금방이라도 파란 물이 들 것 같고 그 밑의 조약돌은 그 수를 셀 수 있을 정도인데, 여기에 거꾸로

  비친 산의 경치, 그것이 단풍이 한창이라면 더욱 아름답지 않겠는가  푸른 시냇물에 비치는

 호화

  현란의 극치를 이룬다

  이런 풍경을 도처에 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금수강산이다  잘만 가꾸면 세계에서 으뜸가는 강산이라고 하여도

  결코 지나친 말이 되지 않을 성싶다 

  그런데 '자연보호'를 그렇게 외쳐대면서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강산은 지저분하기만 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명실상부한 금수강산을 만들고 못 만드는 일은 오로지 겨레의 의식에 달려 있다  이것은 그것을 깨우쳐 주는 듯한

  시조이다.

 

묻노라 저 산사야  첨부이미지

                                  신위

  묻노라 저 선사야 관동풍경 어떻더니

  명사십리에 해당화 붉어 있고

  원포에 양량백구는 비소우를 하더


  -- 지은이: 신위(1769__1847)

  자는 한수, 호는 자하  조선 정조 때에 이조참판을 지냈다  시, 서, 화에 능하여 삼절의 이름이 높았다 

  조선 개국 이래 가장 많은 시(한시) 작품을 남겨서 유명하다


  -- 말뜻

  선사: 선을 닦는 스님

  명사십리: 함경남도 원산 동해안에 있는 모래톱인데, 하얗게 고운 모래가 10리나 깔려 있고,

그 위에 빨간 해당화가 요염하게 피어 있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명승지이다

  원포: 먼 포구이니 동해 바닷가를 이름이다

  양량백구: 쌍쌍이 날으는 갈매기

  비소우: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훨훨 날아다니다


  -- 감상

물처럼 온 세상을 흘러다니는 스님  그는 관동 풍경도 두루 보았겠기에 그에게 물었더니, 명사십리에는

  지금 해당화가 한창이요, 보슬비 내리는 포구에는 흰갈매기들이 빗속을 쌍쌍이 날고 있더라는 것이다

  '관동 풍경'은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끌어넣는다  검푸른 동해 바다의 맑은 물과 빼어난 산세도 좋거니와,

  해변은 가는 곳마다 백사청송의 절경이다  더욱이 금강산을 구경할 수 있게 된다면 '선경'도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바람이 눈을 몰아  첨부이미지

                                    안민영

  바람이 눈을 몰아 산창에 부딪치니

  찬 기운 새어들어 잠든 매화를 침노한다

  아무리 얼우려 한들 봄뜻이야 앗을소냐


  -- 지은이: 안민영(1816__ ?)

  자는 성무, 호는 주옹  박효관 문하에서 노래를 배웠으며, 조선조 3대 가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가곡원류'를

  박효관과 함께 엮었다  저서로 '주옹만록'이 전한다 30수에 가까운 시조 작품을 남기고 있다


  -- 말뜻

  산창: 산가, 산방, 산장의 창문  산중에 있는 집의 창문이라는 말이다

  침노하니: 침범하니

  얼우려: 얼게 하려고  찬바람이 매화 봉오리를 얼게 하려고 한다는 말

  봄뜻: 봄이 하려고 하는 뜻이니, 봄의 의지, 봄기운  춘심

  앗을소냐: 빼앗겠는가  못 빼앗는다


  -- 감상

  찬바람이 눈을 몰아다가 산장 창문에 부딪치니, 찬 기운이 집안으로 스려들어 고이 잠자는 매화에게 침범해 온다

  그러나 제아무리 겨울이 매화를 얼게 하려 한들 대자연의 섭리요, 조물주의 조화인 봄이 이미 와서 매화가 방긋이

  꽃을 피우려는 봄뜻이 있는데, 그것까지 네가 빼앗아 갈 수 있겠느냐 이른바 안민영의 '영매가'의 하나로서

  헌종 6년 어느 겨울날, 그의 스승 박효관의 산방에서 벗과 미녀들과 더불어 거문고 타고 노래 부르며 놀 때,

가꾼 매화가 방안에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지은 8수 중의 하나이다.

 


    105. 버들은 실이 되고  첨부이미지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춘광에 짜내느니 나의 시름

  누구라 녹음방초를 승화시라 하던고


  -- 말뜻

  북: 피륙을 짤 때에 씨의 실꾸리를 넣어 가지고 날의 틈으로 왔다갔다하게 하여 씨를 풀어 주며 피륙을 짜는

     제구

  구십춘광: 봄 석 달(90일) 동안의 따뜻한 별  봄의 풍광

  녹음방초 승화시: 푸르른 신록과 꽃다운 풀이 꽃보다 나은 시절  꽃이 지고 녹음이 우거질 무렵


  -- 감상

  녹음방초 승화시에 느끼는 감상을 사물에 비유하여 고묘하게 잘 읊었다  실실이 푸르른 수양버들

 노란 꾀꼬리가 오락가락하는 풍경(이것은 옛부터 한국 특유의 멋진 풍경)을, 날실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피륙을 짜내는 북에 비유하였다  그리해서 짜내는 피륙이 나의 시름(봄에 느끼는 계절적인 감상)이라는 것이다  늦봄에서 첫여름 사이의 싱그러운 푸르름에서 느끼는 한국적인 감회가 아련하다

  사람들은 흔히 경치를 말할 때에 봄의 꽃과 가을의 단풍을 든다  그것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거의 개념적, 유형적인 관념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침잠의 세계를 볼 줄 아는 이에게는 그것들의 속됨을 떠나서, 오히려 꽃이 거의 다 진 뒤의 녹음과 방초의 계절을 더 값진 것으로 느낀다 

우선 속인들이 법석을 떨지 않아서 좋다  신록 사이를 누비는 꾀꼬리도 좋거니와 대지를 덮은 방초의 싱그러움이 더욱 좋지 않으냐  특히 한국의 첫여름은 그야말로 황금의 계절이다 

생기발랄한, 생명력이 샘솟는, 삶의 보람을 가장 왕성하게 느끼는 계절이 바로 이 무렵이다  그래서 구십춘광이 짜낸 시름에서 '누가 녹음방초를 승화시라 하더냐?'고 짐짓 반발해 보게도 되는 것이다.

 


      106. 빙자옥질이여  첨부이미지

                                 안민영

  빙자옥질이여 눈 속에 네로구나

  가만히 향기 놓아 황혼월을 가약하니

  아마도 아치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 안민영  104. 참고

  -- 말뜻

  빙자옥질: 얼음같이 맑고 깨끗하고, 구슬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자질  매화의 깨끗하고 아름다움을 형용한 말 

           빙자(자태 자)옥질로 쓴 곳도 있다

  황혼월: 저녁달  황혼은 땅거미 질 무렵

  아치고절: 우아한 풍치와 높은 절개


  -- 감상

  빙옥같이 맑고 아름다운 성품과 바탕을 지닌 것은 눈 속에 피어 있는 바로 너로구나  그윽한 향기(암기)를

  가만히 풍기면서 저녁달과 때를 맞추어 용케도 피었구나!  생각컨대, 우아한 풍치와 높은 절개를 보여 주는

  것은 매화 너뿐인가 보다.

 


      107. 산이 하 높으니  첨부이미지


  산이 하 높으니 두견이 낮에 울고

  물이 하 맑으니 고기를 헤리로다

  백운이 내 벗이라 오락가락 하는구나


  -- 말뜻

'하'는 크다  많다는 뜻의 '하'이다

  헤리로다: 세리로다  셀 만하도다  물이 하도 맑아서 그 밑에서 노디는 고기의 수를 셀 수가 있을 정도라는

           뜻


  -- 감상

  산이 하도 높고 깊어서, 고요하고 호젓해서 두견새도 시간 감각을 잃고 대낮에 울어대는 산마을, 물이 하도

  맑고 투명해서 바닥에서 노는 물고기의 수를 셀 수 있는 그런 시내,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흰구름,

  그리고 그것들을 벗삼고 살아가는 주인공...이쯤 되면 인간과 신선의 구별은 부질없는 짓인 것 같다

  오염 속에 살고 있는 현대 도시인에게 일말의 향수를 느끼게 함에 충분하다  이런 것은 또 어떠할까?

 

    산중에 책력 없어 /작자 미상

  산중에 책력 없어 철 가는 줄 모르노라

  꽃 피면 봄이요 잎 지면 가을이라

  아이들 헌옷 찾으면 겨울인가 하노라(작자 미상)

다투는 현대인에게 이것은 고대 신화 같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옛사람의

생활에 일말의 향수를 느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108. 설악산 가는 길에  첨부이미지

                                  조명리

  설악산 가는 길에 개골산 중을 만나

  중더러 물은 말이 풍악이 어떻더니

  이사이 연하여 서리 치니 때맞았다 하더라


  -- 지은이: 조명리(1697__1756)

  자는 중례, 호는 도천  영조 때에 형조판서를 지냈다  문명이 높았고, 글과 글씨도 잘해서 '광묘어제훈사'를

  짓고, 가선대부의 가자를 받았다  저서로 '도천집'이 있고, '청구영언'에 시조 4수가 전한다


  -- 말뜻

  설악산: 강원도 양양군과 인제군 사이에 있는 명산으로 높이는 1,708m  눈 경치가 특히 좋아서 이렇게 부른다

  개골산: 금강산의 겨울 이름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바위만 앙상하게 남는다는 뜻  금강산은 경치가 하도 좋아서

계절에 따라 여름은 봉래, 가을은 풍악 봄은 금강, 또는 금수라고 일컫는다

  이사이: 요즈음

  때맞았다: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때를 만났다


  -- 감상

  설악산으로 단풍 구경을 가는 길에 금강산 중을 만나 풍악의 단풍 경치가 어떠하더냐고 물어 보았더니, 요즈음

  며칠 동안에 잇달아 서리가 내려서 한창 단풍이 아름다운 좋은 때를 만났다고 하더라

  단풍 놀이도 꽃구경과 같아서 때를 잘 맞추어서 해야 한다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어서는 단풍의 진정한 제맛을

  볼 수가 없다 

  한창 절정을 이루는 때가 언젠가를 미리 조사해서 구경해야 단풍의 참다운 아름다움을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단풍은 또 가을 날씨에 따라서 아름다움이 좌우된다  가을 날씨가 말고 좋아서 햇빛을 담뿍 머금은 해의 단풍은

  아름답고, 그렇지 못한 때의 단풍은 곱지가 못하다  이 해는 아마도 단풍이 몹시도 아름다웠던 해인 것 같다

  단풍의 경치를 포함해서 금강산의 경관은 설악산의 한수, 아니 몇수 위다  어떤 면으로 보아서는 비교가 안된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금강산은 세계적 명산이다  그렇게도 자존심이 강한 중국 사람도

 "원컨대, 고려 나라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 번 보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원생고려국 일견금강산)"라고 하지

아니하였던가? 풍악의 단풍을 제쳐 놓고는 단풍을 논하지 말라.

 


      109. 어리고 성긴 가지  첨부이미지

                                    안민영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지 않았더니

  눈 기약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

  촉 잡고 가까이 사랑할제 암향조차 부동터라


  -- 지은이: 안민영  104. 참고

  -- 말뜻

  눈 기약: 눈올 때에 한 약속

  암향부동: 가만히 알 듯 모를 듯 풍기는 그윽한 향기가 떠돈다  매화의 향기를 형용하는 말로 많이 쓰였다


  -- 감상

  이것도 사군자(매란국죽) 중의 하나인 매화를 읊은 '영매가'의 하나이다  늙고 옹이져서 검고 우툴두툴한 줄기에

어린 가날픈 가지가 드문드문 나 있는 '성긴 가지'  거기에 무슨 꽃이 필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였었는

  데, 눈 속에서 한 약속을 능히 지켜서 두세 송이 연분홍 예쁜 꽃이 가냘프게 피었구나  어두운 데서 촛불을 들고

  가까이 가서 완성할 제, 그윽한 암향조차 풍기니 제구실을 다하는구나!  두세 송이 핀 간냘픈 매화, 그것이

  풍기는 그윽한 향기, 더욱이 봄도 아닌 아직 추운 겨울날 핀 매화이기에 더욱 대견스럽고, 보는 이의 감회는

  한결 아련할 것이다.

 


    110. 우는 것이 뻐꾸기냐  첨부이미지

                                    윤선도


  우는 것이 뻐꾸기냐 푸른 것이 버들숲가

  어촌 두어 집이 냇속에 들락날락

  말가한 깊은 소에 온갖 고기 뛰노나다


  -- 지은이: 윤선도(1587__1671)

약이, 호는 고산  송강, 노계와 더불어 조선조 3대 문인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장가는 송강, 단가는

     고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시조에 있어서는 송강과 쌍벽을 이루었다  그의 시 세계는 '자연 속에 몰입한

     인생'의 경지를 보여 준다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89수가 전한다

    고산은 어려서부터 총명이 뛰어나고 풍모가 단아하였으며, 문과 초시에 장원 급제, 그 후 40여 년 동안 당쟁

    틈바구니에서 부침하면서 별로 높은 벼슬을 지내지는 못했으나, 죽은 뒤에 이조판서를 추증받았다


  -- 말뜻

  냇속에: 연기 속에  밥 짓는 굴뚝 연기도 좋고, 연무로 생각해도 좋다

  들락날락: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모양  출몰, 은현하는 모양

  말가한: 말간  맑고 깨끗한

  소: 못  냇물이 흘러가다가 갑자기 깊어진 곳

  뛰노나다: 뛰노는구나!  '__나다'는 '__노다, __놋다'와 함께 감탄형 종결어미


  -- 감상

  어부사시사 중의 춘사의 넷째 수로서, 봄의 어촌 풍경을 그린 것이다

  어디선가 들려 오는 뻐꾸기 소리, 이것은 청각적으로 잡은 흥취요, 저기 바라다보이는 저 푸른 버들 숲, 이것은

  시각적으로 잡은 풍경이다  또 저 멀리 아스라이 냇속에 들락날락하는 어촌의 두세 집, 말간 깊은 소에는 

  온갖 고기들이 봄을 즐기듯이 뛰놀고 있다  봄의 어촌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 바로 그것이로다

'어부사시사'는 고산이 만년에 고향 해남에 내려와서 보길도 부용도에서 전원 생활을 즐기면서 지은 40수의

  연시조인데, 춘사, 하사, 추사, 동사 각 10수로 이루어졌다  '고산유고'에 실려 있는데, 그의 원숙기의 작품

  들임을 염두에 두고 감상하면, 감회는 한결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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